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송평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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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칼럼니스트입니다.

pi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칼럼97%
사설/칼럼3%
  • [송평인 칼럼]上王과 중2병에 걸린 당 대표

    윤석열 씨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된 후 그의 정치력을 처음으로 평가받았다. 다행히 윤 후보는 김종인 씨에게 굴복하지 않았고 김 씨를 상왕(上王)으로 뒀다는 프레임에 휘말리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2012년 대선에서는 김 씨가 선대위의 원톱 같은 자리를 차지하지도 못했지만 그런 자리를 차지했다고 해도 강력한 파벌을 거느린 박근혜 때문에 전권을 휘두를 수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정치권 밖에서 온 신참자가 대선 후보가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씨가 선대위의 원톱을 맡을 경우 상왕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누가 일부러 퍼뜨릴 필요도 없이 누구나 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래서 총괄선대위원장을 견제할 수 있는 상임선대위원장을 둔다는 발상이 나왔을 것이다. 상임선대위원장으로서의 최적임자가 김병준 씨인가 하는 의문은 남아 있다. 다만 그 자리에 누가 오든 김종인 씨와는 생각을 달리하고 그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함은 분명하다. 김병준 씨 외에 누가 더 적임자인가 물으면 딱히 답하기도 쉽지 않다. 김종인 씨는 권력욕이 없는 노인이라서 상왕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지나치다는 사람에겐 한 가지 사실만 상기시키고 싶다. 그는 박근혜 탄핵 후인 2017년 뜬금없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가 다들 이상하게 여기자 12일 만에 접은 적이 있다. 김 씨를 상왕처럼 모시는 건 과거 쇄신파에서도 보지 못한 ‘김종인 키즈(kids)’의 특징이다. 김종인 키즈 중 현재 가장 큰 마이크를 갖고 있는 건 이준석 대표다. 상왕 프레임은 다른 누가 일부러 퍼뜨린 게 아니라 김종인 키즈가 스스로 만든 것이다. 당 밖에서는 진중권류가 국민의힘은 김 씨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당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서는 이런 식의 훈수를 둔 적이 없다. 보수 정당과 그 지지자들을 미숙아(未熟兒) 취급하면서 은근히 독재적 리더십을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김영삼 이후 정권을 잡은 보수 정당은 한 번은 친이(親李)계가, 한 번은 친박(親朴)계가 독주하면서 망가졌다. 국민의힘도 이제 어느 한 사람이나 어느 한 세력이 이끌어가는 정당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이 좋은 기회다. 윤 후보는 당내 세력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당의 체질을 협의체적으로, 민주적으로 바꿀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윤 후보 주변에 벌써 권력의 냄새를 맡고 몰려온 파리 떼가 없지 않다. 탈당했다 돌아온 친이계가 중심이다. 이들은 윤 후보라는 태풍을 국민의힘이란 가두리에 가둔 후 소멸시켜 버리려 했던 이준석-홍준표-유승민 연합군에 맞서 윤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는 걸 도왔으니 전리품을 취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친이계에 대한 반감도 친박계에 대한 반감 못지않게 크다. 한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는다는 검찰총장 시절 윤 후보의 생활 태도는 훌륭한 것이긴 하지만 사도(私道)와 왕도(王道)는 다르다. 친이계와는 더 확실히 거리를 둬야 한다. 윤 후보는 총괄선대위원장 자리를 비워놓았다. 계속 비워놓는 것이 김 씨에 합당한 예우이자 당의 화합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된다. 그 흔적은 동시에 김 씨가 끝까지 오지 않으면 몽니의 자국으로 남을 것이다. 김 씨에게 총괄선대위원장, 이 대표에게는 김병준 씨와 동급의 상임선대위원장 자리와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 자리를 줬는데도 이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이 대표는 ‘모든 권력을 김종인에게로’를 외치며 그만두겠다고 생떼를 부리고 있다. 중2병에 걸린 청소년 같다.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이나 당의 주인이 되고 나서도 만년 손님처럼 행세하는 게 김 씨와 비슷하다. 김 씨와 이 대표가 부린 최악의 몽니는 올 4월 재·보궐선거를 압도적 승리로 이끈 야권 연대를 산산조각 낸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단일화 없이 끝까지 완주할 뜻을 밝혔다. 안 후보의 지지율이 고작 5% 안팎이기는 하지만 국민의힘이 민주당과 박빙의 대결을 펼친다면 안 후보의 출마가 정권 교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다. 그들의 스텝은 아마도 그때부터 꼬이지 않았을까. 누가 밀지도 않았는데 꼬인 스텝을 밟다가 저절로 넘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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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이재명의 아는 체하는 역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얼마 전 방한한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 앞에서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거론했다. 그러나 ‘가쓰라-태프트 협약’은 없다. 비망록 수준의 문서가 있을 뿐이다. 역사는 복잡다단해서 검정고시나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하는 국사 정도로는 알아지지 않는다. 1905년 일본 가쓰라 다로 총리와 미국 윌리엄 태프트 육군장관이 서명한 문서는 협약(pact)이나 협정(agreement)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대화를 주고받았음을 ‘서로 확인한 비망록(agreed memorandum)’에 불과하다. 이 비망록은 서명 당시 공개되지 않았다. 1924년에 가서야 타일러 데닛이라는 학자가 우연히 발견해 ‘비밀협약(secret pact)’ ‘행정협정(executive agreement)’이라고 과장했다. 그러나 태프트 장관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전문(電文)의 제목 자체가 비망록일 뿐만 아니라 1959년 레이먼드 에스더스라는 학자가 데닛이 밀약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뺀 전문 내용들을 복원해 비망록임을 밝혀냈다. 이 비망록이 발견 당시 눈길을 끈 것은 일본은 필리핀에 관심이 없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보호령화에 이의가 없다는 대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 의미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은 필리핀을 이미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었던 반면 일본은 러일전쟁 후 곧 다시 전쟁을 일으킬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필리핀 불개입 보장과 미국의 조선 보호령화 인정 사이에 ‘대가(quid pro quo)’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 후보는 오소프 상원의원에게 일본에 의한 조선의 병합이 미국 탓이라고 말하기 위해 ‘가쓰라-태프트’ 얘기를 꺼냈다. 물론 학자들이 ‘가쓰라-태프트 비망록’의 의미를 축소했다고 해서 당시 미국이 일본 편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가쓰라-태프트 비망록’은 현상(現狀)의 변경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없었어도 일본에 의한 조선 보호령화는 진행됐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그 의미를 축소한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가쓰라-태프트 비망록’ 2개월 뒤 러시아와 일본의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한다. 조선에서 일본의 특수 이익을 인정하는 것이 조약의 주된 내용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한 공로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조선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지만 일본 외의 특정한 나라를 탓하기는 어렵다. 당시는 약소국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방지하는 걸 세계 평화의 선결 과제로 보던 시대였다. 미국이 자유세계의 가치를 위해 자국의 희생을 감수하게 된 것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부터다. 미국은 1950년 한국에서도 3만7000명의 자국민을 희생하며 싸웠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은 고립주의를 바탕으로 철저히 자국 위주의 현실적인 정책을 폈다. 미국만이 아니라 모든 열강이 자국의 손해를 감수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들어 있지도 않던 시대다. 가까운 시기에 미국이 한국을 위해 싸운 사실은 다 건너뛰고 돌연 다른 시대로 돌아가 자신도 국민 대부분도 잘 모르는 역사 문서를 들먹이며 미국 탓을 하는 대통령 후보가 우리가 보기에도 황당한데 미국 상원의원의 눈에는 얼마나 황당하게 비쳤을까. 오늘날 ‘가쓰라-태프트 비망록’과 포츠머스 조약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가쓰라-태프트 비망록’과 포츠머스 조약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세계열강 중 하나로 급부상한 데 대한 미국의 대응이다. 지금은 중국이 미국에 맞먹는 강대국으로 등장해 당시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미중(美中) 간 투키디데스 함정을 경고한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가 2017년 펴낸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 따르면 중국의 홍콩 편입과 대만 점령 다음은 한국의 예속화다. 지금 대만 점령 직전까지 와 있다. 반면 미국은 점점 더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서고 있다. 역사 앞에 겸손한 자세로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고 아는 체나 하고 있다가는 주변 강국에 예속된 구한말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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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상속 유류분 개혁

    사망자가 배우자가 있고 자녀가 둘일 때 첫째 자녀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했다 하더라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 첫째 자녀, 배우자, 둘째 자녀는 2.25 대 0.75 대 0.5의 비율로 상속받는다. 유류분(遺留分) 때문이다. 배우자와 자녀의 유류분은 법정 상속분의 절반이다. 배우자와 자녀 2명이 있을 때 법정 상속분은 배우자 1.5, 첫째 자녀 1, 둘째 자녀 1이므로 유류분은 배우자 0.75, 둘째 자녀 0.5이고 나머지가 첫째 자녀의 차지가 된다. ▷유류분 제도는 농경사회의 잔재다. 농경사회에서는 자녀들이 부모의 생산 활동에 동참한다. 한 자녀에게 전 재산을 물려줄 경우 다른 자녀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른 자녀에게도 최소한의 보상을 하는 게 유류분이다. 우리나라는 1977년 유류분 제도를 도입했다. 산업화의 한가운데서 시대착오적으로 농경사회의 잔재를 도입한 측면이 있다. ▷유류분 제도는 유럽 대륙 국가를 중심으로 남아있다. 영미법 계통에는 없다. 유럽 대륙 국가들도 오늘날 사망자 형제자매의 유류분 권리까지는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많다. 법무부는 9일 형제자매의 유류분 권리를 없애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유류분 제도를 개혁했다고 보기 어렵다. ▷산업사회에서는 가족이 함께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녀라고 해서 무조건 유류분을 줄 이유가 없다. 미성년자를 중심으로 평균적인 경제활동 시작 연령 미만의 자녀에게만 유류분을 줘도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 그 연령 이상의 자녀는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장애가 있는 자녀 등을 예외적으로 포함시킬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가업(家業)을 이어가기 어려운 이유가 가업 승계 목적의 상속에 대한 면세 혜택이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자녀들이 유류분 권리를 행사해 지분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류분 제도는 근대적 상속의 제1원칙인 유언의 자유를 제한한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유언의 자유를 제약하는 요인은 가능한 한 줄이는 게 좋다. ▷상속은 법정 상속에서 개인 의사를 존중하는 유언에 의한 상속으로, 다시 신탁 등을 이용한 상속으로 발전하고 있다. 신탁 상속은 재산을 신탁회사에 맡겨 관리하면서 상속인에게 어떻게 배분할지 미리 정해 놓았다가 사망 후 배분된 재산의 비율대로 수익금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엄격한 요식을 요구하는 유언에 비해 유연하고, 효력에 대한 분쟁이 잦은 유언에 비해 확실한 상속 방법이다. 다만 미국처럼 유류분 제도가 없어야 발전할 수 있다. 유류분 제도의 더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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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오·덩 반열 오른 시진핑[횡설수설/송평인]

    8일 시작돼 11일 끝나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주목을 받는 건 여기서 ‘역사(歷史) 결의’란 걸 채택하면 시진핑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장기 독재까지는 한 단계만 남기 때문이다. 남은 한 단계는 시진핑 집권 10년이 되는 내년에 열리는 새로운 회차의 공산당 대회다. 제20차가 되는 이 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이 세 번째 당 총서기로 선출되면 국가주석직에도 연임되면서 장쩌민 이래 중국 지도자의 ‘10년 집권’ 관행이 깨진다. ▷약 3000명의 대표가 참석하는 공산당 대회는 약 200명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가 좌우하고,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는 약 25명으로 구성된 중앙정치국이 좌우하고, 중앙정치국은 당 총서기를 포함한 7인 상무위원이 좌우한다. 당 총서기인 시진핑이 권력을 강화하면서 상무위원들의 집단지도체제도 유명무실해졌다. 상무위원들의 결정은 시진핑이 좌우한다. ▷시진핑의 권력 강화는 그의 집권으로부터 5년이 지난 2017년부터 가시화했다. 장쩌민 시대에는 덩샤오핑이 지정한 후진타오가 후계자로, 후진타오 시대에는 장쩌민이 지정한 시진핑이 후계자로 집권 5년이 지나 부상했다. 후진타오는 2017년 시진핑을 이을 후계자를 지정하지 못했다. 시진핑이 막았다고 볼 수 있다. 격대지정(隔代指定) 원칙이 깨진 것이다. 시진핑 집권 10년이 되는 내년에도 후계자가 부상하지 않으면 시진핑의 집권은 15년을 넘어 20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시진핑을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같은 반열에 올리는 공작은 여러 단계에 걸쳐 진행됐다. 2017년 제19차 공산당 대회의 결정에 따라 제19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가 소집돼 공산당 당장(黨章)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삽입했다. 2018년 국가 입법 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는 헌법(憲法)에서 ‘국가주석직 3연임 제한’ 조항을 삭제했다. 지금 열리고 있는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 앞서 공산당은 100년사를 펴냈다. 그 속에 시진핑 관련 내용을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비슷한 분량으로 기록했다. ▷공산당 대회에서 역사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결의가 채택되는 건 이번이 세 번째다. 1945년 역사결의에는 마오쩌둥 사상을 중심으로 단결과 통일의 필요성을 담았다. 1981년 역사결의에는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노선을 확고히 하는 내용을 담았다. 2021년 역사결의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미중(美中) 대결 시대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의 역사적 당위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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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김종인과 이준석이 불러낸 안철수

    안철수의 대선 출마가 정권 교체의 길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안철수를 다시 불러낸 것은 김종인과 이준석이다. 김종인은 올 4월 재·보선이 끝난 후 안철수를 향해 ‘건방지다’고 말했다. 안철수가 ‘재·보선은 야권의 승리’라고 말한 데 대한 반응이다. 재·보선은 안철수가 마련한 야권의 승기를 국민의힘이 조직의 힘으로 가로챈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안철수도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피눈물을 삼키며’ 오세훈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김종인은 고마움을 표하기는커녕 막말로 응답했다. 정치인의 절제를 말하기 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준석은 ‘어쩌다 국민의힘 대표’가 돼서는 그 자리를 이용해 침묵하는 안철수를 계속 건드리면서 안철수와 선거에서 붙을 때마다 진 패배에 대한 뒤끝을 작렬시켰다. 최근에도 “안철수와 결별한 지도자는 대통령이 되고 통합하려 노력한 지도자는 고생한다”고 깐죽거렸다. 안철수를 자극하기만 할 뿐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늙거나 젊거나 간에 제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자들이 연이어 국민의힘을 이끌고 있다. 재·보선에서 야권이 압도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과 안철수가 뜻을 모으고 바깥에서 윤석열이 지원하면서 전(全) 보수·중도 진영이 정권교체의 기치 아래 단합했기 때문이다. 그 단합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김종인이다. 김종인에게 재·보선은 야권이 권력을 되찾느냐 마느냐의 문제 이전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끝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그는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 선회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국민의힘이 서울시장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 국민의힘을 이끄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끝날 수밖에 없었다. 오세훈의 승리는 김종인의 머릿속에서는 자신과 국민의힘의 승리일 뿐이지 야권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을 안철수가 야권의 승리라고 하니 저도 모르게 ‘건방지다’는 말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재·보선은 누가 봐도 단합된 야권의 승리였다. 반문(反文) 유권자들에게 오세훈과 안철수의 단일화에서 누가 되든 큰 차이가 없었다. 오세훈이 아니라 안철수가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과 붙었더라도 승리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안철수가 서울시장이 됐다면 국민의힘과 중도파가 더 단합된 분위기 속에서 대선을 준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종인의 막말에 이어 야권 단합의 분위기를 꺾은 것은 윤석열의 국민의힘 조기 입당이다. 정치 적응을 위한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던 윤석열은 국민의힘 밖에서 안철수 등과 힘을 모았다가 단일화를 꾀했어야 했다. 정작 대선은 남 일처럼 보면서 자기 치적이 될 국민의힘 경선 흥행에만 몰두한 이준석에게 놀아나 조기 입당을 선택하는 바람에 주위에 권력의 냄새를 맡은 똥파리들이 잔뜩 몰려들어 정권교체의 대의(大義)는 후퇴하고 권력투쟁만 부각됐다. ‘구라’와 정치적 발언을 구별하지 못하는 윤석열을 보면서 중도적인 유권자들은 망설이게 됐다. 그것이 안철수가 움직일 여지를 열어줬다. 김종인의 정치적 승리는 이상하게도 늘 나라의 실패로 이어졌다. 그가 한번은 박근혜의 당선을 도와, 한번은 문재인의 재기를 도와 킹메이커로 불리게 됐지만 나라는 두 대통령의 임기를 거치면서 잃어버린 10년으로 빠져들었다. 오세훈의 서울시장 당선도 당장은 김종인의 정치적 승리로 보였다. 그러나 김종인이 승리를 독차지하기 위해 분열을 조장하고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조기 입당하고 안철수가 대선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재·보선을 승리로 이끌었던 야권 단합은 완전히 사라졌다. 인간사 흔히 성공한 그것으로 망하기도 하는 법이다. 이제 와 안철수에게만 수(手)를 물리라고 할 수 없다. 진보 진영은 민주당과 정의당이 같이 나온다. 정의당이 나온다고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판이 바뀐 이상 중도·보수 진영도 국민의힘과 안철수가 같이 나오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걸 문제 삼는 쪽이 이상하다. 안철수에게 더 이상 스스로 당선될 힘은 남아 있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를 떨어뜨릴 힘은 있다. 안철수가 이번에는 독심을 품은 듯하다. 안철수를 그렇게 만든 건 김종인과 이준석이다. 안철수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自信)했으니 그랬을 것이다. 자신인지 자해(自害)인지 두고 보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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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고담시장’ 이재명

    성남은 특별한 시군 기초자치단체다. 서울 강남에 인접한 배후지역이라는 위치 덕분에 강남 다음으로 아파트 값이 비싼 판교와 분당이 있고 실리콘밸리 같은 판교 IT 단지도 있다. 지방세만으로도 세수가 넘쳐 국가나 경기도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다시피 하니 간섭도 거의 안 받는다. 그래서 시장의 권력이 막강한데도 지방이라서 언론의 감시도 소홀하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2010년 성남시장이 되자마자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을 했다. 전임 시장이 호화 시청사를 짓느라 돈을 펑펑 쓰긴 했지만 재정자립도가 그보다 훨씬 못한 지자체도 모라토리엄을 선언해 본 적이 없다. 정작 돈을 받아야 할 국가 측은 한 해 수백억 원씩만 갚으면 된다는데 돈을 줄 쪽이 오히려 수천억 원 빚 타령을 하며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그리고 3년 뒤, 있지도 않던 모라토리엄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찬하더니 이후로는 넘쳐나는 세수에다 경기도의 가난한 시군으로 가야 할 돈까지 움켜쥐고 ‘나 홀로 퍼주기 복지’를 하면서 경기지사와 대통령으로 가는 정치적 가도를 닦았다. 대장동 개발은 그의 2014년 재선 이후 본격 추진됐다. 그는 자신은 100% 공영개발을 고집했지만 국민의힘 시의원들이 반대해 못 했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그의 재선 이전에는 타당하지만 재선 이후에는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이 다수를 점했기 때문에 거짓말이다. ‘두 번 담그기(double dipping)’란 말이 있다. 한 번은 공영개발에 담가 저가에 토지 수용을 한 뒤 또 한 번은 민간개발에 담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대장동 민간개발을 주도하다 이 지사에게 사업권을 뺏긴 업체에 따르면 민간개발만으로는 예상 수익이 3400억 원이었지만 관이 개입해 토지 수용에서만 6000억 원의 이득이 더 났다. 손해는 원주민 몫이었다. 이 지사는 100% 민간개발보다 더 탐욕적인 방식을 택하면서 자신의 임기 중 손에 쥘 확정 금액에만 정신이 팔려 민간업체 초과이익 환수 조항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나중에 막대한 민간업체 이익을 보고 그 일부를 빼돌리려 했는지는 다음 얘기다. 무능이냐 부패냐가 아니라 무능 기본에 부패 추가가 어느 정도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배트맨 시리즈에는 고담시라는 가상 도시가 나온다. 성남시는 이 지사 재임 이후 선량들 위에 약탈자들이 활개 치는 고담시를 닮아갔다. 이 지사, 정진상 캠프 부실장 다음의 ‘넘버3’였다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는 대장동 설계를 지휘하면서 실무를 담당한 변호사(남욱)와 회계사(정영학)의 뺨을 후려갈길 정도였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에 출마할 때 선대본부장을 한 김인섭은 백현동 개발 시행사 대표를 협박해 지분 25%를 받아가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지사 측근들의 조폭 같은 짓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실제 조폭이 등장한다. 이 지사는 변호사 시절 조폭 사건을 수임했다. 성남시장 시절에는 그 조폭 출신이 운영하는 기업에 중소기업인 대상을 줬다. 후임인 은수미 현 성남시장은 바로 그 기업으로부터 1년간 운전기사와 차량을 제공받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이 항소심의 절차적 오류를 트집 삼아 벌금 90만 원만 선고하는 바람에 시장직을 유지했다. 그 조폭이 성남 국제마피아파이고, 출신 기업가가 이준석이고, 기업이 코마트레이드임은 검찰 공소장과 판결문에도 다 나온다. 국회 국감장 화면에 등장해 이 지사에게 뇌물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박철민(수감 중)은 이준석 아래 조직원이었다고 한다. ‘돈 사진’의 진위 논란이 불거져 있지만 본인이 얼굴과 실명을 밝히고 ‘거짓이면 처벌받겠다’고 한 만큼 정식 고발 절차를 밟게 하고 검찰이 사실인지 무고인지 수사해 잘못을 가려내야 한다. ‘흐흐흐, 크크크’ 국감장에서 조커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조커는 사실 힘은 세지 않다. 그럼에도 위협적인 것은 규칙을 무시하고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공격하기 때문이다. 배트맨까지 쩔쩔맬 정도다. 이 지사는 모라토리엄 선언 때부터 조커적 재능을 보여줬다. 민주당에서조차 ‘이재명은 한다면 한다. 거짓말까지도’라는 자조적인 말이 나왔다. 조폭의 말이 그대로 믿기 어려운 만큼 이 지사의 말도 그대로 믿기 어렵다. 어디 거짓말뿐이겠는가. 쌍욕에 표절에 범죄(전과 4범)까지. 이 불온한 기운을 멈춰 세워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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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김정은, 생뚱맞은 주적론

    한국은 노무현 정권 시절 국방백서에서 ‘주적’이란 표현을 삭제했다. 이후 보수 정권에서 되살리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주적(primary enemy) 대신 가장 주요한 위협(primary threat) 등의 표현을 썼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군사적으로는 조삼모사(朝三暮四)다. 우리가 주적이란 말을 쓰든 가장 주요한 위협이란 말을 쓰든 실제 군사적 현실의 주적은 북한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주적이란 말을 쓰든 안 쓰든 실제 군사적 현실의 주적이 한국과 미국인 것은 변함없다. ▷10일은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일이었다. 북한은 이날 주로 열병식을 개최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김정은이 열병식에 참가했다는 보도는 없고 국방발전전람회에 참가했다는 보도만 있어 열병식 대신 일종의 무기전람회를 개최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그 자리에서 지난달 시험발사한 극초음속미사일(화성-8형) 등 최신 무기를 망라해 보여준 뒤 국방력 강화를 핵심 국가정책으로 천명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등 특정한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는 주적론을 펼쳤다. ▷김정은의 그날 주적론은 생뚱맞은 측면이 있다. 우선 그날의 무력 과시 기조와 맞지 않는다. 게다가 김정은은 올 1월 당 대회에서만 해도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 지향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인 2017년에는 주민들을 상대로 ‘남조선은 우리의 주적’이라는 사상 강연회를 잇달아 열었다. 북한 정권의 생각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남북 대화, 북-미 대화 재개를 의식한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김정은의 주적론 립서비스가 최근 미국 정부의 대북 정보기관 코리아미션센터(KMC) 해체에 호응하는 태도 변화라는 분석도 있지만 영변 핵시설 원자로 재가동 의혹에 대한 국제사회의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목적이라는 상반된 분석도 있다. 다만 그 의도가 어떠하든 ‘주적은 전쟁 그 자체’라는 말은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든 성인군자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다. 최소한 한반도 비핵화의 대의(大義)를 거슬러 핵무기를 개발하고 그 고도화를 꾀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주적이란 표현의 삭제가 평화를 가져오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주적은 전쟁 그 자체’라는 말이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거나 한국이 핵무기 통제권을 얻어 남북이 서로에 대해 대등한 군사적 억제력을 확보한 위에서만 함께 뜻을 모아 전쟁 그 자체를 주적으로 삼는 한반도 평화의 추구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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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이재명, 민주당의 황혼

    경기 성남 분당의 한 교회를 10년 넘게 다닌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재선에 도전하던 2014년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목사가 예배 시간에 이 지사의 성남시장 재선 출마 소식을 광고했다. ‘이 지사가 이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한 번 놀랐고, ‘이 지사가 (어느 교회든)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또 한 번 놀랐다. 2016년 ‘혜경궁 김씨’의 댓글이 SNS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지사와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의 잠재적 대권후보로 경쟁할 때다. ‘혜경궁 김씨’는 문 대통령을 향해 ‘한국말도 통역이 필요한 문어벙’ 등의 거친 말을 쏟아냈다. 이 지사 측은 ‘혜경궁 김씨’는 부인 김혜경 씨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곧 댓글을 쓴 아이디와 똑같은 아이디가 우리 교회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발견됐는데 아이디의 주인이 김혜경 씨였다. 이 지사를 교회에서 본 적은 없다. 큰 교회니까 못 볼 수 있다. 그래서 다른 교인들에게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물어봤지만 봤다는 사람을 못 봤다. 목사는 몇 주 전 일요일에 이 지사가 우리 교회 교인이 아니라고 밝혔다. 과거 김혜경 씨가 남편의 선거운동에 이용하기 위해 등록만 해준 것이 아닐까 싶다. 목사가 7년이 지나 이 지사의 교인 여부를 확인해준 것은 형수 욕설 녹음파일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형수에게 악감정이 있더라도 처음에는 조곤조곤 얘기해 보려 시도하다가 참기 힘들면 목소리를 높이는 게 보통이다. 그의 말은 다짜고짜 옮기기도 거북한 쌍욕으로 시작한다.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 아닌 사실에 교인들이 큰 자괴심을 느꼈을 것이다. 이 지사는 소년노동자로 시작해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성남시장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생계형 좌파라는 게 있다. 이들에게는 본래 좌파가 지닌 원대한 이념이 없다. 너무 원대해서 우파로부터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그런 이념 말이다. 생계형 좌파는 눈앞의 이익이 있으면 놓치지 않는다. 처음에는 먹고살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을지 몰라도 웬만큼 먹고살게 된 다음에도 관성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얻기를 추구한다. 이 지사와 그 주변 세력에서 언뜻언뜻 느껴지는 낯선 행태는 밑바닥으로부터 ‘오징어게임’식의 생존투쟁을 통해 단계를 밟고 올라온 사람들의 치열함과 무관치 않다. 그 치열함이 윤리적으로 가다듬어진다면 더없이 좋은 성품으로 승화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웹툰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무자비하고 탐욕적인 캐릭터가 된다. 이 지사가 2016년 ‘정부가 매년 성남시 돈 1051억 원을 빼앗아 가려 한다’고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1051억 원의 교부금은 분당과 판교 덕분에 부자 도시가 된 성남시는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고 대신 경기도내 가난한 시군으로 가야 할 돈이었다. 이 지사는 이마저도 빼앗기지 않겠다고 단식에 들어갔다. 난 그의 스크루지처럼 탐욕스러운 단식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가 그로부터 ‘기레기’ 공격을 당했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가 나서 무모한 단식이라고 여기고 말렸으니 망정이지 그대로 뒀으면 아무도 동조하지 않는 단식을 중단하지도 못하고 큰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음대 성악과를 나와 건설현장에서 ‘힘’쓰는 친척 동생이 있다. 덩치가 커 성량은 좋았으나 성악으로 먹고살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민노총을 위해 경쟁업체를 밀어내는 역할을 했다고 들었는데 얼마 전 만나니 한국노총으로 옮겨 비슷한 일을 한다고 한다. ‘대장동 게이트’의 유동규를 보니 그도 음대 성악과 출신으로 덩치가 좋다. 건설업체 운전기사 명목으로 그 바닥에 들어간 모양이다. 2010년경 분당 리모델링 조합장을 할 때 성남시장 선거에 도전하는 변호사 이재명을 만난 이후 측근이 됐다고 한다. 이 지사 주변에는 경기동부연합의 떨거지들, 건설업체의 삐끼들에 조폭까지 맴돌고 있다. 이익이 될 만한 것의 냄새를 맡는 데는 귀신같고, 한번 냄새를 맡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하려 하고, 취한 이익을 어떻게 숨겨놓아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지사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이 생계형 좌파에 권력을 넘겨주려 한다. 저 정당도 수명이 다했다는 느낌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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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두 얼굴의 권순일

    이재명 경기지사는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방송 토론회에서 ‘친형의 강제 입원을 지시한 적이 있느냐’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강제 입원을 지시한 적이 있지만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라고만 했어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강제 입원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다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까지 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과 최선임인 권순일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재판관 10명은 유죄 5 대 무죄 5로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그러나 대법원장을 빼고 가장 늦게 의견을 내는 최선임이 무죄 편을 들면서 추가 기울었다. 대법원장은 다수의견을 따른다는 관례에 따라 자동적으로 무죄 편에 섰다. 이 지사는 5 대 7로 무죄가 확정됐다. ▷당시 공표의 개념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권 대법관은 공표는 활자화의 의미를 가진 ‘퍼블리시(publish)’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토론에서의 발언에는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런 주장은 대법원의 기존 판례에 반한 것이어서 반대의견 대법관들은 반발했다. 그러나 결국 토론에서의 발언에는 사실이냐 허위냐의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지가 주어져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말은 글과 달리 현장에서 공방(攻防)을 통해 부정확성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에 일도양단 사이에 여지가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늘 그렇듯이 어느 정도냐가 문제다. 정작 권 대법관 자신은 2015년 대법원 소부의 주심을 맡아 박경철 익산시장이 방송 선거토론회에서 상대편 후보가 한 건설사와 모종의 거래를 통해 쓰레기 소각장을 변경했다는 허위사실을 공표한 사실을 인정했다. 피의자가 누구냐에 따라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권 씨는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대법관에 임명됐다. 그의 판단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2017년 12월 대법관이 겸임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됐다. 지난해 대법관 임기가 끝났는데도 관례를 무시하고 선관위원장을 계속 하려다가 빈축을 사고 결국 물러났다. ▷최근에는 대장동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1억50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이 지사 무죄에 결정적 기여를 한 덕분이 아니냐는 구설에 올라 있다. 이 지사가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은 사실 중에는 선거 공보물 등에 대장동 개발 이익을 과장했다는 등의 내용도 있다. 대장동과 이 지사의 관련성을 몰랐다는 권 씨의 해명은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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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억울한 민사고

    19년 전 강원도 횡성의 민족사관고를 찾아 학생들이 실제로 어떻게 공부하는지 본 적이 있다. 한 학생이 쓴 영어 에세이의 첫 문장이 취재수첩에 아직 남아 있다. 그 학생이 혼자 운동장 트랙을 돌며 지난 학교생활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밤이 두 팔로 지평선을 감싸면 가로등 빛은 더욱 밝아져 구석구석과 틈까지 비춘다(As the night wraps her arms around the horizon, the street lamps glow ever brighter, revealing every corner and cranny).’ ▷사재 1000억 원을 들여 민사고를 세우고 키운 최명재 파스퇴르 회장은 국내 대학교육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 대학에서 공부해 노벨상을 받을 사람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민사고에는 국내 진학반과 해외 유학반이 있다. 최 회장은 국내 진학반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당장 유학 갈 여건이 안 되는 영재를 모른다 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민사고는 학부 과정에서부터 유학할 학생을 길러내는 데 주력했다. ▷민사고는 1999년부터 올해까지 하버드대 13명, 예일대 20명 등 985명을 해외 유명 대학에 진학시켰다. 1970년대 중반 고교 평준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유학은 주로 국내에서 대학을 마치고 해외에서 석박사 과정을 하는 것이었다. 민사고를 시발로 외고 과학고 등에 해외유학반이 생기고 나서야 학부 과정부터 해외에 나가서 하는 글로벌 인재 육성 코스가 복원됐다. 이런 교육의 첫 수혜자인 30대 후반이 사회 곳곳에서 이미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민사고는 정부의 자립형사립고 폐지 정책에 따라 2025년까지 일반고로 전환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당장 내년 신입생 모집부터 영향을 받는다. 일반고로 전환하면 전국이 아닌 강원도 상대의 인재 선발에 한계가 있고 석박사급의 교사를 유지하기 힘들어 폐교할 수밖에 없다. 민사고는 ‘대안교육 특성화고’로라도 지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교사 출신의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꿈쩍도 않는다. ▷민사고는 파스퇴르유업이 부도가 나 재정 지원을 중단한 후 학비가 비싼 학교가 됐다. 민사고는 정부로부터 한 푼도 지원받지 않는다. 정부가 학교를 지원해 비싼 학비를 못 낼 형편의 학생도 능력이 있으면 들어가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전형을 만들면 불평등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된다. 그렇게 하지도 않으면서 내버려두면 잘 굴러갈 학교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양식이 있다면 보태주는 건 못해도 최소한 망하게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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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고발 없는 ‘고발 사주’에 관한 몇 가지 시비

    이른바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이 제기되던 날 뉴스버스라는 인터넷 매체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런 생소한 매체가 쓴 기사를 어떻게 바로 알았는지 그날 오후 더불어민주당 쪽 사람들이 벌 떼처럼 윤석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윤석열 고발 사주’는 도대체 무슨 죄가 되는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당시 최강욱 공직선거법 위반 고발 건은 거론되지 않았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밝혔듯이 그 고발 건은 김 의원이 먼저 문제로 의식하고 고발장인지 초안인지 메모인지를 작성했다고 하니까 일단 사주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제쳐 두자. ‘윤석열 고발 사주’에 관련된 의혹은 부인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측근의 이른바 ‘검언(檢言) 유착’ 의혹이다. 사실이 아니라면 윤석열과 부인, 윤석열과 측근의 명예가 훼손된다. 고소할 권리가 윤석열에게 있다. 자신이 고소할 권리를 갖고 있는 사안을 다른 누구로 하여금 고발하게 하는 건 그 자체로는 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윤석열이 일개 검사였다면 스스로 고소하면 된다. 문제는 그가 검찰총장이라는 데 있었다. 검찰총장은 모든 사건 수사를 지휘한다. 자신이 고소한 사건도 지휘해야 하는 구조다. 그래서 고소가 어색하다. 그러나 아내와 측근까지 걸린 명예훼손을 그냥 두고 넘어갈 수 없다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누구로 하여금 대신 고발하게 했는가 하는 것이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의 출발이다. 윤석열이 당시 부하인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을 시켜 고발하게 했다면 검찰총장 권한의 사유화(私有化), 즉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처신이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은 ‘고발 사주’ 의혹이 제기된 후 직권남용죄로 고발됐지만 그의 고발 사주가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권한 밖의 일을 시킨 것이기 때문에 국정농단 심판에서 확실해진 대법원 논리에 따르면 ‘권한 내의 일에서 권한을 남용하는’ 직권남용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윤석열이 적절하지 않은 처신을 했는지조차도 사실관계가 밝혀지고 나서 판단할 일이다. ‘손준성 보냄’이라고 적힌 파일 사진들이 공개됐다. 뉴스버스에의 제보자로 지목된 사람이 국민의힘에 있다가 다른 당 후보의 캠프로 간 데다 과거 조작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조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김 의원이 손 검사로부터 자료를 받아 전달한 적이 있다고 하니 그 사진들을 일단은 믿지 않을 수 없다. 사진에 담긴 자료가 수사정보 등 기밀을 유출한 것이라면 그 부분에 대해 윤석열이나 손 검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자료를 보낸 것이 김 의원의 요청에 따른 것인지 손 검사가 부탁한 것인지가 ‘윤석열 고발 사주’를 따지는 데 중요하다. 김 의원은 최강욱 고발과 관련해 필요한 자료를 요청했는데 딸려와 전달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그 말을 믿는다 하더라도 손 검사의 능동적 부탁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만사 큰 틀을 먼저 본 뒤 세세한 것을 따져야 한다. 당시 국민의힘에 의한 고발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윤석열에게 고소할 정당한 권리가 있는 사안을 고발로 대신하는 것에 ‘사주’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도 지나치지만 그런 프레임마저도 최소한 고발이 실제 이뤄졌을 때나 씌울 수 있다. 윤석열이 정말 고발을 사주해 수사할 의지가 있었다면 고발 미수가 되도록 내버려뒀겠냐는 의문이 든다. 두 사건 다 윤석열과 무관하게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최강욱의 고발로 결국 수사가 이뤄졌다. ‘검언유착’은 1심에서 무죄가 났고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은 검찰이 새로 수사 중이지만 과거 금융감독원과 경찰 조사에서 혐의 없음으로 내사 종결된 바 있다. 추미애가 법무부 장관일 때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을 징계하며 나라를 흔들어 놓았으나 징계 관련 행정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지금 도대체 무슨 일로 징계가 있었는지 기억하려 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번 사안도 그런 사안이다. 민주당에서 어제 이해찬까지 나서 ‘국기 문란’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총선 전에 제보받은 내용 중 하나라고 넌지시 언급했다. 당시 민주당이 받은 제보와 뉴스버스가 받은 제보가 같은 것이라면 제보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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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보치아 9회 연속 금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종목이 있다. ‘골볼’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경기다. 방울이 든 공을 청각과 촉각만을 사용해 상대편 골대에 굴려 넣는다. ‘보치아’는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한 경기로 고안됐다. 보치아 경기 중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든 BC3등급 장애인의 경기는 얼굴 앞에 홈통(램프)을 설치해 입에 문 막대기(포인터)나 머리를 이용해 민 공이 그 낙하하는 힘으로 표적구에 가까이 가는 걸 겨룬다. ▷보치아에서 한 팀은 적색구, 다른 팀은 청색구 6개씩을 사용하며 그 밖에 흰색 표적구(標的球)가 하나 있다. 공은 가죽 재질로 테니스공보다 약간 크다. 한 팀의 선수가 표적구를 던지는 것으로 경기가 시작된다. 이어 그 표적구를 던진 선수와 상대팀의 선수가 하나씩 공을 던져 표적구에 접근시킨다. 그 다음에는 표적구에서 멀리 떨어진 공의 팀이 새로 공을 던져 표적구에 더 가까이 접근시키거나 상대편 공을 밀어낸다. 최종적으로 표적구에 가장 가까이 공을 놓은 팀이 그 경기의 점수를 얻는다. ▷우리나라는 도쿄 패럴림픽 폐막 하루 전인 4일 보치아에서 또다시 금메달을 따 9회 연속 금메달 획득의 기록을 달성했다. 금메달의 주인공은 BC3등급에서 2인씩 겨루는 페어전에 출전한 정호원(35) 최예진(30) 김한수(29) 선수다. 결승전 연장 경기에서 최 선수가 머리로 밀어 홈통에서 떨어뜨린 다섯 번째 공이 우리 편 공을 밀어 표적구에 붙였고 일본이 네 차례 이 공을 쳐내려고 했지만 실패하면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BC3등급은 사지(四肢)의 기능성이 가장 떨어지는 뇌성마비 장애 등급이다. 손발로 직접 공을 던지는 BC1, BC2등급과 달리 홈통 같은 보조장치를 필요로 하는 것 외에 BC1등급에서처럼 보조자까지 필요로 한다. 보조자는 선수의 요구에 따라 홈통의 높이나 방향을 조절하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보조자가 함께하지 않으면 경기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메달도 선수와 보조자가 함께 받는다. ▷우리나라가 패럴림픽 보치아 종목에서 9회 연속 금메달을 딴 것은 올림픽에서 양궁이 이룬 9회 연속 금메달 획득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은 성취다. 홈통의 높이와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보치아는 양궁처럼 정밀성을 필요로 한다. 그에 더해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보조자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한국에는 최 선수와 김 선수처럼 어머니가 보조자를 맡는 선수가 많다. 한국 어머니들의 지극한 모성과 한국인 특유의 정밀성이 어우러져 이룬 감동적인 성취라고 할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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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볼셰비키 홍범도에게 바친 최고 예우

    동아일보는 한소(韓蘇) 수교 직후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한 소련 측 정부 문건을 발굴해 소개한 적이 있다. 문건 중에는 홍범도의 신상명세를 밝혀주는 1930년대의 각종 증빙서류도 있었다. 그가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기 위해 작성한 이력서 등은 홍범도 연구의 필수 자료가 됐다. 홍범도는 1921년 11월 모스크바에서 레닌을 만났다. 그의 이력서에는 단순히 원동(遠東)민족혁명단체 대표회의 참석차 가서 레닌을 만난 것이 아니라 “자유시 유혈사태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한인 빨치산 지대 대표단원 자격으로 레닌 동지를 만나러 모스크바에 갔다”로 돼 있다. 유혈사태는 같은 해 6월 자유시에서 무장해제를 거부한 독립군이 공격당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장갑차 대포를 동원해 공격한 소련군 문서에 따르더라도 ‘사망 36명, 행방불명 59명’이다. 코민테른 전권위원 오홀라는 익사자 60명을 포함해 전체 사망자를 160명으로 추산했다. 독립군 측은 400명에서 600명까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사망자 외에 포로로 잡힌 독립군만도 864명이다. 죄질이 무겁다고 인정된 500명은 재판에 회부됐다. 이 중 428명은 강제노동에 처해졌고 나머지 72명은 중대범죄자로 분류돼 이르쿠츠크로 이송돼 재판을 받았다. 이때 재판을 담당한 3인 위원 중 1명이 홍범도였다. 홍범도는 순순히 무장해제하는 편에 섰다. 그가 같은 독립군을 공격하는 데까지 가담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자유시 참변 보고로 레닌을 만났을 때 레닌의 서명이 새겨진 권총과 금화 100루블을 상으로 받은 사실, 자유시 참변에서 당한 김창수와 김오남이 그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은 그가 단순히 중립적이었다고 보기 어렵게 만든다. 홍범도의 빨치산 증명서에는 활동 기간이 1919∼1922년으로 나온다. 그는 이력서에 “1913년 일본인들의 수배를 당해 소련의 극동지역으로 건너와 1919년까지 머물렀다”고 적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그 무렵부터 그는 볼셰비키 이념에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는 1920년의 일이니 그는 빨치산으로 전투에 참가한 것이다. 그는 1927년 볼셰비키 당원이 됐으며 1937년 스탈린 치하에서 강제 이주를 겪었으면서도 말년에 파시스트와 싸우는 데 나가겠다고 나서는 등 소련 정부에 충성했다. 스스로를 독립군보다는 빨치산으로 여겼기에 청산리 전투 후 일본의 대대적 반격에 쫓겨 다시 소련 영내로 들어갔을 때 소련군의 명령에 순순히 응해 무장해제를 했다.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운 김좌진 이범석 등은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갔다. 문재인 정부는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에서 외교노선보다 무장투쟁노선을 치켜세운다. 그러나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의 승리는 새로운 무장투쟁 시대를 여는 여명이 아니라 황혼의 장엄한 피날레였다. 황혼 뒤의 어둠은 자유시 참변으로 찾아왔다. 간도와 연해주의 독립군은 사실상 궤멸됐다. 무장해제에 순응한 한인 빨치산 부대도 교육·훈련 부대가 돼 더 이상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다. 그렇게 홍범도의 빨치산 이력도 1922년으로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홍범도에게 건국훈장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줬다. 홍범도는 은퇴한 뒤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도 받고 전직 빨치산으로서의 특혜도 누리며 말년까지 비교적 안락하게 살았다. 그는 소련 사회에 동화된 고려인의 영웅 혹은 북한이 모시고 싶은 영웅일 수는 있어도 대한민국의 영웅은 아니다. 그가 자유시 참변 이전까지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며 독립운동을 한 업적은 그것대로 기려야 한다고 하더라도 자유시에서의 배신은 이전의 공(功)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홍범도의 유해를 싣고 오는 비행기가 한국 영공에 들어서자 공군 전투기가 6대나 호위했다. 이승만 등 해외에서 숨진 건국의 아버지들도 받지 못한 대우다. 오늘날 대한민국장을 받아야 할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인 백선엽 장군이 별세했을 때는 문상도 하지 않은 대통령이 유해를 맞기 위해 한밤에 공항까지 나왔다.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식에서의 대통령 연설 속에 자유시 참변에 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기괴하고 기만적인 서훈이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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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두 번의 장마

    기후변화가 한반도의 강수량에는 아직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비가 오는 패턴은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한 열흘간 길게 많은 비가 이어지는 장마가 규칙적으로 찾아왔다. 한동안 해를 볼 수 없어 빨래를 말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장마는 드물어졌다. 2014∼2019년만 해도 제대로 된 장마를 찾아볼 수 없었다. 2020년에는 장마가 무려 54일간 느슨하게 길게 이어졌다. 올해는 장마가 5일 정도로 유독 짧게 끝나는가 했는데 무더위 후 또 한 번의 장마가 찾아왔다. ▷장마는 남아시아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을 아우르는 ‘몬순’ 기후의 특징적인 현상이다. 장마를 중국과 일본에서는 매우(梅雨)라고 한다. 중국말로는 메이위이고 일본말로는 쓰유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자를 쓰던 과거에는 매우라고 많이 썼다. 매실이 익어가는 계절에 내리는 비라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보통 6, 7월을 말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는 보통 6월 말이나 7월 초에 장마가 시작된다. 장마가 끝나면 얼마 뒤 무더위가 시작되고 열흘이나 보름가량 열대야와 싸우다 보면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느껴져 여름도 가는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이 여름철의 기후 패턴이다. 여름이 끝날 때쯤 한여름 태평양을 달군 뜨거운 열기가 태풍을 만들어 올라오기 시작해 추석 무렵까지 이어진다. 태풍이 뿌리는 비는 하루 이틀이면 끝나지만 장마전선이 만드는 비는 일주일 이상 이어지기 때문에 구별할 수 있다. ▷무더위 속에 치른 도쿄 올림픽이 끝날 무렵인 8월 12일 이후 한반도보다 위도가 낮은 중국 대륙 지역에서 일본 열도까지 장마전선이 길게 형성됐다. 중국 후베이성, 일본 규슈와 히로시마 등지에서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지난주까지도 중국과 일본에 영향을 미친 이 장마전선이 지난 주말 북상해 한반도에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무더위 이후의 장마는 태풍과 겹치면 더 많은 피해를 낳을 수 있다. 일본은 태풍 ‘크로사’가 겹쳐 피해가 더 컸다. 우리나라도 이번 주 태풍 ‘오마이스’가 동시에 찾아온다. ▷기후학자들에 따르면 몬순 기후 지역에 두 번 정도 나뉘어 비가 집중되는 현상이 최근 30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장마는 보통 가을장마인데 올해는 그 시기가 빨라져 여름에 두 번의 장마다. 장마가 짧아지거나 길어지거나 혹은 한 번 오거나 두 번 오거나 혹은 그 시기가 빨라지거나 늦어지거나 하는 현상은 어쩌면 우리가 장마라고 불러온 규칙적인 기후현상이 사라지고 있는 조짐일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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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정권 교체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기 전에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는 리더라는 자의식 자체가 부족한 듯하다. 그는 그제 또 “내가 당 대표가 돼 보니 지금 대통령 선거를 하면 여당에 5%포인트로 진다”고 말했다. 4·7 재·보선 직후 국민의힘만으로 대선 승리가 가능하게 됐다더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4·7 서울시장 보선에서 야권 단일 후보는 여당 후보를 18%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그로부터 넉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5%포인트 차이로 지고 있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윤석열이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야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후보이니까 국민의힘 밖에 있다면 그에게 책임을 돌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준석 자신이 갑질하듯 압력을 넣어 윤석열을 국민의힘에 입당시켰다. 그렇다면 야권의 열세는 정말 책임이 있든 없든 국민의힘 당 대표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평론가가 남 얘기 하듯 하고 있다. 4·7 재·보선 당시 야권의 좋았던 분위기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김종인이 안철수에게 감사는커녕 반감을 쏟아내면서부터다. 국민의힘의 서울시장 후보들이 지지부진할 때 안철수가 도전장을 내 판세를 뒤집었고 윤석열이 정치권 밖에서 지원해 승기를 굳혔다. 거의 다 된 승리를 막판에 국민의힘 것으로 가로채 가서는 오히려 성낸 사람이 김종인이다. 그때부터 좋았던 분위기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안철수가 서울시장이 됐어야 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정권 교체를 원하는 유권자에게는 안철수든 오세훈이든 대동소이(大同小異)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윤석열이 되든 유승민이 되든 또 다른 누가 되든 대동소이다. 이번 대선은 큰 차이가 중요하지, 작은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정권 교체가 되려면 야권이 화합하는 분위기여야 한다. 그런 분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준석은 김종인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안철수와 갈등을 빚고 윤석열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윤석열이 당 밖에 있을 때라도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았는데 당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다. 본래의 당내 후보들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은 어쩌다 이런 싸움닭을 당 대표로 뽑은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정권 교체의 희망보다 절망을 말하고 있다. 이준석은 서울 노원병에서 3번 출마해 3번 다 떨어졌다.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 얘기로는 그는 지역구를 관리하는 조직다운 조직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하는 일이라곤 TV에 패널로 출연하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프라인에서 지역 주민과의 정서적 유대는 거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커온 데 익숙한 탓인지 늘 ‘내가 이기냐, 네가 이기냐’의 자세다. 봉사자의 마음(servant mind)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자세로 중앙당의 조직인들 잘 끌고 나가겠는가. 물론 정권 교체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있는 책임을 이준석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윤석열의 책임도 크다. 본인과 가족 검증 과정에서의 팩트 왜곡이나 정치적 화법을 익히는 과정에서의 말꼬리 잡기로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것보다는 대장부처럼 큰 품으로 야권 전체를 아우르는 길을 추구하기보다는 혼자만 국민의힘에 쏙 들어가버림으로써 나머지 야권을 낙동강 오리알로 만들어버렸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윤석열과 이준석은 둘 다 그 자리에 있을 만해서 있는 게 아니다. 윤석열은 박근혜와 이명박을 감옥에 보낸 장본인이다. 두 사람을 감옥에 보냈다고 탓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고도 그들이 속했던 정당의 후보로 나선다는 사실이 염치없어 보이고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최고위원을 지내고 허구한 날 TV에 나오는데도 선거 때마다 떨어진 36세 젊은이가 당 대표가 된 것도 이변이다. 이 모든 것이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못 할 게 없다’는 절치부심(切齒腐心)이 아니라면 이해 불가능하다. 윤석열이 중도층과 탈(脫)진보세력의 지지까지 끌어모으는 후보가 아니었다면 보수 유권자들이 그를 원했을까. 2030세대의 마음을 잡는 데 매진하라고 뽑아준 당 대표가 기존 대표들이 누렸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투정이나 부리고 있으면 뽑아준 사람들이 좋아할까. 자신을 향한 유권자의 기대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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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김종인 유승민에게 잘못 배운 이준석

    공론(公論)은 크고 높은 것이어서 무엇이 공론이고 아닌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드러난다. MBC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것처럼 보도해 나라를 뒤집어 놓았으나 지금 한국인은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미국산 소고기를 아무런 걱정 없이 잘만 먹고 있다. 유승민은 2015년 여당인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더불어민주당 이종걸에게 국회가 대통령령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위헌적인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해줬다. 이 뜬금없는 합의로 그는 반발을 사 원내대표에서 쫓겨났다. 그의 주장이 공론에 어긋났음은 시간이 지나 저절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여당이 된 지 오래됐지만 그런 개정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2012년 대선 당시 시대정신은 ‘안철수 현상’으로 표현된 중도였다. 김종인의 중도는 대의(大義)를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중도가 아니라 좌(左)든 우(右)든 돈과 조직을 가진 정당에 자신을 파는 중도팔이의 중도였기에 실패했다. 한 번은 박근혜 정당에, 한 번은 문재인 정당에 중도를 팔아 나라를 탄핵의 소용돌이에 몰아넣고 그 결과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승민과 이준석은 박근혜 탄핵을 지지해 탈당했다가 제3지대의 광야 생활을 1년도 견디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들과 김종인의 공통점은 돈과 조직이 없는 걸 견디지 못하는 웰빙 체질이다. 제3지대에서 고군분투하는 정치인을 향한 가학적 발언은 자신들의 부모 때로부터 이어받아 벗어나지 못하는 웰빙 체질에 대한 무의식적 콤플렉스의 표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 쪽에서는 ‘박근혜를 탄핵하고 이명박을 수감한 윤석열은 도저히 지지할 수 없다’며 최재형을 대안으로 삼는 일부 세력을 제외하고는 윤석열을 지지하는 경향이 높다. 이런 선택은 윤석열이 정권교체의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인식하에 ‘정권 연장을 막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심리로만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은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 윤석열 지지 세력의 본류는 아니다. 과거 새누리당의 탄핵찬성파, 국민의힘에도 민주당에도 속하지 않은 제3지대 세력, 민주당 쪽에서 넘어온 진보세력이 본류다. 하지만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듯이 결이 다른 두 물이 윤석열 대망(大望)론으로 합류하고 있다. 이 기이한 결합은 문재인 정권이 만들었다. 두 물이 충돌을 피하면서 합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 불만 없는 정권교체의 대(大)전제다. 윤석열의 국민의힘 입당은 그 전제를 파괴하는 자살행위다. 그저 배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서 배우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데서 배워야 한다. 이준석은 서울과학고와 하버드대에서 배워 디지털과 말싸움에는 능하다. 하지만 정치는 잘못 배웠다. 정작 김종인은 지금까지의 ‘제3지대 불가론’으로부터 돌아서 또 될 만한 쪽에 붙을 요량으로 딴소리를 하고 있는데 이준석은 과거 김종인에게 잘못 배운 그대로 애늙은이처럼 돈 조직 운운하면서 윤석열의 입당을 압박하고 있다. ‘찐’ 보수들이 나라는 살려놓고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장할 것도 주장하지 못하고 참는 사이, 독자적으로는 중도를 추구하지도 못하는 겁쟁이들이 남(보수)의 둥지를 차지하고 설치고 있다. 이준석은 사실상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깎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늘려준 뒤 ‘나쁘지 않은 스탠스’ 운운했다. 대의는 없고 술수(術數)만 있는 것이 김종인이 해온 것과 똑같다. 김종인류는 탁류(濁流)다. 탁류는 서로 다른 두 물이 합류 지점에서 선명한 선을 그으며 ‘따로 그러나 같이’ 흐르는 장엄한 모습을 알지 못한다. 그 모습은 새의 시선으로 보이지, 지렁이의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걸 흐린다. 그렇게 보수의 정체성을 흐리고 남로당식 진보의 정책에 중도의 베일을 씌워줬다. 윤석열이든 안철수든 진중권류든 법치와 안보의 최저선(bottom line)에 대해 보수 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식을 드러냈다. 문재인 정권을 겪으면서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우연히 공유한, 이 희귀한 경험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보수와 중도 모두 각자의 외연(外延)이 확장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때 그 외연을 축소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라.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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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누가 야윈 돼지들이 날뛰게 했는가

    역사가 늘 명확하지는 않다. 역사에는 거짓으로 포장된 숨은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갑자기 정체를 드러낼 때가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1948년 여순반란사건이 그랬다. “여수 시민들은 10월 20일 새벽 1시부터 들려오는 난데없는 요란한 총소리에 잠에서 깨었지만 설마 군인들이 일으킨 봉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하에서 숨죽여 지내던 남로당 조직원들도 여수 14연대의 시가전 연습이려니 생각했다. 순천의 남로당원들은 14연대가 여수를 거쳐 왔기 때문에 대응책을 논의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여수 남로당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여수 도심에는 인민대회를 알리는 벽보가 붙고 ‘미군 철수’ 등 구호도 나붙었다. 오후 3시 여수 중앙동 로터리에서 인민대회가 열렸다. 여수 좌익계의 이름 있는 거두들이 모두 나왔다. ‘우리는 유일하며 통일된 민족적 정부인 조선인민공화국을 보위하고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의한 민주적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등 혁명과업 6개항이 채택됐다.” 여순사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승만 반공체제 확립에 비판적인 김득중 국사편찬위 연구사의 ‘빨갱이의 탄생’에서 인용한 글이니 과장은 없을 듯하다. 인민위원회는 여수에서 8일간, 순천에서 3일간 통치했다. 반란군과 좌익세력은 여수에서 72명, 순천에서 48명의 경찰관을 죽였다. 민간인도 386명을 죽였다.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이 기독교 우익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좌익 학생에 의해 당한 잔혹한 죽음이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오늘날 개신교인들마저 그게 어느 때 일인지 잘 모른다는 게 흐리멍덩해진 역사 인식의 현주소다. 반란이 평정된 뒤 반란군과 그 협조자들은 군사재판을 통해 처형되거나 수감됐다. 원한 감정이 들끓었던 반란 현장의 군사재판에서 작성된 기록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을 것이며 그마저도 6·25전쟁을 거쳐 7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됐으리라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서류상 체포의 근거가 남아 있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결은 시공을 초월한 듯 태연해 보인다. 국회에서는 ‘여수 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명예회복을 요구할 쪽은 반란군과 그 협조자의 후손밖에 없다. 당시의 살벌했던 분위기 속에서 억울한 희생자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대법원이 길을 터준 기록 소실이나 기록 부실만으로 억울함을 판정하는 건 역사의 복잡한 실상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남조선노동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제주에서 4·3사건을 일으켰다. 4·3사건 진압 거부를 핑계 삼았지만 실제로는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처한 14연대 남로당 세포들이 지도부와 상의도 없이 일으킨 것이 여순반란사건이다. 남로당 지도부마저 6·25 남침에 맞춰 전 군에서 동시에 일어났다면 하고 아쉬워한 성급한 반란이었다. 여순사건은 반란군이 인민위원회라는 통치기구를 설치하고 학살을 자행했다는 점에서, 반란 관련자의 처벌은 대체로 군사재판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제주4·3사건과는 구별된다. 여순반란사건의 단죄마저 흐려지면 대한민국 군대와 사법체제를 넘어 대한민국 자체의 정당성이 도전받게 된다. 여순 반란군의 잔당이 산으로 도망쳐 지리산 빨치산이 됐다. 그 대장이 이현상이다. 이현상의 자살로 남로당의 맥은 남한에서 끊겼다. 남로당의 계보를 이으려고 한 것이 민혁당이고 통혁당이고 통진당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정해구 교수를 정책기획수석으로 임명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 자신이 통진당 해산을 격렬히 비난했고 통진당 해산에 유일하게 반대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에 임명하려 했다. 부모가 김원봉의 수하였음이 자랑거리인지도 모르겠으나 부모가 정말 김원봉의 수하였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김원웅 광복회장은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했다. 점령이라는 행정적 용어와 해방이라는 프로파간다도 구별하지 못하는 자가 감히 역사를 거론한다. 선조들은 이런 모습을 두고 주역을 인용해 ‘야윈 돼지가 날뛰어 난장판을 만드는 꼴’이라고 했다. 누가 야윈 돼지들이 날뛰게 했는가.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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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자영업자에겐 나라도 아닌 나라

    문재인 정부가 자랑하는 K방역은 철저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희생 위에서 이뤄졌음에도 끝까지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을 거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어제 국회 상임위에서 소급적용이 빠진 손실보상법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손실보상을 법으로 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선진국들은 법 없이도 행정절차로 잘만 보상하고 있다. 앞서는 법이 없어 보상할 수 없다고 하더니 결국 법으로도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방역을 위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휴업이나 영업제한을 강제해 놓고는 어떨 때는 100만 원, 어떨 때는 200만 원, 어떨 때는 300만 원씩 찔끔찔끔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객관적인 기준도 없다. 서울 이태원에서 주점을 경영하는 가수 출신 강원래 씨는 올 1월 한 인터뷰에서 “지난해 4월 이후 2억5000만 원 손실을 입었는데 자영업자를 위한 재난지원금으로 170만 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독일은 올 초부터 코로나 방역으로 인한 손실에 대해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30∼50%가 줄면 고정비의 40%, 50∼70%가 줄면 60%, 70% 이상 줄면 90% 지원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산수에 불과하다. 국가에 충분한 돈이 없으면 독일보다 보상 비율을 줄이면 된다. 우리나라는 이 단순한 셈도 관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에 손실을 보상하면 몇억 원씩 될 텐데 국민들이 그런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부분의 성인이 유흥업소에 가서 돈을 쓴다. 김 총리도 요즘은 안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랬을 것이다. 경제는 유흥이냐 아니냐로 선악을 따지면 안 된다. 유흥업소라도 매출액을 신고하고 세금을 냈으면 보상받아야 한다. 명동에 가보면 코로나 방역으로 포장마차가 다 사라졌다. 이들 포장마차의 월수입이 억대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포장마차의 주인들은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 재난지원금이 억대 수입에 비하면 몇 푼 되지도 않는 데다 괜히 신청해서 세금 추적을 당하면 골치 아프다고 본 것이다. 매출액이 잡히지 않아 세금 한 푼 안 내는 포장마차 주인보다는 세금 내는 나이트클럽 주인에게 더 많이 보상해야 한다. 돈 못 버는 놈이 돈 쓸 줄도 모른다. 코로나 직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사실상 1%대로 떨어뜨린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로 2년 동안 국가채무비율을 40% 미만에서 50%로 늘렸다. 어디에다 돈을 다 쓰고는 정작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손실 보상할 돈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불하지 못해 안달이다.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돈을 번 기업들도 많다. 정보기술(IT)이나 반도체 산업 등의 언택트(untact) 기업은 코로나 와중에 큰 이익을 냈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연봉 절반 수준의 성과급을 사원들에게 지급했다. 같은 반도체 업체인 SK하이닉스는 연봉의 20% 정도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려다가 사원들이 반발해 결국 비슷한 수준의 보상을 했다. 올 초 넥슨이 전 직원 연봉을 800만 원 인상하자 넷마블 등 다른 게임업체도 줄줄이 인상했다. 언택트 기업이 아니라도 대부분 기업이 월급을 깎지 않거나 조금 깎았을 뿐이다. 코로나로 소비가 줄어 돈을 아낀 측면도 있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떼돈을 번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난해 한 차례로도 모자라 또 주겠다고 한다. 속셈이 뻔히 보이는 뻔뻔한 정치를 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로 직장에서 쫓겨난 실업자들, 취업하지 못한 취업준비생들, 일자리가 줄어든 일용직 근로자 등 국가가 도와야 할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전 국민에게 나눠줄 돈이 있으면 이들에게 더 줘야 한다. 그러나 무상급식 논란 때부터 개인의 소득을 파악할 자료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 보편적 지급의 핑계가 됐다. 실제로는 아예 자료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을 뿐이다. 방역 과정에서 모든 국민이 같은 희생을 치른 게 아니다. 우리 주변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유독 큰 희생을 치렀다. 그렇다면 그 손실의 분량을 가능한 한 정확히 계산해서 전액을 다 보상하지는 못하더라도 비례를 따져 객관적으로 보상해 줘야 하는데 그러지는 못할망정 코로나로 오히려 수입이 늘어난 사람들에게까지 돈을 퍼주지 못해 안달이니 과연 이 나라가 공화(共和)적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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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마지막 신문 앞의 긴 줄

    레닌이 1917년 10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임시정부를 전복한 이튿날 내린 첫 번째 조치는 당시 1위 신문인 사회혁명당(SR) 계열 ‘볼랴 나로다’의 폐쇄였다. 이 신문은 다음 날 ‘볼랴’로 이름을 바꿔서 나왔고 편집진이 체포된 이후에는 ‘나로드’로 이름을 바꿔 나왔다. 레닌은 작가 막심 고리키의 신문까지 폐쇄하는 건 주저했으나 그마저도 이듬해 여름 폐쇄하고 말았다. 비판 언론이 사라진 곳에 관영 ‘프라우다’의 세상이 펼쳐졌다. ▷북한 노동신문이 1997년 5월 26일자에 3개면에 걸쳐 ‘대남공작 영웅1호 성시백’을 소개한 적이 있다. 해방 정국에 신사복에 중절모 차림으로 명동 일대를 휘젓고 다녀 ‘명동백작’으로 불린 성시백은 공작자금으로 ‘조선중앙일보’ ‘광명일보’ 등 10여 개 신문을 만들어 선전활동을 했다. 공산주의자들은 혁명 전에는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이용한다. 레닌도 그랬다. 그러나 혁명에 성공하자 돌변해서 언론의 자유를 짓밟았다. ▷중국 ‘런민(人民)일보’도 관영이다. 이때 관영은 정부에 속한다는 의미의 관영이 아니라 당에 속한다는 의미의 관영이다. 공산 국가에서 정부와 구별된 당의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가 선전이다. 런민일보와 그 계열인 ‘환추(環球)시보’ 등의 기자는 다 공산당원이다. 지방 신문도 마찬가지다. 공산당원이 아니면 기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머릿속에는 통치자를 비판하는 언론(press)이란 개념은 없고 통치자를 선전하는 매체(media)란 개념만 있다. ▷홍콩의 대표적 반중(反中) 신문인 타블로이드판 핑궈(蘋果)일보가 폐간됐다. 핑궈는 사과란 뜻이다. 창립 당시 금지된 과일인 선악과를 생각하며 사과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니 성역 없는 비판이 이 신문의 사시(社是)나 다름없었던 모양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많은 홍콩 언론이 중국 자본을 받아들이며 중국 비판을 외면했지만 핑궈일보만은 비판의 각을 세웠다. 하지만 중국이 지난해 10월 통과시킨 홍콩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사주와 편집국장을 체포하고 은행 계좌를 동결하는 상황에 이르자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핑궈일보의 일일 발행 부수는 통상 7만 부였다. 그러나 홍콩 당국이 12일 사주를 연행하고 신문사 압수수색을 실시하자 이후 구독 수요가 치솟아 55만 부까지 팔렸다. 24일 폐간호는 100만 부가 발행됐다. 많은 홍콩 시민들은 가판대에서 마지막 신문을 샀다. 가늘게 오는 빗속에서 누구는 비를 맞으며, 누구는 우산을 쓰고 한 부의 신문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선 모습이 마치 소리 없는 자유의 아우성처럼 들려 가슴이 먹먹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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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특이한 ‘知의 巨人’

    다치바나 다카시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유형의 언론인이자 지식인이다. 한편으로는 ‘일본 공산당’ ‘종합상사’ ‘농업협동조합’ 등 문과적 주제로, 다른 한편으로는 ‘뇌사’ ‘원자력’ ‘우주’ 등 이과적 주제로 종횡무진 글을 썼다. 문과적 주제는 장기적 관점이 필요해 신문 기자가 파고들기에는 부담스럽고, 이과적 주제는 한참 발전하고 있어 대학교수가 다루기에 조심스러운 주제다. 그는 신문 저널리즘과 대학 아카데미즘 사이에 놓인 방대한 틈을 파고들어 특이한 지(知)의 거인(巨人)으로 인정받았다. 도쿄대 교양학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다치바나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다치바나는 1964년 도쿄대 불문학과 졸업 후 잡지사 문예춘추에 입사해 주간춘추에 배치됐으나 관심이 전무했던 프로야구 취재를 맡게 되면서 2년여 만에 퇴사하고 말았다. 다만 이때 한 선배의 영향으로 논픽션 작품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는 1967년 다시 도쿄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대학이 전공투 사태로 휴교에 들어가자 잡지 ‘제군(諸君)’에 ‘생물학혁명’ ‘석유’ 등의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잡지 저널리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다나카 가쿠에이, 그 금맥(金脈)과 인맥(人脈)’이란 글은 1974년 월간 문예춘추에 실은 글이다. 이 글은 일본 국민들 사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켜 돈으로 정계를 주물러온 다나카 총리 퇴진의 계기가 됐다. 검찰은 다나카가 퇴진하자 총리 재임 시 미국 항공기 제작사 록히드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자민당 내 다나카파는 반발해 다른 파벌까지 규합해 검찰 수사를 막지 않는 후임 미키 다케오 총리를 해임하기로 합의까지 했다. 하지만 나중에 검찰총장이 된 요시나가 유스케를 주임검사로 한 도쿄지검 특수부는 다나카를 전격 체포하고 결국 기소하기에 이른다. 일본 현대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건이다. ▷다치바나가 올 4월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뒤늦게 사망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한 주제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취재에 나섰다고 한다. 생전에 읽은 수많은 책을 도쿄에 있는 지상 3층, 지하 2층짜리 빌딩에 보관했다. 그는 국내에도 번역된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란 책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대학은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는 곳이 아니다. 대학은 스스로 배우는 곳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바보 같은 대학생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자신이 알고 싶은 모든 주제에 관해 스스로 배워 글을 쓴 사람의 말이니 귀 기울여볼 만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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