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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미야베 월드!’ 애칭 ‘미미 여사’로 불리는 일본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55)의 소설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형사의 아이’(박하)는 1987년 데뷔한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일본에선 1990년 첫 출간 후 세 차례 제목이 바뀌며 발표됐지만 국내에선 처음 소개 됐다. 소설은 일본 도쿄의 서민 동네 시타마치를 배경으로 형사 아버지를 둔 중학교 1학년 소년이 토막살인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박하 출판사는 “작가의 초기작을 읽으면 훗날 미미 여사의 전설을 만든 인기작 ‘솔로몬의 위증’ ‘모방범’ 등의 원형을 찾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맏물 이야기’(북스피어)는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맏물은 한 해 맨 처음 나는 과일, 해산물 등을 뜻한다. 마을 치안을 담당하는 모시치가 잔혹한 살인사건부터 일상의 수수께끼까지 아홉 가지 사건을 날카로운 추리로 해결한다. 소설에선 요리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초봄 뱅어와 초여름 가다랑어, 가을 감 같은 요리에다 기이한 사건들을 석석 버무려 먹음직스러운 느낌을 준다. 작가는 초판 후기에 “책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음식에 ‘꽤 맛있어 보이네’하고 느끼셨다면 더욱 좋겠다. 사족이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요리는 모두 실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이다”고 썼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올 1월 세계 각지에선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해방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1945년 1월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를 점령하며 자유를 되찾을 때까지 수용소에 갇힌 포로 130만 명 가운데 110만 명이 희생됐다. 세계는 수용소 해방의 날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데이(대학살 추모일)’로 정하고 잊지 않으려 애쓴다. 그럼에도 70년이 지난 오늘도 인류애를 망각한 테러, 대량학살의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70주년을 맞아 국내에도 나치 수용소를 소재로 한 두 권의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영국의 기록문학 작가 캐롤라인 무어헤드가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프랑스 여성의 구술과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르포르타주 ‘아우슈비츠의 여자들’과 프랑스의 행동하는 지식인 로베르 앙텔므(1917∼1990)가 자신의 수용소 생활을 풀어낸 증언문학 ‘인류’다. 각각 현지에서 2011년, 1947년 출간돼 크게 주목받았다. ‘아우슈비츠의…’는 1943년 1월 프랑스 각지에서 체포돼 가축 수송열차 ‘31000번’에 실려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여성 230명의 이야기다. 저자가 만난 생존자 중 세실 차루아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세실은 나치 독일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던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중요 조직원으로 일했다. 그는 남편과 이혼하고 여덟 살 딸까지 어머니에게 맡기고 활동에 투신했다. 딸 생각을 하라는 어머니의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제가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 제 아이를 이런 세상에서 키우고 싶지 않으니까요.”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세실은 ‘걸어 다니는 시체’가 된 산 자와 벌거벗긴 채 쌓인 죽은 자가 있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마주한다. 그는 시신 운송 작업에 투입됐을 때 목숨이 붙어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산 자는 그의 발목을 잡으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데, 이를 본 독일군은 그의 눈앞에서 곤봉으로 여자의 머리를 으깬다. 그는 시체를 태우는 굴뚝 연기를 보며 살았다는 안도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생지옥 같은 29개월의 수용소 생활이 끝나고 230명 중 49명이 프랑스로 살아 돌아왔다. 마구잡이로 죽어나가는 수용소에서 비교적 많은 여성이 목숨을 건졌다. 가학적인 학대 속에서도 여성 간의 우정과 연대는 꽃을 피웠다. 세실은 “우리는 누구를 좋아하고 또 누구를 좋아하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가며 행동하지는 않았다”며 “그것은 우정이라기보다는 연대감이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홀로 있게 두지 않았다”고 말한다. 훗날 ‘31000번’ 생존자들은 수용소 생활을 증언할 때 꼭 주어를 ‘나’ 대신 ‘우리’라고 말했다. 앙텔므의 ‘인류’에선 수용소 생존자만이 깨칠 수 있는 인류, 인류애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들려준다. 그도 1943년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다가 수용소에 수감됐다. 그는 “우리는 인류는 단 하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최악의 희생자로서 우리가, 박해자의 힘이 가장 악질적으로 행사되는 상황 속에서도, 그 힘은 인간의 힘들 중 하나인 살해의 힘일 뿐임을 확인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박해자는 인간을 죽일 수는 있지만, 인간을 다른 것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인류의 사전적 의미는 ‘세계의 모든 사람’을 뜻한다. 단, ‘인류는 하나다’란 전제조건이 성립될 때 사전적 의미도 빛을 볼 것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둥근 안경 안으로 보이는 긴 눈꼬리와 꾹 다문 입, 주름 깊은 뺨…. 백범 김구의 얼굴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선생의 굳고 결연한 의지가 배어있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과 달리 초상화의 얼굴에는 독립운동가의 삶 전체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는 ‘핍진성(逼眞性)’이 살아 있다. 독립기념관은 광복 70주년, 3·1절 96주년을 맞아 ‘전통초상화법으로 보는 독립운동가’ 특별기획전을 다음 달 29일까지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특별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 전시에서는 김구를 비롯해 김좌진 김창숙 남자현 박은식 손병희 안중근 안창호 이승훈 전수용 한용운 등 독립운동가 11인을 만날 수 있다. 전통초상화란 조선시대 초상화 양식으로 인물의 고유한 특징인 검버섯, 사마귀, 흉터까지 충실히 담아낸 것이다. 윤주경 독립기념관장은 “전통화법으로 복원된 독립운동가의 얼굴 모습을 통해 이들의 독립운동 정신과 나라사랑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기획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초상화 제작을 맡은 한국얼굴연구소는 초상화에 쓸 물감과 비단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국내에 유통되는 동양화 물감은 일본산이 대부분이라 이를 사용할 수 없었다. 연구소는 국내산 천연안료로 물감을 제작하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했다. 녹색은 경북 포항 뇌성산 뇌록산지, 노랑과 회색은 충북 보은, 붉은색은 전남 강진, 흰색은 전남 신안 자연산 조개에서 채취했다. 이후 국내 물감회사에서 천연안료로 물감을 만들었다. 비단도 국내에서 생산했다. 조용진 연구소장은 “독립운동가의 초상화를 일본산 비단에 일본산 물감으로는 도저히 그릴 수 없었다. 게다가 일본 물감으로 그리면 초상화에서 일본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했다. 김구 남자현 전수용의 초상화를 그릴 땐 의상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당시와 똑같이 손바느질로 한복을 제작했다. 초상화 고증에 완벽을 기하다보니 이봉창 의사의 초상화가 빠지기도 했다. 원래 이 의사까지 12명의 초상화를 그릴 예정이었다. 연구소는 이 의사의 정면 얼굴이 담긴 사진 한 장을 가지고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흉상을 제작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이 의사의 옆얼굴 사진이 발굴되면서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내년까지 다시 그리기로 했다. 이번에 제작된 초상화는 교과서나 위인전에 쓸 수 있도록 무상으로 배포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연구소 계획이다. 한편 3·1절을 맞아 독립의 얼이 서린 탑골공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도 뜻깊은 행사가 열린다. 3·1운동기념관건립위원회는 1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기념식을 갖고 탑골공원 성역화선언을 낭독한다. 건립위원장인 이재룡 베델선생기념사업회장은 “3·1운동은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 강점, 잔학상을 전 세계에 폭로하는 자발적이며 자주적인 비폭력 평화운동이다. 탑골공원을 국가의 성역이며 민족의 혼이 살아있는 거룩한 성지로 가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선 같은 날 오전 11시부터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가 열린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사람들은 말합니다. ‘리더’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감이 부담스럽다고. 중장년층은 말합니다. 요즘 청년들은 어깨에 부담을 짊어지기 싫어한다고. 여기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리더입니다. 리더라는 게 매출이 어마어마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처럼 거창한 타이틀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부담까지 즐기려는 열정이 있습니다. 과감한 개척자 정신도 있습니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는 ‘내가 청년 리더’를 통해 꿈을 향해 전진하는 청년들을 소개합니다. 》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 취업, 주거 문제 같은 무거운 고민도 많지만 패션 고민은 청춘과 떼려야 뗄 수 없다.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매일 아침 눈 뜨면 무슨 옷을 입고 나갈지 고민이 앞선다. 스타일쉐어 윤자영 대표이사(27)는 그런 청춘의 고민을 덜어주는 ‘패션 리더’다. 윤 대표가 2011년 6월 창업한 스타일쉐어는 10∼30대를 대상으로 패션 정보를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 ‘스타일쉐어’를 만들었다. 일반인이 자신의 옷과 패션 소품 사진을 올리고 제품 가격과 구입처를 공유한다. 길 가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했을 때 어디서 샀는지 묻지 못했던 답답함을 스타일쉐어가 해소해준다. 현재 누적 회원 수 130만 명으로 20대 여성 가입자만 따지면 한국 20대 여성 5명 중 1명이 스타일쉐어를 사용한다. 하루 17만 명이 방문해 매일 5000건의 패션 콘텐츠가 올라온다. 17일 서울 광화문에서 비싸지 않은 옷으로 모델처럼 멋을 낸 윤 대표를 만났다. ‘패션 리더’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결정적인 세 가지 말로 정리했다.○ “물어볼 수도 없고 답답하네” 2007년 외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에 입학한 윤 대표. 당시엔 그도 캠퍼스에서 세련된 옷차림을 한 또래를 보면 어디서 살 수 있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궁금한 평범한 새내기였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패션 고민이 빠지지 않았다. 그는 대학생 대상 무가지나 패션 잡지를 사서 봤지만 그곳에도 답이 없었다. 그는 “패션 잡지는 우리가 살 수 없는 500만 원짜리 드레스나, 소화하기 힘든 연예인의 방송용 옷을 추천하고 있었다”고 했다. 오히려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패션 정보는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많았다. 사람들은 패션 게시글에 댓글을 달며 의견을 나눴다. 윤 대표는 “에디터가 만드는 패션 잡지는 독자보다 산업 위주로 돌아가고, 카페나 블로그는 끼리끼리 친목 문화가 강했다. 둘을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 그때부터 고민했다”고 했다.○ “네가 직접 만들어” 윤 대표는 친구만 만나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2010년 가을 그의 친구는 “지난해에도 그 이야기 했잖아. 그냥 네가 직접 만들어”라고 충고했다. 친구의 말에 자존심이 팍 상했다. 매일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 자신이 조금 한심하기도 했다. 2009년 윤 대표는 세계적인 스트리트 패션 블로그 운영자를 만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함께 사업을 구상 중이라는 이 운영자의 이야기에 오히려 자신감만 줄어들고 말았다. 윤 대표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정신을 차리고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스타일쉐어 아이디어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에서 열린 창업경진대회에서 잇달아 수상했다. 대학에 창업 강의를 하러 온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이니시스를 만든 스타트업 1세대 권 대표도 스타일쉐어 성공 가능성을 보고 함께 하자고 했다. 프라이머의 투자를 받은 스타일쉐어는 개발자, 디자이너 등을 꾸렸다. 윤 대표는 “네가 직접 만들어”란 말을 가슴에 새기고 열정적으로 뛰면서 해외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2011년 3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주관하는 ‘MIT 글로벌 스타트업 워크숍 2011’에서 ‘온라인 패션 커뮤니티’ 아이디어로 결승에 올랐다. 또 MIT의 창업경진대회인 ‘매스 챌린지 액셀러레이터’ 100위 안에 아시아팀으로 유일하게 포함돼 창업 지원을 받았다.○ “이건 패션의 바이블(성경)이야” 패션 정보를 나누는 놀이터가 열리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용 후기엔 “스타일쉐어로 패션을 배웠다”, “일반인 체형도 입을 수 있는 옷 정보가 많다” 등 만족스럽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제는 일반인뿐 아니라 유명 모델, 블로거, 디자이너도 패션 정보를 올린다. 온라인몰, 패션브랜드도 입점했다. 스타일쉐어가 지난해 봄 신촌과 강남에서 연 플리마켓 행사에는 각각 1만, 2만 명이 찾기도 했다. K패션에 관심을 갖는 일본, 중국, 대만 젊은이들의 가입이 늘면서 해당 국가 버전도 출시했다. 사업 5년차, 스타일쉐어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윤 대표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옷과 패션 소품, 옷장 속 헌옷으로 연출하는 패션 정보를 나누는 공간이 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했어요. 앞으로도 평범한 보통 사람의 패션 고민을 나누고 해결하는 스타일쉐어가 될 거예요.”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스님께선 어느 책에서나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최인호) “죽음은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거늘, 육신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소유물이 소멸된다는 생각 때문에 편안히 눈을 못 감는 것이지요. 육신은 내가 잠시 걸친 옷일 뿐인걸요.”(법정 스님) 다음 달 11일 법정 스님(1932∼2010)의 입적 5주기를 앞두고 고(故) 최인호 작가(1945∼2013)와의 산방 대담을 담은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여백·사진)가 24일 출간됐다. 2003년 4월 길상사 요사채에서 4시간 동안 나눈 대담이다. 책에는 2004년 출간된 ‘대화’(샘터)에 수록된 대담과 산문집 ‘최인호의 인생’에 실렸던 법정 스님 관련 글이 수록됐다. 최 작가는 생전 암 투병 중에도 법정 스님의 입적 3주기에 맞춰 2013년 이 책을 출간하려 했지만 소설 작업과 병세 악화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해 9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출판사에 스님이 입적한 날(3월 11일)을 전후해 책을 내 달라고 유지를 남겼다. 책 제목과 구성도 작가가 직접 정했다. 두 사람은 행복, 사랑, 고독, 죽음, 진리, 시대정신 등 11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남은 생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눈길이 간다. “저는 정면 승부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지금 이 생에서도 끝까지 창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요.”(최인호) “내게도 꿈이 있지요.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남은 삶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고 싶군요. 그리고 추하지 않게 그 삶을 마감하고 싶습니다.”(법정 스님) 두 사람 모두 말을 행동으로 옮겼기에 지금도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는 서로의 인연도 소개한다. 1980년대 초반 잡지 ‘샘터’에 각자 ‘산방한담(山房閑談)’과 연작소설 ‘가족’을 연재하던 두 사람은 우연히 잡지사에서 마주쳤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다 법정 스님이 “앞으로 무슨 소설을 쓰겠느냐”고 묻자, 최인호는 “불교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답했다. 최인호는 “쓰고 싶어 하면 언젠가는 쓰게 되겠지요. 말과 행동이 업이 되어서 결과를 이루게 됩니다”란 스님의 격려를 화두로 가지고 불교소설 ‘길 없는 길’을 완성했다. 이들은 첫 만남 이후 30년 가까이 열 번 남짓 만나면서 서로 격려하고 응원했다. 최인호는 “법정 스님과의 인연은 전생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숙세(宿世)의 것임을 깨달았다. 법정 스님과 나는 둘이 아니다.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다”라고 썼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사람들은 말합니다. ‘리더’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감이 부담스럽다고. 중장년층은 말합니다. 요즘 청년들은 어깨에 부담을 짊어지기 싫어한다고. 여기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리더입니다. 리더라는 게 매출이 어마어마한 기업의 CEO처럼 거창한 타이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부담까지 즐기려는 열정이 있습니다. 과감한 개척자 정신도 있습니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는 ‘내가 청년 리더’를 통해 꿈을 향해 전진하는 청년들을 소개합니다. 》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 취업, 주거 문제 같은 무거운 고민도 많지만 패션 고민은 청춘과 떼려야 뗄 수 없다.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매일 아침 눈 뜨면 무슨 옷을 입고 나갈지 고민이 앞선다. 스타일쉐어 윤자영 대표이사(27)는 그런 청춘의 고민을 덜어주는 ‘패션 리더’다. 윤 대표가 2011년 6월 창업한 스타일쉐어는 10~30대를 대상으로 패션 정보를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 ‘스타일쉐어’를 만들었다. 일반인이 자신의 옷과 패션 소품 사진을 올리고 제품 가격과 구입처를 공유한다. 길가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했을 때 어디서 샀는지 묻지 못했던 답답함을 스타일쉐어가 해소해준다. 현재 누적회원수 130만 명으로 20대 여성 가입자만 따지면 한국 20대 여성 5명 중 1명이 스타일웨어를 사용한다. 하루 17만 명이 방문해 매일 5000건의 패션 콘텐츠가 올라온다. 17일 서울 광화문에서 비싸지 않은 옷으로 모델처럼 멋을 낸 윤 대표를 만났다. ‘패션 리더’가 되기까지 과정을 결정적인 세 가지 말로 정리했다.● “물어볼 수도 없고 답답하네.” 2007년 외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에 입학한 윤 대표. 당시엔 그도 캠퍼스에서 세련된 옷차림을 한 또래를 보면 어디서 살 수 있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궁금한 평범한 새내기였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패션 고민이 빠지지 않았다. 그는 대학생 대상 무가지나 패션 잡지를 사서 봤지만 그곳에도 답이 없었다. 그는 “패션잡지는 우리가 살 수 없는 500만 원짜리 드레스나, 소화하기 힘든 연예인의 방송용 옷을 추천하고 있었다”고 했다. 오히려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패션 정보는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많았다. 사람들은 패션 게시글에 댓글을 달며 의견을 나눴다. 윤 대표는 “에디터가 만드는 패션 잡지는 독자보다 산업 위주로 돌아가고, 카페나 블로그는 끼리끼리 친목 문화가 강했다. 둘을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 그때부터 고민했다”고 했다.● “그냥 네가 만들어.” 윤 대표는 친구만 만나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2010년 가을 그의 친구는 “지난해도 그 이야기했잖아. 그냥 네가 직접 만들어”라고 충고했다. 친구의 말에 자존심이 팍 상했다. 매일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 자신이 조금 한심하기도 했다. 2009년 윤 대표는 세계적인 스트리트 패션 블로그 운영자를 만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함께 사업을 구상 중이라는 이 운영자의 이야기에 오히려 자신감만 줄어들고 말았다. 윤 대표는 친구의 말 한 마디에 정신을 차리고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스타일쉐어 아이디어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에서 열린 창업경진대회에서 잇달아 수상했다. 대학에 창업 강의를 하러 온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이니시스를 만든 스타트업 1세대 권 대표도 스타일쉐어 성공 가능성을 보고 함께 하자고 했다. 프라이머의 투자를 받은 스타일쉐어는 개발자, 디자이너 등을 꾸렸다. 윤 대표는 “네가 직접 만들어”란 말을 가슴에 새기고 열정적으로 뛰면서 해외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2011년 3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주관하는 ‘MIT 글로벌 스타트업 워크숍 2011’에서 ‘온라인 패션 커뮤니티’ 아이디어로 결승에 올랐다. 또 MIT의 창업경진대회인 ‘매스 챌린지 엑셀러레이터’ 100위 안에 아시아팀으로 유일하게 포함돼 창업 지원을 받았다.● “이건 패션의 바이블(성경)이야.” 패션 정보를 나누는 놀이터가 열리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용 후기엔 “스타일쉐어로 패션을 배웠다”, “일반인 체형도 입을 수 있는 옷 정보가 많다” 등 만족스럽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제는 일반인 뿐 아니라 유명 모델, 블로거, 디자이너도 패션 정보를 올린다. 온라인몰, 패션브랜드도 입점했다. 스타일쉐어가 지난해 봄 신촌과 강남에서 연 플리마켓 행사에는 각각 1만, 2만 명이 찾기도 했다. K-패션에 관심을 갖는 일본, 중국, 대만 젊은이들의 가입이 늘면서 해당 국가 버전도 출시했다. 사업 5년차, 스타일쉐어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윤 대표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옷과 패션 소품, 옷장 속 헌옷으로 연출하는 패션 정보를 나누는 공간이 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했어요. 앞으로도 평범한 보통 사람의 패션 고민을 나누고 해결하는 스타일쉐어가 될 거에요.”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스님께선 어느 책에서나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최인호) “죽음은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거늘, 육신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소유물이 소멸된다는 생각 때문에 편안히 눈을 못 감는 것이지요. 육신은 내가 잠시 걸친 옷일 뿐인 걸요.”(법정 스님) 다음달 11일 법정 스님(1932~2010)의 입적 5주기를 앞두고 소설가 최인호(1945~2013)와의 산방 대담을 담은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여백)가 24일 출간됐다. 2003년 4월 길상사 요사채에서 4시간 동안 나눈 대담이다. 책에는 2004년 출간된 ‘대화’(샘터)에 수록된 대담과 산문집 ‘최인호의 인생’에 실렸던 법정 스님 관련 글이 수록됐다. 작가는 생전 암 투병 중에도 법정 스님의 입적 3주기에 맞춰 이 책을 출간하려 했지만 소설 작업과 병세 악화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2013년 9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출판사에 스님의 입적을 전후해 책을 내달라고 유지를 남겼다. 책 제목과 구성도 작가가 직접 정했다. 두 사람은 행복, 사랑, 고독, 죽음, 진리, 시대정신 등 11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남은 생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눈길이 간다. “저는 정면 승부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지금 이 생에서도 끝까지 창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요.”(최인호) “내게도 꿈이 있지요.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남은 삶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고 싶군요. 그리고 추하지 않게 그 삶을 마감하고 싶습니다.”(법정 스님) 두 사람 모두 말을 행동으로 옮겼기에 지금도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는 서로의 인연도 소개한다. 1980년대 초반 잡지 ‘샘터’에 각자 ‘산방한담’(山房閑談)과 연작소설 ‘가족’을 연재하던 두 사람은 우연히 잡지사에서 마주쳤다. 이런 저런 대화가 오가다 법정 스님이 “앞으로 무슨 소설을 쓰겠느냐”고 묻자, 최인호는 “불교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답했다. 최인호는 “쓰고 싶어 하면 언젠가는 쓰게 되겠지요. 말과 행동이 업이 되어서 결과를 이루게 됩니다”란 스님의 격려를 화두로 가지고 불교소설 ‘길 없는 길’을 완성했다. 이들은 첫 만남 이후 30년 가까이 열 번 남짓 만났지만 서로 격려하고 응원했다. 최인호는 “법정 스님과의 인연은 전생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숙세(宿世)의 것임을 깨달았다. 법정 스님과 나는 둘이 아니다.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다”라고 썼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라가치상을 수상한 두 작품 모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다음 그림책으로 만들었어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면서 이야기를 셀 수 없이 수정하고 편집했는데, 그림책으로 각색하면서 또 한 번 반복했어요.” 정유미 작가(34)는 ‘그림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2년 연속 수상하게 됐다. 정 작가의 그림책 ‘나의 작은 인형 상자’가 픽션 부문 우수상에 선정된 것. 지난해 정 작가는 ‘먼지아이’로 뉴 호라이즌 부문(유럽·북미 제외 국가)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올해 50주년을 맞은 라가치상은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이 주관하는 상으로 세계 어린이 책을 대상으로 픽션, 논픽션, 뉴 호라이즌, 오페라 프리마(신인상) 등 4개 부문에서 대상과 우수상을 선정한다. 시상식은 도서전 개막일인 다음 달 30일 볼로냐에서 열린다. 정 작가는 2년 연속 수상이란 쾌거를 이뤘지만 새 그림책 마무리 작업으로 서울 서대문구 작업실에만 머무르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는 2년 연속 라가치상 수상자로 선정돼 애니메이션계에 이어 그림책 분야의 ‘떠오른 별’이 됐지만 조심스러웠다. 자신이 연속으로 선택된 이유를 묻자 주저하다 “2년 동안 끝없이 수정하는 과정에서 작품 밀도가 쌓인 게 수상 비결인 것 같다”고 했다. ‘나의 작은…’은 소녀 유진이 직접 만든 인형 상자 안을 여행하면서 상자 안에만 머물려는 인형들을 만나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유진은 상자 안을 빠져나오면서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좁은 공간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국내에선 다음 달 초 출간된다. 정 작가는 “직접 만든 인형 상자를 동네 친구가 보여 달라고 했는데 그 순간 많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오래 남았다. 유진이 또래가 내면의 두려움이나 갈등을 스스로 토닥이며 위로하는 힘을 그림책을 통해 길렀으면 한다”고 했다. 정 작가는 국민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애니메이션 연출을 전공했다. 그는 지난해 세계 4대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로 꼽히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영화제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그림책과 애니메이션 모두 연필 드로잉 방식으로 작업한다. 한창 작업할 때 그의 오른손 새끼손가락 쪽은 작품의 연필 자국에 스쳐 시커멓다. 그는 “연필은 수정이 어렵지 않아 이야기를 뚝딱 만들 수 있다. 세밀한 표현력도 연필의 장점”이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그림책을 손에서 놓지 않은 그는 그림책을 부모들에게 ‘강추’했다. “그림책을 보는 아기들은 구석구석 세부적으로 관찰해요. 그림책을 읽으면 이야기를 좀 더 감각적으로 체험하고 상상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올해 한국은 지경애의 ‘담’(픽션 우수상), 김장성 오현경의 ‘민들레는 민들레’(논픽션 〃), 박연철의 ‘떼루떼루’(뉴 호라이즌 〃), 정진호의 ‘위를 봐요’(오페라 프리마 〃)로 처음으로 라가치상 전 부문에서 수상작을 배출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정년이라는 게 미리 경험할 수 없는 거잖아. 인생의 반을 훌쩍 넘긴 시점에 다들 처음으로 정년이라는 것을 맞이하는 셈이지. 그것도 말이야, 이런 무기력한 시절은 일찍이 없었다고. 옛날에는 분명 가난했고 돈이나 물건도 없기는 했지만, 지속적으로 발전했지 쇠퇴해 가지는 않았으니까.”(180쪽) 소설 ‘캠핑카’에 등장하는 은퇴한 세일즈맨의 대사에 단편집의 주제가 함축돼 있다. 유행가 가사처럼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 색소폰 소리 들으며’ 낭만을 운운하던 중장년의 좋았던 사춘기 시절은 일본도 한국도 끝난 지 오래다. 저자는 예민한 더듬이로 장기 침체에 빠진 일본 중장년 5명의 삶을 포착해 5편의 중편소설로 풀었다. ‘캠핑카’에선 중견 가구회사에서 한직으로 밀려나자 조기 퇴직을 택한 남자 도미히로가 등장한다. 그는 캠핑카를 사서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날 꿈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아내는 은행 잔액과 자녀의 결혼 자금을 이유로 남편의 계획에 반대한다. 자녀는 한술 더 떠 재취업을 권한다. 재취업 시장에 나온 그에게 닥친 현실은 더 가혹하다. 컴퓨터와 외국어를 할 줄 아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특기로 신뢰와 노력밖에 답할 수 없는 그에게 자리는 없다. 그는 초조, 불안 증세에 시달린다. 책에는 TV만 보는 남편과 이혼하고 사랑을 찾아 나선 여자(‘결혼상담소’), 노숙자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남자(‘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 남편 대신 반려견에게 의지하는 여자(‘펫로스’), 악조건 속에서도 일에 긍지를 가지려는 트럭운전사(‘여행 도우미’)까지 인생의 전환점을 지나서도 재출발하려고 애쓰는 중장년이 등장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그룹섹스, 연쇄살인, 영아유기, 폭력 등 자극적인 소재로 현대 사회를 그려냈다. 63세인 저자도 나이 때문인지 이번엔 착한 소설을 썼다. 작가의 말에선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공감을 느꼈다”는 고백까지 했다. 5편의 소설은 저마다 희망의 빛을 비추며 끝나는데, 저자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 같아 애틋하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55세부터 헬로라이프/무라카미 류 지음·윤성원 옮김/376쪽·1만2800원·북로드 “정년이라는 게 미리 경험할 수 없는 거잖아. 인생의 반을 훌쩍 넘긴 시점에 다들 처음으로 정년이라는 것을 맞이하는 셈이지. 그것도 말이야, 이런 무기력한 시절은 일찍이 없었다고. 옛날에는 분명 가난했고 돈이나 물건도 없기는 했지만, 지속적으로 발전했지 쇠퇴해가지는 않았으니까.”(180쪽) 소설 ‘캠핑카’에 등장하는 은퇴한 세일즈맨의 대사에 단편집의 주제가 함축돼 있다. 유행가 가사처럼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 색소폰 소리 들으며’ 낭만을 운운하던 중장년의 좋았던 사춘기 시절은 일본도 한국도 끝난 지 오래다. 저자는 예민한 더듬이로 장기 침체에 빠진 일본의 중장년 5명의 삶을 포착해 5편의 중편소설로 풀었다. ‘캠핑카’에선 중견 가구 회사에서 한직으로 밀려나자 조기 퇴직을 택한 남자 토미히로가 등장한다. 그는 캠핑카를 사서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날 꿈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아내는 은행 잔고와 자녀의 결혼 자금을 이유로 남편의 계획에 반대한다. 자녀는 한술 더 떠 재취업을 권한다. 재취업 시장에 나온 그에게 닥친 현실은 더 가혹하다. 컴퓨터와 외국어를 할 줄 아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특기로 신뢰와 노력밖에 답할 수 없는 그에게 자리는 없다. 그는 초조, 불안 증세에 시달린다. 책에는 TV만 보는 남편과 이혼하고 사랑을 찾아 나선 여자(‘결혼상담소’), 노숙자로 전락할 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남자(‘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 남편 대신 반려견에 의지하는 여자(‘펫로스’), 악조건 속에도 일에 긍지를 가지려는 트럭운전사(‘여행 도우미’)까지 인생의 전환점을 지나서도 재출발하려고 애쓰는 중장년이 등장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그룹섹스, 연쇄살인, 영아유기, 폭력 등을 자극적인 소재로 현대 사회를 그려냈다. 63세인 저자도 나이 탓인지 이번엔 착한 소설을 썼다. 작가의 말에선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공감을 느꼈다”는 고백까지 했다. 5편의 소설은 저마다 희망의 빛을 비추며 끝나는데, 저자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 같아 애틋하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가족과 피붙이란 무엇인가. 서로에게 향긋한 냄새를 풍겨 주는 것만이 아닌, 시큰한 냄새가 나는 김칫국물 자국을 서로에게 남겨 주는 존재가 아닌가. 나는 형의 가슴에, 형은 내 가슴에 엎질러진 김칫국물이 아닌가. 어머니는 내게, 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내게, 나는 아버지에게, 누나는…… 그래 시큰한 김칫국물들이 모여들어 딴세상으로 떠난 김칫국물들을 그리워하는 명절이다.” (함민복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에서) 》설밑 함민복 시인(53)을 만나러 16일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강화고려인삼센터에 갔다. 각박한 세상에도 시대의 욕망에서 한 걸음 물러서 살고 있는 그라면 지친 보통 사람들과 소외된 존재까지 품어주는 덕담을 해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시인은 2011년 봄 식을 올린 동갑내기 아내 박영숙 씨와 ‘길상이네’를 꾸리고 있다. 인삼가게는 보통 자녀의 이름을 따서 ‘O O 네’라고 이름 붙인다. 자녀가 없는 시인은 키우는 개 이름을 빌려 가게 이름을 붙였다. 인삼 장사를 시작하고선 명절에 고향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장사는 항상 바빠요. 손님이 오면 당연히 물건 파느라 바쁘고요. 항상 손님 찾아오길 기다리는 마음이 참 바빠요.” ―인삼 파는 일이 익숙해졌나요. “아직 약간 쑥스러워서 ‘보고 가세요’란 말이 잘 안 나옵니다. 한번은 ‘보고 가세요’ 하고선 어찌나 목소리가 작던지 스스로 ‘나한테도 잘 안 들리네’라고 했어요. 우리만 장사가 안 될 땐 다른 집과 비교돼 마음의 갈등이 올 때도 있어요. 그땐 우리가 먹고살 만큼만 팔 수 있으면 된다며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해요.” ―강화도 생활 20년인데 이곳 명절 풍경은 어떤가요. “북을 볼 수 있는 강화평화전망대에 갔는데 건물 후미진 곳에 노인 두 분이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나눠 마시고 있어요. 강화도엔 황해도 연백평야에서 온 실향민이 많이 살고 있어요. 추석이면 모처럼 고향 바다를 찾은 사람들이 개펄에 나가서 새까맣게 사람들이 많아요. 강화도 명절 하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과 고향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어릴 적 설날은 어땠나요. “쌀이 없어 싸라기 반말로 가래떡을 뽑아 떡국을 먹었죠. 거무튀튀하고 풀기가 없어 맛이 없어도 다들 그렇게 먹었어요. 설빔을 입고 집 밖에 나가서 친구들끼리 옷에 주머니가 몇 개 달렸는지 서로 자랑하던 기억이 나요. 넉넉하지 않아도 행복했어요.” 함 시인은 가난한 가족사를 시로 풀었다. 가족에 대한 소박하고 진솔한 시는 큰 울림을 준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어머님 배 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성선설’ 전문) ―시인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가족이란 부끄러움, 슬픔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내 몸처럼 부끄러움도 슬픔도 나눌 수 있죠. 사람이 만나면 어느 정도 경계가 있기 마련인데 경계 없이 서로 받아주는 존재가 가족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글을 많이 썼는데,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 많이 나겠어요. “아흔네 살 장모님이 어머니랑 동갑인데, 기력이 약해진 장모님을 뵈러 가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내 형제들은 장모님께 잘해 드리는데, 저는 어머니께 못해 드린 게 계속 생각나죠. 쓸쓸하게 사셨겠구나 하고요.” ―요즘 시는 언제 쓰나요. “새벽 3시면 일어나 시를 쓰고, 오전 9시 인삼가게 문을 열죠. 장사 안 되면 도서관 가서 책 보고.” ―준비 중인 시집은 뭡니까. “‘까?’요.” ―예? “물어볼 때 쓰는 ‘까’요. 가을에 낼 생각인데, 어린이 시선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동시집입니다.” ―세월호 배지를 옷에 달고 계신데, 지난해 우리 사회에 아픈 일이 참 많았어요. “앞으로 가기 위해선 ‘백미러’를 봐야 합니다. 우리들 각자 마음속에 배 한 척이 들어와 있는데, 이 배들을 어떻게 편안하게 보낼 것인가 생각을 해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고 평등, 평화, 존중을 생각해야죠. 그런 믿음을 주는 사람, 이정표가 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합니다.” 그의 인삼가게에는 아내가 옮겨 적은 시인의 시 구절이 붙어 있다. “이 우주에 헌법이 있다면, 그건 아마 사랑일 겁니다.”:: 함민복 시인은 ::1982년 수도전기공고를 졸업하고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 일했다. 글 쓰기 위해 퇴사 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1988년 등단했다. 시집 ‘우울氏의 一日’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미안한 마음’ 등 10여 권의 책을 냈다.강화도=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가족과 피붙이란 무엇인가. 서로에게 향긋한 냄새를 풍겨 주는 것만이 아닌, 시큰한 냄새가 나는 김칫국물 자국을 서로에게 남겨 주는 존재가 아닌가. 나는 형의 가슴에, 형은 내 가슴에 엎질러진 김칫국물이 아닌가. 어머니는 내게, 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내게, 나는 아버지에게, 누나는…… 그래 시큰한 김칫국물들이 모여들어 딴 세상으로 떠난 김칫국물들을 그리워하는 명절이다.”(함민복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에서) 설밑 함민복 시인(53)을 만나러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강화고려인삼센터에 갔다. 각박한 세상에도 시대의 욕망에서 한 걸음 물러서 살고 있는 그라면 지친 보통 사람들과 소외된 존재까지 품어주는 덕담을 해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시인은 2011년 봄 식을 올린 동갑내기 아내 박영숙 씨와 ‘길상이네’를 꾸리고 있다. 인삼가게는 보통 자녀의 이름을 따서 ‘OO네’라고 이름 붙인다. 자녀가 없는 시인은 키우는 개 이름을 빌려 가게 이름을 붙였다. 인삼장사를 시작하고선 명절에 고향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장사는 항상 바빠요. 손님이 오면 당연히 물건 파느라 바쁘고요. 항상 손님 찾아오길 기다리는 마음이 참 바빠요.” ―인삼 파는 일이 익숙해졌나요. “아직 약간 쑥스러워서 ‘보고가세요’란 말이 잘 안 나옵니다. 한 번은 ‘보고가세요’ 하고선 어찌나 목소리가 작던지 스스로 ‘내한테도 잘 안 들리네’라고 했어요. 우리만 장사가 안 될 땐 다른 집과 비교돼 마음의 갈등이 올 때도 있어요. 그땐 우리가 먹고 살만큼만 팔 수 있으면 된다며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해요.” ―강화도 생활 20년인데 이곳 명절 풍경은 어떤가요. “북을 볼 수 있는 강화평화전망대에 갔는데 건물 후미진 곳에 노인 두 분이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나눠 마시고 있어요. 강화도엔 황해도 연백평야에서 온 실향민이 많이 살고 있어요. 추석이면 모처럼 고향 바다를 찾은 사람들이 개펄에 나가서 새까맣게 사람들이 많아요. 강화도 명절하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과 고향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어릴 적 설날을 어땠나요. “쌀이 없어 싸라기 반말로 가래떡을 뽑아 떡국을 먹었죠. 거무튀튀하고 풀기가 없어 맛이 없어도 다들 그렇게 먹었어요. 설빔을 입고 집밖에 나가서 친구들끼리 옷에 주머니가 몇 개 달렸는지 서로 자랑하던 기억이 나요. 넉넉하지 않아도 행복했어요.” 함 시인은 가난한 가족사를 시로 풀었다. 가족에 대한 소박하고 진솔한 시는 큰 울림을 준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어머님 배 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성선설’ 전문) ―시인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가족이란 부끄러움, 슬픔을 함께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내 몸처럼 부끄러움도 슬픔도 나눌 수 있죠. 사람이 만나면 어느 정도 경계가 있기 마련인데 경계 없이 서로 받아주는 존재가 가족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글을 많이 썼는데,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 많이 나겠어요. “아흔 네 살 장모님이 어머니랑 동갑인데, 기력이 약해진 장모님을 뵈러 가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내 형제들은 장모님께 잘해 드리는데, 저는 어머니께 못 해 드린 게 계속 생각나죠. 쓸쓸하게 사셨겠구나 하고요.” ―요즘 시는 언제 쓰나요. “새벽 3시면 일어나 시를 쓰고, 오전 9시 인삼가게 문을 열죠. 장사 안 되면 도서관 가서 책보고. (웃음)” ―준비 중인 시집은 뭡니까. “‘까’요.” ―예? “물어볼 때 쓰는 ‘까’요. 가을에 낼 생각인데, 어린이 시선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동시집입니다.” ―세월호 배지를 옷에 달고 계신데, 지난해 우리 사회에 아픈 일이 참 많았어요. “앞으로 가기 위해선 ‘백미러’를 봐야 합니다. 우리들 각자 마음속에 배 한 척이 들어와 있는데, 이 배들을 어떻게 편안하게 보낼 것인가 생각을 해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고 평등 평화 존중을 생각해야죠. 그런 믿음을 주는 사람, 이정표가 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합니다.” 그의 인삼가게에는 아내가 옮겨 적은 시인의 시 구절이 붙어 있다. “이 우주에 헌법이 있다면, 그건 아마 사랑일 겁니다.” ●함민복 시인은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 출생. 1982년 수도전기공고를 졸업하고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 일했다. 글 쓰기 위해 퇴사 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1988년 등단했다. 시집 ‘우울氏의 一日’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미안한 마음’ 등 10여 권의 책을 냈다.강화도=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우와, 여기서 좋은 작품 못 쓰면 정말 바보다, 바보.” 서해 변산반도 낙조를 바라보던 한 작가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전북 부안군 진서면에 자리한 이곳은 서해 특유의 낙조와 개펄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정남향이라 일출과 일몰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13일 소설가, 시인이 운영하는 작가 창작공간 ‘레지던스 변산바람꽃’(변산바람꽃)의 개소식이 열렸다. 변산바람꽃 운영위원장은 안도현 시인, 고문은 박범신 소설가가 맡았다. 운영위원은 젊은 작가들인 백가흠 이기호 소설가, 이원 김민정 임경섭 시인 등이다.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국장도 2009년 등단한 정영효 시인이다. 이날 개소식에서 안 시인은 “자연과 가까워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기엔 최상의 장소”라며 “꼭 쓰지 않아도 풍광을 보며 쉬어가도 좋다”고 했다. 변산바람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5년 문학창작공간지원’ 사업에도 선정됐다. 상, 하반기 공개모집을 통해 해마다 작가 20여 명, 습작생 10여 명에게 창작실을 무료로 제공한다. 원래 펜션으로 쓰던 이 건물은 건물주인 부안 지역 치과의사 서융 씨(54)가 작가들에게 제공했다. 그는 지난해 안 시인으로부터 작가들의 창작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간 기증을 결심했다. 서 씨는 “집짓기를 좋아해 집을 여러 채 지었는데 정작 어떻게 쓸지 고민이 많았다”며 “건물 지을 때 천장 달린 다락방을 신경 써서 만들었는데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매일 세끼 신선한 부안 지역 식재료로 만든 식사도 입주 작가에게 제공한다. 모처럼 바닷가에 모여 주꾸미에 소주 한잔 걸친 선후배 작가들의 말이 흥미롭다. 한마디로 ‘작가들은 집에선 글을 쓸 수 없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실제 많은 작가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창작 욕구를 불태울 공간을 찾아 헤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무크는 유명 작가 인터뷰 모음집 ‘작가란 무엇인가’(다른)에서 “글을 쓰는 공간은 잠을 자거나 배우자와 공유하는 공간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집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의식이나 세부적인 일들이 상상력을 죽이지요”라고 했다. 그는 작업실이 없을 땐 매일 아침마다 아내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다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와 마치 작업실에 온 것처럼 연기하기도 했다. 국내 작가들도 파무크의 말처럼 “가정적이고, 길들어진 하루 일과”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브호텔, 고시원, PC방, 때론 거리에서 노트북을 꺼낸다. 백가흠 작가도 “집을 떠나면 밖에서 안을 볼 수 있다. 소설의 본질은 그런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 학생들이 모두 떠나 을씨년스러운 텅 빈 지방대학 기숙사에서 글을 썼다. 대학 강의를 위해 서울과 광주를 자주 오가는 정용준 작가는 기차에서 소설을 쓴다. 기차 도착 예정 시간과 노트북 배터리 잔량이 마감을 재촉하는 ‘초시계 효과’를 내 집중력을 높인다고 했다. 정 작가는 “몇 년간 쓴 단편들이 모두 기차에서 탄생했다”며 “덜컹거리는 기차 소음이 내겐 집중을 돕는 백색 소음”이라고 했다. 변산바람꽃은 습작생 시절 작품에만 흠뻑 빠져 있을 곳이 없어 고생한 경험을 되살려 습작생에게도 공간을 개방했다. 입주 작가는 습작생과 함께 생활하며 멘토 역할도 하도록 했다. 정식 개소 한 달 전부터 정 작가와 습작생 3명이 시범 입주해 생활하고 있다. 습작생 이광헌 씨(25·대학생)는 “선배 작가가 생활하는 모습을 가까이 보면서 수업시간에 배울 수 없었던 것을 배운다”고 했다.부안=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우와, 여기서 좋은 작품 못 쓰면 정말 바보다, 바보.” 서해 변산반도 낙조를 바라보던 한 작가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전북 부안군 진서면에 자리한 이곳은 서해 특유의 낙조와 개펄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정남향이라 일출과 일몰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13일 소설가, 시인이 운영하는 작가 창작공간 ‘레지던스 변산바람꽃’(이하 변산바람꽃)의 개소식이 열렸다. 변산바람꽃 운영위원장은 안도현 시인, 고문은 박범신 소설가가 맡았다. 운영위원은 젊은 작가들인 백가흠 이기호 소설가, 이원 김민정 임경섭 시인 등이다.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국장도 2009년 등단한 정영효 시인이다. 이날 개소식에서 안도현 시인은 “자연과 가까워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기 최상의 장소”라며 “꼭 쓰지 않아도 풍광을 보며 쉬어가도 좋다”고 했다. 변산바람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5년 문학창작공간지원’ 사업에도 선정됐다. 상, 하반기 공개모집을 통해 해마다 작가 20여 명, 습작생 10여 명에게 창작실을 무료로 제공한다. 원래 펜션으로 쓰던 이 건물은 건물주인 부안 지역 치과의사 서융 씨(54)가 작가들에게 제공했다. 그는 지난해 안도현 시인으로부터 작가 창작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간 기증을 결심했다. 서 씨는 “집짓기를 좋아해 집을 여러 채 지었는데 정작 어떻게 쓸지 고민이 많았다”며 “건물 지을 때 천장 달린 다락방을 신경 써서 만들었는데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매일 세끼 신선한 부안 지역 식재료로 만든 식사도 입주 작가에게 제공한다. 모처럼 바닷가에 모여 주꾸미에 소주 한 잔 걸친 선후배 작가들의 말이 흥미롭다. 한마디로 ‘작가들은 집에선 글을 쓸 수 없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실제 많은 작가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창작 욕구를 불태울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헤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무크는 유명 작가 인터뷰 모음집 ‘작가란 무엇인가’(다른)에서 “글을 쓰는 공간은 잠을 자거나 배우자와 공유하는 공간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집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의식이나 세부적인 일들이 상상력을 죽이지요”라고 했다. 그는 작업실이 없을 땐 매일 아침마다 아내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다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와 마치 작업실에 온 것처럼 연기하기도 했다. 국내 작가들도 파무크의 말처럼 “가정적이고, 길들어진 하루 일과”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브호텔, 고시원, PC방, 때론 거리에서 노트북을 꺼낸다. 백가흠 작가도 “집을 떠나면 밖에서 안을 볼 수 있다. 소설의 본질은 그런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 학생들이 모두 떠나 을씨년스러운 텅 빈 지방 대학 기숙사에서 글을 썼다. 대학 강의를 위해 서울과 광주를 자주 오가는 정용준 작가는 기차에서 소설을 쓴다. 기차 도착 예정 시간과 노트북 배터리 잔량이 마감을 재촉하는 ‘초시계 효과’를 내 집중력을 높인다고 했다. 정 작가는 “몇 년 간 쓴 단편들이 모두 기차에서 탄생했다”며 “덜컹거리는 기차 소음이 내겐 집중을 돕는 백색소음”이라고 했다. 변산바람꽃은 습작생 시절 작품에만 흠뻑 빠져 있을 곳이 없어 고생한 경험을 되살려 습작생에게도 공간을 개방했다. 입주 작가는 습작생과 함께 생활하며 멘토 역할도 하도록 했다. 정식 개소 한 달 전부터 정 작가와 습작생 3명이 시범 입주해 생활하고 있다. 습작생 이광헌 씨(25·대학생)는 “선배 작가가 생활하는 모습을 가까이 보면서 수업시간에 배울 수 없었던 것을 배운다”고 했다.부안=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세계 영화사의 손꼽히는 광대’ 찰리 채플린(1889∼1977)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끊임없이 끼적였다. 하지만 ‘많은 생각과 감정의 덩어리들이 서서히 증류되어 두 시간의 소비자 제품(영화)으로 결정된 과정’이 담긴 자료를 보관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행히 채플린의 형제들이 자료를 열심히 수집해 채플린의 스튜디오 문서 보관소에 보관했다가 스위스로 옮겼다. 채플린 연구자인 데이비드 로빈슨은 유족의 동의를 얻어 채플린 사후 40년 만에 그의 자전적 소설 ‘풋라이트’와 ‘칼베로 이야기’를 공개했다. 두 소설은 채플린이 제작한 영화 ‘라임라이트’의 바탕이 된 작품이다. ‘풋라이트’는 어느 무용수와 코미디언에게 벌어진 얘기를 담았다. 한물간 코미디언 칼베로는 자살하려던 젊은 무용수 테리를 우연히 구해준다. 테리는 무대 공포증으로 다리 마비 증상을 겪고 있었지만 칼베로는 테리를 격려해 다시 무대에 오르도록 돕는다. 테리는 화려한 춤을 선보이고 스타덤에 오른다. 이번엔 테리가 단역배우로 전락한 칼베로를 구원한다. 테리 덕에 칼베로는 다시 대형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내고 무대 위에서 죽는다. 채플린은 영화 ‘라임라이트’에서 칼베로를 직접 연기했다. 칼베로는 예술가적 기질과 대중의 관심 사이에서 늘 갈등했다. 칼베로의 목소리가 채플린의 고통을 대변한다. “그들(관객)이 당신의 노예일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당신이 그들의 노예가 되는 순간, 당신은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함께 실린 ‘칼베로 이야기’에는 잘나가던 코미디언 칼베로가 아내의 외도와 알코올의존증 등으로 인해 추락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로빈슨은 두 편의 채플린 소설을 소개하는 한편으로 소설이 영화로 변모하는 과정도 풀어냈다. 미공개 육필 원고와 희귀 사진 150장, 채플린 가족과 동료의 생생한 증언을 모아 영화 제작 상황을 묘사했다. 채플린이 늘 사전을 옆에 두고 새로운 단어를 외우려고 노력한 일, ‘라임라이트’ 제작 때 가족을 많이 참여시켜 자전적 측면을 강화하려 했던 이야기 등이 흥미롭다. 찰리 채플린을 사랑한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세계 영화사의 손꼽히는 광대’ 찰리 채플린(1889~1977)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끊임없이 끼적였다. 하지만 많은 생각과 감정의 덩어리들이 서서히 증류되어 두 시간의 소비자 제품(영화)으로 결정된 과정‘이 담긴 자료를 보관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행히 채플린의 형제들이 자료를 열심히 수집해 채플린의 스튜디오 문서 보관소에 보관했다가 스위스로 옮겼다. 채플린 연구자인 데이비드 로빈슨은 유족의 동의를 얻어 채플린 사후 40년 만에 그의 자전적 소설 ’풋라이트‘와 ’칼베로 이야기‘를 공개했다. 두 소설은 채플린이 제작한 영화 ’라임라이트‘의 바탕이 된 작품이다. ’풋라이트‘는 어느 무용수와 코미디언에게 벌어진 얘기를 담았다. 한물간 코미디언 칼베로는 자살하려던 젊은 무용수 테리를 우연히 구해준다. 테리는 무대 공포증으로 다리 마비 증상을 겪고 있었지만, 칼베로는 테리를 격려해 다시 무대에 오르도록 돕는다. 테리는 화려한 춤을 선보이고 스타덤에 오른다. 이번엔 테리가 단역배우로 전락한 칼베로를 구원한다. 테리 덕에 칼베로는 다시 대형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내고 무대 위에서 죽는다. 채플린은 영화 ’라임라이트‘에서 칼베로를 직접 연기했다. 칼베로는 예술가적 기질과 대중의 관심 사이에서 늘 갈등했다. 칼베로의 목소리가 채플린의 고통을 대변한다. “그들(관객)이 당신의 노예일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당신이 그들의 노예가 되는 순간, 당신은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함께 실린 ’칼베로 이야기‘에는 잘 나가던 코미디언 칼베로가 아내의 외도와 알콜 중독 등으로 인해 추락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로빈슨은 두 편의 채플린 소설을 소개하는 한편 소설이 영화로 변모하는 과정도 풀어냈다. 미공개 육필 원고와 희귀 사진 150장, 채플린 가족과 동료의 생생한 증언을 모아 영화 제작 상황을 묘사했다. 채플린이 늘 사전을 옆에 두고 새로운 단어를 외우려고 노력한 일, ’라임라이트‘ 제작 때 가족을 많이 참여시켜 자전적인 측면을 강화하려 했던 이야기 등이 흥미롭다. 찰리 채플린을 사랑한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여행서적 800권 시대, 하루 평균 2.2권이 출간된다. 여행 전문 블로그나 인터넷 여행카페, 독립출판물까지 합하면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여행기를 쓰고 있다. 전문 여행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늘면서 관련 강좌도 인기 있다. 10일 오후 기자는 인기 여행기 블로거가 한번 돼 보겠다는 각오로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에서 여행작가 이지상 씨(57)를 만났다. ○ “여행기 ‘그까이꺼’…” “여행기 ‘그까이꺼’, 달빛 아래 와인 나오는 사진 찍어 놓고 ‘센 강에서 마신 피처럼 붉은 와인은 빨간 혀처럼 나를 휘감았다’, 이렇게 쓰면 되는 거 아냐.” 스스로의 출사표이자 다짐이었다. 이 씨는 2011년부터 이곳에서 ‘여행작가·여행 칼럼니스트 과정’ 강좌를 맡아 300명을 지도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시대 이전부터 배낭여행을 시작한 그는 최근 출간한 개정판 ‘그때, 타이완을 만났다’(알에이치코리아)를 포함해 여행책 21권을 출간한 배낭여행 1세대다. ‘일일 스승’인 그에게 지난해 봄 두바이 공항에서 쓴 글을 여행기라고 주장하며 내밀었다. “공항은 인천도 두바이도 똑같다. 인도인 부부는 우는 어린 아기에게 스마트폰을 쥐여 주었다. 둘러보니 다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다. 출근길 풍경을 여기까지 와서 보다니. … 한국 신혼부부들은 ‘죄다’ 커플룩을 입었다. 남자와 여자가 같은 옷을 입다 보니 알록달록한 아동복 천지다. 국제적 망신 아닌가, 강한 규탄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쓰셨네요” 글을 읽은 스승은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었느냐”며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 쓰셨네요. 사진과 사진설명식 글만 버무리면 여행기라고 생각하는데 큰 착각입니다.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특히 블로그에 쓰려면 생동감 있게 써야지 1인칭 관찰자 시점은 아무도 안 읽어요.” 스승은 여러 가지 형태로 써볼 것을 요구했다. 스토리 위주의 일화, 감상을 개성 있는 ‘글발’로 풀어내는 에세이, 구체적인 정보를 담은 가이드북까지 세 가지 형태다. 그는 또 “같은 경험을 쓸 때도 대화, 독백, 서술 등 다양하게 섞어 써보면 실력이 늘기 마련이다. 나중에 여행기를 쓸 때도 단조롭지 않고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고쳐 쓰려는데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팩트가 없으니 원고지를 채울 재간이 없다. 스승은 비기(秘技)를 담은 자신의 노트를 공개했다.○ 스승의 노하우 스승은 일단 두꺼운 대학 노트를 반으로 나눠 썼다. 앞부분엔 여행지 현장에서 수집한 정보나 있었던 일을 메모한다. 뒷부분엔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현장에서 느낀 섬세한 감성을 기록한다. 이러면 정보와 감성이 뒤죽박죽 섞이지 않는다. 노트에 가계부를 함께 기록해도 좋다. 지출 과정을 적다 보면 가장 세밀한 부분까지 기록할 수 있고 여행도 계획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스승은 뜻밖에도 ‘여행지에서 어린아이처럼 좋았던 순간이 언제냐’ ‘가장 절실했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니 두바이 공항에서 만난 세계화된 지구라든가, 신혼부부의 공항 패션은 절실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여행은 현지 술집에서 혀가 꼬일 때까지 마음껏 마시던 축제의 밤으로 기억됐다. 생면부지 외국인과 소변기 하나를 나눠 쓰며 우정을 다지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신발이 한 짝밖에 없었던 그런 경험을 고백했다. “그런 실수담이 차라리 좋아요. 특히 블로그 여행기는 엄숙하거나 진지한 글보다 실수담을 털어놓는 솔직하고 가벼운 글이 인기를 얻습니다. 자신만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일이 중요해요.” 스승의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책 한 권 내기는 어렵지 않겠지만 여행작가에 대한 섣부른 환상을 품는 것은 금물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여행서적 800권 시대, 하루 평균 2.2권이 출간된다. 여행 전문 블로그나 인터넷 여행카페, 독립출판물까지 합하면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여행기를 쓰고 있다. 전문 여행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늘면서 관련 강좌도 인기다. 10일 오후 기자는 인기 여행기 블로거가 한번 돼 보겠다는 각오로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에서 여행작가 이지상 씨(57)를 만났다. ●“여행기 ‘그까이꺼’….” “여행기 ‘그까이꺼’, 달빛 아래 와인 나오는 사진 찍어 놓고 ‘센 강에서 마신 피처럼 붉은 와인은 빨간 혀처럼 나를 휘감았다’, 이렇게 쓰면 되는 거 아냐.” 스스로의 출사표이자 다짐이었다. 이 씨는 2011년부터 이곳에서 ‘여행작가·여행 칼럼니스트 과정’ 강좌를 맡아 300명을 지도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시대 이전부터 배낭여행을 시작한 그는 최근 출간한 개정판 ‘그때, 타이완을 만났다’(알에이치코리아)를 포함해 21권의 여행책을 출간한 배낭여행 1세대다. ‘일일 스승’인 그에게 지난해 봄 두바이 공항에서 쓴 글을 여행기라 주장하며 내밀었다. “공항은 인천도 두바이도 똑같다. 인도인 부부는 우는 어린 아기에게 스마트폰을 쥐어 주었다. 둘러보니 다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다. 출근길 풍경을 여기까지 와서 보다니. … 한국 신혼부부들은 ‘죄다’ 커플룩을 입었다. 남자와 여자가 같은 옷을 입다보니 알록달록한 아동복 천지다. 국제적 망신 아닌가, 강한 규탄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쓰셨네요.” 글을 읽은 스승은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었느냐”며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 쓰셨네요. 사진과 사진설명식 글만 버무리면 여행기라고 생각하는데 큰 착각입니다. 시각 뿐 아니라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특히 블로그에 쓰려면 생동감 있게 써야지 1인칭 관찰자 시점은 아무도 안 읽어요.” 스승은 여러 가지 형태로 써볼 것을 요구했다. 스토리 위주의 일화로 쓰거나 감상을 개성 있는 ‘글발’로 풀어내는 에세이, 구체적인 정보를 담은 가이드북까지 세 형태다. 그는 또 “같은 경험을 묘사할 때도 대화, 독백, 서술 등 다양하게 써보면 실력이 늘기 마련이다. 나중에 여행기를 쓸 때도 단조롭지 않고 재밌게 진행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고쳐 쓰려는 데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팩트가 없으니 원고지를 채울 재간이 없다. 스승은 비기(秘技)를 담은 자신의 노트를 공개했다. ●스승의 노하우 스승은 일단 두꺼운 대학 노트를 반으로 나눠썼다. 앞부분엔 여행지 현장에서 수집한 정보나 있었던 일을 메모한다. 뒷부분엔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현장에서 느낀 섬세한 감성을 기록한다. 이러면 정보와 감상이 뒤죽박죽 섞이지 않는다. 노트에 가계부를 함께 기록해도 좋다. 지출 과정을 적다보면 가장 세밀한 부분까지 기록할 수 있고 여행도 계획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스승은 뜻밖에 ‘여행지에서 어린 아이처럼 좋았던 순간이 언제냐’ ‘가장 절실했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니 두바이 공항에서 만난 세계화된 지구라던가, 신혼부부의 공항 패션은 절실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여행은 현지 술집에서 혀가 꼬일 때까지 마음껏 마시던 축제의 밤으로 기억됐다. 생면부지 외국인과 소변기 하나를 나눠 쓰며 우정을 다지고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니 신발이 한 짝 밖에 없었던 그런 경험을 고백했다. “그런 실수담이 차라리 좋아요. 특히 블로그 여행기는 엄숙하거나 진지한 글보다 실수담을 털어놓는 솔직하고 가벼운 글이 인기를 얻습니다. 자신만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일이 중요해요.” 스승의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책 한 권 내기는 어렵지 않겠지만 여행작가에 대한 섣부른 환상을 품는 것은 금물이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오늘 튼실하게 여문 펑매실을 따고, 안동 소주 넉넉히 따라 부어 매실주를 담그느니, 북녘의 시인이여, 올가을엔 남녘, 북녘 시인 너덧 명, 개다리소반 마주하고 잔을 치켜 올리세, 우리가 이럴 사이가 아닌데, 우리가 이럴 사이가 아닌데……”(이건청 시 ‘매실주를 담그며-북녘의 어느 시인에게’ 중) 최근 한국시인협회가 비무장지대(DMZ) 철책선에 남북시인의 시가 걸리길 기원하며 평화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시집 ‘DMZ, 시인들의 메시지’(문학세계사)를 출간했다. 지난해 봄 고 김종철 전 회장은 시인 124명과 함께 경기 파주시 민간인출입통제선을 넘어 DMZ 일대 주요지역을 답사했다. 김 전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문정희 현 회장과 강은교 김형영 오세영 시인 등 267명이 시를 썼다. 유안진 시인은 ‘DMZ’에서 “넘어가고 넘어오는/산그림자 바람의 그림자도/이 철조망에 걸려서 허리가 꺾어진다”며 분단의 아픔을 표현한다. 허형만 시인은 ‘녹슨 철조망에 달맞이꽃은 기대어 피고’에서 “그러나 우리 슬퍼 말자/그리움은 희망을 낳는 법/손 내밀어 따뜻이 손잡고/발 디뎌 발목이 시리도록 내달릴/그리하여 마침내 어루얼싸 하나가 될/그날이 우레처럼 오리니”라며 희망을 노래한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세상이 날 홀대해도 용서하고 공평무사한 맘으로 대하자,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문득 제 말에 울컥, 자기연민? 세상이 언제 너를 홀대했니? 그냥 네 길을 가, 세상은 원래 공정하지도 무사하지도 않아, 뭔가를 바라지 마, 개떡에 개떡을 얹어주더라도 개떡은 원래 개떡끼리 끈적여야 하니까 넘겨버려”(시 ‘개천은 용의 홈타운’에서) 최정례 시인(60·사진)이 새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창비)을 출간했다. 시인은 1990년 등단해 백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표제시에서 화자는 무더운 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왈칵, 벌컥 화를 쏟아낸다. 시인은 “대학 시간강사 시절 부당한 일을 당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분노를 느낀 기억이 있다”며 “시집에 더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담았다”고 했다. 이번 시집에는 표제시를 비롯해 내러티브, 우화 등 다양한 형태로 불편한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담긴 산문시가 주로 수록됐다. ‘회생’에선 “겨울까지만 좀 기다려 주세요. 노인들이 여름에는 잘 안 죽어요”라며 사람이 죽어야만 빚을 갚을 수 있는 장례식장 주인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쥐들도 할 말은 있다’에선 보석을 돌멩이 취급하는 쥐의 우화로 인간의 욕심을 비꼰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