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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 시인(54)은 1998년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시인은 나이 마흔에 어머니 앞에서 발가벗었고 노모는 눈물과 기도로 환자가 된 아들을 씻겼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에게 갑상샘 암이 발견되자 이번에는 시인이 집과 병원을 오가며 간병했다. 어머니의 속옷 빨래를 하던 시인은 이때 처음 어머니의 분홍 꽃 팬티를 보았다. 쉰 넘어서야 어머니도 ‘여자’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노모가 퇴원하던 날 시인은 부끄러워하는 어머니를 씻어드리며 껄껄 웃었다. “어무이요, 백옥 같은 피부가 다시 시집가도 되겠습니더.” 시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어머니, 병마를 이겨내고 이젠 건강을 찾은 어머니…. 시인은 말한다. “나에게 어머니는 부처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이 세상이 극락이다.” 세상을 떠나시고 난 뒤에야 절절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이름, 어머니 아버지. 김종길 김종해 오탁번 문정희 신달자 문인수 등 시인 12명이 부모님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시와 짧은 산문에 담았다.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여름호의 기획특집 ‘시인이 쓴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다. 김종해 시인(71)의 어머니는 네 남매를 혼자서 길렀다. 겨울 새벽 부둣가에서 노동자들에게 술국을 팔던 어머니. 어느 해인가 온 식구의 생계가 걸린 막걸리 밀주를 빚어 팔다가 단속에 걸렸다. 실랑이 끝에 건넌방 구들장 밑에 숨겨둔 술독을 곡괭이로 깨뜨리며 어머니는 펑펑 울었다. 이젠 머리가 하얗게 센 시인은 어머니를 그리며 시 ‘사모곡’을 쓴다. ‘지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가장 아름다운 여인은/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나의 별로 돌아가기 전에/내가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이름/어·머·니’ 여러 원로 시인이 아직도 부모와 이별한 때를 가장 선명히 애끓는 기억으로 갖고 있다. 그 혼절하는 아픔도 절절한 시로 태어났다. 오탁번 시인(69)은 시 ‘꽃으로 피어난 어머니’에서 하관의 밧줄이 흙에 닿는 순간 어머니의 ‘어…’ 하는 모음만 불렀다고 토로한다. 신달자 시인(69)은 시 ‘아버지의 빛’에서 아버지를 땅에 묻은 뒤 하산하는 길에 땅을 밝는 일 자체가 발톱 저리게 황망했다고 회고한다. 문인수 시인(67)은 2009년 12월 모친을 잃었다. 향년 99세로 세상을 뜬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6·25전쟁, 절량농가, 초근목피 등 질곡의 삶을 좁은 어깨에 지고 살았다. 시인이 울며 쓴 시 ‘하관’은 이렇다.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머리가 드문드문 빠졌었는데, 그 자리에 다시 머리가 나기 시작했어요. 원래 제 머리는 직모인데, 난데없이 곱슬머리가 자라는 거예요. 사람들이 파마를 했느냐고 물을 정도입니다. 적응이 안 되어서 그런지 요새 제 머리를 주체할 수가 없어요.” 9일은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였던 장영희 교수(1952∼2009·사진)의 3주기다.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 1급 장애를 얻어 평생 불편한 다리로 살았고, 말년에는 척추암으로 투병했던 그다. 하지만 고인이 세상에 남긴 밝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롱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고인의 3주기를 앞두고 강연록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예담)가 나왔다. 2006년 인터넷 문학사이트 ‘문장’이 마련한 청소년 인문과학 토요특강에서 했던 고인의 강연을 책으로 만들었다. 구어체로 정리돼 있어 고인의 육성이 곁에서 들리는 듯하다. “저는 학창 시절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창경원이었습니다. 소풍 때마다 학교에서는 창경원에 갔는데, 그때마다 저는 소풍을 못 가고 늘 집에 있었습니다. (중략) 사람들은 저를 보며 얼마나 답답할까, 또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없으니 경험이 부족할 거다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동성 있게 돌아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었고, 그 덕분에 남이 가보지 못한 세계까지 경험할 수 있었어요.” 고인은 청소년들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를 긍정적으로 극복하라고 말한다. 문학과 독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당장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이나 영상매체를 통해 금방 얻을 수 있겠지만, 내가 살아가는 의미, 내가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며 한평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와 지혜는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강연록에는 주요 저서의 발췌문과 생전 인터뷰도 담았다. 9일 고인이 교수로 재직했던 서강대 이냐시오 성당에서 추모 미사가 열린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오정국 시인과 정민 한양대 교수가 제12회 지훈문학상과 지훈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지훈상운영위원회와 나남문화재단이 2일 발표했다. 오 시인은 시집 ‘파묻힌 얼굴’, 정 교수는 저서 ‘다산의 재발견’과 ‘삶을 바꾼 만남’이 수상작이다. 시상식은 24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열린다.}

‘해리포터’의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47·사진)이 쓰는 첫 성인 소설 ‘캐주얼 베이컨시(The Casual Vacancy)’가 9월 27일 전 세계에서 동시 출간된다. 청소년 판타지물로 세계적 작가가 된 롤링은 새 작품에서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에 도전한다. 모국인 영국에서조차 블랙코미디는 마이너 장르로 꼽히기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은 ‘임시 결원’ 또는 ‘보궐’로 해석할 수 있다. 배경은 자갈 깔린 광장과 오래된 수도원이 있는 가상의 영국 시골 마을 패그포드. 평온해 보이지만 이 마을은 속으로 폭발 직전이다. 부자는 가난한 자, 십대 청소년은 부모, 아내는 남편, 교사는 학생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어느 날 패그포드 교구회에서 일하는 40대 초반의 남자 배리 페어웨더가 갑자기 사망한다. 페어웨더가 남긴 교구회의 자리를 놓고 치르는 선거에서 사람들은 서로 격렬한 다툼을 벌이고, 광기와 예기치 못한 폭로가 마을을 뒤덮는다. 영문 480여 쪽 분량으로 가격은 20파운드(약 3만6500원·하드커버 기준). 전자책과 오디오북도 함께 나온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200여 국가에서 4억5000만 권 이상이 팔린 터라 ‘캐주얼 베이컨시’의 판권을 놓고 국내 출판사들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롤링은 에이전시를 두지 않고 직접 국내 출판사들과 접촉하는데, 지난달 초 첫 번째 제안서(판권료 제시 등)를 받은 뒤 추가로 마케팅 기획서를 받았다. 신작의 판권 계약자로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국내에 소개했던 문학수첩이 현재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의 판권료도 관심사다.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의 소설 판권료가 105만 달러(약 11억8000만 원),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110만 달러(약 12억4000만 원)인 것으로 전해졌는데 출판계는 롤링의 신작이 이 기록을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작가에게 판권료 100만 달러(약 11억2000만 원)를 지급할 경우 40만∼50만 권 이상 판매해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 판권 경쟁에 나섰던 한 출판사 대표는 “우리를 포함한 여러 출판사가 하루키 작품 이상의 판권료를 제시했지만 계약을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계약이 이뤄진다면 판권료가 13억원을 훌쩍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지난해 한 대학의 인문학 강좌에서 철학자 강신주가 시를 읽자 강연장은 술렁였다. 이 시는 김수영이 1960년대에 쓴 ‘김일성만세’. 강연자가 “4·19혁명 이후 등장한 장면 민주당 정권이 이승만 독재 정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적으로 묘사한 시”라고 설명한 뒤 “국어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하자 그제야 청중은 ‘안도’했다. 저자는 말한다. 김수영이 50년 전에 도달한 자유로운 인문정신에 아직 우리가 다가서지 못했다고. 우리는 내면에 모종의 검열체계가 작동하는 한계에 아직 사로잡혀 있다고. 강신주가 김수영의 삶과 문학, 그리고 인문정신을 짚어본 책. ‘평론이 아니라 인문학적으로 김수영을 조명한다’는 취지는 신선하나, ‘자유’ ‘불온’ 등 기존 김수영 담론을 벗어난 새로운 시각을 찾기 어렵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문학 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손보미 외 지음·문학동네)=올해 젊은작가상을 받은 단편 수상작들을 모았다. 대상을 받은 손보미(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를 비롯한 7명의 작가들은 모두 20, 30대. 차세대 한국 소설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책값도 저렴하다. 5500원. 나 한 사람의 전쟁(윤성근 지음·마음산책)=대장암으로 투병하다 지난해 4월 세상을 떠난 윤성근 시인의 유고 시집. 죽음을 예감하며 담담히 써내려간 시 ‘고해’ ‘암병동’ ‘물통’ 등이 담겼다. 8000원. 1994년 어느 늦은 밤(유현산 지음·네오픽션)=1994년 세상을 놀라게 했던 지존파 사건을 모티브로 쓴 장편소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낸 청년들이 가상의 조직인 세종파를 결성해 폭력을 통해 사회에 분노를 표출한다. 1만3000원. ○ 인문·교양 처음 만나는 우리 문화(이이화 지음·김영사)=단군왕검은 왜 뾰족한 빗살무늬토기에 밥을 지었을까? 아리랑은 언제부터 한반도에서 불렸을까? 대중과도 친숙한 역사학자의 쉽고 친절한 해설이 한민족의 근원부터 근대 문화까지 폭넓게 펼쳐진다. 1만5000원. 뉴욕의 특별한 미술관(권이선 외 지음·아트북스)=뉴욕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들이 뉴욕현대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뉴욕 미술관 7곳의 역사와 관람 포인트들을 찬찬히 짚어준다. 2만 원. 중국공산당은 어떻게 성공했는가?(셰춘타오 지음·한얼미디어)=중국 공산당은 농업인재 육성과 영농 과학 투자로 13억 인구의 식량난을 헤쳐 나갔고, 단순한 개혁 개방이 아닌 외국 선진 기술 습득으로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중국 공산당의 성공 비결을 풀어냈다. 1만8000원. ○ 학술동서철학의 충돌과 융합(송영배 지음·사회평론)=동양과 서양의 첫 조우인 마테오 리치의 중국 선교.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당시 동서 사상의 첫 만남을 마테오 리치의 행적을 꼼꼼히 짚어가며 그가 도덕형이상학의 지배를 받던 중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2만5000원.미쩰의 시기-을미사변과 아관파천(김영수 지음·경인문화사)=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외교문서를 활용해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을 분석했다. 기존 일본 자료에 기초한 연구가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을 단순한 정권쟁탈전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2만3000원.김유정의 귀환(김유정학회 지음·소명출판)=김유정의 작품 혹은 이를 기반으로 재생산된 문화콘텐츠를 이야기체로 풀어낸 학술서. 김유정 소설의 추리 서사적 기법, 그의 소설에서 나타난 폭력의 구조, 부부윤리, 여성인물과 정조(貞操) 등을 다룬다. 2만2000원.○ 실용·기타 조선의 프로젝트 매니저(김덕수 외 지음·행복한미래)=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시간과 자원을 최적으로 분배하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의 시각에서 성웅 이순신의 6대 해전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1만5000원. 디자인 다지기! 리서치 발전소(나건 지음·비쥬얼스토리공장출판부)=디자인할 대상을 연구해 이를 디자인에 접목하는 ‘디자인 리서치’ 과정을 설명한 뒤 그 사례를 풀어냈다. 1만5000원. 구석기 다이어트(로렌 코데인 지음·황금물고기)=원시인처럼 먹으면 살이 빠진다? 칼로리를 일일이 따지지 않고 육류와 채소를 마음껏 먹되 되도록 가공식품 섭취는 피하는 다이어트법을 제시한다. 1만3800원.}

서점에는 갖가지 여행서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내용을 짚어보면 아쉬움이 들기 십상이다. 사진을 빼곡히 싣고 여정을 단순히 되짚어보는, 개인적 블로그에나 어울릴 법한 내용에 그치는 책이 많기 때문이다. 간접경험이나 대리만족을 줄 수는 있겠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사진 정도가 눈에 아른거릴 뿐이다. 책을 읽었다면 가슴에 남는 몇 줄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여행서는 반갑다. 박범신 김용택 강은교 조정래 이문열 김탁환 김주영 이순원 하성란 함민복 하일지 구효서 성석제 정호승 고은. 한국 문단의 주춧돌 같은 문인 15명이 쓴 여행기다. 이들이 출연했던 SBS ‘감성여행’의 방송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기행문에 시와 소설의 구절들을 추가해 사색의 깊이를 더했다. 무엇보다 이들과 여행을 함께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문인들의 솔직담백한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좋다. 지도와 함께 넣은 여행정보도 쏠쏠하다. 전남 완도군 청산도를 찾은 박범신은 해안 산책로를 걸으며 “여행이 좋은 건,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해야 하는 일상과 달리, 그저 가슴으로 느끼면 되는 ‘일탈’의 편안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강원 인제군 은비령을 찾은 이순원은 ‘걷는 여행’의 의미를 짚는다. “걷다 보면 인생을 배운다. 내가 발을 내딛지 않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길이든 목적지가 아니라, 걷는다는 행위에 집중하게 되고, 그렇게 느리게 걸으며 온몸으로 열심히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문인들은 언뜻 평범해 보이는 대상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한다. 같은 장소, 사물이라고 해도 이들의 안목을 거치면 달리 보인다. 강원 양양 5일장을 찾은 강은교는 생선 좌판을 둘러보고는 이렇게 적었다. “사람들이 식탁 앞에 앉아 열심히 오늘을 살아갈 힘을 숟가락질하는 동안,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눈을 감지 못한 갈치와 은대구와 고등어는 눈 속에 바다를 담고 있다.” 하성란은 경남 거제시 지심도의 푸른 앞바다에서 희망을 읽는다. “찬란한 지심도의 햇살이 우리를 향해 박수를 보낸다. 잘 견뎌 왔으니 지금이 있는 거라고/…/파도에 깎이고 물거품이 되는 순간에도 인내와 단련 속에 소망은 빚어지는 거라고.” 여행은 사람을 너그럽게 만든다. 문인들이 잘 하지 않던 얘기들도 여행을 떠나서는 술술 풀어냈다. 경주 읍천 마을을 찾은 함민복 시인은 25년 전 인근 월성원자력발전소를 다닐 때 친구 5명과 합숙하며 습작했던 추억을 털어놓는다. 전북 김제시 금산사 뒤편 연리지(일명 ‘사랑의 나무’) 숲을 찾은 조정래는 아내(김초혜 시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글을 써놓고 나면, 아내가 가장 먼저 그 글을 읽어보고 불완전한 부분을 끄집어낸다. 그러면 나는 굉장히 화를 낸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기분 나쁜 일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평생 그 일을 계속해 주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아내를 사랑할 것이다. 나는 온전히 김초혜만의 남자니까.”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 자 한 자 눌러쓴 한글 시들로 생애 첫 시집을 내는 미국인 시인이 있다. 이달 말 나오는 시집의 이름은 ‘판문점에서의 차 한잔’(시와시학·사진), 시인은 테레사 현(현태리) 캐나다 요크대 인문학부 교수다. 1990년대 초부터 한글 시를 쓰기 시작했고, 2003년 시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대학 특강 등을 위해 2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시인은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기자에게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봄인 줄 알았더니 벌써 여름이네요. 벚꽃이 벌써 다 져서 아쉬워요. 봄이면 벚꽃을 보러 여의도에 가곤했는데….” 지는 벚꽃을 아쉬워하는 그에게서 한국적 정서가 물씬 풍겼다. 나이를 물었더니 “시인에게 나이는 없어요”라고 했다. “어느 한국 시인이 한 말이에요. 멋진 말이죠. 저도 나이는 얘기 안 할래요.” 이국의 시인은 한국에서 시를 배우며 시인의 신비주의까지 익힌 듯했다. 미국 뉴욕주립대를 졸업하고 아이오와주립대에서 프랑스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시인은 1984년부터 8년간 경희대에서 프랑스문학 교수로 강단에 섰다. 비교문학에 관심이 많은 그는 자연스레 한국문학을 접하고 문인들과 교류했다. “한국에는 좋은 시가 아주 많아요. 한국은 ‘시인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매일 한 편 이상 한국 시를 읽으려고 하죠.” 캐나다로 간 뒤에도 그는 매년 여름 한국을 찾아 문인들을 만났고, 고은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고은 선생님은 학회나 세미나에서 여러 번 뵈었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등단 기회를 주시면서 ‘앞으로는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죠.” 30년 가까운 한국과의 인연 때문일까. 그의 시는 외국인이 썼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한국적 정서가 흠뻑 묻어난다. 실향민의 아픔을 그린 표제작 ‘판문점에서의 차 한잔’이 특히 그렇다. ‘관광객 꽉 찬 휴게소/오랜만에 형제끼리/모였다/진달래 활짝 핀 봄날 오후//인파의 소용돌이 속/큰형님 창밖을 내다본다/…저 북쪽 흐린 하늘/보이지 않는 얼굴/…아직도 살아 있을까//두런두런 이야기들 하는데/큰형님 훌쩍 마시네/눈물 한잔’ 요크대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현 시인은 전 세계로 확산되는 한류가 반갑다고 했다. 1992년 한국 관련 강의가 개설될 때만 해도 수강생이 4, 5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제 시집을 영어권에서도 출간해 한류를 확산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쓸 겁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912년 2월 5일 전남 광주군 사동 134(현 광주 남구 사동)에서 태어난 정소파 시조시인이 올해 100세를 맞았다. 문단 최고령인 시인은 지금도 ‘늘 하던 대로’ 새벽에 일어나 작품 구상을 하고 아침을 먹은 뒤 시와 시조를 쓴다. 많을 때는 하루 세 편도 너끈하다. ‘하늘이 내려준 나이’라는 상수(上壽)를 맞았지만 그의 글쓰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 시인은 ‘2012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 1912년생 동갑 문인인 백석 설정식 김용호 이호우와 함께 기념 대상 작가로 선정됐다. 다음 달 3일부터 서울 교보빌딩 등에서 열리는 이 문학제는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인들의 업적을 돌아보고 기념하는 행사로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고 서울시가 후원한다. 2001년 문학제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80명이 넘는 문인을 조명했지만 생존 작가가 선정된 것은 정 시인이 처음이다. 1930년 열여덟의 나이에 잡지 ‘개벽’에 시조 ‘별건곤’을 발표한 정 시인은 1957년 마흔 다섯의 나이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됐다. 시조집 ‘산창일기’, 시집 ‘마을’, 동시집 ‘정소파 동요동시집’ 등을 펴냈다. “100세가 됐다는 사실에 특이한 감정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늘 하던 대로 작품을 쓰고, 읽고 싶을 뿐이지요.” 이달 5일 광주 자택을 찾은 김남규 시인은 정 시인이 청력이 약해졌을 뿐 별다른 지병이 없고 정정했다고 전했다. 송정공립보통학교와 일본 와세다대 문학과를 졸업한 정 시인은 “일본에 하이쿠가 있듯이 우리 문학으로서 현대화된 시조를 써야겠다는 욕심으로 시조를 쓰기 시작했다”면서 “누구나 한번은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만 능력이 없으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요즘 시조시인들은 형식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3장 속에 있는 오묘한 리듬 또한 잘 모릅니다. 오래 써야만 비로소 리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뜻을 둔 사람들이 형식을 제대로 지켜야 합니다.” 집으로 오는 문학지와 시집을 모두 꼼꼼히 읽는다는 정 시인은 ‘호남시조문학회’를 이끌며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하고 있다. 백 살 시인의 문학애는 여전히 뜨겁다. “시집 내기에는 늦은 나이지만 그래도 죽을 때까지 써야지요. 시작(詩作)은 제게 하나의 종교가 됐기 때문입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진 마을 하라에 사는 열 살 소년 프롬사는 하굣길에 끔찍한 일을 당했다. 들판을 서성이던 하이에나 3마리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프롬사는 비명을 질렀고 엄마와 동네 사람들이 달려왔다. 무기를 든 동네 사람들은 하이에나 한 마리를 죽인 끝에 크게 다친 프롬사를 겨우 구해냈다. 상처는 처참했다. 오른쪽 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양쪽 허벅지의 살점도 뼈가 보일 만큼 떨어져 나갔다. 함께 공격을 받은 두 친구는 목숨을 잃었다. 최근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명성기독병원 중환자실에서 만난 프롬사는 힘겹게 기자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두 차례 대수술을 받은 그는 앞으로 최대 열 차례 더 수술을 받아야 한다. 가난한 프롬사 가족을 위해 병원은 수술비를 받지 않았고 향후 지원도 약속했다.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꼽히는 에티오피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0달러(약 35만 원) 수준. 1000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75명은 질병과 가난으로 숨지고, 5세 이하 아동 가운데 저체중아 비율도 34.6%에 달한다. 평균 수명은 56.6세에 그친다. 가난은 가벼운 질병의 예방과 치료마저 힘들게 만든다. 입원실에는 머리 속에 물이 차는 뇌수종에 걸려 머리가 농구공만 해진 아이들이 힘없이 누워 있었다. 엄마가 임신 중에 엽산만 제대로 챙겨 먹어도 뇌수종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지만, 하루 3비르(약 210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심각한 영양실조는 아이들의 얼굴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저항력이 떨어져서 입속 세균이 얼굴을 파먹어 들어가는 질병 ‘노마’에 걸린 아이들은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2004년 11월 25일 개원한 이 병원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신경과 등 12개 부문에서 35명의 의사, 115명의 간호사가 일하고 있다. 병원 진료 시간이 1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외래진료실 앞에는 30여 명의 환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인기가 높은 까닭은 현지의 다른 병원보다 의료 수준은 높지만 진료비는 30%가량 저렴하기 때문이다. 치료비를 감당하기 힘든 환자들의 진료비를 감액하거나 면제해 주기도 한다. 지난해 400만 달러(약 45억4000만 원)의 매출을 올린 이 병원은 수익 40만 달러(약 4억5000만 원)를 무료 진료에 고스란히 내놓았다. 병원은 현지인들로부터 ‘코리안 하스피털’로 불린다. 명성교회가 지은 병원이지만 한국 정부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병원은 6·25전쟁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에게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참전용사의 부인도 병원비의 절반만 내면 된다. 참전용사의 자녀는 우선적으로 병원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6037명의 에티오피아 군인이 참가해 122명이 사망했고 536명이 부상을 당했다. 20대의 청년들은 어느새 80대 할아버지가 됐다. 12일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6·25전쟁 에티오피아 참전용사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멜라세 테세마 협회장은 “전우들 가운데 450여 명이 살아 있다. 우리에게는 의료 서비스가 절실한데 (명성기독병원이) 무료 진료를 해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며 웃었다. 종교적 신념과 인간애를 앞세워 병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의료 기기와 의료진의 부족 같은 현실적 고충은 피할 수 없다. 김철수 원장(57)은 “산소호흡기가 6대 있는데 환자가 몰려서 모두 호흡기를 달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내시경도 기기는 있지만 다룰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해 24시간 진료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국내 의료계의 관심을 당부했다. 9월 병원 옆에는 명성의과대가 개교한다. 한 학년 30명 정원으로 절반의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줄 예정이다. 일시적 진료 봉사가 아니라 진료할 현지 인력을 키우는 근본적인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의과대 졸업생들은 향후 에티오피아 의료의 발전을 이끌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세브란스병원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병원을 에티오피아인들의 손에 넘겨줄 예정입니다.”(김철수 원장)아디스아바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지난해 1월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 선생(1931∼2011)의 마지막 강연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영인문학관에서 열렸다. 2010년 6월 19일 고인은 이곳에서 단편 ‘환각의 나비’에 대해 얘기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이었지만 청중은 강연장을 가득 채웠다. 강연이 끝나고 문을 나서는 박 선생의 등에 무심코 손을 댔던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순간 깜짝 놀랐다. 그의 몸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텅 빈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치명적 병환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미 몸 안에서 암종이 생명을 축내기 시작한 지 오랜데 당신도 우리도 전혀 눈치 못 챈 것이다. 그리고 반년 만에 선생님은 가셨다….” 강 관장은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5월 4일부터 6월 30일까지 영인문학관에서는 ‘엄마의 말뚝―박완서 1주기전’이 열린다. 선생의 1주기(1월 22일)에 맞춰 열 예정이었지만 운영비 문제로 뒤늦게 열게 됐다. 영인문학관이 보관하고 있는 고인의 자료에 유족이 대여해준 자료를 보태 200여 점이 전시된다. 처음 공개하는 자료들도 여럿 눈에 띈다. ‘아이고 하느님!’ 등 고인의 육필 원고, 자녀들과 문인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 조각가 이영학 씨가 빚어낸 고인의 청동 두상 등이다. 평소 입었던 옷과 사용했던 그릇, 가위, 호미, 재봉틀 등 고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물품들도 공개한다. 놀랍게도 동영상 자료도 있다. 선생과 남편 호영진 씨(1988년 작고)의 1953년 결혼식 영상이다. 전쟁으로 피폐했던 이 시기에 국가나 기관이 아닌 개인 행사의 동영상 기록을 남긴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초소형 6mm 필름으로 촬영했으며 길이는 5분여 분량이다. MBC가 최근 디지털 복원을 마쳐 이번 전시에서 직접 영상을 볼 수 있다. 고인의 장녀인 호원숙 씨의 기억은 이렇다. “아버지는 엄마가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해주셨고, 최고로 만들고 싶어 하셨다. 그 당시 고급 중국요리집인 소공동 아서원에서 결혼식을 올리셨는데 영상을 찍어 남겨 놓으셨다. 아버지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엄마와의 결혼을 위해 전 재산을 쏟아 부으신 것은 엄마의 글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문인들은 대체로 자신의 기록을 남기는 데 인색한 경우가 많다. 박완서 선생의 자료들이 이만큼이나 남은 것은 역설적으로 버리고 치우기 좋아하는 고인의 성격 때문이었다. “엄마는 버리는 것을 좋아하셨다. 몸에 기운은 빠져 보이지만 얼굴은 맑고 개운한 표정으로 빛나 보일 때는 으레 물건을 정리하고 잔뜩 버린 뒤였다. 엄마는 보자기에 싼 옷이나 책을 ‘너 좀 가져가라’ 하시며 주시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집엔 엄마의 물건이 쌓이게 됐다.” 1970년 여성동아 여류장편 소설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며 마흔 나이에 등단한 고인은 1남 4녀를 키우며 작품 활동을 했다. 글쓰기와 가사의 병행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대 후반 서울 보문동 집에 살 때 딸에게 점심을 차리라고 흘려 써 놓고 간 메모에는 급하게 외출하면서도 아이들 걱정에 요리법을 자세히 적고 있는 고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수제비 반죽을 해 놓았으니 떠먹어라. 수제비 뜨는 법은 먼저 국이 팔팔 끓거든 손으로 얄팍얄팍 떠 넣는데, 찬물을 한 공기 마련해 놓고 손에 물을 묻혀가며 뜨면 반죽이 손에 묻지 않는다. 다 뜨거든 국자로 한번 저어서 서로 붙지 않게 하고 뚜껑 덮어서 한번 끓여라. 곧 먹을 수 있다.’ 영인문학관에서는 박완서 1주기전에 맞춰 다른 작가들의 애장품도 공개한다. 최인호의 촉이 비뚤어진 만년필, 김훈의 몽당연필, 윤후명의 엉겅퀴꽃 그림, 이근배의 벼루 등을 함께 전시한다. 02-379-3182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7년간 일한 뒤 태국으로 돌아간 사욍 씨는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70만 원의 적은 월급을 받아 목돈을 모으지 못한 데다 부인과 불화가 생겨 이혼했기 때문이다. 필리핀 여성 리아 씨는 한국에서 7년간 일하며 홀어머니와 여동생, 언니까지 부양한 뒤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가족이 그를 위해 남겨둔 돈은 거의 없었다. 남은 것은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긴 나이뿐이었다. 시인이자 인권운동가인 저자가 한국에서 일하다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추적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문학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유로)=독일 문학의 전성기인 소위 ‘괴테 시대’에 등장했으나 문학사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프리드리히 횔덜린(1770∼1843)의 대표 시선집. 104편의 시를 실었다. 장영태 홍익대 명예교수가 번역했다. 2만5000원.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장석주 지음·21세기북스)=청춘과 중년에 낀 ‘방황하는 서른’을 위로하는 책. 중견 시인이자 평론가인 저자가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는 시와 함께 세상을 조금 여유롭게 보는 시각을 제안한다. 1만5000원. ○ 인문·교양 물구나무 서는 여자(개리 스몰 지음·파이카)=발가벗고 물구나무 서는 여자, 자신의 페니스가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하는 남자….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30여 년간 상담한 환자들 중 인상적인 사례들을 풀어놓았다. 1만5000원. 레드 머니(쑨지엔, 송메이리 지음·더난출판)=금, 파운드, 달러 등 기축통화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며 중국 위안화의 국제화가 가능할 것인지, 가능해진다면 세계 경제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분석했다. 2만 원. ○ 학술 화이부동의 동아시아학(심재훈 엮음·푸른역사)=한국에서의 동아시아학이 국제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에 초빙된 해외 석학들의 강연 원고를 토대로 엮었다. 2만 원.양자역학의 역사와 철학(김유신 지음·이학사)=정보통신혁명의 토대가 되는 양자역학의 발전 과정을 아인슈타인, 보어 등 천재적 물리학자들의 논쟁을 바탕으로 소개한다. 물리학 철학 역사를 버무린 융합연구의 산물. 2만7000원.○ 실용·기타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한혜경 지음·샘터)=100세까지 살아갈 일명 ‘호모헌드레드’ 시대를 맞아 은퇴 후 행복한 삶을 위한 23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1만4000원.예술가의 인테리어(프란체스카 가빈 지음·1984)=베를린 바르셀로나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 세계 각지에 있는 예술가의 집 30곳을 풍부한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이들의 집은 주인의 창작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만3000원.긍정심리학의 행복(우문식 지음·물푸레)=‘행복도 과학’이라는 저자가 행복을 찾기 위한 9가지 과학적 도구를 소개하고 행복을 연습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인생 곳곳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행복을 추구해온 저자 자신의 이야기도 곁들였다. 1만7800원.}

《시인들에게는 자신만의 문학적 곳간이자 삶의 휴식처인 곳이 있다. 김용택 시인에게 그곳이 섬진강이라면 곽재구 시인에게는 와온 마을이다. 2001년 3월 전남 순천시 상내리 와온 마을을 처음 찾은 곽 시인은 그 자그마한 바다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형형색색으로 변해가는 와온의 노을은 드넓은 하늘에서 개펄에 있는 작은 물웅덩이까지 지천에 흩날리는 꽃밭으로 만들었다. 시인은 이곳을 ‘정서적인 고향’으로 삼았다. 그러던 그가 2009년 7월 훌쩍 인도로 떠났다. 문청(文靑) 시절 경도됐던 시성(詩聖) 타고르의 고향인 산티니케탄을 찾아가 1년 반을 보냈다. 그가 체험적이자 영적이기도 한 시간들을 한 권의 시집으로 녹여냈다.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1999년) 이후 13년 만에 나온 반가운 시집이다. 와온과 인도에서는 같은 해와 달이 떠 시인을 맞았다. 그 속삭임은 잔잔하고 깊었다.》‘해는/이곳에 와서 쉰다/전생과 후생/최초의 휴식이다//…//달은 이곳에 와/첫 치마폭을 푼다/은목서 향기 가득한 치마폭 안에 마을의 주황색 불빛이 있다’(시 ‘와온 바다’ 중) ‘해는/달 속에서 뜨고/달은/해 속에서 뜨고/해는 솟아올라/저무는 달에게/챔파꽃 레이를 걸어주고//달은 솟아올라/저무는 해에게/라마야나 이야기를 들려주네’(시 ‘산티니케탄’ 중) 시인은 시집 ‘사평역’(1983년)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일생을 섬세한 시어들로 형상화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인도에서 만난 빈자(貧者)들에게도 그 정감 어린 시선은 여전하다. 평생 기차역 근처에도 못 가본 찻집 여종업원, 5개월은 그림을 그리고 한 달은 그림을 팔러 떠도는 화가들이 시어로 살아났다. 시인은 이들을 ‘적빈’으로 칭한다. 보통 ‘적빈(赤貧)’은 ‘몹시 가난하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적빈(寂貧)’으로 바꿔 부른다. ‘고요하고 적막하게 가난’, 그 속에서 세상 이치를 깨달아가는 ‘은자(隱者)’의 이미지다. ‘낡을 대로 낡은 그림 가방을 등에 메고/그가 석양 속으로 떠나는 동안/시를 쓰고 살았다는 지상의 내 이력이 부끄럽고 부끄러웠다’(시 ‘화가’ 중) ‘풀들이/제 몸 끝에/별 하나씩 붙들고/이승의 끝까지 걸어간다/순례자가/오체투지를 멈추고/얼굴을 풀밭 위에 부빈다/풀과 인간이/함께 껴안고/우는 아침’(시 ‘적빈 7’ 전문) 10년 넘게 시집을 내지 못했던 고난한 시업(詩業)의 짐을 인도에서 잠시 내려놓은 시인은 “그들의 맑은 눈망울과 따스한 마음이 없었으면 이 시집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며 감사 인사를 전한다. 하지만 시인이 인도에서 보낸 긴 시간과 상념이 다음과 같은 시로 피어났기에 시인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진다. ‘미스티 가게 앞/자전거를 멈춘 연인들은//세월이/잠시 그들 곁에/멈춘 것을 알지 못하지//페달 위에 올려진/푸른 밤의 발 하나//죽은 시인의 언어들이/페달 위에서 가벼운 탄식을 올리는 동안//남은 한발이/지상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와 입맞춤하네’(시 ‘우리 곁을 흘러가는 따뜻한 일초들’ 중)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남북한 통일은 세계 평화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세계의 교회들이 부산에 모여 어떻게 남북한 문제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년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WCC) 10차 총회가 열린다. 1948년 창설된 WCC는 교파나 교단의 차이를 넘어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결속을 도모하는 ‘에큐메니컬 운동’ 협의체로 110개국 349개 교단이 회원이다.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등 4대 교단이 속해 있다. 14일 스위스 제네바 WCC본부에서 만난 올라브 s세 트베이트 WCC 총무(사진)는 “7년마다 열리는 총회는 세계 기독교를 가장 광범위하게 대표하는 자리다. 총회가 부산에서 열리는 것은 상징성이 크다”며 그 세 가지 의미를 소개했다. “첫째는 총회를 통해 한국 내 교회들의 이해와 협력이 증진되기를 기대합니다. 또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이 있는 공간에서 세계의 여러 교회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도전에 대해 얘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종교 사회인 한국을 통해 종교 간의 건전한 관계 유지에 대해 토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년 부산 총회에는 해외 기독교인 약 5000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회에선 예배와 기도, 세미나와 워크숍 등이 열리며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는 국내외 기독교인들의 소통의 장으로 꾸려진다. 트베이트 총무는 “부산 총회는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창이나 문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한국 교회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시각이 있는데, 세계 교회를 바라봄으로써 시각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산 총회는 1961년 인도 뉴델리 총회 이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열린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인구가 성장하고 발전 속도도 빠릅니다. 아시아의 교회들도 역동성이 두드러지며 세계 교회의 성숙과 성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WCC는 보수 기독교계로부터 ‘공산주의를 포용하고 지지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트베이트 총무는 “어느 개인이나 단체를 범주화하고, 색깔을 칠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못하다. WCC의 기본적인 관심사는 항상 정의와 평화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트베이트 총무는 6월 방북해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부산 총회 참석을 타진하려고 했지만 북한이 불허해 가지 못했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은 1991년 호주 캔버라 대회부터 3회 연속 총회에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참석이 불투명하다. 그는 “최근 방북에 대해 북한 측으로부터 부정적인 회신을 받았지만 아직 확실하게 북한의 참석 여부에 대해 확정짓기 어렵다”며 북한이 참가하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제네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 된다. 그렇다구 또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둥글고 커단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밥술이나 톡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김유정의 단편 ‘봄봄’에서 키가 작아 혼례를 못 치르고 있는 ‘점순이’를 설명한 대목이다. 점순이는 단편 ‘봄봄’뿐만 아니라 ‘동백꽃’에도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순박하고 건강한 시골 처녀의 모습이다. 점순이와 닮은 인물을 선발하는 대회 ‘점순이를 찾습니다’가 열린다. 27일부터 3일간 강원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 문학촌에서 펼쳐지는 ‘2012 김유정 문학제’에서다. 여느 미인 대회와는 성격이 다른 이 대회의 선발 기준은 이렇다. ‘키는 작지만 야무지고 당찬 캐릭터 이미지의 여성을 선발한다.’ ‘봄봄’의 점순이와 ‘동백꽃’ 점순이를 따로 뽑는데 우승자 2명은 상금 30만 원씩을 받는다. 문학촌 관계자는 “점순이 선발대회는 8년 정도 됐는데 매해 약 20명이 참가한다. 우선 외모가 점순이와 비슷해야 하지만 면접도 보기 때문에 김유정 문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닭싸움이 나오는 단편 ‘동백꽃’에서 착안해 ‘날아라 닭!’ 행사도 열린다. 일반인 참가자 20명이 마을 닭을 빌려 누가 닭을 멀리 날게 하느냐를 겨루는 대회다. 참가비는 1000원, 1등 상금은 10만 원. 주최 측은 닭의 비행 거리 50m 내외를 우승권으로 예상한다. 올해 10회를 맞은 김유정 문학제에서는 이 밖에도 ‘김유정 산문백일장’ ‘김유정 소설 입체낭송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시인 이상(李箱·본명 김해경·1910∼1937)은 ‘불우한 천재’로 알려져 있지만 학창 시절 그의 곁에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는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는데 당시 졸업생 69명 가운데 조선인은 17명이었다. 이상은 조선인 졸업 동기들과 그들만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1928년 가을부터 함께 사진을 찍고 인화해 수제 사진첩을 만들었다. 사진첩의 이름은 ‘추억의 가지가지’. 》이상의 졸업 동기였던 김희영이 쓴 1929년 2월 12일자 일기(서울대 기록관 소장)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하학 후에는 설경을 배경으로 앨범에 넣을 사진을 박히기 위하여 우리 일동은 낙산(駱山)으로 갔다. 사진인지 무엇인지 추워서 죽을 욕을 보았다. 우리는 다시 발길을 옮겨 탑동 공원에까지 왔다. 전번에 박힌 것이 잘못되었다 하여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김해경 군이 나보고 장가가라고 좋은 여염집 새악시가 있으니….’사진첩은 이상을 포함한 동기 17명이 나눠 가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은 문학사상사가 보관하고 있는 한 권뿐이다. 이상의 졸업 동기인 원용석이 1980년대에 기증한 것이다. 이상의 75번째 기일인 17일 이 사진첩이 처음 공개된다. 이날 오후 6시 반부터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 집 서울’에서 문학사상사 주관으로 열리는 ‘권영민의 문학콘서트’의 첫 회 ‘이상을 다시 만나다’에서다. 문학콘서트를 기획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김희영의 일기를 보면 이상이 직접 앨범을 만든 것으로 나와 있고, 사진첩 뒤의 주소록 필체도 이상의 것과 동일하다”며 “이상은 일일이 사진을 오려 붙이고 표지에도 글자와 함께 그림을 그려 넣는 등 앨범 제작에 애착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총 50여 장으로 만들어진 이 빛바랜 사진첩에는 장난스럽게 여성 한복을 입은 이상, 미술 전시실에 서 있는 이상 등 다양한 ‘청년 이상’의 모습이 등장한다. 졸업생들의 개인 사진이 각기 석 장씩 들어 있고, 서울 시내 고궁 등을 돌며 찍은 단체 사진도 있다. 사진첩의 앞부분에는 학교 사진과 교가를 넣었다. 권 교수는 사진첩의 사진을 일일이 스캔해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문학콘서트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콘서트에서는 소설가 김연수가 ‘내 문학 속의 이상’이란 주제로 강연한다. 김연수는 이과였던 고교 시절 이상의 ‘오감도’를 읽고 그 난해함에 매료돼 이상과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94년 등단 이후 이상의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장편 추리물 ‘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9년 단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제33회 이상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김연수는 “‘꾿빠이, 이상’은 고교 때부터 관심 있었던 이상이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소설로 푼 것이다. 콘서트에서는 집필 배경 등을 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상 시시비비(是是非非)’란 주제로 권 교수와 김연수, 문학평론가 함돈균, 안서현이 이상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가야금 연주자 이화영의 ‘한오백년―25현 가야금을 위한 변주곡’ 등 공연도 곁들인다. 권 교수는 “대중과 함께 수준 높은 인문학적 대화와 토론을 펼쳐 사회문화적 담론의 장에 인문학의 창조적 상상력과 새로운 정신을 불어넣기 위해 문학콘서트를 시작한다”며 “매월 초대 손님들과 함께 문인 한 명을 집중 조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유민문화재단(이사장 이홍구)은 제3회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자로 과학 부문에 김진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41)을, 사회 부문에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장(43)을, 문화 부문에 소리꾼 이자람 씨(33)를 각각 선정했다고 8일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 달 7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0만 원과 상패가 수여된다.}

총선이 코앞이다. 언론매체들은 선거 기사를 앞다투어 쏟아내며 판세를 전망한다. 유권자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후보와 정당 자료집을 받지만 선거보도가 물론 더 흥미롭다. 시시각각 상황이 변할뿐더러 정당과 후보들의 날 선 공방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실제 선거 상황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론이 선택하고 만들어낸 뉴스를 볼 뿐이다. 특히 선거에서 ‘어젠다 세팅(의제 설정)’을 하는 언론의 역할이 커진다고 책은 말한다. 1970년대 중요한 미디어 효과 이론 중 하나인 어젠다 세팅 이론을 주창한 저자가 1980, 90년대 미국 선거 당시 언론의 의제 설정 효과를 분석했다. 2004년 출간돼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변수는 분석에서 제외돼 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성석제가 돌아왔다. 9년 만에 장편소설을 들고서. 기대감이 컸다. 문단의 소문난 입담꾼인 그가 잔뜩 웅크렸다가 펴낸 장편이 어떨까 하는. 결론부터 말하면 의표를 치르는 해학이며 가슴 찡한 글발은 건재하다. 그렇다. ‘성석제 소설’이란 주식은 여전히 매력적인 문단의 우량주다. 지방 어느 궁벽한 강가에 세워진 사극 세트장. 드라마도 끝나고, 사람들의 관심도 식자 버려진 곳. 이곳에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지만 친척들의 횡령으로 빈털터리가 된 영필, 학교재단 이사장 부인이었지만 남편이 죽은 뒤 상속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소희,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새미와 자폐증이 있는 동생 준호…. 이들은 피가 아닌 정(情)으로 묶여 의지하고 사는 ‘가족’이 된다. 평온한 일상은 예기치 않게 틀어진다. 인근에 합숙소를 차린 조폭들이 우연히 ‘자연산 미인’인 새미를 추행하려다 부하 한 명이 준호의 급습에 부상을 입는다. 전국구 조폭의 자존심은 무참히 무너졌다. 두목인 정묵은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발대로 갔던 부하들은 소식이 없다. 외딴 곳이라 휴대전화도 불통이다. 후텁지근한 한낮의 더위. 짜증이 머리끝까지 오른 정묵은 부하들을 이끌고 공격에 나선다. 성석제표 웃음의 융단 폭격은 여기서 시작된다. ‘가족’으로 뭉친 강마을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분뇨나 고추, 잿물을 비닐봉지에 담은 ‘똥 폭탄’ ‘고추 폭탄’에 이어 말벌들을 풀어 조폭 십수 명을 간단히 제압한다. 힘의 역전과 의외성. 그리고 약자가 승리하는 통쾌함이 웃음과 함께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하지만 웃음이 다가 아니다. 아마도 소설의 결정적 장면을 꼽는다면 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 직전일 것 같다. 조폭 선발대를 재래식 화장실 구덩이에 빠뜨리는 데 성공한 마을 사람들은 삼겹살을 굽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연다. 어깨춤과 힙합, 강시춤에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몸짓까지. 한낮의 열기, 한계치를 넘은 취기. 작은 승리에 대한 기쁨과 다가올 더 큰 공격에 대한 불안감 속의 몽환적 축제이자 제의(祭儀). 엉뚱한 상황에 처음에는 키득키득 웃지만 이내 뭔지 모를 비감(悲感)이 치올라와 가슴이 찌릿해진다. 한바탕 소동의 끝과 함께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열병을 앓은 듯 노곤하게 피곤해지기는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만큼 작가의 필력은 속도가 빠르고 집중도가 높다. 기분 좋은 피곤함이다. 다만 성석제의 장편을 오래 기다린 독자들에게 220쪽 남짓한 짧은 소설 분량은 성에 안 찰지도 모르겠다. 공깃밥을 절반 비웠을 때 밥상을 치운 느낌이랄까. 오랜만에 장편을 낸 성석제는 “좀 부자가 됐다는 느낌”이라며 웃었다. “장편을 쓰고 싶은 욕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작품이 나를 뚫고 흘러내리길 기다렸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