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의 재떨이… 모윤숙의 책상… 얼마만큼의 ‘고뇌’가 녹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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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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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문인 13인의 일상 엿보기… 영인문학관 14일부터 전시회

모윤숙 시인이 집필에 사용한 책상.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14일부터 열리는 ‘글을 담는 반짇고리’전은 여성 문인 13명의 일상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모아 전시한다. 영인문학관 제공
모윤숙 시인이 집필에 사용한 책상.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14일부터 열리는 ‘글을 담는 반짇고리’전은 여성 문인 13명의 일상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모아 전시한다. 영인문학관 제공
소설가 손소희(1917∼1987)가 1979년부터 문학사상에 연재한 ‘한국문단 인간사’를 보면 문인의 성정과 일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하는 ‘사슴’의 노천명 시인(1912∼1957) 집을 방문한 이야기 중 일부는 이렇다.

“‘어서들 와, 좀 늦었잖아.’ 노천명 씨는 약간 코 먹은 소리로 활짝 웃으며 우리들을 맞았다. 그 집이 어디쯤에 있었는지는 잊었지만 아래층에는 온돌방 두어 개가 있고 위층도 있는 작지 않은 규모의 집이었다. 일행은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처럼 떠들어댔다.”

소설가 손소희의 사슴을 탄 소녀 그림. 노천명에 관한 연재글을 쓰면서 함께 그린 삽화다. 영인문학관 제공
소설가 손소희의 사슴을 탄 소녀 그림. 노천명에 관한 연재글을 쓰면서 함께 그린 삽화다. 영인문학관 제공
손소희는 연재 글에 사슴을 탄 소녀의 삽화를 그린 뒤 이렇게 덧붙였다. “그녀(노천명)는 이상이 높아 슬픈 시인이었고 다정해서 외로운 여인이지 않았을까.”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이 14일부터 11월 3일까지 여성 문인 13명의 자료들을 모은 전시회 ‘글을 담는 반짇고리’를 연다. 손소희가 노천명을 두고 쓴 연재글부터 기사와 사진, 초상화, 원고, 그리고 여성 문인들의 체취가 담겨 있는 옷, 스탠드, 액세서리 등을 선보인다. 모윤숙이 앉아 글을 쓰던 책상과 스탠드, 한무숙의 오래된 ‘싱거 미싱’과 받침대, 그리고 박경리가 썼던 찻잔, 재떨이 등에서 작가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박경리 작가가 2001년에 쓴 소설 ‘토지’ 의 육필 서문.
박경리 작가가 2001년에 쓴 소설 ‘토지’ 의 육필 서문.
1969년 시작해 1994년 완간된 ‘토지’의 ‘서문 변천사’를 통해 박경리의 고뇌를 읽을 수도 있다. 1979년 서문에서 “배수의 진을 치듯이 절망을 짊어짐으로써만이 나는 차근히 발을 내밀 수가 있었다”고 당차게 말했던 작가는 2001년 서문에서는 이렇게 부담감을 내비쳤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동안 ‘토지’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싫었으며 잊어버리고 싶었다.”

나혜석(1896년생)부터 김남조(1927년생)까지 여성 문인들의 손길에 닳고 닳은 물품들엔 이들이 지내온 격동의 현대사가 투영돼 있는 듯하다. 전시 기간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강연회가 열린다. 15일 첫 번째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가 ‘한국 여성문학의 방향’을 강의한다. 3000∼5000원. 02-379-3182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영인문학관#여류문인전#박경리#모윤숙#노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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