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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경주는 도시 자체가 문화재다. 국보 33점과 보물 83점을 포함해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만 217점에 이른다. 다보탑, 석굴암, 첨성대 등 경주에 있는 국보만 전체 국보의 10%가 넘는다. 이런 곳에서 10월 16일 2011 경주국제마라톤대회(경상북도 경주시 대한육상경기연맹 동아일보 스포츠동아 공동 주최)가 열린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천년 고도 경주를 찾는다면 42.195km의 레이스만 펼치고 발길을 돌리기엔 너무 아쉽다. 레이스 이후 적절한 휴식을 취한 뒤 가족과 함께 둘러보면 좋은 추억이 될 만한 곳이 많다. 마을 전체가 국가 지정 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인 경주 양동마을은 지난해 브라질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곳이다. 양동마을은 15, 16세기 무렵의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가문이 대대로 살아온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양반마을로 150채의 크고 작은 옛집이 있다. 양동마을에 앞서 석굴암, 불국사(1995년),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양동마을∼옥산서원∼독락당∼정혜사지 13층 석탑을 차례로 둘러보는 관광코스는 전체 이동 거리가 13km가 채 안 돼 6시간 정도 걸린다. 옥산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이언적의 위패를 모시는 사액서원으로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무너뜨리지 않고 남겨둔 47곳 중 하나다. 독락당은 이언적의 옛집 사랑채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부산첨사 김호가 살았던 고택과 황남동 일대에 있는 신라 초기 무덤인 황남리 고분군, 연꽃이 수면 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안압지 주변의 연꽃 단지도 경주를 찾았다면 찾아볼 만한 곳이다. 경주국제마라톤대회 참가 신청은 23일까지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한국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4개밖에 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최근 '런던 올림픽 메달리스트 예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메달을 금 4개, 은 7개, 동메달 13개로 전망했다. 전체 메달 수로는 10위, 금메달 수로는 19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 13개, 은 10개, 동메달 8개를 따내 7위를 했던 한국의 성적을 거의 3분의 1토막으로 만든 셈이다. 이 신문이 전망한 한국의 금메달리스트는 수영 남자 400m 자유형의 박태환,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의 진종오, 유도 남자 81kg급의 김재범, 배드민턴 남자 복식의 이용대-정재성 조다. 전통적 강세 종목인 양궁에서는 남자가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여자는 단체전 개인전 모두 동메달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역도 여자 75kg 이상급의 장미란도 타티아나 카시리나(러시아)에 밀려 은메달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USA투데이는 미국이 금 40개, 은 22개, 동메달 27개로 1위를 하고 중국이 금 32개 은 36개 동메달 21개로 2위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은 금 10개, 은 13개, 동메달 9개로 8위에 올려놓았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1970년대 한국 여자 농구의 간판스타였던 강현숙 대한농구협회 기술이사(56)가 한국농구연맹(KBL) 심판위원장에 선임됐다. 프로농구가 출범한 1997년 이후 여성 심판위원장이 탄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KBL은 1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KBL센터에서 한선교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어 강 이사를 심판위원장으로 선임했다. 강 신임 심판위원장은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 금메달에 이어 197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여자선수권 때 대표팀 주장을 맡아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고 베스트 5에도 뽑혔던 명가드 출신이다. 1972년 청소년대표를 시작으로 1980년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뛰면서 국제대회에서 우승 5차례, 준우승 3차례를 경험했다.》어느덧 50대 중반에 접어들어 세 딸을 둔 어머니에 지난해 사위까지 봤지만 강 위원장은 여자프로농구 경기장을 자주 찾아 후배들을 격려하고 행정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농구를 향한 끝없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체코에서 열린 세계여자선수권 때는 대표팀 선수단장을 맡았다. 강 위원장은 “며칠 전 한선교 총재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너무 파격적인 제안이라 생각돼 조심스럽기도 했고 고민도 많았다. 부족하지만 도전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 위원장은 “남녀를 떠나 나도 같은 농구인이다. 당장에 뭘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심판들이 자긍심과 자신감을 갖고 코트에 설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또 “심판위원장과 같은 중요한 자리를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제의한 것은 그만큼 투명하고 깨끗한 판정을 하겠다는 뜻을 각 구단에 강하게 어필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며 “여자농구에서 사심 없이 열심히 일한 것같이 KBL에서도 농구 인생의 마무리를 잘 짓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일부 구단이 남자 농구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강 위원장 선임에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으나 그동안 불신과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심판 판정에 대한 개혁을 바라는 목소리가 더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KBL 심판은 모두 남자다. KBL은 강 위원장 선임과 함께 판정 개선을 위한 시스템과 심판 평가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 총재는 “주변에서 정직하고 강직한 분이라는 평가가 많았다”며 강 위원장을 선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경기이사에는 안준호 전 삼성 감독이, 기술위원장에는 신선우 전 SK 감독이 선임됐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팀별로 10경기 안팎만 남겨 놓은 시즌 막판 프로야구의 관전 포인트는 2위 싸움이다. 1위는 2위에 6.5경기 차로 앞선 삼성으로 사실상 굳어졌다. 남은 경기를 감안하면 삼성을 따라잡기는 힘든 상황이다. 승차 없이 승률 차로 2, 3위인 SK와 롯데 그리고 두 팀을 1.5경기 차로 추격 중인 4위 KIA의 막판 2위 쟁탈전만 남았다. 5위 LG와 KIA의 승차가 8.5경기로 벌어져 있어 SK와 롯데, KIA가 2, 3, 4위를 놓고 순위 결정전을 벌이는 구도다. SK와 롯데, KIA가 18일 모두 승리를 거두며 2위 다툼의 긴장감을 이어갔다. 총 133경기 중 전날까지 8개 팀 중 가장 많은 125경기를 치러 상대적으로 갈 길이 바쁜 KIA는 극적인 승리로 2위 탈환의 희망을 이어갔다. KIA는 0-3으로 뒤지던 경기를 3회 1점, 4회 2점을 뽑아 동점을 만든 뒤 연장전에서 짜릿한 끝내기 홈런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KIA는 3-3으로 맞선 연장 11회말 차일목의 끝내기 만루 홈런에 힘입어 LG에 7-3으로 승리했다. 연장 끝내기 만루 홈런은 역대 5번째다. SK는 초반부터 한화 마운드를 두들겨 13-5의 완승을 거두고 롯데에 승률이 0.001 앞선 2위를 유지했다. SK는 1회 안치용의 선제 솔로포로 리드를 잡은 뒤 2회 이호준의 만루포 등으로 6점을 뽑아 일찌감치 승부를 갈랐다. SK는 장단 13안타를 터뜨리며 올 시즌 팀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롯데는 장원준의 선발 호투를 앞세워 두산을 6-3으로 꺾고 SK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롯데는 장원준이 6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잡으면서 3안타 1실점으로 호투했고 타선에서는 손아섭 전준우 황재균의 홈런포가 터져 승리를 낚았다. 최하위 넥센은 삼성을 4-2로 눌렀다. 16일 3연타석 홈런을 날린 롯데 이대호에게 추격을 허용한 홈런 선두 삼성 최형우는 8회 2점포로 시즌 29호 홈런을 기록하며 이대호와의 격차를 3개로 벌렸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올해로 출범 30년째를 맞은 국내 프로야구의 첫 퍼펙트 경기가 2군 리그에서 나왔다.롯데 오른손 투수 이용훈(34·사진)은 17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와의 2군 방문경기에서 9이닝 동안 한 타자도 내보내지 않은 완벽 투구로 퍼펙트를 달성하며 7-0 승리를 이끌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퍼펙트 경기가 나온 건 1, 2군을 통틀어 처음이다.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20차례,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15차례의 1군 무대 퍼펙트 경기가 있었다. 최고 시속 146km를 찍으며 111개의 공을 던진 이용훈은 삼진 10개와 땅볼 9개, 뜬공 5개, 파울 플라이 1개, 직선 타구 2개로 27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았다. 9회말 마지막 투구 때는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했다. 이용훈은 “힘을 빼고 던지려 노력했더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제구가 잘됐다”며 “1군 마운드에 설 기회가 온다면 팀 승리와 우승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부산공고와 경성대를 졸업한 이용훈은 2000년 삼성에 입단했고 2002년 SK를 거쳐 2003년부터 롯데에서 뛰고 있다. 올 시즌에는 1군 무대 2경기에 나와 1패만 기록했고 4월 18일 1군 엔트리에서 빠진 뒤로 계속 2군에 머물고 있다. 통산 성적은 34승 44패 1세이브에 평균자책 5.70.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대구 세계육상세계선수권대회 남자 100m 우승자인 요한 블레이크(22·자메이카·사진)가 200m에서도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우면서 ‘번개’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의 확실한 대항마로 자리매김했다. 블레이크는 1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다이아몬드리그 200m에서 19초26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19초26은 올 시즌 최고 기록이자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볼트가 세운 세계 기록 19초19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블레이크는 자신의 종전 최고 기록(19초78)을 0.5초 이상 앞당기는 뛰어난 레이스를 펼쳤다. 블레이크는 “19초의 벽도 깰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블레이크는 이번 대회 200m 한 종목에만 출전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의 이승엽(35)이 시즌 12번째 홈런을 날렸다. 이승엽은 18일 열린 롯데와의 방문경기에 6번 지명타자로 나서 3-5로 뒤진 4회 추격의 솔로포를 터뜨렸다. 와타나베 슌스케의 시속 118km 바깥쪽 싱커를 밀어 쳐 왼쪽 담장을 넘겼다. 15일 라쿠텐전 이후 3일 만의 홈런이자 9월 들어서만 4번째 홈런이다. 시즌 막판 들어 장타력을 회복해 가고 있는 이승엽은 자신을 영입한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포스트시즌에서 해결사로서의 활약을 예고했다. 닛칸스포츠가 “해결사 본능을 찾기 시작했다”고 보도하는 등 일본 언론도 이승엽의 부활에 관심을 보였다. 4연승을 달린 오릭스는 18일 현재 포스트시즌 진출 마지노선인 퍼시픽리그 3위를 달리고 있다. 이승엽은 5타수 1안타로 4경기 연속 안타를 이어가며 타율 0.210을 유지했고 4경기 연속 타점을 올려 올 시즌 타점은 총 43개가 됐다. 이승엽의 홈런으로 추격의 불씨를 지핀 오릭스는 7회 3점을 뽑아 전세를 뒤집고 7-6으로 승리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올해로 출범 30년째를 맞은 국내 프로야구의 첫 퍼펙트 경기가 2군 리그에서 나왔다. 롯데 오른손 투수 이용훈(34)은 17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와의 2군 방문경기에서 9이닝 동안 한 타자도 내보내지 않은 완벽 투구로 퍼펙트를 달성하며 7-0 승리를 이끌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퍼펙트 경기가 나온 건 1, 2군을 통틀어 처음이다.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20차례,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15차례의 1군 무대 퍼펙트 경기가 있었다. 최고 시속 146km을 찍으며 111개의 공을 던진 이용훈은 삼진 10개와 땅볼 9개, 뜬공 5개, 파울 플라이 1개, 직선 타구 2개로 27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았다. 9회말 마지막 투구 때는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했다. 이용훈은 "힘을 빼고 던지려 노력했더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제구가 잘됐다"며 "1군 마운드에 설 기회가 온다면 팀 승리와 우승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공고와 경성대를 졸업한 이용훈은 2000년 삼성에 입단했고 2002년 SK를 거쳐 2003년부터 롯데에서 뛰고 있다. 올 시즌에는 1군 무대 2경기에 나와 1패만 기록했고 4월 18일 1군 엔트리에서 빠진 뒤로 계속 2군에 머물고 있다. 통산 성적은 34승 44패 1세이브에 평균자책 5.70.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이만수가 최동원과 배터리를 이룰 수 있게 해 주면 연세대에 오겠다고 했어요.” 야구광인 이만섭 전 국회의장(79·사진)이 14일 타계한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과 30년 지기인 이만수 SK 감독대행의 스카우트에 얽힌 뒷얘기를 털어놨다. 이만수가 대구상고 2학년이던 1976년 이 전 의장은 연세대 재단이사를 맡고 있었다. 3선 개헌에 반대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노여움을 사 정치 일선에서 잠시 비켜나 있을 때다. 연세대는 대형 포수로 이름을 날리던 이만수를 스카우트하기로 일찌감치 마음먹고 고향이 대구인 이 전 의장에게 물밑 작업을 부탁했다. “내가 이만수 아버지도 만나고 대구상고 교장도 만났어요.” 이 전 의장은 이만수를 설득한 끝에 연세대에 입학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런데 이만수는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고 한다. “투수인 최동원이 먼저 연세대에 입학해야 한다”는 것. 이만수와 최동원은 1958년생 동갑내기 친구지만 이만수가 중학교 1학년 때 유급해 당시 최동원은 경남고 졸업반이었다. “잘나가던 이만수가 입학 조건으로 최동원을 원할 정도였으니 최동원이 얼마나 대단했겠어요.” 이 전 의장은 “당시 최동원이 던지는 걸 보면 가슴이 다 후련해질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최동원은 1977년 연세대 유니폼을 입는다. 하지만 이만수는 1년 뒤 한양대에 입학했다. 한양대가 이만수의 동기를 더 많이 받아주기로 한 데다 김시진 넥센 감독과 고인이 된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 등 친하게 지내던 대구상고 동문들이 한양대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누구나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이지만 너무나 강렬했던 그였기에 그를 떠나보내는 후배도 친구도 가슴이 먹먹하다. 좀처럼 세상에 나기 힘들다는 ‘불세출’이란 수식어를 달고 살았던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 14일 새벽 세상을 등진 그의 나이가 아직 한창인 53세라는 걸 생각하면 이들은 황망하기까지 하다. ‘영원한 맞수’이자 둘도 없는 선배를 잃은 선동열 전 삼성 감독(48)은 비통해했다. “대장암에 걸려 건강이 많이 나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떠나니 안타깝고 가슴이 멍합니다.” 선 전 감독은 한동안 최 전 감독을 만나지 못했음을 아쉬워했다. “1년 전 한 언론사 인터뷰 때 자리를 같이하면서 본 게 마지막이었어요.” 선 전 감독은 얼마 전 TV에서 많이 야윈 고인의 모습을 봤지만 워낙 강한 사람이라 잘 이겨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고 했다. “같이 운동할 때 묻기도 참 많이 물었습니다.” 팬들은 둘을 라이벌이라 불렀지만 선 전 감독은 고인을 ‘배울 게 많았던 선배이자 조언자’로 기억했다. “나이 차가 있어 고등학교 때까지는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어요. 세계선수권대회 때 대표팀에서 같이 뛰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후배들에게도 아주 깍듯하게 대해 준 선배였어요.” 선 전 감독은 특히 마운드 위에서의 배짱, 담력 같은 걸 고인에게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600만 관중 시대를 연 야구의 인기는 최 선배 같은 프로야구 1세대가 다져놓은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선 전 감독은 “야구장에서 감독으로 다시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며 고인이 프로야구 전성시대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떠난 것을 안타까워했다. 시즌 중인데도 고인이 눈을 감기 전날까지 병실을 찾았던 이만수 SK 감독대행(53)은 “벌써 그립다”는 말로 둘도 없는 친구를 먼저 보낸 심정을 표현했다. 이 대행은 “병실을 나선 뒤로도 걱정이 돼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할 만큼 고인을 끔찍이 여겼다. 1958년 개띠로 고인과 동갑인 이 대행은 30년 넘게 막역한 친구로 지냈다. “동원이를 처음 봤을 때 인상이 강렬했어요. 정말 잘 던졌죠. 고교, 대학 때는 혼자서 다 던졌어요.” 경남중을 다닌 고인과 대구중을 나온 이 대행은 중학교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고 1989, 90년 두 시즌은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우리 시대 최고의 투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빨리 떠났어요.”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누구나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이지만 너무나 강렬했던 그였기에 그를 떠나보내는 후배도 친구도 가슴이 먹먹하다. 좀처럼 세상에 나기 힘들다는 ‘불세출’이란 수식어를 달고 살았던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 14일 새벽 세상을 등진 그의 나이가 아직 한창인 53세라는 걸 생각하면 이들은 황망하기까지 하다. ‘영원한 맞수’이자 둘도 없는 선배를 잃은 선동열 전 삼성 감독(48)은 비통해했다. “대장암에 걸려 건강이 많이 나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떠나니 안타깝고 가슴이 멍합니다.” 선 전 감독은 한동안 최 전 감독을 만나지 못했음을 아쉬워했다. “1년 전 한 언론사 인터뷰 때 자리를 같이하면서 본 게 마지막이었어요.” 선 전 감독은 얼마 전 TV에서 많이 야윈 고인의 모습을 봤지만 워낙 강한 사람이라 잘 이겨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고 했다. “같이 운동할 때 묻기도 참 많이 물었습니다.” 팬들은 둘을 라이벌이라 불렀지만 선 감독은 고인을 ‘배울 게 많았던 선배이자 조언자’로 기억했다. “나이 차가 있어 고등학교 때까지는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어요. 세계선수권대회때 대표팀에서 같이 뛰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후배들에게도 아주 깍듯하게 대해 준 선배였어요.” 선 전 감독은 특히 마운드 위에서의 배짱, 담력 같은 걸 고인에게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600만 관중 시대를 연 야구의 인기는 최 선배 같은 프로야구 1세대가 다져놓은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선 전 감독은 “야구장에서 감독으로 다시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며 고인이 프로야구 전성시대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떠난 것을 안타까워했다. 시즌 중인데도 고인이 눈을 감기 전날까지 병실을 찾았던 이만수 SK 감독대행(53)은 “벌써 그립다”는 말로 둘도 없는 친구를 먼저 보낸 심정을 표현했다. 이 대행은 “병실을 나선 뒤로도 걱정이 돼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할 만큼 고인을 끔찍이 여겼다. 1958년 개띠로 고인과 동갑인 이 대행은 30년 넘게 막역한 친구로 지냈다. “동원이를 처음 봤을 때 인상이 강렬했어요. 정말 잘 던졌죠. 고교, 대학 때는 혼자서 다 던졌어요.” 경남중을 다닌 고인과 대구중을 나온 이 대행은 중학교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고 1989, 90년 두 시즌은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우리 시대 최고의 투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빨리 떠났어요.”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수위 아저씨랑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저를 보는 눈빛이 달라지더라고요.” ‘대행’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긴 했지만 2군 코치에서 1군 감독이 되고 나니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더란다. 용인에 있는 SK체육관에서 일하는 아저씨, 아주머니부터 그랬단다. “네가 될 줄 알았다” “너 아니면 누가 하겠냐”는 지인들의 축하도 많이 받았다. 대학 때부터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그도 주위 사람들이 비행기를 태우니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더란다. 현역 시절 3점슛으로 이름을 날리며 한국 농구의 슈터 계보를 이은 문경은(40). 그가 10월 13일 막이 오르는 2011∼2012시즌 프로농구에서 감독으로 데뷔한다. 시즌 개막을 한 달가량 앞두고 호주 멜버른에서 선수들과 함께 전지훈련 중인 SK 문경은 감독 대행(이하 감독)을 6일 만났다.》 문 감독은 13시즌의 프로생활을 끝으로 지난해 5월 SK에서 은퇴했다. 이후 SK 2군 코치를 맡다가 올해 4월에 감독이 됐다. 전임자이던 신선우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바람에 선수 유니폼을 벗은 지 1년도 안 돼 지휘봉을 잡게 됐다. “너무 빨리 감독 자리에 오른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답이 일사천리다. “코치 오래 한다고 감독 자격증 주는 것 아닙니다. 허허허.” 나름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2군 코치를 거쳐서 기회가 되면 1군 수석코치도 경험하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감독이 되는 목표를 세웠다. “생각보다 빨리 감독이 된 건 맞아요. 경험 부족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좋은 성적 내면 다 해결됩니다.”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고 축하 전화도 많이 받았지만 감독 되고 좋았던 날은 그날 딱 하루뿐이었다고 한다. “아는 농구인 선배들이 나타나 저를 비웃는 꿈도 꿨어요.” 꿈에서 이런 말을 해대더란다. “경은이가 벌써 감독을 해? 아는 게 뭐가 있다고?” 감독 된 후로 한동안은 잠도 제대로 못 잤고 담배도 늘었다. 스타 선수는 훌륭한 감독이 되기 힘들다는 얘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오기가 생겼다. “1990년대에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며 농구대잔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선수 중 제가 제일 먼저 감독이 됐어요. 그때 오빠부대 팬을 위해서라도 감독으로 꼭 성공하고 싶어요.” 그는 어떤 감독이 되고 싶어 할까. 용장, 지장, 덕장, 맹장 중에 하나 골라보라고 했다. 그런데 2개를 고른다. “지덕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실력도 있고 선수들한테서 신뢰도 받는 그런 감독이 되고 싶단다. “둘 중 하나만”이라고 다시 물었다. 그는 “제 성격이 어디 가겠어요”라며 지장을 포기하고 덕장을 끝까지 지켰다. 문 감독은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다. “감독이 되고 나서 선수들한테 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 게 있냐”고 물어봤다. 선수 시절 잘나갔던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면 자주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나는 잘했는데 너는 왜 못하냐. 나는 다 되던데 너는 그게 왜 안 되냐.” 이런 말은 절대 안 하기로 했단다. SK는 최근 3년간 계속 하위권이었다. 감독 대행인 데다 초짜라고 해도 부담이 없을 리 없다. 올 시즌 목표를 물어봤다. “이미 몇 군데 기사가 났던데요. 우리가 꼴찌 후보라고. 허허허. 목표는 ‘죽기 살기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입니다.” 멜버른=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 문경은△출신교=광신상고, 연세대 △프로 성적=1997∼2010년 13시즌 동안 610경기에 출전해 9347득점(평균 15.3득점). 1997∼1998,1998∼1999, 2002∼2003, 2004∼2005, 2005∼2006시즌 3점슛 1위. 3점슛 1669개로 최다 기록}
역부족이었다. 한국 육상은 아직 세계 수준에 한참 못 미쳤다. 한국기록을 세워도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세계의 벽은 높았다. 한국은 1995년 예테보리 대회를 개최한 스웨덴과 2001년 에드먼턴 대회의 캐나다에 이어 세 번째로 메달을 따지 못한 개최국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허황된 꿈 ‘10-10 프로젝트’ 대한육상경기연맹은 대회를 앞두고 ‘10-10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10개 종목에서 10명의 결선 진출자나 톱10 안에 드는 선수가 나오게 한다는 것이었다. 2007년 3월 케냐 몸바사에서 대구 대회 유치에 성공한 한국은 2009년 베를린 대회 때는 입상 포인트가 주어지는 8위 안에 한 명도 들지 못했다. 10-10 프로젝트는 안방 대회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 육상계가 내놓은 야심 찬 목표였다. 하지만 대회가 열리자 10-10 프로젝트는 목표라기보다는 희망에 가까웠다. 한국은 남자 20km 경보에서 6위를 한 김현섭(삼성전자)과 남자 50km 경보에서 한국기록으로 7위를 한 박칠성(국군체육부대)이 10위 안에 들었고 남자 멀리뛰기의 김덕현(광주시청)이 결선에 오른 게 전부다. 3개 종목에서 3명의 목표 달성자가 나온 셈이다. 세계 수준과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아 메달권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던 남자 마라톤에서도 출전 선수 5명이 전부 20위 밖으로 밀려 ‘마라톤은 한국 육상의 희망’이란 얘기가 무색해졌다. 한국은 지난해 광저우 아시아경기 육상에서 금 4개, 은 3개, 동메달 3개를 따내기도 했지만 세계선수권은 아시아 무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남자 1600m 계주 대표팀은 한국기록을,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최윤희(SH공사)는 한국타이기록을 세웠지만 예선을 통과하기에도 모자랐다. 남자 400m 계주 대표팀도 38초94의 한국 기록을 세우며 선전했지만 결선에 진출하는 8팀 안에는 들지 못했다. 그나마 한국신기록 4개가 나와 위안을 주었다.○ 유망주 발굴이 과제 대한육상경기연맹은 “2009년부터 많은 투자가 이뤄졌지만 2년 만에 세계의 벽을 넘기는 어려웠다. 장기 프로젝트를 다시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망주 발굴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오동진 연맹 회장은 “이번 대회 주축 선수들은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뛴 고참들이다. 이런 선수들이 부상당했는데도 차세대 주자를 발굴하지 못해 대체 선수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이번 대회에서 가능성을 보인 경보와 장대높이뛰기, 남녀 1600m 계주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대비해 경쟁력 있는 종목을 집중 지원할 계획이다.대구=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남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으며 성별 논란에 휩싸였던 캐스터 세메냐(20·남아프리카공화국)가 세계육상선수권 2연패에 실패했다. 세메냐는 4일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800m 결선에서 1분56초35로 올 시즌 개인 최고 기록을 작성했지만 2위에 그쳤다. 세메냐를 따돌리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주자는 마리야 사비노바(26·러시아)였다. 사비노바는 결승선을 25m가량 앞두고 세메냐를 앞지르는 뒷심을 발휘해 1분55초87의 올 시즌 최고 기록으로 우승했다. 지난해 세계실내선수권과 유럽선수권에서 연이어 정상에 오른 사비노바는 미국의 육상 전문 잡지 ‘트랙 앤드 필드’가 우승 후보로 거론하며 세메냐의 강력한 라이벌로 꼽았던 강자다. 3위는 1분57초42를 기록한 자네트 젭코스게이(28·케냐)에게 돌아갔다. 세메냐는 2009년 베를린 대회 우승 이후 불거진 성별 논란으로 겪었던 마음고생을 대회 2연패로 날려 보내는 듯했다. 중반까지 5위에 처져 있던 그는 속도를 높이면서 앞서 가던 주자들을 차례로 앞질렀고 600m를 지날 무렵 선두로 나섰다. 세메냐는 그대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듯했지만 사비노바의 막판 스퍼트에 밀려 챔피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세메냐는 2년 전 베를린 대회 우승 후 당시 18세의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어야 했다. 600m 지점부터 독주를 펼친 끝에 직전 대회 우승자 젭코스게이에게 2초 이상 앞서며 우승하자 ‘남자가 아니냐’는 의심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 같아 보이는 근육질 몸매와 낮게 깔리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진상 조사에 나섰고 ‘남자가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 1년가량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트랙에 복귀했지만 기량은 예전만 못했다. 세메냐는 지난달 21일 대구에 도착했을 때도 자신에게 쏠린 관심이 부담스러운지 언론의 인터뷰를 거부한 채 굳은 표정으로 사진촬영에만 응했다. 대회가 시작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선이 끝난 뒤에도, 준결선을 1위로 마친 뒤에도 입을 다문 채 공동취재구역을 지나쳤다. 하지만 경기를 끝낸 4일 세메냐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사비노바를 껴안으며 우승을 축하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의 마음고생을 다 털어버리려는 듯 결선 레이스를 함께 펼친 나머지 선수들에게도 하나하나 손을 내밀며 웃어 보였다.대구=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역부족이었다. 한국 육상은 아직 세계 수준에 한참 못 미쳤다. 한국 기록을 세워도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세계의 벽은 높았다. 한국은 1995년 예테보리 대회를 개최한 스웨덴과 2001년 에드먼턴 대회의 캐나다에 이어 세 번째로 메달을 따지 못한 개최국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 허황된 꿈 '10-10 프로젝트' 대한육상경기연맹은 대회를 앞두고 '10-10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10개 종목에서 10명의 결선 진출자나 톱10 안에 드는 선수가 나오게 한다는 것이었다. 2007년 3월 케냐 몸바사에서 대구 대회 유치에 성공한 한국은 2009년 베를린 대회 때는 입상 포인트가 주어지는 8위 이내에 한 명도 들지 못했다. 10-10 프로젝트는 안방 대회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 육상계가 내놓은 야심에 찬 목표였다. 하지만 대회가 열리자 10-10 프로젝트는 목표라기보다는 희망에 가까웠다. 한국은 남자 20km 경보에서 6위를 한 김현섭(삼성전자)과 남자 50km 경보에서 한국 기록으로 7위를 한 박칠성(국군체육부대)이 10위 안에 든 게 전부다. 세계 수준과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어 메달권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 받던 남자 마라톤에서도 출전 선수 5명 전부가 20위 밖으로 밀려 '마라톤은 한국 육상의 희망'이란 얘기가 무색해졌다. 한국은 지난해 김국영(안양시청)이 남자 100m에서 31년 만에 한국 기록을 깨고, 광저우 아시아경기 육상에서 금 4개, 은 3개, 동메달 3개를 따내기도 했지만 세계선수권은 아시아 무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남자 1600m 계주 대표팀은 한국 기록을,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최윤희(SH공사)는 한국 타이 기록을 세웠지만 예선을 통과하기에도 모자랐다. ● 유망주 발굴이 과제 대한육상경기연맹은 "2009년부터 많은 투자가 이뤄졌지만 2년 만에 세계의 벽을 넘기는 어려웠다. 장기 프로젝트를 다시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망주 발굴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오동진 연맹 회장은 "이번 대회 주축 선수들은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뛴 고참들이다. 이런 선수들이 부상을 당했는데도 차세대 주자를 발굴하지 못해 대체 선수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이번 대회에서 가능성을 보인 경보와 장대높이뛰기, 남녀 1600m 계주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대비해 경쟁력 있는 종목을 집중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대구=이종석기자 wing@donga.com}
안나 치체로바(29·러시아)가 여자 높이뛰기의 새 여왕이 됐다. 치체로바는 3일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대회 3연패에 도전하던 블란카 블라시치(28·크로아티아)를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둘 모두 2.03m를 기록했지만 성공 시기에서 치체로바가 앞서 우승을 차지했다. 치체로바는 2.03m를 1차 시기에서 넘었지만 블라시치는 2차 시기에 넘었다.2007년 오사카 대회와 2009년 베를린 대회에서 두 번 모두 블라시치에 밀려 2위에 그쳤던 치체로바는 세계선수권 첫 우승의 기쁨을 누리며 2인자 꼬리표도 떼어냈다. 3연패를 노리던 블라시치는 올 시즌 개인 최고 기록을 작성하며 치체로바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지만 타이틀 방어에 실패해 여왕의 자리를 내줬다. 3위는 2m를 넘은 안토니에타 디 마르티노(33·이탈리아)에게 돌아갔다.대구=이종석기자 wing@donga.com}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개막하기 전 남자 종목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끈 종목이 ‘번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출전한 100m였다면 여자 종목에서는 200m가 최고의 빅매치로 꼽혔다. 올림픽 챔피언과 세계선수권 챔피언이 200m 여제(女帝)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맞대결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거리 강국인 미국과 자메이카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입상 포인트를 챙기느냐 하는 것도 덤으로 따라붙는 관전 포인트였다. 2일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여자 200m 결선에서 베로니카 캠벨브라운(29·자메이카)이 앨리슨 필릭스(26·미국)의 대회 4연패를 저지하며 정상에 올랐다. 캠벨브라운은 22초22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200m에서 세계선수권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2007년 오사카와 2009년 베를린 대회에서 필릭스에 연거푸 밀려 2위에 그쳤던 캠벨브라운으로서는 2전 3기의 승리다. 캠벨브라운은 2004년 아테네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유독 세계선수권 200m와는 인연이 없었다. 4연패를 노리던 필릭스는 22초42의 기록으로 3위에 그쳤다. 2004년과 2008년 올림픽에서 두 번 다 캠벨브라운에 밀려 은메달에 그쳤지만 세계선수권에서는 절대 강자였던 필릭스였다. 하지만 그도 데일리 프로그램 표지 모델의 저주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그동안 대회 조직위원회가 데일리 프로그램의 표지 모델로 내세운 선수 대부분이 낭패를 봤다. 볼트와 남자 110m 허들의 다이론 로블레스(쿠바)는 실격됐다. 장대높이뛰기의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는 메달권에도 들지 못했다. 셋 다 세계기록 보유자였다. 대회 7일째 데일리 프로그램의 표지 모델로는 필릭스와 카멀리타 지터(미국)가 등장했다. 여자 100m 우승에 이어 200m에서 2관왕을 노리던 지터는 2위(22초37)에 머물렀다. 200m 우승을 놓고 3파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3명 중 표지에 실리지 않은 캠벨브라운이 공교롭게도 우승한 것이다. 입상 포인트에서는 미국이 판정승을 거뒀다. 단거리 강국답게 미국과 자메이카는 8명이 뛰는 여자 200m 결선에 각각 3명이 진출했다. 2009년 베를린 대회까지 12번의 세계선수권 여자 200m에서 미국은 4번, 자메이카는 2번 우승했다. 자메이카는 슬로베니아로 국적을 바꾼 멀린 오티가 1993년과 1995년 대회를 2연패하며 1990년 초중반 정상을 지켰다. 필릭스를 앞세운 미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최강의 자리를 지켜왔다. 세계선수권은 1∼3위에게 주는 메달과는 별개로 1위부터 8위까지 입상 점수를 주고 이를 더해 국가별 순위를 매긴다. 1위에게는 8점, 8위에게는 1점을 주는 식이다. 미국은 1위를 자메이카에 빼앗겼지만 2위(7점), 3위(6점), 4위(5점)를 챙기며 18점의 입상 포인트를 얻어 자메이카에 앞섰다. 자메이카는 1위와 5위(4점), 8위(1점)로 13점을 얻었다.대구=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인간은 산소를 체내에서 태워 에너지로 쓴다. 100m와 200m는 이미 저장된 에너지로 레이스를 마칠 수 있지만 ‘단거리의 마라톤’인 400m는 새로운 산소 에너지 공급 없이 40∼50초를 달려야 한다. 저장된 에너지는 고갈되고 젖산이라는 피로 물질이 급격히 늘어 근육은 극도의 고통을 느낀다. 400m를 ‘가장 가혹한 종목’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400m허들도 마찬가지다. 레이스 내내 전력으로 달려야 하는 400m와 달리 허들을 넘는 동안 짧게라도 쉴 수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육상 전문가들은 “두 종목 중 어느 것이 더 힘드냐는 물음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허들은 단거리 선수가 갖춰야 할 스피드는 물론이고 근력과 리듬감이 필요하다. 곡선 주로를 달리는 400m허들은 여기에 원심력을 조절하는 능력과 지구력까지 갖춰야 한다. 게다가 허들은 기술 종목이다. 류샹(중국)이 황인종 최초로 트랙(110m허들)에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허들을 넘는 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류샹은 100m 기록이 10초2, 3대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압도하지 못하지만 가속도를 이용해 허들을 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골반의 유연성을 최대한 활용한다. 400m허들의 개수는 10개로 100m(여자), 110m(남자)와 같다. 출발 뒤 45m를 달려 첫 번째 허들을 넘는다. 허들과 허들 사이의 간격은 35m다. 선수마다 보폭을 조절해 페이스를 배분한다. 허들의 높이는 91.4cm로 110m(106.7cm)보다 낮기 때문에 도약할 때 옆 레인 선수와 부딪히는 경우는 별로 없다.1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400m허들 결선. 가장 가혹한 종목에서 남녀 모두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했다. 남자 결선에서는 데이비드 그린(25·영국)이 예상을 깨고 48초26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8명의 선수 중 두 번째로 마지막 허들을 넘어선 그린은 직선 주로에서 무서운 스퍼트를 선보이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남자 400m허들은 세계선수권 3연패를 노리던 최강자 케런 클레멘트(26·미국)가 준결선에서 탈락해 L J 반 질(26·남아프리카공화국)과 펠릭스 산체스(34·도미니카공화국), 앤절로 테일러(33·미국)의 3파전이 예상됐다. 반 질은 올해 나온 최고 기록 1∼4위를 모두 작성했을 만큼 클레멘트의 강력한 라이벌로 거론됐다. 산체스는 2001, 2003년 세계선수권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승했고 2007년 오사카 대회에서 2위를 하는 등 2000년대 중반까지 ‘400m허들의 독재자’로 군림했다. 2000년 시드니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제패했지만 세계선수권에서는 한 번도 3위 안에 들지 못한 테일러는 대회 첫 우승을 별렀다.그러나 금메달의 주인공은 그린이었다. 2년 전 베를린 대회에서 7위에 머물렀던 그는 지난해 7월 유럽선수권과 9월 대륙컵에서 잇달아 1위를 차지하며 대구에서의 활약을 예고했고 결국 챔피언이 됐다. 그린은 유소년 시절 축구 선수였으나 달리기를 워낙 잘해 육상으로 돌아섰다. 하비에르 쿨손(27·푸에르토리코)이 2위, 반 질이 3위를 했다. 그린은 “초반 200m가 좋지 않았는데 나중에 기회가 왔다. 이제 내가 세계 최고다”라고 말했다.여자 400m허들에서는 라신다 디머스(28·미국)가 새로운 여왕이 됐다. 디머스는 52초47의 올 시즌 최고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하며 2005년과 2009년 2위에 그친 아쉬움을 풀었다. 2연패에 도전했던 2009년 대회 우승자 멜러인 워커(28·자메이카)는 2위로 밀렸다. 동메달은 나탈리야 안튜흐(30·러시아)에게 돌아갔다. 대구=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

장대를 박스에 꽂는 순간부터 3초 남짓. 짧은 시간이지만 하늘을 난다. 잔뜩 웅크렸던 막대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면서 막대의 주인은 날갯짓을 시작한다. 장대높이뛰기는 스피드, 민첩성, 근력, 균형감, 점프력, 악력 등 육상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춰야 한다. 육상의 종합선물세트다. 상체와 하체가 균형 있게 발달해야 하고 팔다리가 길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갖췄고 외모도 수려했다. 게다가 밥 먹듯 세계기록을 갈아 치우는 그를 사람들은 ‘미녀새’로 불렀다.‘미녀새’가 추락했다. 옐레나 이신바예바(29·러시아)는 30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선에서 4.65m로 6위에 그쳤다. 2003년 4.82m를 날아오르며 첫 세계기록을 세운 그는 2005년 여자 처음으로 5m(5.01m)를 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계기록을 5.05m로 바꾸며 금메달을 딴 이신바예바는 2009년 5.06m까지 솟구치며 27번째 세계기록(실내 12개 포함)을 달성했다. 올림픽에서 2개, 세계선수권에서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하늘 높은 줄 몰랐던 그에게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은 악몽이었다. 2003년 파리 세계선수권 이후 6년 동안 정상을 지켰던 그가 결선에도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에도 부진은 이어졌고 올 시즌 최고기록도 4.76m로 좋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다시 날아오르리라 믿었다.이날 대구스타디움에 선 그는 언제나처럼 다른 선수들이 경기를 시작할 때 수건을 얼굴에 덮은 채 트랙에 누웠다. 가끔 일어나 몸을 풀었지만 이내 또 누웠다. 4.30m에서 시작한 바의 높이가 4.65m가 됐을 때 비로소 장대를 잡았고, 첫 번째 시도에서 가뿐하게 바를 넘었다. 그게 유일한 성공이었다. 4.70m를 건너 뛴 이신바예바는 4.75m 1차 시도에서 실패한 뒤 4.80m에 도전했지만 주어진 기회를 모두 놓쳤다. 이신바예바는 탈락이 결정된 뒤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연예인처럼 웃었지만 얼굴의 그늘까지 가리지는 못했다.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일에 익숙했던 그는 푸른색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서성이다 조용히 스타디움을 빠져 나갔다. 여제(女帝)답게 품위를 잃지 않았던 그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이신바예바가 떠난 자리를 마지막까지 지킨 선수는 브라질의 파비아나 무레르(30)였다. 그는 개인 최고 타이인 4.85m를 넘어 대구의 별이 됐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레르는 ‘브라질의 이신바예바’로 불리는 남미 최강자다. 172cm, 64kg의 체격에 얼굴도 예뻐 모델 제안이 잇따를 정도다. 이신바예바처럼 원래는 체조선수였다 키가 계속 자라는 바람에 장대높이뛰기로 전향했다. 2005년 헬싱키 세계선수권에서는 예선 탈락했지만 2007년 오사카 대회 6위, 2009년 베를린 대회 5위로 점차 순위를 끌어올렸고, 지난해 세계실내선수권에서 첫 메이저대회 우승의 기쁨을 맛본 뒤 마침내 대구에서 세계선수권 3전 4기에 성공했다.무레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결선에 올랐지만 대회 조직위원회의 실수로 장대를 잃어버리는 불운을 겪은 적이 있다. 조직위 측이 마련해 준 다른 장대로 경기에 나섰지만 손에 익지 않은 무기로 제 실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평소 자신이 쓰던 장대보다 더 길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야구선수가 무거운 고교 선수 배트를 사용한 격이었다.그는 4.45m의 한심한 기록으로 10위에 그쳤다. 브라질 정부는 올림픽이 끝난 뒤 무레르를 위로하기 위해 그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무레르는 이날 우승으로 자신을 격려해줬던 조국에 세계선수권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다. 예상치 못한 불운으로 고개를 숙인 무레르와 바로 그 대회에서 세계기록으로 우승하며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던 이신바예바. 대구에서 둘의 운명은 바뀌었다. 이신바예바는 내년 런던 올림픽에 이어 2013년 자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 명예롭게 은퇴할 계획이었지만 실현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이신바예바는 공동취재구역을 빠져나가며 “장대가 너무 소프트했다. 더 딱딱한 것을 택해야 했다. 그러나 결과에는 후회가 없다. 지금 머리가 텅 빈 것 같다. 난 아직 배가 고프다”며 부활을 다짐했다. 추락한 ‘미녀새’가 다시 가장 높이 날려면 ‘브라질의 이신바예바’부터 넘어야 할 것 같다.대구=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
2명의 경쟁자 틈에 끼어 샌드위치 레이스를 펼치던 로블레스는 4번째 허들을 넘고서 왼쪽에 있던 올리버와 팔이 살짝 닿았다. 셋 중 올 시즌 유일하게 12초대(12초94)를 뛰어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였던 올리버는 일찌감치 떨어져나갔다. 로블레스와 류샹은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다. 전체 10개의 허들 중 9번째를 넘고 트랙을 달리던 로블레스의 오른팔이 류샹의 왼팔과 부딪쳤다. 마지막 허들을 넘을 때 다리가 걸려 중심을 잃은 류샹은 결승선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로블레스와 팔이 닿았다. 13초14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로블레스는 3위로 들어온 류샹을 껴안으며 끝까지 박빙의 레이스를 펼친 라이벌을 격려했다. 이때까지는 좋았다.류샹의 코치 쑨하이핑은 경기가 끝난 뒤 “로블레스 때문에 레이스에 방해를 받았다”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경기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다. 위원회는 비디오 분석에 들어갔고 로블레스가 고의로 류샹의 레이스를 방해한 것으로 판단해 로블레스의 1위를 취소했다. IAAF의 규정집 163조 2항에는 ‘레이스 중 상대 선수를 밀거나 진로를 방해하면 그 선수를 실격시킬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위원회는 로블레스의 레이스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쿠바 측도 즉각 항소했지만 IAAF는 기각했다.류샹은 경기가 끝난 뒤 “마지막 허들을 넘고 로블레스와 부딪쳐 중심을 잃을 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로블레스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결백하다”고 주장했다.대구=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