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이지훈 기자

동아일보 디지털랩 전략영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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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뮤지컬, 무용 등 공연업계를 취재합니다.

easyhoon@donga.com

취재분야

2025-11-13~2025-12-13
문화 일반59%
환경3%
여행3%
문학/출판3%
인물/CEO3%
패션3%
음악3%
사회일반3%
인사일반3%
기타17%
  • 나를 감춰야 했던 역사속 그 순간들이 나를 잃어버린 지금의 우리에게 묻다

    7일 연극 ‘불가불가’ 리허설이 한창인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2층 연습실. 계백장군 역의 배우 정홍구가 장검을 들고 서 있다. 이철희 연출가는 그를 향해 “전쟁에 나가기 전 아내를 죽이는 연기에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다그쳤다. 이어진 다음 장면. 구한말 조정대신 역을 맡은 배우 주성환에게 을사늑약 체결에 동의를 구하는 일본인 조선 총독이 묻는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조약을 체결하는 게 맞는가.” 이에 주성환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연신 ‘불가불 가(不可不 可·불가피하니 가능하다)’ 혹은 ‘불가 불가(不可 不可·절대 불가하다)’를 읊는다. 지켜보던 계백장군은 손에 쥔 장검을 머리 위로 올려 조정대신의 목을 내리친다. 1980년대 정치적 탄압으로 소신을 밝힐 수 없던 사회 분위기를 풍자한 연극 ‘불가불가’가 30여 년 만에 재탄생한다. 26일부터 서울시극단이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선보이는 연극 ‘불가불가’의 희곡은 극작가 이현화가 썼다. 이 작가는 이 작품으로 1988년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받았다. 각색은 연극 ‘조치원 해문이’ ‘닭쿠우스’ 등으로 알려진 이철희 연출가가 맡았다. 작품엔 황산벌전투 무신정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사늑약 등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소신을 밝히지 못하는 개인이 차례로 등장한다. 1980년대와는 달라진 지금의 사회상도 반영했다. 그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한자어로 쓰인 대사를 한글로 바꾸는 작업도 필요했다. ‘희(희)는 희인 것을’이라는 표현을 ‘장난은 장난인 것을’로 고치는 식이다. 각색 장면 중 대표적인 건 일본군이 독립군의 아내를 전기로 고문하는 장면이다. 1980년대 연극에서 공중에 매달린 반라의 여성이 전기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논란을 빚었다. 이 연출가는 “여성 배우를 대하는 방식에 문제는 있었지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순 없었다”며 “독립군의 아내가 고문을 당하는 설정은 그대로지만 고문 시연만 남성 배우가 대체하는 장면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극의 강렬한 특징으로 꼽힌 ‘커튼콜 없는 엔딩’도 바뀐다. 배우가 외치는 한 줄 대사로 끝나는 연극은 당시 관객들에게 강한 여운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엔 공연을 마친 후 배우들이 나와 인사하는 시간을 가진다. 26일∼4월 10일, 3만∼5만5000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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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년대 문제작 연극 ‘불가불가’, 새로운 버전으로 무대 오른다

    7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 위치한 한 연습실, 장검을 든 한 남자가 서있다. 전쟁에 나가기 전 아내를 직접 칼로 죽이는 계백장군을 연기하는 배우1(정홍구)이다. 배역에 몰입하지 못하고 헤매는 그를 연출가가 수차례 다그치고…. 이어진 다음 장면에서 배우5(주성환)가 등장한다. 조선말의 신하를 연기하는 배우5는 을사늑약 체결 당시 일본인 조선 총독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불가불 가(不可不 可·불가피하니 가능하다)’와 ‘불가 불가(不可 不可·절대 불가하다)’를 내뱉는다. 이를 지켜보던 배우1은 무언가에 홀린 듯 다가와 손에 쥔 장검을 머리 위로 올려 배우5의 목을 내리친다. 검열이 일상이던 1980년대 정치적 탄압에 소신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던 사회 분위기를 풍자한 연극 ‘불가불가’가 30여 년 만에 새롭게 탄생한다. 26일부터 서울시극단이 올리는 연극 ‘불가불가’는 극작가 이현화가 쓴 원작이 각색되어 무대에 오른다. 작품엔 황산벌전투, 무신정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사늑약 등 한반도에서 벌어진 5가지 역사적 상황에서 소신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는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1988년 동아연극상 희곡상과 백상예술대상을 받고 1987년 서울연극제에서 수상했다. 각색은 연극 ‘조치원 해문이’ ‘닭쿠우스’ 등으로 알려진 이철희 연출이 맡았다. 각본은 다소 바뀌었으나 로그라인은 ‘배우1이 배우5의 목을 베는 이야기’ 그대로다. 그는 “과거 이 작품은 정치 검열에 반해 자기 의견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 당시 시대의 분위기를 비판했다면 이번엔 복잡한 사회 시스템에서 자기 입장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30여 년 전에 쓰인 작품이다 보니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었다. 1980년대와는 달라진 지금의 정치 현실과 사회상을 반영했다. 또 한자어로 쓰인 대사들을 한글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희(戲)는 희인 것을’이라는 표현을 ‘장난은 장난인 것을’로 고치는 식이다. 이철희 연출은 “충분히 역사나 한자 교육이 되어있지 않은 세대 입장에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서 한글로 이해하기 쉽게 풀려고 했다”고 말했다.각색 장면 중 대표적인 건 일본군이 독립군의 아내를 전기로 고문하는 장면이다. 연극이 발표됐을 당시, 반라의 여성이 공중에 매달려 전기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많은 논란을 빚었다. 작품이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 이철희 연출은 “당시 극에서 여성 배우를 다루는 방식에 문제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을 왜곡할 순 없었다”며 “연극적 놀이성을 기반으로 원작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장면을 새로 꾸몄다”고 했다. 독립군의 아내가 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그대로지만 고문 장면만 남성 배우가 잠시 대체하는 장면으로 연출된다.이 극의 백미(白眉)로 여겨지는 ‘커튼콜 없는 엔딩’도 바뀐다. 배우가 외치는 한 줄 대사로 끝나버리는 연극은 당시 관객들에게 강한 여운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엔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이철희 연출은 “이런 상황조차도 연극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환기시키려는 목적으로 새로운 엔딩을 연출했다”고 말했다.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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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인-청인 함께 막 올린 ‘미지의 세계’… 그건 어쩌면 즐거운 여행

    배우 박지영(25)의 모국어는 한국 수어다. 농인(聾人·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그는 자연스레 손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열두 살에 처음 미국 이모 집에 놀러가서 우연히 농인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를 봤다. 그가 “농인도 배우가 될 수 있느냐”고 묻자 이모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이지. 여기선 농인 배우가 저 사람 말고도 많아.” 12일 막을 올리는 다큐멘터리 연극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의 주인공 농인 배우 박지영의 이야기다. 그와 청인(聽人·청각장애가 없는 사람) 배우 이원준(35)이 출연하는 이 작품은 두 사람이 함께 연극을 완성하는 과정을 그린다.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1일 만난 두 사람은 “극중 우리는 서로의 세계에 방문한 이방인 같은 존재”라며 “농인과 청인이 무사히 같은 무대에 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도전하는 과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연극인 만큼 두 배우는 가상의 배역이 아닌 실존인물로 무대에 선다. 약 80분간 여러 미션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농·청인 배우가 함께 연극을 완성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일종의 실험극이다. “수어로만 연기하는 제게 청인 배우가 찾아온 거예요. 마치 바이러스같이 제 무대에 침입한 이원준 배우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알려진 햄릿의 독백, 로미오가 줄리엣을 찾아가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등을 시도하며 가능성을 모색하는 공연입니다.”(박지영) “저는 지영이 하는 수어를 보면서 연기하는 게 크게 어렵진 않았어요. 하지만 지영이는 계속 제 입이나 손동작을 보고 있어야 하잖아요. 저보다 훨씬 힘들었죠.”(이원준) 연극이 완성되기까지 두 사람은 좌절과 성취를 번갈아 맛보게 된다. 수어로만 연기하는 박지영은 특히 고전극의 왕 연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옛날 왕을 연기하는 장면에서 청인 배우는 왕의 어투와 어휘를 사용해 연기하더라고요. 그런데 옛 왕이 어떤 수어를 썼을지 알 수 없잖아요. 뉘앙스를 전달하는 게 어려웠어요.”(박) 공연 중 한글 자막과 수어 통역이 함께 제공되지만 일부 장면은 수어로만 공연된다. 농인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통의 어려움을 청인 관객들도 체험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다. 자막 없이 수어로만 펼쳐지는 무대가 낯설지는 않을까. “저희 공연 주제이기도 한 지영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이) “수어가 낯선 청인 관객은 아마 제게 더 집중하셔야 할 거예요. 농인의 세계로 즐겁게 여행한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봐주시길 바랍니다.”(박) 12∼20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소극장 판, 전석 3만5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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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시완, 우크라 숙소 ‘착한 노쇼’ 참여… 2000만원 기부도

    배우 임시완(사진)이 우크라이나 숙소를 인터넷으로 예약 결제한 뒤 이용하지 않는 이른바 ‘착한 노쇼’로 현지 주민을 도와 화제다. 그는 이와 별도로 주한 우크라이나대사관에 2000만 원을 기부했다. 임시완은 공유 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를 통해 7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4인실 숙소를 예약한 내역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4일 올렸다. 게시 글에는 임시완이 현지 숙소 주인에게 영어로 “한 달간 숙소를 예약했고 당연히 나는 가지 않을 예정이다. 키이우 주민들과 당신이 안전하기를 바란다”고 쓴 메시지도 포함됐다. 그의 소속사 플럼에이앤씨는 임시완이 주한 우크라이나대사관에도 2000만 원을 기부했다고 이날 밝혔다. 소속사 관계자는 “임시완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착한 노쇼’ 운동을 보고 좋은 취지라고 생각해 참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임시완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이런 신박한 방법이 있다는 걸 지금 알았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실천하다니 너무 따뜻하고 멋지다”는 댓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우크라이나인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은 영어로 “우크라이나를 도와줘 감사하다. 당신의 기부는 우리에게 많은 걸 의미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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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여성 살해 피해자 다섯 명, 그들의 삶을 되살리며

    이 책의 제목 ‘더 파이브’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5명’이지만 1887년 영국 런던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였다. 희대의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에게 살해당한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을 통칭한 말이었다. 표현만큼이나 그들의 삶도 사물화(事物化)됐다. 거리에서 살해당한 매춘부로 말이다. 살인사건 발생 당시 트래펄가 광장은 심한 가뭄 탓에 노숙인으로 가득 찼다. 남편이나 아버지가 없는 여성의 삶은 쉽게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제도권 안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여성들은 값싼 노동을 전전하다가 푼돈에 성(性)을 팔았다. 사람들은 광장의 여성들을 거리의 매춘부로 뭉뚱그렸다. 특히 잭 더 리퍼에게 살해돼 거리에 버려진 피해 여성들은 뚜렷한 증거 없이 ‘그저 매춘부’가 됐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저자는 이들의 구체적인 삶에 주목한다. 200여 권에 달하는 문헌을 참고해 ‘더 파이브’의 삶을 복원해낸다. 사건이 발생한 지 130여 년이 지나서야 잭 더 리퍼를 영웅시하는 이야기가 아닌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발굴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더 파이브’는 당시 수많은 여성과 비슷하게 살았지만 이례적인 죽음을 맞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목숨만 뺏긴 게 아니었다. ‘그저 매춘부’로 불림으로써 소설, 영화, 뮤지컬의 소재가 되고 상품이 됐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이 빼앗긴 존엄성을 다시 돌려받기를 바란다”고 썼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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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에 생생한 감동을” 수화통역-자막 연극 확산

    국립정동극장은 지난달 27일 막을 내린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공연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동시 자막을 약 2주간 내보냈다. 청각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비장애인 가족 사이에서 겪는 소외를 그린 작품은 앞서 공연기간 중반까지 자막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관객의 항의를 받았다. 이에 제작사가 급히 극장과 협의해 한글자막을 제공했다. 공공극장을 중심으로 장애 관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 free·장애인 친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립극단은 지난달 28일 개막한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투: 페레스트로이카’의 매주 수, 금요일 공연에 한글자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잔 다르크의 일화를 바탕으로 한 ‘세인트 죠운’(10월)과 하층민 스카팽이 상류층을 골탕 먹이는 유쾌한 풍자극 ‘스카팽’(11월) 등 비교적 많이 알려진 작품을 중심으로 자막 서비스를 할 예정이다. 지난해 동물의 생명권을 주제로 한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서는 모든 회차에 걸쳐 수어통역과 음성해설, 한글자막을 넣었다. 공연 녹화영상에 배리어프리를 적용한 사례도 늘고 있다. 국립극장은 지난해 장애인 극단 다빈나오의 ‘소리극 옥이’ 공연에 수화통역가를 배치한 데 이어 올해 공연 녹화영상에도 수화통역 화면을 넣어 제작할 예정이다. 배리어프리 공연 영상을 제작하는 사운드플렉스 스튜디오의 강내영 대표는 “민간 제작사는 비용 부담 때문에 배리어프리 공연을 하거나 관련 영상을 만들려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장애인이 더 많은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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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세 소리꾼이 토해낸 80대 英리어왕의 광기

    소리꾼 김준수(31)는 무대에서는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서편제’의 남자아이 동호부터 ‘트로이의 여인들’의 젊은 여성 헬레네에 이르기까지 그의 연기 폭은 넓다. 17일 개막하는 창극 ‘리어’에서는 80대 노인 리어왕을 연기한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1일 그를 만났다. “과거 여성이나 어린아이를 연기했을 때처럼 의식적으로 리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리어 하면 노인이 먼저 떠오르잖아요. 저절로 등이 굽고 몸이 자유롭지 못한 거예요.” 노인을 연기하는 그의 몸짓이 작위적으로 바뀌는 걸 경계하기 위해 연출가 정영두는 한 영상을 보여줬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것이었다. “평소 눈여겨보지 않는 움직임을 활용해보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가령 리어가 미쳐갈 때도 무의식 중 나오는 몸짓이 있을 거예요. 그런 모습을 최대한 찾아가는 중입니다.” 창극 ‘리어’는 셰익스피어 비극을 우리 언어와 소리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각본은 ‘3월의 눈’을 쓴 배삼식, 작창(作唱)은 한승석, 작곡은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정재일이 각각 맡았다. 김준수가 연기하는 리어는 진짜를 알아보지 못하고 두 딸에게 속아 분노로 점점 미쳐가는 인물. 극이 진행될수록 격해지는 감정을 소리에 담아 쏟아낸다. 1막 후반부에서 증오와 광기를 품은 리어가 독창하는 장면은 극의 백미(白眉)다. “‘지금 제게는 무엇보다도 인내심이 필요합니다’로 시작하는 소리에서 믿었던 딸들에게 배신당하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리어가 간신히 버티죠. 측은지심을 느끼게 돼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 ‘서른한 살 소리꾼’이 생경할 수 있겠지만 김준수는 여러 상을 휩쓴 실력파 국악인이다. 2012년부터 2년 연속 동아국악콩쿠르에서 은상과 금상을 받았고 2013년 국립국악원 온나라 국악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퓨전국악밴드에서 활동하고 창극에 출연하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최장 8시간에 달하는 춘향가 완창(完唱)을 목표로 삼고 있는 천생 소리꾼이다. “4년 전 첫 완창을 하고 나서 2년 내 또 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소리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부’인 완창에 도전할 예정입니다.” 17∼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5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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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극으로 만나는 ‘젊은 리어왕’…서른살 소리꾼 김준수

    소리꾼 김준수(30)는 무대에선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흥보, 몽룡 같이 젊은 남성이 ‘맡을 법한’ 배역뿐 아니라 ‘트로이의 여인들’의 헬레네, ‘패왕별희’의 우희, ‘서편제’의 어린 동호까지. 이번엔 본인 이력상 최고령 인물을 맡았다. 창극 ‘리어’에서 리어 역을 연기하는 그를 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의 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여성이나 어린 아이를 연기했을 때처럼 오히려 리어가 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리어하면 늙은 노인이 먼저 떠오르잖아요. 절로 등이 굽고 몸이 자유롭지 못한 거예요. 배역을 인위적으로 연기하려고 하다보니 몰입감을 해치더라고요.” 서른 살의 김준수가 노인을 꾸미려 만들어내는 작위적인 몸짓을 경계하기 위해 연출가 정영두는 그에게 최근 한 영상을 보여줬다고 한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평소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는 동작들,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모습보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활용해보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가령 리어가 미쳤을 때도 넋이 나간 듯한 몸짓도 있겠지만 무의식 중에 나오는 움직임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런 모습을 최대한 찾아가는 중입니다.” 국립극장에서 올리는 창극 ‘리어’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우리의 언어와 소리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연출은 현대무용가 정영두, 각본은 ‘3월의 눈’을 쓴 배삼식, 작창(作唱)은 한승석 중앙대 교수, 작곡은 ‘기생충’ ‘오징어게임’ 음악감독인 정재일이 맡았다. 김준수는 진짜를 알아보지 못하고 두 딸에게 속아 분노로 점점 미쳐가는 리어를 말과 소리로 연기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리어는 격해지는 감정을 소리에 담아 쏟아내게 된다. 특히 1막 후반부, 증오와 광기, 파멸의 소용돌이를 내면에 품은 리어가 독창하는 장면은 극의 백미(白眉)다.“‘지금 제게는 무엇보다도 인내심이 필요합니다’로 시작하는 소리예요. 하늘에게 애원하기도 하고 자기를 배신한 딸들을 원망하기도 하죠.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으려고 간신히 버티는 리어에게서 안타까움, 측은지심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서른 살 리어’ 만큼이나 ‘서른 살 소리꾼’도 생경하다. 하지만 김준수는 젊은 나이에도 각종 상을 휩쓴 베테랑 국악인이다. 동아국악콩쿠르에서 금상(2013년)과 은상(2012년), 2013년 국립국악원 온나라 국악경연대회에선 금상을 받았다. 퓨전국악밴드를 만들고 각종 TV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창극 무대에도 서는 그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뮤지션이지만, 여전히 최장 8시간에 달하는 춘향가 완창(完唱)을 목표로 삼는 소리꾼이다. “2018년에 첫 완창을 하고 나서 2년 안에 또 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퓨전 국악이나 창극 같은 공연도 좋지만 전 소리꾼이거든요. 많이 늦지 않은 시기에 소리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공부’인 완창에 또 도전할 계획입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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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양한 배역 소화 아들 대견” “아버지 혼신 연기에 배우 꿈”

    ‘올 것이 왔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목전에 둔 고3 아들은 “배우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당황했다. 공연장을 따라다니며 자신의 무대를 숨죽여 보던 어린 아들이 배우를 하겠다니…. 아들은 수년 뒤 배우의 꿈을 이뤘고, 올해 1월에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로 제58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거머쥐었다. 18년 전 아버지가 탔던 바로 그 상이다. 동아연극상 최초로 부자(父子)가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박지일(62)과 박용우(33) 이야기다. 두 배우를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났다. 박용우에 대한 동아연극상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은 이랬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여러 배역을 유연하게 소화해 작품의 받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심사평을 접한 둘은 놀랐다. 박지일이 아들에게 늘 건네던 조언과 같았기 때문이다. “배역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줄이고 역할의 전형적인 특성, 보편성을 살려 접근해야 한다고 말해 왔죠. 그런데 용우가 그런 연기를 해냈다니 감개무량했습니다.”(박지일) “저라는 사람이 드러나는 것보다 배역이라는 가면 뒤에 잘 숨었을 때 쾌감을 느껴요. 직접 해보니 아버지 말씀 그대로더라고요.”(박용우) 지금은 아들의 무대를 봐도 전혀 떨지 않는 박지일이지만 처음부터 강심장은 아니었다. 특히 10여 년 전 입시를 앞둔 아들의 ‘첫 연기’를 지켜봤을 때의 떨림을 잊지 못한다. “연기를 가르쳐주던 그때 정말 많이 긴장했어요. 배우를 하고 싶다는데 재능이 없을까 봐…. 재능이 모자라는 배우는 힘들다는 걸 잘 아니까요. 처음엔 독백을 시켰다가 다르게 바꿔 이것저것 해보라고 했죠. 근데 그걸 해내는 거예요. 자신을 변화시켜 수용하는 게 배우의 능력이거든요. 속으로 굉장히 기뻤습니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아들은 그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진학했다. 그런 아들과 달리 박지일은 오랜 시간 아버지의 반대를 견뎌냈다. 한창 활동하던 중에도 배우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다. 그 무렵 받은 동아연극상은 ‘연기를 계속하라’는 묵시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안겨준 연극 ‘서안화차’의 주인공 ‘상곤’을 연기했을 때였죠. 그땐 무대에서 내려올 때 몸에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있으면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연기에 모든 걸 쏟아부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중학생이던 박용우도 그때 기억은 생생하다. “공연 끝나고 분장실이었나? 아버지가 땀에 젖은 옷을 입고 계단에 걸터앉아 계시던 모습이 기억나요. 정말 멋있었어요.” 두 사람은 2월 28일 막을 올린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투: 페레스트로이카’에 서고 있다. 지난해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오다’를 함께한 후 두 번째 호흡을 맞추고 있다. 1985년 미국을 배경으로 동성애, 인종차별, 종교 문제를 짚으며 배제와 용서, 화합을 그린 대작으로 지난해와 올해 두 파트로 나눠 각각 공연한다. 박지일은 에이즈에 걸린 극우주의자 백인 변호사 ‘로이’ 역을, 박용우는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흑인 간호사 ‘벨리즈’ 역을 맡았다. 둘은 서로를 혐오하는 앙숙이다. 욕하고 싸우는 장면도 숱하다. “연습 때문에 주 6일 하루 10시간 이상 붙어 지냈어요. 처음엔 ‘사내 연애’하는 것처럼 멀리서 눈만 마주쳤는데 이젠 다른 배우들도 ‘선생님’ 대신 ‘용우 아버지’라고 불러요.”(박용우) “용우는 제게서 물려받은 것도 있겠지만 성실함과 노력으로 실력을 갖춘 배우예요. 그러니까 ‘박지일 플러스알파’인 거죠(웃음).”(박지일) 3월 27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3만∼6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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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행은 남자배우 몫’ 불문율 깬 여성들만의 뮤지컬

    무대에 여성들만 등장하는 뮤지컬이 잇달아 개막한다. 주인공의 파트너나 조력자, 적으로 묘사되는 캐릭터 중에서도 남성은 없다. 러닝타임 내내 여성 배우들만 노래하고 연기하고 춤춘다. 다음 달 1일 개막하는 ‘프리다’와 2년 만에 재공연되는 ‘리지’다.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일생을 다룬 ‘프리다’엔 여성 배우만 4명 등장한다. 프리다(최정원, 김소향)뿐만 아니라 남편 디에고 리베라까지 여성 배우(전수미, 리사)가 연기한다. ‘프리다’를 제작한 김지원 EMK뮤지컬컴퍼니 부대표는 “처음 낭독 연습을 할 때는 남성 캐릭터도 있었는데 작품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며 “4명 모두 프리다를 표현하는 배역이기에 몰입감을 위해 프리다와 같은 성별의 여성이 맡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다음 달 24일 막을 올리는 ‘리지’는 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딸을 학대해온 아버지와 이를 방관한 계모가 잔인하게 살해된 실화에 얽힌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출연 배우 4명 모두 여성이다. 차별과 억압, 관습을 깨려는 여성들의 몸부림을 강렬한 록 음악과 춤으로 표현했다. 남성도 나오지만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작품도 나온다. 5월 10일 시작하는 ‘아이다’가 대표적이다. 두 주인공은 아이다와 암네리스. 각각 누비아와 이집트의 왕족으로 태어나,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사랑 앞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강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다음 달 5일 개막하는 ‘잃어버린 얼굴 1895’도 명성황후가 주인공인 창작 가무극이다. 역사적인 의미보다는 명성황후의 슬픔과 고민, 욕망에 충실한 여성 서사다. 관객 대부분이 여성이어서 ‘흥행은 남자 배우 몫’이라는 불문율을 깨고 여성을 앞세운 뮤지컬이 많아진 까닭은 무엇일까. 단순히 흥행보다는 메시지의 완결성 있는 구현을 위해 과감한 시도를 하는 제작사가 많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지원 부대표는 “티켓 파워를 고려하면 남성 배우 없이 극을 올리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작품성에 집중하다 보면 진심이 통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뮤지컬 주 관객층인 20, 30대 여성의 소비 성향도 바뀌고 있다. 매력적인 남성을 갈망하기보다는 같은 처지의 여성 캐릭터에 공감하며 응원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다’의 이지영 연출가는 “여성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하는 여성이 많아졌다”며 “차별과 억압에 맞서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는 여성 캐릭터에 공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지’의 김태형 연출가는 “나와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하려는 욕구가 강해졌다”며 “여성 주인공이 모험적이라는 이야기는 오히려 실례되는 말이 됐다”고 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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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직 여성들로만 꽉 채운 무대…‘여성 서사’ 뮤지컬 몰려 온다

    무대에 오직 여성들만 등장하는 뮤지컬이 잇달아 개막한다. 여성의 파트너나 조력자, 적으로 묘사되는 캐릭터 중에서도 남성은 없다. 러닝타임 내내 여성배우들만 노래하고 연기하고 춤을 춘다. 다음달 1일 개막하는 ‘프리다’와 2년 만에 재공연되는 ‘리지’ 이야기다.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일생을 다룬 ‘프리다’의 무대엔 여성 배우만 4명 등장한다. 프리다 역(최정원 김소향)뿐 아니라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까지 남성이 아닌 여성배우(전수미 리사)가 연기한다. ‘프리다’를 제작한 김지원 EMK뮤지컬컴퍼니 부대표는 “처음 리딩 때는 남성배우도 있었는데 작품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성들로만 꾸미게 됐다”며 “4명의 배역 모두 프리다를 표현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프리다와 생물학적 성이 같은 여성이 맡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1892년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에서 일어난 ‘리지 보든 사건’을 바탕으로 한 록 뮤지컬 ‘리지’에도 여성배우만 4명이 등장한다. 딸을 학대해온 아버지와 방관한 계모가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에 얽힌 여성들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작품이 전개된다. 이 때문에 출연배우 4명이 모두 여성이다. 시대적인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발버둥은 무대 위 강렬한 록 음악과 춤으로 승화된다. 남성도 나오지만 여성의 서사가 극의 중심이 되는 작품도 공연된다. 5월 개막하는 ‘아이다’가 대표적이다. 작품의 줄거리를 이루는 두 주인공은 아이다와 암네리스. 각각 누비아와 이집트의 왕족으로 태어난 여성이다. 자유분방하고 모험심이 강한 인물로 묘사되는 이들은 주어진 운명이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인 결정으로 삶을 바꾸어나가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아이다’의 국내협력연출을 맡은 이지영 연출가는 “아이다와 암네리스 모두 민족을 위해 희생을 감당하고 사랑을 위해 죽음도 선택할 수 있는 ‘강한 여성’으로 묘사된다”고 했다.‘흥행은 남자배우 몫’이라는 업계의 불문율을 깨고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작품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 흥행보다는 작품의 메시지나 완결성을 위해 과감한 시도를 하는 제작사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지원 대표는 “작품의 메시지를 위해서라면 4명 모두 프리다와 생물학적 성이 같은 여성이 맡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며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티켓 파워에 연연하지 않고 추진하면 진심이 통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뮤지컬의 주 관객층 20, 30대 여성의 소비 성향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매력적인 남성을 일방적으로 갈망하기 보다는 같은 처지에 있는 여성 캐릭터에 공감하며 응원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지영 연출가는 “남성 캐릭터에 환호하기 보다는 여성 캐릭터에 자아를 투영해 몰입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아졌다”며 “여성 관객들이 오히려 차별과 억압에 맞서 자신만의 선택을 하고 삶을 개척하는 여성 캐릭터에게 진한 공감을 느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지’의 김태형 연출은 “나와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하려는 욕구가 강해졌다”며 “여성관객이 메인인 시장에서 여성주인공이 모험적이라는 이야기는 오히려 실례되는 말이 됐다”고 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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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가짜 구별 못하는 시대… 中원나라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거짓은 탄로 나고 진실은 드러난다.” 연극연출가 고선웅(54)이 말하는 신작 ‘회란기’의 주제다. 다음 달 5일 막을 올리는 회란기는 중국 원나라의 극작가 이잠부가 쓴 잡극으로 한 아이를 두고 두 여성이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다투는 내용이다. 초연 당시 동아연극상 대상을 비롯해 그해 굵직한 연극상을 휩쓸었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2015년)을 시작으로 ‘낙타상자’(2019년)에 이어 그가 세 번째로 올리는 중국 고전 희곡이다. 회란기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거짓은 꼬챙이처럼 뚫고 나온다’란 대사가 있어요. 진짜와 가짜를 구별 못 하는 시대…. 지금이랑 똑같잖아요. 이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죠.”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연습실에서 17일 만난 고선웅과 출연 배우들은 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재판관의 판결로 갈등이 끝나는 회란기의 서사는 구약성서 열왕기의 솔로몬 재판, 독일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과 유사하다. 하지만 ‘고선웅의 회란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결말에 그만의 각색을 입혔다. “마부인은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남의 아이를 친자식이라 우기며 함부로 대하잖아요. 지금이랑 똑같습니다. 아이를 학대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속상한 기사들을 보던 중 이 작품이 떠올랐죠.”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신의 아이라 주장하는 두 여성, 한 명은 진짜고 다른 한 명은 가짜다. 친모를 가리려 재판이 열리지만 거짓은 겹겹이 쌓인다. 매수된 증인은 위증을 하고 재물에 눈이 먼 법관들은 불공정한 언사를 일삼는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공정하지 않은 거죠. 요즘에도 보면 의아한 판결이 많잖아요. 하나도 안 바뀐 거죠.” 회란기는 거창한 무대장치 없이 대사만으로 상황과 배경을 설명한다. 복잡한 서사 구조, 긴 호흡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고선웅 특유의 연출 기법이 또 한 번 빛을 발한다. 의상도 간소하다. 법복을 입지 않은 배우도 “나는 포청천이다”라는 대사 한 줄에 포청천이 된다. “복잡하게 깔아놓은 걸 싫어해요. 연극은 관객을 집중시켜 놓고 말도 못 하게 하는데…. 장황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재밌어야 합니다. 웃고 울고 화내고…. 감정의 격변을 일으켜야 하죠.” 회란기에는 그가 운영하는 극단 ‘마방진’ 소속 단원 20여 명이 출연한다. 극단 대표이자 연출가로서 단원에게 많이 하는 조언은 “사랑하라”는 것. “사랑하면 무조건 힘이 생깁니다. 기세가 좋아지고 목소리와 연기도 좋아지죠. 관객도 행복해야 하지만 배우도 행복해야 하거든요. 연극은 놀이니까요.” 3월 5∼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2만∼6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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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와 가짜 구별 못하는 시대…지금이랑 똑같잖아요”

    “결국 거짓은 탄로 나고 진실은 드러난다”연극연출가 고선웅(54)이 말하는 신작 ‘회란기’의 주제다. 회란기는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작인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2015)과 ‘낙타상자’(2019)에 이어 세 번째로 올리는 중국 고전 희곡. 3년 만에 선택한 신작이 회란기인 이유는 명확했다. “‘거짓은 꼬챙이처럼 뚫고 나온다’는 대사가 있어요. 진짜와 가짜를 구별 못하는 시대…. 지금이랑 똑같잖아요.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이 시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1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의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배우들과의 연습에 한창이었다. 회란기는 1200년대 중국 원나라의 극작가 이잠부가 쓴 잡극으로, 한 아이를 두고 두 여인이 서로 자신의 아이라 다투는 내용이다. 친모가 누구인지 재판관의 판결로 갈등이 끝나는 이 서사는 구약성서 열왕기의 솔로몬 재판, 독일의 ‘코카서스의 백묵원’과 유사하다. 하지만 ‘고선웅의 회란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결말에 그만의 각색을 입혔다.“악역 ‘마부인’은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남편을 죽이고 낳지 않은 아이를 친자식이라 우기며 함부로 대하잖아요. 이것도 지금이랑 똑같습니다. 아이를 학대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속상한 기사들을 보던 중 이 작품이 떠올랐죠.”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신의 아이라 주장하는 두 여성, 한 명은 진짜고 다른 한 명은 가짜다. 친모를 가리기 위한 재판이 열리지만 진실이 밝혀지기 까지 거짓과 위선은 겹겹이 쌓인다. 매수된 증인은 거짓 증언을 하고 눈이 먼 법관들은 불공정한 언사를 일삼는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공정하지 않은 거죠. 요즘에도 보면 의아한 판결이 많잖아요.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그런 것들은) 하나도 안 바뀐 거죠.”12~13세기 잡극인 회란기는 일종의 서사극이다. 거창한 무대장치 없이 대사만으로 장면과 배경을 설명한다. 의상도 간소하다. 화려한 문양의 법복을 입지 않고도 “나는 판관 포청천이다”라는 대사 한 줄이면 배우는 포청천이 된다. 이번 무대에서도 포청천 역을 맡은 배우는 전통의상 대신 검은 코트와 수트를 입는다고 했다. 날것에 가까운 거친 연극을 표방하는 그와 잘 맞아보였다.“당시의 잡극은 경제적이면서 노랫말처럼 이뤄진 대사들은 이해하기 굉장히 쉽죠. 어떤 연극들은 굉장히 장황한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생각이 들어요. 연극은 관객을 집중 시켜놓고 말도 못하게 하잖아요. 그렇기에 이야기가 끊임없이 재밌어야 합니다. 웃고 울고 화내고 흥분도 하고…. 이야기로 감정의 격변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이번 작품에는 그가 운영하는 극공작소 ‘마방진’의 단원 20여 명이 배우로 출연한다. 그는 연출가로서 배우들에게 메소드 연기(배역의 생각과 감정에 완전히 몰입해 실물처럼 하는 연기)가 아닌 ‘연극 연기’를 주문한다. “살인범 배역을 몇 년 연구하던 배우의 눈빛이 진짜 살인자의 눈빛이 돼버렸다? 전 그런 건 싫어요. 그렇게 되면 삶이 너무 치열해지고 여백이 없잖아요. 관객도 행복해야 하지만 배우도 행복해야 하거든요. (관객, 배우 모두에게) 연극은 놀이가 돼야 해요.”그가 단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은 사랑하라는 것. 장해당 역을 맡은 배우 이서현은 “연출님은 늘 ‘서로를 사랑하고 믿으면 마법적인 뭔가가 나온다’ ‘배우가 즐거워야 관객들도 보는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해주신다”고 했다. “사랑하면 기세가 좋아지고, 목소리와 연기도 좋아집니다. 지금 대통령 후보들이 정말 국민을 사랑하면 힘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사랑을 하는 것 같지 않으니까 가짜 같이 느껴지게 되는 거죠. 사랑하면 무조건 힘이 생깁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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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덕후들도 몰랐던 스크린 뒤의 ‘진짜’ 이야기

    수십 년 전만 해도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용 만화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2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최초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애니메이션도 하나의 예술이 된다. 이 책은 애니메이션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에 대한 모든 것이 담긴 일종의 잡학 사전이다. 책은 지브리가 만든 24편의 작품을 하나씩 소개한다. 스튜디오 창립을 이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년)부터 최근 작품인 ‘아야와 마녀’(2020년)까지. 널리 알려진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뿐 아니라 조금은 낯선 ‘바다가 들린다’ ‘이웃집 야마다 군’ ‘붉은 거북’도 빠짐없이 수록됐다. 작품에 대한 단순 비평이나 감상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의 제작 과정과 역사, 산업적인 맥락, 캐릭터의 특징, 영화 이면의 사람 이야기도 들어 있다. 페이지당 한 장꼴로 그림과 사진이 풍성하게 담겨 있어 마치 지브리 미술관이 있다면 거기서 판매할 법한 도록 같기도 하다. 한 달에 1분짜리 분량만을 만들 정도로 투철한 장인정신을 지닌 지브리의 사람들도 등장한다. 지브리의 간판이자 거장인 미야자키뿐 아니라 그의 스승이자 ‘반딧불이 묘’를 만든 다카하타 이사오, ‘귀를 기울이면’으로 판타지보다는 소녀 만화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든 콘도 요시후미, ‘마루 밑 아리에티’를 시작으로 고유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는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까지. 지브리 광신도들이 썼다고 해서 좋은 이야기만 담긴 건 아니다. 초기 작품 속 캐릭터의 비도덕적인 성격, 감독들 간의 불화, 은퇴를 번복하며 후계자 양성에 나태해진 미야자키…. 명암을 고루 다룬 ‘진짜’ 지브리 이야기다. 저자는 두 명의 영국 남자, 마이클 리더와 제이크 커닝햄. ‘지브리 덕후’인 마이클의 제안으로, 지브리 작품을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만든 방송인이다. 팟캐스트 이름은 지브리와 라틴어로 도서관을 뜻하는 비블리오테크(biblioth‘eque)를 합친 ‘지블리오테크’. 이 책은 팟캐스트에서 방송한 내용을 재구성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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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다 칼로, 고통뿐인 삶도 축제처럼 즐겨”

    여섯 살에 소아마비에 걸려 한쪽 다리를 절고, 열여덟 살에 당한 사고로 평생 33번의 수술을 받은 사람.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인생은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배우 최정원(53)은 “‘웃음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말한 프리다는 고통에 허우적대지 않고 인생을 축제처럼 산 사람”이라고 했다. 7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다음 달 1일 개막하는 뮤지컬 ‘프리다’에서 주인공 프리다를 연기한다. 작품은 프리다의 죽기 전 마지막 순간을 ‘더 라스트 나이트 쇼’로 꾸민 창작 뮤지컬로, 그의 인생을 관객에게 들려준다. “작품에서는 프리다를 강렬한 에너지와 기쁨을 가진 유쾌한 사람으로 해석해요. 실제로 그가 쓴 일기에도 ‘웃기 위해 산다’, ‘고민과 고통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써 있거든요.” 남긴 작품의 3분의 1이 자화상일 정도로 자신을 사랑한 프리다. 포스터 속 얼굴 주름까지도 “살아온 인생이 담겼으니 아름답지 않으냐”며 웃는 최정원. 꽤 닮은 두 사람이다. 33년 전 그의 첫 무대는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대사라곤 ‘가자, 아들레이드!’ 한 줄뿐인 ‘아가씨6’이었지만 커튼콜만 되면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우는 그에게 팬클럽이 생겼다. “작은 배역이어도 무대에서는 스스로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좋아서 한 공연인데 사람들이 박수까지 쳐주는 거예요. ‘주인공도 아닌 애가 열심이네’라고 팬들도 신기해하며 좋아해 주셨죠.” 출산 후 1년을 제외하면 한 해도 작품을 쉬지 않은 그가 잠시 무대에 서지 못한 적이 있다. 재작년 초 팬데믹 여파로 ‘도나 역’을 맡은 뮤지컬 ‘맘마미아!’가 취소된 것. “제 모든 걸 다 뺏긴 느낌이 들었어요. 출연료는 안 받더라도 공연은 하겠다고 떼를 썼어요. 누가 죽은 것도 아닌데 폭포처럼 눈물이 나더라고요.” 프리다의 생애에서 연인이자 동지인 멕시코 거장 화가 디에고 리베라(1886∼1957)를 빼놓을 수 없다. 유산한 그녀를 두고 처제와 바람을 피우는 등 여성 편력으로 그녀를 힘들게 한 디에고였지만 프리다는 죽기 직전까지도 그림과 일기에 그를 기록했다. 최정원은 처음에는 프리다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대를 떠올리곤 마음이 바뀌었단다. “만약 누군가 제 손발을 묶고 공연을 못 하게 한다고 상상해 봤어요. 그럼 저는 프리다처럼 천장에 걸린 거울을 보며 울었다 웃었다 하며 연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하하. 프리다에게 디에고가 저에게는 무대였더라고요.” 3월 1일∼5월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7만∼8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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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다 칼로는 고통에 허우적대지 않고 축제처럼 살았던 사람”

    여섯 살에 소아마비에 걸려 한쪽 다리를 절게 되고 열여덟 살에 당한 사고로 평생 33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던 사람.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인생은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했을 것 같다. 하지만 배우 최정원(53·사진)은 “‘웃음이야 말로 최고의 가치’라 말했던 프리다는 고통에 허우적대지 않고 인생을 축제처럼 살았던 사람”이라고 했다.7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카페에서 만난 그는 다음달 개막하는 뮤지컬 ‘프리다’에서 프리다 역을 연기한다. 프리다의 죽기 전 마지막 순간을 ‘더 라스트 나이트 쇼’로 꾸민 창작 뮤지컬로 그가 지나온 인생을 관객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다. “작품에선 프리다를 강렬한 에너지와 기쁨을 가진 유쾌한 사람으로 해석해요. 근데 실제로 프리다가 쓴 일기에도 ‘웃기 위해 산다’ ‘고민과 고통은 어리석은 것’이라 써있거든요. 대본이 너무 좋았어요.”남긴 작품의 3분의 1이 자화상일 정도로 자신을 사랑했던 프리다. 포스터 속 얼굴의 주름까지도 ‘살아온 인생이 담겼으니 아름다운 것’이라 웃는 최정원. 꽤 닮은 두 사람이다. “어릴 때 산동네에 살았거든요. 남들은 불쌍하게 생각했을 수 있지만 집이 높은 데에 있기 때문에 달리기도 잘하고 다리도 튼튼해진거라 생각했어요. 뛰다 넘어졌을 때도 속으로 ‘나 좋은 일 생기려나’ 했다니까요. 왜 나쁜 일 다음에는 좋은 일이 온다고 하잖아요.” 33년 전 그의 첫 무대는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대사라곤 ‘가자, 아들레이드!’ 한 줄 뿐인 ‘아가씨6’이었지만 커튼콜만 되면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우는 그에겐 팬클럽이 생길 정도였다. “작은 배역이어도 무대에선 스스로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좋아서 한 공연인데 사람들이 박수까지 쳐주는 거예요. ‘주인공도 아닌 애가 열심이네’하며 팬들도 신기해하며 좋아해주셨죠.”출산 후 1년 말고는 한 해도 작품을 쉬지 않았던 그가 잠시 무대에 서지 못한 적이 있다. 재작년 초 코로나19의 여파로 ‘도나 역’을 맡은 뮤지컬 ‘맘마미아!’가 취소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제 모든 걸 다 뺏긴 느낌이 들었어요. 개런티는 안 받더라도 공연은 하겠다고 떼를 썼어요. 누가 죽은 것도 아닌데 폭포처럼 눈물이 나더라고요.”프리다의 생애엔 연인이자 동지인 멕시코 민중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가 빠질 수 없다. 유산한 그녀를 두고 여동생과 바람을 피운 디에고였지만 프리다는 죽기 직전까지도 그림과 일기에 그를 기록했다. 처음엔 프리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다던 그는 이후 자연스럽게 무대를 떠올렸다. “만약 누군가 제 손발을 묶고 공연을 못하게 한다고 상상해봤어요. 그럼 전 프리다처럼 천장에 걸린 거울을 보며 울었다 웃었다 하며 연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하하. 프리다에게 디에고가, 제겐 무대였더라고요.”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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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그맨들의 뮤지컬 도전, 2% 부족해 빵 터졌죠”

    ‘노트르담 드 파리’ ‘지킬 앤 하이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세계적인 뮤지컬의 라이브 무대를 2% 부족하게 찍은 유튜브 영상이 있다. 뮤지컬 소재 콘텐츠지만 배우들이 수준급 노래 실력과 연기력을 보여주는 데다 간혹 ‘찐’ 뮤지컬 배우도 등장한다. 유튜브 채널 ‘빵송국’이 만들어낸 콘텐츠 ‘뮤지컬스타’ 이야기다. 지난해 11월부터 동영상 14개가 올라간 뮤지컬스타는 최근 누적 조회 수 350만 회를 넘겼다. KBS 공채 개그맨 출신의 유튜브 기획자 곽범 씨(36), 이창호 씨(34)를 12일 서울 용산구 제작실에서 만났다.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한들 (프로 배우를) 절대 따라갈 수 없으니 더 죽기살기로 해야 웃길 것 같았어요. 노래 레슨을 받는데 심지어 선생님이 성대 수술을 할 생각이 없냐고 하더라고요.”(곽 씨) 뮤지컬 배우를 따라하려고 부단히 애쓰지만 이탈하고야 마는 음정과 벌어진 치아 사이로 새는 발음. 북받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노랫소리는 얼핏 ‘닭 울음’ 같다. 어설프게 열연하는 배우들 위로 ‘오랜 공복상태로 힘이 달리는 점 양해 바란다’는 자막이 흐를 땐 웃음이 터져 나온다. “코미디라도 준비가 안 된 사람이 장난치듯 하면 욕먹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두 달간 준비한 노래도 있어요.”(이 씨) “대사를 한 줄씩 끊고 숨쉬는 타이밍까지 적어가면서 연습했어요.”(곽 씨) 때로는 진짜 뮤지컬 스타가 등장한다. 두 사람의 표현에 따르면 ‘유일하게 컨디션 난조를 극복한 실력자들’이다. 일부 영상에 배우 카이와 정선아가 출연해 무대에서 직접 부른 넘버를 열창했다. 배우 아이비도 출연할 뻔했다는 후문이다. “스케줄이 안 맞아 아쉽게 출연이 불발된 아이비님께 무한 감사드리고 이 자리를 빌려 조승우, 옥주현님께 러브콜을 보내봅니다.”(이, 곽 씨) 뮤지컬스타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뮤지컬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영상을 보고 공연 예매를 했다’는 댓글을 볼 때면 뿌듯하단다. “처음에는 제작사에서 항의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좋아해주시더라고요. 다행이었습니다.”(이 씨) “동료 개그맨들이 자꾸 출연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개그맨들 연락 그만하세요. 이건 진지한 뮤지컬 콘텐츠입니다.”(곽 씨) 두 사람이 몸담고 있는 코미디는 무대에서 관객을 만난다는 점에서 뮤지컬과 같다. 팬데믹 확산으로 스탠드업 코미디 쇼가 중단된 후 이들이 유튜브로 뮤지컬스타를 만든 건 우연이 아니다. “구독자들이 ‘코로나 시국에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걸 손안에서 볼 수 있게 해줘 너무 좋다’고 하실 때 힘이 나더라고요.”(이 씨) “뮤지컬과 코미디 모두 여러 관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곽 씨)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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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각장애인 빌리에겐 손이 언어… 가족사이 방치된 소통에 감정이입”

    교사, 언어학자, 추리소설 작가…. 높은 언어 구사력을 가졌지만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어느 가족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 살아가는 선천성 청각장애인 막내아들 빌리. 현재 공연 중인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빌리 가족이 겪는 매끄럽지 않은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2014년 초연 당시 데뷔 3년 차 신인이었던 배우 이재균(32)은 빌리 역을 맡아 제51회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을 받았다. 8년 후 재공연에서 다시 빌리를 연기하는 그를 연극이 공연되는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8일 만났다. “사실 초연 때 소속사에선 하지 말자고 했어요. 빌리가 아무래도 신인이 소화하기엔 어려운 캐릭터여서요. 하지만 대본을 읽어나가는데 시끄럽게 싸우는 가족들 사이에서 방치된 빌리에게 점점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무조건 하고 싶다고 했어요.” 빌리는 구어(口語)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다. 수어(手語)를 열등하다고 여기는 아버지의 요구로 입술 모양을 읽고 입 모양과 혀의 위치, 성대의 진동을 통해 말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애인 실비아에게 수어를 배우면서 구어를 강요했던 가족과 균열이 생긴다. “언어든 구어든 각자에게 맞는 소통의 수단이잖아요. 다른 이들에게는 말이 언어지만, 빌리에게는 손이 언어인 거예요.” 가족이 논쟁을 벌이는 1막에서 빌리는 대화에 끼려 수차례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여러 명이 대화하거나 입 모양을 보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빌리는 “무슨 대화를 하느냐”고 묻지만 가족은 그를 소외시킨다. “1막에서의 연기가 가장 까다로웠어요. 예민하게 가족의 입을 쫓으며 이해하려고 하니까요.” 11년 차 연기 경력의 그는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영역을 확장 중이다. “친구들은 저더러 ‘잡탕 배우’라고 불러요.(웃음) 연기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걸 배웠어요. 몸에 착 붙지 않았던 역할이 어느새 맞춰질 때가 있는데…. 그게 정말 재밌습니다.” 27일까지. 전석 6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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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공간 뛰어넘는 무대영상, 이젠 예술이 되다

    연극 ‘리차드3세’의 막이 오르면 관객은 무대 정중앙 상단에 걸린 가로 10m, 세로 5.5m 크기의 스크린을 마주한다. 왕관을 차지하려는 리차드(황정민)가 무대 위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동안 스크린에선 죽임을 당하는 이들의 고통에 울부짖는 모습이 크게 확대돼 나타난다. 사람들이 죽어갈 때마다 리차드의 탐욕과 잔혹함을 상징하는 가시덩굴은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몇몇 가구 외엔 소품이 거의 없는 ‘리차드3세’ 무대의 핵심요소는 다름 아닌 이 영상들이다. 영상으로 리차드를 사로잡고 있는 죄책감,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핵심 콘셉트다. 조수현 아트디렉터는 “잔혹한 행동을 일삼으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리차드의 심리를 영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강하자는 게 연출 의도”라고 설명했다. 영상은 무대에서 작품의 메시지를 전하는 핵심적인 표현수단이 됐다. 2005년 국내에 본격적으로 무대영상이 도입됐을 때만 해도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배우의 연기와 무대 위 실물들로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공연예술의 본질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창작자의 표현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부상했다. 무대를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무대 디자인 그 자체로 활용되는 것이다. 조 아트디렉터는 “6, 7년 전만 해도 무대영상은 전체 무대디자인의 일부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영상 예산을 별도로 책정할 만큼 독립적인 예술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무대와 영상의 만남은 화려한 볼거리를 중시하는 뮤지컬에 더욱 널리 쓰인다. 20일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에선 무대 앞쪽에 설치된 스크린을 활용해 이집트, 인도, 아프리카 등 작품 속 여러 배경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실물로 구현하기 힘든 호숫가 배경이나 북극의 밤하늘을 한 폭의 그림 같은 영상으로 표현해 작품의 미적 요소를 배가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켄슈타인’의 영상을 담당한 송승규 영상 디자이너는 “인간의 세상은 차갑게, 괴물이 있는 공간은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며 “독일의 표현주의나 인상주의 화풍에서 따온 그림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메타버스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작품도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 선보인 독일 연출가 주자네 케네디의 연극 ‘울트라 월드’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게임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가상현실에 갇힌 아바타가 주인공이다. 100평짜리 무대에서 게임이 벌어지는 가상현실을 표현한 영상은 무대와의 경계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자네 케네디는 “새로운 기술로 무대를 꾸민다고 해도 ‘지금 여기에서 관객과 만난다’는 연극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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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짧은 러닝타임은 가라”… 연극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10, 20분 이내의 짧은 러닝타임이 콘텐츠 흥행 공식이 된 시대에 ‘연극의 시간’은 거꾸로 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압축적 전개로 극에 몰입하게 하는 ‘숏폼’이나 ‘미드폼’이 대세가 됐다. 반면 연극에서는 공연시간이 최장 8시간에 이르는 작품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연극 공연시간은 80∼100분대. 하지만 최근에는 3시간짜리 작품은 허다하고 8시간에 달하는 대작도 다수 나오는 추세다. 2017년 초연 당시 7시간짜리로 개막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지난해 재공연에서도 6시간을 넘겼다. 미국 극작가 토니 쿠슈너가 쓴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지난해 1부에 이어 이달 개막하는 2부를 합쳐 공연시간이 8시간이나 된다. 올해 4월 막을 올리는 ‘금조 이야기’도 낭독회만 240분간 진행돼 무대화 작업을 거치면 공연시간이 4시간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상 콘텐츠와 대조적인 연극의 이런 흐름은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걸까.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배우의 대사와 연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연극은 묵직한 주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러닝타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카라마조프…’의 나진환 연출가는 “도스토옙스키의 원작은 1700쪽이 넘어 줄거리만 짧게 압축하면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며 “자극적인 사건과 인물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985년 미국을 배경으로 동성애, 에이즈, 인종차별, 종교 문제를 방대하게 짚은 ‘엔젤스…’는 일단 대본 자체가 길다. 무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시간은 더 늘었다. 신유청 연출가는 “작품에 나오는 소수자, 인종, 종교 등 여러 주제를 관객들이 자신의 문제로 여기며 차근차근 곱씹어보길 바랐다. 작품의 의미를 충분히 생각하고 느끼려면 공연시간이 길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4∼6시간을 훌쩍 넘기는 연극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도 긴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6시간 연속 공연한 ‘카라마조프…’의 객석 점유율은 80%에 육박했고, 4시간짜리 ‘엔젤스…’도 티켓 발매 당일 4500석 전석이 매진됐다. ‘카라마조프…’에 출연한 배우 정동환은 “편하고 쉬운 것을 늘 접하는 가운데 어렵고 무거운 작품을 원하는 관객도 분명히 있다는 걸 확인했다”며 “긴 호흡의 작품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 한 번쯤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느낌을 줄 것”이라고 했다. 신 연출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견뎠다’ ‘버텼다’는 인증 글이 올라온 걸 보고서 ‘긴 연극 자체를 즐기는 관객 문화도 생겼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이를 견뎌낸 사람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비추는 ‘금조 이야기’ 역시 벌써부터 관심을 갖는 관객이 많다. 긴 연극이 늘어나는 데 대해 김명화 연극평론가는 “묵직한 텍스트, 깊이에 대한 갈망이 무르익어 생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경미 연극평론가는 “긴 분량이 작품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탄탄한 연기를 통해 오랜 시간 관객과 성공적으로 소통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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