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김상운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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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학술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단행본 ‘국보를 캐는 사람들’(글항아리)을 냈고, 고고학 유튜브 채널 ‘발굴왕’을 제작했습니다.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sukim@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칼럼48%
문학/출판17%
역사10%
미술7%
국제일반3%
중동3%
미국/북미3%
국제정세3%
문화 일반3%
대통령3%
  • [책의 향기]외국어 학습의 왕도는 즐거움과 다독

    소위 ‘입시 영어’에서 해방된 지 20년이 넘었건만 이 책에 자연스레 손이 갔다. 학교만 졸업하면 끝일 줄 알았건만…. 대학원 원어 강독부터 해외 출장까지 영어의 마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중고교 시절 두꺼운 성문종합영어의 책장을 넘기며 내쉰 한숨 소리가 여전히 귀에 생생하다. 이 책은 한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독일어 몽골어 중국어 등 최소 9개 언어(본문 내용 기준)를 익힌 미국인 언어학자의 외국어 학습 체험기다.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지낸 그는 책 전체를 영어가 아닌 한글로 썼다. 언어 천재의 팁이 일반인에게 얼마나 유용할까 싶지만 책은 ‘영어 완전정복’류의 단순한 실용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유용한 팁이 없는 건 아니니 안심하시라.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의 솔직한 실패담이었다. 그는 한국인 여러 명과 모인 자리에서 이들 사이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해 슬럼프에 빠진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는 “모른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그냥 같이 웃고 넘어가면서도 속으로 우울해지곤 했다”고 고백한다. 여러 언어 익히기를 즐기는 언어학자마저 외국어 학습의 길은 지난한 셈이다. 그의 슬럼프 극복법은 외국어 학습의 놀이화 혹은 취미화다. 언어는 다독(多讀)이 최선의 방안인데 지루하면 절대 꾸준한 반복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 그의 경우 외국어 학습은 그 나라의 문화를 익히며 소통하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와 관련해 양차 대전의 참화를 겪은 유럽 각국이 유럽연합(EU)으로 통합을 이뤄낸 배경에는 상호 간의 활발한 외국어 학습이 전제됐다. 저자는 다독 과정에서 실용적인 팁을 제시한다. 학습자가 관심 있고 읽고 싶은 텍스트를 골라 읽어야 효과가 좋다는 것. 특히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 읽는 도중 맥이 끊길 정도면 과감히 해당 텍스트를 버리라고 조언한다. 관건은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꾸준히 외국어 텍스트를 접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입시용 텍스트에 얽매이지 않고 자율학습이 가능한 사회인의 외국어 학습이 되레 유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영어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40대 이상 중년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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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월성, 삼국사기보다 250년 늦게 축조… ‘사람 제물’ 재확인

    신라 천년 왕성(王城)인 경주 월성(月城)이 4세기 중엽 처음 지어져 5세기 초 완공된 사실이 발굴 조사 결과 처음 확인됐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서기 101년(파사왕 22년)보다 약 250년 늦은 것으로, 신라의 고대국가 발전에 대한 역사해석에 파장이 예상된다. 월성 축조 단계에서 20여 명의 신라인이 ‘사람 제물’로 바쳐졌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흔적도 발견됐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서쪽 성벽에서 출토된 유기물 40여 점에 대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성벽 기초부가 4세기 중엽부터 조성됐으며, 보축을 거친 성벽이 5세기 초 완공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7일 밝혔다. 발굴단에 따르면 신라인들은 일종의 뼈대 역할을 한 기초부와 중심 토루(土壘·흙무더기)를 돌과 흙으로 쌓은 뒤 그 양옆으로 흙과 볏짚, 모래 등으로 구성된 성벽을 4차례에 걸쳐 덧대어 쌓았다. 지금까지 역사학계 일각에선 월성이 처음 지어진 시기를 3세기 말 혹은 5세기 후반으로 보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이번 결과는 이 같은 연대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계는 4세기 중엽 월성이 처음 지어진 사실은 이 시기에 신라가 성읍국가에서 고대국가로 도약했음을 보여주는 핵심 근거라고 보고 있다. 거대한 성벽을 축조하려면 막대한 노동력이 동원돼야 하는데 이는 강력한 왕권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신라는 3세기 이전까지는 사로국(斯盧國)으로 불리며 경상도 일대 소국들을 병합하는 성읍국가 단계를 거쳤다. 그러다 영토를 넓힌 4세기 마립간(신라왕의 옛 이름) 시대가 열리면서 왕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고대국가 체제가 형성된다. 이 시기는 대릉원 등 경주에 거대한 봉분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들이 잇따라 조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현장을 둘러본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월성이 초축된 4세기 중엽 신라에 결정적인 정치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로 신라의 고대국가 성립이 삼국 중 가장 늦었음이 확실해졌다. 백제의 경우 왕성인 서울 풍납토성을 3세기 후엽부터 쌓기 시작한 사실이 과거 발굴조사로 확인된 바 있다. 신라에 비해 약 반세기 앞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월성 초축 시기를 놓고 삼국사기와 발굴 조사 결과가 서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얼까. 학계 일각에선 신라가 삼국통일 후 사서 편찬 과정에서 삼국 중 가장 미약했던 과거를 감추기 위해 사실을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쪽에선 파사왕대 별도의 소규모 토루를 지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김재홍 국민대 교수는 “월성이 지어지기 전 이곳에 살던 호공의 집을 탈해가 빼앗은 내용이 삼국사기에 나온다”며 “파사왕 당시 월성에 자연구릉을 이용한 토루를 지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월성 서쪽 성벽 토루 옆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희(人身供犧)에 희생된 것으로 보이는 20대 여성 인골 1구가 발견된 것도 주목된다. 앞서 2017년에도 이 인골과 50cm가량 떨어진 곳에서 사람 제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50대 남녀 인골 2구가 발견됐다. 이를 인신공희로 보는 근거는 이들 인골이 토루 경계에 놓여 성벽 축조 방향과 일치하는 데다 인골 옆에서 동물 뼈, 토기 등 제의의 흔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발굴단은 성벽 축조 과정에서 액운을 막고 무사히 건립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람 제물을 바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1985, 1990년에 이뤄진 월성 발굴 때 발견된 인골 20여 구도 인신공희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만약 이들도 사람 제물이 맞다면 월성 서쪽 성벽을 세우면서 최소 27명이 희생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김재홍 교수는 “인신공희 인골들은 고대국가로 도약한 신라의 정치권력이 사람을 지배하게 됐음을 과시하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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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에 새겨진 진실은 감춘다고 감춰지지 않는다[광화문에서/김상운]

    최근 대군주보(大君主寶), 칙명지보(勅命之寶) 등 고종의 국새 4점이 보물로 지정됐다. 이들 국새는 구한말 정부 외교문서나 관료 임명 등 행정문서에 폭넓게 사용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보도자료에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고종이 대군주보를 사용했음은 밝힌 반면 칙명지보가 1910년 한일병합조약 문서(순종황제 칙유)에 쓰인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한제국은 칙명지보 국새를 2개 만들었는데, 이 중 하나가 한일병합조약 때 사용됐다. 현존하는 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1개다.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된 칙명지보가 한일병합조약 문서에 쓰인 것인지에 대한 기자의 거듭된 질의에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칙명지보가 주로 행정결재에 쓰인 국새이다 보니 외교문서에 대해선 조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부끄러운 역사’를 굳이 들춰낼 필요가 있느냐는 속내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30일 뒤늦게 발굴조사 보고서가 발간된 전남 함평군 신덕 1호분 사례도 이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신덕 1호분은 1991년 첫 조사가 이뤄졌지만 30년간 발굴조사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다. 발굴 직후 약(略)보고서라도 내놓는 학계 관행에 비춰 보면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이는 무덤 모양이 일본 고대 무덤에서 흔히 발견되는 열쇠구멍 모양의 전형적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앞은 네모지고 뒤는 둥근 봉분을 가진 무덤)’인 탓에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한몫했다. 조사 결과를 검토한 고고학자들은 무덤 주인이 왜인(倭人)이 아닌 백제, 왜, 가야와 활발히 교류한 지역 수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최근 내렸다. 발굴조사 결과를 신속히 공개했다면 신덕 고분이 임나일본부의 증거라는 억지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사 연구는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발전할 수 있다. 최근 별세한 이정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의 학문 인생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반공주의자로 6·25전쟁 때 미군 통역관으로 복무한 그는 김일성에 대해 줄곧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지만 역사 사실에 대해선 엄정함을 유지했다. 학계 일각에서 ‘가짜 김일성’ 논란이 일었을 당시 고인은 김일성이 1930년대 만주에서 항일 게릴라 활동에 참여한 사실을 팩트대로 책에 썼다. 이로 인해 그의 대표 저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는 한때 이적표현물로 취급된 적도 있다. 그러나 고인은 김일성의 항일투쟁 효과가 미미했으며 특히 광복 후 권력을 잡기까지 소련과 중국에 종속된 사실을 명확히 지적했다. 북한 당국이 김일성 공식 전기에서 1931년 중국공산당 입당을 누락한 사실을 밝혀낸 게 대표적이다. 민족 주체를 앞세운 북한 당국이 김일성과 중국공산당의 초기 관계를 의도적으로 누락했음을 드러낸 것. 또 자료를 통해 광복 직전 소련 당국이 김일성을 모스크바로 불러들여 4년간 훈련시킨 사실도 밝혀냈다. 사회 전반에 팽배한 편 가르기, 반일(反日)몰이 등에서 연구자들마저 자유롭지 않은 요즘, 좌고우면하지 않고 사실(史實)만 올곧게 추구한 고인의 삶이 더 값지게 여겨진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 202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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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미국 외교에서 도덕성은 왜 중요한가

    최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인해 미국에 대한 신뢰성과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개입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발을 빼 아프간인들을 탈레반 폭압 아래 놓이게 하느냐는 거다. 이런 분위기는 막 들어선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역량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미 국민들의 도덕적 잣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1950년대 6·25전쟁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의 핵무기 사용 요구를 거부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자칫 미소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렸지만 당시 미 국민의 여론은 트루먼에게 불리했다.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공산군에 희생당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너무 유약하게 반응한다는 거였다. 만약 당시 핵이 사용됐다면 공산군은 물론 한국인들도 피폭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세계적 국제정치학자인 조지프 나이는 이 책에서 “트루먼은 자신의 국내 정치 기반이 약화되는 걸 받아들였다. 여기서 도덕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사실 무정부 상태의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도덕성 외교를 운운한다는 게 한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른바 소프트파워(문화 예술 학문 등에서의 매력을 통한 국가 영향력) 개념을 창시한 저자는 외교정책의 도덕성은 국익과도 직결됨을 강조한다. 각 국면에서 지도자의 도덕성이 국익을 어떻게 정의하고 추구할지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 14명의 외교정책 의도와 수단, 결과를 도덕적 차원에서 따져본다. 그에 따르면 이 세 척도에서 우등생은 루스벨트, 트루먼, 아이젠하워, 아버지 부시다. 6·25전쟁 때 트루먼의 사례에서 보듯 이들은 각기 다른 외부환경에서 도덕적 가치를 적절히 추구했다는 것이다. 반면 헨리 키신저 등이 높게 평가하는 닉슨에 대해선 박한 점수를 줬다. 저자는 “닉슨이 국제경제와 인플레이션, 인권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거뒀으며 무엇보다 베트남전에서 미군 2만1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선택을 내렸다”고 혹평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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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군주보 등 고종 국새 4점 보물 지정

    서양 국가와 맺은 최초의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에 쓰인 대군주보(大君主寶) 등 고종의 국새 4점이 보물로 지정된다. 대군주보는 2019년 미국에서 환수된 문화재다. 문화재청은 대군주보 제고지보(制誥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대원수보(大元帥寶) 등 국새 4점과 음식 조리서 ‘수운잡방’,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예념미타도량참법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24일 밝혔다. 국새는 국권을 상징하는 도장으로 외교문서와 각종 행정문서에 쓰였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대군주보는 1882년 7월 1일 제작됐다. 중신들에 대한 임명장과 반포된 법령문서에 쓰였는데 특히 조선이 미국과 체결한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에도 사용됐다. 미국에서 환수된 대군주보에는 과거 소장자 이름으로 추정되는 ‘W B. Tom’이 새겨져 우리 문화재의 수난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고지보와 칙명지보, 대원수보는 대한제국 시절 왕실 인장을 만든 장인 전흥길이 제작을 맡았다. 황제의 명을 반포하고 관리를 임명할 때 사용됐다. 일제는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3월 일본 왕실을 관리하는 궁내청에 조선 국새를 넘겼다. 이후 미군정이 1946년 궁내청에서 이를 환수했으며, 정부 수립 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됐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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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코로나로 버블 종식’ 예언한 묵시록

    ‘코로나 묵시록’ 같은 게 있다면 아마 이 책일 것이다. 책을 보면서 저자가 현직 경제학과 교수임을 재차 확인했다. 학자가 쓴 책치곤 너무도 단정적이고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그런데 읽을수록 저자의 논리에 수긍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저자는 일본 대장성(한국의 기획재정부에 해당) 관료를 거쳐 게이오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제이론과 현실을 두루 경험한 셈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저자는 버블과 붕괴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또 다른 버블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세계 경제를 바라보고 있다. 이른바 ‘버블 애프터 버블’이다. 그런데 코로나 국면에서 실물경제 버블이 최종 국면을 맞을 거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각국이 팬데믹 극복을 위해 금융, 재정정책을 모두 소진하고 있어서다. 한마디로 경기 진작을 위한 실탄이 완전 고갈된다는 얘기다. 이로써 냉전 종식 후 30년에 걸쳐 지속된 버블 확대 국면은 끝나게 된다. 저자는 코로나 이후 경제 침체는 일종의 버블 안정기로 수십 년에 걸쳐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이와 맞물려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건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경제 봉쇄와 대규모 현금지원이 낳을 재정파탄이다. 저자는 일본 정부의 재정붕괴를 거의 확신조로 예언하고 있다. 이를 전제로 재정파탄 후 증세를 할 건지, 아니면 정부지출을 줄일 건지 등의 세부적인 시나리오를 미리 짜놓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재난지원금 등 일본과 유사한 방역, 경제대책을 내놓은 한국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저자는 코로나 국면에서 일본 정부가 생명논리에만 빠져 과도한 방역대응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한다. 비용 대비 효용에 대한 논의가 봉인되고, 감염 방지를 위한 거리 두기에만 몰입했다는 것. 일본 사회 전체가 비이성적인 ‘사고 정지’ 상태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방역과 경제의 상충된 목표 사이에서 최대공약수를 찾아야 하는 모든 나라에 해당되는 얘기일 수도 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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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안 갯벌서 조선궁궐용 ‘용머리 장식 기와’ 발굴

    용머리 모양의 조선 전기 궁궐용 장식기와(취두·鷲頭) 한 세트(2점·사진)가 충남 태안 갯벌에서 발굴됐다. 취두를 구성하는 일부 기와가 발견된 적은 있지만 온전히 한 세트가 발굴된 건 처음이다. 19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태안 청포대해수욕장 갯벌에서 왕실 건물에 쓰이는 대형 취두 2점을 최근 발굴했다. 조사 결과 기와의 상하부를 구성하는 2점으로, 하나로 맞춰지는 한 세트다. 접합 시 높이는 103cm, 너비는 최대 83cm다. 하부 취두는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벌리고 있는 용의 형상을 담았다. 상부 취두는 치미(용마루 양끝에 올리는 장식기와)처럼 끝이 들어올려져 있는데 몸을 꼰 작은 용 한 마리가 새겨져 있다. 왕실 기와답게 용의 비늘이나 갈기 등이 정교한 솜씨로 묘사돼 있다. 연구소는 이번 발굴 유물이 숭례문에 쓰인 취두와 양식이 유사하다는 점을 근거로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2019년 9월 이번 발굴지 근처에서 지역주민이 조개를 캐다 별도의 하부 취두 1점을 발견했다. 이어 그해 10월 연구소가 용마루에 올리는 장수상 1점을 수습했다. 김동훈 연구소 학예연구관은 “한양의 와서(조선 왕실용 기와나 벽돌을 만드는 관아)에서 제작된 취두를 전주의 경기전(태조 어진을 봉안한 전각) 같은 건물에 사용하기 위해 남부지방으로 옮기던 중 운반선이 침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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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0년前 유리구슬 ‘영롱’… 금동관 꽃무늬도 선명

    마치 줄무늬 호박처럼 초록색과 노란색 무늬들이 번갈아 이어지며 영롱한 빛깔을 뽐낸다. 원색의 유리구슬만 봐선 1500년의 세월을 짐작하기 힘들다. 지름은 불과 1.2cm. 허리를 숙여 진열장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 봐야 형태를 자세히 살필 수 있다. 초록색과 노란색 유리판을 손톱 크기보다 작게 이어 붙인 정교한 솜씨에 다시 한번 놀란다. 17일 둘러본 국립광주박물관의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특별전에서 가장 눈길을 끈 유물은 전남 함평군 신덕 1호분에서 출토된 ‘연리문 구슬’이다. 이 유리구슬은 제작기법이 까다로워 신덕고분 외에 경주 황남대총과 노서리고분, 공주 무령왕릉과 수촌리고분, 나주 복암리고분에서만 출토됐을 정도로 희귀하다. 신덕 1호분에서는 총 4점의 연리문 구슬이 나왔는데 이 중 초록색과 노란색 줄무늬가 섞인 것은 황남대총 북분 출토품과 유사하다. 두 겹의 유리 사이에 금박이나 은박을 덧댄 ‘중층 유리구슬’도 나란히 전시됐다. 두 유물 모두 무덤에 묻힌 이의 신분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10월 24일까지 열리는 이번 특별전은 국립광주박물관이 1991∼2000년 신덕 1호분 발굴조사 후 출토 유물 전체(871점)를 처음 공개하는 자리다.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로 30년간 발굴 조사 결과가 공개되지 않았다. 신덕 1호분의 봉분이 일본 고대 무덤에서 흔히 발견되는 전형적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앞은 네모지고 뒤는 둥근 봉분을 가진 무덤) 형태를 갖고 있어서다. 박물관은 신덕고분 특별전을 최근 개최한 데 이어 이달 말 발굴 조사 보고서를 발간한다. 전시는 백제와 왜(倭), 가야, 지방세력의 문화가 신덕고분에 혼재돼 있다는 보고서의 결론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유리구슬 옆에 전시된 금동관은 조각으로 나와 전체 형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뾰족한 도구로 금속판을 눌러(타출·打出) 표현한 육각형과 꽃무늬를 볼 수 있다. 이는 무령왕릉이나 익산 입점리고분 등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백제 양식이다. 그런데 관테 위로 두 개의 산봉우리가 솟아난 이른바 광대이산식(廣帶二山式)은 미즈라(고대 일본 남성들의 머리 모양) 장식품을 모티브로 한 왜의 문화다. 철기 진열장에 놓인 앙증맞은 크기의 쇠도끼, 쇠낫, 쇠손칼은 가야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들은 약 6cm 길이에 불과한 일종의 미니어처로, 실생활이 아닌 매장 의례용으로 제작됐다. 신덕고분 근처 만가촌 고분군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철기가 나왔는데 학계에선 무덤 주인의 경제력을 상징하는 부장품으로 본다. 전시는 말미에 신덕 2호분에서 출토된 널못(목관을 고정하는 쇠못) 5점을 소개하며 관람객들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1호분에서 불과 12m 떨어진 2호분에 묻힌 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 1호분 발굴 조사 결과를 검토한 고고학자들은 1호분에 묻힌 이는 백제, 왜, 가야와 활발히 교류한 이 지역 수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안타깝게도 2호분은 1호분과 달리 극심한 도굴 피해를 입어 남은 유물이 널못밖에 없다. 그런데 1호분이 조성되고 채 100년도 안 돼 세워진 2호분의 양식은 당시 백제 중앙과 같은 육각형 석실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백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2호분에 묻혔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하지만 파견 관리가 자신의 고향이 아닌 부임지에 묻혔다는 건 왠지 부자연스럽다. 박경도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2호분의 주인이 백제 관리가 아닌 1호분에 묻힌 지역 수장의 아들이나 손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광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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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공산주의 기원 파헤친 이정식 교수 별세

    북한 연구 1세대로 뚜렷한 학술적 업적을 남긴 이정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사진)가 17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고인은 로버트 스칼라피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함께 1973년 쓴 대표작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로 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국내 공산주의 운동의 흐름을 1500여 쪽에 걸쳐 정리한 이 책은 출간 직후 미국 정치학회의 최우수 저작상인 우드로 윌슨상을 받았다. 1931년 평남 안주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자란 고인은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4개 언어에 능통해 각국의 광범위한 1차 사료를 섭렵할 수 있었다. 고인은 이 책을 쓰기 위해 1957년부터 17년에 걸쳐 한중일의 방대한 문헌을 분석했다. 신종대 한국냉전학회장(북한대학원대 교수)은 “현재까지도 이 분야 통사에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대체할 만한 연구 업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이 책에서 고인은 북한 당국이 김일성 공식 전기에서 1931년 중국공산당 입당을 누락한 사실을 밝혀냈다. 김일성을 외국 공산당에서 성장한 인물이 아닌, 순수한 한국인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김일성과 중국공산당의 초기 관계를 삭제했다는 것. 또 광복 직전 소련 당국이 4년에 걸쳐 김일성을 교육, 훈련한 사실 등을 지적하며 소련이 연안파 공산주의자들에 비해 김일성을 관리하기 쉬운 상대로 봤다고 분석했다. 그는 김일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선 엄정함을 유지했다. 한때 학계 일각에서 제기된 ‘가짜 김일성’ 논란과 관련해 김일성이 1930년대 만주에서 항일 게릴라 활동에 참여했음을 적시했다. 고인은 해방 후 북한에서 쌀장수로 일하며 공산주의 실상을 목격했다. 그는 6.25 전쟁 당시 월남해 미군의 중국어 통역관으로 복무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고인은 1963년 펜실베이니아대 정치학과 교수가 됐다. 2018년 인촌상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우명숙씨와 사이에 2녀가 있다. 28일 오전(현지 시간)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장례식을 거쳐 인근 조지워싱턴 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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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美 외교는 왜 30년간 실패를 거듭했나

    “국가건 사람이건 ‘갑질’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스스로를 자제하는 건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이 책을 읽으면서 대학원 국제정치학 강의시간에 지도교수가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타자가 특정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힘을 ‘권력’이라 정의할 때, 이를 필요 최소한으로 행사해야 관계의 파탄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예컨대 대제국 로마가 망한 이유 중 하나도 주변 속주에 대한 과도한 개입 때문이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대가인 스티븐 월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핵심 요지도 이와 무관치 않다.저자는 탈냉전 후 자만심에 빠진 미국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 같은 자신만의 원칙들을 개도국에 이식하려는 이른바 ‘자유주의 패권’에 몰입해 막대한 비용을 치렀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는 미국 국력의 쇠퇴와 실험 대상국의 민주주의 후퇴였다. 천문학적 전비를 쓰고도 미군 철수로 이어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이 대표적이다.문제는 지난 30년간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추구가 실패했음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이유가 뭘까. 저자는 국무부 등 외교안보 관료와 정치권, 학계, 언론, 이익단체로 구성된 기득권 집단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유주의 패권 정책을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그는 해결책으로 전통적인 현실주의 외교술인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그중에서도 특히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 전략으로 돌아갈 것을 주창한다. 역외균형이란 슈퍼 파워(미국)가 중국 같은 지역 패권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동맹에 힘을 실어주되, 평상시엔 개입을 최소화해 비용을 줄이는 전략이다.이 대목은 한국의 국익과도 직결된다. 저자가 강조하듯 미중 갈등이 날로 격화되는 상황에서 미국 역외균형 전략의 핵은 동아시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대중 견제의 허브는 미일동맹이겠지만 한국에도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에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거리를 두고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보호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할수록 중국의 변덕에 놀아날 위험이 커진다”고 쓴 저자의 경고가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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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30년 만에 임나일본부 망령서 벗어난 신덕 고분

    임나일본부설에 이용될 우려로 인해 30년간 공개되지 않은 삼국시대 ‘신덕 1호분’ 발굴조사 결과가 이달 말 발표된다. 동아일보가 미리 입수한 발굴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고분 출토 유물에서는 백제와 왜(倭)의 문화가 혼재된 양상이 확인됐다. 조사 결과를 분석한 한일 고고학자들은 20, 3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이 무덤의 주인이 지역 수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한반도에 진출한 왜인이 묻혔을 것으로 보는 임나일본부설의 시각과 배치되는 것이다.1991년 3월 도굴 흔적이 발견돼 첫 조사가 이뤄진 신덕 1호분은 일본의 고대 무덤에서 흔히 발견되는 열쇠구멍 모양의 전형적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앞은 네모지고 뒤는 둥근 봉분을 가진 무덤)’이다. 신덕 1호분은 이런 봉분 모양 탓에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조사 결과 부장 유물들에 백제와 왜 문화가 혼합돼 있어 이들과 교류한 영산강 일대 지배세력이 무덤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무덤 주인은 20, 30대 남성국립광주박물관이 일본 연구자들까지 참여시킨 신덕 1호분 발굴조사 보고서를 전격 발간키로 한 건 6세기 영산강 일대 지배세력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고고학 증거들이 최근 발견된 데 따른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의 한계가 명확해졌다는 얘기다. 앞서 박물관은 이 무덤을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네 차례 조사했지만 당시에는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김낙중 전북대 교수(고고학)는 “6세기 전엽 영산강 유역의 현지 세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 사실이 밝혀져 임나일본부설에 의해 왜곡 해석될 여지가 줄었다. 신덕 1호분 발굴조사 보고서 발간에 일본 학자들까지 참여시킨 건 국내 학계의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보고서에 따르면 신덕 1호분에서는 무덤 주인의 높은 신분을 보여주는 금동관, 금동신발, 연리문 구슬, 중층 유리구슬, 큰칼, 비늘갑옷, 투구, 말띠꾸미개 등의 다양한 부장품이 출토됐다. 무덤에서 출토된 치아 6점의 크기와 마모 정도를 분석한 결과 20대 후반~30대 중반의 남성이 묻힌 것으로 추정됐다.● 금동관․금동신발 백제 장인 솜씨무덤에서는 백제와 왜의 문화가 뒤섞인 양식이 여럿 확인됐다. 백제, 왜, 가야의 문화를 폭넓게 받아들인 영산강 일대 지배세력의 문화수용 양상이 반영된 것. 다카타 간타(高田貫太)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교수는 보고서에 포함된 ‘함평 신덕 1호분 출토 관, 식리에 대하여’ 논고에서 두 매의 측판이 발꿈치와 발등에서 결합된 금동신발 구조를 근거로 백제 공인이 부장된 금동신발을 제작한 것으로 봤다. 금동관 역시 귀갑(龜甲·거북 등딱지) 무늬를 새긴 양상이 금동신발과 흡사해 동일한 기술전통을 가진 백제 공인이 제작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비해 전방후원분 구조나 꼰 형태의 둥근고리칼(環頭大刀·환두대도)은 왜계 문화의 속성으로 분류됐다. 관테 위로 두 개의 산봉우리가 솟아난 모양의 광대이산식(廣帶二山式) 금동관은 왜와 백제의 요소가 혼합된 양식이다. 그는 “신덕 1호분은 영산강 유역 사회의 주체적인 대외 교섭과 적극적인 외래 묘제 수용의 움직임을 보여준다”며 “이곳에 묻힌 이는 백제, 왜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지역집단의 수장층으로 볼 수 있다”고 썼다.국내 고고학계도 6세기 전엽 백제 왕권이 영산강 유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왜, 가야와 활발히 교류한 이 지역 수장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김낙중 교수는 ‘함평 신덕 1·2호분의 분구와 석실’ 논고에서 “취사 선택적 묘제의 도입을 보면 무덤 축조 주체는 현지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무덤 주인은) 영산강 유역권 내 다른 어떤 지역보다 백제 중앙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지역 지배에 중추적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무덤에서는 6세기 전엽 한반도 남부와 일본 열도,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문화교류가 활발히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유물도 다수 나왔다. 목관(木棺) 조각의 수종이 무령왕릉과 같은 ‘일본산 금송’으로 판별된 사실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유리구슬 41점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이 중 5점(녹색 및 황색 유리)의 원료 산지가 태국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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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국적도 이념도 정체성도 있다… 과학‘자‘에게는

    1930년대 후반 일본 교토의 고급 요릿집에서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 세 명의 남자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활약한 최고의 조선인 과학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하지만 광복 후 이들의 행로는 남과 북으로 엇갈리게 된다. 육종학자 우장춘, 화학자 이태규, 리승기의 이야기다. 과학사를 전공한 저자는 이 책에서 인물을 중심으로 한국 과학사의 이면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측우기, 자격루 같은 한국과학의 치적을 나열하는 기존 과학사 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책은 과학자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시대의 부침에 휘둘릴 수밖에 없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예컨대 위에 언급된 세 과학자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인 2세로 뒤늦게 도쿄제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우장춘은 광복 후 한국에 와서도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생애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내 한국문화에 서툴렀던 데다 무엇보다 을미사변에 가담한 우범선의 아들이라는 족쇄가 그를 평생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이태규와 리승기는 광복 직후 미군정의 국립대학안(국대안)에 따라 탄생한 서울대로 적을 옮기지만 안정적인 연구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학계마저 좌우간 격렬한 대립이 벌어진 가운데 리승기를 비롯한 상당수 서울대 교수들이 월북을 선택한 것. 1931년 교토제국대를 나와 1939년 일본에서 최초의 합성섬유 ‘비닐론’을 개발한 리승기는 북한 과학계의 주축으로 활동한다. 서울대 문리대 초대학장이 된 이태규는 일제강점기 교토제국대 교수였다는 이유로 “집에서 일본 옷을 입고 일본말을 쓴다”는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그는 결국 미국 유타대로 옮겨 한국 유학생들을 후학으로 길러냈다. 이와 관련해 초창기 한국 과학기술사에서 소수 일본인 연구자들의 기여를 올바르게 평가해야 한다는 저자의 시각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화학자 호리바 신키치는 동료 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자였던 이태규가 교토제국대 교수로 임용될 수 있도록 애썼다. 비록 이들도 일본제국주의의 한 요소로 기능했지만, 한국 과학사에 끼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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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파리지엔’ 이미지는 만들어졌다?

    이 책의 파리지엔(Parisienne·파리 여자) 챕터를 읽으며 문득 20여 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탄 기차가 떠올랐다. 당시 기차 내 흡연실이 있었는데 대여섯 명의 파리지엔이 뿜어대는 담배연기에 70대 할아버지가 연신 기침을 하고 있었다. 비흡연실 좌석이 모두 차 너구리굴에 온 모양인데, 파리지엔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 한국에선 자유롭다는 대학에서마저 여학생들이 복학생 눈치를 보며 몰래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라 그 장면이 머릿속 깊이 각인됐다. ‘자신의 권리 앞에 당당한 파리지엔’이라는 선입견이 입력된 순간이다. 외교관인 저자는 이 책에서 파리지엔은 일종의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파리지엔은 전설의 동물이다. 유니콘처럼 누구도 본 적이 없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는 프랑스 작가 장 루이 보리의 말을 인용한다. 그에 따르면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킨 코코 샤넬의 의복혁명이 마리 앙투아네트로 상징되는 18세기 프랑스 왕실의 사치와 결합돼 옷 잘 입는 파리지엔의 이미지를 형성했다. 여기에 브리지트 바르도와 잔 모로 등 프랑스 여배우들의 매혹적인 이미지가 더해졌다. 급기야 영국의 아장 프로보카퇴르나 일본의 콤 데 가르송처럼 브랜드 이름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근대 이후 세상을 평정한 서구 문명권도 속살을 들여다보면 여타 문명과 다를 게 없고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유럽의 이면을 보고 싶은 독자라면 한번쯤 볼 만한 책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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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상운]단원과 추사가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

    달빛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 사이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보인다. 깊은 산중 골짜기에 자리 잡은 초가에서 홀로 책 읽던 선비가 문득 인기척을 느낀 듯 창밖 동자(童子)에게 고개를 돌린다. “이상하구나. 동자야 이게 무슨 소리냐?” 마당에 선 동자가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선비에게 답한다. “별과 달은 희고 맑고 은하수는 하늘에 있는데,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습니다. 소리는 나뭇가지 사이에 있습니다.” 이에 선비는 말한다. “아 슬프도다! 이것이 가을의 소리로다.” 28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걸린 단원 김홍도(1745∼1806)의 추성부도(秋聲賦圖)를 묘사한 글이다. 단원이 세상을 뜨기 한 해 전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1007∼1072)의 시(추성부)를 그림으로 옮긴 작품이다. 어설피 떠오른 하얀 달과 앙상한 나무, 흔들리는 낙엽이 함께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처연한 느낌을 준다. 거장이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회고하며 인생무상의 서정을 한 폭의 수묵화에 압축한 듯하다. 엄습한 팬데믹의 여파 때문일까. 마스크를 쓴 관람객들이 겸재의 인왕제색도와 더불어 전시장 왼쪽 벽면에 나란히 걸린 추성부도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올해 1월 말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서 공개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가 떠올랐다. 메마른 붓질로 쓱쓱 그려낸 엄동설한 속 소나무와 외딴집은 추성부도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추사가 그의 인생 말년을 보낸 제주도 귀양살이 때 그린 작품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겨울을 보내야 했던 작가의 쓸쓸한 감흥이 전해진다. 인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 겸손하고 진실해진다는 걸 두 작품은 여실히 보여준다. 넘치거나 과한 부분 없이 담백하다. 사실 단원은 굵고 거침없는 선부터 철선묘(鐵線描·필치의 변화 없이 똑같은 굵기로 가늘게 긋는 기법)에 이르기까지 온갖 기교에 능한 천재 화가였다. 그런 그가 추성부도에서는 기교를 최대한 자제하고 철저히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이수미 국립광주박물관장은 “추성부도는 붓질부터 색상 표현까지 단원의 기존 작품과는 다르다. 인생의 조락(凋落)을 맞은 단원이 자신의 마음을 그려낸 것”이라고 평했다. 눈에 덮인 네 그루의 나무와 집 한 채만 그린 세한도는 추성부도보다 핵심만 더 솎아낸 느낌이다. 그런데 세한도의 쓸쓸함은 조금 다르다. 고목의 힘찬 가지와 독야청청한 솔잎은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가리라는 강한 의지로 다가온다. 실제로 세한도를 감상한 청나라 문인 조무견(?∼1853)은 “푸르름이 동심(冬心)을 품고 꿋꿋이 서리와 눈에 굽히지 않네”라는 감상 평을 남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힘겨운 우리들에게 추사가 건네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추성부도에 담긴 단원의 겸손한 절제미 역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각자의 삶을 되돌아 볼 것을 청하는 듯하다.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 20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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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태계 보고 ‘한국 갯벌’ 세계자연유산 올랐다

    멸종위기종인 철새 서식지이자 생태계 보고(寶庫)로 꼽히는 ‘한국의 갯벌’이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앞서 2007년 등재된 제주도 화산섬과 용암동굴에 이어 한국의 세계자연유산으로는 두 번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6일 온라인으로 제44차 총회를 열고 충남 서천과 전북 고창, 전남 신안, 보성·순천의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한국은 13개 문화유산과 2개 자연유산 등 총 15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세계자연유산은 멸종위기종 서식지나 지질학 생성물 등 과학, 보존, 자연미의 관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지닌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제도다.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면 해당 지역에 대해 국제 보호체계가 갖춰지는 동시에 관광자원 활용에도 유리하게 된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날 총회에서 한국의 갯벌이 멸종위기종인 27종의 철새를 비롯해 2000종 이상의 생물이 서식하는 곳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국제 철새 보호기구인 EAAFP의 도혜선 담당관은 “한국의 갯벌은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22개국에 걸친 세계 철새 이동 경로상의 중간 기착지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올 5월 유네스코 심사 자문기구인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은 한국 정부가 신청한 갯벌들을 현장 실사한 후 ‘반려’ 의견을 냈다. 해당 지역이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한 중요 서식지로 인정되지만 인천 강화도 등 남한 북부의 갯벌들이 포함돼 있지 않고, 보호지 주변 완충구역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정부는 한때 안건 철회 후 보완 제출을 검토했지만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 참여하는 21개 위원국을 직접 설득하기로 했다. 국내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통틀어 총회 전 자문기구가 반려한 유산이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최종 등재된 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IUCN의 의견을 반영해 이번 5개 지방자치단체의 갯벌 외에도 강화도 등 철새 서식지가 있는 갯벌을 추가해 확장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보호지 주변의 완충구역도 확대할 예정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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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 의견 뒤엎고…‘한국의 갯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꼽히는 한국의 갯벌이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앞서 2007년 등재된 제주도 화산섬과 용암동굴에 이어 한국의 세계자연유산으로는 두 번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6일 온라인으로 44차 총회를 열고 충남 서천과 전북 고창, 전남 신안 보성 순천의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서 한국은 13개 문화유산과 2개 자연유산 등 총 15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세계자연유산은 멸종위기종 서식지나 지질학 생성물 등 과학, 보존, 자연미의 관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지닌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제도다. 이번 등재는 한국의 갯벌이 멸종위기종인 27종의 철새를 비롯해 약 2000종 이상의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임을 세계유산위원회가 인정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올 5월 유네스코 심사 자문기구인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은 한국 정부가 신청한 갯벌들을 실사한 후 ‘반려’ 의견을 냈다. 해당 지역이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한 중요 서식지로 인정되지만 경기 화성, 인천 강화도 등 남한 북부의 갯벌들이 포함돼 있지 않고, 보호지 주변의 완충구역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정부는 한때 안건 철회 후 보완제출을 검토했지만,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 참여하는 21개 위원국들을 직접 설득하기로 했다.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통틀어 총회 전 자문기구가 반려한 유산이 총회에서 최종 등재된 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이번 5개 지방자치단체의 갯벌 외에도 철새 서식지 등이 있는 갯벌을 추가로 확장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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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기후변화와 바이러스는 로마를 어떻게 무너뜨렸나

    지금까지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을 다룬 책들은 숱하게 나왔다. 과도한 영토 팽창에 따른 재정 붕괴부터 정신문명의 쇠락까지 다양한 분석이 제기됐다. 대부분 인간의 과도한 탐욕과 이에 따른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의 붕괴라는 관점으로 수렴된다. 그러나 이 책은 로마를 망하게 한 건 기후변화와 바이러스, 화산 같은 대자연의 힘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마치 ‘운명’과도 같은 비극이 로마를 덮쳤다는 것이다. 2년째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신음하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대목이다. 로마 쇠망이라는 거대 주제를 다루기 위해 고대사를 전공한 저자는 기후학과 고고학, 인류학, 생물학 자료를 바탕으로 로마사 2000년을 종횡무진 분석하고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나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시도한 ‘빅 히스토리’ 역사 서술과 닮은꼴이다. 재밌는 건 저자가 첨단과학을 분석 도구로 삼았지만 그 결론에 있어서는 과학과 거리가 있던 로마인들의 세계관과 닮아 있다는 점이다.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이드’에서 격렬한 폭풍에 내던져진 영웅의 모습을 묘사했듯 로마인들은 우연과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포르투나 여신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서기 400년 무렵 인구 70만 명의 도시였던 로마가 불과 수십 년 만에 2만 명으로 급감한 사실을 인간 시스템의 변화로만 설명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로마의 전성기가 막 지난 서기 150년부터 450년까지 기후가 불안정해지면서 역병이 창궐한다. 여기에 격렬한 화산 활동으로 인해 후기 소빙하기에 접어든 530∼540년경 냉랭한 날씨가 지속된 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제국의 팽창으로 인해 활발해진 인구 이동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기록과 연구에 따르면 165년경 천연두로 추정되는 감염병으로 인해 약 700만 명의 로마인이 목숨을 잃었다. 저저가 서문 말미에 쓴 문장은 주제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문명이 자연을 지배하려는 허망한 꿈을 꾸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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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신자유주의 불평등 해법은 삼림헌장에

    11세기 후반 영국 왕 윌리엄 1세는 영국 곳곳에 이른바 ‘왕의 숲’ 25개를 만들고 여기서 사냥을 즐겼다. 이후 영국 왕들은 이 숲을 더욱 늘려 왕실재정에 충당했다. 1217년 이런 숲은 영국 전역에 걸쳐 143개에 달했다. 1215년 왕의 절대권력을 제어하고 입헌주의를 낳은 ‘마그나 카르타(대헌장)’가 체결될 때 경제적 권리에 대한 획기적 틀도 마련된다. 숲을 일종의 공유지로 개방하는 내용의 ‘삼림헌장’이다. 여기에는 땔감용 나무를 얻고, 초지에 가축을 방목하며, 과일을 수확할 권리 등이 포괄적으로 규정된다. 이로써 왕의 배타적 놀이터인 숲도 서민들의 소중한 생계수단이 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유지는 단순히 공공 숲과 같은 자연자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저작권이나 특허 같은 무형자산, 인터넷 등 사회 인프라, 방송전파 등의 문화자원까지 포함한다. 다시 말해 세금으로 비용을 대거나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각종 자원, 사회제도, 문화전통 등을 아우른다. 오랫동안 경제 불평등 문제에 천착한 영국 경제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가 공유지의 사유화를 부추겨 서민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시장이 최우선인 신자유주의는 가격을 따질 수 없는 사회제도를 무익한 걸로 간주한다. 공유지를 통해 공동의 수익을 창출해 온 제도도 마찬가지. 그는 공유지를 무시하고 사회제도를 폄하한 대처주의 폐해가 극심한 불평등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99%가 착취당하는 최악의 디스토피아를 막기 위해 신자유주의 이전 삼림헌장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공유지의 상업적 이용에 부담금을 부과해 국민들에게 수익을 균등하게 배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말미에 “우리는 너무나 은밀하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빼앗기고 있는 공유지를 되찾기 위해 새로운 보상의 헌장이 필요하다”고 썼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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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상운]출판계 불투명한 유통구조, 개선해야 생존 가능하다

    “독자 반응이 너무 궁금한데 출판사에 일일이 물어보기가 눈치 보여서….” 최근 책을 낸 지인이 기자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무명작가인 데다 비인기 분야를 쓴 그는 예닐곱 개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은 끝에 겨우 계약을 맺었다. 그렇다 보니 출판사로부터 판매량을 보고받기는커녕 강매를 요구당하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공교롭게 유명 작가들의 인세 누락 사건이 연이어 터져 내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출판사에 물어보기가 더 민망해졌다”고 말했다. 최근 장강명 작가에 이어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를 쓴 임홍택 작가도 출판사의 인세 누락 논란이 불거졌다. 유명 작가들의 인세마저 출판사들이 제때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출판계 약자인 무명작가들의 인세 누락은 더 심각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동아일보 출판팀 취재 결과 일부 출판사 사장은 저자와의 접점이랄 수 있는 편집자들에게조차 신간 판매량을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이에 따라 불투명한 출판유통 구조를 개선하려면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량을 집계하는 정부의 ‘출판유통통합전산망’(통전망)에 출판계가 동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통전망 참여를 거부해온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에서는 최근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이사진 일부가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윤철호 출협 회장도 출판계 안팎의 인사들을 만나며 대책을 논의 중이다. 윤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고 통전망 참여 여부를 정할 것이다. 금주 내로 인세 관련 대책 등을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통전망은 잘만 활용하면 출판시장 침체를 타개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2017년 닐슨 조사에 따르면 저자, 제목, 주제 등 서지정보를 담은 메타데이터를 제대로 갖췄을 경우 그렇지 않았을 때에 비해 판매량이 3배로 급증했다. 독자들이 수많은 신간 중 자신이 원하는 책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어야 구입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출협은 통전망 운영 주체를 정부가 아닌 출판계가 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워 그동안 통전망 참여에 부정적이었다. 출판계가 전산망을 직접 운영하는 유럽, 캐나다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출판사, 서점들의 회비로 전산망이 운영되는 독일 등과 달리 2018년부터 45억 원의 국가예산이 투입된 통전망에서 정부가 손을 떼야 한다는 데 공감할 국민은 많지 않다. 더구나 출판계 일각에서 작가들에 대한 인세 누락이 이어지는 마당에 출판계에 통전망 운영을 맡기는 건 부적절하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도 통전망 준비가 미흡하다는 출판계 지적을 간과해선 안 된다. 실제로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올 9월 통전망 가동을 앞두고 사업설명회를 열었지만 제대로 된 시연을 보여주지 못했다. 출판계는 “3년간 거액을 들여 개발한 결과가 고작 이거냐”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와 출판계가 그간의 불신을 털어내고 독자와 작가를 중심에 놓는 기본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 2021-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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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여행객의 비행시간이 길어진 이유 [책의 향기]

    최근 구글이 국내 대학들에 제공하던 클라우드 무료 서비스를 철회해 큰 혼란을 빚었다. 대학들이 앞다퉈 방대한 강의, 학술자료를 구글 클라우드에 올려놓은 상황에서 2년 만에 무료 정책을 뒤집은 데 따른 것. 주요 대학들은 졸업생과 퇴직한 교직원의 구글 계정을 없애는 등 자구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애초에 공짜를 바란 것이 문제였던 게 아니냐는 지적과 별개로 구글의 압도적 시장 지배력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책은 자본주의 끝판왕 격인 미국에서 독과점 기업들이 개인들에게 끼치는 폐해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탐사보도 전문가인 저자는 저인망으로 훑듯 항공, 미디어, 통신, 제약, 금융, 의료 산업 등에서 다양한 독과점 피해 사례를 취재했다. 예컨대 미국 항공시장의 80% 이상을 4개 항공사(유나이티드, 아메리칸, 델타, 사우스웨스트)가 차지함에 따라 직항이 줄고 시카고, 애틀랜타 등의 허브공항을 경유하는 노선이 크게 늘었다. 인력과 장비가 집중된 허브공항을 경유해야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여행객들은 과거보다 더 오래 비행기를 타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됐다. 미국 통신 대기업들이 인구가 적은 소도시에 인터넷망을 깔지 않아 스타벅스 주차장에서 숙제를 해야 하는 학생들의 사례도 담겼다. 물론 미국에는 ‘셔먼 반독점법’이라는 독점 규제 제도가 있지만 레이건 정권 이후 미 정부가 이 법률 시행에 소홀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여기에는 독점을 통한 집중이 가격이나 서비스에서 소비자의 편익(소비자 복지)을 증대할 수 있다는 로버트 보크 예일대 교수의 사상이 근저에 깔려 있다. 얼핏 구글이나 애플, 삼성 같은 거대 기업들의 첨단 제품을 연상하면 그럴듯한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속지 말라고 말한다. 존 쿼카 노스이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승인한 46건의 기업 합병 사례 중 38건이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독과점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임금도 갈수록 하락하는 현상이 통계로 입증됐다. 저자는 워런 버핏이 투자자들에게 “우리는 관리자들한테 매년 해자(독점 영역)를 더 넓히라고 한다”고 말한 내용을 언급하며, 정부와 시민들이 독점 기업의 탐욕에 맞서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2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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