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2015년 을미(乙未)년 마지막 달인 12월. 한국인 상당수는 “그리 행복하지 않다”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한강의 기적’이 상징하는 고도성장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2%대로 주저앉았다. 지속적 경제성장을 포기할 순 없지만 물질적 행복만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시대인 것이다. 성장의 새로운 단계를 앞둔 현재, 한국인의 주관적인 행복을 면밀히 측정하고 이를 개선할 행복정책 개발과 사회문화 변화가 절실하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이런 취지에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길을 찾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인 딜로이트컨설팅과 ‘동아행복지수(동행지수)’를 개발해 한국인의 행복을 조사했다. 본보는 올해 4월 1일 창간 95주년을 맞아 ‘엄마의 행복’을 주제로 ‘2020 행복원정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번에 조사된 평균 동행지수는 57.43점(100점 만점 기준)으로 낙제점에 해당하지만 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는 2020년까지 매년 동행지수를 점검하고 이를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과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봉사활동을 하는 저소득 집단(월 300만 원 미만·62.58점)이 봉사를 하지 않는 고소득 집단(월 300만 원 이상·55.51점)보다 동행지수가 7점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결과를 주목한다. 동아일보는 이처럼 한국인의 삶에서 돈 외에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행복의 비밀을 찾아내 한국인을 위한 맞춤형 ‘행복 10대 제언’을 제시할 계획이다. 한국 사회의 주축이 될 30대의 동행지수는 53.73점으로 20대(55.06점)는 물론이고 모든 조사 연령대(20∼50대)에서 가장 낮았다. 이번 분석에 참여한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6일 “한국의 30대는 초라한 현실의 모습과 이상적인 자아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점점 불행해지는 이른바 ‘쇼윈도 세대’가 됐다”고 분석했다. 특별취재팀△정치부=김영식 차장 spear@donga.com△산업부=정세진 기자 △정책사회부=유근형 기자 △스포츠부=정윤철 기자 △국제부=전주영 기자 △사회부=박성진 기자}

동아일보의 ‘동아행복(동행)지수’는 소득 직장 연령 등 객관적 지표를 토대로 개인의 심리적 안정과 인간관계 건강 등 주관적 요소를 포함해 개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유엔 등이 발표하는 기존 행복지수는 상당 부분 국내총생산(GDP) 같은 거시경제 지표를 바탕으로 평가한다. 이는 국가 간 비교에는 적합하나 실제 한 나라 국민 개개인의 심리와 행복을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근 개인의 주관적인 행복을 측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단순히 ‘행복하십니까’ 등 기분이나 상태를 묻는 방식이어서 전날의 감정 상태가 반영되곤 했다. 동행지수 개발은 딜로이트컨설팅과 박도형 국민대 교수(경영정보) 연구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분석업체인 씨이랩의 협업으로 3단계로 진행됐다. 우선 개인의 주관적인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8가지 측면에 대해 20∼50대 1000명을 온라인에서 심층 설문했다. 답변자의 취미나 특기, 소비지출 성향, 기술이나 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도, 봉사와 나눔의 태도도 세밀하게 물었다. 기혼 남녀를 대상으로는 본가와 처가, 시집과 친정의 관계 등도 설문에 포함해 최근 달라진 한국사회의 모습을 반영했다. 60대 이상은 SNS의 사용량이 적어 이번 분석에서 빠졌다. 동행지수는 최근 1년간 주요 뉴스 중 행복에 영향을 미친 이슈를 빅데이터 분석으로 선별했다. 인터넷 포털과 동아닷컴(dongA.com) 등 주요 언론사 사이트에서 관심도가 가장 높았던 뉴스를 뽑아 설문 응답자의 행복과의 상호관계를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로는 최근 한 달 동안 SNS상에서 행복과 관련된 다양한 추세를 뽑아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연구팀은 6개월간의 작업에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동아일보와 함께 동행지수의 신뢰성과 그에 담긴 의미를 분석했다. 박 교수는 “이번 분석은 특정 기간에 한국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 행복 관련 트렌드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동적인 조사”라며 “거시경제 지표의 발표시점과 상관없이 한국인의 현재 심리를 가장 잘 반영한 지수”라고 설명했다.특별취재팀△정치부=김영식 차장 spear@donga.com△산업부=정세진 기자 △정책사회부=유근형 기자 △스포츠부=정윤철 기자 △국제부=전주영 기자 △사회부=박성진 기자}

“아이 셋과 놀러 가면서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가는 비현실적인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자꾸 스스로와 비교하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기업 전산망 관리자로 일하는 김보길 씨(33). 수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직장을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정보기술(IT)의 특성상 새로운 기술을 익힌 후배들이 들어오면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 아이가 태어난 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불안감은 더 커졌다. 김 씨는 “주식을 해 간신히 생활비를 보충하는데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이 4000만 원이 넘는다는 뉴스를 보면 할 말이 사라진다”며 “무엇 하나라도 만족해야 행복할 것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취업’의 문턱을 넘어선 한국의 30대는 스스로를 가장 불행한 세대로 여기고 있다. 이들은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보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성장이 정체된 한국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에 직면했다. 어릴 때의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동시에 스스로를 외부의 이상형과 비교하면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쇼윈도 세대’의 한 단면이다.○ 직장, 가정의 초보인 한국의 30대 동아일보와 딜로이트컨설팅이 진행한 이번 조사에서 30대의 동아행복(동행)지수는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통상 나이가 들면 행복도가 높아지는 흐름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30대의 낮은 행복감은 구직활동에 대한 불안감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한 30대의 무직자 비율(24.1%)은 20대(61.0%)보다 훨씬 낮았다. 구직의 문턱을 넘어선 30대 직장인들이 현재의 삶과 업무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 경제적 안정도는 다소 증가(4.64점)했다. 반면 여가와 인간관계에 대한 만족감은 각각 6.76점과 5.55점이 하락했다. 딜로이트 측은 “한국의 30대는 일을 통해 느끼는 경제적 만족도는 크지 않고 일을 하면서 희생을 요구받아 삶의 질 수준이 가장 낮다”고 해석했다. 한국 30대의 불안감은 10명 중 3명꼴에 이르는 비정규직의 불안감과 이들의 낮은 임금 수준과도 연관이 깊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32.5%인 627만1000여 명에 이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도 계속 벌어져 올해 비정규직은 정규직 급여의 54.4%인 월 146만7000원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전세금과 월세비용 등 주거 문제에서까지 어려움을 겪는다. 이번 조사에선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면서 전반적인 행복도가 개선됐다. 하지만 주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40대가 되면 경제적 안정에 대한 만족도는 오히려 30대보다 2.64점이 더 감소했다. 30대에 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40대에도 삶의 행복도가 개선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 셈이다. ○ 불행한 ‘쇼윈도 세대’ 대기업을 다니던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고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박훈구(가명·35) 씨. 그는 요즘 세 번째 직장을 찾고 있다. 마케팅 업무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그만뒀다. 맞벌이를 하지 않는 이상 연봉 4000여만 원으로는 아이를 키우고 집을 사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박 씨가 두 번째로 들어간 회사는 제조업을 하는 지인의 회사. 하지만 마케팅 업무를 하던 박 씨는 제조업에 적응할 수 없어 일을 그만뒀다. 그는 “고교 시절 공부를 못하던 친구는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주중에도 골프를 치며 여유롭게 사는데 학창 시절에 열심히 살던 나와 다른 친구들은 왜 이렇게 삶이 팍팍하고 힘든지 좌절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박 씨 같은 30대들은 자신의 현재 모습과 이상적인 자아와의 괴리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이런 심리는 최근 유행한 이른바 ‘수저계급론’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스스로를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로 나누는데 이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불평등에 대한 반감과 한탄이 투영된 것이다. 최근 서울대생의 9급 공무원 합격을 둘러싼 찬반 논란 역시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방의 9급 공무원에 합격한 서울대 여학생은 학교 게시판에 “월급 150만 원으로 시작하는 게 까마득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9급 공무원을 선택했다”고 썼다. 이에 “서울대생이 어떻게 지방의 9급 공무원이 되느냐”는 논란부터 “아무리 취업이 힘들어도 (현실을) 인정하기 싫다”는 반응도 나왔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서울대생으로의 역할 모델과 현실 사이에서 적응하게 된 사례”라며 “한국 30대들이 획일적인 삶의 목표를 위한 비교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쇼윈도 세대 ::소유할 수 없는 화려한 물건이 즐비한 쇼윈도의 내부를 응시하며 외부에 서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묘사한 말. 현실과 이상적인 삶 사이의 괴리로 불만을 가진 한국의 젊은 세대를 의미.특별취재팀△정치부=김영식 차장 spear@donga.com△산업부=정세진 기자 △정책사회부=유근형 기자 △스포츠부=정윤철 기자 △국제부=전주영 기자 △사회부=박성진 기자}

세계 10위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한국은 국제기구의 종합적인 행복도 측정에서는 항상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유엔의 기대수명, 문자해독률 등 객관적 지표 조사에선 130여 개국 가운데 15위에 이르는 한국의 행복도는 개개인의 행복을 묻는 주관적 조사로 들어가면 94위로 떨어진다. 동아일보와 딜로이트컨설팅이 진행한 이번 동아행복지수(동행지수)는 심층 설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분석을 통해 이런 수수께끼 같은 한국인의 속마음을 샅샅이 들여다봤다.○ “돈으로 경험을 사라” 한국인의 평균 동행지수가 57.43점을 기록한 가운데 남자(57.29점)와 여자(57.57점) 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연령별로 보면 30대가 20대보다 동행지수가 낮고 연령대가 올라가면서 행복감은 다시 높아졌다. 딜로이트 측은 “행복도가 연령대에 따라 ‘U자형’을 보였다”며 “나이가 들면서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된다”고 분석했다. ‘경제적 부(富)’는 행복의 필요조건으로 나타났다. 고소득 집단(월 1000만 원 이상)의 동행지수(70.68점)는 가장 소득이 낮은 집단(월 100만 원 미만·50.54점)에 비해 20점 이상 높았다. 다만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오히려 행복을 저해했다. 20∼40대에선 돈이 아니라 가족을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답한 이들의 행복감이 가장 높았다. 50대에선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집단이 행복했다. 어떻게 돈을 써야 행복에 유리할까. 김재휘 중앙대 교수(심리학)는 “소유하지 말고 경험을 위해 소비하라”며 “최소한의 부를 축적했다면 자아실현을 위해 소비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동안 SNS에서 인기를 끌었던 ‘국가별 중산층의 기준’이라는 글에서 한국인은 아파트 크기와 월급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외국어를 하고, 악기를 다룰 줄 알며, 남들과 다른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중산층으로 제시했다. 프랑스에선 돈으로 경험을 사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중산층의 중요한 조건으로 본 것이다. ○ 황금연휴에 무관심한 기혼 여성 지역별 분석에서 전국에서 동행지수가 가장 높은 지역은 충남(60.11점)이며 부산(52.74점)이 가장 낮았다. 충남은 다른 지역에 비해 고용률이 높은 데다 지역 특유의 정서적인 안정감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딜로이트 측은 부산의 행복도가 낮은 이유를 “경제활동 참가율과 고용률이 전국 최하위인 데다 해운대를 중심으로 치솟는 고층 빌딩 속에서 부산 시민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고 분석했다. 결혼이 행복에 끼치는 영향도 흥미로웠다. 남녀와 연령을 구분하지 않으면 결혼을 한 사람(59.34점)이 미혼자(53.65점)에 비해 동행지수가 높았다. 하지만 미혼 여성은 40대에 행복감이 낮아지지만 전반적으로 행복했다. 특히 50대 미혼 여성의 동행지수(75.42점)는 전 연령대의 미혼 여성과 기혼 여성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반면 미혼 남성은 20대(56.30점)를 거쳐 50대에 이르면 동행지수가 43.11점으로 뚝 떨어진다. ‘남자는 결혼을 해야 행복하다’는 속설이 입증된 셈이다. 1년간 트위터 등의 SNS에서 ‘행복’이나 ‘좋다’ ‘만족스럽다’ 등과 함께 언급된 단어는 황금연휴, 셀프인테리어, 다이어트, 셰프 등이었다. 설과 추석 등이 낀 황금연휴가 기혼 남성의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기혼 여성의 관심은 크게 낮았다.○ 국민행복 정책 점검해야 정부가 국민의 행복을 높이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점검도 필요해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민행복 10대 공약’을 내걸고 복지 교육 국민안전 사회통합 등에서 65개 정책을 추진해왔다. 김병섭 서울대 교수(행정학)는 “대선공약으로 활용한 행복 정책들이 실제 국민의 삶과 관련된 만족도에 기여했는지 점검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리·사회학자들은 정책적 수단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변화가 있어야 근본적인 행복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타인과 비교하는 습성만 버려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살 수 있는 소득 균형과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개인의 삶에 집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행복 인프라가 굳건해진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정치부=김영식 차장 spear@donga.com△산업부=정세진 기자 △정책사회부=유근형 기자 △스포츠부=정윤철 기자 △국제부=전주영 기자 △사회부=박성진 기자}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좋은 대학에 가려고 애썼다. 지독히 가난했던 시절 빈곤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서다. 법률가가 되고 싶었던 꿈은 접었다. 당장 먹고사는 것이 중요했다. 취미도 연애도 사치였다. 남들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갔지만 끝은 아니었다. 시골에 남아 있는 가족, 결혼해 새로 꾸린 가족의 기대는 어깨를 짓눌렀다.’ 직장인 박현호 씨(58)에게는 일이 삶의 전부였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50대 중년 남성이 됐다. 처음으로 여유가 생겼다. 자식들은 대학 공부를 마쳤다. 작지만 집도, 저축한 돈도 좀 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최근에는 등산을 시작했다. 주말이면 인근 무료급식소를 찾아 배식 봉사도 하고 있다. 박 씨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딜로이트컨설팅 조사 결과 모든 연령을 통틀어 50대의 동아행복지수(동행지수)가 가장 높았다. 50대 남성(61.78)과 여성(61.85)의 행복지수는 전체 평균(57.43)에 비해 10점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영숙 부산대 교수(심리학)는 “지금의 50대는 급격한 산업화를 몸소 겪으며 끊임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이라며 “어느 정도 삶의 여유를 찾기 시작한 지금 스스로 가장 행복하다고 평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경향은 60대로 접어들면 급격히 떨어졌다. 정 교수는 “자녀 교육 및 결혼 비용 등으로 여유자금을 소진한 60대는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기댈 곳 없이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했다. 행복에 대한 꿈을 잃는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아파트 경비원 등 보수가 낮은 직업으로 생활비를 버는 60대가 많아지면서 ‘노인빈곤’이 행복을 가로막는 제2의 걸림돌로 떠오른다는 분석이다.특별취재팀△정치부=김영식 차장 spear@donga.com△산업부=정세진 기자 △정책사회부=유근형 기자 △스포츠부=정윤철 기자 △국제부=전주영 기자 △사회부=박성진 기자}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다. 하지만 유독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가 있는 것 같다. 바로 복지 분야다. 대한민국의 실질적 복지는 김대중(DJ) 전 대통령 시절 시작됐다는 인식이 강한 탓이다. 기자들조차 YS의 복지 구상에 관심이 적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장을 마치고 YS 시절 문건들을 뒤늦게 뒤적거리다 적지 않게 놀랐다. 1997년 외환위기로 세상의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국민복지 시대의 초석을 다지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복지’는 국민에게 생소한 개념이었다. 복지는 그저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제도’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외환위기 전까지 경제성장률이 7∼8%대에 이르렀다. 성장에 집중했지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강하지 않던 시기다. 하지만 YS는 안주하지 않았던 것 같다. 1995년 3월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국민행복기획단’을 출범시키고 복지국가를 향한 로드맵을 설계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당시 기획단 보고서를 살펴보면 YS의 복지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혁신적으로 설계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 연금권 확대가 대표적이다. 기획단은 이혼 후 남녀가 연금을 나눠 받는 연금 분할 제도를 추진했다. 남성에 비해 노후 준비에 취약한 여성을 위해서다. 이혼에 대한 편견이 상대적으로 강했던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파격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늦추는 개혁을 구상한 것도 선제적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 이 개혁안은 YS 퇴임 후인 1998년 국회를 통과했는데, 15년 뒤인 2013년부터 2033년까지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개시 연령이 늦춰지게 설계됐다. 김용하 순천향대 보험금융학과 교수는 “서유럽에선 연금 개시 연령을 1, 2년만 늦춰도 폭동이 일어난다”며 “YS가 개혁 구상을 하지 않았다면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군인, 공무원이 퇴직 후 국민연금에 가입해도 공직 재직 시절 보험료 납부 기간을 인정해 주는 연금 연계 제도도 YS 시절 계획됐는데, 2009년 8월에야 시행됐다. YS의 복지국가를 향한 꿈을 되돌아보면서, 정치의 늪에 빠진 2015년의 복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복지, 자기 임기만 버티면 된다는 이벤트성 복지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우발적 구호에 의해 도입된 무상보육은 결국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기초연금도 차후 비슷한 갈등을 겪을 공산이 크다. 서울시, 경기 성남시가 추진하는 청년수당도 장기적 재원조달책이 부족해 보여 걱정스럽다. 우발적 복지가 만연한 반면, 20년 전 YS의 복지 구상에 강조된 내용들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제도 형평성 제고(부과체계 개선), 여성 연금 확대안(보험료 추후 납부 제도)이 대표적이다.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향후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복지정책을 설계하고 묵묵히 추진할 지도자의 부재가 유독 아쉽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30대 직장인 여성 박지수 씨는 지난달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평소보다 월경으로 인한 통증이 심해 병원을 찾았는데, ‘자궁근종’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질초음파검사 결과 7cm의 자궁근종이 확인됐지만 다행히 악성은 아니었다. 박 씨는 비수술적 시술을 받고 하루 만에 퇴원해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박 씨는 “자궁근종은 50대 이후에나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고 말했다. 박 씨처럼 자궁근종을 겪는 30, 40대 여성이 늘고 있다. 자궁근종은 자궁 내의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커져 여러 증상을 일으키는 ‘양성종양’을 말한다. 자궁근육층을 이루는 세포의 비정상적 증식으로 종양 발생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30, 40대 자궁근종 환자 늘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자궁근종 환자가 2009년 23만6372명에서 2013년 29만3440명으로 24%나 늘었다. 최근엔 젊은 여성 환자도 지속적으로 늘어 관리가 필요하다. 무증상인 경우가 많지만, 증상이 나타날 경우 대개 생리 과다, 생리통, 불임, 골반염, 빈뇨 현상이 나타난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방치하면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자궁근종이 커지면 방광, 직장, 요관 등의 주요 장기를 눌러 수술 시 여러 가지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또 월경 과다로 인한 빈혈로 심부전이 나타날 수도 있다. 김인현 대구미즈맘병원 원장은 “자궁근종은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조기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며 “생리 과다 등의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빨리 병원을 방문해 검진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자궁근종의 경우 원인이 뚜렷하지 않아 예방을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조기에 발견하면 합병증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정기적인 검진이 중요하다. 비만이나 빠른 초경이 있을 경우 자궁근종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비수술적 하이푸 시술 주목 자궁근종의 경우 과거에는 수술적 방법인 자궁 절제와 적출이 시행되었지만 최근에는 의료 기술의 발달로 건강 상태와 근종의 크기, 증상 등을 고려해 비(非)수술 방법으로 자궁의 기능을 살리면서 자궁을 보존해 치료할 수 있다. 개복하지 않고 내시경으로 수술을 마쳐 통증이 적고 입원 기간도 3, 4일로 짧은 편이다. 여기에 최근 산부인과를 신관으로 이전해 쾌적한 외래 환경을 갖췄고 여성전문센터와 함께 있어 여성 질환을 통합 관리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하이푸(HIFU)를 이용하는 비수술적 시술도 주목을 받고 있다. 하이푸는 인체에 무해한 고강도 집속 초음파(High Intensity Focused Ultrasound)를 이용한 치료법이다. 60도 이상 80도 내외 고온의 열을 환자에 따라 적절히 조절하면서 근종의 크기를 축소시킨다. 하이푸 시술은 바늘이나 칼을 사용하지 않아 흉터가 거의 남지 않는다. 개복 수술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부담도 적다. 정상 세포 또는 다른 장기에 손상을 줄 가능성이 적다는 장점도 있다. 최근에는 일반 하이푸보다 더 뛰어난 성능의 YDME 하이푸 시술도 나왔다. 마취를 하지 않아 신체적 부담이 적고 언제든지 반복적인 치료가 가능한 시술이다. 또한 필요할 경우 1회 또는 2, 3회로 시술 횟수를 조정할 수 있다. 시술 과정도 간단하다. 환자는 복부에 초음파 젤을 도포하고 똑바로 누운 편안한 자세로 치료를 받으면 된다. 마취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시술 중 불편한 사항이 있다면 의료진과 대화도 나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온도 변화를 실시간 관찰하므로 좀 더 확실하고 안전한 치료가 가능하다. 30분∼1시간 정도의 시간으로 시술을 끝내고 회복실에서 휴식 후 귀가할 수 있다. 물론 하이푸는 고온의 초음파를 사용하기 때문에 간혹 피부가 붉어지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특이 체질이 아닐 경우 금방 피부 열감은 오래 가지 않는 편이다. 김인현 미즈맘병원 원장은 “자궁근종의 재발이나 수술 후 합병증을 고려해 볼 때 하이푸는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도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시술법이다”라고 말했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폐암 환자는 공기 좋은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 저선량 컴퓨터단층촬영(CT)은 폐암 진단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담배를 끊고 얼마가 지나야 폐암 발생률이 줄어들까? 폐암은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을 가진 병이다. 조기 발견이 어렵고 전이가 빨라 생존율이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년 1만7000여 명이 폐암으로 사망한다. 하지만 폐암에 대한 공포에 비해 잘못 알려진 상식도 많다. 대한폐암학회는 26일 폐암의 날을 앞두고 전국 주요 도시의 960여 명과 폐암 전문의 200여 명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드러난 폐암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정리해 봤다. 일반인 설문자의 70%는 폐암 환자가 공기가 좋은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폐암 전문의들은 ‘실증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사는 것과 폐암 발생률은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폐암 학회는 “오히려 응급 의료 시설이 있는 도시 지역과 멀어져 응급 진료를 받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더 위험하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은 현재의 건강검진으로 폐암 등 중증 암을 진단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폐암 전문의들은 기존 X선 검진으로는 조기 진단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설문에 응한 폐암 전문의들은 만장일치로 폐암 조기 발견을 위해서는 저선량 CT 폐암 검진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폐암 전문의 74%는 저선량 CT 폐암 검진을 권고하였을 때 검진비용(약 20만 원)에 대하여 환자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폐암선별검사연구(NLST)는 55∼80세 흡연자에게 저선량 CT 폐암 검진을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폐암 CT 검진이 국가 암검진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는다. 폐암학회 조문준 이사장(충남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은 “폐암 검진은 방사능 노출로 인한 부작용 우려보다 이득이 훨씬 많다”라며 “국민건강증진기금, 담뱃세 인상분을 이용해 저선량 CT의 건강보험 적용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연한 뒤 폐암 발생 위험이 떨어지는 시점에 대해서도 일반인과 폐암 전문가 사이에 인식 차가 존재했다. 일반인 응답자의 68%는 금연 후 10년이 지나면 폐암 발생 위험이 비흡연자와 같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폐암학회는 최소 15년은 지나야 위험성이 같아진다고 진단했다. 한편 폐암학회는 26일 오후 1시부터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에서 ‘변우민과 함께하는 편견 속의 폐암’을 주제로 폐암의 날 행사를 연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원로 교수의 폐암 이야기 △변우민의 금연 성공담 △퀴즈로 푸는 재미있는 폐암 이야기 등의 행사가 마련된다. 또 학회는 폐암에 대한 153가지 궁금증을 풀이한 ‘폐암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 책자를 발간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또한 학회 홈페이지(www.lungca.or.kr)에서 e북을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대한폐암학회(02-741-8540)에 선착순 사전 예약을 하면 된다.유근형 noel@donga.com·이진한 기자·의사}

신해철 씨 사망을 계기로 의료사고 분쟁조정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해 추진 중인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19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할 경우, 의료인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조정이 시작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일명 신해철법)을 지난달 발의했다. 병원이 사고 중재를 거부할 경우 조정이 시작조차 되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현행법상 병원은 법적으로 중재에 응할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대형 종합병원의 중재 거부율은 71.5%에 이른다. 의료분쟁 10건 중 3건은 중재를 시작도 못해본다는 얘기다. 하지만 19대 국회 마지막 회기인 11월 정기국회에서 이 법안은 심사조차 받지 못할 공산이 커졌다. 17일 시작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 안건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소위에서 논의되지 못할 경우 관련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이에 의원들이 ‘겉으로만 의료사고 분쟁 조정제도 개혁’을 주장하면서, 정작 국회에서는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국회 보건복지위 여야 의원들은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위해 의료인의 동의와 상관없이 중재가 시작돼야 한다는데 한 목소리를 냈다.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의원들은 보건복지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관련 내용을 집중 질의하기도 했다. 의원들의 질타에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동 분쟁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김정록 의원은 이 법안을 11월 정기국회에서 주요 안건으로 채택해달라고 복지위에 요청했지만, 법안소위 안건에 채택조차 되지 못했다. 국회 복지위 야당 간사인 김성주 새정치연합 의원은 “현재 복지위에 1000개 법안이 쌓여 있고, 이번 국회가 마지막이다보니 평소보다 3배 많은 300개 법안을 논의할 예정인데, 우선순위에서 다소 밀린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정록 의원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여야가 주장했다”며 “의료계의 표심 때문에 이 법안이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지적했다. 고 신해철 씨의 오랜 지인인 남궁연 씨는 “해철이가 떠난 뒤 1년 동안 팬들이 백방으로 뛰어서 만들어낸 법안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위기에 있다”며 “평소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야당 의원들까지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의료계는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의사의 소신진료가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사회보장위원회가 지속 가능한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이뤄나가는 복지정책의 구심점이 되기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1차 사회보장위원회에서 복지 컨트롤타워 역할 강화를 강조했다. 복지예산을 둘러싼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갈등을 적극 조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분석된다. 사회보장위원회는 국무총리, 관계 부처 장관, 사회보장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사회복지 정책의 최고 심의기구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인 2011년 대표발의 한 사회보장기본법 전면 개정에 따라 2013년 출범했다. 박 대통령이 사회보장위원회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회의에도 사회보장위원회 위원, 복지 학자, 복지 현장 종사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박 대통령은 “복지정책의 중복과 누락을 조정 통합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긴 안목에서 사회보장 체계를 점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견인차가 바로 사회보장위원회”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박 대통령의 복지 컨트롤타워 강화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보장위원회의 기능 강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지자체가 새로운 복지사업을 추진할 때 기존 제도와의 유사성을 더 엄밀히 살피고, 이를 적극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또 지금까지 사회보장위원회가 지자체들의 포퓰리즘 성격이 강한 복지사업 신설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제지하지 못한 점을 개선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보장위원회는 2013년과 2014년 지자체가 도입하려고 했던 복지사업 98건 중 19건(19.4%)에 대해서만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지자체가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복지사업 10건 중 8건은 수용한 것이다. 이는 정부가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지자체 복지 합리화 조치와는 다른 모습이다. 복지부는 현재 지자체가 시행 중인 복지사업 1496개가 중앙정부의 복지사업과 유사·중복 가능성이 있다며 관련 사업의 정비를 지자체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또 복지부는 신설 복지제도에 대해 지자체와 복지부의 협의가 성립되지 않거나, 지자체가 협의를 거부하고 제도를 단독으로 진행할 경우 행정자치부가 지자체에 주는 교부금을 감면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진엽 복지부 장관은 “사회보장위원회에서 지자체와 복지부가 협의를 해 나가는 절차를 개선하고, 제3자인 관련 기관과 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해 투명성을 높여 실행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방 교부금 축소’와 ‘사회보장위원회 기능 강화’라는 강수를 둠에 따라 복지예산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자체, 야당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1일 ‘복지후퇴 저지 특별대책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정부의 움직임을 규탄했다. 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김용익 의원은 “복지부가 지자체 복지사업(사업예산 9997억 원)의 정비를 추진하면서 4개월짜리 초기 수준의 연구를 근거로 밀어붙이기를 하고 있다”며 “지자체 복지사업을 ‘유사·중복’으로 낙인찍고 복지 축소를 강행하고 있어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사회보장위원회 기능 강화 움직임으로 최근 논란을 일으킨 경기 성남시와 서울시의 ‘청년 관련 복지사업’들이 실현될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날 회의에서도 사회보장위원회 의원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년수당이 위원회 조정 없이 선심성으로 남발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성남시는 지역 청년(19∼24세)들에게 분기당 25만 원씩 지원하는 ‘청년배당 제도’를, 서울시는 저소득층에 속하는 미취업 청년 중 3000명을 취업준비 활동계획서를 통해 선발해 월 50만 원씩(최고 6개월) 지원하는 ‘청년수당제도’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한편 복지부는 중앙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복지제도의 체감도도 재점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6월 신설된 사회보장평가과를 통해 기초생활보장제, 기초연금 등 300개 정부 주도 복지제도를 21개 군으로 분류해 효과성, 국민 체감도 등을 점검하고 중장기 재정 추계를 실시할 예정이다.유근형 noel@donga.com·이세형·박민혁 기자}
떡볶이 떡, 순대, 달걀 등에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이 의무화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식품위생법과 축산물위생관리법의 시행규칙 개정안을 10일 입법예고했다. 시행규칙이 개정되면 해당 식품을 제조하는 업체들은 식품 당국으로부터 HACCP 인증 없이는 제품 생산을 할 수 없게 된다. HACCP는 식품의 원료 단계부터 제조, 가공, 조리, 유통까지의 전 과정을 중점 관리하는 사전 예방 시스템이다. 현재는 배추김치, 어묵류, 레토르트 포장식품(3분 짜장), 빙과류, 비가열음료(주스), 냉동식품(피자류 만두류 면류), 냉동수산식품(어류, 조미가공품) 등 7개 품목만이 HACCP 의무적용을 받고 있다. HACCP 의무화 대상이 확대되면, 직원이 2인 이상인 순대 제조업체는 2016년까지, 2인 미만은 2017년까지 HACCP 인증을 받아야 한다. 연매출액이 1억 원 이상이고, 종업원이 5명 이상인 달걀 가공품 제조업체도 2016년까지 HACCP 인증을 받아야 한다. 직원이 10명 이상인 떡볶이 떡 제조업체도 2017년까지 HACCP 인증을 완료해야 한다. 식약처는 “떡류는 2020년까지 장기적으로 HACCP 의무화가 적용될 예정이었는데, 떡볶이 등에 대한 식품사고가 늘고 있어 인증 의무화 기한을 당기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HACCP 도입을 위한 지원도 강화한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로 일하는 동창과 고교 졸업 후 처음으로 만났다. 술잔이 한두 순배 돌 때까지만 해도 반가운 대화가 오갔지만 이내 어두운 분위기가 됐다. 친구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1월 의료소송을 당한 이야기를 꺼내면서다. 친구가 담당했던 환자는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기 전 조영제를 복용하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환자가 평소 복용하던 당뇨병 약이 병원이 사용하는 조영제와 부작용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친구는 의대 시절부터 조영제 부작용에 대해 단편적 지식만 배웠지, 특정 약이 조영제와 함께 먹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아마도 나처럼 많은 의사들이 이런 부작용 사례를 알지 못할 것이다”며 “다른 의사들과 사례를 공유해 추가 사고를 막고 싶은데, 쉬쉬 하는 분위기라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입원 환자 10명 중 한 명은 의료인의 과실을 경험할 정도로 의료사고가 늘고 있다. 현대 의학이 전문화되면서, 자신의 전공을 제외한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의사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는 사고 사례를 수집해 유형화하고 많은 의사들과 공유하는 등 의료사고를 예방하는 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사고에 대해 쉬쉬 하는 분위기 탓이다. 대부분의 병원은 이미지에 타격받을 것을 우려해 의료사고 사례의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 의료인들이 다른 병원에서 발생한 사고 사례에 대해 인지하고, 예방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각 병원에 흩어진 의료사고 사례를 직접 수집해 예방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 의료사고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병원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정부에 보고하는 E-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사례를 축적하고 예방법을 개발해 전국 의대, 병원과 적극적인 공유가 가능해진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다행스러운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행법 체계 안에서는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할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제정된 환자안전법은 ‘병원은 환자 안전에 위해가 가는 상황을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 안전에 위해가 가는 상황’에 ‘의료사고’를 명시하지 않아 보고 대상이 불명확하다. 이뿐만 아니라 보고가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이라 병원이 의료사고를 숨겨도 처벌할 근거가 없다. 복지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이 부분을 보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의료계 반발을 뚫을 수 있을지 불투명해 보인다. 신해철 씨의 사망 이후 ‘의료사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 관심도 시간이 지나면 바람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의료사고를 당해도 제대로 호소할 곳조차 마땅치 않은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라는 말에 희망을 걸 때다.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보건복지부가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의 일환으로 고가의 로봇수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을 추진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로봇수술을 선택하는 암 환자들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주장과 치료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 로봇수술은 의료진이 로봇의 팔을 조종하여 기계가 직접 암 부위를 떼어내는 방식이다. 8월 기준으로 전국 41개 의료기관이 로봇수술 장비를 갖추고 있다. 손 떨림이 적고 오차가 적어 비교적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고, 상처가 작아 회복 기간이 짧다는 게 로봇수술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복지부는 고가의 로봇수술을 선택하는 환자들이 계속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부담을 낮춰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로봇수술 비용은 한 번에 700만∼1500만 원 정도로, 일반 개복수술보다 2∼5배 비싸다. 복지부는 로봇수술비 규모가 연간 13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의료비의 약 17%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초음파 시술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비용이다. 하지만 로봇수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가격에 비해 치료 효과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립샘암의 경우 합병증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있지만, 나머지 암은 아직 논쟁적인 상황이다. 실제로 로봇수술을 받은 환자의 입원 기간은 일반수술 환자보다 대체로 짧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다. 일반수술을 받은 갑상샘암 환자의 입원 일수는 6일인 반면 로봇수술을 받은 환자는 5일 정도다. 로봇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암 환자들이 일부 대형 병원으로 쏠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로봇수술 장비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외국 업체만 이득을 본다는 지적도 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고가의 항암제 등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 부담을 늘리는 요소가 적지 않은데, 치료 성적이 불확실한 로봇수술부터 건보 적용을 추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건강보험을 부분적으로만 지원하는 ‘선별급여’ 방식도 검토 중”이라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최종 결정을 하겠다”고 말했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고관절 골절상을 입은 A 씨는 지난달 서울의 한 대형 종합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 행운 아닌 행운을 잡았다. 하루에 15만∼20만 원인 2인실 상급병실을 이용했는데 일반병실 입원비인 약 4만 원만 부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재입원했을 때 같은 방을 이용했는데 17만 원을 냈다. A 씨는 “무슨 기준으로 병실료가 부과되는지 모르겠다”며 “병원 측이 설명해 줬지만 뭔가 속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경기 지역의 대형 대학병원에서는 ‘복불복 2인실 요금’으로 인한 환자들의 항의가 늘고 있다. 이는 병원들이 일반병실 의무비율(70%)을 맞추기 위해 상급병실인 2인실을 일반병실로 돌리면서 생긴 현상이다. 보건복지부는 환자 부담이 큰 3대 비급여(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간병비) 개선을 추진하면서 상급종합병원의 일반병실(4∼6인실) 비율을 올해까지 70%로 맞추게 했다. 하지만 환자를 받지 않고 일반병실을 늘리는 데 부담을 느낀 일부 병원은 기존 2인실을 일반병실로 전환하고 일반병실료를 받고 있다. 복지부는 ‘일반병실 늘리기’라는 정책 목표를 맞추기 위해 ‘일반병실료만 받는 2인실’을 허용했지만, 정작 운영은 병원 자율에 맡겼다. 이 병실이 기준 없이 환자들에게 배정되다 보니 2인실 입원료가 복불복으로 책정되는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1700병상 규모의 서울 A병원은 2인실 185병상을 일반병실처럼 사용하고 있다. 2400병상 규모의 B병원도 2인실 200병상을 울며 겨자 먹기로 일반병실로 돌렸다. 이 때문에 병원들은 하루에 2000만∼4000만 원가량의 손실을 떠안고 있다. 월 매출로는 6억∼12억 원에 이르는 돈이다. 4만 원짜리 2인실이 생겼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병원 관계자들의 고충도 커졌다. 병원 VIP 고객들에게서 싼 2인실을 구해 달라는 요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A병원 관계자는 “예전에는 1, 2인실에 며칠 머물다 일반병실(4∼6인실)로 옮겨 달라는 요청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4만 원짜리 2인실을 구해 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복지부가 ‘일반병실 적용 2인실’의 구체적인 운영 방침을 병원에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D병원은 암 환자에게 ‘일반병실 적용 2인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줘 혼란을 최소화했는데, 복지부가 이와 같은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 손영래 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이후 다인실을 무작정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논의가 있어 ‘2인실 일반병실’이 탄생했지만, 일부 현장에서 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관리 감독을 강화해 형평성에 문제가 없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한국인의 가공육, 적색육 섭취량은 국제 권고량보다 적어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암 발생을 우려해 섭취량을 줄일 필요가 없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햄 소시지 등 가공육과 쇠고기 돼지고기 등 적색육을 발암물질로 지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자 식품당국이 진화에 나섰다. 손문기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은 2일 충북 청주시 오송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WHO 발표는 가공육 섭취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는 의미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가공육을 먹어선 안 되는 음식으로 규정지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가공육 1일 섭취량은 6g 수준으로 WHO 권고량(50g)에 크게 못 미친다. 적색육 섭취량도 1일 평균 61.5g으로 WHO 권고량(100g)보다 적다. 식약처는 “섭취 방법도 직화구이보다는 수육 불고기 형태로 많이 먹어 WHO 기준을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밝혔다.청주=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이제 김밥 만들 때 햄은 빼야 하나?” 세계보건기구(WHO)가 가공육과 적색육을 발암물질로 지정한 것에 대해 식품당국이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다. 육류 소비를 줄일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햄 소시지 논란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Q&A 방식으로 풀어봤다. Q. WHO의 발암물질 발표의 정확한 내용은…. A. 지난달 26일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햄 소시지 베이컨 등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붉은 고기류는 2A군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1군 발암물질은 암 유발의 과학적 근거가 확실한 물질로 술, 담배, 햇빛, 디젤 배기가스, 석면 등 118개 물질이 포함돼 있다. 2A 발암물질은 동물실험 데이터는 존재하지만 사람에게 암을 유발한다는 근거가 제한적일 때를 말한다. “술도 먹는데, 햄 소시지 먹는 걸 걱정하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Q. 식약처는 어떤 근거로 WHO에 반대하는지. A. 식약처는 국내 육류 섭취량, 조리법, 해외 섭취 권장량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재의 가공육과 적색육 섭취를 줄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IARC는 가공육을 매일 50g 먹는 사람은 대장암 발병 위험이 18% 증가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국내 1일 평균 섭취량은 6g 수준에 불과하다. 붉은 고기류의 경우 매일 100g 섭취할 때 암 발생률이 17% 증가하지만 국내 1일 평균 섭취량은 61.5g이다. Q. 육류 소비가 특히 높은 20∼30대 남성은…. A. 식품당국은 육류 소비가 비교적 높은 20, 30대 남성도 현재의 섭취량을 암 우려 때문에 줄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2013년 기준으로 20대 남성의 1일 평균 적색육 섭취량은 112.4g으로 WHO 권고량(100g)보다 높다. 하지만 서구는 주로 불에 구워 섭취하는 반면 국내는 삶아서 수육 형태로 먹거나 불고기 형태로 조리하기 때문에 같은 100g을 먹어도 위험도는 우리가 낮다는 게 식약처의 판단이다. WHO 권장량보다 적게 먹지만 가공육이 급식 반찬으로 많이 나오는 10대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고기 섭취를 줄이면 근육 발달과 혈액 생성이 잘 안될 우려가 있다. Q. 그래도 암 유발 우려를 걱정한다면…. A. 전문가들은 육류 섭취량은 유지하되, 먹는 방법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적색육은 쌈 야채와 함께 먹거나, 물로 삶아서 조리하면 암을 유발하는 물질로부터 더 안전하다는 게 중론. 그뿐만 아니라 직화구이를 할 때도 고기를 불판 위에 오래두면서 연기에 노출시키지 말고, 적은 양씩 빨리 구워먹는 게 바람직하다. 식약처는 2016년 하반기까지 체중별 고기 섭취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예정이다.청주=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대부분의 의사들은 자신이 살리지 못한 환자를 애써 잊고 싶어 한다. 자칫 트라우마로 남을 경우 마음에 큰 짐이 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남도현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사업단장(신경외과 교수)은 지금은 고인이 된 조한선(가명) 씨를 매일 기억하고 또 기억한다. 언젠가는 악성 뇌종양 같은 난치암도 인간의 의술로 완치시킬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2013년 12월 당시 65세 여성인 조 씨의 머리에서 종양 여러 개가 발견됐다. 그것도 치료가 가장 어렵다는 악성 종양인 교모세포종 뇌종양이었다. 교모세포종 환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14개월 남짓. 2년 이상 생존율은 약 20%. 합병증이 많고 수술로 종양을 제거해도 재발이 쉽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조 씨는 종양이 이미 뇌 중앙까지 퍼져 말기에 해당됐다. 대화가 쉽지 않을 정도로 의식도 흐릿했다. 남 교수는 “보통의 뇌종양 환자처럼 치료해서는 백전백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보호자에게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아바타 시스템을 처음 가동 남 교수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그저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치료법을 동원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남 교수는 보건복지부 지원 속에 난치암 정복을 위해 환자 맞춤형 치료를 연구해 왔다. 그 결과 환자의 암 덩어리를 쥐에게 주입해 환자와 몸 상태가 비슷한 ‘아바타 마우스’를 만들어, 여러 항암제들을 사전에 시험해 보는 아바타 스캔 시스템을 구축했다. 환자의 유전체(세포 조직) 정보가 쌓이는 경우일수록 특정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특별히 잘 듣는 항암제 정보가 축적되는 시스템이다. 2013년 당시는 암 환자 30명의 유전체 정보만이 저장된 상황으로 초기 단계였다. 남 교수는 일단 응급수술을 통해 조 씨의 머리에서 지름이 3cm 이상인 종양 3개를 먼저 제거했다. 그리고 아바타 시스템을 가동시켜 4주 만에 오른쪽 뇌에서 제거한 암 덩어리에 특히 효능이 있는 항암제 3개를 찾아냈다. 문제는 3가지 항암제 모두 폐암 환자에게만 승인된 약이었다. 뇌종양 환자에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긴급 허가를 받아 임상시험 형태로만 약을 투입해야 한다. ‘환자에게 이 약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남 교수의 요청에 공감한 식약처는 사용을 허가했지만,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약을 투입해서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약의 이미지만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 제약사들이 약 제공을 꺼렸기 때문이다. 남 교수의 설득 끝에 다국적 제약사 B사가 고가의 폐암용 항암제를 제공하기로 했다.○ 뇌종양 환자에게 폐암용 항암제 투여 2014년 1월부터 드디어 아바타 시스템을 통해 찾아낸 개인 맞춤형 항암제가 국내에서 최초로 환자에게 투입됐다. 조 씨의 종양은 B사의 폐암 환자용 항암제를 투입한 후 7개월 동안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환자의 의식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 씨의 암 덩어리들은 종양마다 유전적 특징이 달랐다. 아바타 시스템을 통해 찾아낸 B사의 항암제는 오른쪽 종양에는 큰 효과가 있었지만, 왼쪽 종양에는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남 교수는 “당시 왼쪽 종양에도 효과가 있는 약을 아바타 시스템을 통해 찾아냈지만, 약을 제공하는 제약사를 찾지 못했다”며 “맞춤형 치료에 대한 데이터가 조금만 더 축적됐어도 제약사를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한이 된다”고 말했다. 조 씨는 올해 1월 결국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가족들은 남 교수를 원망하지 않았다. 조 씨의 남편은 “보통 뇌종양 환자들은 의식 없이 지내다 간다는데, 아내는 비교적 편안하게 지내다 갔다. 그래도 삶을 정리할 기회를 얻은 것 같다”며 감사해했다. 현재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사업단에는 난치암 환자 4148명의 유전체 정보(암 조직, 세포)가 저장돼 있다. 물론 조 씨의 유전체 정보도 들어 있다. 이 중 573명은 아바타 스캔을 통해 유전체 정보에 맞는 맞춤형 항암제 정보를 얻어냈다. 앞으로 이들과 비슷한 유전체 정보를 갖고 있는 암 환자들은 맞춤형 약을 쉽게 얻어낼 수 있다. 아바타 시스템은 뇌종양 환자뿐 아니라 폐암, 췌장암, 재발된 위암 환자들에게까지 적용되고 있다. 미국(MD앤더슨 암센터),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난치암 환자의 유전체 정보를 공동으로 수집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질환별로 1000케이스 정도가 축적되는 2020년 이후에는 개인 맞춤형 항암치료가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남 교수는 “조 씨는 이런 정밀의료가 현실에서 시도된 첫 환자”라며 “조 씨와 같은 환자들의 정보가 차곡차곡 쌓여 난치암 극복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원인 모를 두통 지속, 시야 좁아지면 뇌종양 검진 필요▼뇌에 발생하는 암, 이른바 뇌종양은 성인과 소아를 가리지 않고 전 연령대에서 발생한다. 여전히 다른 암에 비해 치료가 어려운 암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뇌종양 수술법이 예전에 비해 발전하면서 치료 성적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종양이 양성인 경우에는 조기 발견 후 적절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면 합병증 없이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뇌종양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 발견이라고 입을 모은다. 원인을 알기 힘든 두통이 이어지거나, 시야가 좁아지거나, 청각·후각 기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등 뇌종양의 전조 증상이 있다는 것. 남도현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사업단장(신경외과 교수)은 “뇌종양인데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으로 착각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거나, 냄새를 잘 못 맡아 이비인후과를 가는 환자들이 있다”며 “해당 과에서 특별한 진단을 받지 못할 경우 신경외과를 찾아 혹시 모를 뇌종양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정부가 당초 29일로 예정했던 메르스에 대한 ‘공식 종식’ 선언을 연기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현재 마지막 메르스 양성 상태인 80번 환자는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이 0%에 가깝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좀 더 신중을 기하기 위해 오늘 메르스 공식 종식 선언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80번 환자는 1일 메르스 유전자 검사(PCR)에서 24시간 간격으로 2회 연속 음성이 나오면서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12일 실시된 재검사에서는 다시 양성 판정을 받았고 현재도 양성과 음성이 번갈아 나오는 상황이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물러난 과정은 단순한 인사파동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500조 원에 이르는 국민연금 기금 운용 방식에 대한 정부와 공단의 시각차가 극명히 드러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현 정부의 기조와 국민 노후자산은 안전성 위주로 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면충돌한 것이다.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한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체계 개편을 둘러싼 양측의 의견을 분석해봤다.》 ▼ 투자전문성 부족해 수익률 낮아… 금융시장 변화에 신속대응 필요 ▼찬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공사 독립론의 근원에는 ‘2060년 국민연금 고갈에 대한 공포’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보다 수익률을 높여 고갈 시점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는 기금투자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금운용위원회의 공사 독립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기금공사 독립 찬성론자들은 국민연금의 기금 투자가 채권 위주의 안전자산 위주라 수익률이 낮다고 본다. 실제로 국민연금 기금의 최근 5년(2009∼2013년) 평균 수익률은 6.9%로 캐나다(CPPIB·11.9%), 미국(CalPERS·13.1%), 네덜란드(ABP·11.2), 노르웨이(GPF·12%) 등 세계 주요 연기금보다 낮다. 수익률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현 체제의 전문성 부족 탓이라는 게 독립론자들의 주장이다. 기금 운용의 실무 책임자인 기금운용본부장(기금이사)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해 시장 흐름에 맞는 신속한 투자 다변화가 어렵다는 것. 특히 기금 운용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가입자, 사용자, 정부의 대표로 구성돼 금융 전문가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기금 운용 체계는 기금이 50조 원도 되지 않던 1990년대 말에 구축됐다. 최근 기금운용본부가 운용 인력을 대폭 늘렸지만, 기금 규모에 걸맞은 세계적 수준의 투자 전문가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보험금융학과 교수는 “현재의 기금 운용 조직은 금융 전문 조직이라기보다는 가입자 관리 중심이어서 급변하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독립론자들은 기금운용본부를 투자 전문가 조직으로 독립시켜 해외 주식과 대체투자 비율을 높이면 수익률이 연평균 1%포인트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금운용본부가 독립하면 국민 노후 자산이 투기 자본처럼 사용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분리론자들은 오해라고 반박한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금운용본부가 독립됐다고 해서 실무 펀드매니저가 마음대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국민연금 재정 목표에 전체 기금 중 얼마를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인지 한도를 설정하면 지나친 수익률 추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미래세대까지 책임져야할 자금… 현재 기금수익률 결코 낮지 않아 ▼반대“국민연금 기금은 국민이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서 조성한 돈이다. 펀드나 일반 시장 자금과는 다르다.” 국민연금 기금공사 분리 독립을 반대하는 학자들은 기금은 공공재 성격을 띤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연금 수급자뿐 아니라 미래의 수급자에게 모두 지급해야 할 책임준비금이기 때문이다. 기금이 국민연금 가입자와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금융 전문가 조직에 의해 운영될 경우, 지나친 수익 추구로 안전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것. 현 기금 운용 수익률이 낮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독립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채권 등 안전자산 위주로 투자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세계 경제위기 등 대외 리스크 상황에서 오히려 강했다. 수익 지향형인 캐나다와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각각 ―14.5%, ―27.8% 등 큰 손실을 봤다. 당시 ―0.2%에 그쳤던 우리 국민연금과 대비된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장기 수익률은 우리 국민연금(6.3%)이 캐나다(5.2%), 미국(5.45%)보다 높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공적연금인 OASDI(Old-Age·Survivors and Disability Insurance)는 사회보장신탁기금을 채권에만 투자하고 있다. 현재 세계 1위의 기금을 자랑하는 일본의 연금적립금 운용법인인 GPIF도 비슷한 상황이다. 기금공사가 독립하면 수익률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에 대해 독립 반대론자들은 실증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한다. 김우창 KAIST 교수에 따르면 향후 40년간 추가 위험 없이 연평균 1%포인트 이상 초과 수익을 달성할 확률은 약 5.7%에 불과하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듯’ 아무리 뛰어난 투자 전문가도 언젠가는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간 위주로 운영되는 해외 투자 전문 기관인 한국투자공사(KIC)의 해외 주식 투자 수익률은 8.9%로 현 국민연금(8.8%)과 비슷하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익률이 높아졌을 때의 효용보다 수익률이 떨어졌을 때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자칫 지난 국민연금 대란 때처럼 가입자 대량 탈퇴로 인한 제도 신뢰가 무너지는,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27일 끝내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날 공단 내부망을 통해 자진 사퇴 거부와 새 기금이사 영입 의지를 밝힌 지 하루 만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오전 최 이사장이 제출한 사표를 즉각 수리했다. 최 이사장은 500조 원에 이르는 국민연금 기금운용 방식을 두고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기금이사)과 갈등을 빚어 왔다. 최 이사장은 12일 복지부의 반대에도 임기(2년)가 11월 3일까지인 홍 이사에게 ‘연임(1년) 불가’ 방침을 통보했다. 이에 복지부는 최 이사장이 ‘월권’을 했다며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최 이사장은 사퇴 하루 전인 26일에도 공단 내부망을 통해 “비연임 결정은 적법 절차에 따른 것이다. 새 기금이사를 영입하겠다”며 사퇴 거부 의지를 거듭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복지부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끝내 사임 요구를 받아들였다. 복지부는 26일 오후 11시경 ‘공단 내부 갈등의 원인을 점검하기 위해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포함한 국민연금공단의 운영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최 이사장과 통화를 해 사퇴를 종용하며 홍 본부장도 사퇴시키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가 대통령에게 직접 해임건의를 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도 최 이사장에게는 부담이었다. 최 이사장과 갈등을 빚었던 홍 본부장 역시 연임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이 모두 물러나더라도 국민연금 기금운용과 관련된 논쟁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최 이사장과 홍 본부장의 갈등은 국민연금 기금운용과 관련된 견해차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최 이사장은 기금운용의 안정성을 강조하며 현 체제 내에서 전문 인력과 조직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기금을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정부 방침과는 다른 것이다. 반면 자산운용업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홍 본부장은 현재보다 공격적인 기금운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또 직간접으로 기금운용본부 공사화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혀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최 이사장이 물러나면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분리해 독립시키려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복지부는 공단 운영실태 점검 과정에서 기금운용본부장의 권한과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 김용하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등 기금 공사화 찬성론자가 신임 연금공단 이사장에 부임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유근형 noel@donga.com·이세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