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등단 20년… 시인 최영미씨에게 90년대 중반 화제작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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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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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른, 잔치는…’ 다시 펼쳐보면 무슨 생각 드나
A : ‘내가 그때 미치지 않았나’ 싶어
Q : 축구에세이도 내고… 축구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A : 헤어진 남친, 호나우두 닮아

1994년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고 노래했던 쉰 살의 시인은 이제 “서른은 푸르디푸른 나이며 시작하는 나이”라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1994년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고 노래했던 쉰 살의 시인은 이제 “서른은 푸르디푸른 나이며 시작하는 나이”라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 최근 축구에세이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순)를 펴냈다.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한물간 시인에게 연락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1961년 서울 출생, 1992년 계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1994년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출간…. 도발적인 서른 살 담론으로 1990년대 중반을 뜨겁게 달궜던 시인은 어느새 쉰 살이 됐다. 게다가 내년이면 등단 20주년. 11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인이 서른셋에 펴낸 첫 시집 ‘서른…’은 출간 두 달 만에 16만 부(현재까지 약 52만 부)가 팔리며 문단을 넘어 사회적 이슈가 됐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뜨거웠던 1980년대의 투쟁 열기는 식었고, 대학가에는 개인주의가 고개를 들었다.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한 젊은 여성 시인의 시어들은 당시 ‘정서적 해빙기’를 맞은 사회적 분위기와도 합일했다. 하지만 아직 맥주보다 소주와 막걸리가 익숙하던 시절. 반발도 거셌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지금 시집을 펼쳐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라고 묻자 시인은 한숨을 쉬었다.

“요새도 같은 질문을 많이들 물어봐요. 솔직히 나는 ‘내가 그때 미치지 않았나’ 싶어요. 사람들이 내게 ‘도발적이다’라고 말하는 걸 듣는 게 가장 싫어요. 사실 전 담배를 피우지만 사람들 눈을 의식해 남들 앞에서는 안 피우거든요. 그런데 도발적이라니…. 내가 그때 한국 사회가 어떤지 모르고 이렇게 쓴 것 같아요.”

그는 시집 출간 뒤 노동권으로부터 “운동권 문화를 청산하려 한다”며 많은 협박 전화를 받았다. “죽이겠다”는 위협도 있었다. 하지만 시인은 “오해였다”고 말했다.

“‘잔치는 끝났다’는 ‘운동이 끝났다’가 아니라 말 그대로 ‘파티가 끝났다’는 의미로 쓴 거예요. 서른 살 즈음에 저녁에 대학 동창회 모임이 잡혀 있었는데 그날 점심에 저녁 모임의 모습을 상상하며 쓴 것이죠.”

시인은 시를 쓰고, 시는 시인의 이미지를 만든다. ‘어젯밤 꿈 속에서 그대와 그것을 했다’(시 ‘꿈 속의 꿈’에서), ‘아아 컴퓨터와 ×할 수 있다면!’(시 ‘퍼스널 컴퓨터’에서) 등의 시가 만든 자극적인 이미지도 시인에게는 부담이었다.

“‘컴퓨터와 ×할 수 있다면’에서 ×는 섹스가 아니에요. 반대 의미로 쓴 일종의 반어법이고, 사실 컴퓨터에 대한 복수의 의미죠. 전 기계치인데 무슨, 컴퓨터와 섹스를 하고 싶겠어요?”

이번 에세이는 박지성 이청용 등 유럽파 선수들 인터뷰와 유럽 축구 관전기 등으로 꾸몄다. “1998년 헤어졌던 남자가 축구 선수 호나우두를 닮았어요. 마침 그때 프랑스 월드컵이 열렸고 열심히 보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축구 재미를 알게 됐고 푹 빠지게 됐죠. 축구에 미쳐 10년 동안 데이트 한 번 제대로 안 했어요. 이제는 축구 좋아하는 남자랑 축구장에 함께 가고 싶네요.”

그의 시집 ‘서른…’은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와 함께 서른의 감성을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이 됐다. 이제 쉰 살이 된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서른이면 푸르디푸른 나이고 이제 시작하는 나이죠. 서른에 잔치가 끝나다니…. 지나고 보니 저에게는 마흔다섯 살 정도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던 것 같아요.”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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