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세계 해바라기씨유 생산량의 거의 절반을 담당해온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지속되면서 식용유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영국 스페인 그리스 터키 벨기에 등 유럽 각국 대형마트에선 1인당 구매 가능한 식용유를 2, 3병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이 지난달 30일 전했다. 국제 무역 데이터 분석 사이트 ‘경제복잡성관측소(OEC)’에 따르면 전 세계 해바라기씨유 생산의 46%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가 올 2월 말 시작된 전쟁으로 해바라기씨 추수 작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여기에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 인도네시아까지 국내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팜유 수출을 제한해 세계 시장의 식용유 공급량은 더욱 줄었다. 식용유 수입량의 83%를 우크라이나에 의존하고 있는 영국에선 품귀 현상이 본격화됐다. 영국 대표적 슈퍼마켓 체인 테스코의 식용유 진열대에는 ‘식용유 판매량을 1인당 3병으로 제한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다른 슈퍼마켓 체인 웨이트로즈, 모리슨스는 2병까지로 제한했다. 영국 식품기준청(FSA)은 지난달 29일 “식품업계는 영국 내 해바라기씨유가 몇 주 안에 바닥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식품업계는 해바라기씨유 대신 팜유와 콩기름을 사용하고, 바이오디젤 시장에서 주로 쓰던 유채씨유를 식용으로 전환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은 아직까진 비축분으로 버티고 있지만 조만간 식용유 부족 사태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NYT는 “식용유 가격 급등에 제빵업계도 혼란을 겪고 있다”며 다양한 요리에 두루 쓰이는 식용유 공급난은 미국 식품시장 전반에 영향을 줘 물가 상승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그들의 존재를 크렘린궁은 부인한다. 하지만 그들은 해외에서 암약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옹위하는 활동을 펼친다. 용병 전투, 허위조작정보 유포, 이권 개입, 자원 탈취, 민간인 살해…. ‘푸틴의 그림자 부대’ 바그너그룹이다.》푸틴의 그림자 부대 ‘바그너그룹’ 러시아군이 점령했다 퇴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마을 부차의 모습은 세계를 분노케 했다. 살해된 민간인들이 길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여성과 어린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양손이 뒤로 결박되거나 고문 흔적이 남은 시신도 적지 않았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연방정보원(BND)이 부차 지역 러시아군 교신을 도청한 결과 매일 어떤 잔혹행위를 할지 의논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BND는 ‘바그너그룹(Wagner Group)’으로 알려진 러시아 용병들이 부차에서 민간인 대상 잔혹행위를 주도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명목상 민간군사기업(PMC·Private Military Company)으로 분류되는 바그너그룹은 주로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 파견돼 러시아군 배후에서, 또는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러시아군 소속이 아니어서 국제법이 금지한 민간인 학살이나 인권 유린을 자행해도 크렘린궁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 바그너그룹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러시아 헌법은 민간군사업체를 금지한다. 미국 외교안보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바그너그룹을 알려면 ‘바그너그룹이라는 존재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한다. 존재 자체가 불명확하다는 점이 바그너그룹이 존재하는 이유일지 모른다는 얘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그림자부대’로 통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푸틴-프리고진-웃킨 삼각 고리바그너그룹은 2013년까지 러시아정보총국(GRU) 특수여단 소속이던 드미트리 웃킨이 2014년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그너는 웃킨이 GRU에서 활동할 때 사용한 암호명이다. 아돌프 히틀러가 좋아했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으로 ‘탈(脫)나치화’를 들어놓고는 사실상 히틀러를 추종하는 뜻을 지닌 용병 단체를 전장에 투입한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방 정보당국은 GRU가 바그너그룹을 통제한다고 보지만 크렘린궁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2016년 크렘린궁 만찬에서 웃킨이 푸틴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공개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크렘린궁 대변인은 웃킨이 다른 군인 300여 명과 함께 표창을 받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웃킨이 표창을 받은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바그너그룹이 푸틴과 가까운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돈으로 운영된다고 파악한다. 바그너그룹의 실질적 관리자이자 바그너그룹과 푸틴 사이의 중개인인 셈이다. 프리고진은 2016년 미 대통령선거, 2018년 미 하원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여론 조작을 벌인 여론조사업체 인터넷조사국(IRA)과 콩코드경영컨설팅 소유주다. 두 업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보고서에도 등장한다. 프리고진은 선거 개입 혐의로 미 재무부 제재 대상에 올라 있다.○ ‘푸틴의 셰프’ 프리고진프리고진은 소시지 도매업자 출신이다. 199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레스토랑을 하던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던 푸틴과 인연을 맺었다. 푸틴이 시장에 이어 러시아 대통령이 되면서 푸틴이 즐겨 찾던 그의 레스토랑도 같이 흥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 고위 인사도 푸틴을 따라 그의 레스토랑을 찾았다. 프리고진은 푸틴을 뒷배 삼아 케이터링(출장 요리)으로 발을 넓혔다. 푸틴의 크렘린궁 연회를 독차지하면서 ‘푸틴의 셰프’라는 별명을 얻은 뒤 광산업을 비롯해 문어발처럼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군 관련 경험이 없는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 군사작전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바그너그룹이 아프리카나 중동 독재 정권의 체제 유지를 돕는 대가로 광물자원 채굴을 비롯해 각종 사업권을 따낼 때 자신 소유 기업을 계약업체로 넣어 수익을 얻는다. 여기서 나오는 돈이 크렘린궁과 바그너그룹 자금으로 조달된다고 알려졌다. 바그너그룹은 수단의 전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에 정치·군사 지원을 하고 그 대가로 금광 채굴권을 얻었다. 이 계약을 프리고진 소유의 광산기업 M-인베스트가 획득했다. 프리고진은 자신이 바그너그룹과 관련됐다는 의혹을 인정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업체 콩코드경영컨설팅 내부 자료에는 총괄이사로 ‘드미트리 웃킨’이 올라 있다. 푸틴-웃킨-프리고진의 삼각관계가 바그너그룹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푸틴은 2018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바그너그룹에 대해 “러시아에서 법을 어기면 처벌받겠지만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든 사업할 권리가 있다”며 바그너그룹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서 활동 시작, 30개국 확산바그너그룹은 러시아가 해외에서 불법적인 군사작전을 벌일 때마다 활용하는 PMC로 받아들여진다. 이라크전을 비롯한 전쟁터에서 활동한 미국 PMC와 개념은 비슷하다. 미군은 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에서 인명 피해가 커 반전 여론이 강해지자 이후 PMC와 계약을 맺고 인명 피해가 큰 작전이나 임무를 맡기곤 했다. 하지만 바그너그룹은 명목상 PMC일 뿐 사실상 러시아 GRU의 지휘 아래 움직이고 있다. 또 PMC의 주요 역할인 용병 및 경호 일만 하지는 않는다. 천연자원 개발권 획득, 러시아를 위한 허위·조작정보 제작 및 유포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푸틴의 ‘그림자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다. 바그너그룹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강제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 루한스크)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을 도울 때다. 이후 시리아 리비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말리 모잠비크 등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분쟁 지역에 나타났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지난 8년간 4개 대륙 30개국에서 바그너그룹의 활동이 포착됐다. 바그너그룹은 특히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친러시아 권위주의 정권을 도와 극단주의 세력 혹은 반군을 탄압하고 있다. 그 대가로 자원 채굴 같은 이권을 챙기면서 반(反)민주주의, 반미(反美)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며 러시아의 국제무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말리가 바그너그룹의 주요 활동지였다. 프랑스는 2013년부터 ‘파리 테러’의 주범으로 꼽히는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를 억제하기 위해 옛 식민지 말리에 병력을 주둔시켜 작전을 수행했다. 하지만 말리 군정(軍政)이 바그너그룹 용병을 고용하자 올 2월 이에 반발해 주둔군 철수를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말리 군부는 테러에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지키려는 포식동물 같은 의도로 바그너그룹을 최고의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는 곳마다 인권 유린-잔혹행위22일 AFP통신은 바그너그룹 용병들이 말리 민간인 시신 10여 구를 집단 매장하는 모습이 담긴 위성 영상을 공개했다. 프랑스군이 제공한 이 영상은 당시 퍼지던 ‘프랑스군이 민간인을 학살, 집단 매장했다’는 트윗을 반박하는 증거였다. 이 트윗은 바그너그룹에서 만든 여러 가짜 트위터 계정에서 뿌린 것이었다. 유엔 인권감시기구 휴먼라이트워치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말리에는 바그너그룹 용병 약 1000명이 도착했다. 이들은 말리 군인 약 30명을 산 채로 불에 태우고 IS 대원으로 의심된다며 민간인 300여 명을 즉결 처형했다. 올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자 이들은 우크라이나에 출몰했다. 서방 정보당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고 한 달 동안 바그너그룹 용병 1000여 명이 그동안 활동하던 리비아 시리아 등지에서 우크라이나에 진입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암살 임무를 띠고 키이우에 잠입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숀 맥페이트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연구원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바그너그룹 같은 용병을 활용한 군사작전이 증가한 것은 “잔인한 전쟁을 최소한의 정치적 비용으로 치르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장에서 용병의 잔혹행위는 잠재적 고객에게 일종의 광고 역할을 한다. 이런 경향이 커질수록 부차에서 목격한 학살, 고문 등을 현대 전쟁에서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그너그룹 추적자들 줄줄이 의문사 소차 매클라우드 유엔 ‘용병 사용 실무그룹’ 위원장은 “바그너그룹의 모든 활동에는 투명성이라고는 없다”고 말한다. 이런 구조적 불투명성이 러시아가 세계 곳곳 분쟁지역에서 자국 개입을 부인하며 빠져나가는 구멍으로 활용된다는 얘기다. 미 CNN에 따르면 2018년 시리아에서 미군 공습으로 바그너그룹 용병 20∼30명이 숨지자 그 유가족들은 “왜 이들이 시리아에 가게 됐느냐”며 크렘린궁에 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리도 정보가 없다”며 해당 사건 보도가 사실인지도 확인해주지 않았다. 사망자 역시 5명이라고 축소 발표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바그너그룹에 속해 근무한 러시아인은 약 1만 명이다. 대부분은 전직 군인이다.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면 한 달에 4000달러(약 500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파견 지역 자원 개발에 따른 부수입도 챙긴다. 이코노미스트는 말리에서 근무하는 바그너그룹은 한 달에 1000만 달러(약 126억 원)가량을 착복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바그너그룹 배후에 크렘린궁이 있다는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이들 간의 연관성을 추적해온 러시아 기자들은 줄줄이 의문사를 당했다. 2018년 러시아 독립 언론 기자 세 명이 바그너그룹의 해외 활동과 푸틴의 연관성을 취재하러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갔지만 사흘째에 강도 총격으로 숨졌다. 이들이 탄 차량을 노린 매복 공격이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유일한 생존자인 아프리카인 운전사의 입을 막았다. 자국민이 해외에서 무장강도 공격으로 사망했지만 러시아 외교부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푸틴과 외교부는 유감의 뜻을 전하면서도 피해자들이 러시아 정부의 공식 취재 허가를 받지 않고 여행자 자격으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했다는 점만 강조했다. 이 사건은 바그너그룹 배후에 크렘린궁이 있다는 의심을 더욱 키웠다. 같은 해 시리아에서 사망한 바그너그룹 용병들에 대해 탐사보도를 했던 기자 막심 보로딘은 자신의 아파트 발코니에서 추락사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미국 서부 명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경영대생 테럴 톰프슨에게 지난해 9월 2학년 개강 후 첫 2주는 지옥이었다. 신입생 1년은 집에서 원격수업을 들었던 톰프슨은 대면 수업이 시작된다는 소식에 개강 3개월 전부터 캠퍼스 인근 집을 알아봤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 원룸 시세는 월 3700달러(약 470만 원).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은 톰프슨이 생각한 예산 750달러(약 95만 원)로는 투룸에 5명이 사는 가장 싼 매물도 구할 수 없었다. 2학년이라 기숙사 우선 배정권도 없는 그는 집을 구하지 못한 채 개강을 맞았다. 매일 오전 6시 새크라멘토 집에서 학교까지 130km를 운전했다. 돌아올 때는 교통체증을 피해 이튿날 0시 무렵 길을 나섰다. 등하교 강행군에 지친 톰프슨은 기숙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에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집도 걱정되고 빨래는 어떻게 할지, 차는 고장 나지 않을지 불안의 연속이었다. 학업도 영향을 받아 힘들었다. 지금도 약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역시 어렵게 학창 시절을 보낸 집주인이 톰프슨의 사연을 듣고 월세 1000달러에 집을 내준 덕분에 그는 그저 졸업 때까지 살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AP통신은 캠퍼스 인근 집값 하락을 우려한 주민들 반대로 기숙사 추가 건설이 무산된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의 대학생들이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모텔 방을 구하거나 차에서 잠을 잔다고 26일 전했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물던 학생들이 다시 캠퍼스로 돌아오면서 수요가 급증한 것도 주택 대란에 영향을 끼쳤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지난해 세계 군비(軍費) 지출이 사상 처음 2조 달러(약 2497조 원)를 넘었다. 25일(현지 시간)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군비 지출은 전년 대비 0.7% 증가한 2조1130억 달러(약 2644조 원)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기 침체에도 군비 지출은 7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SIPRI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국가들이 국방비 증가를 예고해 세계 군비 경쟁은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세계 5위)의 군비 지출은 전년보다 2.9% 늘며 3년 연속 상승했다. 러시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군비 지출 비율은 4.1%로 세계 평균(2.2%)을 훨씬 웃돌았다. 러시아는 지난해 말 러-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 가까운 군대를 집결시키면서 군비 지출이 급증했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한 동맹 비용 분담 압박 등으로 군비를 꾸준히 늘린 유럽 군비는 세계 군비 지출의 20%를 차지했다. 우크라이나도 2014년 이후 군비 지출이 72% 늘었다. 1위 미국은 전년보다 군비 지출을 1.4% 줄였다. SIPRI는 지난 10여 년간 무기 구매는 6.4% 줄이고 연구개발(R&D)은 24% 늘린 미국이 차세대 군사기술 선점에 자원을 집중했다고 해석했다. 2위 중국은 전년 대비 4.7% 늘어나 27년 연속 군비 지출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인접국 군비 확대로 이어졌다고 SIPRI는 풀이했다. 9위 일본은 1972년 이래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이며 국방예산을 7.3% 늘렸다. 4.7% 늘어난 한국은 전년과 같은 10위였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사진)이 21일(현지 시간) 40년 이래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미 소비자물가를 잡기 위해 올해 안에 세 차례 0.50%포인트 금리 인상, 즉 ‘빅스텝(Big step)’을 단행할 뜻을 거듭 밝혔다. 일반적인 0.25%포인트 금리 인상으로는 치솟는 물가를 잡을 수 없어 미 경제에 악영향이 예상된다는 이유다. 특히 그는 1980년대 초 물가 안정을 위해 취임 당시 11%대였던 미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린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을 언급하며 이를 따라할 뜻을 밝혔다. 예상보다 강도 높은 긴축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로 21일 미국 증시와 22일 아시아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파월 “물가 최고점 몰라”… 긴축 강화 불가피파월 의장은 21일 국제통화기금(IMF) 패널 토론에서 “물가가 3월에 최고점이었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알 수 없다. 연준이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며 “경제는 물가 안정 없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올리는 안이 논의될 것이라고도 했다. 3월 미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8.5% 상승해 1982년 이후 최고치를 보였는데 이보다 더 높은 수치가 나올 수 있다고 본 셈이다. 특히 그는 진행자가 ‘시장은 3차례 빅스텝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하자 “시장은 우리가 보는 대로 접근하고 있다”며 3차례 0.50%포인트 인상을 시사했다. 연준이 마지막으로 빅스텝을 단행한 시점은 정보기술(IT) 기업 주도로 나스닥 시장이 활황을 보였던 2000년 5월이다. 파월 의장은 이날 공개된 볼커 재단과의 사전 녹화 연설에서는 볼커 전 의장이 “인플레이션이 불변하는 삶의 진실이라는 믿음을 깼다”며 그의 행보를 높이 평가했다. 볼커 전 의장은 취임 당시 “인플레이션이라는 용(龍)과 싸우겠다”고 선언해 유명해졌다. 실제 강도 높은 금리 인상을 단행해 치솟는 물가를 잡고 미 경제를 안정시켰다는 호평을 얻었다. 앞서 연준 내 대표적인 ‘매파(긴축정책 선호)’로 꼽히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준 총재는 18일 ‘빅스텝’을 넘어 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소위 ‘자이언트 스텝’ 또한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 금리 인상 가능성각국 중앙은행이 연준을 뒤따를 가능성도 커졌다. 21일 루이스 데긴도스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는 7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거론했다. 당초 연말 금리 인상 예상보다 대폭 빨라진 시점이다. 앞서 13일 캐나다, 뉴질랜드도 모두 금리를 0.50%포인트씩 올렸다. 일각에서는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처음 주재하는 다음 달 2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한은이 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각국의 금리 인상 행보에 세계 증시는 줄줄이 하락했다. 21일 미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일 대비 1.0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48% 하락했다. 22일 한국 코스피 종합지수는 23.50포인트(0.86%) 하락한 2,704.71에 마쳤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 역시 1.63% 하락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0.1원 상승(원화 가치 하락)한 1239.1원에 마감했다. 장중 한때 1245.4원까지 치솟으며 연고점을 경신했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동부 요충지 마리우폴을 완전히 함락했다고 주장한 21일(현지 시간) 당일 마리우폴에서 서쪽으로 20km 떨어진 만후시에서 300여 개의 구덩이가 발견됐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 등에서와 마찬가지로 마리우폴 일대에서도 민간인을 집단 학살한 후 대규모로 매장했다는 비판이 고조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집권 민주당의 모금 행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두 차례나 ‘도살자(Butcher)’라고 비판했다. 미 위성업체 맥사테크놀로지가 공개한 위성사진에선 만후시 공동묘지 인근에서 집단 매장지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달 19일 사진과 이달 3일 사진을 비교하면 매장지가 대폭 늘었음이 확인된다. AP통신은 이 매장지의 직선 길이가 340m에 달한다고 전했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 또한 CNN에 “만후시 공동묘지 인근 공터에 30m 길이의 구덩이들이 있다.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에서 시신을 실어와 이곳에 던졌다”고 했다. 그의 보좌관인 페트로 안드류시첸코 역시 “러시아군이 수천 구의 시신을 검은 가방에 수거한 후 트럭을 이용해 매장지로 실어 날랐다. 전쟁범죄를 은폐하려는 명백한 증거”라고 했다. 마리우폴 시의회 또한 “러시아군이 만후시에서 최대 9000명을 묻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동부 돈바스에서 42곳의 마을을 점령했으며 푸틴 대통령이 다음 달 9일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 때 승리를 선언하기 위해 돈바스 점령을 서두르고 마리우폴 함락 또한 선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마리우폴이 완전히 함락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반박하며 우크라이나에 13억 달러(약 1조6000억 원)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자폭 드론으로 유명한 ‘스위치 블레이드’를 개량한 ‘피닉스 고스트’ 드론 121대, 155mm 곡사포 72문, 포탄 14만 발 등이 포함됐다. 현재 우크라이나군 2500명, 민간인 1000명 등이 마리우폴 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러시아군과 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키이우 일대의 민간인 학살 정황 또한 속속 밝혀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프라우다에 따르면 키이우 경찰서장은 22일 “지금까지 수습한 민간인 시신 1084구 중 75%가 총상으로 숨졌으며 이 중 300구 이상은 신원 확인이 불가한 정도로 훼손됐다”며 러시아가 조직적으로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밝혔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고 있는 볼로미디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44·사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의 의회 난입 당시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한 리즈 체니 미 공화당 하원의원(56) 등이 2022년 존 F 케네디 용기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미국 안팎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고 용기 있는 지도력을 보여준 공직자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1990년 제정됐다. 1957년 미 퓰리처상을 수상한 케네디 대통령의 저서 ‘용기 있는 사람들’에서 유래했으며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 등이 수상했다. 재단은 21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의 원칙에 입각한 리더십이 우크라이나 국민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에게 인권과 자주권 수호를 위한 결의를 강화시켰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함께 상을 받은 체니 의원 또한 젤렌스키 대통령이 ‘용기는 폭정에 맞서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치하했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러시아 국방부가 4월부터 시작된 모병 기간 동안 신규 병사 13만 명 모집을 계획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끌려갈 것을 우려하는 청년들은 입대를 기피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TV 연설에서 “신규 모집 병사는 단 한 명도 전장에 투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주둔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피해규모도 막심해 청년들과 이들의 가족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전했다. 러시아에서 18세~27세 모든 청년은 1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 입대 모집은 1년에 두 차례, 봄과 가을에 이뤄진다. 징집을 기피할 경우에는 최대 2년 징역 혹은 무거운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WP는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거부’ 인권 단체에는 징집대상 청년, 이들의 부인, 여자친구, 가족 등이 징집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단체는 3월에 텔레그램 계정을 개설했는데 이 곳에만 지금까지 접수된 상담 문의가 8000건이 넘었다. ‘러시아 병사 어머니 위원회’나 ‘아고라 인권단체’ 등 비슷한 단체에도 징집 회피 문의는 큰 폭으로 늘었다. 이들 단체에서 일하는 한 변호사는 “사람들은 쇼이구 장관의 말을 믿을 수 없다. 그냥 ‘장관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 외에 이를 뒷발침할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군복무 제도와 법상 징집병은 최소 4개월간 전장 파병이 가능하다”라고 전했다. ○전쟁 시작 이후 입영사무소 화염병, 방화 공격 5건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화염병 공격 등으로 피해를 입은 러시아 입영사무소가 5곳에 달한다. 가장 최근인 18일에는 서부 모르도비야 지역 입영사무소에 화염병이 날아들어 컴퓨터와 징집병 데이터가 손상돼 징집병 모집이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3월에도 보로네즈, 스베르들롭스크, 이바노보 지역의 입영사무소에도 화염병 공격이 있었다. 범인으로 붙잡혀 구금된 청년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저항해 군대의 징집 절차를 방해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전쟁 발발 나흘 만인 2월 28일 모스크바 루호비치 마을에는 21세 청년이 지역 입영사무소에 불을 질렀다. 그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사무소의 자료를 없애려 했다고 밝혔다. 구금된 이들은 재물 손괴, 살인미수, 및 테러리즘의 혐의를 받고 있다.○군 부정부패 불신, 특권층 군 면제-유예 만연WP는 러시아에서는 군관료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다며 많은 이들이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체첸 전쟁 당시의 트라우마를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전쟁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러시아 청년 수천 명이 전장에서 총알받이로 목숨을 잃었다. 이는 ‘러시아 병사 어머니 위원회’ 같은 단체가 전쟁 포로 석방, 유해 송환 등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들 단체는 군대 내 가혹행위, 인권 학대, 필수품 부족 등의 고질적인 군 문제의 개혁을 이끌기도 했다. 징병을 피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건강 문제, 대학생 유예기간 활용이 꼽힌다. 하지만 입영 사무소는 이러한 이유들을 항상 받아들여주지는 않는다고 WP는 전했다. 특권층 사이에서 군면제와 유예가 더 흔하고 기준도 일정치 않아 징병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도 끊이지 않는다. 입영사무소가 부정부패 사건의 중심이 되는 경우도 많다. 신체검사를 하는 의사, 사무원, 군 관료들 사이에서 수 천 달러를 받고 징병을 피할 수 있는 병역 기록 카드를 파는 네트워크가 암암리에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이 카드의 가격도 계속 올라 러시아 부유층 부모들 사이에는 하나는 자녀 대학 등록금용, 다른 하나는 입영사무소 뇌물용으로 자녀를 위한 예금 통장 두 개를 만들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나오고 있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미국 유력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신임 편집국장으로 조지프 칸 부국장(58·사진)을 임명했다. 칸 신임 국장은 NYT 첫 흑인 편집국장 딘 바케이(66)의 뒤를 잇는다.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NYT 발행인은 19일(현지 시간) 칸 국장 임명을 발표하면서 “조(칸 신임 국장)는 역대 편집국장 중 가장 디지털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발탁 배경을 밝혔다. NYT는 칸 신임 국장의 향후 과제가 정치적, 문화적으로 분열이 심하고 독자가 기대하는 언론 역할도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해야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칸 신임 국장은 24시간 속보 시스템 구축을 주도해 창간 171년을 맞는 NYT에서 종이신문 중심의 편집국을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댈러스모닝뉴스 홍콩 주재 아시아 특파원 시절 중국 여성의 폭력 피해를 다룬 보도로 1994년 퓰리처상 국제뉴스 부문에서 수상했다. NYT로 옮긴 뒤 베이징 특파원을 하던 2006년 시대에 뒤떨어진 중국 사법제도 기사로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올 2월 미국 뉴욕 차이나타운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해된 한국계 여성 크리스티나 유나 리(사진) 추모 전시회가 개최됐다. 미 CNN방송은 19일(현지 시간) 뉴욕에 있는 중국 현대미술 전문 ‘엘리 클라인 갤러리’에서 13일 유나 리를 추모하는 그룹 전시 ‘WITH HER VOICE, PENETRATE EARTH‘S FLOOR(그녀 목소리로, 지구 바닥을 뚫다)’가 열렸다고 전했다. 미술 디자인을 전공한 유나 리 씨는 이 갤러리에서 2010∼2014년 보조 디렉터로 일했다. 갤러리 대표 엘리 클라인은 “유나 리 인생의 큰 부분은 예술이었다. 그의 유산을 최대한 기념하고 싶었다”며 “그는 비극적 사건으로만이 아니라 더 넓게 기억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2월 13일 자신을 뒤따라온 노숙인 남성의 흉기에 찔려 숨진 유나 리 사건은 미국에서 아시아계를 상대로 한 폭력 범죄가 잇따르던 때 벌어져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충격을 줬다. 이번 전시에도 유나 리를 비롯해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AAPI) 작가 9명의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를 기획하고 참여한 스테퍼니 메이 황은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이라며 “슬픔을 고립이 아닌 사회적인 것과 연결시키고 싶었다. 아시아계가 힘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부 작품은 아시아계를 향한 혐오범죄를 다뤘다. ‘미국을 찾으러 갔다’ 연작은 ‘반(反)아시아 편견과 공포로 애틀랜타 스파에서 8명 사망’ ‘교환 가능한 아시아인이 되는 비용’ 같은 헤드라인을 실은 신문으로 만든 종이총들이다. 유나 리의 그림은 참여 작가들이 마련한 제단 위에 걸렸다. 전시는 6월 5일까지 열린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이 네덜란드의 유대인에게서 훔친 회중시계가 80년 만에 주인의 손자에게 전달됐다. 시계 주인은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16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와 네덜란드 방송 RTV에 따르면 이 회중시계 뒷면에는 1910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알프러트 오베르스트레이트가 동생인 라우이스의 18번째 생일을 기념해 만들었다는 각인이 새겨져 있다. 시계 선물을 주고받은 이 형제는 32년 뒤인 1942년 나치군에 체포됐고, 둘 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숨을 거뒀다. 이 과정에서 나치군이 라우이스의 시계를 가로챈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약 80년간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이 시계는 벨기에의 한 옥수수 농가에서 발견됐다. 농장주였던 귀스타버 얀선스 씨의 손자들이 몇 달 전 물려받은 농가를 정리하다 시계를 보게 된 것. 농장주의 손자 피터르 얀선스 씨는 “(전쟁 당시) 군인들이 옥수수밭에서 쉬곤 했는데 할아버지가 밭에서 이 시계를 주웠다”며 “할아버지는 시계가 나치군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시계를 숨겨 보관하셨다. 할아버지는 나치를 싫어하셨다”고 말했다. 손자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2대에 걸쳐 간직해 온 이 회중시계를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네덜란드 로테르담 지역의 유대인 유품을 수집하는 역사학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시계 뒷면에 새겨진 오베르스트레이트 형제의 흔적이 유일한 단서였다. 이 학자와 함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수소문한 끝에 형인 알프러트 씨에게 외동딸이 있었고, 그녀가 세 자녀를 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2월 손주 중 한 명인 리하르트 판아메이던 씨와 연락이 닿았다. 극적으로 할아버지의 시계를 전달받은 손자 판아메이던 씨는 “이런 시계가 존재했다는 것조차 몰랐는데 그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시계가 멀쩡하다니 정말 놀랍다. 어머니가 할아버지 유품을 못 보고 돌아가신 게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2차대전을 겪은 후 극심한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려 전쟁에 관한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없고, 조부모의 삶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고 했다. “이 시계를 보니 반가우면서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떠올라 마음 한쪽이 쓰라립니다. 폭격을 맞은 도시 지하철 역사에서 소지품을 끌어안고 자는 어린이와 노인들이 생각나네요.” 판아메이던 씨에게 시계를 전해주기 위해 이달 벨기에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찾아온 얀선스 씨는 “할아버지가 바라셨던 대로 시계가 주인을 찾아 기쁘다”고 했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한국 정부로부터 ‘평화의 사도 메달(Ambassador for Peace Medal)’을 받은 미국 6·25전쟁 참전 용사가 ‘아리랑’을 부르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주로스앤젤레스(LA) 한국 총영사관은 15일(현지 시간) 열린 미국 재향군인회 742지회 모임에서 에드워드 J 클라크 씨를 비롯한 6·25전쟁 참전 용사 9명(생존자 6명, 사망자 3명)에게 정부를 대신해 메달을 전달했다. 참전 당시 미 해병대 병장이던 클라크 씨는 메달을 목에 걸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라며 꽤 능숙한 한국말로 아리랑을 불렀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변치 않는 우정을 계속 이어 나가게 할 것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영완 주LA 한국 총영사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참전 용사 중 생존자 6명과 그 가족, 숨진 3명의 유족, 켄 캘버트 연방 하원의원(캘리포니아주)을 비롯해 약 150명이 참석했다. 평화의 사도 메달은 한국 정부가 해외의 6·25전쟁 참전 용사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만들었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따스한 봄날 주말인 17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은 옛 정취를 느끼며 가족, 연인과 걷기 좋은 코스다. 하지만 한국에서 주부 생활 15년차인 크리스티나 마이단추크 씨(35)는 매주 주말 남편과 이곳에 오면서도 고즈넉한 풍경을 즐길 여유가 없다. 크리스티나 씨는 올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주말마다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 모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한다. 이날도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어김없이 이곳에서 규탄 시위를 하고 돌담길을 따라 가두행진을 했다. 날카로운 반전(反戰) 구호를 외치며 정동길을 걷는 이들을 보던 상춘객들의 반응은 이랬다. ‘아, 우크라이나!’○ ‘익숙해져버린 전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53일째. 사람들은 웬만한 우크라이나 피해 소식에는 놀라지도 않게 됐다. 하지만 이날 8번째 러시아 규탄 집회에 온 우크라이나인들은 시위를 멈출 생각이 없다. 크리스티나 씨는 “우리도 지치고, 번아웃 된 게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어려운 환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우리나라가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한국에 있는 우리도 힘을 다해 도울 것이다”라면서 “러시아가 자행하는 학살, 잔인한 전쟁은 결코 익숙해지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그래도 우리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집회를 계속 하겠다”고 강조했다. 재한 우크라이나인 약 250명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매주 집회 계획을 논의한다. 직장인도, 학생도 있고 크리스티나 씨 같은 주부도 있다. 직장 있는 사람들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만들거나, 국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상징물을 만든다. 또 집회에서 연설을 맡거나 전쟁 관련 정보를 번역해 한국인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크리스티나 씨는 “나 같은 주부는 남들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각종 행정업무를 돕고 있다”며 “일단 전쟁을 끝내는 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전쟁의 아픔은 어른 아이 모두에게크리스티나 가족은 경기도 동탄에 산다. 대전 광주 천안 부산에서 오는 이들도 있다. 자녀를 데려오는 사람도 많다. 아이들도 집회에 적극 참여한다. 조금 큰 아이들은 대부분 조국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 이해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씨는 “아이들도 부모만큼이나 충격을 받았다. 전쟁 때문에 고국에 갈 수 없고, 돌아간다 한들 집뿐만 아니라 도시가 다 파괴됐다는 사실에 아파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초등학교 6학년 딸 에바(12)도 이따금 시위에 동참한다. 학교에서 전쟁 관련 기사를 보여주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대충 알고 있다. 다만 크리스티나 씨는 자세한 이야기는 피하고 있다. 충격을 받을까봐 두려워서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딸에게 걱정을 더해주고 싶지 않다. “늘 딸에게 ‘전쟁 중인 건 맞지만 우리 군대는 강하고 모든 나라들이 도와주고 있어. 그러니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이길 거고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야. 걱정하면서 울 필요 없어’라고 말해줘요.” 그의 남편 이반 마이단추크 씨의 형은 수도 키이우 인근 마카리우에 머물다 지난달 부모님이 사는 서부로 피란 갔다. 그나마 일찌감치 대피해 목숨은 구했지만 형의 집은 미사일에 맞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필름카메라 촬영이 취미인 이반 씨는 시위에 나올 때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해마다 여름이면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들과 여행하며 추억을 담았던 카메라다. 하지만 이제 필름에는 시위와 집회 장면이 웃는 가족들 얼굴을 대신하고 있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율리야 네스테렌코 씨(33) 가족은 처음 마련한 집에 가족 성(姓) 일부를 따 영어로 ‘둥지(nest)’라고 애칭을 붙였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에게 푹 빠진 아들 블라디미르(12)는 마당에 세운 농구대에서 아빠와 농구 하는 걸 가장 좋아했다. 네스테렌코 가족의 집은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 있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가장 먼저 점령한 도시에 속했다. 갈수록 러시아군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실종이나 납치되는 사람이 늘어갔다. 네스테렌코 가족은 7일 집을 떠나기로 했다. 이웃 11명이 함께 배에 올랐다. 드니프로강을 따라 우크라이나군 통제 구역인 북쪽으로 갈 계획이었다. 율리야 씨는 미국 CNN에 “우리 가족에게는 이 배가 암흑 속 한 줄기 빛이었다. 그곳의 삶은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뱃길에 오른 다음 날 오전 갑자기 뿌연 연기가 퍼지며 표류하던 배에 포탄과 총탄이 어지럽게 쏟아졌다. “처음엔 우리가 공격을 받는지도 몰랐어요. 소리가 났는데 총인지, 폭탄인지도 알 수 없었죠. 아들은 피를 흘리며 제 품에 주저앉았어요. 뒤에 있던 남편도 머리에 총을 맞고 제 위로 쓰러졌습니다.” 지역 군 당국은 “러시아군이 (러시아) 점령지에서 민간인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며 “이 민간인들이 자신들 위치를 알릴 단서가 될 말을 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율리야 씨를 비롯해 단 세 명이었다. CNN은 “율리야의 어조는 부드럽고 담담했다. 배에서 모든 것을 잃고 감정이 사라진 듯했다”고 전했다. 남편 올리 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아들은 병원 도착 직후 사망했다. 율리야 씨는 아들과 남편을 친척집 마당에 묻었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월 24일 이후, 스트라프로폴 공동묘지에는 러시아군이 묻힌 무덤 줄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BBC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인 잔혹행위에 대해 국제사회가 규탄하고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이와 사뭇 다른 온도의 추모분위기가 일고 있다고 12일(현지시간) 전했다. 이날 이 곳을 찾은 러시아인 드미트리 씨는 낙하부대 시절 사령관이었다며 세르게이 티스야치니라는 이름의 군인의 묘지에 카네이션을 내려놨다. BBC 기자가 러시아군의 잔혹행위와 전쟁 범죄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며 국제사회가 분노하고 있는 것에 대해 묻자 그는 “그런 가짜뉴스는 믿지 않는다.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라며 “세르게이 사령관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행동하도록 가르쳤는지를 안다. 사령관님과 우리 군을 믿는다.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국제사회가 러시아군의 전쟁범죄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명백한 증거가 드러난다면, 그래도 믿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어떠한 증거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답했다. BBC는 드미트리 씨의 이러한 확신에 대해 “러시아 국영방송이 수년간 강조한 ‘서방은 틀리고 러시아가 옳다’라는 메시지에 기반한 것”이라며 “크렘린은 국영방송을 장악한 채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등 러시아를 혼란하게 하려는 적에 둘러싸여 있다는 인식을 퍼뜨리고 있다”고 전했다. ○되려 서방언론 탓하는 러시아인들 특히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언론 장악은 러시아 국민들이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실에 접근하는 길을 막고 있다. 모든 러시아의 독립 언론은 폐간되거나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사망한 티스야치니 사령관의 부인인 라다 씨 역시 러시아군의 잔혹행위 의혹에 대해 “전 세계가 우리에게 등을 돌린 걸 안다. 이들은 뭐든 러시아 탓을 할 것이다”라고 서방에 적대감을 드러냈다. 같은 날 이 지역의 유명 온라인 매체에서는 BBC 취재진이 공동묘지 취재를 기사로 다뤘다. BBC가 라다 씨를 인터뷰하고 있는 사진을 함께 실은 이 기사는 “자신의 남편의 죽음을 도운 나라의 기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심정이 어떨까”라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한 데에 영국의 잘못이 있다는 논리를 폈다. BBC는 해당 보도에 대해 “러시아인들이 서방 언론에 가지는 적개심이 드러났다”고 평했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30여 년 전 월세를 걱정하던 여성이 이제는 수십억 달러를 기부하는 자선가가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 시간) 경영전문지 포브스 기준 자산 450억 달러(약 55조 원)를 보유한 매켄지 스콧(52) 이야기를 소개했다. 스콧은 2019년 1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주와 이혼하고 그해 5월 자신의 자산 절반 이상을 기부한다고 약정했다. 이후 지금까지 그는 공식적으로 120억 달러(약 14조8320억 원)를 기부했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부부나 베이조스를 비롯한 미국 대표 거부들이 여태껏 기부한 액수보다 많다. NYT는 스콧의 인생은 ‘새옹지마(the lost horse·잃어버린 말)’라는 말로 요약된다고 했다. 스콧은 2013년 TV 인터뷰에서 “어떤 일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일이 나중에 돌아보면 가장 감사한 일이 되기도 하고, 가야 할 곳으로 이끌기도 한다”며 ‘인생사 새옹지마’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유복한 유년을 보냈지만 17세 때 아버지 직장이 파산해 스콧은 사립 기숙학교를 나와야 했다.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프린스턴대 등록금을 내기도 했다. 1992년 스콧이 스승이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토니 모리슨에게 보낸 편지에는 뉴욕에서 소설가를 꿈꿨지만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청춘의 심경이 담겨 있다. 프린스턴대 도서관이 소장하던 이 편지는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피로와 좌절로 쓰러지거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단조로움의 고통을 곱씹기도 해요. 또 이런 단조로움의 대가로 받은 푼돈으로 집세나 낼 수 있을지 걱정도 하고요.” 그해 결국 금융회사에 취업한 스콧은 이듬해 동료 베이조스와 결혼했다. 35세인 2005년에야 소설가 꿈을 이뤘던 그는 한 인터뷰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었다면 금융권 취업은 고려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생활고에 떠밀려 한 취업이 그를 자선가의 삶으로 이끈 셈이다. NYT에 따르면 스콧의 이혼 절차가 마무리된 2019년 델라웨어주에 법인 ‘잃어버린 말(The Lost Horse)’이 설립됐다. 이 법인은 미국 전역 비영리단체에 익명의 기부자가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고 싶다고 연락하기 시작했다. 익명의 기부자는 스콧이었다. 잃어버린 말은 1257개 단체에 기부했다. 해비탯을 비롯한 대형 단체를 제외하고 그의 세세한 기부 내역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스리랑카가 정부 부채 510억 달러(약 62조8000억 원) 상환을 일시 유예하는 제한적 디폴트를 선언했다. 스리랑카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이르면 다음 주부터 구제금융 계획을 논의할 계획이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스리랑카 중앙은행은 12일 성명을 내고 “부채 상환이 불가능한 시점에 도달했다”며 “(제한적) 채무 불이행 선언은 현재 남아있는 외환을 대외부채 상환 대신 당장 필요한 연료 등 필수품 수입에 쓰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말 기준 스리랑카의 외환 보유액은 19억3000만 달러 수준까지 떨어져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할 대외부채(40억 달러)에 크게 못 미친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루피화 가치는 올해에만 37% 이상 폭락했다.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심화로 스리랑카 국민들은 13시간 순환 정전, 필수품 부족 사태 등을 겪었다. 지난 주말 상업수도 콜롬보 시민들이 폭우 속에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고무탄과 최루탄을 쏘며 대응했다. 스리랑카 의료인 연합도 10일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치료제가 부족해 의료진이 누구를 치료할지 힘든 선택을 해야 하는 지경이다. 수일 내 의약품 수급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피해보다 인명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리랑카의 대외부채가 급증한 것은 중국의 경제 영토 확장 전략인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며 중국에 돈을 빌렸지만 수익성 악화로 이를 갚지 못한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또 관광사업 의존도가 높아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겹치면서 재정이 크게 악화됐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요충지인 마리우폴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우크라이나 측의 증언이 나왔다. 현지 언론은 “사실로 확인될 경우 2월 24일 침공 이후 첫 사례”라고 전했다. 미국 등 서방은 화학무기 사용 시 대량살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러시아가 이를 사용할 경우 강력한 제재와 함께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경고 수위를 높였다.○ “러, 무인항공기로 화학물질 살포”11일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인디펜던트, 키이우포스트 등에 따르면 마리우폴에서 전투 중인 우크라이나군 소속 아조우연대는 이날 “러시아가 독성을 지닌 화학무기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무인항공기를 이용해 공중에서 화학물질을 살포했다고 아조우연대는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군인과 민간인 등 3명이다. 이들은 호흡 곤란, 심각한 어지럼증 등의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톤 헤라시첸코 우크라이나 내무장관도 “러시아가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며 “러시아는 모든 인도주의의 선을 넘었다”고 규탄했다. 국제 사회는 러시아에 강력히 경고했다. 제임스 히피 영국 국방부 정무차관은 12일 “화학무기 사용은 혐오스럽고 선을 넘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정말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면 그 책임을 묻기 위해 모든 선택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화학무기 관련) 상황을 면밀히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군이 최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병력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동부의 핵심 요충지인 마리우폴은 러시아군에 도시 전체가 포위당한 상태다. 도시 기반시설의 90% 이상이 파괴됐고 식량, 식수, 전기도 끊겼다. 40만 주민이 거주했던 마리우폴에는 약 12만 명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거리에 시신들이 카펫처럼 덮여 있다. 민간인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었을 것이다. 군인까지 포함하면 사망자는 2만 명을 넘어설 수 있다”고 11일 AP통신에 말했다. 보이첸코 시장에 따르면 러시아는 도시 곳곳에 사상 검증을 하겠다며 ‘여과 캠프’를 설치하고,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민간인을 임시 감옥에 가둬 고문, 학살하고 있다.○ “러 병사가 성폭행하고 남편 살해”러시아군의 잔학 행위는 다른 도시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11일 영국 더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퇴각한 수도 키이우에서 폭발물이 숨겨진 세탁기, 자동차 등이 다수 발견됐다. 러시아군은 가정집에서 각종 물품을 약탈한 뒤 우크라이나 경찰과 구조대원 등을 겨냥해 건드리면 폭발하는 부비트랩형 폭발물을 곳곳에 설치했다. 민간인 여성을 상대로 성범죄도 자행하고 있다. 이날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성노예’로 납치해 성폭행한 뒤 알몸으로 감자 저장고 등에 가두고 살해했다. 키이우 인근 마을에 사는 한 여성은 “러시아 병사가 나를 성폭행하고 남편까지 살해했다. 병사들이 떠난 자리에는 마약과 비아그라만 남아있었다”고 영국 BBC에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남부에 대규모 전면전을 예고한 가운데 미국은 유럽 동맹국들과 방공 시스템, 전차, 장갑차, 대포 등 중화기를 우크라이나에 추가 지원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미국 CNN이 전했다. 유럽연합(EU)도 11일 우크라이나에 5억 유로(약 6721억 원)를 추가 투입하고 무기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에서 최근 철수하기 전까지 약 한 달 넘게 이 지역을 점령하며 민간인에게 자행한 고문, 강간, 학살 등 전쟁범죄에 관한 생존자, 목격자들의 증언을 탐사보도로 전했다. NYT는 민간인들은 전쟁과 전혀 관련 없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차별하게 살해됐다고 전했다. 지난달 5일 오후 이반 씨는 아들과 잠시 집 밖 산책에 나섰다가 눈앞에서 아들이 러시아군의 총에 맞는 것을 봤다. “그들이 내 옆에 있던 아들을 쐈어요. 나를 쐈어야 했는데…. 아들은 온종일 신음하다 다음날 아침 8시20분에 하늘로 떠났어요.” 집 앞마당에 아들을 묻은 그는 “자식을 묻는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예요. 원수에게도 이런 저주는 못할 거예요”라고 했다. 이반 씨는 “아들에게는 8살, 1살짜리 아들과 딸이 있어요. 손자들 눈을 쳐다볼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시신 수습도 못한 채 한 달 넘게 방치 부차는 수도 키이우와 인접해 키이우로 통근하는 이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다. 처음 러시아군이 쳐들어왔을 때는 우크라이나 군이 이들을 물리쳤다. 약 20대의 러시아 장갑차가 모두 불탔고 러시아군들은 숲 속으로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뒤 정비를 가다듬고 돌아온 러시아군은 더 폭력적으로 변했다. 이들은 부차의 한 주상복합 건물에 기지를 마련한 뒤 건설 중인 고층 건물 위에 저격수를 뒀다. 주민들은 저격수는 거리에 뭐든 움직이는 게 있으면 무차별로 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가가호호 수색하면서 이곳 주민들에게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을 명령했다. 러시아군 사령관은 “우리는 (나오는 이들에게) 발포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며 주민들에게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을 경고하고 다녔다. 은퇴 교사인 앤티 류다 씨는 집 문을 열다가 그 자리에서 총을 맞고 사망했다. 문에 낀 사체는 뒤틀린 상태로 한 달 넘게 방치됐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그의 여동생 니냐 씨는 이 집 주방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니냐 씨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사연은 아는 사람조차 없다. 이들의 이웃 세르히 씨는 “러시아군이 이곳을 점령한 뒤 보이는 모든 사람을 쏴서 아무도 (사체에) 가지 못했다. 어떻게 할머니를 죽일 수 있냐”고 분개했다. ○ 집에 남은 건 약탈 살인 강간의 흔적 군인들은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빼앗아 갔다. 또 자신들이 마련한 군기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집을 떠나라고 위협했다. 테티아나 마사노베츠 씨(65)는 “군인들이 내 지팡이를 건네면서 떠나라고 하면서 뭐든 다 훔쳐갔다”고 말. 군인들은 마사노베츠 씨 집 방 중 하나를 아예 화장실로 쓰며 더럽혔다. 볼로디미르 쉐피코 씨(66) 역시 3월 초 러시아 장갑차가 뒷담장을 밀고 들어오자 아내와 도망을 갔다가 러시아 군인들이 철수한 뒤에야 집에 돌아왔다. 집은 엉망이 돼있었는데 마당 지하창고에는 나체의 여자 시체 위에 모피 코트가 덮여있었다. 여성은 머리에 총을 맞았고 땅에는 총알 2개가 있었다. 이후 경찰이 출동해 조사를 했는데 집안에서는 사용한 흔적이 있는 콘돔이 발견됐다. ○ 탈환 후에야 수습된 시신, 10일까지 360구 3월말 우크라이나 군이 격전 끝에 부차를 탈환한 뒤에야 길거리에 방치됐던 사체들을 수습될 수 있었다. 이후 이달 2일까지 약 100구의 시체가 수습됐는데 약 일주일 후인 10일까지 그 수는 360구로 늘어났다. 시 관계자들은 이 중 10구는 어린이 시신이었다고 전했다. 이 시신 360구 중 250구 이상은 시신에서 총알이나 포탄 파편이 발견돼 전쟁 범죄 수사 관련 증거로 쓰이고 있다. 그 외에 다른 시신들은 추위, 기아, 약이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사망했다. 부차 검찰 관계자는 “쏟아지는 전쟁 범죄 관련 제보를 바탕으로 경찰이 수색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전쟁 범죄 피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요새화된 자신의 임시 지휘본부(command center) 사무실 내부를 처음 공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대통령실 직원, 경호 인력은 전쟁이 시작된 이후 47일째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업무를 하고 있다. 10일(현지 시간) 방영된 미국 CBS 다큐멘터리 ‘60분’에서 공개된 젤렌스키 대통령의 사무실은 기관총을 든 장병들이 지키고 있었고 곳곳에는 폭발물도 설치돼 있었다. 건물 내부가 캄캄해 손전등을 켠 채 건물에 들어선 CBS 기자에게 젤렌스키 대통령은 “공습 중 폭탄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불을 켤 수 없다. (사무실 건물이) 늘 어두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근무하는 것이 어떤지 묻는 질문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쨌든 일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달리 방도가 없다”고 답했다. 이곳이 신변 위협으로부터 안전한지 묻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괜찮다. (신변 위협에 대해) 꽤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경비대는 공습을 염려하고 있는데 공습대피 신호가 뜨면 우리 모두가 지하층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CBS는 “러시아 침공 3, 4일 안에 키이우가 함락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그건 젤렌스키가 도망갈 것이라는 가정하에 내려진 추정”이었다며 “젤렌스키가 국민들에게 도망가기를 거부했다고 밝힌 순간 우크라이나 역시 무너지기를 거부했다”고 평했다. 아내와 두 아이에게 키이우에 남기로 결정한 뒤 뭐라고 설명했느냐고 묻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내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었다. 설령 대통령이 아니었더라도 우크라이나에 머물렀을 것이다. 가족들은 (내 선택을) 이해해줬을 뿐 아니라 온전히 지지해줬다”고 밝혔다. 그는 “스스로를 영웅으로 만들려는 것도 아니다. 나도 가족을 사랑하고 더 오랜 시간을 함께 살고 싶다. 하지만 도망가느냐, 우리 국민들과 함께하느냐의 선택 사이에서는 당연히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연설에서 “도와줄 수 없다면 유엔은 존재 이유가 없다”며 직설적인 발언도 피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는 “조국을 파멸로 이끄는 외교라면 더 이상 관심이 없다. (전쟁 이후) 많은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와 우리 국민들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큰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현대 사회에서 한 사람이 살기 위한 능력, 그야말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며 “이 권리가 그렇게 비싼 건지 몰랐다. 이건 인간이 당연하게 보장받아야 할 권리”라고 강조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