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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단편소설 한 편 쓰는 일로 숨을 고르고 하반기엔 장편 작업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단편 쓰는 일에 실패했어요. 새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소설가 신경숙(49)이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지난해 4월 미국에서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출간된 이후 34개 나라와 출간 계약을 하고 세계 독자들을 위해 국내외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쁘게 지냈던 그다. “저는 10년 단위로 글쓰기 작업을 생각해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이러이러한 작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 중에 한 작품만 빼고 다 완성했어요. 제 안에는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몇 개의 항아리에 담겨 있지만, 다음 작품으로 어떤 항아리 뚜껑이 열릴지는 조금 더 기다려봐야 알 것 같아요.” 올해 창간 40주년을 맞은 월간 문학사상과 이달 초 가진 특별 인터뷰에서 그는 ‘엄마를…’ 성공 이후의 생활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세계라는 무대에 올려진 신인 배우 같다. 늘 긴장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영민 문학사상 주간(단국대 석좌교수)과의 이번 인터뷰는 40주년 특집호로 꾸미는 10월 호에 실린다. 지난달 그는 영국 에든버러 축제에 다녀왔다. 전 세계에서 작가 50명만 초대장을 받은 행사다. 그는 한 파키스탄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내 작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에는 나보다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많다’고 말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저도 제 위치를 깨달았어요.” 그는 3월 홍콩에서 열린 맨아시아문학상 시상식 당시의 일화도 들려줬다. 각국 기자들이 수상자 발표 전 유력 후보인 일본의 요시모토 바나나나 인도의 아미타브 고시 앞에 몰려 있다가 신경숙의 이름이 호명되자 급하게 자기를 찾더라는 것. 그는 ‘엄마를…’에 대해 “작품의 운명이 있다면 운을 아주 좋게 태어난 작품”이라며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범위를 넘어버렸다. 책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닌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힘은 무엇일까. “우리가 집을 떠나 노마드적 삶을 살아가는 지금의 현대인이 되는 동안 우리도 모르게 상실했던 것들을 이 소설 속에서 만난 것은 아닐까, 항상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엄마’라는 사람을 갑자기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이야기 속에서 각자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요.” 1년간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객원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8월 귀국한 신경숙은 요즘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미명 속에서 책상 앞에 있다가 동이 트는 과정을 맞이하는 일이 “가슴 벅차고 정신을 화들짝 깨어나게 한다”고 했다. 오전 9시 반 동네 요가원에 들러 1시간 동안 요가를 하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친구들과 어울린다. ‘엄마를…’ 이후 문단에선 ‘한국 문학의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졌다. 하지만 그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란 말에는 처음부터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말 속에는 한국에서 한국어로 쓴 작품을 한국 문학으로만 한정하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작가가 자기 언어로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세계 문학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해요. 다만 소통을 위해 번역과 출판이라는 과제가 있을 뿐이죠.”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1일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리비아의 제2도시 벵가지의 미 영사관에 들렀다가 무장한 시위대 수십 명의 공격을 받고 숨졌다. 시위대는 미국 영화 ‘무지한 무슬림’이 이슬람교의 선지자인 무함마드를 동성애자, 아동성애자로 그린 것에 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끊이질 않는 종교 갈등으로 인한 폭력과 테러. 그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비교종교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종교가 이제 문제를 해결해주기보다 오히려 문제를 더 많이 야기하는 형국”이라고 통탄한다. 책은 종교의 진리, 근원, 신앙, 미래 등 다양한 면을 짚어나가지만 결국 종교의 배타성이란 문제에 논의를 집약한다. 저자는 종교를 둘로 나눈다. 하나는 스스로 정한 절대 권위에 복종만을 강요하는 ‘닫힌 종교’,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열린 마음으로 진리를 깨닫도록 촉구하는 ‘열린 종교’다. 하지만 ‘A 종교는 닫혀 있고, B는 열려 있다’는 식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는 없다. 한 종교 안에서도 ‘열림’과 ‘닫힘’이 공존한다. 결국 종교의 폐쇄성을 정하는 것은 신도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독법도 마찬가지다. ‘종교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앞세웠지만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종교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지식을 구술하듯 풀어내 독자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과정을 돕는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기자가 소설가 백가흠을 처음 본 것은 지난해 11월 논산에 있는 소설가 박범신의 집에서였다. 이날은 서울 생활을 접고 귀향한 박범신의 이삿날로, 뒤늦게 소식을 들은 명지대 교수 시절 제자 이기호와 백가흠이 밤 12시가 넘어 도착했다. 백가흠은 섭섭해하는 스승의 기분을 풀어주려 문단 내에서 진행되는 작가들의 후끈한 연애사나 일부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인 교수들의 첨예한 갈등사를 실감나게 전했다. 그의 입담에 푹 빠진 사람들은 피곤함도 잊은 채 배를 잡고 낄낄댔고, 자리는 오전 3시를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소설가를 웃기는 소설가가 백가흠이었다. 다른 일면도 있다. 2001년 등단한 백가흠은 앞서 소설집 세 권을 냈다. 주목받는 작가로도 꼽혔다. 첫 장편에 대한 본인과 주위의 기대감이라는 부담도 생겼다. 지난해 문학과지성사 웹진을 통해 장편 ‘향’의 연재를 마쳤지만 그는 이를 책으로 묶지 않았다. ‘첫 장편’이란 이름표를 달아주기에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1년 만에 ‘나프탈렌’을 펴내며 첫 장편을 신고했다. 자잘한 이야기를 잘했던 작가답게 소설은 여러 등장인물과 사건이 중첩돼 펼쳐지며 진행된다. 중심인물은 있지만 주인공은 없으며, 주변인물은 있지만 조연은 없는 일상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각자의 사연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하나의 탄탄한 이야기가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지방의 한 암환자 요양시설인 하늘수련원에서 지내는 암환자 양자, 양자의 어머니 김덕이 여사, 그리고 원장을 비롯한 수련원 사람들이 이야기의 한 축이다. 다른 축은 노년의 교수 백용현과 그와 이혼한 손화자, 조교 공민지와 공민지의 옛 애인이다. 언뜻 평온해 보이는 이들의 일상은 미세한 균열로 헝클어져 버린다. 하늘수련원의 꼬장꼬장했던 원장은 자신의 노모가 죽자 실성해 버리고, 탐욕에 찼던 백용현이 아내의 죽음을 통해 삶의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뜬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미덕은 작위적이지 않다는 것. 인물들이 혼란스러운 인생의 항로에서 헤매다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차분히, 설득력 있게 전한다. 다른 시공간의 이야기들을 묶는 키워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만큼이나 삶에 대한 간절함이다. 소설의 제목인 ‘나프탈렌’처럼 사람들은 살아간다. 늙음, 그 한발 뒤에 서 있는 죽음을 방지(지연)하기 위해 방부제인 나프탈렌처럼 악착같이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스스로 기화돼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 허허로움이 책장 가득 배어 있다. 묵직한 주제를 다뤘지만 저자의 ‘장난기’도 몇 군데 숨어 있다. 노교수 백용현이 자신의 늙고 처진 몸을 거울에 비춰 보는 장면이나, 조교 공민지의 잠든 모습을 끈적거리는 시선으로 훑는 장면 등은 박범신의 ‘은교’ 속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스승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 백가흠의 오마주인 것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에서 고령화사회의 그늘진 이면을 날카롭게 드러냈던 저자가 고령사회에서 사는 청년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고령사회에서는 고령층보다 청년층의 생활이 더 피폐해질 수 있다는 시각이 섬뜩하다. 우리나라보다 한발 앞서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사회를 진단하며 날로 치열해지는 청년 취업 경쟁, 미래가 불안하고 경제력이 떨어지자 연애도 섹스도 기피하는 남녀, 20대 여성이 경제력을 보고 중년 남성과 결혼하는 사례가 느는 점 등을 상세히 짚는다. 한국에 대한 진단을 추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미국 남부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현대 흑인 인권운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한 소설가 앨리스 워커(68). 199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 이후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그가 박경리 문학상 최종심에 포함됐다. 심사위원들은 “‘컬러 퍼플’과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 번째 인생’을 중점 심사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장인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의 도움을 받아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문학을 전한다.》 워커의 출세작은 1970년 발표한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 번째 인생’이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1920년대 미국 현실을 조명한 이 작품은 사회적 억압과 남성들의 폭력으로 어려움을 겪는 흑인 여성들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평론가들은 단순히 흑인의 해방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헌신, 교육과 사회 참여, 그리고 자연의 순리에 대한 복종 문제를 함께 담고 있다고 극찬했다. 워커의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은 1983년 ‘컬러 퍼플’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과 전미(全美)도서상을 받았고, 미국문학평론가협회 최우수상도 수상했다. 미국 조지아 주의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사회 문화적으로 최하위에 속하는 흑인 여인들을 포함해 다양한 인권 문제를 다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1986년 동명의 영화로 만들었다. 워커는 남성의 폭력적인 억압을 받고 있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우머니스트(womanist)’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이는 당시 페미니스트 운동을 백인 여성이 주도하는 데 대한 반발이었다. 우머니스트는 보통 ‘유색인 페미니스트’를 뜻하는데,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어른스럽고, 성숙하고, 책임 있는 행위를 하는 흑인들을 뜻하는 민속적 표현에서 나온 말이다. 워커는 1944년 미국 남부 조지아 주 풀먼 카운티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8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작농으로, 어머니는 하녀로 일했다. 하지만 워커의 어머니는 현명했다. 어느 백인 농장주가 워커 어머니에게 “흑인은 자식을 교육시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이렇게 대꾸했다. “다른 곳에서는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을 보지 못할 것이다. 다시는 여기 와서 우리 집 아이가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지 마라.” 네 살 때 초등학교에 들어간 워커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몰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덟 살 때 오빠가 쏜 장난감 총에 한쪽 눈이 맞았는데 다행히도 열네 살 때 수술을 받고 시력을 회복했다. 그는 이 경험으로 외상(外傷)이 하나의 축복처럼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됐고, 이때부터 사람과 사물을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게 된다. 1965년 뉴욕 시 부근 세라 로런스대를 졸업한 워커는 고향인 조지아 주로 돌아가 에세이 ‘공작새를 넘어서’ ‘꼭 같은 강 두 번’, 소설 ‘즐거움의 비밀을 소유하는 것’ 등을 집필했다. 작가로서 일생 동안 글을 쓰면서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들이 가진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의 글쓰기는 이러한 힘을 얻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모델을 찾는 과정이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제12회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으로 시인 권혁웅의 ‘봄밤’과 소설가 김인숙의 단편 ‘빈집’이 각각 선정됐다. 상금은 미당문학상 3000만 원, 황순원문학상 5000만 원. 시상식은 11월 15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올리브타워 22층 오펠리스 서소문점에서 열린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사디즘’의 어원이 된 프랑스 작가 마르키 드 사드(1740∼1814)의 소설 ‘소돔 120일’에 대해 배포 중지와 즉시 수거 결정이 내려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중순 번역 출간된 이 소설에 대해 간행물윤리위원회가 “근친상간과 가학·피학적 성행위 등 표현수위가 지나치고 반인륜적 내용이 상당히 전개됐다”며 유해 간행물 판정을 내림에 따라 이같이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유해 간행물 판정은 국가의 안전이나 공공질서를 뚜렷이 해치거나, 음란한 내용의 노골적 묘사로 사회의 건전한 성도덕을 해친 것으로 판단될 때 내려진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처럼 비닐 포장을 해 성인들에게만 판매하는 ‘청소년유해간행물’ 판정보다 높은 최고 수준의 제재다. 4년 전 공포소설 ‘잘린 머리의 속삭임’이 반인륜적이라는 이유로 같은 판정을 받은 적이 있다. 동서문화사 이용 편집부장은 “사드에 대한 세계의 문학적 평가를 고려했는지 묻고 싶다”며 조만간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작가 사후 발견돼 1904년 출간된 ‘소돔 120일’은 프랑스 루이 14세 치하에서 권력자들이 젊은 남녀 노예를 이끌고 120일간 향락을 벌인다는 내용으로 1부만 완성됐고, 2∼4부는 줄거리가 요약된 미완성 작품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해설보다는 시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시라는 것을 너무 멀게 느끼지 말고, 자기와 상관없는 것이라 제쳐두지 말고, ‘오늘 아침에 시 한편 읽었네’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좋지 않을까 싶어요.” 12일부터 동아일보 오피니언면에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를 연재하고 있는 황인숙 시인(54). 17일 만난 그는 일주일에 세 번(월 수 목요일) 싣는 원고 준비를 위해 “부지런히 시집을 들춰보고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시를 고르는 게 뜻밖에 어려워요. 아침 신문에 실리는 거니까 되도록 밝은 시를 고르려고 해요. 난해한 시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난감한 시도 많죠. 또 너무 긴 시는 고르기가 힘들죠. 중략을 해서 소개할까도 하는데 아무래도 시 전체를 보여주는 것만 못하니까 짧은 시 위주로 소개하려고요.” 황 시인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나와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등단했다. 김수영문학상 동서문학상을 받은 중견 시인이자 맛깔 나는 필력을 뽐내는 소설과 수필도 여러 편 선보인 전방위 작가이다. ‘행복한 시 읽기’란 제목은 그가 지었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에서 제목을 착안했어요. 사실 마음에 와 닿는 시를 찾아 행복해지는 것은 드문 일이죠. 하지만 시를 읽는 상황 자체가 행복한 것이 아닐까요.” 황 시인은 17일자로 소개한 김남조 시인의 시 ‘연인들’에 얽힌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그는 30년 넘게 문단 선배인 김 시인의 작품을 여태껏 찾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원로급 여류시인들에게 대한 편견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나온 책 ‘명동아가씨’를 보다가 김 시인이 궁금해졌고, 시집을 찾아보게 됐다는 것. ‘명동아가씨’는 1950, 60년대 서울 명동의 시대상을 그린 책이다. “진짜 정말 괜찮은 선배이자 여성 시인인데 내가 그냥 제쳐두고 접근도 안했구나 싶었죠. 아무래도 연세가 있는 여성 시인들은 (창작에) 자유롭지 않은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김남조 선생님은 아니에요. 시심(詩心)이 제대로 된 시였습니다.” 황 시인은 한편의 시를 읽는 것을 교회의 종소리를 듣는 것에 비유했다. “개신교 신자는 아니지만 교회 종소리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흘깃 들리는 청아한 소리. 시를 읽는 것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어요. 또 ‘뭐 이런 시가 다 있나’ 싶어도 그 짧은 시간 본인도 모르게 인문학적 비판의 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계산, 돈, 자식, 세상 걱정 잠시 잊고 시 한편 읽으면 어떨까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사진)가 서른여섯에 쓴 연애소설은 어떤 색깔일까. 작가가 1962년 10월 2일부터 1963년 5월 31일까지 대구일보에 연재한 장편 ‘그 형제의 연인들’이 탈고 49년 만인 이달 말 단행본(마로니에북스)으로 나온다. 이 소설은 한때 연구자들 사이에서 미궁(迷宮)에 빠진 작품으로 통했다. 강원 원주 ‘박경리문학공원’, 경남 통영 ‘박경리문학관’의 자료나 각종 문학전집의 작품 연보에 전남일보 연재작으로 나와 있지만 실제 소설이 실린 신문은 찾기 힘들었던 것. 2004년에야 논문 ‘해방 이후 대구·경북지역 신문연재소설에 대한 발굴조사 연구’(한명환 외 3인)를 통해 대구일보에 연재된 사실이 확인돼 작품의 실체가 드러났다. 출간 과정도 고역이었다. 1960년대 대구일보는 디지털화 작업이 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출판사 직원들이 직접 대구로 내려가 경북대와 영남대 도서관, 대구시립중앙도서관 등을 돌며 일일이 당시 종이신문을 사진으로 찍은 뒤 타이핑을 했다. 이런 노력 끝에 203회로 마감한 연재소설을 결호 없이 찾아내 200자 원고지 1200여 장 분량으로 묶어냈다. ‘…연인들’은 달콤한 연애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관습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인간관계를 중심 줄기 삼아 안타깝고 슬픈 사랑 이야기가 뻗어나간다. 사랑을 다루되 그 성취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사랑을 위한 희생에 초점을 맞춰 애잔한 비애가 가득하다. 줄거리를 압축하자면 성격이 판이한 한 형제의 못 다한 사랑 얘기다. 형 심인성은 냉철한 의사로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다 곧 죽음을 앞둔 여성 환자 규희를 만나면서 사랑에 눈을 뜬다. 반면 열혈 대학생인 동생 주성은 친한 친구의 누나이자 이혼녀인 혜원에 빠져 괴로워한다. 두 형제가 관습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사랑을 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이 밀도 있게 펼쳐진다. 단행본 작업에 참여한 조윤아 가톨릭대 ELP(Ethical Leader Path) 학부대학 교수는 “이 작품은 사랑의 장애물로 여겨지는 관습의 문제마저 인간의 내적 성숙과 관계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뜻대로 사랑을 이루려 하는 이보다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자의 고귀함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1955년 단편 ‘계산’으로 등단한 박경리는 1969년 집필을 시작한 토지에 몰두하기 전까지 각종 신문과 잡지에 소설을 연재하며 왕성한 필력을 뽐냈다. ‘…연인들’은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던 박경리 문학의 초반기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가 ‘…연인들’을 연재하면서 한국일보에 장편 ‘가을에 온 연인’(1962년 8월 18일∼1963년 5월 31일)을 함께 게재한 것도 이채롭다. 이를테면 ‘겹치기 연재’다. 조 교수는 “전형적이고 일상적인 ‘그 형제의 연인들’과 괴기스러운 느낌의 ‘가을에 온 연인’을 함께 연재한 것은 작가의 놀라운 창작력을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평가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체제 비판적인 시를 썼다는 이유로 자강도 강계의 감옥에서 3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한 탈북 시인 도명학. ‘망명 북한작가 펜센터’ 이사로 제78회 국제 펜(PEN)대회에 참가한 그는 2006년 8월 아내와 세 딸을 남겨두고 탈북하던 날의 이야기를 기자에게 들려주었다. 시인은 연말에 이 사연을 수기집에 담아 펴낼 예정이다. 화창한 아침. 중국과 인접한 양강도 혜산의 나의 집은 분주했다. 얼마 전 감옥에서 출소한 내가 평양에 있는 이모 댁에서 몸을 추스르려고 집을 나서는 날이었다. 가족들은 몰랐지만 난 이날 탈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평양에서 흠 잡히면 안 된다”며 장마당에서 사온 고급 양복을 입혀주고 김일성 배지도 달아줬다. 죄책감 때문에 뱀가죽을 입는 것 같았다. 내륙 쪽으로 걸어가다 압록강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갑자기 여덟 살 막내딸이 골목에서 나타났다. 딸은 나를 보고 “아빠∼, 돈” 하며 웃었다. 내게는 압록강까지 가는 차비가 북한 돈으로 500원이 있었다. 남은 30km를 걸어서 가기로 하고 딸에게 300원을 줬다. 아이스크림 두 개 값인 200원은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든 것이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 아무것도 먹지 않고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딸을 뒤로하고 걸었다. 숨이 막히는 한낮의 열기, 그리고 죄책감으로 몽롱해졌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가게는 나오지 않았다. 무사히 강을 건너 탈북을 도와준 중국인 집에 도착해 양복을 벗고 200원도 버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스크림 두 개 먹겠다고 막내딸에게 사람 같지 않은 깍쟁이 짓을 하다니….’ 아내는 기차역 방향이 아닌 곳에서 나를 봤다는 딸의 말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결국 내 소식이 끊기자 국가안전보위부에 찾아갔다. “우리 남편이 없습니다.” 아내의 자진 신고 덕분에 가족들은 고초를 피할 수 있었다. 1년 전 아내와 세 딸이 다행히도 탈북에 성공해 같이 산다. 열네 살이 된 막내딸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막내딸이 잘못해도 야단을 치지 못한다. 딸은 나에게 아직도 ‘아이스크림 두 개의 권력’이다.경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탈북 문인들로 구성된 ‘망명 북한작가 펜센터’가 국제 펜(PEN)에 가입했다. 표현의 자유와 작가의 인권을 강조하는 국제 펜 가입을 통해 탈북 작가들은 앞으로 북한 인권문제를 직접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통로를 갖게 됐다. 국제 펜은 제78회 펜대회의 마지막 날인 14일 경북 경주 현대호텔에서 총회를 열고 ‘망명 북한작가 펜센터’ 가입안을 86개 참가국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한 발 앞서 가입이 통과된 레바논에 이어 북한센터는 국제 펜의 145번째 센터가 됐으며 이로써 국제 펜은 114개국 145개 센터를 갖추게 됐다. 북한센터는 이사장에 장해성, 사무국장 장진성, 이사 도명학 림일 이지명 등으로 실무진을 꾸렸으며 회원은 탈북 작가 28명이다. 회원국 만장일치로 국제 펜 가입이 통과됐지만 총회 전 탈북 문인들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표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만큼 표결 연기 결정이나 부결 등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행사장 주변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사복 경찰 10여 명이 배치되는 등 긴장감이 돌았다. 표결 현장에 참석하지 못하고 행사장 밖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탈북 작가들은 큰 박수소리가 들리자 “이제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가입안이 통과된 후에야 행사장으로 들어간 탈북 작가들을 각국 펜 회원들은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장해성 이사장은 단상에 올라 “감격스럽다. 북한에 3200여 명의 작가가 있는데 저희들은 선택된 사람들인 것 같다. 이 사실(펜 가입)이 북한 주민들에게도 알려졌으면 좋겠다. 북한 인권에 대해 열심히 알릴 것을 여러분들께 약속드린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탈북 작가들은 매년 열리는 총회뿐만 아니라 국제 펜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참석하게 된다. 특히 국제 펜 산하에 있는 평화작가위원회, 투옥작가위원회 등을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수시로 보고할 수 있다. 또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40여 개 펜 회원국이 운영하는 ‘망명 작가 보호 프로그램’에 따라 탈북 작가들도 이 나라들을 방문했을 때 안전 보호 등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총회가 끝난 뒤 기자와 만난 장 이사장은 “(북한 가입에) 100% 찬성이 나왔다. 너무나도 감동적이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앞으로 할 일이 많다. 좋은 문학 작품을 많이 써 북한 실상을 알리겠다. 또한 탈북자 가운데 자신의 얘기를 글로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의 집필 활동도 적극 돕겠다.” 이사를 맡은 탈북 소설가 림일은 “사명감을 갖고 펜에 가입했다. 앞으로 북한 주민들의 말 못한 외침을 대변하는 역사적 소임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경주 펜대회는 이날 총회와 폐회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으며, 다음 펜대회는 내년 9월 아이슬란드에서 열린다. 경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손소희(1917∼1987)가 1979년부터 문학사상에 연재한 ‘한국문단 인간사’를 보면 문인의 성정과 일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하는 ‘사슴’의 노천명 시인(1912∼1957) 집을 방문한 이야기 중 일부는 이렇다. “‘어서들 와, 좀 늦었잖아.’ 노천명 씨는 약간 코 먹은 소리로 활짝 웃으며 우리들을 맞았다. 그 집이 어디쯤에 있었는지는 잊었지만 아래층에는 온돌방 두어 개가 있고 위층도 있는 작지 않은 규모의 집이었다. 일행은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처럼 떠들어댔다.” 손소희는 연재 글에 사슴을 탄 소녀의 삽화를 그린 뒤 이렇게 덧붙였다. “그녀(노천명)는 이상이 높아 슬픈 시인이었고 다정해서 외로운 여인이지 않았을까.”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이 14일부터 11월 3일까지 여성 문인 13명의 자료들을 모은 전시회 ‘글을 담는 반짇고리’를 연다. 손소희가 노천명을 두고 쓴 연재글부터 기사와 사진, 초상화, 원고, 그리고 여성 문인들의 체취가 담겨 있는 옷, 스탠드, 액세서리 등을 선보인다. 모윤숙이 앉아 글을 쓰던 책상과 스탠드, 한무숙의 오래된 ‘싱거 미싱’과 받침대, 그리고 박경리가 썼던 찻잔, 재떨이 등에서 작가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1969년 시작해 1994년 완간된 ‘토지’의 ‘서문 변천사’를 통해 박경리의 고뇌를 읽을 수도 있다. 1979년 서문에서 “배수의 진을 치듯이 절망을 짊어짐으로써만이 나는 차근히 발을 내밀 수가 있었다”고 당차게 말했던 작가는 2001년 서문에서는 이렇게 부담감을 내비쳤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동안 ‘토지’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싫었으며 잊어버리고 싶었다.” 나혜석(1896년생)부터 김남조(1927년생)까지 여성 문인들의 손길에 닳고 닳은 물품들엔 이들이 지내온 격동의 현대사가 투영돼 있는 듯하다. 전시 기간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강연회가 열린다. 15일 첫 번째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가 ‘한국 여성문학의 방향’을 강의한다. 3000∼5000원. 02-379-3182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문인들에게 머리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감옥에 있을 때 간수들은 제 머리로 청소를 시켰습니다. 이 자리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2006년 탈북한 시인 도명학이 테이블 앞으로 나와 엎드린 뒤 바닥에 머리를 대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객석 여기저기에서 “어어∼” 하는 안타까운 탄성이 들렸다. 도 시인이 “전 세계 문인들이 핍박받는 북한 문인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마음을 합쳐주십시오”라고 말하자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수는 10초 넘게 이어졌다. 11일 경주예술의전당 소공연장에서 열린 제78회 국제 펜대회의 문학포럼 ‘표현의 자유와 미디어’. 북한의 참혹한 실상에 대해 탈북 문인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356석을 가득 메운 장내는 내내 숙연했다. 이 자리의 좌장을 맡은 소설가 이문열은 “귀하고 슬픈 증언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도 시인은 “북한에서 저 자신이 굶주리면서도 시 ‘우리는 더 잘살 것이다’ 등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는 수십 편의 시를 썼지만 애착이 가지 않았다. 진실이 담긴 작품, 쓰고 싶은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북한의 현실을 담은 ‘곱사등이들의 나라’ ‘외눈도 합격’ 등의 작품을 남몰래 썼다가 국가보위부에 적발됐다. ‘곱사등이들의 나라’는 폭압과 생활고로 죽지 못해 살아가면서도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외눈도 합격’은 한쪽 눈이 없는 장애인이 군 입대를 한 사연을 풍자했다. 이 작품들을 발표는 엄두도 못 내고 몰래 간직하고 있던 시인에게 보위부는 ‘반동선동죄’를 적용해 그를 북한 자강도의 감옥에 보냈다. 도 시인은 14일 총회에서 펜클럽 가입이 결정되는 ‘망명 북한작가 펜센터’의 이사이기도 하다. 그는 “분단의 특수한 상황에서 남한에 두 개의 펜이 생기게 된다. 나라의 통일과 함께 펜센터가 하나가 되는 날까지 열심히 하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9년간 요덕수용소에 수감됐던 탈북 무용가 겸 문인 김영순은 수용소에서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날아다니는 것 다 잡아먹고, 기어 다니는 것 다 잡아먹고, 돋아나는 풀 다 뜯어먹는 비참한 생활이었다.” 김정일의 부인 성혜림과 친해 김정일의 사생활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온 가족 8명이 요덕수용소에 수감됐던 그는 “가족 6명은 실종되거나 총살당했고 저를 포함해 2명만 살아남았다”고 증언했다. “북한에서 고초를 겪은 한 사람으로서 여러 문인에게 부탁드립니다. 북녘에 자유를 주십시오. 붓으로 자유를 주십시오.” 장윤익 통일문학포럼 회장은 “남한 작가들은 북한 작가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통일문학은 남북한 이념 갈등에서 벗어나 통합의 문학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올해 세계문학상으로 거듭난 제2회 박경리 문학상 최종 후보에는 현대 러시아 문학의 산증인인 소설가 블라디미르 마카닌(75)도 포함됐다. 그는 1970년대 브레즈네프 치하의 침체기부터 고르바초프의 개혁기를 거쳐 소련 체제의 붕괴, 그리고 오늘의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40년 넘게 격동의 러시아 역사를 문학에 담아온 인물이다. 높은 명성을 얻었지만 끝까지 언더그라운드 작가로 남기를 원한 소탈한 작가이기도 하다. 김현태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그를 소개한다. 》 소비에트 시절 방대한 관료 조직에 버금가던 작가동맹은 체제에 순응하는 작가들에게는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했고, 체제에 비판적인 문인들은 박해하기 일쑤였다. 1980년대 중반 소련의 개혁 개방이 가속화하면서 작가들은 그들을 억압하던 이념적 잣대나 검열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창작할 수 있는 권리를 찾게 됐다. 러시아 문학의 르네상스를 예견하는 견해도 있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당장의 생존 문제에 급급한 독자들은 문학을 외면했고, 작가들 중 대다수는 막상 검열이 사라지자 오히려 글 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1965년 장편 ‘직선’으로 등단한 마카닌의 문학 여정은 이와 같은 러시아 현대사의 격변기와 궤적을 함께한다. 브레즈네프 치하부터 현재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오래 작품 활동을 하며 대표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는 마카닌이 거의 유일하다. 1937년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오르스크라는 작은 도시에서 출생한 그는 어린 시절 체스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최고의 두뇌들이 모이던 모스크바국립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포병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다가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수학을 전공한 한국계 러시아인 이리나 김과 결혼한 사실도 이채롭다. 마카닌은 러시아 문단에서 늘 외로운 존재였다. “문예지를 거치지 않고 바로 단행본으로 나온 작품들은 공동묘지로 가는 신세”라는 당시 문단의 불문율을 무시하고 그는 초기 작품 대부분을 작품집으로 발표했다. 그는 보수와 진보로 양분돼 다투던 문단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며 문단의 주변부에 머물기도 했다. 극사실주의적 디테일과 판타지를 기묘하게 결합해 반유토피아적 화두를 던진 소설 ‘탈출구’든, 아니면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사회의 정신적 황폐상을 아이로니컬한 페시미스트의 시각에서 다룬 문제작 ‘언더그라운드, 혹은 우리 시대의 영웅’이든 그의 문학은 문단 주류를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냈다. 마카닌은 비주류의 삶을 살았지만 ‘러시아 부커상’(1993년) ‘러시아 국가상’(1999년), ‘우리 시대의 명저 상’(2008년) 등을 수상했고, 다수의 작품이 유럽과 미국에서 출간되며 유명해졌다. 하지만 마카닌은 최근 이런 말을 남겼다. “진정한 언더그라운드는 주류의 일부가 될 수 없으며, 교회 근처에서 적선을 구하는 바보 예언자와 같은 존재인 작가는 결코 사제직에 오를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작가들이 좁은 길을 따라 힘겹게 높은 산에 오르던 러시아 문학의 20세기 후반이 과거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는 산의 정상에서 아래로 난 길이 점점 넓어져 도대체 길의 경계가 어딘지 불분명한 세상이 되었다. 마카닌은 길의 흔적이 희미해진 평원에서 러시아 정신세계의 지형 탐사를 꿈꾸며, 지하 깊숙이 자신의 통로를 파 내려가는 언더그라운드 작가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때는 1991년. 시인 김요일이 근무하는 문학세계사는 시인들의 사랑방이었다. 당시 출판저널에서 일하던 시인 김중식도 가끔 들러 바둑을 뒀는데 어느 날 축구 얘기가 나왔다. 김중식이 서울대 국문과 출신들로 구성된 축구팀에서 뛴다고 하자 김요일 시인이 ‘공 좀 찬다’는 시인들을 모아 도전장을 내민 것. 당시 문화계에서는 축구팀 3개가 유명했다. 서울대 국문과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소나기’, 영화인 중심으로 모인 ‘가고파’, 그리고 시인들이 뭉친 ‘서북청년단’(서울 서북지역 시인들이 모였다는 의미로 ‘사상성’과는 관계가 없다). “‘소진에의 추억과, 공동체 정신에 대한 긍정과 지겨움’을 갖고 있는 1980년대 초반 학번들이 자신들의 모태에 대한 회환과 기억을 비켜 가게 하는 매체로 축구는 기여했다.”(시인 배문성) 뜨거웠던 아스팔트는 푸른 그라운드로 대체됐고, 90년대를 맞은 청춘들은 땀을 흘리며 지나간 80년대에 대한 회환과 헛헛함을 달랬다. ‘가고파’와 ‘소나기’는 90년대 중후반을 넘기며 활동이 흐지부지됐지만, 시인들의 드리블은 멈추지 않았다. 1999년 서북청년단에서 ‘글발’로 팀명을 바꾸며 요즘에도 한 달에 한두 번 토요일에 모인다. 금요일 밤 각지에서 소주잔을 꺾던 시인들은 불콰해지면 연락책에게 전화를 한다. “야, 내일 공 차러 어디로 가야 해?” ‘세계 최초, 유일한 시인축구단’이라는, 팩트를 확인하기 어려운 문패를 천연덕스럽게 단 ‘글발’이 창단 20주년 기념 시선집 ‘토요일이면 지구를 걷어차고 싶다’(북인)를 펴냈다. 단원 46명이 대표시를 3편씩 골라 냈고, 전윤호 배문성 채풍묵은 글발의 과거와 현재를 그린 산문을 보탰다. ‘사랑은 축구공이다. 내 사랑이 발에게 지시한다. 달려라! 나는 미친 듯 골대로 돌진한다. 이면이란 없다. 돌려 차지도 않는다. 사랑은 돌려 차거나 둘러치지 않는다.’(김점미 ‘그리운 분노’ 중) 고뇌하는 빈자(貧者)의 아우라를 지닌 시인들이 가죽 공 하나를 두고 헐떡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은 왠지 엇박자 그림이다. 하지만 전윤호는 말한다. “열정 없이 시인이 될 수 없으며, 평안해 보이는 듯한 (시인의) 외모 속에 불타는 투지를 숨기고 있다.” 글발 감독인 채풍묵의 포지션 설명을 읽다 보면 웃음이 난다. “중앙포워드 김요안 평론가는 드리블이 유연하다. 여성들을 대할 때처럼 기량이 매끄럽다.” “백인덕이 경기하다 말고 (그라운드 위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서 어이없기도 하고 한편 ‘내가 시인축구단에서 경기하는구나’란 실감도 들었다.” 창단 당시 ‘시발’(시인의 발) ‘서북붉은청년단’ ‘장미촌’ 등을 두고 고심했던 팀명이 글발로 정해진 뒤 시인들은 이름에 맞게 20년 동안 부지런히 글도 쓰고 공도 찼다. “조기 축구회보다 못하지만 실력이 영 꽝은 아니다”(조현석)라는 말처럼 승률은 5할을 밑돌지만, 아무러면 어떤가. 금요일 밤 술자리에서 시인들은 내일의 결전 일정을 뒤늦게 통보받을 것이며, 이튿날 오후에는 어김없이 술이 덜 깬 상태로 ‘결연히’ 그라운드에 하나둘 나타날 것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970년과 1988년에 이어 24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제78회 국제 펜(PEN)대회. 10일 경북 경주시 현대호텔 컨벤션홀에서 개최된 이 ‘문학 올림픽’의 개회식을 앞두고 참가자들이 북적이던 대기실에서는 감동적인 재회가 이뤄졌다. 198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78)가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쓴 탈북시인 장진성을 알아보고 뜨겁게 포옹했다. 주위의 시선은 일제히 두 사람에게 쏠렸다. 두 시인의 각별한 인연은 3년 전 시작됐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소잉카는 장 시인의 작품을 읽고 “만나보고 싶다”며 한국 문인 단체에 장 시인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본디 남북문제와 탈북 문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평화시인대회에 참석해 금강산을 다녀온 그는 “북한 시인들이 참석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당시 첫 만남을 이루지 못한 두 사람은 올해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시 축제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소잉카는 장 시인에게 “3년 하고도 6시간을 기다렸다”며 환하게 웃었다. ‘6시간’이란 3년 전 소잉카가 장 시인을 만나려고 일정을 늦추며 호텔에서 기다린 시간을 뜻한다. 두 시인은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며 나이지리아와 북한 인권, 그리고 문학에 대해 밤늦도록 얘기를 나눴다. 당시 소잉카는 “북한은 인권 등이 매우 안 좋은 나라”라며 장 시인이 들려주는 북한 생활상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런던에서 헤어진 뒤 3개월여 만인 이날 경주에서 장 시인과 재회한 소잉카는 “다시 만나게 돼 반갑다”고 말했고, 장 시인은 “한국에서 뵈니 더 반갑다”고 화답했다. 국적과 세대 차이를 뛰어넘은 두 시인이지만 자유와 인권을 위해 독재정권에 항거했으며 이를 문학으로 승화해 널리 알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잉카는 1965년 나이지리아 선거 부정을 비판하는 내용의 방송을 한 혐의로 체포됐고, 1967년 내전 발발 당시 투옥됐다. 사니 아바차 군사정권은 소잉카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2004년 탈북한 장 시인은 미국과 일본에서 시집 ‘내 딸을…’을 출간해 북한의 인권 탄압 실상을 알렸다. 미국에 망명했던 소잉카는 민간 정권이 들어선 1999년 그리운 조국으로 돌아갔지만 장 시인은 아직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문학, 미디어 그리고 인권’을 주제로 열린 이번 경주 펜대회에는 86개국 문인 212명이 방한했고, 국내 문인 700여 명이 참가했다. 소잉카는 개막식 기조강연에서 “권력은 구속을 좋아하지만 창조성은 구속의 반대말”이라며 “변화를 추구하는 지성(知性)에서 나오는 더욱 광범위하고 훨씬 원초적인 도전은 (권력에) 얼마나 위협적일까. 나는 창조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디어의 이미지나 간단한 정보와는 반대로 문학은 시간과 문화를 융화하며 인간 생활을 초월하는 것을 창조한다.” 15일까지 열리는 펜대회에서는 시낭송 대회, 사인회, 뮤지컬 ‘요덕스토리’ 공연 등이 열린다. 14일 총회에서는 탈북 문인 28명으로 구성된 ‘망명 북한작가 펜센터(North Korean Writers in Exile PEN Center)’ 가입 승인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된다. 국제펜에는 114개국 143개 센터가 가입돼 있으며, 북한 펜클럽이 가입하면 144개 센터로 늘어난다.경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멸치가 달그락거리며 뜀박질을 한다. 반찬통을 넘어 밥알들에 안긴 멸치가 벌건 피를 쏟는다. 희멀게진다. 멸치가 흘린 것은 고추장이 아니다. 피다 고통이다 가슴 쓰린 절규다. 멸치가 아니다. 벽을 향해 쉼 없이 뜀박질하는 것은 바로 나다. ‘이달에 만나는 시’ 9월 추천작으로 진은영 시인(42·사진)의 ‘멸치의 아이러니’를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창비)에 수록됐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가 추천에 참여했다. 참여적 시를 써왔던 시인은 2010년 가을께 이 시를 썼다. “대학 때부터 노동운동과 미학적 시 쓰기 사이에서 고민해왔던 것 같아요. 저도 대학원을 가고, 학생운동도 사라졌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사회를 보면서 대학 시절 고민이 다시 떠올랐죠.” 밥상머리 앞에서 엄마에게 노동, 실천 등의 단어를 내뱉다가 “멸치도 안 먹는 년이…”라고 타박을 받은 것은 실제 경험이다. 왜 10여 년이 지나 그 멸치볶음이 생각났을까. “사람들은 이제 혁명을 믿지 않아요. 도시락 속 멸치가 도시락을 흔들면 칸을 넘어가는 것처럼, 사회의 완고한 틀이나 경계를 허무는 방법이 이제 일상 속에 있는 미세한 운동이나 리듬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이 시가 됐어요.” 이원 시인의 추천사는 이렇다. “진은영은 ‘안 들리는 노래’를 깎아서 심장과 발을 가진 ‘시’로 만든다. 그는 깊게 저며 쓰고 그 시를 읽는 우리는 소리 죽여 운다.” 김요일 시인은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같은 진은영의 시편들은 감각적인 사유와 은유를 통해 21세기 한국 시단의 또 다른 페이지를 열어가고 있다”고 추천했다. “진은영의 난해함이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육박해 들어오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자기모순의 신랄한 풍자를 사랑으로 잇는 힘에서 나온다. 사시의 저 맑은 눈빛이 한국 시의 칼슘 영양제임을 겨우 안다.” 손택수 시인의 추천평이다. 이건청 시인과 장석주 시인은 이병일 시인의 시집 ‘옆구리의 발견’(창비)을 추천했다. “예리한 감각과 돌발적인 상상의 언어들이 교직되면서 불러오는 충격적인 파장을 보여준다.”(이건청) “발견 대상에 대한 예민한 감응력과 상징의 역동성이 돋보이는 시집.”(장석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추리소설 팬이라면 탐낼 만한 걸작선이다. ‘한국 추리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내성(1909∼1957)부터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신인 작가까지 추리소설가 44명의 대표작을 한 편씩 묶었다.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엄선한 ‘별’들의 무리이자 한국 추리소설 75년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걸작선이다. 200자 원고지 5000장이 넘는 ‘백과사전’ 같은 선집의 서두를 장식한 것은 김내성의 ‘가상범인’. 1932년 일본 잡지 ‘프로필’에 실린 ‘탐정 소설가의 살인’을 개작해 1937년 다시 펴낸 것이다. 김내성 작품의 주인공인 탐정 유불란이 처음 등장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추리소설은 어떨까’라는 호기심에서 펼쳐본 이 소설을 읽다보면 여러 번 감탄하게 된다. 최근 추리소설 못지않은 치밀함과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두뇌게임까지. 마치 현대 작가가 당시 시대를 배경으로 쓴 추리소설 같다. 특히 구성이 기발하다. 사랑하는 연인 이몽란이 살해 피의자로 몰리자 유불란은 진범을 잡기 위해 당시 사건을 재구성한 연극을 펼치고, 다른 용의자도 배우로 등장한다. 연극이 이어지며 이것이 실제인지 연극인지 배우도 관객들도 헷갈리게 되고, 결국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범인이 자백하게 된다.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막이 내린 뒤에도 반전에 반전을 이어가는 설정이 잠시도 쉴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국추리작가협회장을 지내고 부산에서 추리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종은 또 어떤가. 1970, 80년대 대표 추리작가인 그의 대표작인 ‘회색의 벼랑’은 호텔에서 자살한 한 의문의 여성의 사인을 쫓아가는 한 신문사 홍콩 특파원의 취재기를 속도감 있게 전하고 있다. 짜임새는 다소 헐겁지만 남북한 스파이 얘기를 홍콩을 배경으로 펼쳐놓은 것이 한 편의 박진감 넘치는 스파이 영화를 보는 듯 스케일이 크다. MBC 인기 형사드라마 ‘수사반장’ 극본을 7년간 썼던 김남의 ‘여자는 한 번 승부한다’도 눈에 띈다. 한 여성의 피살 사건을 둘러싼 부부의 음모와 배신을 그렸는데, 깔끔하고 강렬한 반전의 뒷맛이 매력적이다. 한국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현재훈의 ‘절벽’, 1965년 발표한 한국 최초의 장편 공상과학(SF) 소설인 ‘완전사회’의 문윤성이 쓴 ‘덴버에서 생긴 일’ 등 추리소설 팬이라면 입맛을 다실 만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한국 추리소설은 문단에서 장르 문학으로 평가절하돼 왔고, 추리소설 시장에서도 일본이나 미국 소설에 비해 기를 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에게도 수준급 추리 작가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국 추리물의 ‘매콤한 반전’이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북한은 물리적 독재 외에도 ‘감성독재’를 통해 주민들을 통제해 왔습니다. 그러니 탈북 문인단체가 국제단체로 인정받을 경우 감성독재에 미칠 파급력을 우려하는 겁니다.” 북한이 탈북 문인 20여 명으로 구성된 ‘북한펜클럽’의 국제펜(PEN) 가입을 연일 맹비난하는 가운데 이 클럽 사무국장인 장진성 시인은 7일 “북한은 문학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과잉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경북 경주시에서 개막하는 제78차 국제펜대회는 국내외 700여 명의 문인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문인 행사. ‘북한펜클럽’은 이번 대회에서 144번째 센터로 국제펜에 가입하고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증언할 예정이다. 노동신문은 2일 “(남조선이) 국제펜대회를 계기로 반공화국 ‘인권’ 소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다”며 “무슨 ‘북한망명펜센터’라는 모략 단체를 국제펜에 가입시키는 놀음을 벌이려는가 하면 그들을 내세워 ‘작품’이오, ‘공연’이오 하면서 불순한 반공화국 광대극을 펴 놓으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의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도 5일 논평과 대담을 통해 “우리식 사회주의를 헐뜯는 악담들로 가득한 모략극, 날조극들을 국제대회에까지 내돌리려고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6월 영국 BBC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왜 유럽에 아프리카나 중동의 인권 상황은 잘 알려져 있는데 북한은 그렇지 않으냐’고 따져 물었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유럽에는 아프리카나 중동의 망명 작가가 많이 있고 이들은 노벨문학상도 받았다. 유럽인들은 그들을 통해 해당 국가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이제 정치가가 아니라 문호의 말을 신뢰하고 듣는다’라고요.” 장 시인은 이를 계기로 북한 인권 운동도 이념이 아닌 문화적 차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귀국 후 북한펜클럽 설립에 앞장서게 됐다. 시인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와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일하다 2004년 탈북했다. 그의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출간됐고 5월에는 영국 옥스퍼드 워덤 칼리지가 주는 ‘렉스 워너상’을 받았다. 6월에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시 축제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에도 초대돼 다녀왔다. 일본 분게이슌주(文藝春秋)는 11월 그의 수기를 출간할 예정이다. 캐나다를 포함해 6개국에서도 문학 행사 초대장을 보내 왔다. “해외에 가면 남한 작가인 줄 알아요. 제가 ‘유럽에서 태양이 침몰한 날(타이타닉호 침몰 날), 동양에서는 태양이 솟았다(김일성 주석 생일)’고 북한에서 찬양한다고 말하면 그제야 경악하며 큰 관심을 갖죠.” 북한펜클럽은 서울에서 북한 인권 행사를 열 계획이다. 158개 나라 문인들의 방한 승낙도 받았다. “행사비 5억 원 마련이 힘들지만 일단 추진 중입니다. 캐치프레이즈도 정했습니다. ‘북한에는 자유를, 남한에는 평화를, 한반도에는 통일을.’”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집 앞에 낡은 버스 한 대가 있다. 외부 페인트칠은 벗겨졌고 안에는 빈 깡통과 병, 그리고 잡다한 쓰레기가 한가득 들어있는 고물 버스다. 삭막한 도시의 도로변에 서 있는 버스는 흉물 그 자체지만 꼬마 소녀 스텔라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저 낡은 버스는 바닷가에서 떠밀려 온 고래처럼 슬퍼 보여요.” 이 책은 한 소녀의 순진한 동심이 마을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가슴이 뭉클하게 그려낸다. 자칫 폐차될지 모르는 버스는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스텔라 집 옆 마당에 옮겨진다. 소녀와 마을 사람들은 버스를 닦고 쓸고 깨끗이 청소한 뒤 내부에 소파를 들여놓고, 책과 어항도 갖다 놓는다. 동네 청년들은 버스 바깥에 멋진 그림을 그렸다. 볼품없던 버스는 어느새 마을 사람들이 모여 얘기도 나누고 음식도 나눠 먹는 동네 사랑방으로 변했다. 하지만 작가는 마냥 동화 같은 얘기만 펼치지는 않는다. 이 버스가 불법 주정차된 것을 적발한 견인회사가 폐차장으로 끌고 가 버린 것. 스텔라와 마을 사람들은 골칫거리에서 소중한 공간으로 변신한 버스를 되찾기 위해 폐차장으로 몰려간다. 결국 견인회사 대표와 스텔라는 버스를 두고 담판을 짓게 되는데…. 저자는 호주 출신의 유명 그림책 작가. 2000년 영국 ‘스마티즈 북 상’, 2002년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 그리고 호주 최고의 아동문학상인 ‘올해의 호주 아동문학상’을 네 차례나 받았다. 이 책은 2012년 ‘올해의 호주 아동문학상’ 수상작이다. 관록이 있는 작가답게 저자는 어린이의 동심에 대한 관찰에 머무르지 않는다. 스텔라의 순수한 마음으로 변화된 버스의 이름은 ‘천국’. 이름에 걸맞게 인종과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마을 사람들이 동등하게 소통하고 즐기는 곳이다. 버려지고 방치된 버스가 여러 사람의 관심을 통해 소중한 공간으로 변모되는 과정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천국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 곁에 있으며, 마음 먹기에 따라 그곳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글과 어울려 단순하고 간결하게 곁들인 그림들은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천국’은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풀과 새들이 함께 쉬는 공간으로도 그려져 아이들에게 자연과 공존하는 생활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책을 읽고 아이들과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우리 곁의 천국을 찾아보면 어떨까.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