[北, 연평도 포격 도발]“여기를 떠난다고 뭘 더 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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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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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에 남은 주민들

26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 북방 북한 내륙지역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포성이 여섯 차례 정도 들려 연평도 주민들이 황급하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주민 강선옥 씨와 이유성 씨(오른쪽)가 대피소에서 촛불을 켜놓은 채 마음을 졸이고 있다. 연평도=장관석 기자 jks@donga.com
26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 북방 북한 내륙지역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포성이 여섯 차례 정도 들려 연평도 주민들이 황급하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주민 강선옥 씨와 이유성 씨(오른쪽)가 대피소에서 촛불을 켜놓은 채 마음을 졸이고 있다. 연평도=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여길 떠난다고 뭘 더 할 수 있겠어? 그냥 고향 지키고 있을 거야.”

40년 동안 연평도에서 살아온 박모 씨(76)는 25일 저녁식사를 준비하면서 주민들의 피란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말없이 파를 다듬었다. 된장국에 넣을 대파 껍질을 조용히 까는 동안 이웃들은 옷가지며 통장, 금붙이 등 귀중품들을 챙겨 연평도를 떠나는 마지막 배에 정신없이 올라탔다.

박 씨는 이곳이 더 편하다고 했다. 연평도 해경출장소 뒷벽에 남겨진 시커먼 포탄 파편 흔적을 바라보면서도 그는 태연했다. 인천에 사는 아들이 “인천으로 오시라”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연평도를 떠날 마음이 없다고 했다. 박 씨는 그저 “연평도가 좋으니 남겠다”고만 말했다.

주민들이 빠져나가 ‘유령섬’이 되어 버린 연평도는 26일 인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공무원과 경찰, 복구인력을 빼고 섬에 남아 있는 민간인은 스무 명 남짓에 불과하다. 포격 전 연평도에 살고 있던 주민은 1400명을 넘었다. 그중 1380여 명이 뭍으로 탈출했으니 ‘빈 섬’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었다. 현재 섬에 남아 있는 사람은 대부분 노인이다. 이들은 “섬에 마지막 순간이 오더라도 우리는 이곳에 있고 싶다”고 했다.

연평도에 남아 있는 주민 중 최고령자는 이유성 씨(83)다. 그는 아내 강선옥 씨(82), 딸 이기옥 씨(50)와 함께 연평도에 남았다. 이 씨는 황해남도 옹진에서 6·25전쟁 때 피란민으로 연평도에 정착한 후 60년을 여기서 살았다. 도시에서 전쟁이 나더라도 섬은 안전할 거라 믿고 무작정 왔던 것이 벌써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연평도에서 농사를 짓고, 굴을 따며 생계를 이어 왔다. 강 씨는 “내 삶의 시작이 이곳이니, 마지막도 연평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들 부부는 “6·25 때부터 연평도에서 줄곧 살아왔지만 북한이 23일 포격할 때는 가슴이 쿵쾅거렸다”며 “무섭기도 하지만 막내(딸)가 남아 있는 한 연평도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북한이 훈련포를 발사했을 때 모두 방공호로 대피했다. 딸 이 씨는 “주민들이 모두 떠나버리고 군부대만 남는다면 연평도는 아마 북한 땅이 될 것”이라면서 “마지막까지 고향을 지키고 싶다”며 웃었다.

김상숙 씨(83·여)도 60년간 살아온 터전을 차마 떠나지 못하겠다고 한다. 아들이 어머니를 인천으로 데려가기 위해 연평도 당섬 선착장까지 억지로 끌고 갔지만 떠나기 싫다는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김 씨는 “굴이 제철이면 굴을 캐고, 성당에도 가고, 손자 보는 것이 내 낙”이라고 했다. 굴도 없고 바다도 없는 곳으로는 가고 싶지 않다면서 김 할머니는 몇 번이나 눈시울을 적셨다.

하지만 노인들만 섬에 남은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이날 북한의 훈련 포격이 있었다는 소식에 육지에 사는 자녀들이 “빨리 섬을 떠나라”고 재촉했기 때문이다. 또 28일 실시되는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공포도 커지고 있다. 한 할아버지는 “내일이 되면 이제 몇 명이 남을지 모른다”며 “주민들이 모두 떠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연평도=장관석 기자 jks@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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