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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희생자 유가족들은 23일 “정부는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을 강력히 응징하고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출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천안함 전사자 유가족협의회는 이날 ‘민군 합동조사단 발표에 대한 전사자 가족 성명’을 통해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조사 결과는 과학적인 방법과 객관적인 증거에 의한 결론으로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유가족협의회는 서울 동작구 대방동 해군 재경근무지원단에서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국방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들은 뒤 이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유가족협의회는 “대한민국의 영해 내에서 대한민국의 군함에 대해 불법적이고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야만적인 북한을 강력히 규탄하며 반드시 사죄할 것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천안함 침몰 원인 및 장병 46명의 전사와 관련해 진실을 왜곡하고 전사자와 가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규탄한다”며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어떠한 행위도 더는 용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한편 민군 합동조사단은 이날 유족들에게 사건 발생 직전 천안함 승조원들의 모습이 담긴 8분짜리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했다. CCTV 영상은 가스터빈실과 디젤기관실, 후타실 등에서 근무하거나 운동하는 승조원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합조단은 이에 앞서 천안함에 설치된 11개의 CCTV 중 6개의 녹화 내용을 복원했다. 유가족들은 “불쌍한 내 새끼들”이라고 흐느끼며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면서 분노했다고 해군 관계자는 전했다.이유종 기자 ▲ 동영상 = 北어뢰 파편 공개…천안함 침몰 결정적 증거 ▲ 동영상 = 처참한 천안함 절단면…北 중어뢰 공격으로 침몰}

“발표 전날 저녁 갑작스럽게 통역을 맡게 돼 밤새도록 수십 장의 자료와 질의서를 공부했습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 조사결과 발표는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통역 중 가장 어려웠지만 그만큼 뿌듯했습니다.” 20일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 현장에서 통역을 한 조군호 중위(27·사진)는 23일 당시 소감을 이같이 전했다. 국방부 장관실 통역장교로 근무 중인 조 중위는 당시 100여 명의 내외신 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완벽에 가까운 통역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능숙한 통역이 TV 생방송으로 나간 뒤 국회, 정부 부처, 기업체 등에서 조 중위의 신상과 이력을 묻는 전화가 군 당국에 쏟아졌다고 한다. 조 중위는 2002년 미국 애틀랜타의 웨스트민스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일대에 입학했다. 삼성 이건희장학재단 1기 장학생으로 선발돼 4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예일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공군 통역장교 선발시험에도 수석으로 합격했고 공군 작전사령부 교육도 1등으로 수료했다. 조 중위는 다음 달 30일 전역한 뒤 9월 미국 컬럼비아 로스쿨에 진학할 예정이다. 하버드 로스쿨에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다. 장차 국제통상이나 비즈니스 협상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는 “통역은 관련 자료를 미리 숙지하고 용어를 파악하는 사전 준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 중위는 외교관 출신인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장의 아들로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장기간 체류한 적이 있어서 일본어 수준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어뢰가 폭발했다면 함체에 화약성분이나 가스가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절단면 등을 가제로 훑어낸 뒤 화학적인 분석작업에 들어갔죠. 천안함의 결정적인 증거물인 어뢰추진기는 처음부터 비슷한 게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수색을 벌여) 찾아낸 것입니다. 북한도 어뢰추진기까지 남았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천안함 침몰사건 민군 합동조사단의 민간 측 공동단장인 윤덕용 KAIST 명예교수는 21일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시작했다”며 “어떤 폭약이 어떤 위치에서 터져 함체가 두 동강나게 됐는지 과학적인 분석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처음엔 北소행 단정안해모든 가능성 열고 과학적 분석외국팀, 증명안되면 “NO” 제동미군 도움이 컸다시뮬레이션 노하우 제공현장서 증거물 찾으라 조언고마운 쌍끌이 어선전세계 유례없는 성공사례호주팀 본국에 보고하겠다 해이해 못할 억측-루머아무리 정확한 증거 나와도왜 납득 안하려 하는지…윤 단장은 합조단이 처음에는 미국 조사팀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미군은 대형사건에 노하우가 많아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고 조사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자료도 풍부했다”며 “미 해군 토머스 에클스 준장은 사고 원인을 시뮬레이션 할 것과 사건현장에 떨어진 증거물을 찾으라고 조언해줬다”고 소개했다.이에 따라 합조단은 먼저 컴퓨터와 수식(數式)을 이용해 충격파와 버블효과가 단계적으로 어떻게 나오는지 시뮬레이션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대한 함수관계를 밝혀냈다. 폭약의 양이 적으면 배를 두 동강낼 정도의 손상이 발생하지 않지만 반대로 폭약의 양이 너무 많으면 손상이 커졌다.한편으론 쌍끌이 어선을 동원했다. 전 세계적으로 쌍끌이 어선을 이용해 사건 원인을 규명한 사례는 아직까지 보고된 바 없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합조단에 참여한 호주팀은 “본국에 돌아가 쌍끌이 어선의 사례를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그러나 미군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천안함처럼 침몰한 함체를 분석한 사례는 없었다. 윤 단장과 국방과학연구소(ADD)팀은 함체에 묻어 있는 정체불명의 흰색 흡착물질에 관심을 가졌다.“폭발물이 터질 때 비결정성 알루미늄 흡착물이 생긴다는 것이 명확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구한 게 없었죠. 다만 반도체에서 산화알루미늄층을 만드는데, 증기상태에서 고온으로 급속 냉각을 시킬 때 비결정성 산화알루미늄이 생긴다는 논문은 있었죠.”ADD팀은 어뢰추진체에서 ‘1번’이라는 표시를 발견하자 7년 전 경북 포항시 앞바다에서 건진 북한의 훈련용 어뢰를 금방 떠올렸다. 그것에 쓰인 ‘4호’라는 표시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윤 단장은 “북한 어뢰는 자동으로 생산되는 게 아니고 손으로 조립하기 때문에 부품을 표시할 때 ‘1번’이라고 쓸 수 있다”며 “사실 ‘1번’이라고 쓰인 부분은 안에 숨겨져 있는데 어뢰가 폭발하면서 보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윤 단장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억측과 루머가 오르내리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정확한 증거가 나와도 납득이 안 가는지, 납득하지 않으려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그럼에도 국민에게 정확히 이해시켜 드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윤 단장은 어뢰 폭발 시뮬레이션이 천안함에 가해지는 충격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고 실제 상황처럼 두 동강난 것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시간 부족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개를 안 하거나 못 한 게 아니라 컴퓨터를 돌리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작업을 (계속)하는 단계에 있었다”며 “일주일 정도 시간이 더 있었다면 천안함이 파괴 정도가 아니라 두 동강나는 장면도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을 합조단 내 전문가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윤 단장은 합조단 토론 과정에서 의견 조율이 어려울 때도 있었다며 “그런 때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인들은 정확하게 증명되지 않으면 ‘노(No)’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여러 의견을 모두 놓고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풀어 나갔다. 그런 과정에서 오히려 모든 가능성에 대해 굉장히 깊이 있는 분석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윤 단장은 “결국은 국제적으로 알려질 일이고 국제적인 신뢰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니까 허술하게 지나갈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며 “한 방향으로 결론을 몰아갈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조사 결과에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윤 단장은 “처음 합조단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과학자로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제의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활동 초기 함미가 인양돼 함체 안에 들어갔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종이컵이 나뒹구는 등 당시의 상황이 연상되기도 하고, 굉장히 비참했어요.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조사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독도함에 체류해야 하는 어려움은 문제가 안 되더군요.”윤 단장은 1958년 경기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응용물리학박사를 받았다. 웨인주립대 교수를 거쳐 1970년 KAIST 교수로 임명됐다. KAIST 원장을 거쳐 현재 포스텍 대학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다. 윤 단장은 이날 부인과 함께 포항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전화로 인터뷰에 응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동영상 = 北어뢰 파편 공개…천안함 침몰 결정적 증거 ▲ 동영상 = 처참한 천안함 절단면…北 중어뢰 공격으로 침몰}

민군 합동조사단은 20일 천안함이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천안함에서 발견된 다양한 화약성분을 제시했다. 특히 천안함 절단면에서 발견된 흰색 물질과 어뢰 잔해에서 발견된 물질의 화학성분이 정확하게 일치해 ‘어뢰 피격’을 확인해줬다. 흰색 물질은 총을 쏜 뒤 화약흔이 남는 것처럼 어뢰가 남긴 일종의 흔적인 셈이다. 외견상 금속이 부식된 것처럼 보이는 이 물질은 선체 8곳과 어뢰 추진기 등 폭발물 파편 2곳에서 발견됐다. 함수에서 함미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발견됐고 대부분 함체 아랫부분에 묻어 있었다. 강한 물살에도 불구하고 함수와 함미에서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흰색 흡착물질의 정체 윤덕용 민군 합동조사단장은 19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기자들을 만나 “흰색 흔적은 폭발물에서 나온 비결정성 알루미늄 산화물이 주류이며 어뢰에 담겨 있던 알루미늄 분말이 비결정체 산화물로 바뀐 것”이라며 “가스가 지나가면서 특히 연돌에 흡착됐다. 연돌에 남은 흡착물질은 줄이 지나간 것처럼 흔적이 생겼다”고 말했다. 합조단이 흡착물질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비결정성 알루미늄 산화물 45∼55% △탄소 0.6∼3.0%(일부 흑연) △황 3.5∼4.5% △수분 등 36∼42%로 검출됐다. 이 성분은 쌍끌이 어선을 통해 발견한 어뢰의 추진기에 묻은 흰색 흔적의 성분과 비교했더니 일치했다고 한다. 이 결과는 함체와 어뢰 추진기에 비슷한 형태의 화학작용이 동일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윤 단장은 “흡착물질이 프로펠러와 철로 만들어진 추진기 표면에서도 관찰됐으며 모터 속에도 그런 물질이 있었다”며 “최근 어뢰 폭약에 알루미늄 분말이 20∼30% 사용된다. 알루미늄 분말은 폭발 위력을 증가시키고 특히 버블을 만드는 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비결정성 알루미늄 산화물은 알루미늄이 빠른 시간 내에 급격한 에너지를 받아서 생성되거나 높은 온도에서 갑자기 급속도로 냉각될 때 생긴다. 그러나 알루미늄이 일반적으로 천천히 부식될 때는 결정을 가진 형태로 산화물을 만든다. 어뢰가 폭발하는 과정에서 나온 기체가 갑자기 차가운 물과 만나 냉각되면서 고체인 비결정성 알루미늄 산화물로 바뀌었다고 합조단은 분석했다. 흡착물질이 함체에 붙은 상태로 오랫동안 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은 것은 폭약 산화물이 화학 구조상 안정된 상태로 남았기 때문이다. 합조단은 “비결정성 알루미늄 산화물은 알루미늄 분말이 어뢰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생겼고 폭발로 산화되면서 강한 거품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합조단 폭발유형분석분과 이근득 박사는 “(흡착물질엔) 고온 고압에서 형성되는 흑연도 발견됐다”며 “이런 물질은 수중폭발이 발생했을 때 생긴다. 분석을 통해 (어뢰) 프로펠러와 천안함에서 검출한 흡착물질이 동일한 물질임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과연 어뢰 폭발 때 흰 물질 생길까 합조단은 자체 실험을 통해 어뢰가 폭발할 때 천안함 침몰 때처럼 흰색 물질이 생기는지 확인했다. 먼저 어뢰 폭발물에 주로 사용되는 성분으로 RDX(Research Department Explosive)와 트리니트로톨루엔(TNT), 알루미늄 분말을 골랐다. 이 밖에도 다양한 성분을 어뢰 폭발 방식에 따라 넣고 배합했다. 문병옥 합조단 대변인은 “7년 전 발견된 북한의 훈련용 어뢰에는 화약이 담겨 있지 않아서 모의 폭발물 제조에 필요한 화약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며 “북한 어뢰의 배합비율을 알지 못해서 일반적인 어뢰 폭발물의 배합비율을 따랐다”고 말했다. 합조단은 RDX와 TNT, 알루미늄을 적당 비율에 따라 넣은 폭발물 15g을 만들었다. 이 폭약을 해수(4.5t)로 채운 가로 2m, 세로 1.5m, 높이 1.5m의 수조에 넣었다. 실험 결과 폭발물이 터진 뒤 수조가 깨졌다. 합조단은 모의 폭발물 실험에서 천안함에서 발견한 흰색 흡착물질과 같은 흰색 물질을 얻었다. 어뢰 폭발로 흰색 흡착물질이 생긴다는 사실을 이 실험을 통해 자체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모의실험에서 나온 흰색 물질의 구성 성분도 비결정성 알루미늄 산화물과 탄소, 황 등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구성 성분의 비율은 천안함의 흡착물질과 달랐다. 합조단 관계자는 “천안함 아래쪽에서 터진 어뢰의 폭발물 성분과 실험에 쓰인 폭발물의 구성 비율이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동영상 = 北어뢰 파편 공개…천안함 침몰 결정적 증거 ▲ 동영상 = 처참한 천안함 절단면…北 중어뢰 공격으로 침몰}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에서 어뢰의 화약성분인 트리니트로톨루엔(TNT)과 RDX, HMX(High Molecular weight rdX)를 검출했다. 어뢰가 폭발한 뒤 생기는 비결정성 알루미늄 산화물과 흑연도 발견됐다. 어뢰에는 짧은 시간에 강한 폭발력을 낼 수 있는 화학성분들을 섞어서 사용한다. 사용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성분들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서 사용해야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다. 주로 TNT와 RDX, 알루미늄, HMX 등의 성분이 가장 많이 쓰인다. 어뢰가 처음 개발됐을 때는 폭발물로 다이너마이트가 사용됐다. TNT는 연료와 산소의 단순한 혼합물이 아니라 연료와 산화제가 분자 내에 결합돼 있다. 충격을 가해야만 폭발할 수 있어서 기폭 장치가 필요하다. TNT는 질소, 수소, 탄소, 산소로 구성된다. 기폭 장치가 터지면 충격파로 분자 결합이 깨지면서 초속 6.7km의 속도로 폭발하고 4000psi 이상의 압력을 발생시킨다. RDX는 화약성분으로 흰색의 단단한 고체 결정물이다. 물이나 알코올에 녹지 않고 주로 발파용 뇌관으로 다른 물질과 섞어 사용한다. TNT보다 점화 속도가 50배 빠르고 폭발력도 50% 이상 강하다. RDX 제작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으며 보관할 때도 비교적 안전하다. 수중무기에서는 기뢰보다는 어뢰에 주로 사용되며 한국군 역시 어뢰에는 RDX 성분을 사용하고 있다. 폭발물에 알루미늄 분말을 사용하면 폭발 지속 시간이 늘어나서 결과적으로 폭발력이 커지는 효과가 있다. 폭발력이 TNT 200kg 규모인 러시아제 중(重)어뢰는 폭약에 알루미늄 가루를 섞어 폭발력을 TNT 340kg 규모로 높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기연감 등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때도 TNT 41%, RDX 41%, 알루미늄 분말 18%를 섞은 어뢰폭약 토펙스(Torpex)가 쓰였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동영상 = 北어뢰 파편 공개…천안함 침몰 결정적 증거 ▲ 동영상 = 처참한 천안함 절단면…北 중어뢰 공격으로 침몰}

북한산 CHT-02D 어뢰는 타격 목표 함정의 기관 스크루 소리를 따라가 일정 목표지점에서 폭발하도록 만들어진 수동식 음향 어뢰이다. 길이 7.3m, 지름 53cm, 무게는 1.7t. 프로펠러 날개 4개는 각각 45cm로 상하, 좌우현으로 움직일 수 있다. 폭발장약은 250kg을 사용한 중(重)어뢰이다. 수중무기 전문가들은 북한이 러시아제 ET-80A나 중국제 음향감응식 어뢰인 ‘Yu(魚)-3G’를 바탕으로 자체 개량한 기종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기술 지도를 받았거나 설계도면을 입수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럴 경우 북한은 자체 기술로 어뢰를 개량할 능력을 보유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군 관계자는 “CHT-02D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하는데 아직까지 이 기종이 어느 정도 생산됐는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게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어뢰 설계도면이 자세히 기록된 수출용 무기 소개책자를 제작한 것은 서방국가의 감시로 어뢰 완제품을 팔기 어려워지자 기술 지도를 유인책의 일종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합조단은 “북한군은 이번에 천안함이 받은 피해와 동일한 규모의 충격을 줄 수 있는 폭발량 200∼300kg 규모의 직주어뢰, 음향 및 항적 유도어뢰 등 다양한 성능의 어뢰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동영상 = 北어뢰 파편 공개…천안함 침몰 결정적 증거 ▲ 동영상 = 처참한 천안함 절단면…北 중어뢰 공격으로 침몰}

■ 李대통령 - 오바마 ‘25분 통화’ 요지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간 통화는 18일 오전 9시부터 25분간 이뤄졌다. 백악관 측에서 청와대로 전화를 걸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How are you? my friend”라며 친근감을 표현했다. 두 정상의 통화는 이번이 4번째다. ▽이 대통령=(천안함) 조사가 당초 목표한 대로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천안함 구조와 인양 작업에 미국 전문가들을 파견하는 등 아낌없이 지원해줘 고맙다. 이번 천안함 사태를 통해 한국 국민들이 한미 동맹의 가치를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오바마 대통령=미국은 한국 정부의 대응과 국제조사단의 조사 활동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지지하고 있다. 다음 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한국에 파견해 향후 대응에 한국 측과 긴밀히 협력하겠다. ▽이 대통령=20일 천안함 합동조사 결과 발표 직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하지만 21일은 석가탄신일,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라서 내주로 시기를 미뤘다. ▽오바마 대통령=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를 7월 22일 서울에서 개최하는 게 어떤가. ▽이 대통령=동의한다.고기정 기자 koh@donga.com 한미 찰떡공조 재확인‘北 연관성 공감’ 강력시사안보리 결의 준수도 촉구‘신중 스탠스’ 中설득 과제향후 대응 일정은클린턴 美국무 내주 방한양국 외교·국방장관회의7월22일 서울개최 합의민군 합동조사단이 지난 주말 수거한 어뢰 프로펠러는 비록 손상됐지만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력한 폭발에도 이것이 가능할까. 어뢰는 보통 △목표물을 찾는 음향 탐지장치와 자기장 감지기가 있는 센서 부분 △고성능 폭약으로 구성된 탄두 부분 △에너지원인 연료전지 부분 △프로펠러가 달린 추진장치 부분으로 구성된다. 프로펠러는 보통 2개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어뢰의 프로펠러는 1개만 돌면 똑바로 나아가기 어려워 2개를 함께 돌려서 쉽게 나아갈 수 있게 만든다. 탄두 부분은 알루미늄합금이나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의 재질로 돼 있고 두 겹의 외피로 싸여 있다. 알루미늄합금과 FRP 성분은 재질이 단단하다. 추진장치(프로펠러)는 강한 물살에도 부러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대개 재질이 무른 동(구리)합금으로 만들어진다. 탄두 부분은 재질이 강해 폭발물이 터지면 부서진다. 그러나 프로펠러 부분은 탄두 부분에 비해 성분이 무르기 때문에 부서지기보다는 휘어지는 성향이 짙다. 이 때문에 탄두가 폭발해 몸체가 부서져도 프로펠러 부분은 어느 정도 형체를 유지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또 센서를 감싸고 있던 알루미늄합금 일부는 어뢰가 폭발한 뒤 조각 등의 형태로 발견될 수 있다. 수중무기 전문가들은 “프로펠러 부분은 탄두 사이에 연료전지가 끼워져 있어 폭발의 영향을 덜 받아 상대적으로 형체가 보존된다”고 말했다. 프로펠러의 날개 수와 각도, 표면처리, 재질, 형상 등은 제조국마다 만드는 방식과 특성에 따라 다르다. 이 때문에 어디서 언제 만들었는지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또 프로펠러에는 통상 고유번호가 새겨져 있다. 어뢰의 프로펠러는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지문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프로펠러는 항공기나 선박에서 엔진의 회전력을 추진력으로 변환하는 장치이다. 스크루 프로펠러라고도 불리며 선박의 경우 스크루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이재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사진)은 13일 천안함 침몰 사건 애도기간 중 공직자를 대상으로 골프를 자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공공기관 차량들이 전국 곳곳의 골프장 주차장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이날 정부중앙청사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직원을 대상으로 청렴특강을 하면서 “대학 및 교육자치단체 10곳, 국회 5곳, 법원 2곳, 중앙행정기관 4곳, 지방자치단체 6곳, 공직유관단체 3곳 등의 소속 차량이 골프장 주차장들에서 발견됐다”며 “(주차장에 세워진) 교육기관 차가 골프를 쳤는지 안 쳤는지 모르고 본인들은 부인할 수 있겠지만 (권익위가) 차량 번호까지 다 적어놓았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이 언급한 교육 관련 기관 차량은 국공립대 소속이 5대, 고교와 교육청 차량이 각각 1대이며 나머지 3대는 사립대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익위는 천안함 애도기간 중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소속 경기 화성상록골프장과 충남 천안상록골프장, 한국교직원공제회의 소피아그린골프장 등에 주차된 공공기관 차량을 조사했다. 이 위원장은 “왜 그 시간 그 날짜에 골프장 앞에 그 차를 대놓는가. 점심 먹으러 골프장에 가나, 약속을 거기서 하나”라며 “이렇게 하면 국민이 믿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맑은 물 한 컵에 검은 잉크 한 방울만 떨어지면 다 검어진다. 40만 교육 공무원 중 1년에 비리나 부패로 옷 벗거나 잡혀가거나 그만두는 사람이 400명이 안 될 텐데 어느덧 교육계가 전부 비리의 집단처럼 돼 있다. 청산해야 할 부패를 청산하지 못하고 당연히 여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공무원이나 준정부기관 직원들이 상급 감독기관 직원을 공금인 업무추진비로 접대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중앙부처 공무원이 하급부서 공무원들에게 밥이나 술을 얻어먹는 것은 미풍양속이 아니다. 이것은 부패다”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어떤 공공기관은 경제부처에 로비성으로 1년에 2억6091만 원, 국회 등에는 1억325만 원을 지출했다”고 지적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국방부가 전국 15개 공군 비행장(전술항공작전기지) 중 서울기지(경기 성남시 서울공항) 등 10개 비행장 주변의 건축물 고도제한을 완화한다. 국방부는 12일 전술항공작전기지의 활주로 중심에서 좌우로 각각 600m 이상 떨어진 구역에는 인근의 영구장애물 높이까지 건축물을 허가할 수 있도록 고도제한을 완화한다고 밝혔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활주로 중심에서 좌우 600∼4420m 구역(비행안전 5·6구역)은 거리에 따라 단계적으로 최고 높이 45∼152m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비행안전에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변의 영구장애물 최고 정점에서 활주로 방향으로 높이 45m까지 기울기 5.7도의 사선을 그어 사선 아래의 높이까지는 건축이 허용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비행장 주변에 산 등 영구장애물이 있으면 현재 고도제한을 받는 구역 중 일부는 실제 비행기가 운항하기 어렵기 때문에 구태여 규제할 필요가 없다”며 “비행에 장애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런 구역에 건축물 고도제한을 완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번 고도제한 완화 조치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권고한 차폐이론(Shielding Theory)을 적용했다. 차폐이론은 비행장 주변에 있는 가장 높은 영구장애물의 그림자가 덮을 수 있는 높이까지 건축을 허용하는 이론이다.▶본보 2월 18일자 A1·2면 참조수원 강릉 오산 청주기지 등 4개 공군기지는 항로 등에 관계없이 활주로의 모든 방향에서 차폐이론 적용이 가능하다. 서울 대구 광주 사천 중원 예천 등 6개 공군기지는 항로 등을 고려해 일부 영구장애물만 차폐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 앞으로 관할 부대의 비행안전영향평가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 등의 절차를 통과해야 하지만 청주기지 주변은 이론상 현재보다 건축물을 최고 91m까지 더 높게 지을 수 있다. 서울기지 주변인 경기 성남시 수정구 일부 지역은 건축물 높이가 최대 41m 더 올라갈 수 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42년 전 예비군 훈련 도중 발생한 사망 사건의 원인이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11일 권익위에 따르면 1968년 6월 광주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던 최모 씨(당시 25세)는 갑자기 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뒤 숨졌다. 병원은 “급성 복막염으로 사망했지만 원인은 모르겠다”며 병사로 처리했다. 최 씨의 유족은 당시 구타로 인한 장 파열을 의심했지만 끝내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최 씨의 동생(63)은 지난해 3월 권익위에 사고 원인을 규명해 달라며 민원을 냈다. 권익위는 사망자의 병상 일지를 근거로 대한의사협회에 분석을 요청한 결과 ‘복강 내 출혈(장 파열)’이 있었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권익위는 당시 사고 현장을 방문한 뒤 현장 검증을 거쳐 육군참모총장에게 최 씨를 순직자로 인정하도록 시정권고를 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천안함 실종자 가족 중 일부가 ‘천안함 침몰사고 민군 합동조사단’에 참여한다. 이정국 실종자가족협의회 대표는 6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군합동조사단에 가족대표단이 참여하라는 국방부 통보를 받았다”며 “가족 중 해군 장교 출신이나 해양전문가 등 4명 정도를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 대표단은 빠르면 2, 3일 후 합동조사단에 합류한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은 “이분들이 합조단원 자격을 가질지, 합조단 업무를 관찰하는 자격일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관찰자 입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천안함 절단면 비공개 논란과 관련해 “사실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군의 자세가 의혹을 키우고 있다”며 “사건 원인이 바뀌는 것이 아닌 이상 의혹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평택=최예나 기자 yena@donga.com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정부는 세종시 수정 관련 법안을 23일 오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정부 당국자는 22일 “(세종시 수정을 위한 관련법) 개정안이 내일 오전 국무회의가 끝난 뒤 법제처를 거쳐 국회로 이관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주호영 특임장관은 “법안 제출권 자체는 정부에 있다. 당이 제출하지 말라 한다고 해서 제출 안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제출될 세종시 관련 개정안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 △혁신도시 건설·지원 특별법 △산업 입지·개발법 △기업도시개발 특별법 △조세특례제한법 등 5건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60년전 중공군에 막혀 돌아온 기관차북한군 오해받아 장단역서 폭격역 건물 파괴되고 철로도 끊겨DMZ 유유히 흐르는 사천강엔밀려드는 중공군 목숨바쳐 막아낸해병대 776명 젊음도 함께 흘러 1000여 개의 총탄 자국, 무참히 일그러진 바퀴…. 22일 오전 경기 파주시 임진강 통일대교 앞. 육군 제1사단의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 검문소를 지나며 임진강 왼쪽 자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 옆에 장단역 증기기관차가 전시돼 있었다. 1950년 12월 31일 오후 10시 파주 장단역. 개성 방향에서 북한의 화물 증기기관차가 천천히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장단역 주변 곳곳에서 국군과 유엔군의 포탄이 쏟아졌다. 기관사는 갑자기 날아든 포탄에 깜짝 놀랐고 기관차는 선로를 벗어나고 말았다. 기관사 한준기 씨는 국군의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다 중공군에 막혀 황해도 평산군 한포역에서 북한 기관차로 갈아타고 장단역에 들어오던 중이었다. 장단역에 무사히 도착했으나 북한군으로 오해를 받아 폭격을 받은 것이다. 기관차는 그대로 멈췄다. 장단역의 시간도 거기서 멈췄다. 그리고 60년. 비무장지대(DMZ)에서 붉게 녹슨 채 방치됐던 이 기관차 화차는 2년간의 보존처리 작업을 거친 뒤 2009년 6월 민통선 바로 앞인 자유의 다리 남단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분단의 상징물, 장단역 증기기관차를 뒤로하고 통일대교를 건너 민통선 안으로 들어갔다. 파주의 현대사는 6·25전쟁과 맞물려 있다. 특히 민통선 안쪽과 DMZ는 그 상흔이 깊다. 눈이라도 내릴 듯 날씨는 뿌옇게 가라앉아 있었다. 저 기관차가 멈춰 섰던 장단역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경의선(서울∼신의주 구간)은 끊겼고 장단역 건물도 파괴돼 사라졌다. 장단역은 DMZ 안에서 그 터만 외롭게 남아 있을 뿐이다. 장단역 대신 2002년 신설된 도라산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북으로 1km만 들어가면 장단역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14.2km를 더 가면 개성이 나온다. 도라산역을 나와 도라산 전망대에 올랐다. 날씨가 흐려 시계가 좋지 않았다. 오른쪽 DMZ에서 태극기가 높게 나부꼈다. 그 북쪽으로는 인공기가 눈에 들어왔다. 군사분계선을 마주 보고 남쪽 DMZ에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 있고 북쪽 DMZ에는 기정동 마을이 있다. 대성동엔 현재 원주민 195명이 살고 있다. 긴장의 땅 DMZ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다. 대성동 자유의 마을 옆으로 판문점과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보였고 그 뒤로 북한의 개성 송악산이 펼쳐졌다. 왼쪽으로는 개성공단도 눈에 들어왔다. DMZ 안에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강이 있다. 장단역이 있던 곳 바로 옆 사천강이다. 이 강 주변은 6·25전쟁 최대 격전 중 하나로 꼽히는 사천강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1952년 3월 중동부 전선에 있던 해병 제1연대는 파주 임진강 일대의 장단지구 서부전선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인근 판문점에서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병대원들은 판문점에서 임진강 하구까지 11km의 전선을 방어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끝없이 밀려왔다. 인해전술이었다. 저항선이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 해병대원은 위기에서 더욱 빛났다. 맨 앞에서 싸우는 전초기지의 해병대원들은 뒤편의 아군에게 자신들의 머리 위로 포격할 것을 요청했다. 그건 목숨을 내건 결단이었다. 몸을 던져 중공군의 파상공격을 막아내려 한 것이다. 해병대의 몸을 던진 강력한 방어에 그해 11월 중공군은 공격을 포기했다. 해병대원 776명이 죽고 3000여 명이 다쳤지만 해병대의 빛나는 승전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서울을 살렸다. 도라산 평화공원엔 이들을 기리는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이 싸움터에서 자유조국의 수호신이 된 776명의 젊은 해병 영령들이여! 그대들의 투혼과 공훈은 이 겨레와 더불어 영원무궁하리라.’ 파주지역 민통선 안에는 백연리 통일촌, 동파리 해마루촌이 있다. 통일촌엔 실향민과 1사단 제대 장병들이, 해마루촌엔 6·25전쟁 당시 피란 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살고 있다. DMZ 안에 있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 사람들까지 합하면 모두 801명이다. 통일촌, 해마루촌, 자유의 마을 모두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하지만 평화롭기에 더 긴장되는 곳, 이 역시 전쟁의 상흔이다. 통일촌을 돌아 나와 민통선 철책선 쪽으로 내려왔다. 철책선 너머 임진강 위에 우뚝 서 있는 자유의 다리. 1953년 전쟁포로 1만2773명이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귀환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당시 포로들은 차량으로 경의선 철교까지 온 뒤 자유의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그들에게 저 다리는 생명이었다. 자유의 다리 바로 앞은 경의선 임진강역이다. 임진강역에서 도라산역까지 매일 6차례 관광열차를 운행한다. 자유의 다리를 건너 민통선을 넘어 도라산역까지 간다. 하지만 거기서 멈춰야 한다. 도라산역에서 일하는 윤명묵 역무과장(51)의 말. “사실 경의선 철도는 2007년 개성까지 모두 연결됐습니다. 지금은 다니지 않지만 2008년 한 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화물 열차가 운행하기도 했지요. 6·25 때 끊겼던 철도지만 지금 모두 이어져 있고, 열차만 다니면 되는데….” 열차가 멈춰야 하는 분단의 땅, 도라산역. 민통선을 빠져나오며 그 대합실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던 안내판이 눈에 어른거렸다. 서울 평양 신의주 그리고 중국 시베리아 유럽까지, 유라시아 횡단철도 노선도였다. 파주=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495일 싸워… 5000명이 4만2000명 막아”사천강 전투 참전 공정식 前해병대사령관“적 30~100m 앞까지 오면 사격…새벽녘 도처에 중공군 시신 널려” “서부전선에서 육군 제1보병사단과 미국 기병사단, 영국 글로스터 부대 등이 무너지자 이승만 대통령이 크게 상심했어. 그래서 해병대가 투입됐지. 우리 해병 5000명이 중공군 4개 사단 4만2000명의 병력을 막아냈지. 매일 전투였어. 495일 동안 지겹게도 전투가 이어졌지.” 6·25전쟁 당시 해병 제1전투단 부단장(중령)으로 활약한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사진)은 1952년 3월 17일부터 정전협정이 조인된 1953년 7월 27일까지 진행된 ‘장단·사천강 전투’의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던 1952년 3월 해병 제1연대는 미군 해병1사단과 함께 임진강 이북의 장단·사천강 지구에 투입됐다. 1연대는 판문점 동북쪽의 고랑포 지구에 자리를 잡았다. 고랑포 지구는 동남쪽으론 임진강이, 서쪽으로는 사천강이 흐른다. 북고남저(北高南低)의 지형으로 아군의 작전에 제한이 따르는 불리한 곳이었다. 당시 휴전회담에서는 각 부대가 자리 잡은 곳을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을 설정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누가 고지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국경선이 달리 그어지는 형국이었다. 수도 서울로 통하는 장단(사천강) 지구에 대한 중공군의 공세는 집요했다. “전쟁 중에 나는 해군 함장에서 해병 지휘관으로 바뀌어서 미국 해병대로부터 강습(講習)을 많이 받았지. 내 주변에는 미 해병대 장교 8명과 부사관 등 보병, 지상전, 전차, 함포, 포병 등 전문가들이 있어서 적절하게 지원해줬고 전시에는 밤에도 전술 토의를 했어.” 해병 1연대도 전차중대, 공병중대 등을 보강해 전투단으로 재편성했다. 1952년 10월 중공군은 사천강변에 있는 전초기지를 손에 넣기 위해 공격을 감행하는 등 2개 사단을 동원해 4차례나 대규모 공세를 벌였다. “전투단장이던 김성은 대령은 인해전술을 펴는 중공군에 맞서 적군이 30∼100m 앞까지 오기를 기다렸어. 가까이 오면 한미 해병은 전차포까지 동원해 집중 포사격을 해댔지. 당시 우리는 미군 제3비행사단의 지원을 받아 제공권을 확보할 수 있었어. 그래서 적은 병력으로도 중공군을 막아냈고 새벽녘 전투가 끝날 때면 중공군 시신이 도처에 깔려 있었지.” 1연대 전투단은 초기 중공군에 다소 밀렸으나 전차부대를 전진 배치하고 적의 접근로를 미리 파악하는 전술로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해 서울을 사수했다. 이 전투에서 남측은 1개 대대 병력이 넘는 해병대원 776명이 목숨을 잃고 3212명이 다쳤다. 이들의 희생으로 조국 산하를 지킨 덕분에 군사분계선을 남측에 유리하게 설정할 수 있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취재 협조: 육군 제1사단, 육군본부}

‘하얼빈에서의 살인사건으로 입감한 한국인 9명은 엄정 격리할 필요가 있으므로 모두 독거 구금한 결과 구금감이 다소 협애하여 다른 감방은 정원 이상을 구금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피고사건의 중대함으로 인해 계호자의 선정 및 사건의 성질상 감방 내외를 엄중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1909년 10∼12월 정황보고) ‘구금 중인 살인 피고인 안중근 외 수명은 피고사건의 중대함에 따라 제반 관계상 엄중한 단속이 필요하였다. 특히 2월 7∼14일 기간은 연일 법원에 출정하기 때문에 미리 위험을 우려하여 압송마차를 설비함으로써 연도의 왕복을 경계했으며, 법정 내에서 경호상의 단속도 실로 고심을 극하였다.’(1910년 1∼3월 정황보고)○ 사형 명령 이틀 만에 집행 안중근 의사(사진)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뒤 뤼순(旅順)감옥에 있는 동안 일제가 감옥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는 내용 등이 담긴 일본 문서가 발견됐다. 일제가 안 의사 수감 이후 경계를 대폭 강화한 것은 한국 동포에 의한 유해 탈취를 예방하려는 의도와 함께 유해의 고국 안장으로 향후 안 의사 묘지가 성지화돼 항일운동의 본령 역할을 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가보훈처는 22일 관동도독부(일제 식민행정기관)의 안 의사 사형집행 보고서와 정황보고·잡보(1∼15권), 증거품 목록 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들은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보관돼 있던 것으로 보훈처가 최서면 도쿄 국제한국연구원장 등 한일 근대사 전문가들과 함께 일본의 자료공개법 등을 이용해 지난달 찾아낸 뒤 복사물을 국내로 들여왔다. 안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기록 원본은 일제가 1910년 2월 14일 안 의사에 대한 사형을 선고한 뒤 3월 24일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한 내용이다. 안 의사의 사형은 명령 이틀 만에 집행됐다. 이 명령기록에는 안 의사의 주소를 ‘한국 평안도 진남포’라고 기재하고 있다. 직업(무직)과 이름(안응칠) 나이(33세) 죄명(살인범) 형명(사형) 판결언도일(1910년 2월14일) 등도 명시하고 있다. 응칠은 안 의사의 아명이다.○ “두 동생의 유해 인도 요구 거절” 안 의사의 증거품 목록으로는 당시 러시아 측에서 발간했던 한자신문인 ‘원동보’ 1부와 이토 암살을 암시한 ‘동청철도 기차 발착시간표’, 그리고 손가방 등이 적혀 있다. 사형 직후 안 의사의 동생들이 유해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이를 거절한 내용이 담긴 ‘두 동생의 유해 인도 요구에 대한 처리 경위 보고’ 원문도 확보됐다. 안 의사의 동생 안정근이 안 의사의 사진으로 5종의 엽서를 만들어 미국 하와이에 300장, 샌프란시스코에 500장을 보냈다는 기록도 안 의사 사진과 함께 발견됐다. 일본감옥협회가 1910년 1월 20일 발행한 감옥협회 잡지는 안 의사에 대해 ‘보통의 형사 피고인이지만 국사범과 동격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기록했다. 이와 함께 1920년대 초반 일본 관동청 경무국이 작성한 문서(관동도독부 정황보고·잡보)에는 안 의사와 김구 선생을 비롯한 주요 독립운동가 228명의 행적이 담겨있다. 이 중 89명은 이번에 최초로 확인된 인물이다.○ 김구 등 독립운동가 행적 기록도 1922년 3월 23일 작성된 ‘상하이(上海) 임정(臨政) 북만(北滿) 불령선인(不逞鮮人)단 연락’ 부문에서는 상하이 임시정부 경무국장이던 김구 선생이 만주와 시베리아 방면에 연락해 일본 관리의 내정을 정탐하고 친일 조선인 암살을 지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상재 선생에 대한 기록도 있다. 안동경무서장이 보고한 이 문서에는 이상재 선생의 직업이 ‘조선기독교연합청년회 총무’로, 나이는 73세로 적혀 있다. 김양 보훈처장은 “안 의사 유해를 어디에 매장했는지 관련 자료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한 안 의사와 관련한 사진과 자료가 일본 외무성 사료관에 더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일본 측의 더욱 성의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앞으로는 방송통신대와 사이버대 졸업자도 장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국방부는 21일 4년제 대학 졸업자뿐 아니라 이와 동등한 학력 소지자에 대해서도 사관(장교) 후보생 응시자격을 주는 내용의 군인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장교로 임용되는 사관후보생은 대학 2년을 수료한 사병이나 부사관 출신이 장교에 지원하는 간부사관후보생을 빼놓고는 모두 4년제 대학 졸업자에게만 자격이 주어졌다. 그러나 방송대, 사이버대, 전문대 심화과정 졸업자, 독학사 등은 4년제 대학 졸업자가 아니라 동등 학력 소지자로 인정돼 사관후보생에 지원할 수 없었다. 국방부는 “현행법으로는 4년제 대학 졸업자만이 사관후보생 응시자격이 있어서 이와 동등한 학력으로 인정되는 방송대 졸업자 등은 사관후보생에 응시하지 못했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장교 지원 대상이 많아져 장교 선발 폭이 넓어지고 우수 간부 확보가 수월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감사원은 지하철 2호선의 음성·문자서비스 장치인 안내정보시스템 입찰 의혹과 관련해 서울메트로(지하철 1∼4호선)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 있다고 21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서울메트로는 2008년 3월 계약기간 15년(설치기간 12개월 제외)에 2단계 경쟁을 거치는 방식으로 안내정보시스템 입찰 공고를 냈다. 이에 A사와 B사가 참여했으나 가격이 맞지 않아 2008년 6월 유찰됐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3월 재입찰 공고를 내면서 계약기간은 이전과 같게 정했으나 입찰 방식을 경쟁이 아닌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바꿨다. A사와 B사는 이번에는 컨소시엄을 통해 이 계약을 따냈고 이 과정에서 낙찰예정가가 당초보다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계약 방식이 경쟁에서 협상으로 바뀌고 낙찰예정가가 낮아진 점, 1차 입찰 때의 두 회사가 연합 형태로 계약을 따낸 과정 등을 집중 감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제강점기에 광복군에 입대해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애국지사 이봉진 선생(사진)이 6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1925년 평양에서 태어난 선생은 광복군 징모처(징집처) 제3분처에 입대해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대통령 표창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손도 여사와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인천 길병원, 발인은 9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4묘역. 032-462-9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