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황인찬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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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특파원 황인찬입니다. 한일 관계가 더욱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의 오늘을 보여드립니다.

hic@donga.com

취재분야

2026-06-02~2026-07-02
일본64%
중국6%
인사일반6%
칼럼4%
축구4%
국제경제4%
국제사고4%
국제일반4%
미국/북미2%
경제일반2%
  • [문학예술]태극기는 수천 년 전에 만들었다?

    기원전 3804년 배달국에서는 1년이 360일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90일씩으로 나눴고 ‘월(달)’ 개념이 없었다. 천문을 연구하는 관직인 ‘천백’에 오른 해달은 천황(天皇)에게 “열두 달로 나누면 더 간편해진다”고 상소를 올린다. 천황은 크게 기뻐하며 1년이 열두 달인 환력(桓曆)을 시행한다. 우리 민족의 시초 배달국의 국가 정비 과정을 그린 소설. 천문을 통해 음양과 팔괘의 이치, 날짜와 시간 개념을 깨치며 이를 생활에 접목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노력을 그렸다. 태극 문양을 바탕으로 한 태극기를 수천 년 전 배달국에서 만들었다는 발상이 신선하다. 한국천문연구원장을 지낸 저자는 “나라의 근본이 되는 모든 것이 하늘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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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와 차 한잔]‘희랍어 시간’ 펴낸 소설가 한강

    소설가 한강(41)이 소설 ‘희랍어 시간’(문학동네)을 냈다. 원고지 600여 장 분량의 경(輕)장편이다. 하지만 8일 저녁 서울 광화문의 카페에서 마주앉은 작가는 “경장편이 아닌 장편”이라고 강조했다. “길이는 짧지만 저에게는 무게가 가벼운 게 아니에요. 누가 뭐래도 저의 다섯 번째 장편입니다.” 애착이 큰 연유는 이렇다. 작가는 2008년 늦가을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언어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희랍어 시간’의 초고를 쓰며 이 고민을 힘겹게 뚫고나갔다. 이듬해 봄 150여 장의 스케치를 완성했을 때 깊은 수렁을 빠져나온 듯했다. 그 느낌에 힘입어 한동안 손을 놓았던 ‘바람이 분다, 가라’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동리문학상을 받았다. “‘바람이 분다, 가라’가 격렬한 느낌이었는 데 반해 이번 작품은 한 남자와 한 여자에 대한 조용한 이야기예요. 소멸하는 삶 속에서 서로를 단 한순간 마주보는 사람들을 다뤘죠.” 점심을 걸렀다는 한강은 땅콩크림을 바른 베이글 한 개와 따뜻한 코코아를 달게 먹으며 말을 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네 번 고쳐 썼다. 쓸 때마다 분량이 늘었고, 결말도 달라졌다. 6월 초부터 두 달 반 동안은 출판사 문학동네의 인터넷 카페에 연재하기도 했다. 소설에서 희랍어 강사인 남자는 독일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홀로 산다. 그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병을 가졌다. 그의 수강생 중에는 한 여자가 있다. 듣기는 하지만 어릴 때 병을 앓아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다. 여자는 이혼한 남편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말’을 찾기 위해 희랍어를 배운다. ‘언어를 찾는다’는 점에서 작품 속 여자와 작가가 오버랩된다고 하자 한강은 ‘푸하하’ 웃었다. “여자하고 제가 언어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맞겠네요. 하지만 소멸하고 빛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그렸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그린 거죠.” ‘결여된 삶’을 살아가는 남녀는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늦은 밤 남자가 희미하게 보이는 여자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지금, 택시를 부르겠어요.” 말을 할 수 없는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에 가만히 적는다.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 찬 슬픈 눈과 같은 소설은 시종 조용하고 담담하게 남녀의 일상을 따라간다.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는 “소설의 절정 부분이라는 게 꼭 격렬하고 시끄러울 필요는 없다. 조용하게 흘러가는 절정도 가능하다”고 했다. “작품을 완성하면 작가가 작품 속에서 ‘나가야’ 하는데 그 과정이 이번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이 소설은 아프고 슬픈 얘기지만 저에게는 따뜻했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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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라카미 하루키 “스물아홉에 난데없이 소설 써야겠다는 생각이…”

    “스물아홉이 되고 난데없이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뭔가 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도스토옙스키나 발자크에 필적할 가망은 없었지만. 딱히 대문호가 될 필요는 없으니까….”노벨 문학상 후보로 매년 거명되고 있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2·사진)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할 당시를 이렇게 추억했다. ‘노르웨이 숲’ ‘댄스 댄스 댄스’ ‘태엽감는 새’ ‘1Q84’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배출하며 30년 넘게 이어진 창작 활동은 그에게는 외로운 여정이기도 했다.“돌이켜보면 나는 소설을 쓰는 데 도움 받을 스승도 없었고 동료도 없었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난데없이 소설을 쓰기 시작해 줄곧 혼자 써왔다.”다음 주 출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비채)에는 그의 미발표 에세이 69편이 담겨 있다. 진지한 문학론도 있고 음악과 인생에 대한 진솔한 단상도 가득하다. 저자는 각 에세이에 새로 소감을 추가하는 정성을 들이기도 했다.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하루키에게 소설, 소설가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새로운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지극히 예사로운 평범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소설가가 할 일”이라며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1Q84’에서 덴고가 듣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에는 음악이 자주 소재로 등장한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은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어주지 않겠지.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 배웠다.”리듬감에 대한 그의 애착은 소설의 텍스트를 넘어 창작 태도로까지 이어진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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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아마존닷컴 ‘베스트 10’

    4월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가 신경숙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가 세계 최대 인터넷서점 아마존닷컴이 선정한 ‘문학·픽션 부문 올해의 책 베스트 10’에 선정됐다. ‘엄마를 부탁해’는 올해 출간된 모든 책을 대상으로 하는 ‘올해의 책 베스트 100’에도 이름을 올렸다.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에서 초판 10만 부를 찍으며 현지 출판계의 높은 기대를 받았고 출간 하루 만에 아마존닷컴 전체 순위 100위권에 진입했다. 아마존닷컴 상반기 결산에서도 ‘편집자가 뽑은 베스트 10’에 꼽혔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 양장본소설(Hardcover Fiction) 부문에서도 14위까지 오르며 호평을 받았다.이 책의 영문판을 낸 출판사인 크노프는 현재 9쇄까지 찍었으며, 내년 문고판을 선보여 열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또 이르면 내년 하반기 신경숙의 다른 장편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출간할 계획이다. 신경숙 작품의 해외 판권을 관리하는 이구용 케이엘매니지먼트 대표는 “외국 서적의 비중이 3%에도 못 미치는 미국 시장에서 이룬 순위 진입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인정받은 결과로 본다”고 말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31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15개국에서 출간됐다. 일본에서도 9월 출간돼 한 달 만에 3쇄를 찍어내며 1만3000부가 팔렸다. 한국 유명 작가의 책들이 앞서 3000여 부 팔린 것에 비하면 높은 호응이다. 국내에서 ‘엄마를 부탁해’는 2008년 11월 출간 이후 현재 180만 부를 넘겼으며 내년 초 200만 부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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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의 ‘우’와 ‘울’을 쪼갠 세상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이 지난달 400호 기념시집 ‘내 생의 중력’을 낸 데 이어 최근 401호 시집으로 김혜순 시인의 ‘슬픔치약 거울크림’을 출간했다. 기념시집이 300호대 시집의 대표작들을 엮은 것임을 감안하면 이번 시집으로 본격적인 400호대 항해를 시작한 셈. 문학과지성사는 401호의 상징성을 감안해 이 회사와 인연이 깊은 원로 작가에게 출간 기회를 주려고도 했지만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취지에 맞춰 중견 시인 김혜순을 택했다. 1979년 등단한 김 시인은 자기반복을 최소화하며 늘 새로운 시적 탐구를 계속하는 시인으로 꼽혀왔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슬픔치약…’은 그의 열 번째 시집이다. ‘우 다음엔 울이라고/세상에 가득 찬 수학이 출몰하는 밤/존경하는 시인님들은 아직 죽음의 탯줄에 매달려 계시고’(‘우가 울에게’) ‘길에서 집에서 머리채 잡혀/실종된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해파리처럼 젖은 머리를 내리고 물속 땅속 어디에 묻혀 있을까’(‘책 속에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여자처럼’) 우울의 ‘우’와 ‘울’을 쪼개 순차적으로 돌아가는, 틀에 박힌 세상을 꼬집고, 투명한 해파리를 통해 머리를 풀어헤친 불행한 여인을 응시한다. 시인은 낯선 시어들이 가득한 ‘김혜순 월드’에 대한 초대장으로 이런 인사말을 남겼다. ‘침묵과 비밀, 그 무궁한 풍부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즐거움! 내가 또 이 부재의 비밀을 당신에게 투척하니 흡입하시어 부디 궁핍하시길.’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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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퓨처 컴퍼니’ 앞세워 인간을 교묘히 지배하는 惡

    11권짜리 ‘고양이 학교’로 판타지 소설 분야에서 입지를 다진 작가(사진)의 신작이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동시 출간되며 화제가 된 바 있다. 1, 2권을 먼저 선보였고 이달 말 마지막 3권이 나온다.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유리’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지하철에서 찾다가 우연히 정체 모를 할머니를 만난다. 그 할머니의 도움으로 미지의 세계인 ‘잃어버린 것들의 도시’로 가는 지하철을 타게 된다. 그곳은 ‘어머니의 숲 여왕’이 다스리는 곳이었지만 ‘산카라’라는 악의 근원이 지배한 뒤 폐허로 변한 곳이었다. 힘이 커진 산카라는 인간 세계까지 지배하기 위해 자신의 심복인 ‘달팽이 모자를 쓴 사람들’을 보내고, 결국 ‘잃어버린 것들의 세계’와 인간 세계가 모두 위험에 빠지게 된다. 판타지 소설의 매력이라면 작가가 창조한 거대한 판타지 월드를 여행하는 것. 사람들이 버리거나 잃어버린 각종 물건과 사람들이 ‘잃어버린 세계’에 쌓여 있다는 설정은 신선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전에 읽은 듯한 ‘낯익음’의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유리가 ‘검은 무사 하라’ ‘사냥꾼 솔본’ ‘허깨비 야바달’ 등의 도움을 받아 원정대를 꾸리고 산카라가 있는 ‘그림자의 탑’을 향해 가는 험난한 여정은 ‘반지의 제왕’을 연상케 한다. 비밀 통로를 통해 인간 세상과 잃어버린 세계가 순간 이동처럼 이어지는 설정은 ‘나니아 연대기’와 비슷하다. 1권에선 유리가 동료들과 함께 그만그만한 적들을 만나면서 행군하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다소 지루하다. 산카라를 만나 일전을 벌이지만 괴물에게 상처를 입히는 데 그친다. 작품이 생동감을 얻게 되는 것은 유리가 현실 세계로 돌아온 2권부터. 산카라는 다국적 기업 ‘퓨처 컴퍼니’를 앞세워 시의 행정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려 나선다. 사람들은 이에 반발해 시위대를 조직하고, 유리는 이 모든 위기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현재 산카라가 있는 ‘귀도시’로 향하기로 결심한다. 현실과 가상 세계를 오가며 펼쳐지는 유리와 산카라의 대결은 흥미롭다. 하지만 유리를 뺀 다른 등장인물이 각자 독특한 매력을 가지지 못하고 유리를 돕기만 하는 조연 역에 그치는 것은 아쉽다. 유리 쪽 세력에만 10명이 넘는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에 산만하기도 하다. 작품은 퓨처 컴퍼니가 현실 세계를 지배하면서 학생들을 성적 지상주의자로 키우고, 상인들에게는 일방적으로 통합된 할인 카드를 사용하도록 강압하는 과정을 그린다. 우리 사회의 지나친 교육 경쟁, 대기업의 횡포 등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너무 직설적이어서 판타지 소설의 환상과 들어맞지 않는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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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세 박경리’ 47년 만에 만난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가 서른여덟의 나이에 집필했던 장편소설 ‘녹지대(綠地帶)’가 탈고 47년 만인 내년 1월 책으로 나온다. 부산일보에 1964년 6월 1일∼1965년 4월 30일 연재됐던 이 작품은 박경리의 작품 연표 등을 통해 제목만 알려져 있었을 뿐 학계에는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소설은 1960년대 서울 명동의 음악다방 ‘녹지대’를 배경으로 시인, 조각가 등 예술가들의 사랑 얘기를 다뤘다. 당시의 시대상은 거의 다루지 않고 불륜, 배신 등의 치정(癡情)을 그리는 데 집중한 통속적 연애소설이다. 한국인의 수난사를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으로 그렸던 ‘토지’와는 전혀 다른 작가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그동안 박경리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대표작인 ‘토지’에 집중됐고, 범위를 넓힌다고 해도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 등 몇 작품에 그쳤다. ‘녹지대’처럼 신문에 연재된 작품은 통속적이라는 이유로 학계가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1963년 전남일보에 연재됐던 ‘그 형제의 연인들’도 책으로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녹지대’는 2008년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김은경 KAIST 강사가 당시 신문을 일일이 살펴 자료를 모았고, 이를 출판사 북폴리오가 교정 편집해 책으로 나오게 됐다. 6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전쟁고아로 자라나 시인을 꿈꾸는 여주인공 하인애는 시화전을 준비하다 만난 김정현을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김정현은 유부녀인 ‘그 여자’(이름이 나오지 않는다)와 불륜의 관계. 하인애는 ‘그 여자’에게 협박을 당하고, ‘그 여자’의 남편인 조각가 민상건으로부터 김정현이 자신의 육촌동생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불륜과 삼각관계, 그리고 근친상간까지 펼쳐지는 이 소설에는 미스터리 요소도 가미돼 있다. 김정현이 과거 과실치사로 친구를 죽였으며 ‘그 여자’가 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라는 것. 김정현이 홀연히 행방을 감추면서 하인애가 그를 찾아가는 과정도 나온다. 박경리의 딸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녹지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출판을 결정하신 작품이다. 생전 추리소설을 즐겨 읽으셨던 어머니는 이 작품에 추리적 요소를 많이 가미하셨다”고 말했다. 작품은 김정현을 향한 하인애의 순종적인 사랑과 ‘그 여자’의 편집증적인 사랑을 대비시키며 흡인력을 높인다. 하인애의 친구 윤은자 또한 두 남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등 음악다방 ‘녹지대’를 배경으로 엇갈린 사랑의 모습을 다양하게 조명했다. 김은경 강사는 “녹지대에서 나타난 치열하거나 유연한 사랑은 박경리 문학의 ‘원숙함’이 ‘젊음’과 함께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며 “주로 ‘미망인’으로 대표되는 6·25전쟁 1세대가 아니라 6·25 2세대 청춘들의 자유로운 꿈과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다르다”고 평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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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 엘도라도행 로또 한장이면 된다

    똥이다, 돼지다, 길몽(吉夢)이다. 생각만 하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번진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영수증 쪼가리 같은 로또 한 장 샀지만 역시 꽝이다. 하지만 다음 주는 금세 온다. 위안이 된다. 눈앞에 퍼런 지폐가 우수수 쏟아지고 찬란한 황금빛에 눈이 부신다. 아 그곳은 엘도라도, 월급봉투로는 닿을 수 없는 그곳에 가기 위해 오늘도 티켓을 산다, 복권을 산다. ‘이달에 만나는 시’는 11월 추천작으로 최금진 시인(41)의 ‘황금을 찾아서’를 선정했다. 이 시는 지난달 나온 시집 ‘황금을 찾아서’(창비)에 실렸다. 시인 이건청, 김요일, 손택수, 이원, 장석주 씨가 추천에 참여했다. 최금진 시인은 “다다를 수 없는 허황된 꿈을 다룬 시”라고 했다. “3년 전쯤 복권을 한창 많이 살 때 쓴 작품입니다.(웃음) 복권을 사는 것을 한탕주의나 배금주의로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서민들에게는 복권만이 신분 상승의 기회가 되는 게 현실이니까요. 가장 원하는 희망사항(복권 당첨)에 늘 속임을 당하게 되고, 속을 줄 알면서도 계속 사게 되니까 더 절망스러운 겁니다.”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2007년 낸 첫 시집 ‘새들의 역사’로 오장환문학상을 받았다. 그가 면도날처럼 도려낸 현실은 섬뜩하고 냉혹하다. “현실을 낙천적으로 혹은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사는 현실을 그냥 사실적으로 그려냈을 뿐입니다. 제가 부정적인 게 아니라 실제 세상이 그런 거죠.” 손택수 시인은 “최금진의 금광은 고통스럽다. 폐광 속에 묻어둔 채 그만 잊고 지내고 싶은 고통스러운 현실이 욱신욱신 일그러진 모습으로 육박해 들어온다. 그의 시를 통해 마주하는 당대의 자화상은 냉소와 비애가 뒤섞인 채로 무섭도록 치열한 리얼리즘을 선물한다”며 추천했다. “팽팽한 긴장과 은유가 없어도, 최금진 시인이 시로 그려낸 그의 가계(家系)와 개인사(個人史) 속에 숨어 있는 몽환적인 연대기는 떠돌이 악사의 연주처럼 쓸쓸하면서도 따스하다. 밥 짓는 굴뚝의 잿빛 연기처럼 매캐하면서 침 돌게 하는 시집을 묶어낸 그에게 소주 한잔 따라주고 싶다”고 김요일 시인은 말했다. 장석주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암울하고 절박한 언어의 전압이 높다. 편하게 읽히지 않는다. 다만 그의 시가 아버지와 만날 때 진정성의 깊이를 얻고 호흡이 안정되는 느낌이 든다.” 이건청 시인은 오정국 시인의 시집 ‘파묻힌 얼굴’을 꼽으며 “강한 시 정신으로 시적 대상의 근원까지 하강해 사물들을 다시 호명해 내고 있으며, 그렇게 발견된 새로운 사물들이 존재의 결핍을 메워주는 시적 성과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원 시인은 조동범 시인의 시집 ‘카니발’에 대해 “현실의 비극성을 아이러니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현실의 비극성을 벗어난 장면까지를 책임지고 보여준다”고 평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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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지와 광장, 넓고 깊은 세계”

    “최인훈 선생님께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시상식이 지연되는 점 죄송합니다.” 토지문화재단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동아일보가 공동 제정한 제1회 박경리문학상의 시상식이 열린 29일 오후 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토지문화관. 사회자가 수상자이자 장편소설 ‘광장’의 작가인 최인훈 씨(75)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 시상식이 지연된다고 밝히자 식장을 가득 메운 150여 명의 참석자들은 술렁였다. 최 씨는 이날 오전 9시쯤 경기 고양시의 집을 출발해 점심께 원주에 도착한 뒤 문학상 주최 측과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원주에 도착할 무렵 지병인 협심증으로 가슴 통증을 호소했고, 급히 원주 기독병원으로 목적지를 돌려 진료를 받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 잠시 후,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최 씨가 예정시간보다 10분 늦게 시상식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 부축을 받고 수상 소감을 말하려 단상에 오른 최 씨는 거동이 불편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느껴졌다. “오는 도중 건강상 문제가 발생해 시상식을 몇 분 지연시켜서 죄송합니다. 몸도 흔들흔들하고 그런 감도 있지만 여러 이야기를 토로하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최 씨는 박경리 선생에 대해 “한국 현대사의 방대한 화폭 위에 광활, 광대한 인물을 성찰하여 생명과 평화의 의미를 밝힌 분”이라며 “박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문학상의 첫 수상자가 돼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고 말했다. 박경리문학상은 민족의 수난사와 시대의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년)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으며 문학작품이 아니라 소설가를 대상으로 한다. 상금은 1억5000만 원으로 국내 문학상 가운데 최고이며, 내년부터는 해외 작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국내 문학상 가운데 최초의 세계문학상으로 탄생한다. 박경리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인사말에서 “최 선생은 문학 본연의 가치를 지키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이 시대의 진정한 작가로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보편성 속에서 자리 잡는 데 큰 기여를 하셨다”며 “박경리 문학상도 편협과 이념의 도그마를 넘어 사랑과 평화라는 이념을 실현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최일남 씨는 축사에서 “박경리와 최인훈 선생은 세속에 빠지지 않고 고집스럽게 속 깊은 작가로 일관한 것이 서로 비슷하다. 박 선생이 강원도 원주 땅 이 오봉산 아래, 토지문화관을 굽어보며 한층 흡족해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쌀쌀한 날씨에 간간이 빗방울까지 내려 야외에서 치를 예정이던 뮤지컬 ‘우리는 친구다’ 공연과 청소년 백일장은 모두 실내에서 펼쳐졌다. 궂은 날씨였지만 오봉산을 물들인 형형색색의 단풍과 짙은 운무가 빚어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에 참가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30일 ‘토지와 바느질-김혜련 개인전’을 끝으로 제2회 박경리 문학제는 막을 내렸다.원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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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42만2000여 종 식물 이름엔 인류역사가 흐른다

    ‘식물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리스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기원전 372년경∼기원전 287년)가 식물을 연구할 당시만 해도 그가 이름을 붙인 식물 종류는 500여 개에 머물렀다. 현재 학계에선 42만2000여 종의 식물이 파악됐다. 이 책은 2000년 넘게 이어진 식물학자들의 노력과 그로 인해 ‘이름을 갖게 된’ 식물들의 역사를 700쪽 넘는 분량에 담았다. 기원전 사람들은 주로 식물을 약초나 음식의 개념으로 바라봤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식물이 인간에게 어떤 효용성이 있나’를 넘어 처음으로 ‘식물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나’란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식물을 성장 습관, 줄기와 잎, 열매와 뿌리 등 다양한 지표로 구분하며 식물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의 연구에는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도 큰 영향을 끼쳤다. “식물과 동물의 지식도 형이상학이나 천문학 지식만큼 중요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평소 역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오프라스토스가 토대를 닦은 식물학은 당시 탐미주의적이던 아테네인들에게 외면당했고, 그는 1000년이 넘은 뒤에야 선구적 자연과학자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출판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식물학 부흥 역사도 이 책은 짚는다. 두루마리 형태의 파피루스를 대신해 서기 100년경 파피루스 종이들을 묶은 현재 형태의 책이 나오면서 식물도감의 제작이 용이해졌다. 중세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보급되면서 식물학은 한층 보급에 탄력을 받는다. 하지만 저작권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해적판 식물도감’이 활개를 치면서 오류가 많은 식물도감들이 유통되는 폐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화가들도 식물학 발전에 역할이 컸다. 사진 기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책에 담기는 식물들의 시각적 정확성은 화가가 식물의 모습을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주느냐에 달려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촛불에서 나온 검댕을 잎에 칠한 다음 종이에 대고 눌러 잎사귀를 지탱하고 있는 잎맥과 골을 정교하게 표현했다. 독일의 화가 뒤러는 꽃이나 잎이 솟아나는 방식의 차이들을 면밀히 화폭에 담아 식물학 발전에 기여했다. 식물을 알파벳순으로 처음 배열한 고대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 영국 성직자이자 식물학 연구자인 윌리엄 터너, 오늘날 사용하는 생물 분류법인 이명법(二名法)을 고안한 칼 폰 린네 등의 연구사도 정리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원예전문기자인 저자는 과학, 종교, 역사를 아우르며 2000년 넘게 이어진 식물학의 흐름을 되짚는다. 고대와 중세 식물도감에 실린 오래된 식물 그림들을 살펴보는 즐거움도 크다. 방대하고도 세세한 설명은 전공자에게는 반갑겠지만 일반인 대상의 ‘식물학 입문서’로는 지나치게 전문적인 느낌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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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불행, 다시 생각하면 다행

    “길을 잘 몰라서 정말 죄송합니다. 택시 운전을 하려면 길부터 알고 핸들을 잡았어야 하는데 갑자기 사업이 망하다 보니 두서가 없었습니다.” 6개월 전까지 중소기업체 사장이었다가 핸들을 잡게 된 중년 남성. “고생과 심려가 많으셨겠다”고 저자가 위로하자 그 남성은 되레 호쾌하게 웃었다. “택시 운전을 서너 달 해보니 제가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이 나이에 세상 공부 다시 하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중견 소설가가 펴낸 이 책의 한 토막. ‘불행’을 ‘다행’으로 여기며 새 출발을 다짐하는 희망찬 얘기가 가득한 산문집이다. 2009년 1월 시작해 현재 동아일보에 연재 중인 ‘작가 박상우의 그림읽기’에서 아흔아홉 편을 선별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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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사랑하면 왜 괴물이 될까

    어떤 오누이가 서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천제(天帝)가 분노해서 이들을 산 깊은 곳에 유배 보냈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오누이는 산속에서 서로 끌어안고 죽었다. 신조(神鳥) 한 마리가 이들에게 불사(不死)의 풀을 물어다 주었다. 7년 만에 부활한 이들은 몸이 한데 붙어서 두 개의 머리에 네 개의 팔이 달렸다. 이들의 후손이 몽쌍씨(蒙雙氏)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몽쌍씨 얘기다. 저자는 기괴한 괴물이 된 오누이의 몸에서 사랑의 코드를 읽어낸다. “둘이 ‘오누이’였다는 것은 사실 형벌의 전제 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둘이 한 몸에서 나서 한 몸으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사랑해서 ‘한 몸이 되다’는 비유가 더 이상 비유가 아니다. 이들은 정말로 한 몸이 됐기 때문이다.”신화나 전설 속에서 사랑의 상징을 이끌어내고 해석한 책은 많다. 하지만 이 책의 시각은 독특하다. 인간과는 거리가 먼 괴물들의 모습, 더 구체적으로는 기괴하게 생긴 그들의 몸뚱이에 내재된 사랑의 의미를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괴물들이 (자신의 몸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몸의 몸이며 사랑의 사랑이다. 모든 괴물은 순수한 멜랑콜리아(melancholia)를 구현한다. 몬스터(monster)란 본래 라틴어로 ‘보여 주다(monstere)’라는 뜻이기도 하다.”중국 고대 신화집이자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는 일비민(一臂民)이란 족속이 있다. 팔이 하나란 뜻이지만 사실 온몸이 다 반쪽인 사람이어서, 이들은 둘이 합쳐야만 한 사람이 된다. 예멘의 산속에 사는 괴물인 니스나스도 반쪽의 몸으로 살아간다. 중국 신화 속 관흉국(貫匈國) 사람들은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로 살아간다. 세상과 격리된 채 결핍된 신체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사랑의 결여를 읽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한 몸이 되다’ ‘반쪽이 되다’ ‘가슴에 구멍이 나다’와 같은 비유를 그들은 몸의 차원에서 완전하게 실현했다.”동서양의 신화나 전설, 소설 등에 나오는 100여 개의 괴물들의 신체적 특징을 ‘이름’ ‘약속’ ‘망각’ ‘짝사랑’ ‘유혹’ 등 16개 키워드로 해석해 묶었다. 저자는 2005년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를 정신분석의 논리로 풀어가기도 했다.‘괴물의 몸에서 사랑의 여러 행태를 읽는다’는 접근은 신선하지만 억지스러운 해석도 있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신체의 앞부분은 사자, 뒤는 개미의 모습을 한 괴물 ‘미르메콜레온’이 아무것도 먹지 못해 태어나자마자 죽는 것에 대해서 ‘불가능한 첫사랑의 운명’을 연결짓는 것이나 자르고 잘라도 뱀 머리카락이 다시 돋아나는 히드라에 대해서 “해야 할 말이 있었지만 그녀의 고백은 제지당하고 부정되고 무시당했다”라는 해석 등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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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석 추기경 -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다

    《 10·26 재·보궐선거 하루 뒤인 27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80·오른쪽)과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작가(48)가 만났다. 두 사람은 선거 민심과 문학, 행복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의 ‘팬’을 자처하는 추기경은 성경책과 세례명 ‘그레이스’를 선물하는 등 각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 27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옆 주교관 추기경 집무실에서 신경숙 작가(48)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80)과 인사를 나눈 뒤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찾았다. 잠시 뒤 그가 꺼낸 것은 손때가 묻은 성경(聖經)이었다. 신 작가는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추기경께서 보내준 것”이라며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미국판과 영문판을 정 추기경에게 선물했다. 신 작가가 “2년 전 뵈었을 때보다 더 건강해 보여 마음이 놓인다”고 말하자 정 추기경은 “신 작가의 작품이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을 잘 듣고 있다”고 덕담을 건넸다. 두 사람은 10·26 재·보궐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과 세대갈등, 문학과 종교, 가족과 행복 등 다양한 주제로 1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추기경께서 성경을 보내준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 작가=여러 나라를 다니는 동안 (성경을) 읽고 싶어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께 부탁했는데 추기경께서 직접 글을 쓴 성경을 보내주실 줄 몰랐죠. 해외에서 시차 때문에 새벽에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았는데 성경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정 추기경=하느님이 신경숙 씨를 보살펴 주셔서 내가 선물할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웃음) 정 추기경은 성경의 표지 다음 장에 ‘친애하는 신경숙 씨. 하느님의 훌륭한 도구로 선택되셨음을 축하드리고, 전폭적으로 후원할 것을 약속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썼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신 작가를 위해 ‘그레이스’란 세례명을 선물했다. 정 추기경이 세례명을 선물한 것은 처음이다. ―추기경께서도 연말에 새 책을 출간한다고 들었습니다. ▽정=안전한 금고가 있을까요? 정 추기경이 이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자 좌중에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아∼ 제목이 ‘안전한 금고가 있을까?’예요”라고 웃으며 침묵을 깬 것은 신 작가였다. ▽정=독재자들이 재산을 많이 감춰뒀는데, 그 안전한 금고가 아닙니다. 하늘이 안전한 금고죠. ‘하늘에 보화를 쌓아라’, 즉 ‘남을 위해 선용하라’는 뜻입니다. ▽신=추기경께서 쓴 책이라고는 상상 못할 제목이네요.(웃음) 안 볼 수 없겠는데요.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안철수 씨는 대선후보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세대 간의 확연한 의식차를 보여준 선거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정=사람은 다 자기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안 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투표한 사람들도 자기 투표에 책임을 져야 하고, 정치를 하시는 분들도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갈등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지만, 뽑힌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야 합니다. ▽신=충분히 예측된 투표 결과죠. 시민의식은 굉장히 올라왔는데 정치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정치 쪽만 모른 거죠. ―새 시장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정=사랑은 주고받는 거지 일방통행은 없습니다. 표 받은 만큼 국민에게 보답을 해야 합니다. ▽신=정말 동감입니다. ―암 투병 중인 최인호 작가를 보면서 종교와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신=문학과 종교는 서로 통하고 의지하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문학이 제게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문학 속에는 너무나 많은 오류를 지닌 사람들이 나오고, 그들을 저라고 생각해 편하기 때문입니다. 패배자들과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시선을 준다는 의미에서 문학과 종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돈이 아니라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이 인간의 행복입니다. (심지어) 하느님도 세상을 창조한 뒤 자기 작품을 알아주는 이가 없자 당신과 가장 비슷한 사람을 만든 겁니다. 작가도 자신을 알아주는 독자가 없다면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죠. ▽신=문학은 어찌 보면 끊임없는 세상에 대한 질문이고, 종교는 그것에 대한 대답 같습니다. 똑같이 인간을 사랑하고 의미를 부여하다 어느 순간 질문과 대답으로 갈라지는 게 문학과 종교 아닐까 합니다. ―그럼 기자는 어떻습니까. ▽정=창작하고 보도는 다르지 않나요.(웃음) ―신 작가는 최근 ‘엄마를 부탁해’ 일본판 출간 때문에 일본에 다녀왔는데요. ▽신=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이 겪고 있는 공황이나 상실감이 컸습니다. 재난 이후 가장 중요한 단어는 ‘가족’이랍니다. 지진 이후 오히려 결혼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떨어져 살던 부부도 같이 살려고 한답니다. ▽정=재난을 당했을 때 인류애가 발휘된다면 그 재난을 좀 더 쉽게 잘 이겨낼 수가 있겠지요. ―동아미디어그룹의 종합편성TV 채널A가 12월 개국합니다. 어떤 방송이 되기를 바라는지요. ▽정=좋은 소식뿐 아니라 언짢고 보도하기 싫은 뉴스도 있을 겁니다. 어려운 뉴스일수록 희망을 불어넣는 멘트 하나를 더 부탁합니다. ▽신=제 책에 쓴 말을 인용한다면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말을 해드리고 싶어요. 어떤 방송을 하든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기를 바랍니다. ―요즘 무엇을 하실 때 가장 행복합니까. ▽정=요즘 기도할 때마다 올바르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묻습니다. ‘나한테 맡겨라’라는 대답을 들을 때 행복하죠. ▽신=시골(전북 정읍시)에 있는 어머니와 전화 통화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어머니가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추기경께서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묻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습니까. ▽정=6·25전쟁 중에 항상 ‘내가 마지막 날을 살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는데 여전히 그런 자세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시간에 대해 엄격합니다. 저녁에는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나’ 생각하고, 아침에 눈 뜨면 ‘오늘 하루를 더 살게 해 주시는구나’라며 감사해요. 다른 계획보다는 하루, 한 순간을 가장 보람 있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신=미국에서 푹 쉬려고 했는데 못 쉬고 책 때문에 많은 여행을 했으니 새 작품을 쓰고 싶지요. 내용은 아직 비밀입니다. (정 추기경을) 만나 뵙고 나니 마음속의 빈곳이 채워지는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외로운 사람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셨으면 합니다.진행=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정 추기경-신 작가 “병마 떨치고 글 통해 세상에 힘을 주길” ▼암투병 중인 최인호 작가 쾌유기원 메시지최인호 “추기경 격려에 큰 힘 얻어”“최인호 작가는 글을 통해 나에게 큰 힘을 준 일이 많았습니다.”(정진석 추기경) “지난 작품을 쓰시면서 다른 작품을 쓰고 싶다고 하셨으니 또 작품이 나올 겁니다.”(신경숙 작가) 대담 중 정 추기경과 신 작가는 올해 5월 암과 싸우며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출간한 소설가 최인호 씨(66·사진)의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 가톨릭 세례명이 베드로인 최 작가는 2006년 동아일보를 통해 정 추기경과 특별회견을 했고 부부가 정 추기경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신 작가는 “미국에 있을 때 선생님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책을 좀 보내달라고 해서 읽었다”며 “작가이자 개인으로 가장 나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가장 좋은 쪽으로 자신을 바꿔가는 모습이 무엇보다 아름답다. 건강이 빨리 좋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최근 최 작가와 한 통화에서 “하느님께 모든 걸 맡기면 더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날 대담에 함께한 허영엽 신부는 최 작가의 요청에 따라 정 추기경과 전화를 연결했다. 최 작가가 나중에 ‘하느님이 쓰시는(사용하시는) 것을 꼭 믿으라’는 추기경의 말이 큰 힘이 된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은 “아픈 분이 어디서 그런 글을 쓸 힘이 나올까 한참 생각했다”면서 “재주만 갖고 글을 쓴다면 그런 힘이 안 나온다. 나를 포함해 세상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있는 그 재능을 더 오래 발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 20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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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숙씨, 신동아 논픽션 공모 최우수상

    제47회 월간 ‘신동아’ 논픽션 공모 시상식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이희숙 씨가 호주 카카두 국립공원을 등산한 이야기를 다룬 ‘연-태초(太初)의 품으로 들어가다’로 최우수상(고료 1000만 원)을 받았다. 김정숙 씨는 자신과 어머니의 신산한 삶을 울림 있게 전달한 ‘진혼(鎭魂)의 서(書)’로 우수상(고료 500만 원)을 수상했다. 최맹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은 “이희숙 씨가 관찰하고 성찰한 것을 글로 풀어내는 문장력이 대단했고, 김정숙 씨는 대한민국에서 여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절절하게 풀어내셨다. 두 분 모두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신동아 논픽션 공모는 1964년 신동아 복간 사업으로 시작된 국내 대표적 기록문학상이다. 당선작은 신동아 11월호부터 게재된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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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김주영 “밉고 고집세고 억척스럽던 나의 어머니…”

    소설가 김주영(72)은 2년 전 아흔넷의 노모를 잃었다. 2009년 4월의 어느 새벽, 고향인 경북 청송군에 있는 아우가 “내려오셔야 되겠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부음을 전했다. 세찬 비바람이 유리창을 때리던 밤이었다. 단절음도 끊어진 수화기를 들고 일흔 살의 작가는 한참 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날품팔이로 자식을 키운 어머니. 김주영이 여덟 살이던 1947년, 광복 직후의 극심한 혼란기에 징용 갔다 돌아온 새아버지에게 개가(改嫁)해 주변 사람들의 구설에 휘말렸던 어머니. 농사도 못 짓고 벌이도 없던 새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가녀린 어깨에 홀로 짊어졌던 어머니…. 세 끼를 온전히 챙겨 먹는 날이 드물던 유년 시절. ‘혼절할 정도의 가난’으로 당시를 추억하는 작가는 어머니의 부음을 주위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내 일생 동안 주변에 도움을 준 일이 없다. 내가 죽더라도 주변에 알리지 마라. 그리고 화장해 다오.” 두 번 세 번 간곡하게 남긴 어머니의 고집스러운 유언 때문이었다. 올해 인촌상을 수상한 김주영 작가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초상화를 소설로 풀어낸다.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서 17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장편 소설 ‘잘 가요 엄마’. 원고지 1000여 장 분량으로 내년 1월쯤 연재를 마치고 책으로 나온다. ‘객주’(1981년) ‘천둥소리’(1986년) ‘화척’(1995년) ‘홍어’(1997년) 등의 작품에서 서민들 삶의 애환을 토속적 언어로 풀어냈던 그가 등단 40년 만에 친어머니를 주제로 삼아 소설을 집필하는 것.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가) 개가하셔서 낳은 아우와 며칠을 같이 지냈죠. 장례를 함께 치르면서 어머니의 인생을 돌아보았습니다. 어머니와 나의 관계, 생전 의붓아버지와 나의 관계를요. ‘홍어’ 등 작품에서 우리나라의 어머니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했지만, 제 어머니 얘기를 소설 전면에 내세운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겁니다.” 김주영은 광복과 6·25전쟁 시기의 궁핍했던 유년 시절에 대해선 각종 기고문과 작품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어머니와 새아버지, 동생에 대해서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머니를 보내고, 일흔이 넘은 원로 소설가가 스스로 ‘비참한 가정사’라고 말하는 가족 얘기를 꺼낸 이유가 무얼까. “어릴 적에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 제 나이에 뭐 그렇게 숨기고 그럴 것이 있나 싶어요. 이름 없이 살다간 어머니에 대한 자서전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싶었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니까 주위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도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일기를 쓰지 않는 작가는 오로지 기억력에 의지해 어머니의 삶을 하나씩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내 기억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시험해보고 있다”는 그는 겉으로는 고집스러우면서도 속으로는 한없이 희생적인 어머니상을 그려낸다. 작품에서 20여 년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가의 서울 집을 찾은 어머니는 63빌딩도, 청와대 구경도 하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며칠이나마 서울 구경을 하고 돌아가시라는 간청을 끝내 뿌리쳤던 어머니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던 것은 서울 경치도, 며느리도, 손자나 손녀도 아닌 바로 평생 당신께 부담만 주었던 당신의 늙은 아들이었다.’ 김주영은 연재를 시작하며 인터넷에 짤막한 글을 올렸다. “어머니는 나에게 크나큰 행운을 선물했다. 어머니와 내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어머니는 나로 하여금 도떼기시장 같은 세상을 방황하게 하였으며, 저주하게 하였고, 파렴치로 살게 하였으며, 쉴 새 없이 닥치는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자유의 시간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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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리 단편소설 4편 문학사상 11월호 실려

    소설가 김동리(1913∼1995·사진)가 6·25전쟁 당시 발표했던 ‘P이등병’ 등 단편소설 네 편이 ‘문학사상’ 11월호를 통해 소개된다. 이 작품들은 학계에서는 발굴 사실이 알려졌지만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P이등병’은 부상을 당한 학도병이 전장의 참혹함을 증언하는 내용을 담았고 ‘스딸린의 노쇠(老衰)’는 스탈린의 내면의식을 통해 옛 소련이 6·25전쟁에 개입하게 된 내막을 다룬 소설이다. ‘우물과 감나무와 고양이가 있는 집’은 어린 ‘나’의 시선을 통해 누님의 삶을 조명했고, ‘난중기(亂中記)’는 신문기자 ‘병수’와 그 가족의 피란사를 다룬 작품이다. 김병길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네 작품의 배경은 모두 6·25다. 대체로 설화적 시공간을 향해 열려 있는 김동리의 일반적인 소설 무대를 생각한다면 예외적인 경우”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동리는 전쟁의 승리를 독려하는 이데올로기 서사가 아니라 일상적 현실에 밀착해 사실주의적으로 소설을 썼다”며 “이들 소설엔 전쟁의 폭력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 내재돼 있다”고 강조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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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이면 등단 20년… 시인 최영미씨에게 90년대 중반 화제작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어보니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 최근 축구에세이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순)를 펴냈다.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한물간 시인에게 연락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1961년 서울 출생, 1992년 계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1994년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출간…. 도발적인 서른 살 담론으로 1990년대 중반을 뜨겁게 달궜던 시인은 어느새 쉰 살이 됐다. 게다가 내년이면 등단 20주년. 11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인이 서른셋에 펴낸 첫 시집 ‘서른…’은 출간 두 달 만에 16만 부(현재까지 약 52만 부)가 팔리며 문단을 넘어 사회적 이슈가 됐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뜨거웠던 1980년대의 투쟁 열기는 식었고, 대학가에는 개인주의가 고개를 들었다.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한 젊은 여성 시인의 시어들은 당시 ‘정서적 해빙기’를 맞은 사회적 분위기와도 합일했다. 하지만 아직 맥주보다 소주와 막걸리가 익숙하던 시절. 반발도 거셌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지금 시집을 펼쳐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라고 묻자 시인은 한숨을 쉬었다. “요새도 같은 질문을 많이들 물어봐요. 솔직히 나는 ‘내가 그때 미치지 않았나’ 싶어요. 사람들이 내게 ‘도발적이다’라고 말하는 걸 듣는 게 가장 싫어요. 사실 전 담배를 피우지만 사람들 눈을 의식해 남들 앞에서는 안 피우거든요. 그런데 도발적이라니…. 내가 그때 한국 사회가 어떤지 모르고 이렇게 쓴 것 같아요.” 그는 시집 출간 뒤 노동권으로부터 “운동권 문화를 청산하려 한다”며 많은 협박 전화를 받았다. “죽이겠다”는 위협도 있었다. 하지만 시인은 “오해였다”고 말했다. “‘잔치는 끝났다’는 ‘운동이 끝났다’가 아니라 말 그대로 ‘파티가 끝났다’는 의미로 쓴 거예요. 서른 살 즈음에 저녁에 대학 동창회 모임이 잡혀 있었는데 그날 점심에 저녁 모임의 모습을 상상하며 쓴 것이죠.” 시인은 시를 쓰고, 시는 시인의 이미지를 만든다. ‘어젯밤 꿈 속에서 그대와 그것을 했다’(시 ‘꿈 속의 꿈’에서), ‘아아 컴퓨터와 ×할 수 있다면!’(시 ‘퍼스널 컴퓨터’에서) 등의 시가 만든 자극적인 이미지도 시인에게는 부담이었다. “‘컴퓨터와 ×할 수 있다면’에서 ×는 섹스가 아니에요. 반대 의미로 쓴 일종의 반어법이고, 사실 컴퓨터에 대한 복수의 의미죠. 전 기계치인데 무슨, 컴퓨터와 섹스를 하고 싶겠어요?” 이번 에세이는 박지성 이청용 등 유럽파 선수들 인터뷰와 유럽 축구 관전기 등으로 꾸몄다. “1998년 헤어졌던 남자가 축구 선수 호나우두를 닮았어요. 마침 그때 프랑스 월드컵이 열렸고 열심히 보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축구 재미를 알게 됐고 푹 빠지게 됐죠. 축구에 미쳐 10년 동안 데이트 한 번 제대로 안 했어요. 이제는 축구 좋아하는 남자랑 축구장에 함께 가고 싶네요.” 그의 시집 ‘서른…’은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와 함께 서른의 감성을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이 됐다. 이제 쉰 살이 된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서른이면 푸르디푸른 나이고 이제 시작하는 나이죠. 서른에 잔치가 끝나다니…. 지나고 보니 저에게는 마흔다섯 살 정도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던 것 같아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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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동리문학상에 소설가 최인호씨-목월문학상에 시인 조정권씨

    《소설가 최인호 씨(66)와 시인 조정권 씨(62)가 올해 동리·목월문학상 수상자로 각각 선정됐다. 동리·목월문학상은 경북 경주 출신인 소설가 김동리(1913∼1995)와 시인 박목월(1916∼1978)을 기려 제정된 상으로 이번에 4회 수상자를 배출했다. 수상작은 최 씨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조 씨의 ‘고요로의 초대’. 상금은 각 7000만 원이며 시상식은 12월 9일 오후 6시 경주시 신평동 경주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다.》 ■ 소설가 최인호 씨… 그분 오시면 다시 글쓸것“참 어렵게 쓴 작품인데, 참 기쁩니다. 무엇보다 독자에게 감사해요. 책이 23만 부가 나갔는데 나를 믿어준 사람들이 그만큼 된다는 거니까요.” 3년 전 침샘암이 발병한 소설가 최인호 씨가 암과 싸우며 쓴 장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동리문학상을 받았다. 항암치료로 손톱이 빠지자 골무를 끼고 육필로 완성한 집필 과정을 작가는 ‘고통의 축제’라 일컫는다. 수화기 너머 전해오는 그의 목소리는 탁했지만 또렷했고, 무엇보다 밝았다. 현재도 병원을 오가며 진료를 받고 있는 그에게 건강을 물었더니 껄껄 웃었다. “어떤 영화가 흥미로우면 그 영화 얘기를 할 필요가 없는 건데요. 내 병에 대해 내가 스스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것은 힘든 일인 거 같습니다. 다만 엔딩이 가까워진 작품은 아닌 것 같아요. 허허.” 심사위원들은 “주인공 K의 3일간의 곤혹과 자아 찾기의 탐색은 카프카적인 변신이 아니라 후기 산업사회가 초래한 자아상실과 분열, 망각과 착란 등 현대인의 총체적인 초상을 그렸다”고 평했다. 작가는 최근 여행을 자주 다닐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제주도, 충남 예산군 수덕사, 충북 제천시 배론성지 등 몇 군데를 “밑도 끝도 없이 찾아간다”고 했다. “다시 돌아다니고 집을 나서는 게 좋습니다. 작품 구상도 하고 그러지요. ‘그분(문학적 영감)’이 언젠가 내게 찾아오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이라도 그분이 오면 다시 쓰기 시작할 겁니다.” 작가는 여러 번 독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심사위원과 문학 담당 기자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가 장난스럽게 기자에게 남긴 마지막 말도 “아이 러브 유∼”였다. ■ 시인 조정권 씨… 정신주의 詩향해 채찍질“시단으로 저를 이끌어주신 분이 목월 선생님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딴 상을 받으니 무척 기쁘지만 사명감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선생님이 제게 ‘다시 시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시인 조정권 씨는 수상 소식을 듣고 은사인 박목월 선생을 떠올렸다. 서울 양정고 문예반 시절 그는 학교 축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월계문학의 밤’에 찾아온 목월 선생과 인연을 맺고 개인적으로 시를 배웠다. 중앙대에 진학한 이후에도 목월 선생의 한양대 연구실을 찾아가 지도를 받았고 목월 선생의 추천으로 197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그의 첫 시집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1977년)의 서문을 써준 이도 목월 선생이었다. “선생님은 그때 서문에서 제게 ‘천재적 자질의 편린이 보인다’고 과분한 칭찬을 하셨죠.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그분의 제자라는 위치에 걸맞게 정말 열심히 쓰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조 시인은 서울 노원구 월계동 집에서 칩거하며 수상작 ‘고요로의 초대’를 썼다. “정신의 드높음 속에 있는 깊음을 표현했다”는 게 작가의 말. 심사위원들은 “세상의 아수라를 품어 안으면서도 그 속에서 고요와 평정을 구하는 강한 정신성이 들어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낮과 밤이 뒤바뀐 채 고요한 적막 속에서 작업을 한다는 그는 문단 인사들과도 거의 만나지 않는다. ‘정신주의 시’라는 지향점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해 온 그에게는 ‘유파로부터 자유로운 1인 종교의 1인 신자’라는 평도 붙었다. “사실 제게는 시 쓰는 일밖에 남은 건 없습니다. 돌아다닐 일도 없고 그런 체질도 아니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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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편견 먹고 자라는 극단주의

    2005년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연구자들이 주민들을 보수적 성향과 진보적 그룹으로 나눈 뒤 동성애와 기후변화 문제 등에 대해 토론하게 했다. 토론을 마친 뒤 각 그룹의 보수성과 진보성은 각각 더욱 짙어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인 저자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치우친 정보만 공유하면 기존의 생각이 신념으로 굳어지고, 타인이 이에 동조하는 과정에서 극단주의가 더욱 심해진다”고 설명한다. 이런 현상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부동산시장, 종교단체뿐 아니라 법원의 배심원제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극단주의의 원인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다양한 표현 자유 보장’ ‘제도적인 견제와 균형 장치 마련’ 등 해결책도 제시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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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하루 10km씩 ‘책의 바다’ 헤엄치기

    김경욱 김애란 김연수 김인숙 김종광 김훈 박민규 서하진 심윤경 윤성희 윤영수 이순원 이혜경 전경린 하성란 한창훈 함정임.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소설가 17명의 에세이다. 월간 ‘문학사상’ 연재물을 묶은 것으로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이 형형색색으로 펼쳐진다. 김훈은 이렇게 툭 내뱉는다. “‘창작론’을 쓰는 일은 소설 쓰기보다 어렵고 지겹다. 그것이 어려운 까닭은 나에게 아무런 ‘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쓸 때, 나는 늘 희뿌옇고 몽롱해서, 저편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시간과 공간 속을 헤맨다. 내 글쓰기란 몸과 마음의 절박함과 말의 모호성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파행이다.” 박민규는 “문학사상 원고는 쓰고 있나요?”란 아내의 채근에 허둥지둥 자신의 창작방법론을 적어 내려간다. ‘하루 10km씩 조깅하기’ ‘하루 두 권의 책을 읽고, 한 권의 외국어 원서를 독해하기’ ‘진지한 시각과 문학관 확보를 위해 만화와 영화는 절대 읽지 않는다’…. 김연수는 음악을 통해 소설 속 리얼리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말한다. “자료를 다 들여다보고 나면 서사 구조는 대부분 완성된다. 그때 내가 찾아 헤매는 것은 디테일이다. 소설가라고 해도 모든 일들을 다 경험할 수는 없다. 내게 음악들은 다른 리얼리티를 통하게 하는 내밀한 통로와 같다.” 서하진은 “글쓰기라는 작업이 때로 하잘것없다 싶으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소설가가 아닐지라도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것일지 모른다”고 말하고, 윤영수는 “혼자만의 체력으로 혼자만의 역기를 들어다가 얌전히 다치지 않게 내려놓는 게 작가의 일”이라고 털어놓는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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