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주성하]北 휴대전화 100만 시대… ‘정보’ 열고 돈 챙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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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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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국제부
주성하 국제부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가 100만 명을 넘었다고 북한 내 휴대전화 독점사업자인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텔레콤이 2일 밝혔다. 지난해 초 40만 명이 좀 넘었으니 1년 새 2배 이상으로 성장한 셈이다. 가입자 증가 속도와 북한의 경제수준을 놓고 볼 때 300만 명 돌파까진 무난해 보인다.

이 소식을 듣고 ‘중이 고기에 맛 들이면…’ 하고 시작되는 옛 속담이 떠올랐다. 북한에서 휴대전화가 이처럼 빠르게 확산되는 것은 북한 위정자들이 달러 벌어들이는 맛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다.

100만 명이란 숫자 뒤엔 어마어마한 노다지가 숨겨져 있다. 북한이 가입자에게 약 300달러에 독점 판매하는 중국산 휴대전화는 원가가 80달러 정도밖에 안 된다. 개당 이윤이 220달러, 100만 명이면 2억2000만 달러가 떨어진다. 판매 수익은 고스란히 북한이 갖는다. 요즘엔 터치폰도 보급된다.

휴대전화 부품은 모두 중국산이지만 자판만큼은 철저히 ‘주체형’이다. 차림표(메뉴) 통보문(메시지) 수작식사진기(디지털카메라) 축전기(배터리) 유희(게임) 다매체(멀티미디어) 기억기(메모리) 등 대다수 용어가 북한식으로 표기된다.

북한은 또 가입비 명목으로 140달러를 따로 받는다. 100만 명이면 1억4000만 달러다. 거기에 통신요금도 따로 받는다. 이집트 통신사의 수익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은 휴대전화 사업이 시작된 최근 3년간 주민들의 주머니에서 약 3억 달러를 거둬들였다. 개성공단 8년 동안 남측에서 인건비로 1억8000만 달러를 받았음을 감안할 때 휴대전화 사업은 개성공단 몇 개를 운영해 버는 만큼의 달러를 북한 위정자들에게 안겨주었다.

과거 북한 지배층이 달러를 거둬들이는 방법은 주로 대중을 강제로 동원해 금이나 송이 등을 캐서 국가에 바치게 하는 ‘충성의 외화벌이’ 방식이었다. 그러던 북한 지배층에게 휴대전화 사업은 새로운 노다지 밭이었다.

북한이 인터넷은 금지하면서 휴대전화만 허용한 것은 인터넷의 파급력은 통제할 수 없지만 휴대전화는 통제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거 북한도 비록 인트라넷이긴 하지만 자유게시판이나 채팅을 허용했다. 하지만 2006년 6월 한 사이트 게시판에 “모여서 농구경기를 벌이자”는 글이 오르고 청년 수백 명이 이에 호응해 평양체육관 앞에 나타나는 일이 벌어지자 보위부는 공공기관에서만 사이트와 채팅에 접속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온라인의 위력에 겁을 먹은 것이다.

휴대전화는 군중 동원력은 떨어질지 모르나 북한 상인들에게 타지 가격 동향과 수요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지배층의 주머니가 불룩해지는 것에 비례해 시장화의 흐름은 거세지고 되돌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김정일은 2008년 8월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깨어난 뒤 10년 가까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죽음과 가까워지는 길임을 알면서도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폐쇄경제를 고집하려 한다면 북한 위정자에게 휴대전화는 담배와 같은 자멸의 유혹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개혁으로 가려 한다면 휴대전화는 인프라도 얻고 돈도 챙기는 꿩 먹고 알 먹기 사업이 될 것이다. 휴대전화 확산이 북한 위정자들에게 ‘조금만 인민에게 양보하면 나라 곳곳에서 노다지가 쏟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북한#휴대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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