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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료들은 인천 송도에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진땀을 흘렸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외국인 거주여건과 관련해 “국제기구 직원들이 이용할 병원이 있느냐” “자녀가 다닐 외국인 학교는 있느냐”는 외국인 심사위원의 질문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답은 군색할 수밖에 없었다. 명색이 경제자유구역인데도 송도에는 아직 외국인이 선호할 대형 종합병원이 없다. 외국인 학교도 한 곳뿐이다. 정부가 인천 송도 등 경제자유구역에 투자개방형병원(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 세부 규정이 없어 외국인 투자가들이 병원 설립을 주저하게 만든 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 영리병원을 유치하겠다는 포석이다. 외국인 투자나 해외 의료관광객 유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국내 건강보험 적용은 안 되고 비용이 비싸지만 내국인도 경제자유구역의 영리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김대중 정부는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을 만들고 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했지만 10년간 설립된 사례가 없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외치며 영리병원 허용을 추진했지만 ‘의료민영화’ 논란에 갇혀 답보 상태다. 업종 단체와 일부 시민단체가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의료비가 폭등하고 의료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라거나 “국민건강보험제도가 무너질 것”이라며 영리병원을 반대하고 있다. 전체 병원의 절반 이상이 개인이 운영하는 사실상 영리병원 형태인 현실에서 영리병원을 이념적 논쟁거리로만 몰고 가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영리병원은 병원 형태를 다양화하고 의료서비스 산업을 선진화할 수 있는 기회다.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고 미루기만 할 일이 아니다. 서울시내 대형 병원 한 곳이 고용하는 인원은 의사와 같은 전문 인력부터 식당이나 청소용역과 같은 서비스 인력을 합해 8000∼1만 명에 이른다. 한국은행은 영리병원 도입으로 의료서비스산업 비중이 선진국 수준에 이르면 약 24조 원의 경제적 부가가치와 약 21만 명의 중장기적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건강보험제도와 같은 공적 의료보험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범위내에서 영리병원을 통해 의료서비스 산업을 선진화하는 해법을 찾아낸다면 국가 경제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이념 논쟁에 갇혀 변화 자체를 거부하다 보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싱가포르와 같은 의료서비스 산업 선진국으로 넘어가고 말 것이다.}

서울 소재 대학의 A 교수가 기업들이 입사 시험 응시자들에 대해 어떤 차별을 하는지 연구하기 위해 1900여 장의 가짜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가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A 교수 연구팀은 가짜 주민등록번호와 사진을 이용해 출신 학교, 토익점수, 성별, 군복무 여부 등의 조건을 바꾼 16종의 허위 지원서를 만들어 121개 기업의 올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에 제출했다. A 교수는 경찰 조사에서 “대기업 채용 단계에서 스펙에 따른 차별을 측정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스펙’은 기계장비의 성능 명세서를 뜻하는 영어단어 ‘스페시피케이션(specification)’의 줄임말로 취업에 필요한 자격 조건을 의미한다. 대학생들은 토익점수, 해외연수, 자격증, 봉사활동, 인턴 경험을 흔히 ‘스펙 5종 세트’라고 부르며 대학 학점과 함께 취업난을 돌파하는 만능열쇠쯤으로 여긴다. 한 취업 사이트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 합격자의 평균 토익점수는 852점, 학점은 3.7점, 어학연수 1회, 자격증 1.8개, 인턴 경험 1.1회, 봉사활동 0.9회, 각종 수상 1회인 것으로 나타났다. ▷A 교수는 대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어떤 스펙을 중시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준비했다. 예를 들어 출신 학교와 성별이 같은 조건일 때 토익점수가 서류전형에 미치는 영향을 실제로 검증해 보겠다는 것이다. 스펙 차별이 그만큼 기업 현장에 널리 퍼져 있다는 얘기다. 대선후보들도 “스펙 초월 청년취업센터를 설립하겠다”(박근혜), “스펙 없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문재인), “스펙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안철수)며 비판에 가세하고 있으나 명확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스펙 위주의 채용을 비판만 할 수는 없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학점, 어학능력, 해외연수, 인턴 경험과 같이 오랫동안 쌓아온 성과야말로 지원자를 차별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현실적 근거”라며 “보여주기 식의 스펙은 면접 전형 등을 거치며 걸러지게 된다”고 말했다. 취업 컨설턴트들은 “구직자들이 ‘어떤 일을 하고 싶다’가 아니라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식의 막연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스펙이 취업 문턱을 넘는 도구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구직자의 취업 목표가 직장이 아닌 직업으로 바뀔 때 스펙 차별 논란도 줄어들 것이다.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한국 영화계는 올해 사상 처음 관객 1억 명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영화 ‘도둑들’은 한국 영화 최대 기록인 130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영화인들의 격렬한 반발을 무릅쓰고 연간 146일 이상 한국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는 스크린쿼터를 73일로 줄였다.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 붕괴할 것이라던 한국 영화산업은 오히려 전성기를 맞았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의 단계적 개방을 앞두고는 “일본 ‘왜색(倭色)문화’에 안방을 내준다”는 반대 목소리가 높았지만 빗나간 걱정이었다. 오히려 대중문화계의 위기의식과 자구(自救)노력이 우리 대중문화의 수준 향상과 국제화로 이어졌다. 그 연장선에서 세계를 휩쓰는 한류(韓流)가 나타났다. 우리 국민은 자유무역과 국제 경쟁을 통해 세계에 유례없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시장을 과감하게 열고 세계로 나가 경쟁한 결과다. 국내산업 보호를 내세워 빗장을 걸어 잠그고 안주했다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수출 대기업이나 글로벌 한류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18일 한 토론회의 축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등 독소조항에 대한 우려가 크다. 재협상을 통해 불이익을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수정됐지만 사전 배포된 연설문 초안에는 “한미 FTA 재협상과 개방 제한을 이뤄내겠다”며 “검역 주권을 반드시 회복하고, 쌀 양념채소류 과일 특용작물 축산 등의 품목이 양허(개방) 제외가 되도록 하겠다”는 더 강한 재협상 방안이 담겨 있었다. 문 후보 캠프의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는 몇 가지 독소조항이 있어 반대했고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한미 FTA 반대 태도를 고집하고 있다. 한미 FTA는 문 후보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재임하던 2007년 4월 노무현 정부가 타결했다. ‘노무현 FTA’는 선(善)이고 ‘이명박 FTA’는 악으로 보는 시각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자동차 관세 인하를 양보하고 돼지고기와 의약품 개방 속도를 늦췄다. 자동차 양보는 우리 업계가 동의한 사안이다. 독소조항이라는 ISD는 한국이 체결한 다른 FTA에도 들어 있다.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인 3∼6월 관세가 인하된 자동차부품 섬유 등 수혜품목의 수출은 13.5% 늘었다. 한미 FTA는 우리 산업 경제의 체질과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다. 한미 FTA를 일방적으로 폐기하거나 기존 틀을 깨는 전면 재협상을 하려 들다가는 양국 간 신뢰가 깨지고 호된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국민의 진취성과 도전정신에 찬물을 끼얹는 퇴영적 정치가 한심스럽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소득불평등과 경제력 집중을 문제 삼는 경제민주화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연말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도 여야 공히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대기업 개혁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대기업은 물론이고 노동조합, 관료 같은 기득권의 횡포로 왜곡된 시장질서를 바로잡고 민생을 보호하는 일이다. 대기업이 약자를 압박해 제 잇속만 차리는 약탈적 관행이나 재벌 총수의 불법행위는 설자리가 없어야 한다. 14일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경제의 기득권을 걷어내겠다”며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으로 7가지 재벌개혁 과제를 제시했다. 안 후보는 재벌 총수의 편법 상속,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침해 같은 불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약속했다. 금산분리(金産分離)와 지주회사 규제 강화, 순환출자 금지, 소액주주 보호 대책과 함께 계열분리명령제 도입과 대통령 직속으로 재벌개혁위원회 설치 방안도 제시했다.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재벌개혁 외에도 금융, 노동, 공공개혁 등으로 확장하고 재벌 개혁의 단계적 추진 같은 밑그림을 제시한 점은 타 후보와 다른 점이다. 안 후보는 “재벌 개혁은 기업활동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상당수 공약이 다른 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재탕하거나 과거로 되돌리는 ‘회전문 규제’다. 순환출자는 과거 정부가 총수의 지배력 집중을 견제하기 위해 지분 분산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지분이 줄어든 총수들이 경영권 보호 수단으로 활용했다. 계열분리와 구조조정, 신규투자 과정에서도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됐다. 정부도 이를 조장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지주회사는 1980년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합법화하는 제도라는 이유로 금지됐다가 1999년 순환출자 해소를 명분으로 허용됐다. 하지만 엄격한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금융과 산업이 결합된 대기업집단의 지주회사 전환을 막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금산분리는 국내 자본이 금융기관을 소유할 기회를 제한해 외국 자본의 국내 금융기관 장악과 ‘먹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주회사와 금산분리 규제를 2007년과 2009년 규제 완화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안 후보의 발상은 정책 혼선과 사회적 비용을 키울 수 있다.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금산분리와 지주회사 규제까지 강화하다 보면 기업들의 부담을 키워 소모적인 갈등을 부를 것이다.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해 기업구조의 틀을 다시 짜겠다고 덤비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제를 냉각시켜 서민의 고통이 커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국 월스트리저널(WSJ)은 최근 TV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등 뉴미디어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올가을 들어 18세 이상 TV 시청자가 지난해에 비해 11% 감소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TV의 전성시대는 이대로 끝나는 걸까. 구글은 오히려 TV의 새로운 진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구글 본사에서 구글TV의 아시아 태평양 사업 제휴 책임자로 일하는 미키 김(한국명 김현유·36) 상무는 “인터넷의 방대한 콘텐츠와 접근성, TV의 대중성이 결합하면 새로운 ‘TV 혁명’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글을 포함해 삼성전자 LG전자 소니와 같은 굴지의 전자회사들이 웹과 TV를 결합한 차세대 TV 개발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구글코리아의 ‘독도’ 회의실에서 김 상무를 만났다. 그는 구글이 스마트폰에 이어 차세대 미디어로 밀고 있는 구글TV의 시장 개척을 위해 한국 일본 중국 전자회사와의 제휴를 이끌어 낸 ‘구글TV 연합군’의 산파 역할을 했다. 김 상무는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다. 이제는 TV의 차례”라고 강조했다. ―TV의 새로운 진화가 시작된 건가 “지상파 중심 TV는 1980년대 케이블채널이 등장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CNN, ESPN, HBO처럼 뉴스 스포츠 영화에 특화된 케이블채널이 지상파를 죽일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공존하는 생태계가 형성됐다. 소비자 선택권도 넓어졌다. 이제는 웹에서 온갖 동영상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인터넷, 케이블, 위성방송의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소화하려면 TV가 달라져야 한다. 싸이의 공연을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볼 바에는 대형 스크린에 음질이 뛰어난 스피커가 달린 TV가 낫다. 새로운 TV 생태계를 만들자는 게 구글TV의 아이디어다. 구글의 장기인 검색 알고리즘을 이용해 원하는 콘텐츠를 쉽게 찾아 주고, TV에 맞게 인터넷과 안드로이드 앱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여 주는 플랫폼이다. 예전에는 하고 싶어도 못 했다. 이제는 TV 칩셋과 하드웨어 기술, 인터넷 속도가 개선돼 가능해졌다. TV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구글TV는 웹과 스마트폰의 모바일 생태계를 통합해 TV로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는 차세대 TV 플랫폼이다. 모바일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구글의 인터넷 브라우저 크롬을 쓸 수 있고, 구글의 앱스토어인 ‘구글플레이’에 올라온 동영상 앱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구글TV가 스마트폰처럼 사람들의 태도와 삶까지 바꿀 수 있으리라고 보나. “PC나 모바일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길 기대하진 않는다. 소파에 기대 앉아 방대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TV로 검색해 고화질 영상을 즐기는 ‘린 백(lean back) 경험’을 주자는 것이다. ‘카야킹’ 마니아라면 검색 창에 카야킹을 치고 유튜브, 방송사 등이 올려놓은 카야킹 동영상을 24시간 즐길 수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 동영상이나 실시간 방송 연설도 시청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를 검색하면 신문 콘텐츠 사이트가 아니라 동영상 사이트로 바로 연결된다. 패션쇼를 검색해 보다가 맘에 드는 옷이 있으면 바로 구입하는 일도 가능하다. 리모컨 대신 스마트폰으로 TV를 작동할 수도 있다.” 2010년 구글TV 1.0을 선보인 구글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비지오 등이 파트너로 참가한 구글TV 2.0을 공개했다. LG전자는 5월 미국 시장에 구글TV 플랫폼이 탑재된 제품을 선보였다.소파에 앉아 TV로 멀티 콘텐츠 검색 ―구글이 이달 1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4위로 올라선 힘은 무엇인가. “구글은 경영진이 큰 방향을 정하고 실무진인 매니저에게 권한과 책임을 대폭 이양한다. 실무자가 직접 최고경영자(CEO)에게 보고하고 결재까지 직접 받는다. 한번은 급한 결재를 위해 주차장에서 경영진을 찾아 보고한 적도 있다. 권한과 책임이 있으니 실무자들은 ‘내 일’이라는 주인의식을 갖고 일한다. 에릭 슈밋 회장이 ‘당신들과 같은 똑똑한 사람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격려한다.” 올해 1월 구글 공식 블로그에는 김 상무의 이름으로 구글TV 2.0의 파트너십이 공개됐다. 그는 “이런 중요한 일을 실무자 이름으로 내보내는 것이 구글의 기업문화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구글은 권한과 책임을 주되 성과 평가가 철저하다. ‘마음껏 해봐. 대신 책임져’라는 문화다. 한국에서는 회사에 얼마나 앉아 있느냐는 ‘페이스 타임(face time)’이 중요하다. 구글에서는 언제 출근해 어디서 일하는지를 묻지 않는다. 개를 데리고 와서 일하거나 오후 세 시에 잔디밭에 누워 자거나 운동을 하는 직원도 있다. 업무의 20%까지는 본업 이외의 혁신적인 일을 찾아 해도 된다. 구글의 메일서비스인 지메일도 이렇게 탄생했다. 한국에서는 이를 ‘펀(fun) 경영’이라고만 보는데 실상은 다르다. 업무시간을 쪼개 새로운 일에 투자했을 때도 책임이 따른다. 성과가 없으면 본업에 충실한 사람보다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성과를 내면 합당한 보상을 받고 승진을 한다. 구글러(Googler·구글 직원들)가 스스로 받는 성과 스트레스는 위에서 압박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김 상무는 2007년 입사 이후 신사업 개발과 구글TV 프로젝트를 통해 3만여 명의 구글 직원 중 몇백 명에게 주는 최고경영진 상을 두 번 연속 수상하며 구글TV 아시아 태평양 사업제휴 업무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기업을 따라하는 추격자 전략에서 벗어나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는 말이 많다. “실리콘밸리를 무작정 따라할 필요는 없다. 한국 기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서운 추진력이다. 조직이 결정하면 엄청난 속도로 뛴다. 반면 개인이 뛰어나도 조직과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밑으로부터의 혁신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조직 단위로 일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퇴근도 마음대로 못하고 윗사람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다. 개인에게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줘야 한다. 한국 직장인들도 조직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개인 하나가 작은 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성과를 내서 나의 시가총액을 올리고 나라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강점인 일사불란함과 속도에 미국 실리콘밸리 회사들처럼 밑으로부터의 자발적 혁신이 결합하는 한국형 혁신 모델이 필요하다.” 한국 장점인 추진력에 자발적 혁신 더해야 ―창업 천국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강점은 뭔가. “실리콘밸리는 세계 지도에서 보면 극히 작은 한 점에 불과하지만 구글, 애플, 페이스북, 오라클과 같이 세계 산업을 호령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 실행력, 자본의 삼박자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가진 사업가와 이를 뒷받침하는 투자자가 수시로 만나고 협업하는 공간이 실리콘밸리다. 사업가는 아이디어만 좋으면 밑천이 없어도 투자를 받아 사업을 벌일 수 있다. 망해도 길거리에 나앉지 않는다. 창업과 투자를 통해 번 돈은 벤처캐피털이나 에인절 투자의 형태로 다시 신규 창업자에게로 흘러들어오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창업의 선순환이 일어나려면 한국에선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 “무엇보다 사회적 인식이다. 한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취직하면 다들 부러워하지만 창업을 했다고 하면 ‘얼마나 취직이 어려웠으면…’이라고 혀를 찬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의 가치를 인정해 준다. 떳떳하게 번 돈이면 이를 자랑스러워하고, 다른 사람도 인정해 준다. 한국에선 성공한 창업가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로 숨는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나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등과 같은 롤 모델을 찾기 어렵다. 성공한 창업가가 전면에 나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젊은이들에게 창업의 꿈과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한다.” 김 상무는 올해 ‘꿈을 설계하는 힘’이라는 자전적 스토리를 담은 책을 내놨다. 그는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자랑하려고 책을 낸 건 아니다”라며 “후배들이 꿈을 설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개인적 경험을 나누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꿈의 설계도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의 세 가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지만 ‘세계무대에서 여러 사람을 이어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설계하고 실행하려고 노력했다. 대학 2학년 때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원사 목록을 구해 15개 회사에 ‘인턴으로 일하고 싶다’고 팩스를 보냈다. 이 중 보험사 한 곳에서 답이 왔다. 이렇게 해서 졸업 전까지 4개 회사에서 인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내 전공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대학생들의 질문을 받을 때 가슴이 아프다. 그건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다. 꿈을 향해 가야 할 구체적인 설계도가 없다는 뜻이다.” 성공한 창업가가 창업의 꿈 북돋아줘야 김 상무는 한국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2002년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진학했다. 김 상무는 “삼성전자에 입사해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이스라엘 영업을 맡게 됐을 때 다들 ‘똥 밟았다’고 했다”며 “하지만 부서 규모가 작아 2, 3명이 모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장처럼 일할 수 있었다. 지금 업무에 활용하고 있는 협상 기술도 그때 유대인과의 업무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학을 전공한 ‘토종 한국인’이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한국 출신이라는 점이 차별화된 경쟁력이 됐다. 융합의 시대에는 아시아의 제조 회사들과 실리콘밸리의 소프트 회사들이 만날 수밖에 없다. 한국 문화와 언어를 안다는 게 강점이다. 구글TV 아시아태평양 사업 제휴 업무를 맡게 된 것도 한국 기업이 세계적으로 성장한 덕분이다. 멕시코 출신 동료에게서 ‘너처럼 모국 기업과 함께 일하며 성과도 내고 싶은데 멕시코에는 좋은 기업이 많지 않다. 네가 부럽다’는 말을 듣고 뭉클했다. 한국 청년들이 무대를 크게 봐야 한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할 때 어학 능력보다 의사를 정확하고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더 중요하다. 인도계가 실리콘밸리에서 두각을 보이는 이유는 탄탄한 실력 못지않게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 이수지 씨(34)도 한국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MBA를 마친 뒤 트위터 본사에 한국인 최초로 입사했다. 김 상무는 “요즘 한국의 청년들이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을 한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사회가 아픈 청년을 위로한답시고 더 주눅 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1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구글이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처음으로 뛰어넘어 4위에 올랐다. 모바일과 웹 기반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구글이 PC 기반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MS를 추월한 것은 PC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미국과 영국 언론은 “포스트 PC(PC 이후)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증거” “정보기술(IT)의 중심이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했다. 30년간 IT 업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지키던 MS는 2010년 애플에 추월당한 지 2년 만에 구글에도 밀렸다. MS는 PC 운영체제인 윈도를 기반으로 PC 시대를 이끈 선도자였지만 모바일 체제로의 전환이 더뎌 역전을 허용했다. 구글은 웹 기반의 검색과 광고 사업을 기반으로 모바일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모바일 광고 같은 신사업에 진출해 시장 판도를 바꿨다. 구글의 힘은 숙련된 소프트웨어 인재를 전 세계에서 확보해 모바일로 가는 시장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소프트 파워’에서 나온다. 휴대전화, TV, 자동차와 같은 하드웨어 제품도 소프트웨어의 차이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지는 시대다. 모바일과 웹을 중심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가 사라지는 기술융합도 본격화하고 있다. 세계 시가총액 100대 기업 중 소프트웨어 기업 비중은 최근 20년간 갑절로 늘었다.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지만 소프트웨어는 후진국이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같은 제조회사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IT 강국의 명성은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다. 소프트웨어 산업 경쟁에서 밀려나면 차세대 성장엔진 확보나 청년 일자리 창출도 요원해질 것이다.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영세한 내수 중심의 시장과 낮은 노동생산성을 극복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대다. 2010년 글로벌 500대 IT 소프트웨어 기업 중 한국 회사는 한 곳도 없다. 각 산업에서 소프트웨어를 미국 영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 수준으로 활용하면 GDP가 1.43%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해외에서는 일하기 좋은 기업 상위권에 소프트웨어 회사가 올라가지만 한국은 거꾸로다. 고급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은 모자라고, ‘낮은 처우-우수 학생 기피-교육 부실-산업경쟁력 약화’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산학협력 같은 실용교육을 통해 창의적인 소프트웨어 인재를 길러내야 한국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금융감독원 간부(2급) A 씨는 지난해 3월 퇴직한 다음 날 시중은행 감사로 재취업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B 과장도 지난해 5월 퇴직을 한 지 20일 만에 한 기업체의 고문으로 들어갔다. 여야 의원들이 공개한 최근 2∼4년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의 재취업 실태에서 드러난 사례다. 최근 4년간 금감원 1, 2급 출신 간부 재취업자의 90%가 시중은행 저축은행 증권·보험사 같은 피감기관의 감사 등으로 재취업했다. 공정위의 최근 2년간 4급 이상 퇴직자 중 58%는 대기업 자문역이나 로펌 고문직 등을 얻었다. 문화체육관광부나 교육과학기술부의 퇴직 간부 절반도 유관기관에 들어갔다.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이 퇴직 전 일정 기간 직무와 관련됐던 업체에 퇴직 후 2년간 취업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걸린 기관의 ‘로비 창구’나 ‘방패막이’가 되는 유착을 끊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부 기관은 퇴직을 앞둔 일정 시점에 ‘보직(補職) 세탁’을 해줘 업무 관련성 규정을 피해갔다. 지난해 10월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돼 ‘퇴직 전 3년간’의 직무 관련성을 5년으로 대폭 강화한 것도 이런 꼼수를 막기 위해서다. “지난해 시행된 재취업 규제 강화 이전의 일”이라고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재취업을 심의하는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직무 관련성을 엄정하게 심사하지 않는다면 빠져나갈 구멍이 여전히 많다. 부실 저축은행 감사나 사외이사 중 상당수가 금감원이나 전직 관료 출신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힘 있는 기관의 고위 공직자가 노후보장성 재취업을 염두에 두고 일한다면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민간으로 자리를 옮기면 과거의 부하들을 상전처럼 모셔야 할 판이라 현직에 있을 때부터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대하기 쉽다. 이래서야 공기관의 위계와 지휘감독 체계가 제대로 서기 어렵다. 자신들이 낙하산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는 민간단체나 대기업에 대해서는 함부로 하지 않는 대신, 앞으로 신세질 가능성이 적은 중소기업에는 원리원칙대로 할 소지도 크다. 한국 경제는 과거 관치(官治) 금융과 정경유착을 통해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모델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전현직 공직자들이 전관예우의 관행을 통해 부패와 도덕적 해이의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퇴직 공무원을 통해 유지되는 공생의 부패 고리를 끊지 못하면 ‘시장 실패’보다 폐해가 큰 ‘정부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부당한 정부 개입을 차단하는 일이 진정한 경제민주화로 가는 길이다.}
전직 경제관료와 경제학자, 전현직 언론인 100여 명이 참여하는 건전재정포럼이 26일 창립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 복지 포퓰리즘에 흔들리는 한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남유럽처럼 될 수 있다” “잠재성장률 급감,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포퓰리즘적 공약으로 재정이 위험 상태에 놓였다”…. 정부와 기업에 몸담고 있는 후배들이 제대로 말을 못하니 경제 원로들이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이고 나선 것이다. 강경식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이사장(전 재정경제원 장관 겸 부총리)은 개회사에서 “건전재정 원칙을 고수한 덕분에 1997년 외환위기를 당했을 때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다”며 “재정 건전성은 한 번 무너지면 복원이 어렵다”고 경고했다. 모임 대표를 맡은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창립선언문에서 “정치권은 선심성 복지공약을 남발해 선거에서 이기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축사를 통해 “후배들이 일을 잘못해 선배들이 나서게 됐다. 송구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분위기가 무거웠다. 양극화에 따른 소득격차 해소와 성장동력 확충을 위해 보육과 취업 지원 등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요인 하나만으로도 2050년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수준에 육박하는 128∼13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통일비용까지 감안하면 미래가 두렵다. 정부가 짠 내년도 복지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 원을 넘어섰다. 복지지출은 2005년 처음 50조 원을 넘어선 뒤 8년 만에 갑절로 불었다. 여야가 예산 심의과정에서 경쟁적으로 복지 예산 경쟁을 벌이면 내후년으로 미룬 흑자재정은 물 건너가고 쌀독이 금세 빌 것이다. 건전재정포럼에서 “경기 부양보다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한다” “공약의 재정 부담을 공개해야 한다” “재정준칙을 입법화하자” “50년 미래를 설계하는 장기 재정전략이 필요하다” “예산 실명제를 도입하자” 같은 대안이 제시됐다. 공론화를 거쳐 타당한 내용은 곧장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경제민주화 논쟁에 빌미를 제공한 대기업도 불공정 관행을 혁파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정부가 내년 나라살림 규모를 올해보다 5.3% 늘어난 342조5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균형재정 달성 시기를 2014년으로 한 해 미루고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곳간을 열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전략이다. 경기 침체에 대비해 일자리 예산을 9000억 원 늘어난 10조8000억 원으로 잡은 점이 눈에 띈다. 정부는 재정지원 일자리를 올해보다 2만5000개 많은 58만9000개로 늘리고, 중소기업 인턴 등 청년 일자리를 10만 개 만들겠다고 밝혔다. 내년 일자리 예산 증가율은 8.6%로 총지출 증가율보다 3.3%포인트 높다. 경기 침체로 민간 고용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보고 예산을 늘려 잡은 것이다. 정부가 고용시장 위축에 대비해 일자리 예산을 늘린 것은 긍정적이지만 정조준을 한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이번에도 “취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재정을 풀어 만드는 일자리사업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내년 일자리 예산의 24.8%가 정부 재정으로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 예산이다. 반면에 취업 상담과 지원을 돕는 고용서비스 예산은 4.7%에 불과하다. 공공근로사업과 같이 정부가 만든 일자리는 재정 투입이 끊기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효율성이 떨어지는 정부의 직접 지원 일자리 정책을 줄여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일자리 부족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최소화하고 취업 지원과 일자리 안전망을 확충하는 고용서비스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려나가야 한다. 취업 능력이 없는 고령자 등은 정부 재정을 통한 직접 일자리 지원으로 해결하되 취업 능력이 있는 계층은 취업 지원과 상담 같은 고용서비스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예산을 짜면서 내년 경제성장률을 4%로 상정했다. 국제통화기금(3.9%), 한국개발연구원(3.4%), 한국은행(3.8%)의 전망보다 낙관적인 수치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4% 성장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가 예상보다 성장하지 못하면 세수가 줄고 재정적자 폭이 커질 수 있다. 고용도 위축될 것이다. 내수를 활성화하고 재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동시에 기업 규제 완화가 효과를 내야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빚을 내 무리하게 집을 샀다가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는 이른바 ‘하우스 푸어’ 문제가 발등의 불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은행을 통해 주택대출 원리금을 장기간에 걸쳐 나눠 갚게 해주는 프리 워크아웃(사전 채무조정) 제도를 내놨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도 어제 집 없는 사람이 목돈 없이도 전세를 마련하도록 지원하는 ‘렌트 푸어(저소득층 세입자)’ 대책과 함께 주택 지분 일부를 공적 금융기관에 매각해 주택 대출금을 상환하는 하우스 푸어 대책을 대선 1호 공약으로 발표했다.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가계부채 부실의 뇌관인 하우스 푸어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공공자금을 투입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벌써부터 “집 가진 사람들의 투자 실패를 사회에 전가한다” “집 없는 서민과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반발이 나온다. 하우스 푸어 가운데 저소득층인 소득 1분위 가구는 4.6%에 불과하다. 상당수는 과거 부동산 호황기에 집값 상승을 내다보고 소득에 비해 무리하게 빚을 내 부동산에 투자한 중산층 이상 가구다. 서울 강남 지역과 같이 부동산 거품이 심했던 지역에서는 실거주자와 소유자가 많이 달라 투기 목적의 부동산 구입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부동산값이 상승했다면 이들이 벌어들인 소득을 사회에 환원했을지 물어야 할 판이다. 단기 실적을 올리기에 급급해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을 키운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무리하게 대출을 늘려 수익을 내고 성과급 잔치를 벌이다가 부실이 터지면 공적자금으로 때우는 악순환이 반복돼선 곤란하다. 공공자금 지원을 입에 올리기 전에 은행과 개인이 시장의 틀 안에서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분담한다는 전제 아래 해법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우스 푸어 문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금융당국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하우스 푸어의 규모와 분담 능력, 차입 실태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정교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경기가 출렁거릴 때마다 대출자의 부담을 키우는 변동금리 방식의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로 서둘러 바꿔야 한다. 핵가족화로 1인 가구가 늘고 있다. 부동산시장 변화에 맞게 저소득층 세입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주택 정책이 필요하다. 주택금융 시장의 체질 개선과 집 없는 서민을 위한 획기적인 주택 정책이 함께 나와야 하우스 푸어 문제가 연착륙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어제 한국 경제 연례 협의보고서에서 ‘선별적 복지 확대’와 ‘넓은 세원(稅源)’을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IMF는 1997년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에 내몰려 국제적 신인도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부족한 달러를 빌려주고 경제의 체질 개혁을 이끌었던 국제기구다. 한국 경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조언하는 위치에 있는 IMF의 권고를 허술히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양극화 해소와 성장 동력 강화를 위한 복지 지출은 불가피하다. 한국의 복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못 미치지만 인구 고령화로 부담이 계속 늘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라곳간을 함부로 열 수 없다. 소득 격차 해소와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해 보육이나 직업 교육같이 꼭 필요한 분야에 선별적으로 물샐틈없이 돈을 써야 한다. 한국의 담세율(擔稅率)은 22%로 OECD 국가 중에서 낮은 편이다. 저성장 속에서 세금을 내는 사람만 내고, 보편적 복지제도를 통해 국민 모두가 정부에 기대기 시작하면 쌀독이 비는 건 순식간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닥칠지도 모르는 통일은 엄청난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여야 정치권의 복지공약을 모두 이행하기 위해 재정지출이 급증하면 2050년 국가채무비율이 남유럽 수준을 넘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160%에 이를 것으로 조세연구원은 예측했다. 무분별한 복지 남발은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행위다. 대선후보와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복지 공약을 남발할 게 아니라 줄어드는 쌀독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정치권의 복지 공약이 중장기 재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재원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투명하고 객관적인 감시체계를 다듬어야 한다. 전직 경제관료와 경제학자, 언론인 등 100여 명이 참여하는 건전재정포럼이 출범했다. 김영삼 정부 이후 나라 살림살이를 맡았던 인사들이 정파를 떠나 함께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은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정치권에서 인기영합적인 ‘재정 포퓰리즘’이 쏟아지고 있지만 재정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다”고 우려했다. 심도 있는 연구와 토론을 통해 정치권의 무분별한 복지 공약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하는 나라다. 저(低)출산으로 2017년부터 생산가능 인구(15∼64세)가 줄기 시작해 2030년이 되면 280만 명의 노동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평균 수명은 꾸준히 늘어 2040년 한국 인구의 중간 나이는 52.6세로 세계 최고의 ‘노인 나라’가 된다. 현재는 생산가능 인구 100명당 부양해야 할 노인이 16명에 불과하지만 2060년에는 80명으로 늘어난다. 노인 부양을 떠맡게 되는 젊은 세대는 등골이 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0.7세다. 국민 10명 중 약 7명이 ‘70세는 넘어야 노인’이라고 생각할 만큼 노인 기준이 높아졌다. 하지만 노인복지법은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본다. 19세기 말 평균 수명 49세 정도였던 독일의 노령연금 수급 연령 기준(65세)을 지금까지 빌려 쓰다 보니 ‘젊은 노인’을 양산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평균 53세에 퇴직을 한다. 한창 일할 나이에 학교 경비나 청소 용역과 같은 비정규직을 전전하거나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뒤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65세 이상의 빈곤율이 4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1%)을 크게 웃돌고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중장기 적정인구 관리방안 중간보고서에서 노인 기준 연령을 70세 이상으로 올려 잡고 정년제 폐지를 제안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는 방향이다. 미국과 호주는 일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 사람을 나이 기준으로 내보내는 정년제를 ‘연령차별(age discrimination)’로 보고 금지한다. 영국 프랑스 일본과 같은 선진국들은 정년 이후 수입이 끊기는 ‘소득 절벽’을 피하기 위해 정년과 연금 수급연령을 일치시키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이 고령사회로 진입하면 정년 연장, 재고용, 정년 폐지 같은 정책이 불가피하다. 생산성과 고용 유연성에 대한 노사정(勞使政) 합의가 중요하다. 직무가 아닌 연공서열 임금 체계에서는 50대의 임금이 신입사원의 2∼3배에 이른다. 생산성과 무관하게 임금을 유지하면서 정년만 늘려 달라고 하면 기업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임금을 적게 받는 방향으로 정년 연장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70세에 반값 임금을 받더라도 능력껏 일하는 노년이 더 행복할 것이다. 기업이 숙련도와 충성도가 높은 고령자를 상대적으로 낮은 값에 고용한다면 경영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다.}

혹한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고 유빙이 떠다니는 북극은 1909년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가 걸어서 북극점을 밟기 전까지만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였다. 쉰셋의 피어리는 북극점을 정복한 감격에 겨워 “정복됨을 슬퍼하지 말라. 북극점이여,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려다오”라고 외쳤다. 한국 원정대도 1991년 세계에서 11번째로 북극점을 밟았다. ▷북극은 북극해를 포함한 북위 66.56도 이북 지역을 말한다. 면적은 지구 표면의 약 6%에 해당하는 2100만 km²에 이른다. 북위 90도의 북극점을 중심으로 약 1400만 km²의 얼음바다인 북극해가 펼쳐져 있다. 동토(凍土)와 얼음바다뿐인 북극은 접근이 어려워 과학연구나 탐험 목적 외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가 북극의 운명을 바꿨다. 얼음이 녹으면서 개발비용이 뚝 떨어졌다. 북극은 탐험 시대에서 개발 시대로 접어들었다. 광대한 시베리아를 거느린 러시아, 알래스카의 미국, 캐나다, 그린란드가 북극 해빙(解氷)의 최대 수혜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북극지역에 전 세계 미(未)발견 석유와 가스의 22%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2009년 덴마크에서 분리돼 자치정부를 수립한 그린란드는 국토의 80% 이상이 빙하로 덮여 있지만 최근 남서부 지역에서 농사를 지을 정도로 따뜻해졌다. 이곳에는 석유 외에도 세계 수요의 25%를 충당할 희토류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극해의 얼음이 사라지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새로운 바닷길도 열린다. 북극 항로는 기존 인도양 항로보다 40%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러시아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극해 인접 5개국은 2008년 그린란드 일룰리사트에서 북극해의 권리를 자신들이 보유한다고 선언했다. 일본 영국 중국도 북극 자원개발에 나섰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그린란드를 공식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9일 “그린란드의 ‘그린(녹색)’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경제개발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자원개발의 물꼬를 텄다.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협력대사를 지낸 신재현 변호사는 “지난해 그린란드를 방문했는데 선진국은 물론이고 말레이시아 에너지기업까지 진출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한국 기업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뜻한 북극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일본은 오랜 기간 한국 경제의 ‘페이스메이커’였다. 페이스메이커는 마라톤에서 동료의 기록 단축을 위해 함께 뛰는 조력자다. 한국은 “잘살아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웃 나라 일본을 맹추격해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반도체, TV,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이미 전자왕국 일본을 따라잡았다. 최근 국가 신용등급도 사상 처음 일본과 같은 반열인 ‘Aa3’로 올랐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올림픽 성적에서 일본을 앞질렀다. 일본과 거리가 좁혀질수록 고민도 깊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을 따라가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앞장서 길을 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에서는 “이제는 글로벌 기업이나 선진국을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재빠른 추격자)’ 전략이 아니라 우리만의 콘텐츠로 승부를 거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발자)’가 돼야 한다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경영컨설턴트 피터 언더우드는 그의 책 ‘퍼스트 무버’에서 “퍼스트 무버의 핵심은 창의성인데 창의성은 도전정신에서 출발한다. 이 점에서 일본은 빵점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중국의 한자를 가져다가 문자로 만들고, 인도 카레를 카레라이스로 바꿨지만 스스로 한자와 카레를 개발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모방과 개선’의 천재 일본이 더는 한국의 페이스메이커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처럼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맨땅에 헤딩’하듯 새로운 분야만 기웃거린다고 해서 성공한 선발자가 될 수는 없다. 경영학에서는 ‘선발자의 이익’으로 기술 자원 고객의 선점을 꼽지만 시장 개척에 따르는 실패 위험과 후발자 무임승차와 같은 ‘선발자의 불이익’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한국형 퍼스트 무버의 제1조건은 우리 속에 내재된 창조혁신 DNA의 발현이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자(製字)원리를 갖고 있는 한글을 창조한 민족이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세계 각국 문자를 연구하고 우리만의 혁신적 상품인 한글을 창제해 사람들의 행동까지 성공적으로 바꿨다. 제2조건은 시장 판도를 바꾸는 미국식 시스템적 사고다. 에디슨이 위대한 혁신가인 이유는 전구가 아니라 전구의 상업적 사용이 가능한 전력 인프라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애플의 히트작 중 원조는 거의 없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까지 창의적으로 활용해 게임의 룰을 바꿨을 뿐이다. 한국이 처음 개발한 MP3를 음악듣기 서비스(아이튠스)를 결합한 아이팟으로 내놓아 판을 바꿨다. 복사기회사 제록스의 그래픽모드에 착안해 매킨토시 컴퓨터 운영체제를 디자인했고, 미국의 팜과 림이 개념을 잡은 스마트폰을 아이폰으로 만들어 성공시켰다. 제3조건은 개방과 협력이다. 1990년대 “왜색문화로 도배될 것”이라는 반발에도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빗장을 과감히 열었다. 지금은 일본이 한국 드라마, 케이팝(K-pop)의 최대 시장이 됐다. 자유무역협정(FTA)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며 활력을 잃었으나 부품소재 산업은 여전히 세계 최고다. 대일 무역적자의 80%가 여기서 나온다. 이기동 한일경상학회장(계명대 교수)은 “일본 기업의 투자 유치와 같은 경제 협력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한강의 기적’에서 보여준 기업가 정신이다. 폐선(廢船)을 바다에 가라앉혀 방조제 공기(工期)를 앞당긴 ‘정주영식 물막이 공법’이나 리비아의 국토를 바꾼 대수로 사업과 같은 극한상황 속의 도전이 혁신과 창조를 만들어낸다. 한국형 퍼스트 무버를 굳이 정의하자면 ‘패스트 무버(패스트 팔로어+퍼스트 무버)’쯤 될 것이다.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금융감독원은 2009년 7월 이후 신한, KB국민, 하나, 외환, 스탠다드차타드(SC) 등 5개 은행 직원 124명이 고객 계좌를 9295차례 무단열람해 적발됐다고 밝혔다. 대부분이 “돈을 빌려간 친구가 제때 갚지 않는다”는 지인의 부탁을 들어 주거나 예금 유치를 위해 고객 계좌를 거리낌 없이 훔쳐봤다. 은행 직원의 계좌 무단열람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된다. 금융실명제법은 금융회사 직원이 고객 동의를 받지 않고 금융거래 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은행 직원이 정실에 얽매여 직업윤리를 저버리고 계좌를 열람한 일은 명백한 불법행위다. 금감원은 최근 신한은행 직원들이 2010년 지주회사의 사외이사까지 지낸 재일교포 주주와 가족의 계좌를 열람한 사실을 확인하고 진상 조사에 나섰다. 이번 일과 관련해 2010년 이른바 ‘신한사태’ 때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이백순 신한은행장 측이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 진영의 약점을 캐기 위해 은행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내부 싸움하느라 이런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신한은행의 신뢰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신용정보보호법은 금융거래 등 상거래 관계의 설정 및 유지 여부 등을 판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 신용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영업상 필요하면 언제든지 고객의 계좌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백지위임한 조항이 아니다. 신한은행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 내부 검사 목적, 은행 직원의 고객관리 목적 용도로 계좌를 열람했다”고 주장했지만 금융당국은 계좌 열람의 위법성과 조직적 개입 여부를 밝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고객의 계좌를 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마음대로 들여다보는 은행에 돈을 맡길 고객은 없다. 다른 금융회사들은 “우리는 고객 계좌를 절대 훔쳐보지 않는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금융회사가 무분별하게 고객 계좌를 열람하는 일을 최소화해야 신용경제의 질서가 바로 선다. 금융거래의 비밀 보장은 신용경제를 지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금융실명제법은 금융거래 정보 제공 요건을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경우나 과세와 국정조사 등의 목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마구잡이 계좌 열람과 추적을 허용하면 금융거래 비밀 보장은 불가능해진다. 국회는 정부기관이 수사와 행정 편의를 위해 무분별하게 요구하는 계좌추적권을 허용해선 안 된다.}

1980년 한국은 514만 대의 흑백TV를 해외에 수출했다. 흑백TV 수출 13년 만에 세계 시장 점유율 21%를 차지해 일본과 대만을 누르고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 수출량은 많았지만 정작 한국 기업에 들어온 돈은 적었다. 50달러(당시 돈 3만5000원)짜리 흑백TV 1대를 수출해 고작 1달러를 남겼다. 수출 상품 대부분이 미국 일본 기업의 이름을 빌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수출돼 제값을 받을 수 없었다. 한국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무명(無名) 브랜드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영국 브랜드 컨설팅회사인 브랜드파이낸스가 세계 500대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삼성이 지난해 18위에서 올해 6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삼성의 올해 브랜드 가치 평가액은 381억9700만 달러였다. 삼성의 뒤를 이어 미국의 간판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과 코카콜라가 7, 8위를 차지한 것도 눈길을 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세계 시장에서 이름조차 내밀지 못했던 삼성이 내로라하는 글로벌 브랜드를 제친 것이다. 10대 브랜드 가운데 삼성과 9위에 오른 영국 보다폰을 제외하면 모두 미국 기업이다. ▷세계 최초의 브랜드 회사인 ‘랜도어소시에이츠’의 창립자 월터 랜도는 “제품은 공장에서 만들어지지만 브랜드는 고객 마음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기업 브랜드를 소비자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제품과 기술력 외에도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흘린 엄청난 땀과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삼성과 같은 기업 브랜드 가치는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2000년대 중반 핀란드 휴대전화 회사 노키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사업 초기에 세계 시장에서 일본 브랜드로 오해받았지만 적극 부인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전자산업 강국인 일본이 구축한 국가 브랜드에 슬쩍 올라탄 것이다. 브랜드에 국가 이미지가 투영되는 ‘원산지 효과(country of origin effect)’를 고려한 전략이었다. 특정 국가와 특정 산업의 연관성이 클수록 원산지 효과는 더 커진다. 국가 이미지가 나쁘면 거꾸로 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기업이 한국 브랜드를 끌어왔다. 이제는 국격(國格)과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여 기업 경영에 도움을 줄 때다.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대기업들이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직면해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25개 그룹 중 92%가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유로존 위기와 세계 경기 침체로 수출과 내수 시장의 동반 부진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실물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인다. 기업의 위기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못지않다. 지난달 수출 실적은 2009년 10월 이후 감소 폭이 가장 컸다. 6월 소매 판매도 전달보다 0.5% 감소했다. 올해 2분기(4∼6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0.4% 성장에 그쳤다. 3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까지 전망하는 예측도 있다. 전자와 자동차 업종의 높은 실적이 주는 착시(錯視) 효과에 현혹돼선 안 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제외한 129개 상장사의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4.6% 줄었다. 전경련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80%는 내년 하반기 이후까지 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당장은 투자와 채용을 유지하겠다는 기업이 많지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건설 금융 조선업계는 이미 자산 매각과 인력 감축에 들어갔다. 일본 전자회사 샤프는 종신 고용의 100년 전통까지 무너뜨리며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 경기 침체는 소득 감소와 일자리 축소로 이어져 위기의 골을 더 깊게 한다. 노사정(勞使政)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경제에 전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올해 2%대 성장에 머물고 경제위기가 내년 이후까지 장기화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내다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은 911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다. 경기 침체로 ‘자산 가격 하락-부채 증가-금융기관 위기 전이-재정 악화’의 악순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선제적인 정책 카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GDP의 34%에 이르는 국가 채무와 5분기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단기외채가 더 늘어나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관리할 때다. 경제위기와 맞물려 해외시장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각국의 직간접 견제가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당국은 한국 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각국의 통상 보호주의 조치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창업 기업의 등용문인 코스닥시장에서 20, 30대의 젊은 최고경영자(CEO)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 코스닥 상장 법인의 30대 이하 CEO 비율은 2002년 12.6%에서 올해 3.6%로 하락했다. 20대 CEO는 없다. 기업을 주식시장에 공개하고 자본을 조달할 만큼 성공한 젊은 창업가의 맥이 끊기면 산업은 고령화하고 퇴보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1977∼2005년 신생 기업이 설립 첫해 연평균 3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 기존 기업에서 사라진 수많은 일자리를 대신했다. 미국 하버드대 기숙사에서 창업해 8년 만인 올해 페이스북을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 마크 저커버그(28)와 같은 젊은 벤처기업가의 성공신화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2000년대 초반 ‘닷컴 거품’ 붕괴 이후 젊은이의 기업가정신과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크게 위축됐다. 공무원 공채 경쟁률이 2001년 40 대 1에서 지난해 93 대 1로 상승한 반면 청년층 자영업 비중은 2002∼2010년 연평균 0.2%포인트 줄었다. 30대 이하 청년창업가들의 모임인 실크로드CEO포럼 변희재 회장은 “정부의 인위적 부양 정책과 정보기술(IT) 투자 덕에 성장한 386 벤처 1세대가 독점 행태를 보이며 개인화, 파편화한 2030세대가 들어설 자리를 막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젊은이들이 도전과 기업가 정신을 키울 수 있도록 창업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일이 급선무다. 기술과 혁신으로 무장한 젊은 벤처기업인을 우대하고 일정 기간 고용을 유지하는 회사는 과감하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 벤처캐피털도 늘어나야 한다. 벤처 1세대는 노하우를 후속 세대에게 전수하고 벤처 생태계를 키워 가는 공생(共生) 의지를 보여 줘야 한다.}

와인 전문가들은 세계 최고 와인으로 ‘부르고뉴의 전설’ ‘신의 물방울’로 불리는 ‘로마네콩티’를 꼽는다. 로마네콩티는 프랑스 부르고뉴 본 로마네 마을의 석회질 포도밭에서 유기농으로 재배된 50년 이상 된 피노누아르 포도나무 열매를 150년 이상 된 나무로 만든 오크통에서 숙성해 만든다. 연간 생산량이 6000병을 넘지 않는다. 생산연도에 따라 값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른다. ▷지난해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고액 진료 논란을 빚었던 피부과 원장 김모 씨가 오리온그룹에 “세무조사를 무마해 주겠다”며 청탁 용도로 쓸 로마네콩티를 요구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로마네콩티가 뇌물성 선물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오베르 드 빌렌 ‘도멘 드 라 로마네콩티(DRC)’ 사장이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년 전만 해도 로마네콩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구입자였지만 지금은 마셔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뇌물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거래다. 이브가 아담에게 건넨 사과가 뇌물의 시작이라는 관점도 있다. 우리 역사에는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를 탈출하기 위해 보장왕 측근에게 청포(靑布)를 건넸고, 고려의 세도가 이자겸의 집에 뇌물성 선물로 들어온 고기 수만 근이 썩어갔다는 기록이 있다. 2010년 뇌물 수수 혐의를 받은 이대엽 전 성남시장의 집에서 외화 뭉칫돈과 함께 포장도 뜯지 않은 고급 넥타이 300여 개와 명품 가방 30여 개, 1200만 원 상당의 양주 ‘로열살루트 50년산’, 400만 원 상당의 ‘루이13세’ 코냑 등이 나와 검찰 수사관을 놀라게 했다. ▷미국 법조인 출신 법학자 존 누넌은 저서 ‘뇌물의 역사’에서 뇌물을 마술(魔術)에 비유했다. 뇌물을 받은 사람이 정신적 포로가 돼서 안 되는 일을 되게 하고 자신의 행위를 감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이다. 사적 관계를 중시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이나 관료의 영향력이 큰 나라일수록 뇌물이 성행한다. 뇌물의 이익이 ‘뇌물에 따른 처벌×적발 확률’보다 클 때 뇌물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 ‘뇌물의 마술’을 푸는 첫 단추는 정부나 공무원이 시장에 부당하게 개입해 뇌물의 이익을 키울 싹을 없애는 일이다. 그런 다음에 처벌 수위와 적발 확률을 높여야 뇌물을 차단할 수 있다. 처벌의 두려움이 로마네콩티의 유혹보다 강해야 한다.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정부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등과 같은 국제행사 개최와 관련한 예산 지원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인천시와 강원도가 요청한 국고 지원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천시는 문학경기장 대신 주경기장을 새로 짓는 데 들어가는 사업비 4900억 원 중 850억 원의 예산 지원을 요청했다. 강원도는 평창 겨울올림픽 대회 관련 시설비용의 70%를 국고에서 지원해줄 것을 기대한다. 아시아경기나 겨울올림픽은 국민이 합심해 유치한 국제행사인 만큼 개최 준비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재정이 취약한 지자체가 행사를 무리하게 치르다간 빚더미에 올라앉을 우려도 있다. 한국 지방정부의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은 12.7%로 일본(154%) 미국(129.9%) 영국(33.5%)보다 양호한 편이지만 공기업 부채가 50조 원에 육박하면서 지방부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무리한 사업을 벌일 형편이 아니다. 최근 폐막한 여수엑스포는 남해안 지역의 부족한 인프라를 확충하고 해양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세계에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장부상 적자가 불가피하다. 어제 막을 내린 런던 올림픽 예산은 약 90억 파운드(15조9300억여 원)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670억 달러)의 약 5분의 1로 추산된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경제올림픽’으로 치르겠다고 선언하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메인스타디움 관람석 일부를 임시관중석으로 만들고 일부 경기장은 철거해 자재를 차기 올림픽 개최국인 브라질에 판매해 비용을 절감하는 아이디어도 내놨다.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이 쓰는 인터넷과 생수까지 돈을 받고 팔았다. 그런데도 흑자 올림픽이 쉽지 않다는 추산이 나온다. 세계 경기 침체로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2%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제 위기의 장기화에 대비해 균형 재정을 달성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적은 예산으로 국제행사를 효과적으로 개최하려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경기장 재활용과 같은 사후관리 방안을 치밀하게 실행한 런던에서 배워야 한다. 민간 자본과 노하우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개최한 뒤에 재정위기로 휘청거리는 그리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국제행사를 지역 발전의 전기로 삼으려는 지자체와 예산 절감을 해야 하는 중앙정부가 행사의 내실과 경제성을 함께 충족시키는 지혜를 짜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