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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랜섬웨어 해킹 공격으로 서비스가 중단된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접속 불능이 나흘째 이어지며 고객들의 불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게다가 예스24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기술 지원에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제대로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며 거짓 해명 논란에도 휩싸였다. 회원 개인정보 유출 여부도 사태 초기 “유출은 없다”고 공지했다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가 조사에 나서자 “유출 확인 시 개별 연락하겠다”는 추가 입장을 내놓았다.● “당국의 기술 지원에 협조하지 않아”예스24는 11일 입장문을 통해 “KISA와 협력해 원인 분석 및 복구 작업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KISA는 12일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며 공개 반박했다.KISA에 따르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10, 11일 예스24 본사로 사고 분석 전문 직원들을 두 차례 파견했지만, 간단한 구두 설명만 들었다. 예스24가 기술 지원을 받는 것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KISA 측은 “랜섬웨어 문제가 있다는 설명만 들었을 뿐, 서버 몇 대가 악성코드에 감염됐는지 피해 규모와 공격 유형 등에 대해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예스24는 KISA의 반박 이후에야 기술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KISA 관계자는 “예스24와 현장조사 일정 및 범위 등을 조율 중”이라고 전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당국의 복구 기술지원을 받는 것이 법적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지원을 거부하며 현장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했던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예스24는 가입 회원만 2000만 명이 넘어 개인정보 유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예스24는 9일 해킹 이튿날인 10일 “내부 조사 결과 회원 개인정보는 유출 및 유실이 없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11일 조사에 착수한 개인정보위는 “예스24가 랜섬웨어 공격을 인지한 뒤 조치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회원 정보 조회’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이후 예스24는 12일 오전 홈페이지에 “현재까지 개인정보 외부 유출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재차 밝히면서도 “향후 추가 조사 결과 개인정보 유출 확인 시 개별 연락을 드리겠다”는 안내문을 올렸다. 또 예스24나 금융기관을 사칭한 연락에 주의하고, 비밀번호가 다른 사이트와 동일한 경우 변경해달라는 안내를 덧붙였다.● “백업 시스템까지 파괴됐을 수도”사태가 커지자 인천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예스24 사건에 대한 입건 전 조사(내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이날 밝혔다. 경찰은 해킹범을 추적하기 위해 예스24 서버를 분석해 침입 경로와 해킹 수법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예스24의 피해 규모와 개인정보 유출 여부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예스24 홈페이지와 앱은 12일 오후까지도 ‘먹통’인 상태다. 이에 전자책을 구매하거나 공연 콘서트 티켓을 예매한 회원을 중심으로 불편이 커지고 있다. 한 고객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예매 내역서와 확인 메일이 없는데,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배우 박보검 팬미팅은 예매처가 예스24에서 놀(NOL)티켓으로 바뀌며 예매 시작일도 11일에서 19일로 변경됐다. 예스24 관계자는 “예매 고객들이 현장에 도착해 이름 등을 말하면 공연사가 입장시킬 수 있도록 현장 처리 시스템부터 먼저 복구했다”고 해명했다.보안업계에 따르면 예스24의 복구 작업이 이렇게 더딘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에 백업 시스템까지 해킹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염흥렬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백업 시스템을 잘 구축해 가용 데이터를 즉시 복구하면 서비스 중단을 막을 수 있다”며 “예스24의 경우 나흘간 먹통인 걸 보면, 백업시스템까지 파괴한 뒤 해커가 금전을 요구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예스24는 “늦어도 15일까진 시스템이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를 본 고객들을 대상으로 보상안을 마련 중이라고 덧붙였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랜섬웨어 해킹공격으로 나흘 째 서비스가 마비된 예스24가 12일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예스24는 이날 오전 홈페이지에 “현재까지 개인정보 외부 유출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면서도 “향후 추가 조사 결과 개인정보 유출 확인 시 개별 연락을 드리겠다”는 고객 안내문을 올렸다. 비록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지만 기존의 “개인정보 유출은 없다”던 입장과는 달라진 것이다.전날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는 예스24에 대한 개인정보 유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예스24는 9일 해킹을 인지한 뒤 조치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회원정보 조회 정황을 확인했다고 개인정보위에 신고했다.예스24는 9일 이후 현재까지 홈페이지와 앱이 복구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안 인력 10여 명을 모두 투입해 복구 작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스24는 11일 오후 2차 입장문을 통해 “최우선적으로 12일 중 공연 현장 입장처리 시스템을 복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그 외 각각의 서비스는 하루 이틀 내 순차적으로 복구될 예정이고, 늦어도 일요일(15일) 이내로는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번 해킹 사건으로 피해를 본 고객들을 대상으로 보상안을 마련 중이라고 덧붙였다.예스24가 당초 해명과 달리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기술지원 제안에 불응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KISA는 11일 보도자료를 내고 “예스24가 ‘KISA와 협력하여 원인분석 및 복구 작업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사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예스24 본사로 KISA 분석가들이 10일과 11일 두 차례 방문했지만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 KISA 측은 “첫 현장 출동 당시 상황을 구두로 공유받은 것 외에는 추가적으로 확인하거나 예스24와 협력하여 조사한 사실은 없다”면서 “예스24에 지속적인 협력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코로나19부터 군대까지 꽤 긴 시간이었는데 기다려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본명 박지민·30)은 군 복무를 마치고 11일 전역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민과 정국(본명 전정국·28)은 2023년 12월 육군 현역으로 동반 입대해 육군 5사단 포병여단에서 복무하고 이날 함께 제대했다. 두 사람은 이날 오전 경기 연천군 연천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팬들에게 거수경례로 인사했다.지민은 “저희가 그려 나가던 그림을 앞으로 계속 그려 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고 더 좋은 모습을 준비해서 보여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군대가 처음이었는데 사실 쉽지는 않은 곳이었던 것 같다”며 “감히 말씀드리자면 지나가다가 군인분들을 보시면 따뜻한 말이라도 해주시면 너무 영광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정국은 “카메라 앞이 오랜만이라 화장도 안 해서 민망하다”며 “남은 후임과 조금 일찍 전역한 동기들이 저희랑 같이 생활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소감을 전했다.팀의 맏형 진은 지난해 6월, 제이홉은 지난해 10월, RM과 뷔는 전날 각각 전투복을 벗었다. 공익근무요원인 슈가까지 21일 소집해제를 앞두고 있어 BTS는 조만간 ‘완전체’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올해 상반기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올 4월 출간한 ‘결국 국민이 합니다’인 것으로 집계됐다. 9일 교보문고가 발표한 ‘2025년 상반기 도서판매 동향 및 베스트셀러’에 따르면 ‘소년이 온다’는 종합 베스트셀러 1위, ‘결국 국민이 합니다’는 2위에 올랐다. 이날 예스24가 발표한 상반기 베스트셀러 순위에선 ‘결국 국민이 합니다’가 1위, ‘소년이 온다’가 2위였다. 교보문고 기준 한 작가의 책은 ‘채식주의자’(5위)와 ‘작별하지 않는다’(7위)까지 총 3권이 종합 10위권에 들었다. 4월 출간된 신작 ‘빛과 실’도 종합 17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 소설 판매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 상반기 베스트셀러 상위 10위 가운데 5개가 한국 소설이었다. 양귀자의 ‘모순’(3위), 정대건의 ‘급류’(6위)가 많은 독자의 선택을 받았다. 교보문고는 올해 상반기 소설 판매량은 전년 대비 28.1%, 한국 소설 판매량은 58.2% 늘었다고 밝혔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등 정치 일정은 도서 판매에도 강한 영향을 미쳤다. 예스24 기준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가 3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국민이 먼저입니다’가 9위에 올랐다. 정치 격변을 이해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비인기 도서였던 ‘헌법’ 관련서를 찾는 독자가 늘어나기도 했다. 탄핵 결정문과 헌법 전문을 묶은 ‘대통령 윤석열 탄핵 사건 선고 결정문’은 사회정치 분야 베스트셀러 5위에 올랐다.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이 추천한 ‘초역 부처의 말’은 종합 베스트셀러 4위에 올랐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주말이면 여덟아홉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학원으로 몰려온다. 몇 년 뒤에 명문 사립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이 아이들은 종일 학원에 앉아 끝도 없이 문제를 푼다.” 마치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대치동 학원가’를 연상케 하는 문장들. 실은 10일 국내 출간 예정인 대만 작가 우샤오러(吳曉樂)의 소설집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마르코폴로)에 쓴 작가의 말 일부다.》우 작가는 7년간 과외 선생으로 일한 경험을 이 소설들에 녹여냈다고 한다. 2018년 현지에서 드라마화돼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대만 최대 방송 시상식인 금종장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대사(‘한국 아이들의 적은 학교, 학원 그리고 부모다’)를 즐겨 인용한다”며 “한국을 타이완으로 바꿔도 얼추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최근 대만 소설이 국내에서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며 한국 팬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우 작가의 소설처럼 역사·문화적으로 닮은 점이 적지 않아, 친근하면서도 공감대가 크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 주빈으로 대만을 초청한 것을 계기로 국내 출판시장에서 점차 영향력을 넓혀 가는 분위기다. 18일 시작되는 서울도서전은 대만 작가만 23명을 초청했다. 대만 대표 작가로 불리는 천쉐(陳雪)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2023년 말 국내에 출간됐던 ‘귀신들의 땅’(민음사)의 천쓰훙(陳思宏), 소설 ‘타이완 여행기’로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과 일본번역대상을 휩쓴 양솽쯔(揚双子)도 방한한다. 한 출판사 대표는 “도서전 첫날에만 대만 현지 출판사, 에이전시 9곳과 30분씩 연달아 미팅을 잡아놨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도서전을 앞두고 덩주윈(鄧九雲)의 소설 ‘조연 여배우’(글항아리), 천쉐의 소설집 ‘악녀서’(〃)가 출간되기도 했다. 대만과 한국은 일제 식민 지배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이산 경험 등의 역사가 비슷하다. 대만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전통의 급속한 붕괴나 도농 격차, 극심한 빈부 차이와 과도한 경쟁 등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다. 국내에서도 13쇄를 찍으며 인기를 끈 ‘귀신들의 땅’은 1980년대 대만 작은 마을의 2남 5녀 대가족을 주인공으로 군사 독재와 도시 개발 등으로 얼룩진 근현대사를 그렸다. 다채로운 소재도 장점이다. 김효진 마르코폴로 출판사 대표는 “대만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동성애 문화를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등 개방적인 면들이 적지 않다”며 “대만 문학도 억압되지 않은 상상력으로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다”고 평했다. 정치적 혼란을 피해 홍콩이나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넘어온 작가들이 합류하며 대만 문학은 더 풍성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콩 우산혁명 이후 대만으로 이주한 찬와이(陳慧·천후이) 작가가 대표적이다.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에서 태어나 대만에 정착한 장구이싱(張貴興) 작가의 ‘강을 건너는 멧돼지’(마르코폴로)는 2020년 홍콩 ‘홍루몽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과 대만의 출판·문학 교류는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 타이베이국제도서전 주빈국으로 2021년 초청받는 등 대만 쪽 반응이 뜨겁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대만 문학은 중국과 비교해 확실히 친숙하고 결이 맞는 느낌”이라며 “대만 문학의 국내 소개가 그간 다소 미미한 편이었지만, 최근 분위기가 바뀐 만큼 교류가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주말이면 여덟아홉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학원으로 몰려온다. 몇 년 뒤에 명문 사립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이 아이들은 종일 학원에 앉아 끝도 없이 문제를 푼다.”마치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대치동 학원가’를 연상케 하는 문장들. 실은 10일 국내 출간 예정인 대만 작가 우샤오러(吳曉樂)의 소설집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마르코폴로)에 쓴 작가의 말 일부다. 우 작가는 7년간 과외 선생으로 일한 경험을 이 소설들에 녹여냈다고 한다. 2018년 현지에서 드라마화돼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대만 최대 방송 시상식인 금종상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대사(‘한국 아이들의 적은 학교, 학원 그리고 부모다.’)를 즐겨 인용한다”며 “한국을 타이완으로 바꿔도 얼추 맞아떨어진다”고 했다.최근 대만 소설이 국내에서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며 한국 팬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우 작가의 소설처럼 역사·문화적으로 닮은 점이 적지 않아, 친근하면서도 공감대가 크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 주빈으로 대만을 초청한 것을 계기로 국내 출판시장에서 점차 영향력을 넓혀 가는 분위기다.18일 시작되는 서울도서전은 대만 작가만 23명을 초청했다. 대만 대표 작가로 불리는 천쉐(陳雪)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2023년 말 국내 출간됐던 ‘귀신들의 땅’(민음사)의 천쓰홍(陳思宏), 소설 ‘쓰웨이 1번가’로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과 일본번역대상 대만 금정상을 휩쓴 양솽쯔(揚双子)도 방한한다.한 출판사 대표는 “도서전 첫날에만 대만 현지 출판사, 에이전시 9곳과 30분씩 연달아 미팅을 잡아놨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도서전을 앞두고 덩지우윈(鄧九雲)의 소설 ‘조연 여배우’(글항아리), 천쉐의 소설집 ‘악녀서’(〃)가 출간되기도 했다.대만과 한국은 일제 식민 지배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이산 경험 등의 역사가 비슷하다. 대만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전통의 급속한 붕괴나 도농 격차, 극심한 빈부 차이와 과도한 경쟁 등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다. 국내에서도 13쇄를 찍으며 인기를 끈 ‘귀신들의 땅’은 1980년대 대만 작은 마을의 2남 5녀 대가족을 주인공으로 군사 독재와 도시 개발 등으로 얼룩진 근현대사를 그렸다.다채로운 소재도 장점이다. 김효진 마르코폴로 출판사 대표는 “대만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동성애 문화를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등 개방적인 면들이 적지 않다”며 “대만 문학도 억압되지 않은 상상력으로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다”고 평했다.정치적 혼란을 피해 홍콩이나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넘어온 작가들이 합류하며 대만 문학은 더 풍성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콩 우산 혁명 이후 대만으로 이주한 찬와이(陳慧) 작가가 대표적이다.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에서 태어나 대만에 정착한 장구이싱(張貴興) 작가의 ‘강을 건너는 멧돼지’(마르코폴로)는 2020년 홍콩 ‘홍루몽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한국과 대만의 출판·문학 교류는 앞으로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한국도 타이베이국제도서전 주빈국으로 2021년 초청받는 등 대만 쪽 반응이 뜨겁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대만 문학은 중국과 비교해 확실히 친숙하고 결이 맞는 느낌”이라며 “대만 문학의 국내 소개가 그간 다소 미미한 편이었지만, 최근 분위기가 바뀐 만큼 교류가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할머니는 새벽에 돌아가셨다. 아빠는 그날 오후 부동산 중개업자를 찾아 집을 팔아버렸다. 소파, 책장, 잡지까지 집에 딸려 한꺼번에. 할머니의 집은 카페로 개조됐다가 이후 미용실로, 다음엔 여성 속옷 가게로 바뀌었다. 심상(尋常)하게.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시점부터 2019년 민주화 운동까지 세월을 따라가는 홍콩판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소설이다. 주인공은 누나 탄커이와 12세 터울 남동생 탄커러.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부모 밑에서 외롭게 큰 남매는 서로만이 기댈 언덕이다. 탄커러가 1997년 태어난 게 암시하듯, 소설은 홍콩 반환 뒤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개인적 사건과 역사적 사건이 빈번하게 교차하는 게 특징. 2006년 12월 15일 누나 탄커이는 홍콩섬과 주룽반도를 잇는 스타페리 부두 보존 시위에 갔다가 연인이 다른 여자와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개인의 이별은 부두의 상징물인 시계탑이 톱질에 잘려나가는 광경과 오버랩된다. 발랄하고 되바라진 아이의 서술로 전개되던 전반부와 달리 소설은 후반부에 이르러 진중해진다. 시위를 두고 누나와 동생이 갈등하면서다. 누나는 동생을 시위 현장에서 떨어뜨리려 애쓰고 동생은 누나를 원망한다. 실제로 홍콩 사회는 2014년 행정장관 직접 선거를 쟁취하려는 우산 혁명이 미완으로 끝난 뒤 ‘우산 혁명 우울증’을 겪었다고 한다. 완전한 직선제 요구가 좌절되면서 사회가 무력감에 휩싸였던 것. 1960년 홍콩에서 태어난 저자는 우산 혁명 당시 최초로 입장을 밝힌 지지자 10인 중 하나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다가 2018년 대만으로 이주했다. 작가는 당시 시위 현장에서 어린 소년을 보고 “동생,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게 소설의 기원이 됐다. 소설이 조금 더 나이 든 홍콩인이 후배들에게 보내는 온기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다. 홍콩인의 정리되지 않은 내면을 보며 한국 독자도 각자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첨밀밀’의 각본 기획에 참여한 시나리오 작가 출신 저자의 필력 덕에 쉽게 책장이 넘어간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한 줌밖에 안 되는 독자를 가진 (출판 만화) 창작자로서, 이 먼 나라에서 저희 작품에 대해 물어보고 읽어봐 주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4일(현지 시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만화 부문상을 받은 이동은 작가(47)는 5일 오후 파리에서 전화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이 작가는 그래픽 노블 ‘하나의 경우’(우리나비)로 정이용 그림 작가(42)와 함께 이 상을 받았다. 2017년 제정된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은 직전 1년간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된 현대 아시아 문학을 대상으로 수여한다. 만화 부문은 지난해 신설됐다. 소설 부문에서는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지난해, 황석영 작가의 ‘해 질 무렵’이 2018년 수상했다. ‘하나의 경우’는 지방 중학교로 발령받은 기간제 교사 ‘경우’와 이웃 ‘하나’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며 위태로운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하나에게 경우가 연민을 느끼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국내에선 2023년 10월에 나왔고, 프랑스에선 지난해 11월 ‘하나(Hana)’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프랑스 심사위원단은 “사회적 시각, 심리적 사실성, 이미지의 시적 아름다움이 마음을 뒤흔든다”고 평가했다. 이번 수상은 두 작가가 함께 작업한 지 10년 만에 처음 받는 만화 상이라고 한다. 이 작가는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스팸메일이 아닌가’ 싶었다”며 “권위 있는 문학상에 만화 부문이 있고, 문학과 동등하게 예술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놀라웠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1년째 1인 출판사를 운영 중인 A 대표는 요즘 2주 앞으로 다가온 서울국제도서전 준비로 정신이 없다. 홀로 부스 하나를 채우기 부담스러워 다른 1인 출판사 4곳과 부스 2개를 공동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A 대표가 빠듯한 사정에도 4년째 도서전에 참가하는 건 “이런 책 만드는 출판사는 여기서 처음 봤다”는 현장 독자 반응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많이 모이니, 책이 발견된다”며 “작은 출판사들에게 도서전은 전국구로 존재를 알릴 기회”라고 했다.국내 최대 책 축제이자 아시아 대표 북페어로 자리 잡고 있는 ‘2025 서울국제도서전’이 18일부터 닷새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다. 지난해 15만 명이 찾는 등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은 도서전은 올해 참가 출판사가 535곳. 지난해(452곳)보다도 83곳이 늘었다. 다만 1954년부터 70년 넘게 이어온 도서전이 올해 처음 주식회사 체제로 바뀌며 출판계 내부의 진통이 만만찮은 만큼 운영의 공정성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독자를 직접 만날 귀한 기회”최근 출판사들 사이에 서울도서전 참가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분위기다. 끝없는 도서 시장 침체 속에서 이만한 ‘특수’가 없다. 대형 출판사들은 저마다 부스를 10개 내외씩 마련하고, 주목할 만한 신간들을 도서전 기간에 출간하는 등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올해는 부스가 부족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한 출판사 대표는 “서울도서전은 10월 노벨 문학상 발표와 함께 연중 출판계의 가장 큰 이벤트”라며 “도서전을 찾는 충성 독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는 흔치 않다”고 했다. 또 다른 출판계 관계자는 “도서전에 부스를 내지 않으면 작가들이 서운해할 정도”라고 했다.올해 도서전은 러시아 톨스토이문학상 수상자인 김주혜 작가를 비롯해 소설가 김금희 김초엽 정보라 천선란 한유주 김동식 등이 북토크 프로그램으로 독자를 만난다. 영화감독 박찬욱이 신형철 문학평론가와 원작 소설에서 받은 영감을 나누는 행사도 열린다. 올해 도서전 주빈(主賓)인 대만의 유명 소설가 천쉐(陳雪)와 천쓰훙(陳思宏) 등도 연사로 나서 더욱 볼거리가 풍성하다.●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서울도서전은 원래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주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문체부는 2023년 수익금 관련 회계보고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됐다며 직접적인 보조금 지원을 끊었다. 이에 출협은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을 지난해 설립했다.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나 출판계에선 부정적인 기류가 거셌다. “도서전을 사유화했다”는 지적이다. 이후 조직된 ‘서울국제도서전 사유화 반대 연대’는 “특정 출판인들과 몇몇 서점이 주식회사 지분의 70%를 보유했다”며 “출판계가 공적 자산으로 키워온 도서전인데 공공성이 약화됐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실제로 주식회사 체제에선 도서전이 수익 창출 위주로 흐를 것이란 우려가 상당하다. 입장료는 지난해와 같지만, 올해 부스비는 일부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영세 출판사나 동네책방은 참여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동네책방 대표도 “지금도 수백만 원의 부스비가 부담돼 공공기관 등의 지원이 없으면 참가가 어렵다”고 답답해했다.이 때문에 소규모 출판사 등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단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한 출판사 대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도 주식회사 체제로 운영되지만 ‘공공성 유지’를 최우선 가치로 정관과 규약에 담고 있다”며 “출판계 시민단체 등을 이사로 참여시키는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윤철호 출협 회장은 “출판계의 우려를 알고 있고, 이는 도서전이 가진 앞으로의 숙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이전에도 자문 조직을 운영했던 적이 있는 만큼 여러 의견을 들어가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최근 출간된 ‘한국의 마음을 읽다’(독개비)는 무려 740쪽에 이르는, 이른바 ‘벽돌책’이다. 한일 양국에서 동시 출간된 이 책은 한국 47명, 일본 75명 등 122명이 저자로 참여했다. 내용은 간명하다. 양국 문인과 책방지기, 심리학자, 철학자 등이 저마다 ‘한국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책들을 추천했다. 책과 얽힌 개인적 인연들을 소개해 인상 깊다.이 책은 2014년 ‘한국의 지(知)를 읽다’와 2024년 ‘한국의 미(美)를 읽다’에 이은 ‘진선미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해당 시리즈의 엮은이로 참여해온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전 일본 도쿄외국어대 대학원 교수는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2010년대 초만 해도 일본에선 일부 한국 예술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지적인 세계는 거의 공유되지 못했다”며 “구미 지성계가 차지하는 위상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이에 한국의 지(知)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었다”고 했다.노마 교수는 2011년 국내 출간된 ‘한글의 탄생’(돌베개)으로 주시경학술상, ‘한국의 지를 읽다’로 일본 파피루스상을 받은 저명한 언어학자다. 이번 인터뷰 역시 한국어 질문에 한국어로 답해 왔다. 그에 따르면 실제로 2000년대까지 일본에선 한글조차 ‘일본의 가나 문자 같은 것이겠지’ 정도의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한글의 탄생’을 낸 뒤로 그런 인식이 상당히 바뀌었다고 한다.이후 노마 교수는 양국에서 많은 지식인의 예지를 모으기로 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게 진선미 3부작이다. 하지만 첫 책 ‘한국의 지를 읽다’ 때만 해도 저자 섭외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일본에선 “취지는 훌륭하지만 난 집필할 자격이 없다” 같은 반응이 많았다. 그때마다 “체계적인 전체상을 바라는 게 아니다. 살면서 한국의 지와 만났거나 교차했던 순간을 써 달라”고 e메일 수백 통을 주고받으며 설득했다. 일본 구온출판사의 김승복 대표가 이 과정을 함께 했다.마지막을 장식한 ‘한국의 마음을…’은 122명이 추천한 283권 가운데 중복 추천이 23권밖에 없다. 노마 교수는 “일본인이 가진 한국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도저히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는 게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바”라고 했다. 이번 신간에 담기진 않았지만 노마 교수가 추천하고 싶은 책은 무엇일까. 그는 “전공 분야의 편애를 담아 꼽자면, ‘훈민정음 해례본’과 ‘훈민정음 언해본’은 기적 같은 책”이라고 했다. “그런 책 어디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두 책 모두 뭐랄까, (언어학자로서 감명받아)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 출판사의 1962년 ‘조선말사전’도 대단한 책입니다.” 신간에는 일본 나고야의 한 서점 주인이 단골에게 최은영 작가의 장편소설 ‘밝은 밤’(문학동네)을 추천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책을 사간 고객은 일주일 뒤 전화해 “나 같은 할아버지도 감동했다고 모두에게 전해 달라”고 전했다. 필자는 서점을 운영한 19년 동안, 이처럼 뜨거운 감상을 전한 전화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고 썼다. 시리즈를 시작할 때와 지금은 10년 이상 세월이 흘렀다. 요즘 일본에선 한국 문학을 읽는다는 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극적으로 바뀌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영미나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 문학과 마찬가지로 한국 문학도 배우거나 생각하거나 함께하거나 고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서서히 자리매김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한국의 명산인 강원 설악산과 우리나라 최대의 내륙습지인 경남 창녕 우포늪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추진된다. 비무장지대(DMZ) 등에서 새로운 자연유산도 찾아 나선다. 국가유산청은 2일 ‘2025∼2029 자연유산 보호 계획’을 발표하며 우리나라 자연유산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5월 국가유산 체계를 도입한 뒤 첫 자연유산과 관련된 법정계획이다. 국가유산청은 “자연유산은 기존 문화재보호법에선 기념물로 분류됐지만, 지난해 도입한 국가유산 체계에 따라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연유산을 단순한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통합적 자산으로 관리한다는 취지다. 계획에 따르면 먼저 자연유산의 외연을 확장한다. DMZ와 근현대 명승, 동산형 지질유산 등을 중심으로 미래의 자연유산을 발굴한다. 천연보호구역의 범위도 손볼 예정이다. 현재 지정된 11곳 가운데 10곳이 지정 뒤 25∼60년이 경과돼 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자연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사 연구도 늘려갈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유산 등재 예비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설악산과 우포늪의 자연유산 등재를 추진하기로 했다. 몽골과는 공룡 골격 화석을 보존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며, 한중일 협의체를 꾸려 전통 조경 분야에서 교류에 나설 예정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조선시대 임금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창덕궁 불로문(不老門)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2일 “국가유산 보호와 보존 처리를 위해 창덕궁 후원 애련지(愛蓮池) 권역의 불로문 출입을 통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불로문을 통과할 수 없고 관람 동선도 기존엔 애련지 권역으로 갈 때 불로문을 지났으나, 앞으론 왼편의 의두합(倚斗閤) 건물을 거쳐야 한다. 불로문은 하나의 판석을 깎아 만든 높이 약 2m의 돌문으로 원래는 나무 문짝이 달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을 지나는 사람이 다치거나 아픈 일 없이 오래 살라는 의미를 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무병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문을 쓰다듬고 지나는 관람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門’자 가운데 부분에 과거 균열이 발생하는 등 보존 상태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궁능유적본부는 창덕궁 옥류천 일대도 전통 경관을 살리는 방향으로 정비하고 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지난달 천선란 작가의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허블)이 미국 워너브러더스와 6억 원대 영화화 판권 계약을 맺으며 화제를 모았다. 세간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은행나무) 역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을 제작한 다국적 제작사 RT 피처스에 3년 전 영화화 판권이 팔렸고, 지난주엔 노르웨이 여성 감독 테아 비스텐달이 연출하기로 정해진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 문학이 해외 영화사들이 주목하는 원천 소스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한국 문학의 해외 번역 출간 및 영화화 계약을 다수 성사시킨 영미권 출판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사진)는 이 같은 흐름을 두고 “모든 주요 미국 출판사가 한 권 이상의 한국 책을 출간한 데 이어, 영화사들도 ‘한국 비즈니스’에 뛰어들길 원하고 있다”며 “한국 문학이 현재 전환점에 와 있다”고 진단했다.● “스필버그적” 찬사 속 최단기 낙찰지트워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등을 해외에 소개한 1세대 한국 문학 에이전트로, 최근 ‘천 개의 파랑’의 영화화 계약을 성사시킨 것도 바로 그다. 그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천 개의 파랑’은 지금껏 해온 (영화화) 계약 중 가장 빠르게 성사됐다”고 했다. 이 작품의 입찰에는 워너브러더스 외에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할리우드 프로듀서와 유명 영국 제작사가 참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워너브러더스가 훨씬 많은 금액을 제안했다. 지트워는 “(원작에) 스타 배우 출연이나 유명 감독 연출이 확정돼야 판매되는 경우가 많은데, 워너는 그런 걸 요구하지 않았다”며 “원작 자체가 강력하다고 확신한 것”이라고 했다. 이 소설은 로봇 기수 ‘콜리’와 경주마 ‘투데이’의 우정을 그린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나 할리우드 영화 ‘씨비스킷’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 지트워의 말이다. 지트워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생하는 이야기이기에 고전적인 감성을 지니면서도, 신선하고 독창적”이라며 “(핵심 소재인) 경마가 미국에서 인기 있는 취미라는 것도 강점”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선 드라마 ‘옐로스톤’ 시리즈의 성공 이후 서부극이 인기를 끌고 있어요. 이 영화에 카우보이적인 요소가 반영될 수도 있습니다. 콜로라도, 유타, 몬태나 등 미국 서부의 목장은 훌륭한 배경이 될 겁니다.” 현재 워너브러더스는 영화를 연출할 감독을 찾고 있다. 감독과 각본가를 고용해 시나리오 초안을 만들기까지 보통 16∼18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한국 문학, 보편적이면서도 독창적” 편혜영 작가의 ‘홀’(문학과지성사)은 우리 문학의 할리우드 진출 사례 가운데 가장 진도가 빠르다. 최근 배급사가 정해져 이르면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샘 에스메일 프로듀서가 제작 중이고,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다. 테오 제임스, 정호연, 염혜란 등이 출연한다. 돌기민 작가의 과학소설(SF) ‘보행 연습’(은행나무)은 다코타 존슨의 프로덕션에 판매돼 현재 각본 작업을 하고 있다. 지트워 대표는 한국 문학이 한국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문화적 코드를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령 편 작가의 ‘홀’은 줄거리와 캐릭터들이 앨프리드 히치콕(1899∼1980)의 영화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1921∼1995)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 “클래식한 느낌이 있으면서도, 한국적 배경과 편 작가 특유의 카프카적인 감성이 아주 매혹적인 영화로 이어질 수 있게 하죠.” 영화 ‘기생충’(2019년)의 아카데미 작품상과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등은 한국 콘텐츠 전반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트워는 “한국 작가들 역시 진짜 최고 중의 최고를 찾아야 독자들의 흥미를 유지할 수 있다”며 “다른 사람을 흉내 내거나 베스트셀러 자체를 (목적으로) 쓰려고 하지 말고, 써야 할 이야기를 쓰라”고 했다. “유행을 따르지 말고, 유행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조언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영화가 소설의 충실한 재현이 되기보다는, 소설적 세계의 확장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돼 이르면 내년 개봉을 앞둔 소설 ‘홀’(문학과지성사)의 작가 편혜영은 1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 ‘더 홀’ 프로젝트는 김지운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HBO 드라마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 테오 제임스가 남편, 배우 정호연이 아내 역을 맡았다. 지난달 미국 오리온 픽처스가 이 영화의 전 세계 배급권을 확보했다. 편 작가는 “소설을 쓰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인 반면에 영화는 개인적 작업을 집단화, 세계화하는 과정”이라며 “오래전부터 김 감독의 팬으로 특유의 긴장과 유머, 통찰력과 영상 미학을 흠모했던 터라 더욱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할리우드 제작진과의 소통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편 작가는 “미국, 한국 제작자들과 주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며 “소설이 남성 주인공 중심으로 전개되다 보니, 소설에서 의도적으로 누락된 여성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다”고 했다. 특히 “영화에는 소설에 나오지 않는 여성 캐릭터의 면모가 나올 예정인데, 원작자로서 무척 흥미로운 설정이라고 감탄한 장면도 있다”고 했다. ‘홀’은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전신마비가 된 사람의 이야기로, 겉으론 행복해 보이는 부부 사이에 숨겨진 균열을 파헤친다. 본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국제커플로 각색되면서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편 작가는 “언어적 뉘앙스와 문화 차이로 인해 서스펜스가 더욱 강화될 듯하다”고 기대했다. 판권 계약을 성사시킨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는 ‘홀’에 대해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시나리오 작업은 미국 작가가 도맡았다. 편 작가는 “내가 원작자이기는 해도 영화 제작은 소설 창작과 완전히 다른 시스템에 의한 작업이라고 생각해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고 했다. 많은 원작 소설이 영화화 판권 계약을 맺지만 실제 제작에 들어가는 건 소수다. ‘홀’ 역시 바탕이 된 단편 ‘식물애호’가 국내에서 판권 계약이 체결됐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영상 제작이 미뤄졌다고 한다. 판권 계약 만료 뒤 미국 제작사 측에서 연락해 오면서 영화화에 성공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더불어 원작을 찾아 읽어주신다면, 시각적 표현을 다시 활자로 경험하고, 소설 특유의 언어를 발견해 주시면 기쁘리라 생각합니다. 꾸준히, 조용히, 계속 써 나가고 싶습니다.”(편 작가)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96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재일교포인 저자에게 김치는 늘 숙제였다. 일본에서 김치는 예전엔 ‘조선 절임’이라고 했고, ‘김치 냄새 난다’는 말은 조선인에 대한 대표적인 멸시의 표현이었다. 그의 어머니도 셋집을 구하다 집주인으로부터 “김치 냄새가 나서 도저히 집을 빌려줄 순 없겠어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저자도 어릴 적 집 냉장고에서 항상 김치 냄새가 풍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소설가인 저자가 평생 먹어온 것들을 통해 자신의 삶과 가족사를 되돌아본 에세이다.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인생의 단계마다 함께한 음식을 통해 들려준다. 부제가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했던 혀끝의 기억’인 이유다. 그의 가정에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버무려졌고, 음식도 평생 두 나라의 것을 오가며 살았다. 재일 한국인 2세로 올해 87세가 된 어머니는 평생 남에게 한국인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밖에서 마늘 냄새를 숨기려고 마늘을 적게 넣어 샐러드처럼 먹는 김치를 특별히 고안했다. 식구들이 아플 땐 곰탕을 끓여 먹였는데,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까지 꼬리뼈를 사러 다니곤 했다.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산다는 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양국 사이에 놓인 처지를 의미했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조차 크고 작은 갈등으로 이어지곤 했다. 저자가 6세 무렵의 일이다. 아버지가 갑자기 김치를 젓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아이들에게 김치를 먹여!”라고 어머니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김치를 된장국에 씻어 매운맛을 희석한 뒤 밥그릇에 올려줬다. 저자는 공포에 떨며 씻은 김치를 흰 쌀밥과 함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옆에 있던 언니는 김치를 먹자마자 바로 토해 버렸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당신이 아이들을 한국인으로 제대로 키우지 않아서 그런 거야!”라며 식탁을 뒤집어엎고 말았다. 이처럼 책 속에는 일본에 뿌리내리고 살면서도 지독할 만큼 한국 음식과 문화를 고집했던 친지들의 모습과 그로 인한 갈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늘 이리저리 흔들리며 확고한 귀속의식 없이 살아야 했던 저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김치를 변형해서 즐기게 됐고, 엄한 아버지와 희생적인 어머니를 용서하는 어른이 됐다. 그리고 ‘무엇이 나를 규정하든 나는 그냥 인간으로서 나이며, 두 문화를 모두 즐기는 나’라는 인식으로 나아간다. 저자는 최근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절임류가 김치라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흔 살을 바라보는 저자의 어머니는 지금은 한류의 영향으로 김치를 비롯한 한국 음식을 어디서나 팔고 있기에 ‘마음 놓고 마늘을 많이 넣은 김치를 먹을 수 있고, 쉽게 꼬리뼈를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며 흐뭇해한다고 한다. 오늘 내가 먹는 것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2012년 소설 ‘가나에 아줌마’로 일본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대상을 받았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최고 기온이 27도까지 올랐던 29일 오후. 서울지하철 5호선에 앉아 소설 ‘퇴마록’ 오디오북(사진)을 재생했다. 1편 1장. 악마의 힘에 도취된 교주가 피의 공양제를 벌이는 장면이었다. 안개에 휩싸인 회당, 횃불을 들고 도열한 승려들, 발 묶인 송아지 한 마리. 인상적인 장면들이 잇달아 나왔다. 이윽고 한 승려가 칼을 휘두르자 송아지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눈을 감고 들으니 성우가 읊어주는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재생됐다. ‘둥둥둥’ 북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렸고, 쇳소리가 간간이 들리며 신경을 긁었다. 어느새 더위가 싹 가셨다. 서사에 강점이 있는 소설인 만큼 오디오북으로 들을 때도 속도감이 느껴졌다. 오디오북 특성상 원작에 있던 상세한 주석은 생략됐다. 박 신부가 다섯 호법을 처음 대면하는 장면까지 들었을 때 열차는 광화문역에 들어섰다. ‘퇴마 세계관’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1994년 처음 출간돼 누적 판매 부수 1000만 부를 기록한 국내 장르문학의 전설 ‘퇴마록’이 8일 밀리의 서재에서 오디오북으로 나왔다. 이용자가 매긴 평균 별점은 5점 만점에 4.9점.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정대만 역을 맡은 장민혁 성우가 내레이션을 맡은 것도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이용자 가운데 40대 남성 비율이 21.9%로 가장 높은 것도 특징이다. 밀리의 서재 전체 오디오북 40대 남성 이용자 비율은 15.7%로, 40대 여성과 30대 여성에 이어 3번째인 것에 비해 높다. 올해 2월 극장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퇴마록’ 역시 오래된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관객 50만 명을 모았다. 전체관람가가 아닌 성인 타깃 국내 에니메이션으로는 이례적인 기록이다. 밀리의 서재 측은 “1990년대 중반 당시 10대 후반∼20대 초반이던 독자들이 지금 40대”라며 “이들 독자에게 ‘퇴마록’은 학창 시절 푹 빠져 읽었던 추억의 작품이고, 작품에 대한 충성도가 남다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인류는 필요한 양보다 30% 이상 많은 식량을 생산한다고 한다. 그런데 8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전히 굶주리고 있다. 식량은 넘치는데 왜 여전히 많은 이들이 배가 고픈 걸까. 캐나다 매니토바대 환경지리학과 명예교수인 저자가 수치와 통계를 바탕으로 식량 과잉과 기아가 어떻게 공존하는지 설명한다. 농업 기술의 발달로 단위 면적당 수확량은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전체 곡물 생산량의 약 3분의 1은 가축 사료로 사용된다. 식량이 인간이 아니라 동물을 먹이는 데 쓰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일부 저개발 지역에서는 사람보다 가축이 더 많은 곡물을 소비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세계 식량 체계는 지역 간 불균형과 환경 부담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저자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유통 인프라를 개선하며, 국제적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짚는다. 가축 사료로 전용되는 곡물의 일부를 인간의 식량으로 전환하는 정책도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 특히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이나 농업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국가에는 농업 기술과 저장, 유통 역량을 전수하고 개량 종자를 보급하는 국제적인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식량 문제 해결의 핵심은 기술 자체보다 의지와 정책적 선택에 달려 있다. 책에는 여러 관련 숫자가 많이 나온다. 저자도 이를 의식한 듯 “이 책에는 숫자가 가득하다. 그렇다고 해서 미안해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숫자를 통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만이 현대 식량 생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유일한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중국 작가는 다른 나라 작가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글쓰기의 금지 구역’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작가는 그 금지된 깊은 곳의 문을 열고 한 발짝씩 들어가야 합니다.” 1950년대 중국 쓰촨성 촨둥(川東). 일가족이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목을 젖혀 독 비상을 삼킨 뒤 들어가 누웠다. 뒷일을 맡은 며느리는 이들 위에 흙을 덮는다. 관은커녕 멍석이나 천도 없이 묻는 ‘연매장(軟埋葬)’. 이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지난달 국내 출간된 중국 소설 ‘연매장’(문학동네)의 한 장면이다. 이 책을 쓴 소설가 팡팡(方方·70)은 중국에서 루쉰문학상, 루야오문학상을 휩쓸며 중국에서 당대 최고의 여성 작가로 대접받던 인물. 하지만 2020년 1월 우한(武漢)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봉쇄에 들어갔을 때 중국 당국의 부실한 대응을 다룬 에세이 ‘우한일기’를 발표하며 삶의 전환을 맞는다. 미국에서 먼저 출간된 에세이 덕에 그는 2020년 영국 BBC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으나, 중국에선 금서로 지정되며 수난을 겪었다. ‘연매장’ 역시 중국에선 읽을 수 없는 책. 토지개혁을 부정적으로 다뤘다는 이유였다. 칠순을 맞은 올해, 어려운 상황에도 문학에 대한 신념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팡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연매장’은 주인공이 지주 계급이던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하며 현대사에서 희생된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사실 연매장은 중국 내에서도 요즘 대중에겐 익숙한 개념도, 단어도 아니다. 게다가 환생을 갈망하는 전통적 가치를 가진 중국인에겐 매우 잔인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연매장’이란 단어를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처음 들었다. 수년간 알츠하이머로 고통받으시던 중에도 “나는 연매장 당하고 싶지 않아!”란 말을 반복해서 하셨다고 한다. 그때 ‘연매장’이라는 단어가 내게 날아와 명중했고,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민감한 주제를 다뤄 금서로 지정됐다. 집필 과정에선 어려움이 없었나. “2015년 집필 때만 해도 인터넷에 토지개혁 관련 자료가 많았다. 개인 기록이나 회고도 아주 많았다. 촨둥의 몇몇 지역은 직접 답사를 가기도 했다. 역사학자들은 허심탄회하게 토지개혁의 이익과 폐단을 논했고, 탄쑹(譚松) 같은 대학 교수는 토지개혁 참여자들의 구술사를 연구했다. 그런데 ‘연매장’이 출간된 뒤 인터넷에서 토지개혁 관련 자료가 빠르게 삭제되는 걸 목도했다. 중국 작가는 역사적 사건이든 현재의 것이든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은 금기를 깨고 한 걸음씩 들어가야 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이 소설은 그저 토지개혁이란 주제를 다루는 관점을 하나 보태고, 토지개혁에 대해 쓸 수 있는 범위를 조금 넓히려는 시도였을 뿐이다. 소설은 결코 토지개혁을 평가하지 않았다. 그저 개인과 가정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묘사했을 따름이다. 금서로 지정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조심스럽지만 현재 어느 정도로 검열을 받고 있나. “우한일기 출간 직후부터 중국의 모든 저널과 잡지, 출판사에서 작품을 발표하고 출간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심지어 옛날 작품의 재출간조차 할 수 없다. 이렇게 한 사람의 출판권을 박탈해 놓고서 이유도 알려주지 않는다. 누구의 의도였는지도 알 길이 없다. 이런 일을 당하면 변호사를 찾아가도 소용이 없다. 소송을 걸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공개적으로 금서를 지정하지 않는다. 모두 암암리에 진행된다. 비유를 들어보겠다. 어떤 고위 당국자가 팡팡의 작품에 대해 듣고 흰자위를 번득였다면, 이는 곧 출판을 금지하라는 공문서를 내려보낸 것과 다름없다. 관리들은 직접 나서서 금서를 지정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악행에 흔적을 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누가 혹은 어느 기관에서 출판을 금지했는지 물어봤을 때, 내가 들을 수 있는 정보는 두 글자뿐이었다. ‘윗선.’” ―그럼 개인 생활도 제약이 따르지 않나. 현재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 “계속 중국에서 지내고 있다. 중국을 떠날 생각도 없다. 어찌 됐든 내겐 한어(漢語)가 모국어니까. 나는 오로지 모국어로만 글을 쓰는 작가다. 한어를 제외하고 구사할 줄 아는 외국어도 없다. 게다가 내 나이가 이미 일흔이다. 흔히들 ‘고희(古稀)’라고 하는 나이 아닌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 역시 부족하다. 물론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고는 싶다. 정부에서 여권을 돌려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현재 집필하고 있는 새로운 작품이 있나. “작품의 출간 및 발표를 금지당한 뒤에, 어떤 이유나 해명도 듣지 못했다. 그 때문에 나는 이러한 권력의 횡포를 ‘냉폭력(冷暴力·차가운 폭력)’이라고 부른다. 이 폭력이 너무도 냉담해서 실망하고 기도 많이 꺾였다. 원래 2020년 봄에 장편소설을 출간할 예정이었는데, 우한일기로 인해 그 작품은 세상에 나올 수 없게 됐다. 이후 몇몇 친구들은 팬데믹의 시작과 끝을 다루는 책을 쓰라고 권하고 있다. 우한일기의 집필 과정과 정부가 퍼부었던 ‘사이버 불링’(온라인 괴롭힘)까지 포함한 내용으로 말이다. 아직 집필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3년 동안의 변화와 체험에 대해 누군가는 온전히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설 ‘연매장’은 중국의 특정한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선 글쓰기란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망각과 기록은 때로 선택의 문제이며, 어떤 경우엔 기록마저도 진실을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작가가 처한 불가능성과 불확실성 속에서 글쓰기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사실 세상의 모든 문학작품을 켜켜이 쌓아 올린다고 해도, 삶의 진실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리고 나는 쓰고자 한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 글쓰기는 각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는 망각에 저항하기 위해, 또 다른 이는 이 세상을 기록하기 위해 쓴다. 어쩌면 속마음을 털어놓기 위해, 아니면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글을 쓸 수도 있다.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은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 글쓰기의 참된 의미는 기록 혹은 진실을 남긴다는 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쓴다는 것,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닌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중국 작가는 다른 나라 작가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글쓰기의 금지 구역’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작가는 그 금지된 깊은 곳의 문을 열고 한 발짝씩 들어가야 합니다.”1950년대 중국 쓰촨성 촨둥(川東). 일가족이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목을 젖혀 독 비상을 삼킨 뒤 들어가 누웠다. 뒷일을 맡은 며느리는 이들 위에 흙을 덮는다. 관은커녕 멍석이나 천도 없이 묻는 ‘연매장(軟埋葬).’ 이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지난달 국내 출간된 중국 소설 ‘연매장’(문학동네)의 한 장면이다. 이 책을 쓴 소설가 팡팡(方方·70)은 중국에서 루쉰문학상, 루야오문학상을 휩쓸며 중국에서 당대 최고의 여성 작가로 대접받던 인물. 하지만 2020년 1월 우한(武漢)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봉쇄에 들어갔을 때 중국 당국의 부실한 대응을 다룬 에세이 ‘우한일기’를 발표하며 삶의 전환을 맞는다. 미국에서 먼저 출간된 에세이 덕에 그는 2020년 영국 BBC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으나, 중국에선 금서로 지정되며 수난을 겪었다. ‘연매장’ 역시 중국에선 읽을 수 없는 책. 토지개혁을 부정적으로 다뤘다는 이유였다. 칠순을 맞은 올해, 어려운 상황에도 문학에 대한 신념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팡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연매장’은 주인공이 지주 계급이던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하며 현대사에서 희생된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사실 연매장은 중국 내에서도 요즘 대중에겐 익숙한 개념도, 단어도 아니다. 게다가 환생을 갈망하는 전통적 가치를 가진 중국인에겐 매우 잔인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연매장’이란 단어를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처음 들었다. 수년간 알츠하이머로 고통받으시던 중에도 “나는 연매장 당하고 싶지 않아!”란 말을 반복해서 하셨다고 한다. 그 때 ‘연매장’이라는 단어가 내게 날아와 명중했고,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민감한 주제를 다뤄 금서로 지정됐다. 집필 과정에선 어려움이 없었나. “2015년 집필 때만 해도 인터넷에 토지개혁 관련 자료가 많았다. 개인 기록이나 회고도 아주 많았다. 촨둥의 몇몇 지역은 직접 답사를 가기도 했다. 역사학자들은 허심탄회하게 토지개혁의 이익과 폐단을 논했고, 탄쑹(譚松) 같은 대학교수는 토지개혁 참여자들의 구술사를 연구했다. 그런데 ‘연매장’이 출간된 뒤 인터넷에서 토지개혁 관련 자료가 빠르게 삭제되는 걸 목도했다. 중국 작가는 역사적 사건이든 현재의 것이든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은 금기를 깨고 한 걸음씩 들어가야 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이 소설은 그저 토지개혁이란 주제를 다루는 관점을 하나 보태고, 토지개혁에 대해 쓸 수 있는 범위를 조금 넓히려는 시도였을 뿐이다. 소설은 결코 토지개혁을 평가하지 않았다. 그저 개인과 가정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묘사했을 따름이다. 금서로 지정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조심스럽지만 현재 어느 정도로 검열을 받고 있나.“우한일기 출간 직후부터 중국의 모든 저널과 잡지, 출판사에서 작품을 발표하고 출간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심지어 옛날 작품의 재출간조차 할 수 없다. 이렇게 한 사람의 출판권을 박탈해 놓고서 이유도 알려주지 않는다. 누구의 의도였는지도 알 길이 없다. 이런 일을 당하면 변호사를 찾아가도 소용이 없다. 소송을 걸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공개적으로 금서를 지정하지 않는다. 모두 암암리에 진행된다. 비유를 들어보겠다. 어떤 고위 당국자가 팡팡의 작품에 대해 듣고 흰자위를 번득였다면, 이는 곧 출판을 금지하라는 공문서를 내려보낸 것과 다름없다. 관리들은 직접 나서서 금서를 지정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악행에 흔적을 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누가 혹은 어느 기관에서 출판을 금지했는지 물어봤을 때, 내가 들을 수 있는 정보는 두 글자뿐이었다. ‘윗선.’” ―그럼 개인 생활도 제약이 따르지 않나. 현재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계속 중국에서 지내고 있다. 중국을 떠날 생각도 없다. 어찌 됐든 내겐 한어(漢語)가 모국어니까. 나는 오로지 모국어로만 글을 쓰는 작가다. 한어를 제외하고 구사할 줄 아는 외국어도 없다. 게다가 내 나이가 이미 일흔이다. 흔히들 ‘고희(古稀)’라고 하는 나이 아닌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 역시 부족하다. 물론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고는 싶다. 정부에서 여권을 돌려주기만 한다면 말이다.”―현재 집필하고 있는 새로운 작품이 있나.“작품의 출간 및 발표를 금지당한 뒤에, 어떤 이유나 해명도 듣지 못했다. 때문에 나는 이러한 권력의 횡포를 ‘냉폭력(冷暴力·차가운 폭력)’이라고 부른다. 이 폭력이 너무도 냉담해서 실망하고 기도 많이 꺾였다. 원래 2020년 봄에 장편소설을 출간할 예정이었는데, ‘우한일기’로 인해 그 작품은 세상에 나올 수 없게 됐다. 이후 몇몇 친구들은 팬데믹의 시작과 끝을 다루는 책을 쓰라고 권하고 있다. ‘우한일기’의 집필 과정과 정부가 퍼부었던 ‘사이버 불링(온라인 괴롭힘)’까지 포함한 내용으로 말이다. 아직 집필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3년 동안의 변화와 체험에 대해 누군가는 온전히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소설 ‘연매장’은 중국의 특정한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선 글쓰기란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망각과 기록은 때로 선택의 문제이며, 어떤 경우엔 기록마저도 진실을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작가가 처한 불가능성과 불확실성 속에서 글쓰기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사실 세상의 모든 문학작품을 켜켜이 쌓아 올린다고 해도, 삶의 진실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리고 나는 쓰고자 한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 글쓰기는 각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는 망각에 저항하기 위해, 또 다른 이는 이 세상을 기록하기 위해 쓴다. 어쩌면 속마음을 털어놓기 위해, 아니면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글을 쓸 수도 있다.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은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 글쓰기의 참된 의미는 기록 혹은 진실을 남긴다는 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쓴다는 것,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닌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고향을 떠나서 살게 되면 불안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삶의 가능성이 넓어질 수 있고, 더 많은 친구를 만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일본의 차기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자주 언급되는 소설가 다와다 요코 씨(65·사진)가 19일 한국을 찾았다.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가 주최한 ‘2025 세계작가와의 대화’에 참석한 그는 독일어와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중언어’ 작가다. 1960년 도쿄에서 태어난 다와다 작가는 1982년 와세다대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홀로 독일로 이주했는데, 이때 경험이 작품세계의 뿌리가 됐다. 그전엔 몰랐던 독일어를 익히면서 세상과 사물을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됐다고 한다. 이날 그는 자신이 쓴 소설 ‘히루코 3부작’ 얘기를 꺼냈다. 작중 주인공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을 떠돌아다니며 매일 다른 사람과 소통해야 하다 보니 스스로 언어를 만드는 경지에 이른다. 그는 이에 대해 “주인공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무슨 말이든, 그 말들이 다 섞이든, 말이 조금밖에 통하지 않든 상관없이 우정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와다 작가는 1993년 아쿠타가와상, 2005년 괴테 메달, 2018년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등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30여 개국에 소개됐는데, 가장 많이 소개된 나라가 한국이다. 보통 작가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쓴 작품을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다와다 작가는 자신의 문학을 ‘엑소포니(exophony·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을 쓰는 행위)’라는 능동적인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손수 번역할 뿐만 아니라 언어유희 등 다양한 실험을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최근 늘어나는 인공지능(AI) 번역에 관해서는 “매년 이탈리아어에서 독일어로 기계번역을 돌려보고 있는데 결과가 안 좋아지는 걸 느낀다”며 “(AI가) 불특정 다수가 한 번역어를 학습하기 때문에 질이 떨어지는 문장 비율도 그만큼 늘어나는 것 같다”고 했다. 다와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언어유희의 기원을 일본 전통 시(詩)인 하이쿠와 단가에서 찾았다. 그는 “일본 단가 중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아키’는 같은 음가를 가지지만 다른 의미(‘가을·秋’과 ‘싫증·飽き’)가 머릿속에서 뒤섞임으로 인해 새로운 이미지가 태어난다”고 했다. “지금까지 상투적으로 존재해 온 생각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될 수 있습니다. 머릿속이 리프레시(refresh)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거지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