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객 계좌 훔쳐보는 은행에 돈 넣고 싶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30일 03시 00분


금융감독원은 2009년 7월 이후 신한, KB국민, 하나, 외환, 스탠다드차타드(SC) 등 5개 은행 직원 124명이 고객 계좌를 9295차례 무단열람해 적발됐다고 밝혔다. 대부분이 “돈을 빌려간 친구가 제때 갚지 않는다”는 지인의 부탁을 들어 주거나 예금 유치를 위해 고객 계좌를 거리낌 없이 훔쳐봤다. 은행 직원의 계좌 무단열람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된다. 금융실명제법은 금융회사 직원이 고객 동의를 받지 않고 금융거래 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은행 직원이 정실에 얽매여 직업윤리를 저버리고 계좌를 열람한 일은 명백한 불법행위다.

금감원은 최근 신한은행 직원들이 2010년 지주회사의 사외이사까지 지낸 재일교포 주주와 가족의 계좌를 열람한 사실을 확인하고 진상 조사에 나섰다. 이번 일과 관련해 2010년 이른바 ‘신한사태’ 때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이백순 신한은행장 측이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 진영의 약점을 캐기 위해 은행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내부 싸움하느라 이런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신한은행의 신뢰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신용정보보호법은 금융거래 등 상거래 관계의 설정 및 유지 여부 등을 판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 신용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영업상 필요하면 언제든지 고객의 계좌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백지위임한 조항이 아니다. 신한은행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 내부 검사 목적, 은행 직원의 고객관리 목적 용도로 계좌를 열람했다”고 주장했지만 금융당국은 계좌 열람의 위법성과 조직적 개입 여부를 밝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고객의 계좌를 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마음대로 들여다보는 은행에 돈을 맡길 고객은 없다. 다른 금융회사들은 “우리는 고객 계좌를 절대 훔쳐보지 않는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금융회사가 무분별하게 고객 계좌를 열람하는 일을 최소화해야 신용경제의 질서가 바로 선다.

금융거래의 비밀 보장은 신용경제를 지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금융실명제법은 금융거래 정보 제공 요건을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경우나 과세와 국정조사 등의 목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마구잡이 계좌 열람과 추적을 허용하면 금융거래 비밀 보장은 불가능해진다. 국회는 정부기관이 수사와 행정 편의를 위해 무분별하게 요구하는 계좌추적권을 허용해선 안 된다.
#사설#은행#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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