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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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사이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http://nambuk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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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남북한 관계64%
칼럼23%
경제일반10%
사회일반3%
  • 김정은의 북한, 서방을 향하여 ‘개혁’을 말하다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86)이 16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노동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사진)이 지식기반 경제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경제개혁 사례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 고위 당국자가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포함해 공식석상에서 다른 나라의 경제개혁을 언급한 것은 전례가 없다. 김정일 정권하에서는 북한 관료들이 공식석상에서 개혁이나 개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금기시돼 왔다. 특히 외국 기자들에게 개혁이나 개방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북한의 대외선전 인터넷 매체 ‘우리민족끼리’에 따르면 김정일은 김일성 주석 사후인 1996년 2월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고 발언해 개혁개방에 대한 일각의 희망을 눌러버렸다. 김정일은 이듬해 9월에도 간부들에게 “우리는 절대로 개혁 바람에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 내가 있는 한 절대로 개혁개방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이 나의 확고한 결심이다”고 하는 등 여러 차례 개혁개방에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김정일 사망 후 올 초부터 미세한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올 초 북한 실세 장성택 노동당 부장의 매형인 전영진이 공기업 민영화 등 개혁조치를 성공적으로 추진 중인 쿠바에 대사로 파견됐다. 장 부장의 핵심 측근인 이광근 전 무역상도 북한의 해외투자 유치 창구인 북한 합영투자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다.김정일 사망 후 북한 고위관리로서는 처음으로 외신과 만난 양 부위원장이 개혁을 언급한 것은 북한이 현재의 절박한 경제상황을 탈출할 유일한 방도가 개혁밖에 없음을 시인하고 외부 세계에 변화 의사를 내비친 것이라고 풀이된다. 김일성의 고종사촌 매제로 김정은과는 먼 인척 사이인 양 부위원장은 2010년 10월 AP의 영상부문 계열사인 APTN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북한의 새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정부 관리로는 처음으로 공식 확인하는 등 사실상 북한 정권의 대변인 역할을 해왔다. 헌법상으로 국가 부수반 격인 양 부위원장은 김정일 사망 이후 발표된 장의위원 명단에선 서열 10위에 올랐다. 해외 언론과 접촉해온 북한 고위급 인사로는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앞서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은 12일 북한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을 ‘영 보이(Young Boy)’라고 지칭하며 “북한이 내부 신뢰 구축을 위해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

    • 20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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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이모저모]“술 마시면 기분 좋아지는건 엔도르핀 때문”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만족감과 보상을 관장하는 특정 뇌 부위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제니퍼 미첼 박사는 술을 마시면 뇌의 쾌락 및 보상 중추인 측중격핵과 안와전두피질에서 아편과 비슷한 효과를 일으키는 소단백질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러한 원리는 30년 동안의 동물실험을 근거로 확인된 것이긴 하지만 이번 연구는 사람의 뇌를 직접 관찰해 얻은 결과라는 데 의미가 있다.미첼 박사는 폭음한 사람 13명과 조금만 마신 사람 12명을 대상으로 뇌의 변화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두 그룹 모두 술을 마실수록 측중격핵에서 엔도르핀 분비가 증가하면서 만족감도 높았다. 하지만 안와전두피질에서는 폭음한 경우에만 엔도르핀 증가와 함께 만족감도 높아졌고, 조금 마신 경우에는 엔도르핀이 나오지 않았다. 이는 폭음자 또는 문제성 음주자는 더 많은 쾌락을 얻으려고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며 이들의 뇌 기능도 그런 방향으로 진화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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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스민혁명 촉발’ 튀니지 청년 사망 1주기… 40대 또 분신사망

    ‘재스민혁명’을 촉발한 튀니지 청년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 씨의 사망 1주기에 튀니지 남성 한 명이 실업에 항의하는 분신으로 목숨을 잃었다. AP통신 등은 5일 실업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했던 아마르 가르살라 씨(48)가 9일 숨졌다고 전했다. 세 자녀를 둔 가르살라 씨는 5일 시위대와 함께 튀니지 중서부 가프사 시청 건물 앞에서 이 지역을 방문한 장관 3명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거절당하자 몸에 불을 붙였다. 가프사는 2008년 진 엘아비딘 벤 알리 당시 대통령을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가혹하게 진압된 곳이다. 최근에는 이 지역에서 규모가 제일 큰 공장이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해고하는 바람에 실업자 수가 치솟았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어 현대엔지니어링이 2010년부터 9400만 달러를 들여 이 지역에 새 인산공장을 짓고 있다. 1년 전 부아지지 씨의 분신으로 튀니지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확산돼 벤 알리 당시 대통령이 축출됐다. 튀니지에선 민주화 운동가 출신 몬세프 마르주키 씨가 민주선거를 통해 지난해 12월 대통령에 올랐지만 청년실업률이 30%에 이르는 등 경제 사정은 여전히 열악하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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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시대]北 ‘12월17일生’ 사라진다

    올해부터 북한에선 생일이 12월 17일인 아기가 없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일에 즐겁게 생일을 쇨 수 없어 아기가 태어날 날짜를 미룰 것이기 때문이다.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후에도 7월 8일생이 함께 사라졌다. 그 대신 다음 날인 9일 출생자가 대단히 많다. 전날 태어난 아이들의 생일을 이날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1994년 이전에 태어난 7월 8일생도 생일을 고치겠다고 보안서 주민등록과에 신청하면 별다른 이의 없이 승인해 준다.7월 8일은 북한에서 ‘태양이 떨어진 최대 슬픔의 날’로 간주된다. 이날에는 김 주석 동상을 찾아가 조문을 표해야 하고 웃거나 노래를 부르는 일은 금기시된다. 술을 마셔도 정치적으로 불온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생일파티를 연다는 것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 이 때문에 부모들은 이날에 아기가 태어나면 생일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 설령 생일을 정직하게 신고해도 주민등록과에서 ‘날짜를 다른 날로 바꾸라’고 권고한다고 한다.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북한에 슬픔의 날이 하나 더 추가되면서 12월 17일도 김 주석의 사망일과 비슷하게 취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매년 10만여 명이 슬픔의 날 이틀을 피해 가짜 생일을 쇠게 되는 것이다.한편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당국이 김 위원장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이미 제작 배포된 달력을 모두 회수해 다시 출판하게 됐다고 28일 보도했다. 북한에선 모든 달력을 국가가 연말에 일괄 제작해 주민에게 공급한다.이미 배포된 2012년 달력은 예년처럼 첫 장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김 위원장의 사망일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새로 출간될 달력에는 1월 8일로 알려진 새로운 통치자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생일이 표시될지도 관심사다.한 탈북자는 “새로 달력을 제작하려면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겠지만 김씨 일가의 우상화 문제는 티끌만 한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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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시대]은둔 좋아했던 김정일, 시신 영구보존? 화장?

    북한은 19일 국가장의위원회 공보 형식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알리면서 “김 위원장 시신을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하고 17일부터 29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 시신은 김일성 주석처럼 영구 방부 처리돼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된 뒤 일반에 공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직은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게 아버지의 권위와 효자의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데 의문이 없다. 그렇다고 김 위원장 시신이 영원히 기념궁전에 보존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선 은둔을 선호했던 김 위원장의 성격상 자신의 시신을 일반인이 매일 참관하도록 용납했을지 의문이다. 김 주석 시신의 영구 보존을 결정한 것은 김 위원장이다. ‘영생’을 강조하고 아버지에 대한 주민들의 경외감을 통치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주민의 감정이 좋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는 1983년 자신에게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고 “저건 다 가짜야”라고 말했다고 당시 북한에 납치됐던 신상옥 감독이 증언한 바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오래전에 이미 자신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더구나 근래에 잇따른 독재국가들의 붕괴와 통치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지켜본 그로서는 자신에 대한 후세의 평가를 우려해 생전에 유언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다. 금수산기념궁전이 과거 김 주석의 관저인 주석궁이었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이곳에 아버지와 함께 안치되는 것도 상징성을 중시하는 북한의 시각에선 어색한 일이다. 나아가 과거 사회주의국가들도 레닌이나 마오쩌둥(毛澤東), 호찌민처럼 건국 지도자의 시신만 영구보존 처리했다. 현재 혈통밖에 내세울 것이 없는 후계자 김정은의 처지에서도 경제 재건에 실패한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탈북자단체인 NK지식인연대는 28일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일부 간부들이 충성심을 과시하려 김정일 동상 건설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으나 김정은의 지시로 중단됐다”고 전했다. 북한이 오래전부터 1976년 사망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의 장례 방식을 높이 평가해왔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저우 전 총리는 문화대혁명의 광기가 시작되던 1965년 자신의 시신을 화장해 조국 땅에 뿌리라는 유언을 미리 남겼다. 이후 덩샤오핑(鄧小平) 덩잉차오(鄧潁超) 같은 여러 중국 지도자의 장례도 같은 방식으로 치러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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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시대]김정은, 김정일과 달리 영구차 직접 호위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28일 직접 아버지의 영구차를 호위하며 금수산기념궁전 광장에 나타난 것은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1994년 7월 19일 김일성 주석 영결식 때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위 간부들과 함께 영구를 한 바퀴 돌며 마지막으로 애도를 표했을 뿐 영구차 호위는 하지 않았다.28일 금수산기념궁전 광장에서는 수만 명의 군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이 시작됐다. 김 주석 영결식 당시엔 현재의 금수산기념궁전이 주석궁이었다. 지금 광장이 있는 자리에는 커다란 연못이 자리 잡고 있었다.이 때문에 17년 전 영결식에는 고위 간부들만 선별해 참석했다. 하지만 1998년 주석궁이 김 주석 시신을 안치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확장되면서 궁전 앞에는 김일성광장의 2배나 되는 커다란 광장이 생겼고 이번에도 영결식 군중행사를 할 수 있었다.영구차가 평양시를 도는 코스와 방식은 1994년 김 주석 영결식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김 주석 영결식 때 김일성광장에 영구차가 약 15분 정도 멈춰서 노제를 지냈지만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이는 아버지인 ‘영원한 수령’보다는 장례의 격을 한 단계 낮추기 위한 장치로 풀이된다. 이날 영결식 종료를 알리는 조포와 조총도 21발씩 발사됐다. 김 주석 영결식 때는 24발이 발사됐다.방송 카메라 앞에서 평양 시민들이 도열해 통곡하는 모습도 흡사 17년 전과 유사했다. 하지만 뒷줄에 자리 잡은 사람 중에는 묵묵히 서있거나 주변의 시선을 살피는 장면도 목격돼 전반적인 추모 분위기가 그때보다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1994년에는 한여름이라 군중들의 옷차림이 와이셔츠 위주였다면 이번 영결식 때에는 모두가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있었다. 군중 속에서 비싼 모피코트가 목격되는 등 전반적인 옷차림들이 상당히 고급화돼 보였다.조선중앙TV는 오후 2시경 영결식 방송을 시작해 3시간 동안 중계했다. 김 주석 영결식 때보다 37분이 짧았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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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김정일 영결식… 평양 ‘통곡의 100만 물결’ 비밀은

    평양은 29일 또 한번 전 세계의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에 평양 시민들이 일제히 연도로 나와 ‘거대한 통곡의 물결’을 연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가 김일성종합대 재학 시절이던 1994년 7월 19일 김일성 주석의 영결식을 되돌아봤다. 그날은 오전 2시경 눈을 떴다. 모임 장소에 4시까지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온몸이 납처럼 무겁기 그지없었다. 무려 열이틀간의 애도기간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각종 행사에 시달려 왔고 전날 밤에도 10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도 오늘만 견디면 끝인지라 마지막 힘을 짜냈다. 입맛이 없어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행렬이 흐르고 있다. 그 시간 평양 시민 전체가 거리에 나선 것이다. 웃음도, 이야기도, 소란도 없었다. 그저 그림자의 흐름뿐…. 영결차가 지나갈 메인 거리의 약 200m 바깥쪽엔 벌써 보안원(경찰)과 국가안전보위부원들이 쭉 늘어서 안쪽으로 개미 한 마리 접근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한 시간 넘게 뒷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모임장소에 도착했다. 버스가 다니지 않아 집이 먼 사람은 2, 3시간씩 걸어오기도 했다. 오전 4시가 좀 넘자 조직 책임자가 출석을 불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늘 같은 날 설마 빠지는 사람이 있을라고.’ 5시부터 ‘행사장(연도)’ 입장이 시작됐다. 보위부원이 명단을 들고 이름을 불러 시민증 사진과 얼굴을 비교한 뒤 바리게이트 사이를 한 명씩 통과시킨다. 시민증을 분실한 사람은 전날 임시신분증을 발급받았다. 이것조차 없으면 통과할 수 없다. 바리게이트 양옆에서 날카로운 눈길들이 몸 아래위를 더듬었다. 가방 등 일체의 소지품을 갖고 오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주머니가 불룩하면 소지품을 꺼내 행사가 끝난 뒤 찾아가도록 했다. 평양 시내 곳곳에서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이렇게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듯 한 명씩 거리로 나갔다. 그래도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몸에 밴 ‘1호 행사(김일성 김정일 등장 행사)’ 참가 절차였다. 수령에게 삶과 죽음의 차이는 없었다. 하긴 ‘영생’이라 하지 않았던가. ▼ 영결식 참석자 전원 몸수색… 아무도 불평안해 ▼두 시간여가 지난 뒤 거리 양쪽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무작정 연도로 나가는 게 아니다. 이런 행사 때에는 바로 자기 집 앞에도 나갈 수 없다. 위에서 조직별 인원수를 따져 정교하게 구간을 맡겨주고 모든 시민은 몇 시간 걸어서라도 반드시 자기 구역에 가야 한다. 영결식은 오전 10시에 열리지만 8시쯤 평양은 모든 준비가 끝났다. 거리에 나오면 영결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영구차는 어디를 지나는지 알 수 없다. 그냥 기다릴 뿐이다. 정오경이 되자 한 간부가 뛰어오며 소리쳤다. “곧 영구차가 도착합니다. 자 똑바로 줄을 맞추시오.” 앉아 있거나 묵묵히 서있던 사람들이 부산해졌다. 약 10분 뒤 저 멀리부터 통곡소리가 일어나더니 점점 가까워 왔다. 곧이어 영정을 앞세운 영구차가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시속 약 30km의 속도로 1분도 안돼 우리 앞을 지나갔다. 무덤덤해졌던 감정을 슬픔으로 끌어올릴 사이도 없이 새벽부터 기다린 영결식은 그렇게 순식간에 끝났다. 맨 앞줄에 서있던 교수들은 그 짧은 시간에 땅을 치며 통곡을 시작했다. 담임교수가 두 팔을 높이 들고 “수령님” 하고 목청껏 소리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졸업할 때까지 그 교수만 보면 그 장면이 떠올랐다. 나이 든 교수일수록 더 슬퍼했다. 영구차가 지나간 뒤 수령의 마지막을 떠나보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내가 갑자기 의식돼 주변을 슬그머니 둘러보았다. 그러곤 놀랐다. 몇몇 여학생을 빼고는 젊은 대학생들은 나처럼 울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김일성대 학생인데…. 한국에 온 뒤 당시 평양 시민들의 눈물을 두고 일부 언론이 ‘집단 히스테리’라든가, 보위부의 처벌을 의식한 ‘거짓 눈물’이라고 평가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현장에 있었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영구차가 지나가는 그 순간만큼은 히스테리도, 보위부의 감시도 없었다. 적어도 그 순간 통곡한 평양 시민들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를 보냈다. 내가 현장에서 본 것은 그것이었다. 29일에도 북한 TV는 통곡의 현장을 방영할 것이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1994년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눈물에 담긴 생각도 정말 다양할 것이다. 정말 슬프든가, 살아온 과거가 서럽다든가, 미래가 불안하든가, 분위기에 휩쓸리든가, 눈치가 보이든가…. 어떤 눈물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수십년 신정(神政)체제의 종말에 마지막 눈물 정도야 바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 김정은에게 눈물이 바쳐질 일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1994년 나는 영구차를 지나보내며 “한 시대가 이렇게 눈앞에서 지나가는구나”하고 생각했다. 당시로선 불과 1년 뒤 ‘고난의 행군’으로 시체들이 산야에 뒹굴 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나는 서울에서 북한의 또 한 시대가 지나감을 목도하게 됐다. 눈물 흘리는 북한 주민들을 보면서 저들은 부디 지금보다 더 무서운 내일을 맞지 않게 되기를 기도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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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러 맛에 흠뻑 취해 호화생활… 평양의 ‘애플족’이 떨고있다

    2006년 김영춘 당시 북한군 총참모장(75)의 아들이 공금 8만 달러를 훔쳐 유용한 사실이 적발돼 평양시가 떠들썩했다. 북한에서 8만 달러의 가치는 한국의 수십억 원에 맞먹는다. 더욱 놀랍게도 김영춘의 자녀와 일가친척 20여 명이 모두 군부 외화벌이 기관들의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엄청난 달러를 축적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이 사건을 계기로 김영춘은 2007년 4월 후배인 김격식 대장에게 직책을 물려줬다. 하지만 김영춘은 불과 2년 뒤인 2009년 2월 인민무력부장으로 재기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은 후계구도를 뒷받침할 ‘믿을 맨’으로 그를 지목한 것이다. 김영춘은 이번 장례식에서 김정은의 옆에 서서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체제의 최대 수혜자 ‘애플족’김영춘 아들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오극렬 작전부장, 강석주 외무성 1부상 등 최고 실세의 자녀들이 김정일의 지시로 몽땅 외화벌이 기관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2, 3년 뒤 쫓겨났던 실세의 자녀들이 다시 달러를 주무르는 자리에 모두 복귀했던 것이다.김정일 장례식 때 차수 대장 등 별을 단 실세들은 김정은 앞에서 대를 이어 충성을 맹세했다. 하지만 그 자녀들은 역으로 북한에서 가장 달러 맛에 흠뻑 빠진 계층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사회주의 위업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실제로는 북한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으로 살고 있는 이들은 겉만 빨갛고 속은 하얀 ‘애플(사과)족’이다.애플족은 화려한 출신 성분과 든든한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각종 이권을 주무르는 핵심 직책에 올라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외국산 가전제품으로 가득 찬 호화주택에서 살며 고급 승용차를 타고 외화식당(외화만 받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예쁜 아가씨들을 끼고 외화상점에서 달러를 뿌린다.이들은 외국에 수시로 나가 쇼핑도 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등 해외의 생활형편을 북한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계층이기도 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2006년 “중국 단둥(丹東)에 호화 아파트를 사놓고 신의주를 건너다보며 우유 목욕을 즐기는 북한 부유층이 있다”고 소개한 이들이 바로 애플족이다.이들은 역설적으로 북한 붕괴를 가장 두려워한다. 북한 체제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가장 잘 지킬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이들의 권력과 돈은 아버지의 파워에서 나온다. 일례로 북한에서 대외무역을 하려면 ‘와크’(러시아 대외교역위원회를 의미하는 바트에서 유래)라 불리는 무역허가증이 있어야 한다. 권력을 이용해 취득한 와크를 다른 무역회사에 빌려주면 가만히 앉아서도 거래액의 5% 이상을 로열티로 받아 챙길 수 있다.애플족은 승진하기 위해 뇌물을 싸들고 기웃거리는 간부들에게 다리를 놓아주고 돈을 챙기기도 한다. 특히 군부의 부패가 심각해 장성이 되기 위해선 막대한 뇌물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탈출 시기 저울질하는 애플족거칠 것 없어 보이는 애플족도 가장 두려운 것이 있다. 바로 자신들의 호화생활을 지탱해주는 아버지가 권력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최근 김정은 후계 승계 과정에서 가장 불안에 떠는 사람이 이들 애플족이라고 전했다. 지금 같은 권력 승계 시기에는 아버지가 언제 권력의 정점에서 물러날지 모르기 때문이다.애플족은 서로 교류를 하며 지내기 때문에 친구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남자 중 최고 부자는 간부 인사권을 틀어쥔 실세 중의 실세 이제강 조직지도부 1부부장의 사위인 차철마, 여자 중 최고 부자는 김일철 전 인민무력부장의 딸이 꼽혔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약속이라도 한 듯 이제강은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고, 김일철은 갑자기 모든 직책에서 해임되면서 자녀들의 파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제 북한의 최대 여성 부자로 김영춘의 딸이 떠오르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김정일의 선군정치는 군부 측근들이 충성을 바치고 대신 이권을 묵인 받는 공생관계에서 유지됐다. 김정은 체제에선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선 측근에게 나눠줄 이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북한 실세들은 ‘손에 풀기(권력) 있을 때’ 어떻게든 달러를 챙기기 위해 애쓴다. 고령으로 명예롭게 은퇴하는 형태를 취하면 자녀들의 돈은 고스란히 살아남는다. 하지만 올해 총살된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지난해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총살된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 1997년 총살된 서관히 당 농업담당 비서의 가족처럼 한순간에 민심 수습용 카드로 전락되면 가족까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야 한다.애플족은 1990년대 말 김정일 체제 구축 과정에 ‘심화조’ 사건 등으로 문성술 중앙당 본부당 책임비서, 서윤석 평남도당 책임비서 등 핵심권력층을 포함해 수만 명이 숙청되는 것도 지켜봤다. 이 때문에 일부 애플족은 최악의 순간을 대비해 탈출구까지 마련해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권력 변동기 애플족의 동향이 주목되는 이유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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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시대]권력승계 시기-방식엔 관심없는 北주민들… 그들이 진짜 신경쓰는 10가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국제사회의 시선은 김정은의 권력승계 시기와 방식에 쏠려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런 문제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김정은이 어떤 감투를 쓰든 ‘김씨 왕조’ 통치의 본질은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주민들의 관심은 통치자 추앙 방식이 어떻게 바뀔 것이냐에 쏠려 있다. 사실상 신정(神政)체제인 북한에서 통치자 찬양 의식과 방법은 종교의 교리와 같다. 이는 주민들의 일상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 주민들이 직면한 최대 관심사 10가지를 살펴본다.○ 대장님?… 통치자 호칭으로는 어색북한에선 김일성은 ‘수령님’, 김정일은 ‘장군님’으로 불린다. 김정일 사망 전엔 TV와 방송 등을 통해 매일 수백, 수천 번 ‘장군님’이란 단어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 단어가 이제는 바뀌게 됐다. 지금까지 북한에서는 후계자 김정은을 ‘김정은 동지’ ‘청년장군’ ‘대장동지’ 등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통치자가 된 지금은 이런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동지는 너무 일반적인 호칭이고, 장군님은 아버지가 선점했고, ‘대장님’은 마적단 두목 이미지가 풍긴다. 현재까지 북한 언론은 김정은을 여전히 ‘동지’로 부른다. 새 호칭 만들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김정은 지시도 ‘교시-말씀’ 반열에호칭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선 김일성 김정일의 지시를 가리키는 단어가 따로 존재한다. 김일성의 말은 ‘교시’ 김정일의 말은 ‘말씀’이라고 부른다. 북한은 모든 일을 김 부자의 말에 입각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말’을 의미하는 단어도 매우 중요하다. 어느 종교의식에서든 신의 말씀이 반드시 인용되듯 북한도 모든 회의와 모임 등에서 발언할 때 반드시 교시와 말씀을 먼저 인용해야 한다. 앞으로 김정은의 말도 교시와 말씀의 반열에 올라야 하지만 아직까지 김정은의 말을 의미하는 단어를 어떻게 정할지는 지시가 내려온 바가 없다.○ ‘초상휘장’ 가슴에 모시고 다녀야주민들은 ‘초상휘장(배지)’을 의무적으로 가슴에 ‘모시고’ 다녀야 한다. 김일성 사후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이 같이 붙은 배지가 등장했다. 이는 ‘쌍상’ 또는 ‘겹상’으로 불렸다. 주로 고위 간부가 달고 다녔고 장마당에선 비싸게 거래됐다. 쌍상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머잖아 여기에 김정은 초상이 추가된 배지가 나돌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무실과 가정에 걸린 초상화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김정일 생모) 초상화를 통틀어 ‘3대 장군상’이라고 불린다. 머잖아 김정은 초상화가 추가돼 ‘4대 장군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강제동원의 악몽 되살아나나북한이 김정일의 ‘영생’을 강조함에 따라 ‘영생탑’을 새로 지을지도 관심사다. 김일성 사후 북한 전역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글이 새겨진 영생탑이 경쟁적으로 수천 개나 건설됐다. 간부들은 ‘충성의 돌격대’를 만들어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자재 마련을 빌미로 돈을 뜯어내 착복하기도 했다. 이제 탑을 또 건설한다면 주민들이 기겁할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재의 탑에 한 면은 김일성, 다른 면엔 김정일 이름을 넣으면 해결할 수도 있지만 간부들이 돈을 뜯어낼 수 있는 호재를 그냥 넘길지는 의문이다.○ 내년 1월 8일 ‘선물’ 기대현재 북한은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과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쇠고 있다. 1월 8일로 알려진 김정은 생일도 머지않아 민족 최대의 명절 반열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생일엔 보위부 등 권력기관 산하 직원들에게 쇠고기 통조림 계란 등의 ‘명절 공급’이 있었다. 김정일 생일 때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당장 내년 1월 8일 뭔가 선물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명절이 몇 개 더 늘어날지도 관심사다. 김정일 시대엔 ‘당 중앙위 사업 시작일’(6월 19일), ‘최고사령관 추대일’(12월 24일) 등이 새로 명절로 지정됐다.○ 김정은에게 아버지 동상 필요북한엔 김정일 동상이 비밀장소에만 2, 3개 있다. 노동신문은 25일 “1999년에 동상 건립 계획을 올린 일꾼들에 장군님이 ‘조국통일과 강성대국 건설 생각밖에 없는데 왜 내가 바라지 않는 동상을 세우려 하느냐’고 호되게 질책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위상을 정당성 확립에 최대한 이용해야 하는 김정은에겐 김정일 동상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김일성 동상은 전국 도시 중심부에 있다. 김정일 동상을 세우기에도 최상의 장소인 셈이다. 두 동상을 나란히 놓을지, 마주 보도록 할지 배열 방식도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 전시할 콘텐츠도 없는데…북한의 공장 기업소 학교 등에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 혁명역사연구실이 각각 있다. 교실이 몇 개밖에 없는 시골학교도 가장 좋은 교실 3개에 연구실부터 만들었다. 여기에 김정은 연구실까지 추가하려면 수만 개의 가장 좋은 방을 다시 연구실로 만들어야 한다. 연구실을 꾸리는 데도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벽지 주단 유리 등을 최상급으로 쓰지 않으면 충성심을 의심받기 때문이다. 이 돈도 주민들이 부담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거기에 전시할 콘텐츠 문제가 있다. 김정은에게는 내세울 혁명역사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도자 서적은 필수 학습서선전선동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통치자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책은 매우 중요하다. 출판물의 절반 이상이 이런 책인데, 김일성 김정일 관련 도서는 수천 가지나 된다. 김정일 관련 도서는 그가 후계자 신분이던 1970년대부터 김일성 관련 도서와 같은 반열에 올라 수천 종이 출간됐다. 김정일은 선전이론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논문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했다. 아직 김정은을 선전하는 책은 한 권도 없다. 주민들이 회의 때 김정은 지시를 인용하려 해도 인용할 어록조차 없다. 김정은 관련 첫 서적은 주민들의 필수 학습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헌법 몰라도 ‘10대 원칙’은 알아야북한에서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은 사실상 북한을 통치하는 법이다. 헌법은 몰라도 상관없지만 10대 원칙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원칙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외워야 노동당원이 될 수 있다. 10대 원칙은 모든 항목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김정일 시대까지는 아버지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효력이 있었지만 김정은이 아버지도 아닌 할아버지를 내세우면 고리타분한 느낌을 줄 수 있다. 10대 원칙을 수정할 경우 사실상 북한의 법이 달라진다. 주민들도 분량이 적잖은 10대 원칙을 다시 외워야 한다.○ ‘김정은 동지의 노래’도 등장할 듯북한에서 회의는 일상생활이다. 각종 회의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의례가 김일성 부자 찬양가를 부르는 것이다. 회의 시작 때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노래’를 1절씩 부르고 끝날 때는 또 ‘만수무강 축원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 김정은 등장으로 ‘김정은 동지의 노래’가 언제 나올지, 또 회의할 때마다 노래를 세 곡씩 불러야 하는지도 관심사다. 현재 김일성 초상만 들어가 있는 지폐에 김정일 초상이 들어갈지도 주목된다. 현재 최고액권인 5000원권 위에 김정일 초상이 들어간 1만 원권이 새로 생길 가능성이 높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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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시대]北체제 비웃는 ‘장마당세대’ 김정은 발목잡나

    북한 사회에 김정은 체제가 출범하면서 이른바 ‘장마당세대’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장마당세대는 1990년 이후 출생한 세대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극심한 발육장애를 겪은 젊은이들을 의미한다. 장마당세대의 등장은 북한 체제에 커다란 정치·사회적 변혁을 몰고 와 김정은 체제의 급격한 약화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북한 당국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규정한 내년은 이들 장마당세대가 북한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상징적인 해이기도 하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과 함께 김정일 시대가 열리면서 출생한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내년에 중학교(한국의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하거나 대학에 간다.북한은 20, 30대 때 겪은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혁명세대’를 규정해 왔다. 혁명 1세대는 김 주석과 함께 빨치산 투쟁을 한 세대, 2세대는 6·25전쟁과 전후 복구를 겪은 세대, 3세대는 1970년대 3대 혁명소조운동을 주도한 세대, 4세대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은 세대이다. 김정은 시대 개막과 함께 이제 북한에는 5세대가 등장했다.북한은 1∼4세대와 달리 5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는 공식 발표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장마당세대라고 지칭할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국가의 배급망이 붕괴된 후 태어나 고난의 행군 시절에 부모들이 국가가 아닌 장마당에 전적으로 의지해 먹여 살린 세대다.장마당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급격한 인구 감소와 발육장애이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 대량 아사사태가 발생해 가장 많이 굶어 죽은 연령대가 바로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이들이다.특히 1994년 이후부터는 먹고살기가 힘들어 사회 전반에 출산을 기피하는 풍조가 일었다. 동아일보가 교사 출신 탈북자 등을 인터뷰한 결과 출산 기피 바람은 북한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고 출산율이 1980년대보다 30% 이상 감소했다.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교사 김영란(가명) 씨는 “1996년 둘째를 낳을 때 병원 전체에 산모가 한두 명에 불과했다”며 “이때는 아이를 낳는 여성을 ‘머저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황해북도 사리원 출신의 교사 최미옥(가명) 씨는 “1990년대 중반 학급당 평균 인원이 40명이었지만 2000년대 중반엔 27, 28명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 ‘고난의 행군’ 최대 피해자들… 先軍정치 뒤흔들 ‘태풍의 눈’ ▼○ 매년 1개 군단씩 사라진다특히 인구 감소는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뚜렷했다. 양강도 출신의 문진영(가명) 씨는 “내가 자랄 때는 한 학급이 30명 정도였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7, 8명으로 학급을 구성하기가 불가능했을 정도였다”고 증언했다.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년 중학교 졸업생이 평균 30만 명에 이르렀다. 약 15만 명의 남학생 중 10만 명 정도는 군에 입대해 10년을 복무하고 나머지 5만 명은 대학이나 건설 돌격대, 군수공장 등에 보내졌다. 이에 따라 북한은 120만 명 규모의 군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하지만 1994년 출생자가 군에 입대하는 2012년부터 남학생은 통틀어 10만 명이 채 안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5만 명가량이 줄어듦에 따라 사실상 1개 군단 규모의 인원이 줄어드는 셈이다.북한은 군 입대 인원의 축소를 막기 위해 2000년 초반부터 대졸자의 군 의무 입대, 여성의 군복무 장려 정책을 펴 왔다. 발육 장애로 키가 작은 졸업생이 많아 입대 기준 신장을 145cm로 낮추기도 했다. 2005년 4월부터 “애를 많이 낳는 사람이 애국자”라며 출산을 장려했으나 전혀 먹히지 않았다.사정이 이런 탓에 내년부터는 어떤 대책으로도 병력 부족을 막기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남은 유일한 대안은 여성 군복무 의무화 정도다.군대의 축소는 김정은이 이어받은 아버지의 ‘선군정치’에 심대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선군정치는 군을 전국에 배치해 북한 주민들을 꼼짝 못하게 감시 통제하는 정치다.최근 북한은 북-중 국경에 휴전선과 맞먹는 경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병력을 증강하고 있다. 국경을 봉쇄하려면 10년 전 1개 군단 규모였던 경비대를 최소한 4, 5개 군단으로 늘려야 한다. 이 병력을 채우기 위해 휴전선의 병력을 돌리기도 쉽지 않다.후방의 각 도에 주둔하는 군단은 명색만 군단일 뿐 현역 사단은 1개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매년 1개 군단 규모의 병력이 줄어든다면 북한의 주민 통제망이 갈수록 헐거워지는 위기를 맞게 된다. ○ 혁명성지서 한국 노래 부르는 세대장마당세대의 성향은 어느 세대보다 영악한 ‘배금(拜金)주의’,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조직생활과 통제를 우습게 아는 ‘반항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이전 세대가 배급 의무교육 무상치료 등 국가의 혜택을 체험했다면 이들 세대는 국가에서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다. 학교에서 배우는 ‘당의 사랑과 배려’는 그야말로 책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학교에서 수십 가지 명목으로 매일 수탈을 하기 때문에 돈이 없어 학교 못 가는 아이도 많다. 요즘엔 학급반장도 돈 있는 집 순으로 된다.학교에 가지 않은 대다수 아이들은 장마당에서 부모의 장사를 도우며 돈을 벌었다. 최미옥 씨는 “2005년 학급당 출석률이 58%에 불과했다”며 “중학교 5, 6학년(15∼16세)만 돼도 자기 용돈은 장마당에서 자기가 벌어 쓰는 것이 당연시됐다”고 말했다.강원도 원산 출신 교사 백수진(가명) 씨는 “요즘 아이들은 엄마 배 속에서부터 ‘돈’ 하고 소리치며 빠져나온다고 한탄하는 얘기가 나온다”며 “부모들은 장사를 하느라 자녀에게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도 졸업하면 군에 끌려갈 텐데 그때까지 돈이나 벌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장마당세대는 사실상 ‘수탈자’가 돼 버린 교사를 우습게 여기면서 자라났다. 교권이 약해지니 아이들이 선생에게 대드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학교에 빠지기를 밥 먹듯 하다 보니 조직생활에는 더욱 참여하지 않는다.이런 아이들은 군대에 갈 연령이 되면 어떻게든 징집을 기피하려고 애쓴다. 군에 가서 10년 썩느니 사회에서 10년 동안 장사를 하면 훨씬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군에 가서도 상관의 말에 제대로 복종하지 않고 뇌물을 써서 병영생활에서 빠지는 것을 당연시한다.장마당세대는 최근 급격히 확산된 한류의 가장 큰 전파자이기도 하다. 김영란 씨는 “평양은 물론이고 지방까지 한국 노래와 춤을 안 추면 노래판에 끼지도 못한다.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은 혁명성지인 백두산 답사를 가서도 한국 노래를 부르며 춤판을 펼쳤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대놓고 ‘우리 집안은 얼빤(어리벙벙)해서 한국으로 뛴(탈북한) 사람도 없다’고 푸념했다”고 말했다.북한의 선군정치에는 반항적 기질을 가진 청년들을 군이라는 조직에 묶어 놓고 통제해 사회 안정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장마당세대가 군의 주력으로 부상하면 앞으로 군 자체가 반항적 조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고 장차 김정은 체제의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 201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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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시대]‘김정은式 정치’ 첫 시험대… 장례식 활용술에 성패 달렸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례식은 그의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국정 장악력과 리더십, 카리스마, 선전능력 등을 두루 엿볼 수 있는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이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의 통치력 확립에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에 따라 장차 그의 홀로서기 여부도 가늠할 수 있다.29일까지인 애도 기간이 끝난 뒤 북한 매체들이 ‘추모 행사 뒤에 숨은 이야기’의 형식으로 본격적인 김정은 선전을 쏟아낼 때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19일 김정일 사망 발표 후 21일 현재까지 사흘만 놓고 본다면 정은의 성적표는 ‘낙제’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일 장례가 비교적 무난하게 치러지고는 있지만 새롭거나 독창적인 것은 전혀 없이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모든 장례 의전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김정일이 만들어놓은 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낮 12시에 특별방송을 통해 사망 사실을 알리고 부검 결과까지 공개한 점, 시신을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하고 간부들의 참배를 시작한 점, 웃는 표정의 영정을 공개하고 외부 조문단을 사절하겠다고 밝힌 점을 포함해 전국적인 애도 방식에 이르기까지 1994년 김일성 사망 때와 똑같다.김일성 사망 당시 김정일은 직접 모든 장례 절차를 챙기고 세심하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신을 대성산혁명열사릉이나 김일성광장에 안치하는 게 좋겠다는 부하들의 의견을 거절하고 주석궁을 빈소로 꾸린 뒤 시신을 영구 보존토록 한 것, 엄숙한 표정의 영정을 웃는 표정으로 바꾸게 한 것, 애도 기간을 열흘로 정한 것, 추도가를 바꾸게 한 것 등을 사례로 들 수 있다.이런 과정을 통해 김정일은 여러 가지 정치적 효과를 챙겼다. 김일성 신격화로 자신의 위상을 높였을 뿐 아니라 장례에 ‘영생’이라는 코드를 덧입혀 이후 자신의 통치과정에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또 김일성의 업적을 잇고 발전시키는 데 자신만 한 효자와 충신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동시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내놓아 관철시킴으로써 자신의 비상함과 능력, 카리스마를 선전하는 계기로도 삼았다. 김정일은 장례가 끝난 뒤에도 ‘3년 상’ ‘유훈통치’ ‘주석직 폐지’ 등 예상을 뛰어넘는 독창적 정치 행보로 김일성 사망 이후 자칫 흔들릴 뻔하던 체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권력을 확고히 장악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현재까지 자신을 능력 있는 지도자로 포장할 수 있는 행보를 거의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은이 빈소에서 차례로 고위 간부들을 맞아 ‘충성서약’을 받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한 정도다. 고위 간부들이 자신 앞에 깍듯이 머리 숙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임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이 앞으로도 ‘김정일의 영생과 유훈통치’ ‘3년 상’ 같은 ‘따라쟁이’ 리더십을 보일 경우 가뜩이나 그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불만과 불신이 커질 수 있다.물론 김정은도 김정일이 만들어놓은 장례 매뉴얼을 뛰어넘는 파격 행보를 보일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애도 기간이 끝난 뒤 직접 TV에 출연해 감사를 표명하는 방안도 상상할 수 있다. 문제는 김정일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는 것이다. 개성과 카리스마가 있는 김정은식 리더십을 북한 주민들에게 어떻게 각인시켜 그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는가 하는 것이 김정은이 직면한 숙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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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이후 北, 어디로] 김일성大 출신 주성하 기자가 전망하는 ‘김정은 리더십’

    ‘김정은의 북한’은 ‘김정일의 북한’과 얼마나 다를까. 이를 알려면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을 파악해야 한다. 독재 체제에서는 통치자의 성향과 스타일에 따른 정치행위와 용인술이 국정의 향방, 나아가 국가의 운명까지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김정은 체제가 김정일 체제와 크게 다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나의 정치는 정보정치” 아직까지 김정은이 어떤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할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는 많지 않다. 불과 1년 3개월 전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지금까지 아버지의 현지시찰을 열심히 따라다닌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뒤 북한 소식통들의 전언을 통해 살펴보면 그가 아버지 못지않은 비밀주의와 폐쇄주의를 추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극한 뒤 노동당이나 군부에 앞서 국가안전보위부를 장악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이달 초 보위부에 걸렸던 김정은의 ‘명제판’(김일성 일가의 교시를 적어 벽에 걸어 놓은 글 판)이 철거됐다고 전했다. 이 명제판은 2009년 3월 23일 보위부 청사를 찾은 김정은이 “수령님은 광폭정치를, 장군님은 은덕정치를 펼쳤지만 나의 정치는 정보정치가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는 발언을 딴 것이다. 이 명제판은 김정은 생일인 올해 1월 8일 전국 보위부 간부 방에 설치됐지만 ‘정보정치’가 폭군이나 모략가를 연상케 한다는 의견 때문에 1년도 안 돼 철거됐다. 최근 북한의 전례 없는 국경 봉쇄와 탈북자 사살도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김정은의 젊은 혈기와 즉흥성이 앞으로 북한을 더욱 극단으로 치닫게 할 가능성도 크다. 소식통들은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황장엽 암살단 파견 등 이해하기 어려운 무모한 정책의 배후에 김정은이 있다고 전한다.○ 김정일 통치방식 얼마나 본받나 경험도 적고 나이도 어린 김정은으로서는 당분간 아버지의 통치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북한을 이끌고 갈 가능성이 많다. 더욱이 김정은에게 조언해줄 측근 역시 김정일의 기존 핵심 측근들로 은둔의 정치방식 외엔 보고 들은 것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김정일의 통치 스타일은 △측근 중심의 밀실정치 △‘병 주고 약 주고’ 식의 용인술 △대중 노출을 최소화하는 신비화 전략으로 요약된다. 김정일은 소수의 엘리트그룹에 의존해 정책을 결정하고 자신의 지시를 대부분 노동당 일꾼과의 담화 형식으로 하향 전달했다. 또 마음에 들지 않는 간부는 ‘혁명화’로 한직에 내쳤다가 다시 발탁하고 복종하는 자에겐 선물 공세를 퍼붓는 방식으로 충성심을 이끌어냈다. 대중 앞에 나서길 좋아했던 김일성과는 달리 김정일은 노출을 매우 꺼렸다. 화려하게 포장된 자신의 이미지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을 ‘한없이 자애로운 인민의 어버이’로 끊임없이 주민들을 세뇌시켰다. 김정은의 후계자 공식화 이후 북한 내의 대대적 숙청, 국경을 통한 탈북 단속 강화 등 음울한 소식은 그가 아버지의 스타일을 그대로 배우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아버지 못지않게 콤플렉스가 많은 김정은은 ‘은둔의 욕망’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정은도 ‘새로운 지도자’를 기대하는 북한 주민들의 염원과는 거리가 먼 인물일 수밖에 없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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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시대]김정은 ‘아버지의 유산’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 집중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그가 남긴 인적 물적 ‘유산’들이 어떻게 정리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을 보좌하던 원로그룹, 국내외 재산, 호위부대와 별장 등이 주요 관심사다.○ 제일 먼저 정리될 인물은 누구?‘혁명 선배에 대한 존경’을 중시하는 북한의 특성상 ‘묻지 마’식 고위층 물갈이가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지도부에 80세 이상의 고령 인사가 가득해 인적 쇄신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들이 후계자 김정은의 측근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오극렬 이용무 국방위 부위원장을 퇴진 1순위로 꼽고 있다. 노동당 작전부장이었던 오극렬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정일 유고 시 권력을 장악할 1순위 후보군에 꼽혔지만 이후 김정은에게 작전국의 해외 비자금 줄을 넘겨주지 않으려고 버티다 눈 밖에 나 한직으로 밀려났다. 김영춘 인민무력부장도 곧 권좌에서 내려올 인물로 꼽힌다.김정일도 김일성 사망 후 간부를 대거 물갈이했다. 김정일은 1995년부터 우선 군부와 중앙당의 최고위 핵심 인물들을 퇴진시켰고 두 번째로 경제 및 보안기구, 세 번째로 지방의 도당 책임비서들을 바꾸었다.북한은 고위급 간부를 숙청하면 그의 수족 역할을 했던 아래 간부 수십 명도 함께 숙청한다. 올해 초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 처형될 때 그의 부하 30여 명이 함께 처형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10월 김평해 평안북도 도당 책임비서가 중앙으로 소환된 뒤 평북의 주요 간부는 거의 모두 숙청됐다. 함경북도와 양강도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해외 금고 열쇠는 누구 손에?김정일은 국내외에 막대한 자산을 남기고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김정일의 비자금 관리 담당처인 중앙당 38호, 39호실의 산하 무역회사만 100여 개에 이르며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에 막대한 비자금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오극렬의 해외 비자금 줄부터 빼앗아 오기 위해 애썼던 것을 보면 김정일은 죽는 순간까지 금고 열쇠를 김정은에게 넘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흥미로운 것은 해외에 떠돌고 있는 장남 김정남의 역할. 한 북한 소식통은 “정남이 상당한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각국 독재자의 비참한 최후를 지켜본 김정일이 급변사태에 직면할 경우 일가의 탈출구를 마련할 비밀임무를 김정남에게 맡겼다는 얘기다.실제 김정남은 해외 곳곳에 수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의 사망으로 김정남이 그동안 자신이 관리하던 비자금을 고스란히 김정은에게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정일 호위부대는 해산될까김정일의 호위부대와 별장도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이후 아버지의 호위부대였던 1호위국을 해산했다. 그가 오래전부터 자신의 호위부대인 2호위국을 따로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정은은 독자적 호위부대를 갖고 있지 않다. 그가 고모부 장성택의 입김이 강한 2호위국을 계속 믿을지, 아니면 새로운 부대를 창설할지 주목된다.별장의 경우도 비슷하다. 자기만의 별장을 많이 갖고 있던 김정일은 아버지의 별장을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정은에겐 전용별장이 없어 아버지 별장을 물려받을지, 아니면 자기 별장을 새로 건설할지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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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사망]머리-안경-미소… 영정 사진도 부전자전

    19일 북한 중앙방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사실을 발표하면서 방영한 영정 사진은 북한 주민들도 처음 보는 것이다. 안경을 끼고 약간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환한 미소와 둥근 얼굴 형태를 특히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다.이 사진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 북한이 사용했던 영정 사진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머리 형태, 안경, 시선의 각도, 미소 등이 김 주석 영정 사진을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일명 ‘태양상’으로 지칭되는 김 주석의 영정 사진은 실제 사진이 아닌 초상화로 김 위원장이 직접 하나하나 세심하게 지시해 그린 것이다.김 위원장은 김 주석 사망 직후 기존의 엄숙한 표정의 초상화가 아닌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영정 사진을 바꾸라고 지시했다. “수령님은 죽어서 간 고인이 아니며 우리와 함께 영원히 계신다”는 이른바 ‘영생’의 뜻을 강조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북한 초상화계의 대부 김성민 화백은 김 주석이 1985년 서해갑문을 방문해 웃는 모습의 사진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상을 창조해냈다. 장례 3일째 되는 날 초상화가 완성되자 김 위원장은 이를 오래도록 지켜보다가 “수령님은 웃을 때도 참 미남이다”며 소리 내 크게 웃었다.이 장면이 북한 기록영화를 통해 방영되자 북한 주민들이 “애도 기간에 웃는 주민들을 역적처럼 크게 처벌하면서 어떻게 상주 본인은 저렇게 공공연하게 웃을 수 있냐”며 술렁대기도 했다. 영정 사진의 미소를 ‘태양의 미소’로 지칭한 김 위원장은 김 화백에게 김일성상, 노력영웅, 인민예술가 등 북한 최고의 칭호를 모두 수여했다. 현재 김 화백은 만수대창작사 부사장 겸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으로 있다.북한은 이런 사연이 깃들어 있는 김 주석의 초상화 제작 방식을 김 위원장 영정 사진에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정 사진 역시 김 화백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 사망이 확인되고 공식 발표까지 51시간의 공백 동안 북한은 서둘러 초상화를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김 위원장이 뇌중풍으로 쓰러진 뒤 미리 준비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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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이후 北, 어디로] 김일성大 출신 주성하 기자가 분석한 ‘후계체제 운명’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동시에 북한 지도자가 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나이는 정확히 몇 살인지, 생모는 누군지, 어디서 공부했는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등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김 위원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 나이에 지도자가 된 김정은에 대한 반감도 상당하다.○ 북한 주민, 언제까지 체념 현재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감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체념’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이 2010년 9월 후계자로 공식 발표된 뒤 북한 주민들은 공공연히 3대 세습에 불만을 드러냈다. 특히 어린 나이와 부족한 경험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중국을 방문한 한 북한 간부는 “나이도 어리고 업적도 없는데 어떻게 북한을 이끌겠느냐”고 비난했다. 북-중 국경 일대에 사는 한 주민도 “나라를 이 꼴로 만들고 또 아들까지 시켜먹겠다는 게 염치가 있는 일이냐는 것이 일반적인 민심이다”라고 전했다.군인을 비롯한 젊은 청년들도 “누구는 아버지 잘 만나서 누릴 거 다 누리는데, 난 이게 무슨 꼴인가”라며 김정은을 빗댄 푸념을 늘어놓곤 한다. 세 살에 한시를 쓰고 총을 쐈다는 등의 황당한 우상화 작업도 주민들의 조롱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주의 체제를 경험해보지 못한 북한 주민들은 조직적 저항은 생각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60년 왕조 체제에 갇혀 살아온 한계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최근 들어 기존 간부층을 중심으로 김정은에 대한 반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어 주목된다. 김정은이 아버지의 권력을 하나하나 물려받는 과정에서 세대교체 명목으로 기존 간부층을 과격하게 제거하고 있기 때문이다.짧은 기간에 권력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조급증에 빠져 있는 김정은은 지난 1년간 ‘부정부패를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칼날을 휘둘러왔다. 체제보위의 핵심인 국가안전보위부만 해도 지난해 초 무자비한 숙청이 벌어져 상당수 고위 간부가 총살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올해 초에도 류경 부부장을 비롯해 각 지방 고위 간부들까지 같은 신세가 됐다.해임이나 철직(撤職·처벌 성격의 해임이나 좌천) 같은 방식이 아닌 총살과 수용소행 같은 김정은의 가혹한 숙청 방식에 대다수 간부는 자기 목이 언제 달아날지 몰라 떨고 있는 양상이다.○ 김정은의 유일 자산은 공포정치? 김정일은 1974년 후계자로 공식 발표된 뒤 1994년 통치자로 등극할 때까지 근 20년의 후계자 수업 기간을 거쳤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김정일이 1985년부터 김일성을 제치고 사실상 최고지도자 역할을 했다고 증언했다.그러나 김정은은 후계자로 발표된 뒤 불과 1년 3개월의 짧은 ‘수습’ 기간만 거치고 통치자로 등극하게 됐다. 후계자로 발표되기 전에도 김정일은 중앙당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차곡차곡 통치기반을 다졌지만 김정은은 그런 과정이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했을 때와 현재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경제는 어려워졌지만 대다수 공장과 기업소가 정상적으로 가동됐고 주민들은 월급과 배급으로 생활 유지도 가능했다. 김일성에 대한 지지도 높았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주민들의 거부감도 크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김정은이 물려받은 유산은 △등 돌린 민심 △파탄 난 경제 △무너진 우상화 △구멍 뚫린 정보 통제 △고립된 대외환경 △관리들의 부정부패 △갈수록 충성심이 약해지는 군대로 요약할 수 있다.김정은이 그나마 확실하게 물려받은 유산은 연좌제에 기초한 공포의 독재 시스템과 핵무기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은 이 두 가지 자산을 활용해 체제를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주민들의 반감과 동요를 잠재우기 위한 김정은식 ‘공포정치’가 예상되는 이유다.하지만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북한판 김재규’가 나오거나 대량 탈북사태가 벌어질 개연성이 크다. 공포정치만으로는 현재의 파탄 난 북한을 계속 이끌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체제 개혁을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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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사망]김정일, 열차에서 숨진 것 맞나?

    북한 당국이 공식 발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시점에 김 위원장 전용열차는 평양에 있었던 것으로 한국 정보당국에 파악돼 파장이 예상된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열차에서 사망한 게 아니라 인근 21호 관저에서 사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이 발표한 김 위원장 사망 시점에) 김정일 전용 열차가 평양 용성역에 서 있었다. 김 위원장이 어디에 가려고 (열차에) 탄 상태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여야 의원들이 전했다. 이는 ‘현지지도 도중 달리는 야전열차 안에서 과로로 사망했다’는 19일 북한의 발표 내용과 다르다.또 다른 정보위 소속 의원은 “현재까지 취합된 정보로는 북한 당국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는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원 원장은 이날 “북한 발표를 그대로 믿기는 애매한 대목이 있고 확인해봐야 할 대목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김 위원장의 사망 시점이 북한 발표대로 17일이 아니라 16일 저녁이라는 의혹이 있다’는 질의에는 “확답해 줄 수 없다”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국회 국방위에서 김 위원장 사망 장소에 대해 “여러 상황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전용)열차가 이동한 위치는 알고 있지만 그 열차에 탔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말해 김 위원장이 열차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사망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평소 한미 정보기관의 정찰위성 등을 통해 철저한 감시를 받고 있다. 북한이 아무리 숨기려 해도 열차의 특성상 철로를 벗어날 수 없는 데다 이동할 때 역마다 정차하는 일반 열차와는 달리 다른 열차들을 모두 정차시키고 직행하기 때문이다.▼ 北 ‘인민위해 일하다 사망’으로 포장 시도? ▼용성역이 있는 평양시 변두리의 용성구역에는 김 위원장의 21호 관저가 있다. 용성은 김 위원장 전용열차의 종점이다. 사람이 많이 붐비는 일반 역과 달리 용성역에는 전용열차만 세우는 특별 탑승구역이 따로 있다. 탑승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열차를 산속 터널 속에 정차시키고 있으며 이 터널은 김 위원장의 21호 관저와 지하로 연결돼 있다.21호 관저는 평양 중구역에 있는 창광산 26호 관저와 함께 김 위원장이 가장 선호하는 관저다. 지방 시찰을 위해선 꼭 21호 관저에 먼저 와야 하고 다녀온 뒤에도 이곳에서 여독을 풀기 때문이다. 21호 관저는 평양 노동당 청사와 금수산기념궁전, 인민무력부, 국가안전보위부, 전시최고사령부 등 국가 주요 시설까지 지하로 연결돼 있다.21호 관저를 가본 한 탈북자는 “지상 2층, 지하 3층 구조로 지하 3층은 차량이 도착하는 곳이고 지하 2층에는 수영장, 지하 1층에는 식당과 침실이 있다. 밖에는 골프연습장 등이 있다”고 전했다.김 위원장이 전용열차에서 사망하지 않았을 경우 21호 관저에서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그렇다면 북한은 왜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에서 숨졌다고 전했을까. 이는 김 위원장이 현지지도 과정에서 열차 안에서 숨졌다고 보도하는 게 선전 차원에서 부각시켜온 김 위원장의 이미지와 가장 부합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북한은 1990년대 중반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했던 ‘고난의 행군’ 시절부터 “장군님은 인민을 잘살게 만들기 위해 1년 365일 쪽잠(새우잠)과 줴기밥(주먹밥)을 먹으면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현지지도 길에서 사망했다는 것이 주민들의 존경을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다. 앞으로 김 위원장의 ‘영생’을 부각시키는 데도 유리하다.원 원장은 이날 “중국과 미국, 일본, 러시아 등도 (김 위원장 사망을) 사전에 몰랐던 것 같다. 북한 내부에서도 (대부분) 몰랐다”고 밝혔다. 김정은 후계체제와 관련해서는 “예측할 수 없다.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 신구 세력의 대결로 혼란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며 “공개된 장의위원회 명단의 인사들은 친(親)김정은파로 구세력 인사들은 명단에 없다”고 말했다.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 201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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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사망]김정은 세습 연착륙 내년 2, 3월이 고비… 당분간 고모부 장성택의 ‘섭정’ 불가피

    37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성대국을 여는 해’라고 선언했던 2012년을 눈앞에 두고 급사했다. 이제 최대 관심사는 김 위원장의 3남인 김정은의 후계체제 안착 여부다.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생전에 여동생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과 매제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핵심 실세들을 김정은 주위에 포진시킨 만큼 당장 김정은 후계구도를 뒤흔들 돌발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하지만 김정은이 20대 후반에 불과하고 후계기반이 취약한 만큼 뚜렷한 업적을 내지 못하면 권력이 급속히 와해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애도기간이 끝나고 북한 권력 내부의 유동성이 극대화할 것으로 보이는 내년 2, 3월이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전망된다.○ 김정은 후계의 불안한 앞날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초래된 권력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작업이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북한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 간부 대다수는 김일성 김정일 시대를 거쳐 온 80대 이상 고령이다. 이들이 29세의 후계자와 보조를 맞춰 북한을 통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19일 발표된 장의위원회 명단을 봐도 1∼10위에 오른 인물 중 대다수가 80대 이상의 고령이었다. 김정은과 이영호 총참모장(69), 김영춘 인민무력부장(75)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의 평균 나이는 83.6세로 사실상 김정은과는 두 세대 이상 차이가 난다.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원로 그룹과 김정은의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없어진 상태다.김정은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늙은 간부들을 제거하고 신진 그룹으로 권력지도부를 재편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지방에서는 최근 1, 2년 사이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젊은 간부들을 중용한다’는 명목으로 나이 든 간부들을 마구 숙청하는 바람에 중간급 간부들의 원망이 거센 상태다.대대적인 물갈이 바람은 곧 중앙에도 몰아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장의위원회 명단에 오른 232명 중 3년 뒤엔 적잖은 인물이 권력 무대에서 사라질 것으로 판단된다. 김 위원장의 개인비서이자 네 번째 부인이던 ‘베갯머리 실세’ 김옥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주목된다.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 시절에 권력을 틀어쥐고 각종 이권을 행사하던 기득권층의 반발이 예상된다. 더욱이 국정운영 경험이 없는 김정은이 권력 장악에 실패하거나 내년 강성대국 진입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어린애가 뭘 알겠느냐”는 불신과 냉소도 퍼져 있다고 한다.○ 당분간 장성택이 섭정할 듯북한은 비록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51시간 만에 발표하긴 했지만 그 사이 나름대로 조문 행사를 세심히 준비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발표 때와 여러모로 흡사하지만 전권을 쥔 실세의 입김이 뚜렷이 느껴지고 있다. 김정일 사망 발표문 마련부터 부검 사실 공개, 주민들에 대한 통보 방식, 애도기간 선포 등이 대표적이다.북한에서 이 정도의 결정권을 가진 인물은 김정은과 장성택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김정은이 모든 행사를 총괄하기보다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장례를 직접 치러본 장성택이 뒤에서 모든 장례 절차를 총괄 지휘할 가능성이 높다.김정은으로서도 고모부인 장성택이 가장 믿음직할 것이다. 또 40년 가까이 김정일의 오른팔로 살아오면서 통치 방법부터 시작해 웬만한 간부 개개인별 성향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는 장성택의 화려한 경력은 김정은에게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문제는 장성택의 섭정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에 있다. 장성택이 ‘북한판 수양대군’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그럴 경우 김정은이 과연 장성택을 어떻게 견제할지도 관심사다.김 위원장 생전에 구축해 놓은 노동당과 군부에 대한 통제 시스템이 얼마나 정상적으로 가동할지도 김정은 체제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변수이다. 김정은에 대한 군부 인사들의 충성심이 떨어질 경우 당과 군의 상호감시 시스템이 붕괴돼 통제 불능의 상황에 빠지면 군부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 201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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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사망]“주민들 김일성땐 땅치며 통곡… 이번엔 비교적 차분한 모습”

    오히려 기자가 깜짝 놀랐다. “뭐지. 평양의 저 모습은….”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한국에 최초로 전해진 평양의 모습은 기자가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모습과 너무나 달랐다. 외신들이 보내온 영상 속의 평양은 상상 외로 평온했다.배낭을 메고 가는 여인,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는 남성, 카메라를 힐끗힐끗 돌아보며 가는 사람…. 평양역 앞에는 여느 때처럼 차량들이 오갔고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빼곡했다. 평양에 지국을 두고 있는 일본 교도통신도 “평양시내는 조용하고 평온했다”고 전했다. 평양이 이 정도니 지방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상당수 북한 노동자도 오후 4시까지 근무시간을 채우고 퇴근한 것으로 알려졌다.김일성 주석의 사망 소식이 발표됐던 1994년 7월 9일 기자는 평양에 있었다. 그날의 모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특별방송’을 청취하기 위해 기관별로 모였던 군중은 김 주석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그 자리에서 땅을 치며 통곡했다. 김일성 동상 앞에서 울리는 통곡소리는 평양 시내를 온통 흔들었다.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울음이었다.당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큰 사건 앞에 북한 주민들은 처음에는 어떻게 애도를 표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민족의 전통적인 제사 절차대로 집에서 닭을 잡아 제사상을 준비해 김일성 동상 앞에서 술을 따르며 우는 사람도 많았다.위에서 하달되는 지시도 북한 지도부의 당황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제사상도 허용했고 술도 마시지 말라는 지시가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하듯 슬프다고 저녁에 술을 마셨던 사람들은 뒤늦게 불경죄로 처벌을 받았다.동상 주변에 빙 둘러서 자발적으로 묵념하는 이른바 ‘호상’도 김일성종합대에서 시작된 것을 보고 전국에 따라 배우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영정 사진도 며칠 뒤에는 웃는 사진으로 바뀌었고, 추도가도 전통적인 노래 대신 ‘빨치산 추도가’로 바뀌었다. 이런 우왕좌왕하는 와중에도 대다수 주민은 진심으로 애달파했다.그런데 이번엔 확실히 분위기가 그때와 전혀 달랐다. 19일 오후 북한 매체를 통해 눈물을 흘리는 북한 간부들의 모습과 만수대 김일성 동상 앞에서 조의를 표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방영됐다. 간부들의 모습에선 카메라를 의식한 가식마저 느껴졌다.거리에서 중국중앙(CC)TV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댄 보안원과 여성은 진심으로 슬퍼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만수대 동상 앞에선 한두 명만 무릎을 꿇고 통곡하고 대다수는 서서 머리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1994년 모두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던 그 장소였다. 더구나 앞줄이 아닌 카메라에서 멀리 잡힌 사람들 중엔 무표정한 얼굴도 적지 않았다.이들은 이미 1994년 몇 달 동안 평양에서 조문행사를 경험한 만큼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기자는 적어도 평양에서만은 대성통곡할 줄 알았다. 국가안전보위부가 여전히 눈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다. 물론 여기에는 1994년과 2011년의 다른 상황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북한에는 전국 곳곳에 김일성 동상이 있는 대신 일반에 공개된 김정일 동상은 없다. 마땅히 가서 울 만한 곳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북한 주민들은 만수대 김일성 동상을 찾았다. 하지만 김정일 사망에 김일성 동상 앞에서 운다는 것이 어색할 법도 하다. 그리고 지금은 한겨울이다. 설사 아무리 애통하다 해도 영하의 기온에 오랫동안 떨 수는 없다.탈북자들은 1994년 7월을 떠올리면 매일 아침 동상 앞에 놓을 꽃을 마련하기 위해 산과 들을 헤매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꽃송이 수로 충성심이 평가되던 때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헤매도 꺾어 올 꽃이 없다. 조화가 이를 대신할지는 모르겠다.물론 20일부터는 통곡의 강도가 커질 것이다. 애도 행사가 각 조직과 단위별로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모여서 통곡하면 곡소리는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미 김일성 상을 치러본 경험이 있기에 주민들의 시행착오도 적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장례 의례가 잘 짜여 정교하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추모 요건은 노동당의 지시가 내려오기 전에 흘리는 눈물이어야 했다. 그러나 외신들이 본 평양의 초기 모습은 조용하고 평온했다.북한 당국은 지방 도시들에 군인을 풀어 장마당을 폐쇄한 뒤 주민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주민은 그동안 의존해오던 시장이 폐쇄돼 쌀값이 오를까 봐 더 걱정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향후 김정은의 통치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례다.김 위원장은 김 주석 사망 후 ‘선군정치’를 표방하면서 군에 의지한 통치로 위기를 돌파했다. 김정은은 후계자로 정식 데뷔하기 전부터 보위부 장악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북한은 당면한 위기를 정교한 감시망에 기초한 ‘정보감시통치’로 극복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주민들도 지금 같은 시기에 사소한 잘못이라도 할 경우 가혹한 처벌이 뒤따를 것을 의식해 최대한 몸을 사리고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김정일 애도기간이 끝날 올해 말까지도 북한은 매우 평온해 보일 것이다.그러나 진짜 고비는 북한이 강성대국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하던 내년에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이제부터 국정 실패에 대한 모든 비난의 화살은 김정은에게 쏠릴 것이다. ‘젊은 김정은이 과연 정권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 김정은 통치 아래 나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지금 북한 주민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 질문이 맴돌고 있을 것이다. 그 대답에 북한 주민들의 운명과 한반도의 명운이 걸려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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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치출신 90세 노인, 종신형 받고 감옥행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민간인 3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나치친위대(SS) 출신 노인이 독일과 네덜란드 사법당국의 집요한 추적 끝에 종신형 유죄판결을 받고 90세에 수감생활을 시작했다. 영국 BBC방송은 전 나치친위대의 암살대원이던 하인리히 보어(사진)가 14일 휠체어에 탄 채 양로원에서 감옥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암살대원으로 활동하면서 1944년 12세 아들을 둔 화학자, 반나치 지하조직원, 유대인들을 도와주던 주민을 암살했다. 그는 자신이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으면 상관에게 처벌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그가 자발적으로 활동했다고 판단했다. 2차 대전 직후 포로수용소에 감금됐던 보어는 1947년 독일로 도망쳤고 네덜란드 법원은 1949년 결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했다. 네덜란드 사법당국은 1983년 그의 소재를 찾아내 송환을 요구했지만 독일 당국은 인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7년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나치 전범 추적단체의 집요한 추적 끝에 지난해 죄를 시인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보어는 적절한 시설에서 형기를 채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항소했지만 독일 법원이 14일 기각해 감옥으로 이송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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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인민군까지 마약에 절었다

    북한 인민군이 최근 군(軍)내 마약범죄를 엄중히 경고하는 지침을 내리고 전군을 상대로 교육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 정권의 최후 보루인 인민군에까지 마약이 범람해 당국이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동아일보가 12일 입수한 ‘마약범죄를 무자비하게 짓뭉개 버리자’는 제목의 6쪽 분량 자료는 “최근 사회적으로 마약을 제조하고 밀매, 사용하는 범죄행위들이 나타나고 있다. 군대 내 일부 군관과 종업원, 군 가족들도 마약과 관련한 범죄행위를 하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며 인민군 내 마약범죄 실태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자료는 인민군 총정치국이 작성했다.총정치국은 최근까지 모든 장교와 병사, 군 가족들을 상대로 교육을 실시했다. 대북 소식통은 “현재 북한에는 의약품이 태부족해 민간에는 상비약 진통제 대용으로 마약 복용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인민군은 이를 알면서도 묵과해 왔다”며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인민군 내 마약범죄가 군이 묵인하는 수준을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자료에 나타난 군내 마약범죄 사례들은 충격적이다. 어느 한 부대의 후방 ‘일군’(간부라는 뜻으로 후방 일군은 식량 피복 등을 담당하는 군수담당관)의 경우 3년 전부터 처와 공모해 마약 제조에 쓰이는 여러 가지 기초물질들을 구입해 제조, 밀매했다고 한다. ▼ 마약 권하는 北…“개도 얼음 물고 다닐 판” ▼또 다른 부대 산하 공장의 ‘일군’은 ‘스스로 마약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시도 때도 없이 공장 내 여성 종업원들을 불러다 함께 마약을 사용하게 하고는 ‘불량자적 행위(퇴폐행위)를 하였다’고도 밝히고 있다.군뿐 아니라 민간의 마약범죄 사례도 공개돼 있다. 평남 평성시의 한 주민은 최근 몇 년 동안 막대한 양의 마약주사액을 만들어 병 치료를 원하는 주민들에게 돈을 받고 몰래 팔았다. 또 자료는 ‘평북 곽산군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여러 사람과 함께 마약을 하면서 남조선 영화를 비롯한 불순 녹화물을 보다 적발됐다’고 밝혔다. 양강도의 한 주민은 마약을 살 돈을 얻으려고 전화선 같은 국가통신선을 절단해 밀매하다 적발됐으며 남포에서도 한 마약중독자가 수면제로 사람을 재워놓고 물건을 훔쳤다고도 적혀 있다. 자료는 곳곳에서 마약범죄의 확산을 우려하고 심각성을 경고했다. “집단생활과 사회생활 전반에 해악을 미치며 나라를 망치는 결과까지 가져올 수 있다”며 “옛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에서도 마약범죄가 성행하여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병들고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파괴했다. 이를 바탕으로 반혁명적이고 반사회주의적인 불순 적대세력들이 머리를 쳐들고 준동하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이어 “중국에서는 마약범죄에 대해 극형(사형)까지 적용하고 있으며 마약을 밀매하다 체포된 외국인(필리핀, 일본인)까지 사형에 처했다”면서 “자수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이번 자료를 통해 사상 교양을 중시해 온 북한이 군 장병들에게 내부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마약 차단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군의 마약범죄는 쉽게 막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우선 북한 주민들 사이에 마약이 만연되어 있는 상태이고 북한군이 기본적으로 ‘민가(民家)’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민가 의존형 군대’라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 식량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군인들은 각자 ‘사택’ 또는 ‘아지트’로 불리는 민가들과 교류하지 않으면 영양실조에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민가에 살고 있는 일반 주민들은 군인들이 훔쳐오거나 군인 부모들이 자식에게 보낸 식량, 돈 등을 보관해주면서 군과 공생한다. 북한 인민군의 고참들 중에는 심지어 부대보다는 아예 민가에 가서 지내는 군인도 많다. 이렇다 보니 군인들도 사회에 만연한 마약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또 군 내부의 만연한 마약범죄는 오랫동안 지속돼 온 ‘선군정치’의 해악이기도 하다. 군인들이 외화벌이, 각 지역 출입허가 등 각종 이권을 과도하게 갖다 보니 현금 대용으로 사용되거나 뇌물용으로 각광받는 마약이 군으로 많이 흘러가게 된 것이다. 북-중 국경경비대원 중에도 탈북을 방조해 준 대가로 돈을 받아 마약을 하는 군인이 적지 않다.마지막으로 마약을 하던 청소년들이 점점 더 많이 입대한다는 점도 군내에 마약이 만연하는 큰 이유다. 현재 북한에서 대다수 10대 청소년은 마약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많은 학교에선 마약을 못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왕따를 당하는 지경이라고 탈북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최근엔 마약 강도 절도 등에 연관된 사회적 문제아들을 군에 보내 사상을 교양 개조하라는 김정은의 지시까지 하달돼 불량청소년들이 대거 군에 입대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북한의 마약 남용은 해가 갈수록 점점 용납하기 힘든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희망이 없는 고단한 삶의 탈출구를 마약에서 찾고 있다. ‘얼음(히로뽕의 은어)이 만병통치약이고 배고픔까지 사라지게 해 준다’는 인식까지 퍼져 있다.북한에 일반화된 마약은 ‘얼음’ ‘아이스’ ‘뽕’ 등의 은어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히로뽕)과 아편진이다. 이 중 ‘얼음’의 폐해가 가장 심각하다. 얼음은 1990년대 말부터 민간에 본격적으로 제조방법이 퍼지기 시작해 함흥 평성 지역을 중심으로 대량생산 시스템이 구축됐다. 초기에는 중국 등으로 밀매됐지만 과잉 생산되면서 북한 내부에 퍼져나가 이제는 ‘개도 물고 다닐 지경’으로 흔해졌다. 손님이 오면 담배를 꺼내놓던 접대 문화가 이제는 얼음을 권하는 문화로까지 바뀌고 있다는 증언도 많다.한국에서 10만 원 정도에 거래되는 1회 투약분(0.03g)이 북한에선 한국 돈 기준 600∼800원에 거래된다. 아는 공급처가 있으면 훨씬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 특히 구매력이 있는 간부와 상인 계층의 마약 중독이 심각하며 지역적으로는 밀매 통로가 형성된 북-중 국경 일대에 많이 퍼져 있다. 북-중 국경 일대에는 주민의 70∼80%가 얼음 투약 경험이 있다는 증언도 있다. 최근 탈북한 여러 탈북자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아무리 낮게 잡아도 북한 주민의 20∼30%는 얼음을 흡입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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