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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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뮤지컬, 무용 등 공연업계를 취재합니다.

easyhoon@donga.com

취재분야

2024-04-08~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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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3%
사회일반3%
기타17%
  • 송강호, 거장들의 ‘페르소나’… 박찬욱, 칸 3번째 수상 ‘깐느 박’

    송강호의 배우 인생“청소부라도 시켜달라” 연극 입문후드라마 출연않고 영화배우 외길 걸어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만나 연기 변신 경남 김해(현 부산 강서구)에서 나고 자란 송강호는 중학교 2학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재밌어하는 친구들을 보며 배우의 꿈을 꿨다. 23세이던 1990년 부산에서 극단 연우무대의 ‘최선생’을 본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다. 이듬해 연우무대 극장장이던 류태호에게 “청소부라도 시켜 달라”던 청년 송강호는 이로부터 31년 뒤 한국인 첫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의 쾌거를 이뤘다. 단 한 편의 드라마에도 출연하지 않고 줄곧 영화배우 외길을 걸은 결과다. 1991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그는 ‘동승’을 시작으로 1996년까지 10여 편의 연극에 출연하며 실력파 배우로 이름을 알린다. 1996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단역으로 영화에 데뷔한 그는 1997년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서 조폭 부하 ‘판수’ 역을 맡아 주목받았다. 이어 그해 영화 ‘넘버3’에서 말더듬이 깡패 ‘조필’ 역을 맡아 한국 대표 감초 배우로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그의 “내가 현정화! 그러면 무조건 현정화야” 대사는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는 넘버3로 그해 대종상 신인남우상,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송강호는 코믹한 이미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쉬리’(1999년)에서 국가정보원 특수요원으로 변신했다. 당시 그의 연기가 배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도 있었지만 ‘조용한 가족’(1998년)에서 가능성을 본 김지운 감독이 ‘반칙왕’(2000년) 주연으로 그를 캐스팅한다. 송강호의 첫 주연 작품이다. 송강호는 한 인터뷰에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가장 힘들었던 영화는 단연 ‘반칙왕’이다. 주변 시선을 느꼈기에 스스로 더 채찍질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거장 감독들의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한다. ‘조용한 가족’ 이후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 ‘밀정’(2016년)에 잇달아 출연한다. 박찬욱 감독과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이후 ‘복수는 나의 것’(2002년), ‘박쥐’(2009년)를 찍었다. 봉준호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2005년)을 시작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괴물’(2006년), ‘설국열차’(2013년)에 이어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 석권한 ‘기생충’(2019년) 작업을 함께했다.박찬욱의 감독 여정 복수 3부작 등 자신의 취향에 충실‘올드보이’ 칸 심사위원대상으로 세계 주목장르 넘나들며 할리우드 등 진출칸영화제에서만 올해 세 번째로 트로피를 들어올려 ‘깐느 박’으로 통하는 박찬욱 감독(59)은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취향에 충실한 영화를 제작해온 그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그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은 29세 때 찍은 ‘달은…해가 꾸는 꿈’(1992년)이다. 가수 이승철, 나현희가 출연한 이 작품은 흥행에 참패하고 평단의 호응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부진한 성적으로 생계형 평론가로 활동하던 그는 5년 뒤 ‘삼인조’(1997년)를 내놓았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를 충무로가 주목하는 감독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관객 590만 명을 동원해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된 이 작품은 제5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다. 흥행 감독으로 입지를 굳힌 박 감독은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한다.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을 시작으로 원죄와 복수, 구원을 소재로 한 ‘복수 3부작’을 선보인다. ‘복수는 나의 것’은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한 ‘올드보이’(2003년)를 선보인다. ‘올드보이’가 200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박 감독은 칸과 첫 인연을 맺게 된다. 복수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한 ‘친절한 금자씨’(2005년)는 “너나 잘하세요”라는 명대사를 낳으며 제6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박쥐’(2009년)는 제62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박찬욱은 당시 인터뷰에서 “‘박쥐’는 그동안 찍었던 작품 중 가장 좋았다. 왜냐면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6년에는 영국 소설가 세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를 각색한 영화 ‘아가씨’를 선보였다. 김민희 김태리 주연의 이 영화는 제69회 칸영화제에 초청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최근 세계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는 장르를 넘나들며 영미권에도 진출했다. 미국 할리우드에선 니콜 키드먼, 미사 바시코프스 주연의 ‘스토커’(2013년), 영국 BBC 첩보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년)을 연출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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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흥식 교황청장관, 한국 4번째 추기경

    유흥식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겸 대주교(71·사진)가 한국의 네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된 지 약 11개월 만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29일(현지 시간) 바티칸 사도궁에서 유 대주교를 포함한 신임 추기경 21명을 발표했다. 유 대주교는 선종한 김수환 정진석 추기경, 지난해 은퇴한 염수정 추기경에 이은 한국의 네 번째 추기경이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 대주교는 1979년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 교의신학과를 졸업한 후 현지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대전가톨릭대 교수와 총장을 지냈으며 2003년 주교품을 받았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교계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유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까이 지내는 소수의 한국인 성직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실제 그는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을 이끌어냈다. 유 대주교는 지난해 6월 전 세계 사제 및 부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발탁돼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가톨릭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유 대주교의 능력과 서구 중심의 가톨릭 인맥에서 벗어나 개혁을 강조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중이 들어간 파격 인사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추기경은 가톨릭교회에서 교황 다음가는 최고위 성직자로 교황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갖는다. 특히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비밀 교황 선출회의인 콘클라베에 참여한다. 한국에서는 유 대주교뿐 아니라 은퇴한 상태의 염 추기경도 올해 79세로 참석할 수 있다. 유 추기경의 서임식은 8월 27일 로마 바티칸 교황청에서 열린다. 유흥식 추기경, 백신기부운동으로 교황 신임… 첫 방한 이끌기도 한국 ‘네 번째 추기경’ 서임작년 김대건 신부 200주년 미사 주례 “교황 방북-남북교류 활기 띨 수도”추기경은 교황 보좌 최고위 성직자80세 미만은 교황 선출-피선거권도… 신자들 “김수환 추기경처럼 됐으면” 한국 가톨릭이 유흥식 대주교(71)의 추기경 임명으로 또 하나의 경사를 맞았다. 유 대주교는 지난해 6월 전 세계 사제들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고 주교들을 지원하는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됐다. 240년 한국 가톨릭 역사는 물론 교황청 역사상 한국인 성직자가 차관보 이상 고위직에 임명된 첫 사례였다. 염수정 추기경(79)이 지난해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 은퇴한 상태이기 때문에 현직으로는 유 대주교가 유일하다. 유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은 시간문제였다. 교황청 행정기구인 9개 성(省) 장관은 관례상 추기경 좌(座)로 분류돼 있어 추기경 서임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규모 종교행사에 대한 우려가 많아 임명이 늦춰졌다는 후문이다. 유 대주교가 교구장을 지낸 대전교구 측은 “교구 사제와 신자들이 전임 교구장님의 추기경 서임을 위해 많은 기도를 올렸다”며 “네 번째 추기경 탄생은 성직자성 장관 임명에 이어 한국 가톨릭의 경사”라고 말했다. 유 대주교는 성직자성 장관 임명 이후 한국 가톨릭교회와 교황청의 소통은 물론 코로나19 백신 기부 운동을 뒷받침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유 대주교는 지난해 8월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한국 교회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미사를 주례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김대건 신부에게 봉헌되는 미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교황은 백신 기부와 관련해 “주교님들께서 아낌없이 보여주신 사랑과 형제애에 저는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다”면서 “한국 지역교회의 모든 신자를 품에 안으며, 저의 진심 어린 애정과 영적 친밀감을 전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이끌어낸 이도 유 대주교였다. 당시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릴 예정이던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을 요청한 그의 서한을 계기로 교황 방한이 이뤄졌다. 교황 방한을 앞두고 바티칸에서 열린 요한 23세 및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시성식에서도 유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40분간 단독 면담하며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교회법에 따르면 추기경은 가톨릭교회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가진 성직자 지위다. 교황을 보필해 교회를 원활하게 관리하는 역할을 해 교황의 최고위 보좌관으로도 불린다. 전 세계 추기경이 소속된 추기경단은 교회법상 교황의 최고 자문기관이다.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교황 유고 시 콘클라베(교황 선출 투표)에 참석하며 교황으로 선출되는 피선거권도 있다. 유 추기경뿐 아니라 지난해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며 은퇴한 염수정 추기경도 80세 미만이어서 참석할 수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측은 “이번 임명을 통해 유흥식 대주교가 성직자성 장관에 어울리는 명실상부한 지위와 명예를 갖게 됐다”며 “유 대주교가 한국 교회는 물론 세계가톨릭 교회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교계의 한 신부는 “유 대주교는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될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과 남북 교회의 교류에 힘을 보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며 “유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이 다양한 남북 교류 사업에도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 소식이 전해진 29일 오후 9시경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는 이날 마지막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150여 명의 신자가 모였다. 미사를 마친 신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유 대주교의 서임을 화제로 대화를 나눴다. 백지우 씨(39)는 “갑작스럽게 임명 소식을 들어서 놀랐지만 크게 축하할 일이다. 약자 편에 서는 추기경이 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희옥 씨(68)는 “김수환 추기경처럼 검소한 추기경이 되시면 좋겠다. 평화와 사랑 등 추기경이 지녀야 할 가치도 잘 실현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김학렬 씨(50)는 “추기경이 한 분 더 나오신 만큼 우리나라 천주교의 위상이 높아질 것 같다”며 “염수정 추기경과 함께 두 분이 추기경 일을 잘해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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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흥식, 한국 네번째 추기경…2014년 교황 첫 방한 이끌기도

    유흥식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겸 대주교(71·사진)가 한국의 네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된 지 약 11개월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9일(현지시간) 바티칸 사도궁에서 유 대주교를 포함한 신임 추기경 21명을 발표했다. 유 대주교는 고 김수환 추기경(1969년)과 고 정진석 추기경(2006년), 염수정 추기경(2014년)에 이은 한국의 네 번째 추기경이다. 유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식은 8월 27일 로마 바티칸 교황청에서 열린다. 유 대주교는 80세 미만의 추기경이라 교황 유고시 교황 선출권도 갖는다. 추기경은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보좌하는 최측근이자 최고위 성직자다. 전 세계 모든 추기경이 소속된 추기경단은 교회법상 교황의 최고 자문기관이다. 추기경의 신분상 직위는 종신직이나 80세가 되면 법률상 모든 실질 직무는 종료된다. 염수정 추기경은 올해로 79세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 대주교는 1979년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 교의신학과를 졸업한 후 현지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대전가톨릭대 교수와 총장을 지냈으며 2003년 주교품을 받았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교계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유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까이 지내는 소수의 한국인 성직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실제 그는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을 이끌어냈다. 당시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린 예정이었던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을 요청한 그의 서한을 계기로 교황 방한이 이뤄졌다. 지난해 6월 유 대주교는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발탁됐다. 한국인 성직자가 전 세계 사제 및 부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건 교황청 역사상 처음이다. 유흥식 추기경,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연 깊어 유흥식 대주교(71)의 추기경 임명은 교황청 장관으로 임명된 지 약 11개월 만에 이뤄졌다. 고 김수환, 정진석 염수정 추기경에 이어 한국 천주교 역사상 네 번째 추기경이 나온 것이다. 지난해 6월 유 대주교가 전 세계 사제들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고 주교들을 지원하는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됐을 때부터 그의 추기경 서임 가능성이 제기됐다. 교황청 행정기구인 9개 성(省) 장관은 관례상 추기경 직책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성직자성은 가톨릭 신학교들에 대한 관리 권한도 갖고 있다. 유 대주교의 교황청 장관 임명은 역대 한국인 성직자 중 처음으로 차관보 이상 고위직에 임명된 사례였다. 유 대주교는 1979년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교의신학과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도 이탈리아 현지에서 받았다. 이탈리아어에 능통한데다 교황청 인맥이 두터운 이유다. 이런 배경은 그가 아시아 출신으로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전격 발탁된 배경이 됐다. 특히 유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도 인연이 깊다. 두 사람은 2013년 7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곳은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 후 처음 나선 해외 방문지였다. 유 대주교가 이탈리아어로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레아?”라고 물었다. 유 대주교가 “350명 한국 젊은이들과 함께 왔습니다”라고 말하자 교황은 뒤를 돌아보며 “한국 교회는 강합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도 그가 이끌어냈다. 유 대주교가 교구장으로 있던 대전교구의 ‘아시아청년대회’에 교황이 참석한 것. 교황 방한을 앞두고 바티칸에서 열린 요한 23세 및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시성식에서도 유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40분간 단독 면담을 가졌다. 유 대주교는 단독 면담 후 한복을 입은 성모상을 교황에게 선물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성모님!”이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유 대주교는 올 4월에도 바티칸에서 교황을 알현해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최양업 신부 시복 문제와 한반도 평화 이슈를 설명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성직자성 장관 임명 사실을 교황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유 대주교는 “사제의 쇄신 없이 교회의 쇄신도 없다는 말은 항상 맞다”며 “교황님의 교황청 쇄신 노력을 힘껏 돕겠다”고 밝혔다. 교계 일각에선 유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을 계기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추기경은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보좌하는 최측근이자 최고위 성직자다. 추기경이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은 없다. 한국 가톨릭은 “사제 서품을 받은 이 가운데 신심과 학식, 품행을 갖추고 업무 처리 역량이 특출한 이를 교황이 자유로이 선발한다”고 밝히고 있다. 교황의 뜻에 따라 대주교나 주교가 아닌 일반 신부도 임명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교황이 후보자를 거명하면 추기경단이 토론하고 동의하는 절차가 있었지만, 현재는 형식적인 절차로 남아 있다. 실질적으로는 교황에게 임명에 대한 전권이 부여돼 있다. 추기경은 출신 국가에 관계없이 바티칸 시민권을 갖게 되며, 국제 의전상 최고 예우를 받는다. 추기경의 신분상 직위는 종신직이나 80세가 되면 법률상의 직무는 사실상 종료된다. 추기경의 가장 큰 권한은 교황 선출이다. 80세 미만의 추기경들이 로마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콘클라베를 통해 새로운 교황을 뽑게 된다. 교황청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추기경은 215명이며 이 중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이 93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65명은 베네딕토 16세 때, 나머지 57명은 요한 바오로 2세 때 각각 서임됐다. 유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식은 올 8월 27일 로마 바티칸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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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딴 영화로 와서 같이 상 받은듯”…박찬욱-송강호의 22년 인연

    “한 번 같이 (작업)해야죠. 13년 전 ‘박쥐’ 이후로 꽤 오래됐어요. 하하.”(송강호) “(캐스팅을) 거절만 하지 말아주세요.”(박찬욱) 제75회 칸 영화제를 빛낸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는 28일(현지 시간) 시상식 직후 함께 가진 기자회견에서 친밀함과 끈끈한 ‘케미’를 발산했다. 박찬욱은 “같은 영화로 왔다면 같이 (상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따로 왔으니 같이 받게 된 것 같아 더 재밌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수상자로 호명돼) 제가 일어났을 때 감독님이 뛰어오시면서 포옹하는데 감동적이었다”며 “감독님 눈빛을 보는 순간 너무 좋아하시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였다. 박찬욱을 흥행감독 반열에 오르게 한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조선 인민군 육군 중사 오경필을 연기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사이에 둔 남북 군인들 사이에 벌어진 비극을 다룬 영화로, 590만여 명이 관람하며 흥행에 성공한다. 박 감독은 바로 다음 작품에서 또 송강호를 선택했다. 흥행으로 입지가 탄탄해진 박 감독이 자신의 기호를 유감없이 발휘한 첫 작품인 ‘복수는 나의 것’(2002년)에 캐스팅한 것. 송강호는 딸을 죽게 만든 유괴범을 쫓으며 점점 괴물이 되어 가는 아버지 동진 역을 연기해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복수는 나의 것’은 ‘올드보이’(2004년), ‘친절한 금자씨’(2005년)와 함께 박찬욱의 ‘복수 3부작’으로 불리게 된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7년 만인 2009년 영화 ‘박쥐’에서다. ‘박쥐’는 박찬욱이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을 각색한 작품으로, 송강호는 육체적 욕망과 투철한 신앙심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 뱀파이어가 된 신부 상현을 연기했다. ‘박쥐’는 2009년 제62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아 두 사람이 나란히 칸 레드카펫을 밟게 해준 첫 작품이 됐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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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아시스 찾아 헤매면서도 사랑-불꽃 간직한 이들 이야기”

    “자기만의 감각으로 인물의 삶을 재현해 내는 배우.” 배우 황순미(42)가 올 초 연극 ‘홍평국전’으로 제58회 동아연극상 연기상 수상자로 결정될 당시 심사위원들이 남긴 심사평이다. 성별이 특정되지 않은 영웅 캐릭터 홍평국을 탁월하게 소화해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그가 선택한 차기작은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오아시스’. 2017년부터 연극 ‘초인종’ ‘홍평국전’ 등을 함께 작업해온 설유진 연출가와 다시 한 번 뭉쳤다. 18일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연극 ‘오아시스’는 차가운 디스토피아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면서도 여전히 마음에 사랑과 불꽃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황순미는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인물 11명 중 지정신이란 이름의 과학자 캐릭터를 연기한다. 하지만 설 연출가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각본상 배역의 성별은 특정되지 않았다. “성별이 주는 편견을 심어주고 싶지 않은 연출가의 의도라고 생각해요. 지정신을 연기하면서 저 나름대로는 어떤 남성 과학자를 떠올려보긴 했지만요. 관객들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극중 인물의 대사로만 사유했으면 합니다.” 그는 대학 새내기치곤 비교적 늦은 스물넷에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했다. 원래 의상 전공자였던 그는 “오페라, 연극 등 무대 의상 작업을 하면서 뒤늦게 연기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고 전하며 웃었다. “연습실에서 배우들이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연기하는 모습을 봤어요. 날것의 거친 모습들이 제겐 마냥 예쁘게 보이더라고요. 의상 일을 좋아해서 직업을 바꾸는 것에 대해 고민하긴 했지만 배우가 된 후로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극단 인혁의 연극 ‘수상한 동양화’(2006년)로 데뷔한 그는 올해로 16년 차 무대 경력의 배우다. “처음 극단 생활을 할 때 연극을 잘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연극부터 잘하자’고 생각했어요(웃음). 이젠 시간이 좀 지났으니 무대가 아닌 곳에서 새로운 도전도 해보고 싶습니다.” 6월 3∼12일, 전석 4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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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한국인의 밥상, 그 이면의 이야기

    이주노동자에 관한 많은 기사가 나온다. 열악한 노동 환경, 갖은 범죄에 노출된 처지,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 당위적으로는 이주노동자의 삶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주장에 고개는 끄덕일지언정 마음이 움직이긴 쉽지 않다. 인간은 본래 자신이 연루된 고통에 반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주자 인권 활동가인 저자는 ‘관찰’이 아닌 ‘참여’를 택했다. 1500일간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일한다는 농촌의 노동자로 취업한다. 이주노동자 문제라는 거시 담론을 이야기하기 위해 캄보디아에서 온 씸낭, 보파, 쓰레이응 등의 실존 인물을 내세운다. 저자에겐 동료인 그들이 독자에겐 농·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창(窓)이 된다. 한국은 더 이상 젊은 사람들이 농어촌에서 일하지 않는 나라가 됐다. 그 결과 농어촌에서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 10명 중 4명이 이주노동자라고 한다. 특히 집약적 노동이 요구되는 채소·과일 재배 농가에선 이주노동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저자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깻잎, 고추, 토마토, 딸기 등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는 그들의 삶은 처참하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건 기본이고 몇 달 치 임금이 체불되는 사례도 허다했다. 재래식 화장실도 딸려 있지 않은 비닐하우스나 간이 컨테이너에서 살아야 하지만 월세는 75만 원이 넘는다. 2020년 기준 임금 체불을 당한 이주노동자는 3만 명이 넘었다. 사장이 가하는 성폭력을 피해 미등록 노동자가 되는 여성 노동자도 상당수다. 저자는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이 이주노동자가 불합리한 대우를 당해도 직장을 쉽게 옮길 수 없게 악용된다고 지적한다. 매일같이 농촌에서 생산하는 채소와 과일을 먹고 살아가는 한국인 중 그들의 고통에 연관되지 않은 이는 한 명도 없다. 소설가 최은영은 추천사에 “나의 무감한 공모를 깨닫게 되었고 마음이 아팠다”며 “이 책이 잔인함에 이토록 관대한 이 사회를 변화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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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갑 앞둔 ‘다작 배우’, 무대서 노동자 권리 외친다

    무대와 영상 매체를 넘나드는 전국향(59)은 다작(多作)으로 유명한 배우다. 데뷔한 지 올해로 39년을 맞은 베테랑 배우로 한 해 평균 4편 정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선다. 드라마는 올해에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 tvN ‘빈센조’ ‘킬힐’ 등에 출연했다. 다만 주인공 어머니나 할머니 역이 대부분이었다.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후배들이 작품 하자고 하면 ‘내가 꼭 필요하겠거니’ 싶어 배역 안 따지고 이것저것 많이 하게 됐다”며 “사정이 어려우니까 날 부르지, 안 그럼 다른 큰 배우랑 하지 않겠냐”며 웃었다. 이번엔 주연으로 무대에 오른다. 19일 서울 종로구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7분’에서 섬유회사의 노동자 대변인 블랑세 역을 맡게 된 것. 연극 ‘7분’은 다국적 기업에 매각된 섬유회사에서 해고의 두려움을 느끼는 노동자들의 불안을 다룬다. 구조조정 여부를 밝히지 않은 다국적 기업이 제시하는 조건은 의미심장하다. 모든 노동자의 휴게 시간을 15분에서 8분으로 단축하라는 것. 7분만 양보하면 노동자들은 무사히 고용 승계될 거란 희망에 사로잡힌다. “개개인에게 7분은 짧지만 전체 노동자는 200명이 넘으니 조건을 받아들이면 한 명이 7분을 포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죠. 공장주에겐 막대한 이익을 안기지만 노동자에겐 무엇이 남을까요. 더 많은 걸 내어주게 되지 않을까요? ‘7분’에 담긴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성을 말하는 연극입니다.” 배역이 주어지면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는 그는 독립 장편영화 ‘욕창’(2020년), ‘혜옥이’(2021년)에선 주연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기획사에 들어간 이후 드라마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지만 그는 여전히 “무대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 천생 연극인이다. “대본과는 달리 희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어요. 배우로서 인물을 구축하기에 훨씬 좋죠.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볼 새도 없는 드라마와 달리 연극은 앙상블 작업이에요. 우리끼리 얘기하고 피 터지게 싸웠다가 울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찾아오는 것들이 아직은 훨씬 값지게 느껴집니다.” 19∼28일, 전석 3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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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작 배우’ 전국향, 이번엔 해고위기 처한 노동자 이야기 전한다

    무대와 영상을 넘나드는 전국향(59)은 다작(多作)으로 유명한 배우다. 올해로 데뷔 39년을 맞은 그는 한 해 평균 4편 가량의 연극 무대에 꾸준히 선다. 드라마는 올해에만 ‘소년심판’ ‘빈센조’ ‘기상청 사람들’ ‘킬힐’에 출연했다. 다만 그가 맡은 배역은 주인공 어머니나 할머니가 대부분이다.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후배들이 작품 하자고 하면 주·조연 따지지 않고 ‘내가 꼭 필요하겠거니’ 하다보니 이것저것 많이 하게 됐다”며 “저들도 사정이 어려우니까 날 부르지, 안 그럼 다른 큰 배우랑 하지 않겠냐”며 웃었다. 이번엔 주연으로 무대에 선다. 19일 서울 종로구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7분’에서 섬유회사의 노동자 대변인 블랑세 역을 맡게 된 것. 연극 ‘7분’은 다국적 기업에 매각된 섬유회사 다니는 노동자들의 불안을 다루는 작품이다. 구조조정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다국적 기업이 해고 두려움을 느끼는 노동자들에게 제시하는 조건은 의미심장하다. 모든 노동자의 하루 휴게시간을 15분에서 8분으로, 7분을 단축하라는 것. 7분만 양보하면 노동자들은 모두가 무사히 고용승계될 수 있을 거란 희망에 사로잡힌다. “개개인에게 7분은 짧지만 전체 노동자는 200명이 넘으니 모두의 7분은 한 명이 7분을 포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죠. 공장주에겐 막대한 이익을 안기지만 노동자에겐 무엇이 남을까요.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내어주게 되지 않을까요? 저희 작품은 ‘7분’에 담긴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성을 말하는 연극입니다.” 연극 ‘7분’은 한국 연극 최초로 배우 11명 모두에 각각 수어통역사가 붙는다. 1명의 수어통역사가 모든 배우의 대사를 전달하는 기존 방식에서 한 단계 나아간 것이다. “대사를 하면 옆에 선 통역사가 수어로 연기해요. 수어가 그토록 아름다운지 몰랐어요. 굉장한 감동이 오더라고요. 연습할 때 넋 놓고 수어를 보다 대사를 놓친 적도 많아요.(웃음)” 1983년 서울예대 재학생이었던 그는 대학로 연극판에 데뷔한다. 이후 39년 간 1년 이상 무대를 떠난 적이 없다. 남편도 학교 선배이자 연극무대에 같이 서온 배우 신현종이다. “난 처음에 그랬어요. 내 삶에서 제일 먼저는 연극이고 그 다음이 가족이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벌이가 안정된 건 아니었지만 감사하게 누구에게 빚지거나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없으면 없는 대로. 나는 대신 좋아하는 거 하며 살잖아? 이런 마음으로 살았어요. 우리 남편도 그랬을 거고요.” 배역이 주어지면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는 그는 독립 장편영화 ‘욕창’(2020년), ‘혜옥이’(2021년)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소속사가 생긴 이후 드라마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지만 여전히 “무대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 천생 연극인이다. “회사에선 연극 너무 많이 한다고 불평해요.(웃음) 작품이 들어와도 너무 연극을 많이 하니까 다른 건 못한다고요. 근데 나는 아직까지도 연극이 훨씬 좋아요. 대본과는 달리 희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어요. 배우로서 인물을 구축하기에 훨씬 좋죠. 촬영 일정이 빡빡해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볼 새도 없는 드라마와 달리 연극은 앙상블 작업이죠. 우리끼리 서로 얘기하고 피터지게 싸웠다가 울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찾아오는 것들이 아직은 훨씬 값지게 느껴지네요.”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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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는 남자’ 대명사가 된 박강현

    17세기 영국, 입이 양옆으로 찢긴 괴기한 용모를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웃는 남자’가 다음 달 10일 막이 오른다. 3년 만에 다시 관객과 만나는 이번 공연뿐 아니라 초연(2018년), 재연(2019년)에서 주인공 그윈플렌에 연달아 낙점된 유일한 배우가 있다.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이 “아주 아름다운 방식으로 그냥 그윈플렌 자체가 되어 버린다”고 극찬한 배우 박강현(33)이다. 12일 서울 강남구의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웃는 남자’ 초·재연에서 공연이 끝날 때마다 탈진할 정도로 힘들어서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연부터 함께해와 그런지 그윈플렌은 마치 직접 낳은 자식 같은 느낌이라, 세 번째 시즌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을 때 안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웃는 남자’ 이번 시즌은 캐스팅도 화려하다. 박강현을 포함해 뮤지컬계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는 박효신, 연기력과 가창력을 모두 갖춘 박은태까지. 쟁쟁한 배우들이 그윈플렌으로 낙점됐다. “(박효신, EXO 멤버 수호와 했던) 초연 때도 솔직히 부담감은 없었거든요. 제 기준에선 두 분 다 너무 스타잖아요. 비교할 것도 없이 나만 잘하면 되겠다 싶었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형들을 보고 많이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뿐 부담은 느끼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윈플렌은 누군가에게 버려진 후 어른들의 탐욕에 의해 입이 찢긴 인물이다. 유랑극단에서 괴상한 용모를 희화화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광대가 되지만 이면엔 슬픔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누구보다 순수한 그윈플렌을 깊어지게 만드는 건 결핍이라고 생각해요. 전 결핍이 주는 아픔을 무대에서 표현하는 게 좋아요. 결핍은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드러나잖아요. 별것도 아닌 일에 너무 아파할 수도 있고 큰일에는 오히려 별로 안 아플 수도 있고요. 결핍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복 받은 거죠.” 2015년 뮤지컬 ‘라이어 타임’의 안단테 역으로 데뷔한 그는 뮤지컬 ‘광화문 연가’ ‘킹키부츠’ ‘모차르트!’ ‘엘리자벳’ ‘엑스칼리버’ 등 주로 대작에 출연해왔다. 지난해엔 뮤지컬 ‘하데스타운’에서 오르페우스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상 받은 후 첫 무대가 ‘웃는 남자’라 솔직히 어깨가 무겁긴 해요. 부담될까 봐 일부러 상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잊으려 노력해요.” 데뷔 7년차를 맞았지만 여전히 관객들에게 새로움을 보여주는 게 목표다. “어렸을 때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남들과 똑같은 걸 만드는 건 싫어했어요. 저는 다른 사람이 해놓은 걸 따라하기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아요. 어떤 작품이든 초연 무대에 서고 싶어요. 다른 배우가 만들어놓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어가는 게 좋거든요.” 6월 10일∼8월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6만∼1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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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뷔 25주년 김주원 “늘 마지막 무대처럼 공연”

    “어느 순간부터 ‘이 무대가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마음으로 공연에 임하고 있습니다.” 데뷔 25주년을 맞은 발레리나 김주원(45)의 고백은 솔직했다. 17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공연기획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발레리나로서 신체의 노화를 말하는 건 쉽진 않지만 나이 듦을 인정하고 매일 3시간 넘게 운동하며 열심히 단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15년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약한 김주원이 예술감독이자 무용수로서 발레 ‘레베랑스’를 선보인다. 다음 달 9~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이 작품은 김주원의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공연시간 70분 동안 관객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발레리나 김주원’의 작품을 망라한다. 국립발레단 데뷔작(1998년)으로 그에게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라 당스’를 안겨준 ‘해적’ 2막의 침실 파드되를 비롯해 ‘지젤’의 2막 아다지오, 안무가 이정윤의 ‘빈사의 백조’가 포함됐다. 창작 안무로는 ‘발꿈치로 걷는 발레리나’가 있다. 그는 “발레리나는 주로 발 앞쪽을 사용하지만 오랜 기간 춤을 추다 보니 자연스레 발꿈치를 사용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담았다”며 “35년간 춤을 추며 느꼈던 단상을 녹여냈다”고 말했다. 과거 이미자, 김상희 등과 앨범을 낸 적이 있는 아버지 김택모 씨(사업가)가 부른 곡에 맞춰 김주원이 춤을 추는 무대도 있다. ‘한번만 만나볼까’ ‘가랑잎처럼’이다. 그는 “5, 6세 때부터 아버지가 노래하신 곡에 맞춰 춤을 췄던 기억이 있다”며 “작품을 준비하면서 뿌리, 중심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떠올렸다”고 했다. 2만5000~4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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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는 남자’ 3번째 만난 박강현 “그의 아픔이 더 느껴져요”

    17세기 영국, 입이 양옆으로 찢긴 괴기한 용모를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웃는 남자’가 다음달 10일 막이 오른다. 3년 만에 다시 관객과 만나는 이번 공연뿐 아니라 초연(2018년), 재연(2019년)에서 주인공 그윈플렌에 연달아 낙점된 유일한 배우가 있다.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이 “아주 아름다운 방식으로 그냥 그윈플렌 자체가 되어 버린다”고 극찬한 배우 박강현(33)이 그 주인공이다. 12일 서울 강남구의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웃는 남자’ 초·재연에서 공연이 끝날 때마다 탈진할 정도로 힘들어서 더 이상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초연부터 함께해와 그런지 그윈플렌은 마치 직접 낳은 자식 같은 느낌이라, 세 번째 시즌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을 때 안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웃는 남자’ 이번 시즌은 캐스팅부터 화려하다. 박강현을 포함해 뮤지컬계 흥행보증수표 ‘박효신’, 연기력과 가창력을 모두 갖춘 박은태까지…. 이른바 ‘3박’으로 불리는 쟁쟁한 배우들이 모두 그윈플렌으로 낙점됐다. “(박효신, EXO 멤버 수호와 했던) 초연 때도 솔직히 부담감은 없었거든요. 제 기준에선 두 분 다 너무 스타잖아요. 비교할 것도 없이 나만 잘하면 되겠다 싶었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형들을 보고 많이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뿐 부담은 느끼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가 연기하는 그윈플렌은 누군가에게 버려진 후 어른들의 탐욕에 의해 입이 찢긴 인물이다. 유랑극단에서 괴상한 용모를 희화화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광대가 되지만 이면엔 슬픔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누구보다 순수한 그윈플렌을 깊어지게 만드는 건 ‘결핍’이라고 생각해요. 전 결핍이 주는 아픔을 무대에서 표현하는 게 좋아요. 결핍은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드러나잖아요. 별 것도 아닌 일에 너무 아파할 수도 있고 큰일에는 오히려 별로 안 아플 수도 있고요. 배우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직업이라면 결핍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복 받은 거죠.” 2015년 뮤지컬 ‘라이어 타임’의 안단테 역으로 데뷔한 그는 뮤지컬 ‘광화문 연가’ ‘킹키부츠’ ‘모차르트!’ ‘엘리자벳’ ‘엑스칼리버’ ‘그레이트 코멧’ 등 주로 대작에 출연해왔다. 지난해엔 뮤지컬 ‘하데스타운’에서 오르페우스를 완벽하게 소화해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상 받고 첫 무대가 ‘웃는 남자’라 솔직히 어깨가 무겁긴 해요. 근데 부담될까봐 일부러 상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으려 노력해요. 물론 상은 집에 고이 모셔두고 있습니다.” 어느 덧 데뷔 7년차를 맞았지만 여전히 관객들에게 ‘새로움’을 보여주는 게 목표다. “어렸을 때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남들과 똑같은 걸 만드는 건 싫어했어요. 저는 다른 사람이 해놓은 걸 따라하기 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아요. 그래서 어떤 작품이든 ‘초연’ 무대에 서고 싶어요. 다른 배우가 만들어놓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어가는 게 좋아요.” 6월 10일~8월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6만~1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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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광의 에투알 벌써 1년, 주연만 맡으니 아쉽기도… 조연도 해보고 싶어요”

    지난해 6월 10일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극장에서 열린 파리오페라발레단(BOP)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커튼콜 무대에 오른 오렐리 뒤퐁 BOP 예술감독이 2011년 한국 발레리나 최초로 BOP에 입단한 박세은을 ‘에투알(´etoile·별)’로 지명했다. 351년 역사를 지닌 세계 최정상의 발레단 BOP에서 동양인 최초 수석무용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박세은은 외국인 단원 비중이 5%에 불과한 BOP에서 새 역사를 쓴 인물이 됐다. 에투알 승급 1년을 맞는 박세은(33)을 15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파리에서 전화를 받은 그는 “에투알은 너무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고 고백했다. “프르미에르 당쇠즈(제1무용수) 땐 주연은 물론이고 군무도 맡아서 공연 횟수가 많았는데 이젠 제가 주연인 무대에만 서거든요. 한 작품을 20회 공연할 경우 이전에는 16∼20회 무대에 올랐다면 이젠 4회 정도 될까요? 연습량이 많은 데 비해 무대에 설 기회는 얼마 없는 거죠. 다음 시즌엔 주인공이 아닌 다른 역할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지난 1년간 ‘에투알 박세은’은 단연 BOP의 주역으로 빛났다. ‘한여름 밤의 꿈’ ‘돈키호테’ ‘라 바야데르’에 이어 7월 2일부터 공연하는 ‘지젤’까지…. 특히 그가 ‘지젤’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다. “‘지젤’은 너무나 유명해서 데뷔라고 하면 다들 놀라시더라고요(웃음). 많은 발레리나들이 지젤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천진난만한 소녀가 심장이 아픈 탓에 불편한 몸이 되고, 첫사랑에 빠졌다 이내 배신감을 느끼고 미쳐 가는데…. 짧은 시간에 많은 감정이 빠르게 바뀌면서 증폭돼 가요.” 박세은은 7월 지젤 무대를 마친 후 28일부터 이틀간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도로테 질베르, 발랑틴 콜라상트, 제르맹 루베, 폴 마르크 등 동료 에투알 무용수들과 함께 ‘2022 에투알 갈라쇼’를 선보인다. 에투알 승급 후 첫 국내 무대다. BOP 무용수들이 한꺼번에 한국을 찾는 것은 1993년 이후 29년 만이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에투알로 지명된 날 췄던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파드되(2인무)와 미하일 포킨이 안무한 ‘빈사의 백조’를 선보인다. “제가 추는 줄리엣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보다는 천방지축 같다고 할까요? 이 발레의 안무를 짠 루돌프 누레예프가 그런 모습을 원했다고 배웠어요. 전막 발레를 출 땐 안무가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그걸 객석에 전달하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태자 루돌프의 비극을 다룬 ‘마이얼링’으로 그는 9월 에투알로서 두 번째 시즌을 연다. 영국 로열발레단의 전막 발레 ‘마이얼링’은 BOP에선 처음 선보이는 작품. 그는 루돌프와 함께 세상을 떠난 연인 마리 페체라를 연기한다. “에투알로 무대에 서는 것에 엄청난 부담감이 있어요. 예전엔 관객만 보고 춤을 췄다면 이젠 단원들을 생각하게 돼요. 단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 그는 6월과 7월 은퇴 공연을 각각 앞둔 두 명의 에투알을 보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은퇴하는 게 대부분인데 이번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데뷔작으로 떠나는 에투알이 있어요. ‘이 사람은 마지막까지 배우고 성장하는구나’ 싶었어요. 리스크도 있겠지만 전 그게 참 재밌고 멋있고 특별해 보여요. ‘난 무슨 작품으로 떠나게 될까’ 생각도 해봤어요. 앞으로 10년은 더 고민하겠지만요(웃음).” 6만∼2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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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확 달라진 마타하리, 더 강렬해진 유혹

    2016년 초연부터 흥행 가도를 걸었던 뮤지컬 ‘마타하리’가 5년 만에 돌아온다. 새로운 캐릭터와 넘버를 추가하고, 주인공 마타하리의 내면을 부각시키며 이야기의 밀도를 높였다는 평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의 이중 첩자로 알려진 무희(舞姬) 마타하리. 매혹적인 외모와 춤 실력을 이용해 돈과 명예를 추구한 악녀로 알려져 있지만, 작품 속 마타하리는 파리에서 자유를 좇은 예술가이자 사랑을 갈구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중첩자 마타하리’에 초점을 맞춘 초·재연과 달리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28일 개막하는 이번 시즌에선 ‘인간 마타하리’를 세밀하게 부각한다. 이를 위해 마타하리(옥주현, 솔라)의 전사(前史)가 대폭 추가됐다. 각본·연출을 맡은 권은아 연출가는 “‘그녀가 왜 마타하리가 되어야 했나’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마타하리가 되기 전 그녀의 과거를 제대로 전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즌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은 마가레타. 마타하리의 본명을 따서 만든 캐릭터로, 극 중에서 마타하리 내면의 자아를 상징한다. 마가레타는 대사 없이 오직 춤만 춘다. 권 연출가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불행한 결혼 생활을 겪은 여성이 이름을 바꾸고 명성을 얻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될 순 없다”며 “마타하리 이전의 모습이 마음으로 남아 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마가레타는 넘버나 대사 없이 춤으로만 연기한다”고 했다. 마가레타 역은 현대무용가 김지혜와 최진이 맡았다. 화려한 장식에 강렬한 원색의 마타하리 의상과 달리 마가레타는 장식을 최소화한 무채색 옷을 주로 입는다. 마가레타가 그녀의 내면을 상징하는 만큼 옷의 색상으로 심적 변화를 표현한 것. 의상을 맡은 한정임 디자이너는 “마타하리가 외면, 마가레타가 내면이라고 했을 때 외면은 태양처럼 강렬하고 빛나는 이미지이고 내면은 그 반대라 생각해 무채색을 활용했다”며 “행복한 어린 시절에선 따뜻한 아이보리, 암울했던 시기엔 차가운 회색, 다시 사랑을 느꼈을 때는 파스텔 톤의 분홍색으로 제작했다”고 했다. 처형장 장면에서 마타하리가 입는 의상은 죽음의 순간까지 당당했던 그녀를 은유한다. 한 디자이너는 “마타하리의 처형장 의상은 이전보다 더욱 과감한 노출 디자인으로 제작된 붉은 시스루 드레스”라며 “죽는 순간에도 당당하고 아름답게 반짝였다는 걸 뜻한다”고 말했다. 마타하리와 대척점에 선 인물도 추가된다. 실존 인물인 프랑스 국방부 장관 팽 르베로 마타하리를 파국으로 몰아 넣는 캐릭터다. 팽 르베(홍경수, 육현욱)가 부르는 ‘선택권’ 등 넘버 4곡도 새롭게 추가됐다. 김문정 음악감독은 “추가된 4곡 외에도 대부분의 넘버가 재배치, 편곡, 수정 과정을 거쳐 이전 작품과 완전히 달라진 느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28일∼8월 15일, 7만∼1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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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쪽 청각 잃고… 2교대 일하며… “내일은 뮤지컬 스타”

    “작곡가는 왜 마지막 음을 더 올렸을까요? 에너지도 다 써버렸는데….”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채널A ‘뮤지컬스타’ 촬영 현장. 뮤지컬 ‘마리 퀴리’ ‘킹 아더’의 신은경 음악감독이 뮤지컬 ‘데스노트’ 중 주인공 라이토의 넘버(노래) 시연을 막 끝낸 참가자에게 물었다. “점점 고조되는 주인공의 감정을 다음 장면에서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 같습니다.” 참가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자 신은경 감독은 그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목소리는 충분히 완성도가 있는데…. 넘버의 음악적 구조를 본인 생각으로 분석한 게 아니라 남의 것을 카피한 느낌이라 아쉽네요. 다시 불러볼까요?” 이날 촬영에선 ‘뮤지컬스타’ 참가자 18명이 뮤지컬 연출가와 음악감독의 멘토링을 받았다. ‘뮤지컬스타’는 2015년부터 8년째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이 개최해 온 뮤지컬 배우 발굴 프로젝트로, 채널A가 2019년부터 매년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다. 네 번째 시즌인 올해 ‘뮤지컬스타’는 10일 오후 11시 10분 첫 회가 방송된다. 멘토링 프로그램에는 뮤지컬 ‘베르테르’를 연출한 조광화와 연극, 뮤지컬에서 활약 중인 김태형 연출가, 신은경 이경화 음악감독이 멘토로 참여한다. 참가자들을 향한 조광화 연출가의 연기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넘버 속에서 분위기가 바뀌면 배우의 행동도 바뀌어야 하는데…. 가사 분석이 하나도 안 돼 있는 것 같아.” 멘토의 날카로운 지적에 참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멜로디에 숨지 말고 본인의 말을 따라가라.” “상황을 구체적으로 해석하라.” “강약 조절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날 멘토링을 받은 참가자 18명은 전체 지원자 728명 가운데 3월부터 두 달간 이어진 경연을 통과한 이들이다. 오디션 참가 요건을 ‘만 24세 이하’로 두고 있는 만큼 지원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 다수다. 박정숙 DIMF 사무국장은 “경연대회 외에도 멘토링 프로그램을 따로 두는 이유는 뮤지컬스타가 단순히 우승자만을 뽑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참가자들의 실력을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부터는 더욱 엄격해진 경연 룰로 긴장감을 더한다. 심사위원 5명 중 4명에게만 선택을 받으면 합격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 시즌부턴 심사위원 전원에게 선택을 받아야 한다. 만장일치 선택을 받지 못한 참가자는 그 자리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심사는 뮤지컬 배우 정영주, 마이클 리, 민우혁, 켄 그리고 장소영 음악감독이 맡는다. 각양각색 사연을 지닌 참가자들의 드라마도 주요 볼거리다. 올해로 4년째 도전하는 뮤지컬스타 ‘4수생’부터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공장 2교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지망생, 한쪽 청각은 잃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는 청년, 낮엔 회사 저녁엔 연습실을 오가는 직장인까지…. ‘뮤지컬스타’ 연출을 맡은 전경남 PD는 “여러 사연을 지닌 참가자들이 기존의 뮤지컬 넘버를 어떻게 본인 이야기로 재해석하고 어떤 메시지를 담아 노래하는지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귀 기울이면 방송을 더욱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MC는 뮤지컬 ‘알타보이즈’(2016년)에서 주인공 매튜를 연기한 배우 이이경이 맡았다. 이이경은 “참가자들이 각자의 개성과 강점을 살리려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받은 순간이 정말 많았다”며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분들이 절대 포기하지 않길 응원한다”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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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의리있고 당당했던 ‘깡수연’

    “기력이 있는 한 배우를 하고 싶어요. 75세가 됐을 때 영화 ‘집으로…’의 할머니 같은 역할을 하면 정말 좋겠어요.”(2010년 동아일보 인터뷰) 7일 오후 3시경 향년 56세로 별세한 한국 최초의 ‘월드 스타’ 강수연은 늘 그랬듯 영화에 오롯이 헌신하고자 했다. 올해 공개하는 넷플릭스 영화 ‘정이’로 복귀한 뒤 연기를 본격적으로 재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뇌출혈에 따른 심정지로 5일 쓰러진 그는 결국 병상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을 8일 찾은 임권택 감독은 “좋은 연기자를 만난 행운 덕분에 내 영화가 더 빛날 수 있었다. 워낙 영리한 배우라 숱한 세월을 함께했음에도 촬영에 지장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감사한 배우”라며 비통해했다. 봉준호 감독은 “영정사진이 영화 촬영 소품같이 느껴질 정도로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고인이 걸어온 길은 한국 영화사와 맥을 같이한다. 1969년 세 살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한 후 초등학생 때 어린이 드라마 ‘똘똘이의 모험’(1976년)과 ‘정의의 번개돌이’(1978년)에 출연하며 아역 스타로 떠올랐다. 고교 시절인 1982년 영화 ‘깨소금과 옥떨매’, 1983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에 출연하며 TV와 스크린을 넘나들었다. 정식 영화 데뷔작은 1976년 ‘핏줄’이다. 이후 영화 ‘별 3형제’(1977년), ‘어딘가에 엄마가’(1978년)에 아역으로 출연했다. 1985년 김수형 감독의 ‘W의 비극’,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2’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본격적인 도약을 예고했다. 배 감독은 “아역 시절부터 재능이 특출해 눈여겨봤는데 성인이 돼서도 그 참신함이 여전하더라. 발랄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20대 초반에 ‘젊은 거장’ 배우가 된 데에는 임권택 감독의 공이 컸다. 고인은 1987년 임 감독의 ‘씨받이’에서 주인공 ‘옥녀’ 역을 맡아 그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한국 배우가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수상한 건 처음이었다. 1989년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은 “1997년 인도 트리반드룸에서 열린 영화제에 참석했는데 현지인들이 ‘영화 ‘씨받이’를 봤다. 강수연 연기가 정말 좋았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고인은 한국영화와 한국 배우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2011년 방송에서 “당시 모두가 노출 연기에만 관심을 가져 큰 상처를 받았다. 상을 타고 나니 갑자기 다들 ‘너 어쩌면 그렇게 연기를 잘하느냐’고 물어 상처가 싹 치유됐다”고 했다.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등 1980, 90년대 화제작에 다수 출연했다. 특히 1990년대에는 ‘처녀들의 저녁식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강조하거나 여성이 겪는 차별을 들여다본 작품에 출연했다. 2000년대 드라마 ‘여인천하’(2001∼2002년)의 주인공 정난정 역으로 압도적인 연기를 펼쳐 연기대상을 받았다. 공개되지 않은 ‘정이’를 제외하면 가장 최근작은 2013년에 개봉한 단편영화 ‘주리’다. 시드니국제영화제 심사위원(2013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2015∼2017년)을 역임하며 국내외 영화계 발전에도 기여했다. 고인은 영화에 대해 “끊임없이 답을 안 주는 짝사랑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쓰러지기 3주 전까지 ‘정이’ 후시녹음을 하며 한순간도 영화를 손에 놓지 않았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른다. 김동호 전 위원장이 장례위원장을, 임 감독과 배우 김지미 박중훈 안성기 박정자 등이 장례 고문을 각각 맡았다. 10일 오후 10시까지 조문을 받은 뒤 11일 오전 영결식을 한다. 영결식은 영화진흥위원회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한다. 영화 ‘베테랑’ 명대사의 원작자스태프 챙기는 인간적인 면모 유명비구니역 삭발-겨울 얼음물 입수 등“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배우”“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영화 ‘베테랑’(2015년)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내뱉은 이 대사의 원작자는 배우 강수연 씨다. 스태프를 챙길 때나 사석에서 이 말을 자주 한 고인은 류승완 감독과 만나 농담처럼 말했다. 이 말이 ‘베테랑’에 나오며 돈의 유혹에도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의 명대사로 회자되고 있다. 고인은 의리 있고 인간적인 면모로 유명했다. 그를 월드 스타에 오르게 한 임권택 감독에 대해서는 특히 각별했다. 2008년 부산 동서대가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을 출범시키자 고인은 특강 강사들을 다 섭외했다. 임 감독은 2010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강사료로) 몇백만 원은 줘야 하는 배우나 스태프들을 수연이가 다 데려온다”고 했다. 카리스마 있고 불의 앞에서 단호히 행동해 ‘깡수연’으로도 불렸다. 과거 제작자가 나쁜 의도로 그를 호텔에 불렀을 때 주저 없이 뺨을 때렸다. 그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하는 건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못 받아들인다”라고 잘라 말했다. ‘말술’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화계 유명한 애주가들도 그를 술로 이겨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삭발 투혼’은 뗄 수 없는 단어.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 비구니 역을 위해 삭발하던 모습은 한국영화사의 역사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고인은 당시 “머리는 또 자라는 법”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드라마 ‘여인천하’(2001∼2002년)에선 얇은 소복만 입고 한겨울 얼음물에 장시간 들어가 화제가 됐다. 배우 손숙은 “강수연이야말로 배우다. 다른 수식어가 없다. 오롯이 인생을 거기에 바친 사람”이라고 했다. 고인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고등학교 때부터 사실상 가장 역할을 했다. 이에 “가정환경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는 “독신주의자는 절대 아니다”라며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싶지만 결혼은 인연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답했다. 당당함은 고인을 표현하는 말이었지만 그 이면엔 여린 모습이 있었다. 고인은 “언제 가장 외롭냐”는 질문에 “당당한 척할 때, 그때가 가장 외롭다”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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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거대 기업이 목소리를 수집하는 이유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통화 내용은 녹음되며….” 고객 센터에 전화하면 나오는 안내 문구를 유심히 들어보자. 녹음되는 건 통화 내용만이 아니다. 전화를 건 모두의 목소리도 포함된다. 목소리가 녹음되는 게 무슨 문제냐고 되물을 수 있다. 과학 기술은 목소리만으로 많은 것을 알아챌 수 있다고 한다. 목소리 톤으로 감정이나 성격을 추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앓는 질병부터 체중, 신장, 나이, 인종, 나아가 교육과 소득 수준까지. 목소리에 많은 정보가 담겼다면 결국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충돌한다. 이 책은 음성인식의 탄생과 확산, 이를 수집하기 위한 거대 기업들의 전략과 속임수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구글, 아마존, 애플, 삼성 등은 전방위적으로 음성 데이터를 수집해 전례 없이 강력한 방식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음성 데이터에 개인이 공유하고 싶지 않은 생체정보가 담겨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음성 데이터가 기업의 전략에 사용되는 걸 마냥 허용해줄 수만은 없다고 저자가 말하는 이유다. 나아가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할 안전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또 음성 데이터가 정부의 통치 기술과 결합하면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마존의 알렉사, 삼성의 빅스비, 애플의 시리…. 친근한 이름을 달고 나긋한 목소리로 존재하는 음성인식 기술의 실체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험악하고 위협적인 미래를 초래할지도 모른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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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욕심이 초래한 기후위기, 연극으로 풀어볼게요”

    다큐멘터리 연극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은 연출가 전윤환(36)에게 비교적 최근 벌어진 경험을 담은 작품이다. 이야기는 지난해 6월 국립극단으로부터 기후위기에 대한 연극 연출을 제안받았던 시점에서 시작된다. 작품을 올릴 공연장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이었다. 8년 차 연출가인 그에게 명동예술극장은 꿈의 무대였다.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기후위기라는 작품 주제보단 좋은 극장에서 작품을 올릴 수 있다는 데 사로잡혀 있었다”며 “개인의 욕망에만 충실한 제 마음이 기후위기를 불러온 인간의 욕심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11일 개막하는 ‘기후비상사태’는 기후위기란 자연과 공존하기보다 욕망을 우선시한 인류가 초래한 결과라 말한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편하게’와 같은 욕심의 결과가 기후위기잖아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 되게 하려면 개인 서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배우는 11명. 나이와 성별은 각양각색이지만 모두 연출가 전윤환을 대리하는 ‘나’로 등장한다. 무대 위에 풀어낼 재료를 찾기 위해 전 연출가는 보름간 여행을 떠난다. 인간의 욕심으로 파괴되는 자연에서 기후위기를 직접 겪은 당사자를 만난다. 부산 가덕도에 사는 수달 가족, 경주 원자력발전소 인근 피폭된 70대 노인, 자신이 ‘기후악당’처럼 느껴진다는 보령 화력발전소의 근로자, 신공항 건설로 매립 위기에 놓인 새만금 수라 갯벌 인근 주민 등이다. “기후위기는 너무 먼 지구의 문제 같잖아요. 내 문제가 되려면 결국 직접 체험해야 해요. 이 문제를 오래 보고 듣고 물음을 품은 사람만이 감각할 수 있습니다. 제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배우들을 관통해 궁극적으로는 관객에게 닿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올 1월 광주 아파트 붕괴 사건도 극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더 빨리, 높게 건물을 지으려는 욕심이 불러온 결과이기에 기후위기와 같은 맥락이라는 것. “아파트 건설 과정에서 배제와 착취, 폭력이 발생했고 이것이 재난을 유발했어요. 우리가 만든 시스템에서 계속 사람과 동물이 죽어나간다는 점에서 기후위기와 속성이 같지 않을까요.” 11일∼6월 5일, 3만∼6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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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자와 향단, 사랑가는 없지만… 존재감만큼은 춘향-몽룡 압도”

    판소리 ‘춘향가’라 하면 보통 춘향과 몽룡 먼저 떠올린다. 사랑가, 십장가, 옥중가, 이별가…. 절절한 창(唱)의 주인은 대부분 두 연인의 몫. 하지만 주야장천 애틋한 사랑과 이별 만 노래하면 금세 지루해지지 않을까. 중간중간 웃음과 유희를 불어넣는 방자와 향단이 춘향과 몽룡만큼 필요한 이유다. 4일 개막하는 창극 ‘춘향’에서 방자와 향단을 각각 맡은 국립창극단의 유태평양(30)과 조유아(35)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지난달 28일 만났다. 두 소리꾼이 연기하는 방자와 향단은 소리와 캐릭터, 존재감만큼은 춘향과 몽룡을 압도한다. “춘향 몽룡의 사랑 이야기에 묻혀서 그렇지 방자와 향단은 어려서부터 동네 친구로 자라 서로 티격태격하며 ‘썸’ 타는 사이일 거예요. 서로 좋아하는 걸 동네 사람 다 아는데 둘만 모르는 그런 커플요.”(조유아) ‘춘향과 몽룡’처럼 ‘방자와 향단’도 입에 붙는 조합이지만 창극 ‘춘향’에 둘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리는 아직 없다. 다만 극 후반부, 두 사람이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로 유명한 사랑가를 살짝 부르는 대목이 나온다. “대본에 명시된 건 아니지만 공연하면서 저희끼리 나름대로 방자와 향단의 러브라인을 만들게 됐어요. 대놓고 연애까진 아니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진 않는 그런 커플요.”(유태평양) 두 소리꾼이 연기하는 방자와 향단은 어느 배역보다 희극적이다. 유쾌하고 밝으며 누구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호감형 캐릭터. 눈만 마주쳐도 호쾌하게 깔깔 웃어버리는 실제 두 사람처럼 말이다. “고등학생 때 예술제에서 딱 한 번 춘향 역을 한 적이 있어요. 분장을 하고 무대에 딱 등장하는 순간 사람들이 다 웃더라고요. 아무리 진지한 역할을 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웃어버려요. 근데 전 무대에서 관객들 웃는 얼굴을 보는 게 훨씬 좋더라고요.”(조유아) “초등학교 5학년 때 쑥대머리 가발 쓰고 춘향도 해봤어요. 몇 년 전엔 몽룡도 해봤고요. 근데 전 카멜레온 같은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안 해본 배역은 다 궁금해요. 변학도 역도 탐납니다.”(유태평양) 여러 예능 프로그램 출연 경력이 있는 두 사람. 또래처럼 우리 전통보다는 대중문화가 익숙할 법하지만 여름만 되면 산에 가서 소리 공부를 하는 천생 소리꾼이다. 6세에 ‘흥보가’를 완창해 판소리 신동으로 통했던 유태평양은 2012년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문 금상 수상 뒤 2016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주요 배역을 도맡아 왔다. 진도 엿타령으로 유명한 박색구의 손녀이자 전남도 무형문화재 조오환의 딸인 조유아 역시 2010년 임방울 국악제 일반부 대상 출신이다.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도 좋죠. 그런데 3∼4시간 동안 땀을 빼면서 소리할 때, 나를 보는 저 사람들이 문을 박차고 나갈까 안 나갈까 궁금하거든요. 완창하고 나면 박수가 쏟아지는데 그때 오는 희열은 잊히지가 않아요.”(유태평양) “창극 배우로서의 삶이 훨씬 만족스러워요.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바로 받는 감동이 아직은 너무 좋아요. 물론 TV에서 창극을 알리는 것도 좋지만 마음이 소리할 때만큼 움직이진 않네요.”(조유아) 4∼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만∼8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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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을 꿈꾸지만… 날개 꺾인 우리시대의 영웅

    ‘아기장수 우투리’는 한반도 전역에 내려오는 구전 설화다. 폭정이 심하던 시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우투리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영웅이지만 결국 뜻을 펴지 못하고 죽는다. 지난해 초연을 거쳐 서울연극제 선정작으로 지난달 29일 개막한 연극 ‘우투리: 가공할 만한’도 이 설화에서 출발한다. 혹한의 시대, 비극적 영웅이란 소재를 제외한 모든 것이 새롭다. 여성이 스스로의 결단으로 영웅이 돼 사회구조적 착취에 맞선다. 극 중 우투리를 암시하는 주인공 ‘3’(김희연)은 3등 시민이 모여 사는 도시의 세탁소집 딸로 태어난다.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일이 궁금한 삶을 살기 위해 떠난 곳에서 새 희망을 발견하지만, 이내 모순을 발견하고 고뇌에 빠진다. 이기쁨 연출가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100분간 진행되는 공연에는 배우 5명이 등장한다. ‘3’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은 여러 배역과 내레이션을 함께 맡는다. 배우이자 극 중 캐릭터, 두 역할이 무대 안팎에서 혼재돼 등장하는 모습은 홍단비 작가의 의도를 반영했다. 홍 작가는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인물이 관찰자가 되는데 ‘애정과 진심이 담긴 관찰’은 진실하고 소중한 것을 물 위로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회색 시멘트 집, 고철 공장, 무기 제작소 등 차갑고 날카로운 장면의 배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무대 디자인과 조명도 인상적이다. 극의 처음과 끝에 앙상블로 흐르는 노랫말은 가사와 음정 모두 동요처럼 귀에 익다. 8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전석 3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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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자와 향단은 티격태격 썸타는 사이”

    판소리 ‘춘향가’라 하면 보통 춘향과 몽룡 먼저 떠올린다. 사랑가, 십장가, 옥중가, 이별가…. 절절한 창(唱)의 주인은 대부분 두 연인의 몫. 하지만 주구장창 애틋한 사랑과 이별 만 노래하면 금세 지루해지지 않을까. 중간 중간 웃음과 유희를 불어 넣는 방자와 향단이 춘향과 몽룡 만큼 필요한 이유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만난 국립창극단의 유태평양(30)과 조유아(35)을 만났다. 두 소리꾼은 4일 개막하는 창극 ‘춘향’에서 소리와 캐릭터, 존재감만큼은 춘향과 몽룡을 압도하는 방자와 향단을 연기한다. “춘향·몽룡 사랑 이야기에 묻혀서 그렇지 방자와 향단은 어려서부터 동네 친구로 자라 서로 티격태격하며 썸 타는 사이일거예요. 서로 좋아하는 걸 동네 사람 다 아는데 둘만 모르는 그런 커플이요.”(조유아) ‘춘향과 몽룡’처럼 ‘방자와 향단’도 입에 붙는 조합이지만 아직 ‘춘향’에 둘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리는 없다. 다만 극 후반부, 두 사람이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로 유명한 사랑가를 살짝 부르는 대목이 나온다. “대본에 명시된 건 아니지만 공연하면서 저희끼리 나름대로 방자와 향단의 러브라인을 만들게 됐어요. 대놓고 연애까진 아니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진 않는 그런 커플이요.”(유태평양) 창극 ‘춘향’에서 두 소리꾼이 연기하는 방자와 향단은 어느 배역보다 희극적이다. 유쾌하고 밝으며 누구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호감형 캐릭터. 눈만 마주쳐도 호쾌하게 깔깔 웃어버리는 실제 두 사람처럼 말이다. “고등학생 때 예술제에서 딱 한 번 춘향 역을 한 적이 있었어요. 분장을 하고 무대에 딱 등장하는 순간 사람들이 다 웃더라고요. 아무리 진지한 역할을 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웃어버려요. 근데 전 무대에서 관객들 웃는 얼굴을 보는 게 훨씬 좋더라고요.”(조유아) “사실 초등학교 5학년 때 쑥대머리 가발 쓰고 춘향도 해봤어요.(웃음) 몇 년 전엔 몽룡도 해봤고요. 근데 전 카멜레온 같은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안 해본 배역은 다 궁금해요. 변학도 역도 탐납니다.”(유태평양) 여러 예능 프로그램 출연 경력이 있는 두 사람. 또래들처럼 우리 전통보다는 대중문화가 익숙할 법 하지만 여름만 되면 산에 가서 소리 공부를 하는 천생 소리꾼이다.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도 좋죠. 그런데 3~4시간 동안 땀을 빼면서 소리할 때, 나를 보는 저 사람들이 문을 박차고 나갈까 안 나갈까 궁금하거든요. 완창하고 나면 박수가 쏟아지는데 그때 오는 희열은 잊히지가 않아요.”(유태평양) “창극 배우로서의 삶이 훨씬 만족스러워요.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바로 받는 감동이 아직은 너무 좋아요. 물론 TV에서 창극을 알리는 것도 좋지만 마음이 소리할 때만큼 움직이진 않네요.”(조유아) 4~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만~8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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