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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검거된 수원 토막살인 사건의 피의자 박춘봉 씨(55)가 범행을 저지른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일대는 2년 전에도 오원춘 씨(44)의 엽기적 살인 행각 때문에 들썩인 곳이다. 중국동포인 둘은 거주지가 인근이라는 공간적 공통점 외에도 검거된 후 화법과 행동이 비슷하다. 우선 초기 경찰조사에서 거짓 진술을 하는 모습이 동일하다.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주장해 형량을 줄이려는 시도다. 박 씨는 13일 새벽 범행을 시인하며 “말다툼 끝에 김 씨를 밀었더니 벽에 부딪혀 죽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확인 결과 피해자 김모 씨(48·여)는 목이 졸려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 씨 역시 경찰 조사 초기에 “저녁에 고량주 1명을 마시고 집 앞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지나가던 A 씨와 부닥쳐 미안하다고 했는데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길래 집안으로 끌고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오 씨는 피해자를 넘어뜨려 집에 끌고 들어가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영혼 없는 사과’를 한 것은 똑같다. 박 씨는 14일 “피해자 가족에게 죄송하다”면서도 시신 훼손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해 분노를 샀다. 오 씨 역시 프로파일러에게 “유족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경찰 조사에서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내내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같다. 박 씨는 범행을 시인한 후에도 “모른다”거나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주로 하고 있다. 오 씨 역시 “내가 왜 그때 거기(집 앞 전봇대)를 갔는지, 그 여자가 왜 내 앞을 지나갔는지 정말 재수가 없었다”는 뻔뻔한 말을 했다. 경찰을 두려워한다는 점 역시 공통점이다. 박 씨는 범행 동기와 관련해 “경찰에 발각될까 봐 두려워 시신을 훼손했다”고 진술했다. 오 씨는 검거 당시 “총살당하는 것 아니냐”며 두려워했다. 두 범죄자 모두 중국 공안의 이미지를 한국 경찰에 투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중국동포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과학수사 기술들이 얼마나 진보됐는지 잘 모른다”면서 “일단 둘러대자는 심리로 말을 하다 보니 두 범죄자의 화법에서 공통점이 생기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경기 수원시 팔달산 토막살인사건의 피의자 박춘봉 씨(55)가 “훼손한 시신을 택시로 옮겼다”며 단독 범행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씨는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은 계획범죄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2008년 위조여권으로 입국한 박 씨가 6년간 불법체류하면서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14일 경기 수원서부경찰서에 따르면 박 씨는 지난달 26일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월세방에서 동거녀 김모 씨(48)를 살해한 뒤 시신을 흉기로 훼손했다. 경찰은 또 박 씨가 범행 당일 원래 집에서 약 240m 떨어진 다른 월세방을 계약한 뒤 이곳으로 시신을 옮겨 추가로 훼손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씨는 범행 직후 흉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박 씨는 시신 일부를 집에서 약 5.2km 떨어진 고금산 일대에 매장했다. 그는 시신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버젓이 택시로 이동했다. 나머지 시신은 걸어서 이동하며 집 근처 팔달산과 수원천에 버렸다. 경찰은 13일 고금산과 팔달산에서 추가로 시신을 수습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비닐봉지는 11개. 그러나 팔 다리 한 쪽씩을 아직 찾지 못했다. 범행 동기는 모호하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말다툼 끝에 김 씨를 밀었더니 벽에 부딪혀 숨졌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김 씨 시신에서 목이 졸린 흔적이 발견됐다. 경찰이 계획범죄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중국 지린(吉林) 성 출신이라고 진술한 박 씨는 2008년 ‘박철’이라는 이름의 위조여권을 갖고 입국했다. 6년이나 국내에서 불법체류자로 생활하면서 10여 개의 가명을 사용했다. 지난해 수원의 한 인력사무소를 통해 청소 일을 했을 때에는 ‘장진태’라는 이름을 썼다. 지난달 26일 월세방 계약 때에는 ‘송 씨’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주로 수원에 머물며 공사장에서 일했지만 가족은 서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범행 후 수원에서 멀리 떨어진 경기 포천시 소흘읍 일대에 피해자 김 씨의 휴대전화를 버렸다.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고 범행을 은폐하려 한 것이다. 경찰은 범행수법이 잔혹하다고 보고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박 씨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추가 제보를 기대하고 있다. 또 박 씨의 정확한 인적 사항과 중국에서 범죄를 저질렀는지 파악하기 위해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한편 수원지법은 14일 “도주 및 증거 인멸의 가능성이 있다”며 박 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또 유전자(DNA) 채취를 위해 박 씨의 옷과 손톱, 집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함께 발부했다. 앞서 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경찰서를 나서던 박 씨는 “피해자 가족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신 훼손 이유를 묻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이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수원=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경기 수원시 팔달산 토막살인사건의 피의자인 박모 씨(57·중국동포)는 살해된 여성인 김모 씨(48·중국동포)와 수개월간 동거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12일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지난달 말 가계약을 한 뒤 범행 유류품을 뒀던 팔달구 매산로의 월세방을 얻기 전에 인근 동네에서 김 씨와 동거해 왔다. 김 씨의 언니는 경찰 조사에서 “두 사람이 올해 상당 기간 동거를 했다”며 “내 동생은 마트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다”고 진술했다. 김 씨는 어머니와 언니 등 가족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박 씨도 경찰에서 자신은 조선족이고 같은 조선족인 김 씨와 몇 개월간 동거했다고 털어놨다. 박 씨는 막노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둘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박 씨가 김 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씨가 지난달 26일 얻은 월세는 3층 주택의 반지하방(26m²)으로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를 통해 계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건의 신고자인 공인중개사 김모 씨는 본보 인터뷰에서 “박 씨가 지난달 26일 자신을 ‘송 씨’라고 소개하며 사무소에 찾아왔다. 우리 직원이 방을 소개했더니 ‘맘에 든다’며 집주인과 보증금 100만 원, 월세 26만 원에 가계약을 하면서 선불 20만 원을 주고 열쇠를 받아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박 씨가 12월 5일경 정식 계약을 하고 입주키로 했는데 전화번호가 바뀌어 연락이 안 됐다. 며칠을 더 기다리다가 신고 당일인 11일 오후 3시 반경 월세방을 찾아가 집주인과 함께 방문을 열었더니 목장갑과 검은 비닐봉지, 두루마리 휴지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수상히 여기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당시 방 안에는 핏자국을 지우는 데 쓴 것으로 보이는 표백제(락스)와 냄새를 제거하는 섬유 탈취제(페브리즈), 매실액이 담긴 주전자와 수세미가 싱크대 위에 있었다. 경찰은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이 방 안의 혈흔 DNA가 토막시신의 것과 일치한다는 감식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또 팔달산과 수원천에 버려진 토막시신과 김 씨 어머니의 DNA를 대조한 결과 시신이 김 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경찰은 피의자 박 씨가 9일 경기 포천시 소흘읍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 이유를 추궁하고 있다. 박 씨는 자신의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숨진 김 씨의 휴대전화까지 들고 포천으로 이동했다. 김 씨 시신은 4일 오후 처음 발견됐다. 경찰은 “시신 일부를 포천에 유기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변을 수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 씨가 평소 가명을 쓴 점과 치밀하고 엽기적인 범행 수법 등으로 미뤄 또 다른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추궁 중이다. 박 씨는 정 씨, 송 씨 등의 가명을 썼고, 경찰에 검거된 이후에도 묵비권을 행사하며 “잠을 자야겠다. 변호인을 접견시켜 달라”고 하는 등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박 씨의 자백을 받기 위해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 수사관) 5명을 투입했다.수원=남경현 bibulus@donga.com·황성호 기자}
경기 수원시 ‘장기 없는 토막 시신 살인사건’ 피의자가 중국동포(조선족) 박모 씨(57)로 확인되면서 중국동포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중국동포들은 이미 2012년 4월 ‘오원춘 엽기 살해 사건’으로 비슷한 곤욕을 치른 적 있어 더욱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중국동포들이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중앙시장은 평소 중국산 식료품과 중국집을 찾는 손님으로 북적였으나 12일 오후엔 한산한 분위기였다. 시장 골목에서 만난 중국동포 조모 씨(55·여)는 “조선족이 사고를 쳤다고 하니 한국 손님은 하나도 안 보이고 조선족들도 봉변을 당할까 봐 몸을 사리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토막살인 피의자가 중국동포란 사실이 알려진 12일 내내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는 이들을 비난하는 게시물과 댓글이 줄을 이었다. “조선족 좀 추방하라” “일자리 빼앗고 사람 목숨 빼앗는 조선족들 어찌해야 하나”라는 등의 비난글이 대부분이었다. 최충옥 경기도다문화센터 소장은 “평소 우리 사회가 중국동포들에게 갖고 있던 불만이 한꺼번에 표출되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이날 취재진이 만난 중국동포 대부분은 “솔직히 억울하다”고 말했다. 한 중국집의 주방보조로 일하고 있는 중국동포 최모 씨(40)는 “이번 일로 ‘조선족 모두가 나쁘다’고 한국 사람들이 생각할 게 분명하다”며 “이런 대접을 받을 바에는 차라리 중국으로 돌아가는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 전체로 퍼질 수 있는 ‘조선족 포비아(공포증)’나 혐오감 확산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국내에서 살고 있는 중국동포가 58만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테러나 심각한 사회적 분열현상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곽재석 한국이주·동포개발연구원 소장은 “마치 미국의 ‘KKK단(미국의 인종차별주의 극우비밀조직)’이나 일본의 혐한단체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특히 ‘중국동포 전체가 폭력적이고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발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편 피해자 김모 씨(48·여)의 시신 일부가 잇따라 발견된 수원시 팔달구 인근 주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팔달구는 수원에서도 대표적인 중국동포 밀집지역으로 꼽힌다. 매교동 주민센터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모 씨(48·여)는 “이사 온 지 1년밖에 안됐는데 이런 소식을 들어 너무 황당하다”며 “우리 가게만 해도 중국동포들이 많이 오는데 이젠 이들을 대면하는 것조차 두렵다”고 호소했다.이철호 irontiger@donga.com / 수원=황성호 기자}

10월 16일 개장한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 아쿠아리움(대형 수족관)의 일부 수조에서 물이 새는 사고가 발생했다. 롯데그룹은 “다른 아쿠아리움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라며 보수공사를 진행 중이나 제2롯데월드의 연이은 안전사고에 따른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3일 지하 2층 아쿠아리움 내 오션터널(관람 수조) 콘크리트벽과 아크릴 사이에 채워 놓은 실리콘에서 길이 7cm, 너비 2mm 안팎의 균열이 발견됐다. 발견 당시 균열 부위에서는 1시간마다 종이컵 1컵 분량의 물이 새어 나왔다. 롯데 측은 4일부터 실리콘 코킹(구조물이 갈라진 틈을 실리콘으로 붙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틀 뒤 물이 더 새어 나와 오션터널 구간을 폐쇄했다. 나머지 구역에는 관람을 계속 허용했다. 롯데는 “국내외 아쿠아리움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보수공사가 다 끝난 상태”라고 말했지만 본보가 현장을 취재한 결과 해당 수조에서는 9일 현재까지도 극소량의 물이 새어 나오고 있다. 서울시도 이날 전문가 현장조사를 벌인 뒤 “조사 결과 현재도 미세하게 누수가 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보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2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연면적은 1만1240m², 수족관 물의 양은 5220t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650종의 강과 바다 생물 5만5000여 마리가 13개 테마로 전시 중이다. 이번에 누수가 발생한 수조는 3400t 규모다. 아쿠아리움 밑에는 석촌변전소가 있다. 이 때문에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아쿠아리움 누수로 인한 대형 안전사고 가능성이 제기됐다. 롯데 측은 “아쿠아리움과 지하 변전소는 완전히 차단돼 있어 누수 현상이 안전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황성호 hsh0330@donga.com·김현수·장선희 기자}

“저는 이등병 때부터 ‘관심병사’였습니다. 1년 8개월 동안 정말 떠올리기 싫은 군 생활을 경험해야만 했죠.” “그 이등병을 저는 3년이나 했답니다.” 한 20대 남성이 군 생활의 고충을 털어놓자 옆에 앉은 작은 체구의 20대 여성이 이렇게 맞받았다. 남성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관객들 사이에서 일제히 웃음보가 터졌다. 1일 서울 은평구 통일로 청년허브에서 열린 ‘제1회 남북청년페스티벌’의 한 장면이다. 대화의 주인공은 남한의 ‘개구리 군복’을 입고 나온 신승준 씨(26)와 북한 인민군복을 입은 새터민 출신 정미화(가명·27·여) 씨. 사회를 맡은 페스티벌 총감독 이선비 씨(29)는 분위기를 잡기 위해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졌다. “군대 하면 사랑 얘기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두 분은 어떠셨어요?” 신 씨는 첫 휴가 이틀 전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여자친구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탈영하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꼈습니다.” 남성 관객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 씨가 말을 받았다. “북한에서는 군대를 10년 가니까 입대하기 전에 다 헤어져요. 대신 남녀 모두 군대를 가니까 가끔 군 생활 때 로맨스가 생기죠. 저도 사실 군대에서 연애했는데 아침에 화장실 갈 때 윙크 정도 하는 게 애정 표현의 전부였어요.” 남북 젊은이들의 ‘일’ ‘사랑’ ‘고민’을 주제로 한 둘의 대화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했다. 기존의 남북 체제의 차이나 통일 방안 같은 딱딱한 주제였다면 불가능했을 분위기였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새터민 50여 명 등 약 300명의 남북 젊은이는 이렇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청춘을 공유했다.북에서 온 형과의 어색한 만남 이번 페스티벌에서 감독을 맡은 이 씨는 서강대 경제학과에 다니던 2012년 2월 교환학생으로 중국 칭화대(淸華大)에서 특이한 경험을 했다. 이 학교에는 북한 사람 7명이 유학 중이었다. 이 씨는 ‘북한 사람과 직접 만나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기숙사에서 북한 학생과 같은 방을 쓰는 영국인 친구에게 부탁해 두 살 많은 ‘형’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씨가 처음으로 접한 북한 사람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형의 책상 앞에서 인사했다. 막상 만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어색하게 인사만 하고는 잠시 후 헤어졌다. 북에서 온 형과의 만남은 이게 전부였다. 5개월 뒤 한국에 돌아올 때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이 씨는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형의 책상에 ‘형님, 더 가까이 지내지 못해 너무 아쉽습니다. 다시 뵙게 되면 더 많은 얘길 나누고 싶습니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리고 위쥐안(于娟)이 쓴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라는 책 한 권을 선물했다. 위쥐안은 2012년 33세 때 암으로 숨진 중국 푸단대 여교수다. 이 책은 그가 암 선고를 받은 뒤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을 묶은 것이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메모와 책은 그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씨는 귀국한 뒤 여느 대학생처럼 취업 준비에 매달렸다. PD를 꿈꾸며 방송사 몇 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그러다 올해 5월 ‘최게바라 기획사’라는 문화기획사 대표 최윤현 씨(29)로부터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북한과의 두 번째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남과 북의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최게바라는 지난해 2월 최 씨가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만든 신생 기획사다. 당초 시작은 청년들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즐길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창 기획사 설립을 준비하던 중 최 씨는 한 행사에서 20대 새터민들의 솔직한 고백을 들었다. “새터민은 늘 ‘관제행사’에 동원돼 뻔한 이야기만 한다. 우리도 20대 젊은이다. 진짜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다.” 또 다른 새터민 친구는 최 씨에게 “너는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내 취미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냐”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를 그냥 새터민 친구로 대해온 최 씨는 가슴이 뜨끔했다. ‘내가 너무 속내를 보이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자신이 만드는 놀이터에 북한 청춘들이 함께하는 이벤트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최 씨의 사연을 듣고 모인 남한의 젊은이는 이 씨를 비롯해 모두 6명. 광주에서 무일푼으로 상경한 신승준 씨,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를 수석 졸업하고 합류한 웹디자이너 이여원 씨(23·여) 등이다. 최 씨 등 7명은 매일같이 서울 마포구 성지3길의 60m² 남짓한 월세방에 모여 남북 청춘을 하나로 묶을 방안을 고민했다. 지난해 4월 첫 결실을 얻었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의 한 공연장에서 ‘우리 그리고 친구’라는 주제로 제1회 남북청년토크를 열었다. 같은 해 11월 광진구 능동로의 한 카페에서 2회 행사가 열렸다. ‘서울 상경기’라는 주제로 부산에서 온 남한 청년과 함북 청진시에서 온 청년이 서울살이의 고단함을 수다 떨 듯 털어놨다. 너무도 빨리 돌아가는 서울생활 앞에서 ‘촌놈’의 서러움을 이야기하자 남북 청년들은 모두 공감했다. 더이상 정치나 이념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최 씨는 2인 3각 달리기 등 남북 청년들이 몸으로 부딪쳤던 ‘남북청년운동회’, 소주와 막걸리를 나눠 마셨던 ‘남북청년 한잔’ 등 관련 행사를 마련했다. 올해 6월에는 10여 명이 자전거를 타고 임진각까지 다녀오는 ‘남북청년자전거’ 행사가 진행됐다. 출발지인 경기 고양시에서 임진각까지 거리는 29km, 자전거로 왕복 6시간이 걸렸다. 땀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날 밤 함께 여행을 떠났던 새터민 이향 씨(21·여)가 최 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국에 온 지 4년째인데 오늘만큼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어요. 이런 시간을 마련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놀이로 준비하는 통일 남북청년페스티벌은 ‘1년에 한 번씩 남북 청년들이 모두 모여 즐겁게 놀 기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판이 커지자 사람도 더 필요했다. 이 씨는 올해 10월 일면식도 없는 함북 온성군 출신 조동현 씨(30·한국외국어대 중문과 4학년)에게 연락했다. 2000년 탈북한 그는 춤추는 걸 좋아해 남한에서 비보잉팀에 들어가 춤을 배우고 있었다. 조 씨는 탈북하던 중 중국에서 아이돌그룹 ‘핑클’ ‘H.O.T.’ 등의 영상을 처음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솟은 헤어스타일에 비닐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조선말 잘하는 중국인이구나’라고 생각했단다. 이들이 춤추는 손짓 발짓을 따라하다 어느새 춤의 세상에 빠져들었다. 2008년 마침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조 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비보잉팀을 찾는 거였다. 소문만 듣고 조 씨를 찾아 나선 이 씨는 다짜고짜 “함께하자”고 말했다. 첫 만남이었지만 조 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동료 2명과 함께 이번 페스티벌에 참가해 아이돌그룹 갓세븐의 ‘에이’와 티아라의 ‘롤리폴리’에 맞춰 춤을 췄다. 힙합 가수로 활동하는 새터민 강춘혁 씨(28·홍익대 회화과 4학년)도 동참했다. 강 씨는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북한을 ‘디스(비하를 일컫는 힙합 용어)’하는 내용의 랩을 해 화제를 모았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강 씨는 전공을 살려 무대를 장식한 그림을 그렸다. 미술가 현지윤 씨(27·여)가 함께 작업했다. 현 씨는 음악에 맞춰 몇 분 만에 그림을 그려내는 이른바 ‘라이브 페인팅’ 전문가다. 두 사람은 ‘남북 청년’이라는 소재에 맞게 ‘군모를 바꿔 쓴 남북 군인’ 그림을 행사장에 선보였다. 한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노지숙 씨(27·여), 초등학교 교사인 송기인 씨(26·여) 등 남북 젊은이 5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행사 일주일 전부터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잠을 자며 준비했다. 모두 무보수였다. 이번 페스티벌에 들어간 비용은 약 1300만 원. 십시일반 모은 돈과 사회연대은행의 지원으로 행사를 열 수 있었다. 남북 청년들은 무대 한쪽에서 음악에 몸을 맡겼고, 토크쇼도 했다. ‘두부밥’ 같은 북한 음식을 팔기도 했다. 최게바라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행사가 끝난 뒤 보람만큼이나 아쉬움도 남는다고 했다. 그러나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남북 젊은이들이 함께할 자리를 마련했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최 씨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통일이라는 주제의 딱딱함을 깨고 싶었다”며 “통일(을 꿈꾸는 과정)은 재미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게바라는 연말에 다시 한 번 남북 청춘을 한자리에 모은다. 바로 ‘남북청년파티’다. 남북의 젊은이들은 이렇게 놀면서 하나가 되고 있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가수 신해철 씨의 사인으로 추정되는 장협착 수술을 한 서울 송파구 S병원이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S병원 강모 원장(44)은 “신 씨 사망 이후 병원 경영 상황이 악화돼 5일 서울중앙지법에 법정관리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신 씨 사망 관련 소송을 담당하는 의료 전문 변호사와 별도로 파산 전문 변호사를 선임했다. 강 원장은 비만 치료 목적의 위밴드 수술 전문가다. 강 원장은 유명 연예인들을 수술한 뒤 여러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홍보하면서 유명해졌다. 병상 100여 개 규모의 S병원은 신 씨 사망 뒤 환자가 급격히 줄면서 경영상태가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강 원장은 “현재 전체 부채가 90억 원에 달한다. 25명이던 의사도 현재 7명만 남았고 병원 재산에 대한 가압류가 들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가수 신해철 씨의 사인으로 추정되는 장협착 수술을 한 서울 송파구 S병원이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S병원 강모 원장(44)은 “신 씨 사망 이후 병원 경영 상황이 악화돼 5일 서울중앙지법에 법정관리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신 씨 사망 관련 소송을 담당하는 의료 전문 변호사와 별도로 파산 전문 변호사를 선임했다. 강 원장은 비만 치료 목적의 위밴드 수술 전문가다. 강 원장은 유명 연예인들을 수술한 뒤 여러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홍보하면서 유명해졌다. 병상 100여 개 규모의 S병원은 신 씨 사망 뒤 환자가 급격히 줄면서 경영상태가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강 원장은 “현재 전체 부채가 90억 원에 달한다. 25명이던 의사도 현재 7명만 남았고 병원 재산에 대한 가압류가 들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부장 박성진)는 2일 연구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4년 6개월 동안 대학원 제자 15명의 인건비 5억1000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세종대 A 교수(46)를 구속 기소했다고 2일 밝혔다. 피해액은 1인당 700만 원에서 4900만 원에 이른다.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A 교수의 범행은 2009년 10월 정부부처 산하기관에서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제자들의 통장에 입금된 수당을 가로채며 시작됐다. A 교수는 제자들에게 “통장 비밀번호를 동일하게 만들어서 통장과 체크카드를 나에게 가져오라”고 해 돈을 가로채 왔다. 4년 6개월을 이어오던 A 교수의 범행은 한 피해자가 청와대 신문고에 이런 사실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제주 콩 부부, 콩 사세요. 콩이 혹시 잘 안 팔리면 어쩌나 나름 걱정했는데 감사하게도 잘 사주시니 마음이 놓였다.” 제주에 집을 짓고 전원생활 중인 가수 이효리 씨(35)가 이달 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이 씨는 자신이 직접 키운 콩을 수확해 제주지역 장터에 내다 팔았다. 그는 장터 사진과 함께 올린 글에서 “비 때문에 취소될까 걱정했지만 ‘예정대로 열기로 했다’는 공지를 받고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했다”며 “1kg으로 포장한 콩은 30분 만에 ‘완판’됐다”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 씨가 콩을 팔면서 팻말에 써놓은 ‘유기농’ 표시 때문이다. 친환경농업육성법에 따르면 유기농산물을 생산 취급 판매하려면 관계기관의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 블로그 사진을 유심히 본 한 누리꾼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조사를 의뢰했고 최근 현장 조사가 진행됐다. 이 씨는 논란이 일자 블로그에 올린 글과 사진을 삭제했다. 이 씨 소속사 측은 “마을 직거래장터가 활성화되길 바라는 차원에서 콩을 팔았다. 인증 제도가 있는 줄 몰랐다”고 26일 해명했다. 인증 제도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씨 측의 해명처럼 제도를 몰랐다면 벌금이나 처벌 없이 행정지도 처분에 처해진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A 씨(24)는 2009년 중앙대의 ‘1+3 국제전형’에 합격했다. 국내 명문대 진학이 쉽지 않은 성적이었기에 “1년 동안 국내에서 수업을 받고 나머지 3년간 미국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학교 측의 설명에 가슴이 설�다. 그는 합격 후 1년간 중앙대에서 수업을 받고 미국의 한 주립대로 유학을 갔다. 그러나 합격 전에 들었던 학교 측의 설명과는 거리가 있었다. 3000만 원 가까운 돈을 들였지만 수업내용이나 교육환경은 기대 이하였다. 그는 편입하기 위해 미국 내 다른 대학에 문의했다. 얼마 뒤 A 씨는 청천벽력 같은 답변을 들었다. A 씨가 이수한 학점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2년 동안 받은 수업이 송두리째 허공에 날아간 것이다. A 씨는 결국 귀국한 뒤 2011년 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시 치러야 했다. 6, 7년 전 국내 10여 개 대학이 경쟁적으로 도입해 운영했던 1+3 국제전형에 합격한 사람은 약 5100명. A 씨를 비롯해 이들 중 상당수가 학점 인정을 받지 못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이 전형 자체가 사설 유학원이 주도한 불법 유학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피해가 잇따르자 2012년 11월 교육부는 해당 대학들에 전형 폐쇄 명령을 내렸다. 일부 대학과 학부모들이 소송을 냈으나 대부분 패소했다. 이와 별도로 지난해 7월부터 국제전형 운영의 위법성 수사를 해온 경찰은 외국교육기관특별법위반 혐의로 중앙대와 한국외국어대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로써 1년 3개월여에 걸친 수사를 통해 모두 17개 대학과 유학원 관계자 62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직에서 사퇴한 송광용 전 서울교대 총장,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지낸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과 박철 전 한국외국어대 총장, 김희옥 현 동국대 총장(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 등 전현직 총장 12명이 포함됐다. 전형 운영 과정에서 대학과 유학원 사이에 기부금이 오간 사실도 확인됐지만 대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학원 관계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17개 대학의 전형을 통해 입학한 학생들이 등록금 명목으로 낸 돈만 약 733억 원에 달한다. 각 대학은 이 돈의 절반가량을 유학원에 주고 나머지를 챙겼다. 수사는 마무리됐지만 새로운 형태의 1+3 전형이 등장해 입시철 수험생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일부 유학원이 필리핀 미국 등지의 대학과 연계해 변형된 전형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필리핀이나 미국의 커뮤니티칼리지(전문대)에서 1년을 공부하면 미국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고 학생들을 유혹하고 있다. 본보 취재진이 24일 찾은 서울 강남의 B유학원의 경우 “영어 성적이 부족해도 우리 커리큘럼만 따라가면 걱정 없다”며 “수능에서 영어 4등급을 받은 학생도 무난하게 미국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강남의 다른 유학원 측도 “1년간 필리핀 대학에서 1학년을 보내는데 현지 코디네이터가 있어 큰 불편은 없다”며 “나머지 3년은 미국 명문대에 진학해 공부할 수 있다”고 광고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유학원들이 연계한 대학에서 실제 학적에 등록돼 1학년 학점을 주는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정윤철 기자}
이달 14일 비번 근무로 쉬게 된 서울 수서경찰서 수서파출소 소속 김동율 순경(29)은 친구를 만나러 갈 생각에 들떴다. 순경으로 임용된 지 3개월째로 타향살이를 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친구를 만나 풀고 싶었다. 그러나 들뜬 마음은 오후 3시경 서울 강남구 대청역 개찰구 앞에서 낯설지만 왠지 '눈에 익은 남성'을 보면서 사라졌다. 김 순경의 머릿속에는 11일 강남구의 한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훔친 체크카드로 일대 편의점 3곳을 돌며 술과 담배를 사는데 총 20만 원을 쓴 김모 씨(45)의 얼굴이 순간 스쳐갔다. 이 남성도 범행 당일 김 씨처럼 검은색 정장과 갈색 티셔츠를 입고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많았다. '초짜'인 김 순경은 그래도 불안해 김 씨 주변을 1분간 돌며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은 범인의 사진과 남성을 비교해봤다. 이 남성은 자신을 살펴보는 사복 입은 김 순경이 경찰인 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확신이 선 김 순경은 이 남성에게 "최근에 인근 절도사건 때문에 불심검문을 나왔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사람 잘못 봤다"라며 줄행랑을 쳤지만 30m도 못 가 붙잡혔다. 수서경찰서는 김 씨를 절도 및 여신전문금융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4일 밝혔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길 위로 파란 빛이 올라왔다. 지표면에 설치된 직경 10cm짜리 조명에서 나오는 빛이다.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 86길에는 이런 조명이 2m 간격으로 300m에 걸쳐 이어져 있다. 밤에는 마치 비행기 착륙을 앞두고 일제히 표지등을 켠 공항 활주로를 연상케 한다. 이곳은 숙명여대 기숙사로 이어지는 길이라 늦은 시간까지 여학생들의 통행이 잦다. 그러나 후미진 뒷골목이라 취객들이 다니는 한밤중에 무서움을 호소하는 학생이 많았다. 올해 4월 용산경찰서는 용산구청과 함께 이곳에 ‘발광형 표지등’ 150개를 설치했다. 태양열을 통해 에너지를 모은 뒤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작동되는 표지등이다. 개당 가격은 4만 원. 들인 돈은 전체 600만 원에 불과하지만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숙명여대 무용학과 이승은 씨(20·여)는 “파란 조명이 있으니 확실히 덜 무섭다”며 “골목길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지면서 나쁜 사람들이 와도 어떻게 행동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학생들의 귀갓길 분위기를 바꾼 것은 바로 ‘범죄예방디자인(CPTED·셉테드)’ 효과다. 셉테드는 범죄 예방에 디자인 개념을 반영한 것. 도시나 주거환경을 바꿔 사람들의 통행을 늘리는 등 폐쇄적 공간을 개방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범죄 감시 효과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범죄율 감소로 이어진다. 미국 등 해외에서 시작됐는데 국내에서도 그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원룸과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서울 동작구 성대로 14길의 별칭은 ‘거울길’. 9월 초 450m 거리에 있는 건물 30곳의 현관에 거울 같은 효과가 나는 ‘미러시트(반사필름)’가 부착됐다. 성인 여성의 평균 키를 감안해 160cm 정도 높이에 30cm 너비의 미러시트가 빠짐없이 붙었다. 귀가하는 여성을 뒤따라가 현관문을 열 때 덮치는 범죄를 막기 위해서다. 뒤에 있는 범죄자를 미리 발견해 신고나 대피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 진성숙 씨(54·여)는 “이 골목에선 오토바이 날치기가 빈번했다”며 “효과는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미러시트를) 설치한 뒤 경찰이 주의 깊게 보는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고 했다. 빈집털이가 잦았던 서울 도봉구 주택가는 올해 3월부터 ‘도둑고양이’가 지키고 있다. 도둑고양이는 형광페인트의 일종으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자외선 검출기로만 확인할 수 있다. 도봉구 총 201개 지역 1938가구에 도둑고양이가 칠해져 있다. 절도범이 담벼락이나 가스배관을 타고 침입하다 옷이나 신체에 묻으면 3, 4개월간 지워지지 않는다. 가격도 국산 제품은 10가구 정도에 칠할 수 있는 분량(100mL)이 1만5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지금까지 도둑고양이가 칠해진 주택에서는 단 한 건의 빈집털이도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도둑고양이가 있다’는 현수막과 표지판을 붙이면서 주변 지역에서도 덩달아 빈집털이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3∼9월 도봉구에서 발생한 빈집털이는 233건이었으나 올해는 같은 기간 128건으로 45%나 줄었다. 1998년 만들어진 서울 강동구 올림픽로 천호공원은 높은 석축과 무성한 나뭇가지 때문에 밖에서는 안쪽 상황을 잘 보기 어려웠다. 밤마다 청소년들이 술판을 벌였고 가끔 도박판이 벌어져 경찰 출동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올해 4월 시야를 가로막았던 석축을 제거하고 나뭇가지도 말끔히 정리하면서 밖에서도 내부 상황을 볼 수 있게 됐다. 깔끔한 디자인의 벤치와 다양한 형태의 화분도 배치돼 가족들이 모여 사진을 찍을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결과 공원 내에서 폭행과 도박으로 적발된 건수가 지난해 1∼10월 대비 38.4% 감소했다. 경찰은 범죄예방대책에 셉테드 개념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효과가 입증된 방안을 확대 시행하기 위해 셉테드 표준설계안 마련을 검토 중”이라며 “지방자치단체, 관련 전문가와 함께 조만간 논의기구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범죄예방환경디자인의 줄인 말. 도시환경 설계를 통해 범죄를 사전에 방지하는 선진국형 범죄 예방 기법. 유리창이 깨진 집이 범죄의 표적이 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기반으로 1990년대 미국 뉴욕 경찰이 범죄 단속에 적용해 성과를 냈다.이건혁 gun@donga.com·강홍구·황성호 기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고 신해철 씨의 부검 결과를 경찰에 최종 통보했다. 국과수는 당초 1차 소견에서 밝힌 것과 같이 신 씨 사망 원인에 대해 의료 과실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경찰 등에 따르면 A4용지 9장 분량의 국과수 부검 결과서는 신 씨의 사인을 인위적으로 나타난 구멍을 뜻하는 ‘의인성 천공’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과수는 앞서 3일 1차 부검을 마친 뒤 “심낭(심장을 둘러싼 막)에 있는 의인성 천공으로 인한 복막염과 심낭염, 패혈증이 신 씨의 사인”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신 씨 사망 전 위 수술을 해 준 서울 송파구 S병원 강모 원장(44)을 다음 주초 2차 소환 조사한다. 경찰 관계자는 “양측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강 원장과 신 씨 측 관계자의 추가 소환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강 원장을 2차 소환 조사한 뒤 최종 부검결과를 종합해 대한의사협회에 감정을 의뢰할 예정이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방화범 신세가 된 주부 장모 씨(53)는 한때 ‘잘나가는 청춘’이었다. 서울의 한 명문 여대를 졸업한 장 씨는 재력 있는 집안에 시집갔다. 겉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9일 오후 8시 30분. 그는 양손에 신문지와 라이터를 들고 서울 강남구 대모산 중턱까지 올라갔다. 장 씨는 먼저 낙엽을 모았다. 곧장 들고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내 불길은 옆 나무들로 번졌다. 과묵한 나머지 대화 한마디 없는 남편에게 받던 30년 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처음 소나무 송진에 조금씩 불을 붙이던 장 씨는 갈수록 더 큰 불꽃을 보고 싶은 마음에 낙엽을 모아 불을 질렀다. 그때마다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방화는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6차례나 이어졌다. 다행히 매번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조기 진화해 큰 피해는 없었다. 장 씨의 방화 행각은 그가 현장에 버리고 간 담배꽁초 때문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장 씨는 스스로 “조울증 환자”라고 밝혔다. 조증이 나타나면 한없이 기분이 좋다가 반대로 우울증이 오면 기분이 가라앉았고 그때마다 라이터를 들고 나섰다. 오랜 기간 변변한 직업 없이 지내던 남편 탓에 스트레스가 쌓인 결과였다. 결국 8년 전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3년 전부터는 담배에 손을 댔다. 빨간 담뱃불만 보면 장 씨는 기분이 좋아졌다. 더 큰 기쁨을 맛보고 싶어서 낸 아이디어가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우울증 환자의 방화 사례는 드물지 않다. 2일 서울 서초구의 한 고시텔에서 불을 질러 검거된 강모 씨(39·여)는 심한 산후우울증을 10년 전부터 앓고 있었다. 2012년 정부서울청사에 불을 지른 뒤 투신자살한 김모 씨(61) 역시 툭하면 “죽겠다”는 유서를 남기던 중증 우울증 환자였다. 의학계에서는 방화범 가운데 50% 정도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빠른 우울증 치료가 방화로 인한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김대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장 씨는 심한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고 방화로 이어진 사례”라며 “지인과 가족들이 나서 우울증 치료와 약물을 통한 충동조절 치료도 함께 받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황성호 hsh0330@donga.com·이철호 기자}

한국 전통문화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김장문화’를 소재로 한 ‘2014 서울김장문화제’가 14일 오후 광화문광장-청계광장-서울광장을 있는 세종로 일대에서 성대한 막을 올렸다. 서울시 주최, 동아일보·채널A 후원, 한국야쿠르트 주관으로 마련된 사상 최대 규모의 김치 담그기 행사로 올해 처음 열렸다. 서울시는 김장문화제를 세계 3대 축제로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관광공사와 관광상품으로 개발한다. 김장문화제는 ‘천만의 버무림, 대한민국 김장의 새로운 시작’을 주제로 ‘나눔·전시·체험·장터&먹을거리·문화’ 등 5개 분야 20여 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으며 일요일인 16일까지 이어진다. 행사장에는 아직 김장김치를 담그지 못한 주부와 전통 김장문화를 보러 나온 시민들의 발길이 이른 아침부터 이어졌다. 양복 차림의 직장인에서부터 장바구니를 든 주부, 교복차림의 학생,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 중절모를 쓴 노년 신사에 이르기까지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의 모습도 김치만큼이나 다양했다. 특히 홍어김치 등 전국 각 지역의 전통 김치와 김장 재료를 20% 이상 싸게 파는 태평3일장에는 추운 날씨에도 시민들로 북적였다. 주부 이태숙 씨(53)는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먹는데 김장문화제가 열린다고 해서 남편과 함께 보러 왔다”며 “평소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김치들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천만의 버무림, 김장나눔’ 행사. 노란색 유니폼에 빨간 앞치마를 두른 야쿠르트 아줌마(1000명)와 시민봉사단(1000명), 일반인 참가자(300명) 등 모두 2300명이 서울광장 한복판에서 초대형 하트를 연출해가며 김치를 담갔다. 이 행사는 한날 한 장소에서 김치를 담그는 행사 중 최대 규모다. 배추·무·파(충남 논산)와 젓갈(충남 논산 강경), 천일염(전남 신안) 등 김장 재료는 모두 지역 특산품만 사용했다. 행사가 열리는 3일 내내 시민과 단체, 기업 등 자원봉사자, 주한미군, 외국인 유학생, 외국인 관광객 등 9000여 명이 무려 13만 포기(265t)의 김치를 담근다. 양념 무게만 50∼60t에 달한다. 이렇게 담근 김치는 10kg(5포기 내외)씩 포장돼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와 푸드뱅크를 통해 홀몸노인 등 2만5000여 가구의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된다. 또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에게 갓 담근 김치를 전달해 아픔을 함께 나눌 예정이다. 개막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박래학 서울시의회 의장,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윤장현 광주시장, 정세균 국회의원, 김혁수 한국야쿠르트 대표이사,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를 비롯한 32개국 대사 등이 참석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배추와 무, 파, 양념을 버무렸다. 박 시장은 “김장문화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나눔의 축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김장문화를 새롭게 조명하고 재창조해서 한국을 넘어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문화와 축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조영달 dalsarang@donga.com·황성호 기자}
13일 치러진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한 남자 수험생이 학교 위치를 착각해 여자 수험생들 사이에서 ‘청일점’ 시험을 치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날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지역 고교를 졸업한 재수생 홍모 군(19)은 시험을 보기 위해 경기 광명시에 있는 광문고를 찾았다. 그러나 이 시험장은 여학생들을 위한 곳. 시험장 관리본부가 확인한 결과, 홍 군의 실제 시험장은 서울 강동구에 있는 광문고였다. 홍 군이 학교 이름만 보고 시험장 위치를 착각한 것이었다. 도교육청 수능 종합상황실은 입실 완료시간이 10여 분 남은 상황에서 홍 군이 제시간에 서울 광문고로 이동할 수 없다고 판단해 광명 광문고에서 시험을 보도록 했다. 홍 군은 여학생들 틈에서 1교시 시험을 치른 뒤, 2교시부터 감독관이 있는 별도의 교실에서 홀로 시험을 봤다. 이번 수능에서는 10년 만에 소년원 시험이 부활하기도 했다. 올해 처음으로 수능시험장으로 지정된 경기 의왕시 서울소년원 고봉중고등학교에서는 소년원생 23명이 시험을 치렀다. 생활관에 머물던 원생들은 시험 시간에 맞춰 교육관인 고봉중고 건물 1층 시험실에 입실했다. 고시장 안팎에는 감독관 8명 등 본부요원 23명이 있었고 다른 시험장과 마찬가지로 지역 경찰 2명도 배치됐다. 지난해까지 10명 미만이 수능 응시를 희망했던 서울소년원은 올해부터 수능 준비반을 만들어가며 진학교육에 힘썼다. 소년원 수능시험장 지정은 2004년 안산예술종합학교(현재 폐교) 지정 이후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 중구 이화외고 앞에서는 깜빡 잊고 시계를 가져오지 않은 여자 수험생 10여 명이 인근 편의점을 돌며 일명 ‘수능시계’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또 자녀가 시계를 가져오지 않은 한 학부모는 학교 근처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경찰관에게 시계를 빌려 자녀에게 건네기도 했다. 이 학부모는 경찰관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며 연락처를 받아갔다. 강원 원주시에서는 수험표를 두고 와 시험을 포기하려던 수험생 김모 양(18)을 경찰관이 설득해 시험관리본부에서 수험표를 재발급해 시험장에 들어가게 한 일도 있었다. 서울 은평구 은평고에서는 이번 수능 최고령 수험생인 조희옥 씨(81·여)가 시험을 치러 화제가 됐다. 현재 일성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조 씨는 일제강점기 당시 봉제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유지하느라 학업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강홍구 windup@donga.com·황성호 기자}
“지금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으니 빨리 가보세요.” 3일 오후 6시경 서울 송파경찰서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송파경찰서 강력팀은 분주해졌다. 6개 팀이 동원돼 송파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15층을 급습했다. 이미 도박장 업주 홍모 씨(39) 일당이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를 돌며 불법 도박장을 연다는 첩보를 보름 전 입수해 내사를 벌이던 터였다. 경찰이 들이닥친 현장에는 한 판에 판돈 100만 원에 달하는 일명 ‘바카라’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정주부 등 18명이 5시간 동안 총 4억 원의 판돈을 걸고 도박판을 벌였다. 홍 씨 일당은 9월 4일부터 이 아파트를 빌려 도박장을 개설했다. 이들은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도박꾼들을 모집했다. 일당은 주부 등으로부터 “도박을 하겠다”는 연락이 오면 지하철이나 아파트 입구까지 데리러 나가는 등 입주민처럼 행세했다. 아파트는 월 800만∼1000만 원을 주고 임차했다. 일당은 미리 통장으로 돈을 받아 칩을 도박장에서 건네주고 수수료 명목으로 5%를 받아 챙겼다. 송파경찰서는 불법 도박장을 개설한 혐의로 업주 홍 씨와 딜러 정모 씨(33)를 구속하고, 도박을 한 장모 씨(55·여) 등 1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3일 밝혔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 통상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학, 영어가 어렵게 나왔지만 올해는 두 과목 모두 쉽게 출제됐다. 특히 자연계 수험생이 치는 수학 B형까지 쉽게 나온 건 이례적이다. 사회·과학탐구는 지난해 수능에 이어 선택과목마다 난이도 격차가 여전했다. 과목 난이도에 따른 입시 유불리를 방지하기 위해 교육부와 평가원은 선택과목 난이도 격차를 줄이겠다고 했지만 입시전문가들은 “과목별 1등급 구분점수 차이가 커 수학 변별력이 떨어지는 자연계열의 경우 과학탐구 선택과목이 입시 결과를 결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국어, EBS교재 내용 응용 많아… 칸트 철학 지문에 곤혹주로 문과생이 보는 B형은 지난해 수능보다 어렵게 출제됐다. 주로 이과생이 보는 A형도 지난해 난이도와 비슷하거나 약간 어려웠다. 9월 모의평가보다는 상당히 어렵게 출제됐다. 9월 모의평가 국어의 만점자 비율은 A형이 4.19%, B형이 5.34%로 매우 쉬웠다. 김희동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9월 모의평가의 영향으로 수험생들의 체감 난도는 더욱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라며 “1등급 컷은 9월 모의평가에 비해 A형은 2∼3점, B형은 5∼6점 정도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진건의 소설 ‘무영탑’은 시험지 한 면을 다 차지할 정도로 긴 지문이 제시되는 등 문학 지문들의 길이가 다소 길어 독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점도 전반적인 난도를 높였다. 조영혜 서울과학고 교사는 “국어 B형의 EBS 연계율 70%는 맞지만 EBS 지문에 나온 개념과 논지를 확장한 내용이라 정작 수험생들은 연계성을 많이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험생이 특히 어려움을 느낀 문항은 A, B형 공통으로 출제된 ‘칸트의 취미 판단 이론’을 소재로 한 예술 지문, A형의 현대시(정지용의 조찬)와 현대수필(이태준의 파초)을 복합한 문항, B형의 고전시가(정철의 관동별곡)와 현대수필(최익현의 유한라산기)을 복합한 문항들이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이사는 “EBS 지문이 심하게 변형돼 특히 국어 B형은 만점자가 0.1%로 추정된다”며 “2012학년도 수능 이후 가장 어렵게 출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수학, 고난도 문제 줄어…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 될듯A, B형 모두 지난해 수능에 비해 쉽게 출제됐다. 9월 모의평가와 비교해 A형은 쉽게 출제됐고 B형도 비슷하거나 쉽게 출제됐다. 전반적으로 6월 모의평가 난이도와 비슷해 한두 문제만 틀리면 2등급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A형은 거의 해마다 출제됐던 빈칸 채우기, 도형의 등비수열 합의 활용 문제가 출제되지 않았다. B형은 기존 기출문제와 비슷한 문제가 많이 보여 수험생들이 평이하게 느꼈을 것으로 입시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조만기 경기 양평고 교사는 “최상위권 변별 문제가 A형은 3개, B형은 4개 정도 나와야 하지만 올해 수능은 어려운 문제 개수가 각각 2, 3개로 줄었다”며 “난도가 높은 4점짜리 문제도 EBS 연계 문제가 많아 수험생에게 익숙했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쉬운 수능 기조를 따랐으나 상위권 변별을 위한 고난도 문항의 난도는 여전히 높았다. B형의 경우 지수함수에서 미분 가능한 함수를 구하는 30번 문항이 어렵게 출제돼 만점 여부를 가릴 것으로 전망된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은 “B형은 30번 문항 때문에 만점자 비율이 지난해 수능(936명·0.58%)과 9월 모의평가(781명·0.52%)보다 다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 영어, 빈칸 추론 감소… 만점자비율 4% 역대 최고 전망영어는 교육부 예고대로 6, 9월 모의평가에 이어 수능에서도 쉬웠다. 만점자 비율도 4% 전후로 역대 수능 중 최고 수준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영어 난도가 유난히 낮아진 배경에는 수험생들이 가장 까다롭게 여기는 빈칸 추론 문제가 지난해 7문항에서 4문항으로 줄어든 데다, 모두 EBS와 연계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혜남 서울 문일고 교사는 “지난해 영어 B형이 어려웠던 이유가 빈칸 추론 문제 7개 중 3개가 EBS 비연계였기 때문”이라며 “빈칸 추론 문제가 변별력을 가리는 척도인데 이번 통합형 영어는 상위권을 변별하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6, 9월 모의평가에서 영어 1등급을 받은 재수생 정태서 씨(19)는 “6월 모의평가보다는 어렵고 9월 모의평가보다는 쉬워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야 1등급이 나올 것 같다”며 “모든 수험생이 예상했던 대로 상위권에서 다투려면 영어 1등급은 기본이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과탐, 자연계 선택과목따라 1등급 최대 7점 차이탐구영역의 선택과목별 1등급 구분점수는 과학탐구의 경우 최대 7점, 사회탐구는 최대 6점이 차이 날 것이라고 입시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문제가 쉬우면 1등급 구분점수가 높고 표준점수는 낮아진다. 반대로 문제가 어려우면 1등급 구분점수는 내려가고 표준점수는 높아져 표준점수를 반영하는 대학에 지원할 때 유불리가 갈린다. 과학탐구의 경우 올해 자연계열 입시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면서 선택과목 간 표준점수 격차가 가장 민감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생명과학Ⅱ는 지난해보다 매우 어려워 1등급 구분점수가 40점으로 추정되는 반면 물리Ⅰ,Ⅱ는 지난해 난이도와 비슷해 47점으로 추정돼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탐구는 전반적으로 지난해 수능과 비슷하거나 어려웠다. 지난해 쉽게 출제된 생활과 윤리, 한국사는 약간 어렵게 출제됐다. 오종운 이투스청솔 평가이사는 “어렵게 나온 윤리와 사상은 1등급 구분점수가 44점으로 추정되는 반면에 세계사는 지난해에 이어 쉽게 출제돼 50점 만점을 받아야 1등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전주영 aimhigh@donga.com·강홍구·황성호 기자}
"지금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으니 빨리 가보세요." 3일 오후 6시경 서울 송파경찰서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송파경찰서 강력팀은 분주해졌다. 6개팀이 동원돼 송파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15층을 급습했다. 이미 도박장 업주 홍모 씨(39) 일당이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를 돌며 불법 도박장을 연다는 첩보를 보름 전 입수해 내사를 벌이던 터였다. 경찰이 들이닥친 현장에는 한 판에 판돈 100만 원에 달하는 일명 '바카라'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정주부 등 18명이 5시간 동안 총 4억 원의 판돈을 걸고 도박판을 벌였다. 홍 씨 일당은 9월 4일부터 이 아파트를 빌려 도박장을 개설했다. 이들은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도박꾼들을 모집했다. 일당은 주부 등으로부터 "도박을 하겠다"는 연락이 오면 지하철이나 아파트 입구까지 데리러 나가는 등 입주민처럼 행세했다. 아파트는 월 800만~1000만 원을 주고 임차했다. 일당은 미리 통장에 돈을 받아 칩을 도박장에서 건네주고 수수료 명목으로 5%를 받아 챙겼다. 송파경찰서는 불법 도박장을 개설한 혐의로 업주 홍 씨와 딜러 정모 씨(33)를 구속하고, 도박을 한 장모 씨(55·여) 등 18명을 불구속입건했다고 13일 밝혔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