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용 “애초 어뢰 잔해 있을거라 생각하고 수색”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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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덕용 민군 합동조사단장 인터뷰

《“어뢰가 폭발했다면 함체에 화약성분이나 가스가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절단면 등을 가제로 훑어낸 뒤 화학적인 분석작업에 들어갔죠. 천안함의 결정적인 증거물인 어뢰추진기는 처음부터 비슷한 게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수색을 벌여) 찾아낸 것입니다. 북한도 어뢰추진기까지 남았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천안함 침몰사건 민군 합동조사단의 민간 측 공동단장인 윤덕용 KAIST 명예교수는 21일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시작했다”며 “어떤 폭약이 어떤 위치에서 터져 함체가 두 동강나게 됐는지 과학적인 분석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北소행 단정안해
모든 가능성 열고 과학적 분석
외국팀, 증명안되면 “NO” 제동

미군 도움이 컸다

시뮬레이션 노하우 제공
현장서 증거물 찾으라 조언

고마운 쌍끌이 어선

전세계 유례없는 성공사례
호주팀 본국에 보고하겠다 해

이해 못할 억측-루머
아무리 정확한 증거 나와도
왜 납득 안하려 하는지…


윤 단장은 합조단이 처음에는 미국 조사팀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미군은 대형사건에 노하우가 많아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고 조사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자료도 풍부했다”며 “미 해군 토머스 에클스 준장은 사고 원인을 시뮬레이션 할 것과 사건현장에 떨어진 증거물을 찾으라고 조언해줬다”고 소개했다.

이에 따라 합조단은 먼저 컴퓨터와 수식(數式)을 이용해 충격파와 버블효과가 단계적으로 어떻게 나오는지 시뮬레이션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대한 함수관계를 밝혀냈다. 폭약의 양이 적으면 배를 두 동강낼 정도의 손상이 발생하지 않지만 반대로 폭약의 양이 너무 많으면 손상이 커졌다.

한편으론 쌍끌이 어선을 동원했다. 전 세계적으로 쌍끌이 어선을 이용해 사건 원인을 규명한 사례는 아직까지 보고된 바 없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합조단에 참여한 호주팀은 “본국에 돌아가 쌍끌이 어선의 사례를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군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천안함처럼 침몰한 함체를 분석한 사례는 없었다. 윤 단장과 국방과학연구소(ADD)팀은 함체에 묻어 있는 정체불명의 흰색 흡착물질에 관심을 가졌다.

“폭발물이 터질 때 비결정성 알루미늄 흡착물이 생긴다는 것이 명확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구한 게 없었죠. 다만 반도체에서 산화알루미늄층을 만드는데, 증기상태에서 고온으로 급속 냉각을 시킬 때 비결정성 산화알루미늄이 생긴다는 논문은 있었죠.”

ADD팀은 어뢰추진체에서 ‘1번’이라는 표시를 발견하자 7년 전 경북 포항시 앞바다에서 건진 북한의 훈련용 어뢰를 금방 떠올렸다. 그것에 쓰인 ‘4호’라는 표시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윤 단장은 “북한 어뢰는 자동으로 생산되는 게 아니고 손으로 조립하기 때문에 부품을 표시할 때 ‘1번’이라고 쓸 수 있다”며 “사실 ‘1번’이라고 쓰인 부분은 안에 숨겨져 있는데 어뢰가 폭발하면서 보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단장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억측과 루머가 오르내리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정확한 증거가 나와도 납득이 안 가는지, 납득하지 않으려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그럼에도 국민에게 정확히 이해시켜 드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윤 단장은 어뢰 폭발 시뮬레이션이 천안함에 가해지는 충격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고 실제 상황처럼 두 동강난 것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시간 부족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개를 안 하거나 못 한 게 아니라 컴퓨터를 돌리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작업을 (계속)하는 단계에 있었다”며 “일주일 정도 시간이 더 있었다면 천안함이 파괴 정도가 아니라 두 동강나는 장면도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을 합조단 내 전문가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윤 단장은 합조단 토론 과정에서 의견 조율이 어려울 때도 있었다며 “그런 때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인들은 정확하게 증명되지 않으면 ‘노(No)’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여러 의견을 모두 놓고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풀어 나갔다. 그런 과정에서 오히려 모든 가능성에 대해 굉장히 깊이 있는 분석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윤 단장은 “결국은 국제적으로 알려질 일이고 국제적인 신뢰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니까 허술하게 지나갈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며 “한 방향으로 결론을 몰아갈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조사 결과에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윤 단장은 “처음 합조단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과학자로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제의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활동 초기 함미가 인양돼 함체 안에 들어갔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종이컵이 나뒹구는 등 당시의 상황이 연상되기도 하고, 굉장히 비참했어요.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조사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독도함에 체류해야 하는 어려움은 문제가 안 되더군요.”

윤 단장은 1958년 경기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응용물리학박사를 받았다. 웨인주립대 교수를 거쳐 1970년 KAIST 교수로 임명됐다. KAIST 원장을 거쳐 현재 포스텍 대학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다. 윤 단장은 이날 부인과 함께 포항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전화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 동영상 = 北어뢰 파편 공개…천안함 침몰 결정적 증거

▲ 동영상 = 처참한 천안함 절단면…北 중어뢰 공격으로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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