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송평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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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칼럼니스트입니다.

pi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칼럼97%
사설/칼럼3%
  • [횡설수설/송평인]가뭄이 드러낸 수천 년 유적

    올 6월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구에서는 모술댐이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지면서 3400년 전 ‘자키쿠(Zakhiku)’로 추정되는 고대 도시의 유적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자키쿠는 기원전 1550년부터 기원전 1350년까지 약 200년간 지금의 이라크 북부 지역과 시리아 대부분을 지배했던 미탄니 왕국의 중심지다. 19세기에 독일인 슐리만은 고대 그리스 문화권의 트로이와 미케네 유적을 발굴했고 영국인 레이어드는 고대 아수르(아시리아)의 니나와(니네베) 유적을 발굴했다. 바로 이 니나와가 한때 미탄니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8월 들어 중국도 유례없는 가뭄을 겪고 있는 가운데 양쯔강이 말라 바닥이 드러나면서 약 600년 전인 명나라나 청나라 때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 3개가 발견됐다. 양쯔강은 강이라기보다는 바다라고 할 만큼 크다. 양쯔강은 해구(海丘)처럼 바닥에서 7m 높이로 솟아 있는 바위 언덕을 품고 있었다. 이번에 발견된 불상은 그 바위 언덕 맨 위쪽의 솟은 부분을 깎아 석굴과 함께 만든 것이다. 강을 지나는 배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 최악의 가뭄으로 스페인에서는 ‘과달페랄의 고인돌’로 불리는 5000년 전 거석 수백 개가 서부 카세레스주의 발데카냐스 저수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고대 켈트족은 유럽의 대서양 연안을 따라 아일랜드로부터 영국 콘월, 프랑스 브르타뉴,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까지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그런 흔적 중 하나가 거석(巨石) 문화다. 영국에는 스톤헨지, 프랑스에는 카르나크 열석이 있다. 과달페랄의 고인돌은 스페인의 스톤헨지라고 불릴 만큼 신비스러운 모습을 지녔지만 1963년 프랑코 독재 치하에서 인공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안타깝게 물에 잠겼다. ▷이탈리아에서는 포강의 수위가 70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피에몬테에서 고대 마을의 유적이 나타났다. 롬바르디아 올리오강에서는 청동기 시대 목재 건축물 토대가 나왔다. 로마 티베르강에서는 네로 황제가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리 유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르웨이에서는 빙하가 녹으면서 철기 시대 양털 옷과 로마 시대 샌들이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이 바빠졌다. ▷강이 마를 때 강바닥 돌에 사람들이 연도와 이름을 새겨넣은 기근석(饑饉石)이란 게 있다. 엘베강과 다뉴브강 곳곳에서 기근석이 보일 정도이다 보니 수천 년 전 수백 년 전 문화 유적도, 인공저수지에 묻은 유적도,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때 침몰한 군함과 누군가 몰래 유기한 시신의 유골까지 오만 것이 다 드러난다. 한 길 물속에 비밀이 참 많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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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맨홀 참사

    19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도시는 프랑스 파리였다. 나폴레옹 3세는 복잡하게 뒤엉켜 있고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는 골목길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 방향으로 뻗어가는 방사형 도로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상만 봐서는 그가 한 파리 현대화 작업의 절반을 본 것일 뿐이다. 그의 시대에 만들어져 파리의 독특한 관광명소가 된 곳이 하수구다. 현대화된 파리를 떠받치는 시설의 절반은 지하에 있다. ▷맨홀은 농촌에는 없다. 맨홀은 도시에서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통로다. 사람(man)이 들어가는 구멍(hole)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프랑스어로도 같은 뜻의 트루 돔(trou d‘homme)이다. 하수도로 통하는 맨홀이 있고 상수도로 통하는 맨홀이 있고 전기통신선이 모여 있는 곳으로 통하는 맨홀이 있다. 맨홀을 통해 사람이 들어가서 이런 것을 점검하고 정비하지 않으면 도시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무심코 지나가는 행인이 열려 있는 맨홀에 빠지는 사고가 세계적으로 보면 심심찮게 발생한다. 그래서 맨홀에 들어가 작업할 때는 안내판을 주변에 설치해야 한다. 맨홀 뚜껑은 아무나 쉽게 열 수 없도록 두꺼운 쇳덩어리로 만들어진다. 두꺼운 쇳덩어리다 보니 팔면 돈이 꽤 돼 도난사고도 간혹 일어난다. 그 경우 도난은 둘째 치고 뚜껑이 없어져 맨홀이 열려있는 상태 자체가 아주 위험하다. 그래서 맨홀 뚜껑에 잠금 장치를 해두기도 한다. ▷최근 집중호우로 서울 강남에서 하천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하수도 물이 역류해 엄청난 수압에 의해 무거운 맨홀 뚜껑이 열리고 지하로부터 물이 솟구쳐 오르는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었다. 물이 솟구쳐 오를 때도 위험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순간은 하수도의 수압이 다시 낮아져 지상의 물이 빠져나갈 때다. 마침 그럴 때 한 성인 남매가 맨홀 근처를 지나다가 먼저 누나가 맨홀에 빨려 들어갔고 누나를 구하려던 남동생마저 빠져 들어가는 참사를 당했다. 맨홀에 빠지면 구조가 난망이다. 지하관로로 휩쓸려 가버려 위치 파악 자체가 어렵다. 로봇을 이용한 수색 끝에 남동생의 시신은 다른 맨홀에서 찾았지만 그 누이를 찾는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침수 지역의 한 시민은 열린 맨홀을 쓰레기통으로 막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것도 맨홀이 보일 때의 얘기다. 물이 깊고 탁해 열렸는지 닫혔는지 알 수 없는 맨홀이 도처에 있을 수 있다. 서울시에 보도에만 11만 개가 넘는 맨홀이 있다. 이 중 하수도 맨홀은 4만여 개다. 침수 순간 4만여 개의 맨홀이 죽음의 구멍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할 뿐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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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논설風의 광화문 戀歌

    서울 광화문광장 자리는 본래 광장이 들어설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일대를 인간 친화적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처럼 양쪽 인도를 크게 넓히고 차도를 줄였어야 한다. ‘지상 최대 중앙분리대’ 같은 광장을 만들어 놓고는 광장 구실을 못 하니까 접근성을 높인다고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어 놓은 것이 재조성된 광화문광장이다. 건축을 배우지 않아도 유럽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광장이 어떤 곳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 광장은 본래 텅 빈 곳이다. 광장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광화문광장을 처음 조성할 때 세종대로 한가운데 있던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을 다 뽑아버렸다. 이제 광장에 그늘이 없다고 다시 나무를 심었다. 건축물까지 세웠다. 광장은 반쯤 공원이 됐다. ‘광장이면 어떻고 공원이면 어떤가. 전보다 접근성이 좋아지고 소음도 줄고 쉴 곳도 있어 나아졌다’는 호평이 적지 않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돈을 들였으니 좋아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문제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광화문 편측 광장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반쪽의 데칼코마니 상(相)이 저절로 그려진다. 광화문 일대 전체가 광장이 되는 모습이다. 박원순 전 시장과 건축 탈레반들이 편측 광장을 설계했을 때 이러한 설계도를 알박기 해놓았다. 그것을 오세훈 시장이 우유부단하게 받았다. 아니 처음 엉터리 광장을 조성해놓은 죄가 있어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건축 탈레반과 사실상 한 무리인 문화재 탈레반들은 광화문 현판이 본래 검은 바탕에 흰 글씨임에도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엉터리 복원을 해놓고도 고칠 생각을 않는다. 그러면서 이번엔 광화문 앞 월대 복원을 밀어붙여 그 공사가 한창이다. 광화문 앞 월대는 고종 때 중건된 경복궁에는 있었지만 그전부터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세종 때 ‘중국 사신을 맞으려면 월대가 있어야 한다’는 예조판서의 주장을 세종이 농번기에 민력(民力)을 차출할 수 없다며 거부한 기록이 있을 뿐이다. 설혹 그 얼마간 후에 월대가 지어졌다고 하더라도 중국 사신을 맞기 위한 사대(事大)의 난간을 광화문 앞 직선도로를 비틀어 가면서까지 복원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월대가 복원되면 광장의 치우침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를 다시 차지할 때 자신들이 알박기 해놓은 치우침을 핑계로 광화문 일대 전체를 광장으로 만들겠다고 덤비는 것이 가능하도록 일이 착착 진행된 셈이다. 새로운 길을 낼 수 있으면 모르되 그럴 수도 없으면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다닌 길을 비틀고 막을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세상에 엄한 게 없는 자들의 발상이다. 우리를 쉬게 해주는 건 광장이나 공원인지 몰라도 우리를 먹고살게 해주는 건 길이다. 광화문에서 지켜야 할 가치 있는 유산 중 하나가 1960년대 미국 차관을 들여와 우리 기술로는 못 짓고 필리핀 기술로 지은 남국(南國)풍의 쌍둥이 건물이었다. 미국대사관과 똑같은 건물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자리에 있었으나 박물관을 개조하면서 그 쌍둥이성(性)을 없애버렸다. 국민이 하기에 따라 한국과 필리핀처럼 국력이 역전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의 교훈과도 같은 건물을 아이로니컬하게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없애버렸다. 광화문 주변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과잉 상태다. 우선 국립현대미술관이 있고 그 분관이 덕수궁 안에도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국립고궁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도 인근에 있다. 옛 풍문여고 자리에는 새로 공예박물관도 들어섰다. 그런데도 송현동 빈터에 이건희 박물관을 짓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와대를 베르사유궁처럼 미술관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광화문에 꼭 필요한 것은 음악당이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음향에 한계가 있고 3000석이나 되는 객석은 그 많은 자리를 채울 공연이 많지 않아 장점보다 단점에 가깝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나 롯데콘서트홀 같은 2000석 규모의 최고급 음악당이 필요하다. 세종문화회관을 전면 개조하든 뭘 하든 광화문광장을 두 번 세 번 고칠 돈이나 새로 미술관을 지을 돈이 있으면 음악당부터 지어야 한다. 문화의 향유자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이런 과잉과 결핍이 왜 서울시장이나 문체부 장관에게는 느껴지지 않을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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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김건희 논문, 국민대의 결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박사과정 때인 2007년 한 학술지에 실은 논문의 제목은 ‘온라인 운세 콘텐츠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관한 연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적당한 영어 번역으로 ‘A Study on user‘s retention or withdrawal of membership by satisfaction or dissatisfaction in online fortune contents’ 등이 제시돼 있다. ▷논문에 나온 영어 제목은 ‘Use satisfaction of users of online fortune and member Yuji by dissatisfaction and a study for withdrawal’이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돼 있다. 회원 유지의 유지는 고유명사처럼 Yuji로 번역됐다. 맨 앞에 나와야 하는 study는 중간에 들어가 있다. 유지와 탈퇴, 만족과 불만족은 상관어인데도 서로 관련 없는 말인 듯 떨어져 있다. 지도교수가 공저자로 참여한 논문인데도 이렇다. ▷김 여사가 같은 해 같은 학술지에 실은 또 다른 논문의 제목은 ‘온라인 쇼핑몰 소비자들의 구매시 e-satisfaction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연구’다. 논문에서 영어 제목은 ‘The Analyze of the affecting factors…’로 시작한다. ‘연구’ 대신 ‘분석’이란 단어를 쓸 수는 있다. 그러나 명사 Analysis로 써야 할 곳에 동사 analyze를 명사형처럼 썼다. ▷국민대는 2008년 김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를 포함해 이 세 논문은 연구부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그제 결론을 내렸다. 국민대는 당초 검증 시효가 지났다고 재심사를 거부하다가 문재인 정부 교육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뒤늦게 재심사에 착수했다. 결론은 연구부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때 드는 상투적 이유를 몇 가지 들기는 했으나 그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보다는 검증 시효 5년이 지났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김 여사는 공직에 몸담은 사람이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표절 여부를 정색하고 따지는 게 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의 학술지 논문들은 연구부정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연구자로서의 최소한의 성실성조차 갖추지 못했음을 액면으로도 보여준다. 지도교수가 공저자로 참여한 논문의 지도마저 엉터리로 한 대학이 학위논문 지도나 심사는 제대로 했겠는가. 국민대가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다 지워지지 않을 오점을 남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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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부정선거 의혹의 결말

    박근혜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2012년 대선 직후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 부정선거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의혹을 키운 것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였다.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이 대패한 뒤 부정선거 의혹을 확산시킨 것은 가로세로연구소 공병호TV 등 보수 유튜브들이다. ▷의혹의 중심에는 인천 연수을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민경욱 국민의힘 후보가 있다. 대법원은 그제 민 후보가 제기한 선거 무효 소송을 기각했다. 대법원은 “수많은 사람의 감시하에서 원고의 주장과 같은 부정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산기술과 해킹 능력뿐만 아니라 대규모 조직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할 것이나 원고 측은 부정선거를 실행한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증명하지 못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부정선거를 실행한 주체가 중앙선관위인지 아니면 제3자인지, 제3자라면 어떤 세력인지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 후보 측은 한 통계학자의 분석을 이용해 본투표에서 민 후보와 이정미 정의당 후보가 얻은 표를 3분의 1씩 덜어 정일영 민주당 후보에게 더해 주면 사전투표 득표율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본투표 개표 직후 바로 사전 투표 개표를 한다. 참관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누가 어떻게 본투표에서 3분의 1씩 덜어내 바꿔칠 수 있는지 설명이 안 된다. 만약 개표 당일에는 숫자만 조작하고 재검표에 앞서 그 숫자에 맞춰 표를 조작한 것이라면 선관위의 총체적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 ▷신문 방송 등 언론은 대체로 대법원이 판결한 것과 비슷한 이유로 의혹에 거리를 뒀다. 유튜브만 듣는 유권자들은 언론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다녔다. 이들은 그제 판결도 ‘김명수 대법원’의 판결이라며 수긍하지 않고 있다. 현 대법원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 있긴 하지만 보수 정권이 들어선 뒤 판결이 나오고 중립으로 분류되는 천대엽 대법관이 판결의 주심을 맡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한번 현실을 부정하면 끝없이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선거소송은 원고 측이 입증 책임을 지고 입증하지 못하면 진다. 원고 측이 졌다고 해서 선관위의 잘못이 없었던 것으로 되는 게 아니다.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배춧잎 모양이 인쇄된 투표용지는 실수 정도로 치부할 수 없다. 어떻게 나왔는지 추적해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만년도장 대신 일장기 모양이 찍힌 투표용지가 1000장 이상 나온 것은 명백한 투표관리 부실이다. 책임자를 찾아 징계해야 소모적인 의혹이 반복되는 걸 피할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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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경찰국 신설은 왜 퇴행인가

    일본에서 경찰을 관리·감독하는 국가공안위원회는 총리 직속이지만 총리에게 위원회에 대한 지휘 권한은 없다. 그래서 위원회를 총리의 간카쓰(管轄·관할)라 하지 않고 총리의 쇼카쓰(所轄·소할)라 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행정용어에는 이런 구별이 없다. 국가공안위원장은 국무대신(우리나라의 장관)이며 5명의 위원은 민간인 중에서 중·참의원 양원의 동의를 얻어 총리가 임명한다. 위원회도 경찰의 사안 하나하나에 대한 사전적 지휘권은 없다. 대강의 방침을 정해 관리하면서 사후적 감찰 등 감독을 주로 한다. 총리의 승인을 받아 고위직 경찰 인사도 한다. 우리나라 국가경찰위원회는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위원장은 장관도 아니고 심지어 상임조차도 아니다. 다만 위원회는 경찰청장 동의권 등이 있어 실질적으로 운영한다면 합의체의 기능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위원장을 포함해 7명의 위원 모두 행안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정부의 거수기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현 위원회도 위원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 변호사이고 위원 대부분이 중립과 거리가 멀다. 역대 정부는 보수건 진보건 대통령이 청와대 치안비서관의 도움을 받아 경찰청장을 임명한 뒤 경찰청장의 추천을 받아 행안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총경 이상 경찰관에 대한 광범위한 인사를 했다. 현 정부가 행안부 내에 경찰국을 신설키로 한 것은 누가 없애라고 한 적도 없는 치안비서관 자리를 스스로 없앤 데 따른 조치이기도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경찰을 더 철저히 장악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측에서는 국가가 경찰을 통제하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의 뉴욕경찰청장 LA경찰청장 등은 시장이 임명한다. 영국에서는 런던경찰청장을 빼고는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각 경찰청에 민간인으로 구성된 경찰위원회(police panel)를 두고 경찰을 관리·감독한다. 군대처럼 총을 가진 무장조직인데도 그렇다. 그것은 자치경찰에나 해당하고 국가경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일본은 국가공안위원회가 자치경찰과 국가경찰을 모두 관리·감독한다. 미국에서 연방수사국(FBI) 등 연방경찰기관의 장(長)은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을 얻어 임명하지만 거기까지다. FBI는 법무부 소속이지만 예산 관리 지원만 받을 뿐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영국은 자치경찰인 런던경찰청이 국가경찰 임무까지 수행하는 나라인데 런던경찰청장은 선출되면 중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지방경찰청장과는 달리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 커미셔너(commissioner)라고 불리는 민간인 신분이 된다. 경찰의 중립성을 보장할 제도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면 경찰국을 둔다고 누가 뭐라 하겠는가. 영국은 내무부에 경찰을 지원하는 경찰국을 두고 있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경찰청장을 주민이 선출하지도 않고 경찰위원회는 거수기 역할밖에 못하고 대통령이 총경 이상 경찰관을 죄다 임명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경찰국 신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경찰국 신설이 왜 문제인지는 5년 후에 정권이 바뀐다고 생각해보면 분명하지 않은가. 문재인의 더불어민주당 정부는 경찰국 없이도 경찰을 장악해 경찰을 피폐화시켰다. 경찰국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그렇지 않아도 방대하지만 앞으로 더 방대해질 경찰도 속속들이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부의 경찰국 신설은 검찰과 경찰이라는 두 마리 사냥개를 몰아 이 정부가 당장 원하는 걸 얻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는 큰 후과를 초래할 수 있는 제도적 퇴행이다. 정부는 경찰국 신설을 밀어붙이기 전에 경찰위원회를 실질화하는 법 개정을 제안했어야 한다. 민주당이 응하지 않았다면 경찰국 신설을 추진할 명분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 경찰의 본질에 대한 성찰도, 경찰의 선진화를 위한 그림도 없었고 나랏일은 밀어붙일 게 아니라 정당성에 호소해야 한다는 기본도 몰랐다. 우리나라 경찰위원회는 민주화 과정의 특수한 경험에서 나온 산물이다. 그것은 우리 경찰이 프랑스 등의 국가주의 경찰과 차별화해서 국민에게 보다 밀착한 영미식 경찰에 접근할 씨앗을 제공했다. 역사를 더 전진시키지는 못할망정 후퇴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라.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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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다시 만난 창경궁-종묘

    경복궁은 조선 태조가 정도(定都)한 서울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고 가장 먼저 만들어졌지만 훼손이 잦았다. 태종 이후 임금 대부분이 거처했고 옛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은 창덕궁이다. 왕가의 식구들이 많아지면서 창덕궁 옆에 궁궐 하나를 더 지었으니 창경궁이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아울러서 동궐(東闕)로 불리던 하나의 궁궐이었다. 창덕궁의 후원은 창경궁의 후원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 창경궁과 종묘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임금이 비공식적으로 종묘에 행차할 때는 이 문을 이용했다고 한다. 사자(死者)들의 공간, 그러니까 신위(神位)를 모신 곳에는 문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종묘의 정문은 현판이 없다. 마찬가지로 창경궁과 종묘를 가르는 담장에 있는 문에도 현판이 없다. 다만 궁궐 사람들이 그 문을 북신문(北神門) 북문(北門) 북장문(北牆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을 뿐이다. ▷일본이 1932년 지금의 율곡로를 만들면서 창경궁과 종묘는 분리됐다. 서울시는 율곡로 위에 터널을 만들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창경궁과 종묘를 잇고 어제 개통식을 가졌다. 90년 만의 재연결이다. 물론 담장과 그 한가운데 문도 복원됐다. 다만 단체관람에 화요 휴무인 종묘와 개인관람에 월요 휴무인 창경궁의 입장 체계가 달라 문화재청이 이를 통합하기 전까지 한동안은 담장 사이 문을 통해 종묘와 창경궁을 왕래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그 대신 터널 위로 율곡로의 축선을 따라 만들어진 담장길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창덕궁 돈화문 쪽이나 길 건너편에서 올라 원남동 사거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미 종묘의 서쪽 담장길인 서순라길, 동쪽 담장길인 동순라길에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면서 이곳이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에 서순라길과 동순라길을 연결하는 북쪽 담장길까지 열리면서 이 일대가 더욱 활기를 띨 전망이다. ▷건축가들의 숙제 중 하나가 북한산에서 동궐로 이어진 녹지를 어떻게 남산까지 연결하느냐는 것이다. 이번에 녹지가 종묘까지는 이어졌다. 인왕산에서 발견된 산양이 종묘까지 내려올지도 모를 일이다. 종묘 앞에서 남쪽으로 세운상가가 시작된다. 세운상가가 종로 을지로 충무로 일대를 동서로 절단하고 있어 개발을 방해하고 있으니 없는 것으로 여기고 새로 개발하자는 생각과 어쨌든 세운상가가 보존해온 남북축을 활용해 종묘에서 남산까지 녹지공간이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충돌하고 있다. 어려워 보이지만 개발도 하고 녹지공간도 잇는 쾌도난마의 아이디어가 나왔으면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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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한은과 금통위에는 연준 같은 자기반성이 없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자아비판을 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연준 의장을 맡아 헬기로 돈을 뿌리듯 돈을 푼 벤 버냉키는 현 의장인 제롬 파월의 인플레이션 대응이 너무 늦었다고 비판했다. 버냉키의 후임이자 파월의 전임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고 봤던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연준 바깥에서는 버냉키를 조준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쉬운 돈의 영주들(The Lords of Easy Money)’에는 버냉키 의장 당시 토머스 호니그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이유 없이 큰 폭으로 오른 캔자스시티 농산물 가격을 증거로 들면서 버냉키의 양적완화에 8차례나 반대한 내용이 나온다. 버냉키가 시작했으나 그를 포함해 누구도 끊지 못한 팽창적 통화정책은 자산가격을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서 월가의 탐욕만 채우는 결과를 빚었다. 미국 연준은 자아비판이라도 하지만 한국은행과 금융통화위원회는 자기반성이 없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이 확정된 2014년 무렵이다. 그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고 2018년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연임돼 문 정부 말까지 재임했다. 한국을 국내총생산(GDP)보다 가계대출이 많은 유일한 나라로 만든 부동산 가격 상승은 그의 재임 8년에 걸쳐 이뤄졌다. 문 정부의 부동산 실패에 가려져 있지만 실은 박, 문 두 정부에 걸친 부동산 가격 상승의 자락을 깐 것은 한은의 저금리 기조다. 집값이 전셋값과 큰 격차를 벌리며 폭등하자 전세살이를 당연시하던 2030세대까지 주택 구입에 뛰어들었다. 집값이 오른 나라가 우리만이 아니지만 젊은 부부들이 집값의 태반을 빚으로 조달하며 집 사는 데 몰두한 나라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한은과 금통위는 미국 연준을 곁눈질하며 약간 앞서가거나 약간 뒤따라가는 식으로 안이하게 대응했다. 통계청이 내는 소비자 물가지수에는 임차(전월세)에 드는 비용만 들어갈 뿐 자가 소유자가 주거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 즉 주택 구입을 위해 빌린 돈의 이자 비용 등은 들어가지 않는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이들 비용도 모두 물가지수에 포함한다. 이런 차이로 우리나라의 물가지수는 낮게 나오고 집값 상승기에는 훨씬 낮게 나온다. 가계대출이 급등하면서 자가 소유자의 주거비도 물가지수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왔지만 통계청은 무시했고 한국은행은 ‘집은 소비재보다는 자산’이라는 인식을 고수했다. 통계청의 물가지수가 낮게 나오니까 한은은 필요 이상의 저금리를 유지했고 필요 이상의 저금리는 다시 부동산 가격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세계 경제를 강타한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현금 압박(cash push)만도 아니고 원가 압박(cost push)만도 아니다. 둘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동안은 미국 등이 돈을 풀어도 러시아와 중국의 값싼 원자재와 원유를 사는 데 흘러들어가 물가를 올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나 지금은 풀린 돈이 서방 세계에서만 돌고 있다. 신(新)냉전의 추세가 변하지 않는 한 공급망 교란은 피하기 어렵고 물가 상승은 일시적이지 않다. 밀턴 프리드먼의 말대로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통화적 현상이다. 원가 압박처럼 보여도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지 않다면 통화적 현상이다. 소비 절약으로는 극복할 수 없고 과감한 금리 인상만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 한은과 금통위는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파격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스스로 쌓은 가계대출의 후유증 때문에 베이비스텝만 밟고 있다. 가계대출의 대부분은 주택대출이다. 주택대출은 담보가 있다. 금리가 부담되면 주택을 처분해서 조기 상환해도 아직은 큰 이익을 본다. 신용대출은 결정적 타격을 받겠지만 ‘빚투(빚내서 투자)’는 자기 책임 원칙에 입각해 파산이나 회생 절차를 통해 구제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전세대출과 자영업자 대출에는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가능한 한 빚 안 내고 성실히 살아온 월급 생활자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다. 인플레이션 고통과 금리 인상 고통 중에 어느 것을 더 피해야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인플레이션 고통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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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나 양 가족의 죽음 [횡설수설/송평인]

    어제 전남 완도군 신지도 송곡선착장 인근 바다에서 인양된 아우디 승용차 안에 결국 시신 3구가 발견됐다. 조유나 양(11) 가족 소유의 아우디 승용차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세 식구가 몰래 차를 버리고서라도 어디론가 도망가 숨어 있길 바랐다. 설혹 시신이 발견돼도 3구는 아니길 바랐으나 불안한 추측은 현실이 됐다. ▷유나 양 가족은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신지도의 한 숙소를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추적할 수 있는 모든 기록으로부터 자취를 감췄다. 숙소 앞 CCTV 영상에는 유나 양 어머니 이모 씨(35)가 축 늘어진 유나 양을 업은 모습이 보였다. 밤이 늦어서 숙면에 빠진 것인지 수면제라도 먹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왜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아이를 업고 있었을까. 마지막으로라도 엄마가 직접 업고 가고 싶었던 것일까. ▷유나 양 어머니는 퇴실 전 여행용 가방에 쇼핑백까지 챙겨 차에 실었다. 이어 숙소로 들어갔다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와 꼼꼼히 분리 배출을 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업고 나와 남편 조모 씨(36)와 함께 차를 타고 숙소를 떠났다. 죽으러 가는 사람이 짐을 다 챙기고 쓰레기까지 꼼꼼히 버리나. 아무튼 경찰 조사에 따르면 차는 9분 뒤 송곡선착장 방파제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사진 속의 유나 양은 귀엽게 웃고 있다. 광주에 살던 부모는 유나 양 학교에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제주도로 체험 학습을 떠난다는 신청서를 이틀 전인 지난달 17일에 급히 냈다. 유나 양은 그날부터 결석했다. 그로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이 가족의 마지막 여행은 어땠을까. ▷학교 측은 체험 학습이 끝나도 유나 양이 등교하지 않고 유나 양 부모와도 연락이 닿지 않아 집을 방문했다. 집 앞에 우편물만 가득 쌓인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우편물 중에는 신용카드사에 2000여만 원을 변제하라는 법원의 통지서도 있었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아버지 조 씨는 광주의 한 전자상가에서 조립 컴퓨터 판매를 했으나 지난해 7월 폐업했다. 주변 사람들은 조 씨가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실패하고 빚을 졌다고 전했다. ▷안정된 직장이 없는 30대 부부에게 2억 원이란 빚의 무게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빚은 그보다 훨씬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 젊은 사람이 죽을 생각을 하는가. 그가 완도로 가기 전 인터넷에서 ‘수면제’ ‘방파제 추락 충격’ 같은 단어를 검색하는 대신 죽도록 힘들다고 주변에 소리라도 질렀다면 세 가족을 살릴 수 있었을까. 엄마 아빠와 여행을 떠난다며 좋아했을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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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경찰국 신설은 퇴행

    미국 연방검찰과 연방수사국(FBI)은 법무부 소속이다. 그러나 미국 법무부에 한국 법무부의 검찰국에 해당하는 형사국(criminal division)은 있어도 FBI를 관할하는 부서는 없다. 연방검찰은 기소기관이지만 FBI는 수사기관이고, 권력으로부터의 강한 독립성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건 수사기관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보다 독립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검찰 조직도 법무부에 검찰국을 두고 있다”며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을 당연시했다. 이 발언에는 검찰을 기소기관에 앞서 수사기관으로 여기는 한국 특수부 검사 특유의 갈라파고스적 인식이 들어 있다. 그러면서도 수사기관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수사기관의 독립에 대한 의식은 이상하리만치 희박하다. 한국 법무부가 검찰국을 두는 것도 검찰이 기소기관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수사기관이라면 검찰국은 수사의 독립성을 침해하기 쉽다. 한국 검찰도 여건이 허락되는 대로 가능한 한 빨리 직접 수사에서 손을 떼고 예외적으로 수사를 총괄하더라도 직접 수사는 미국처럼 수사기관을 통해서 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법무부 검찰국은 정권의 입맛에 맞게 수사하는 검사를 골라내는 역할에서 벗어나 미국 법무부의 형사국처럼 검사의 기소 활동을 위해 조언하고 지원하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갈 수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국 신설의 이유로 경찰 권한의 강화를 들었다. 강화되는 건 사법경찰에 속한 수사 권한이다. 행정경찰에 속한 경비나 정보 권한이 강화되면 지휘·감독을 강화하는 게 필요할 수 있겠다. 그러나 수사 권한이 커졌다고 지휘·감독을 강화하겠다는 건 더 독립시켜야 할 것을 오히려 더 종속시키는 역주행이다. 동굴 밖으로 나가 참된 검찰국의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동굴 속의 왜곡된 검찰국의 모습을 정상이라고 여기고 그것과 꼭 닮은 경찰국을 만들지 않고는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내무부(행안부의 전신) 소속의 치안본부를 없애고 경찰위원회를 만들었다. 이후 보수든 진보든 어떤 정부도 경찰위원회 자체를 의문시하지 않았다. 물론 경찰위원회는 그동안 그렇게 중립적이지도 않았고 그렇게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경찰위원회의 개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검찰국 시대가 저물어가자 경찰국 시대를 열어 제왕적 대통령의 영원회귀를 시도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 장관이 있는 법무부에 인사 검증권을 주면서 미국 법무부도 그렇게 한다고 아는 체를 했지만 미국에서 인사 검증은 백악관 법률고문(legal advisor)이 한다. 다만 FBI를 활용해 한다. FBI는 독립적으로 의회와도 일하고 독립적으로 백악관과도 일하고 독립적으로 법무부와도 일한다. 그래서 FBI는 법무부에 소속돼 있지만 독립적이다. 한 장관이 미국의 인사 검증 방식을 배우기 위해 FBI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한다. 인사 검증 방식이나 기계적으로 배워오지 말고 FBI같이 독립적인 수사기관은 어떻게 가능한지부터 배워오길 바란다. 행안부에 경찰국 같은 걸 만들어 국가수사본부를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생긴다면 중수청을 어느 부처에 두더라도 관할국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 깨닫고 와도 큰 수확이다. FBI가 독립적이라고 하지만 연방검찰에 의해 간접적으로 통제를 받는다. FBI가 특정한 수사기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연방검찰의 허가를 얻어야 하고 피의자를 상대로 승소하기 위해서는 연방검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 검찰의 경찰 통제권은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 기소권만이 아니라 영장청구권도 검사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부는 수사기관장에 대한 임면권을 보유하고 검찰의 경찰 통제만 지켜보면 된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원하지 않은 한 그 이상의 통제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검찰도 그것을 지휘·감독하는 검찰국이 있는데 경찰을 지휘·감독할 경찰국을 두지 않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식으로 말하는 나라에서 수사기관이 검찰이 됐든 경찰이 됐든 중수청이 되든 그 독립은 요원하다.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검사들의 대통령이기도 하고 경찰관들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아직도 의식은 검찰총장에 머물러 있는 검사 대통령인 듯해 안타깝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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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세베로도네츠크 함락

    러시아 서부에는 돈강이 흐른다. 돈(Don)은 슬라브어로 강이란 뜻이다. 돈의 작은 말이 도네츠(Donets)다. 우크라이나 동부에는 도네츠강이 흐른다. 도네츠강은 돈강에 합류해 아조프해로 흘러 들어가고 아조프해는 다시 흑해로 흘러 들어간다. ▷도네츠강이 우크라이나 루한스크 지방을 관통하는 한 지점에 동쪽으로 세베로도네츠크, 서쪽으로 리시찬스크라는 도시가 마주 보고 있다. 세베로도네츠크가 25일 러시아군에 함락됐다. 우크라이나군은 강 서쪽으로 철수하고 있지만 리시찬스크가 넘어가는 것도 시간문제다. 외신은 세베로도네츠크의 함락으로 루한스크 전역이 러시아에 넘어갔다고 본다.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지방을 합쳐 도네츠 유역이란 뜻의 돈바스(Donbas)라고 부른다. 돈바스는 2014년 러시아계 주민이 부대 기장을 가린 러시아군의 도움으로 반란을 일으킨 이후 양측에서 그동안 약 1만 명이 사망한 내전 상태에 있었다. 러시아는 올 2월 24일 돈바스의 러시아계 주민을 우크라이나군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빌미로 이번에는 ‘Z’라는 기장을 달고 노골적인 침공을 감행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크림반도로 가는 도네츠크 지방 남단 도시이자 아조프해 항구 도시인 마리우폴을 함락시킨 데 이어 이번에 루한스크 지방의 거점 도시 세베로도네츠크를 함락시킴으로써 돈바스 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다. ▷러시아는 처음에는 수도 키이우를 포함해 우크라이나 전역의 주요 도시를 상대로 전면전을 강행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3월 22일부터는 키이우 외곽 등으로부터 군대를 철수해 돈바스에 집중했다. 부차 등에서는 러시아가 철수한 이후 민간인 학살 만행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러시아는 키이우 등에 대한 공격은 돈바스 전투에 앞서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원 군사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 것인지, 당초 목표에서 후퇴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돈바스 점령이 침공의 목적이었다면 러시아는 목적 달성에 근접한 셈이다. ▷러시아가 돈바스에서 침공을 멈춘다면 우크라이나는 종전 없이 사실상 휴전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미국 등 서방국은 러시아에 대해 강력한 경제적 외교적 제재를 가하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만은 신중히 해 러시아와의 협상 여지를 열어뒀다. 러시아가 돈바스 경계를 넘어오면 가만있지 않겠지만 돈바스 점령까지는 일단 두고 본다는 양면 신호를 보낸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처지가 옛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침략으로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한반도 북쪽을 내주고 휴전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처지와 비슷해 안타깝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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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말로만 물가 안정인 윤석열 정부

    한국은행이 물가상승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남 일 얘기하듯 물가상승 전망치만 내놓으면서 2.0%(지난해 11월)→3.1%(2월)→4.5%(5월)로 계속 올리고 있을 뿐이다. 실은 이게 수정된 목표치다. 중앙은행의 통상적인 물가상승 목표치는 2%대 이하다. 통상적인 목표치는 포기했다는 뜻이다. 한은은 지난해 8월, 11월, 올 1월, 4월, 5월에 각각 0.25%씩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4월까지는 한은이 착실히 금리를 인상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0.5%를 올리는 빅스텝을 밟은 데 이어 이번 주에 또 한 번의 빅스텝은 일단 확실하고 0.75%를 올리는 자이언트스텝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은의 다음 금리 결정은 7월에나 나온다. 5월 0.25%의 베이비스텝 결정은 물가 상황을 안이하게 본 것이다. 정부는 물가 안정과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한가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성장이고 일자리고 일단 다 제쳐두고 물가를 잡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비상한 상황이다. 비상한 상황에 맞는 비상한 인식이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한덕수 국무총리에게도, 추경호 경제부총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50조 원 규모의 자영업자 지원을 약속했을 때 그 돈은 추경이 아니라 세출 조정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추경을 통해 조달함으로써 돈을 흡수해야 할 시점에 돈을 푸는 역주행을 했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취한 조치 중 눈에 띄는 건 유류세 인하밖에 없다. 유류세 인하율을 지난달 1일 20%에서 30%로 확대했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한 것도 아니고 문재인 정부가 한 것이다. 유류세 인하율을 더 확대하려면 국회를 움직여야 하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유류세 인하로는 유가를 잡는 데 역부족이라며 손놓고 있다가 엊그제 ‘검은 월요일’을 보고서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경은 아직 걷히지도 않은 초과세수를 바탕으로 했다. 금리 인상으로 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예상한 만큼의 초과세수가 확보될지 의문이다. 초과세수를 확보하려면 어떻게든 세금을 거둬야 하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세금 인하를 주저한다. 재정을 긴축해야 할 때 확장하는 역주행을 해놓고 나니 모든 것이 꼬이고 있다. 지금 인플레이션에는 현금 압력(cash push)과 원가 압력(cost push)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현금 압력 인플레이션은 금리 인상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원가 압력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직접 가격을 규제하거나 세금을 내리는 방법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전기료 등 공공요금을 동결하거나 내려야 할 때 문재인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으로 한전에 천문학적인 적자를 쌓아놓은 걸 생각하면 분통하다. 권위주의 정부에서나 하는 일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민간기업에도 전화를 걸어 가격 억제를 당부해야 한다. 소득세 소비세를 중심으로 세금도 내려야 한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준 의장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살포하듯 해 2008년 금융위기를 넘겼다. 그랬으면 후임자 재닛 옐런이 재빨리 돈을 거둬들였어야 하는데 머뭇거리는 사이 코로나 위기가 터져 돈이 더 풀렸다. 한은은 연준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지금 인플레이션의 상당 부분은 중앙은행들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에 엄청난 양의 돈이 풀렸음에도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값싸게 소비재와 원자재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 경제에서 반쯤 떨어져나가자 원가 압력이 숨겨진 현금 압력까지 드러냈다. 미중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고 우크라이나에서 휴전이 이뤄져도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을 내놓지 않는 한 서방의 경제 제재는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말로만 퍼펙트스톰을 우려했을 뿐 실제로는 인플레이션을 지나갈 바람으로 보고 안이한 대응을 해왔다. 전쟁 다음으로 국민의 재산을 위협하는 것이 인플레이션이다. 물가가 10% 오르면 연봉 5000만 원 월급쟁이는 500만 원을 빼앗기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처럼 허투루 돈을 나눠주는 건 바라지 않는다. 가진 돈을 빼앗지나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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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선거 앞 돈질’에 또 이용된 자영업자 손실보상

    문재인 정부가 자랑한 K방역은 자영업자의 희생 위에서 이뤄졌다. 자영업자에게 지급된 돈은 고작 1, 2차 방역지원금 400만 원이었다. 이마저도 처음엔 손실 보상은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를 내세워 주지 않으려 했다. ‘영업의 자유’와 ‘손실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헌법적 원칙은 문재인 정부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대신 ‘손실 없는 곳에도 보상 있다’는 포퓰리즘 원칙이 작용했다. 그 원칙에 따라 방역지원금은 쥐꼬리만큼 주고 국민 재난지원금으로 1차 가구당 100만 원, 2차 개인당 25만 원을 퍼부었다. 국민 재난지원금에는 23조2000억 원이 쓰였다. 방역지원금에는 17조 원이 쓰였다. 국민 재난지원금 대상을 실직자 등 실제 피해자로 한정했다면 그들에게 더 많은 돈을 주고 방역지원금으로도 400만 원의 2배 정도는 너끈히 줄 수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3차 방역지원금으로 39조 원을 배정하고 600만∼1000만 원의 지원을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액수다. 업체의 연 매출액과 매출 감소율에 따라 100만 원씩 단계적으로 차등을 두고 있지만 손실에 비례한 보상과는 여전히 한참 거리가 멀다. 여야는 똑같이 손실보전금과 손실보상금이라는, 족보에도 없는 구분을 사용한다. 손실보전금은 방역지원금처럼 일률적으로 주는 돈이고, 손실보상금은 손실에 비례해 주는 돈이라고 한다. 손실의 크기를 묻지 않는 보상은 이를 정당화할 어떤 근거도 없다. 그건 포퓰리즘일 뿐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만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도 방역지원금을 선거를 앞두고 지급한다. 자영업자들이 숨넘어간다고? 숨이 넘어갔으면 이미 100번도 넘게 넘어갔을 시간이 지났다. ‘윤핵관’ 중 하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예산폭탄’이라고 떠벌렸다. 문재인 정부는 뒤늦게 지난해 7월 손실에 비례한 보상을 도입했다. 코로나로 인한 영업제한은 2020년 3월부터 시작됐는데도 지난해 7월 이후의 손실에 대해서만 보상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 단독으로 소급적용 없는 손실보상법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7월 이전의 손실은 1, 2차 방역지원금 400만 원으로 퉁치려 했던 것이다. 국민의힘은 당시 소급적용을 주장하며 법 통과에 반대했다. 그러나 지난달 3차 방역지원금을 통과시킬 때는 국민의힘이 오히려 손실 보상의 소급적용에 반대하고 민주당이 소급적용을 주장하고 나왔다. 이번에는 국민의힘이 1, 2, 3차 방역지원금 1000만∼1200만 원이면 지난해 7월 이전의 손실은 충분히 보상이 이뤄졌다고 보고 뭉개려 한 것이다. 어떤 업체에는 충분한 보상을 넘어 공돈이 생긴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업체에는 쥐꼬리만 한 보상이다. 헌법은 영업의 자유를 보장한다. 정부의 영업제한에 따른 보상금은 국민 재난지원금과 달리 정부가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는 게 아니다. 실정법에 근거가 없으면 헌법에 근거해 행정명령으로라도 줘야 한다. 손실 보상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선거에만 눈이 어두워 지원금을 앞세우고 비례 보상 원칙에도 안 맞는 지원금으로 손실 보상을 대체하려 한 점에서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누가 이 나라에서 영업을 하고 영업을 확대할 생각을 하겠는가. 여야는 소급 보상 여부를 선거 뒤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소급 보상을 한다면 방역지원금은 전체 보상액을 결정하는 데 포함할 것인가 말 것인가. 제때제때 손실에 따른 보상을 하지 않다 보니 아예 영업을 포기하고 논 사람들이 보상받을 액수가 오히려 불어나는 역전 현상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나니 많은 것이 엉망이 됐다. 손실에 따른 보상을 해야 하지만 100% 보상이라는 것도 무지한 얘기다. 코로나 발생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돈을 써야 할 곳이 많아진다. 그래서 100% 보상은 어려울 수 있다. 얼마를 보상할지는 국가의 재정 여력에 달려 있다. 그래서 보상 비율을 법으로 못 박는 건 법으로 규정해선 안 되는 걸 법으로 규정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재정 여력이 안 되면 80%나 70%로 보상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분담하면서 공정하게 보상받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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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마리우폴 함락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이 17일 러시아에 함락됐다. 마리우폴은 돈바스 지역 최남단에 위치해 크림반도로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다. 러시아는 자국에서 돈바스 지역을 거쳐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육로를 확보함과 동시에 오데사와 몰도바 내 친러시아계 지역으로의 진격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러시아로서는 침공 이후 가장 큰 승리이고 우크라이나로서는 뼈아픈 패배다. ▷러시아로서는 승리이긴 하지만 너무 늦은 승리다. 러시아는 이미 한 달 전 마리우폴을 장악하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마리우폴의 우크라이나군은 소련 시대 때부터 거의 요새화된 아조우스탈 제철소 지하에 자리 잡고 결사적으로 항전했다. 결국 항복하긴 했지만 개전 이후 80여 일간 러시아군의 주요 전력을 이곳에 붙잡아뒀고 그것이 다른 곳의 우크라이나군이 선전한 한 원인이 됐다. ▷마리우폴 우크라이나군의 핵심 전력은 아조우연대다. 2014년 돈바스에서 친러시아 반군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민병대지만 정규군보다 전투력이 더 강하다고 알려졌다. 아조우연대와 친러시아 반군은 서로 죽고 죽이는 과정에서 깊은 원한이 쌓였다. 아조우연대는 창설 당시 신나치 성향의 부대원들이 일부 있었으나 극단주의 성향은 현재 많이 희석됐다는 것이 서방 언론의 보도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나치를 쫓아내기 위한 특별 군사작전 ‘Z’를 수행한다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 쪽에서는 아조우스탈에 있다가 항복한 군인 중에 미군 특수전 사령관을 지낸 에릭 올슨 예비역 대장을 비롯해 서방 국가 군 고위 장교들이 있다는 소문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군에 끌려가는 모습으로 알려진 인터넷 사진 속 인물은 올슨이 아닌 것으로 팩트체크 사이트에서 확인됐다. 전쟁 보도는 선전 활동과 섞여 있기 때문에 가려들어야 한다. ▷러시아 의회는 아조우연대는 테러리스트이며 테러리스트를 포로 교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명분이 나치 테러리스트 퇴치이므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포로 교환에 응한다면 거짓 명분을 내세운 것이 되고 포로 교환에 응하지 않으면 자국 군 포로 가족들이 분노할 것이다. ▷러시아는 마리우폴 장악에 만족하고 우크라이나와 새 협상을 시작할 것인가. 우크라이나는 마리우폴을 수복하기 위한 시도를 포기하고 협상에 응할 것인가. 핀란드와 스웨덴은 마리우폴 함락과 거의 동시에 나토 가입 신청을 했다. 러시아로서는 마리우폴을 얻은 대신 핀란드 쪽 국경의 안보가 취약해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장기전으로 가는 건 부담스럽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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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이재명의 反지성, 윤석열의 半지성

    미국 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1963년 ‘미국의 반(反)지성주의’란 책에서 미국이 유럽에 비해 반지성적이라고 보면서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조장하는 요인 중 하나로 다수 의사의 단순한 관철을 민주주의로 보는 선동정치를 들었다. 호프스태터는 미국 정치사에서 반지성주의를 조장한 인물 중 하나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꼽는다. 브라이언은 1896년, 1900년, 1908년 세 차례 민주당 대선 후보로 뽑혔으나 공화당 후보에게 모두 패했다. 금(金)본위제를 비판하는 그의 ‘금십자가 연설(금십자가에 농민을 못 박았다는 연설)’은 경제적 약자인 농민들의 이익을 우선한 것이지만 그의 주장대로 금본위제 대신 은화(銀貨)의 자유주조권이 허용됐다면 20세기 경제대국 미국은 없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연이은 패배를 겪은 후 1912년 대선에서야 대학 총장 출신의 우드로 윌슨을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키면서 급진파들의 장악에서 벗어났다. 남북전쟁 이후 민주당 후보로 첫 집권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만 해도 자신과 당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국가를 우선했다. 그러나 이후 브라이언의 등장으로 민주당은 약 20년간 혼란을 겪었다. 윌슨, 루스벨트, 케네디, 클린턴, 오바마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 민주당의 전통은 브라이언의 선동정치를 극복하고 난 뒤에 확립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수의 힘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호프스태터라면 “다수의 힘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민주주의가 반지성주의를 조장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국회에서 다수인 더불어민주당이 숙의는커녕 숙의를 위한 최소한의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고 자당 의원을 무소속으로 빼내면서까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통과시킨 과정은 반지성적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올 3월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온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기본소득론’ 같은 선동적 주장을 펴다 패한 정치가라는 점에서 한국판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라고 할 만하다. 민주당이 이 전 지사를 대선 후보로 뽑은 것과 최근 검수완박 법안의 강행은 그 성격이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반지성주의의 긴 혼란기를 지나고 있다. 한국 정당 정치의 발전은 민주당이 언제쯤 급진파들에서 벗어나 윌슨 같은 합리적 인물을 당을 이끌 후보로 뽑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호프스태터는 지성(intellect)과 지적 능력(intelligence)을 구별한다. 좋은 대학을 나오거나 사법시험에 일찍 합격하는 것은 지적 능력을 보장할지언정 지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성은 어떤 사안을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일반화해서 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 큰 틀 속에서 한발 앞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다. 지성보다 직관(intuition)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호프스태터는 민주주의를 이용한 선동정치 외에도 기독교 복음주의와 기업의 실용주의 정신을 반지성주의를 조장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열성적인 기독교인과 실용적인 기업가 중에는 직관을 중시하는 사람이 많다. 기독교와 기업가 정신은 그 자체로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줬듯 그것이 반지성주의와 연결되면 큰 해악이 될 수 있다. 대선 운동 당시 손에 왕(王)자를 그리고 TV 토론에 나온 윤 대통령은 얼마나 지성적인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서 사업이나 관직의 성공과 무속적 신앙의 기이한 병존이 목격됐다. 대통령집무실의 광화문 이전 약속을 하루아침에 용산으로 바꾼 것은 약속 내용의 중대한 변경이 있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전을 결정한 쪽은 성공을 장담하지만 세심한 검토를 거친 것이 아니어서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이런 결정은 직관적일 수는 있어도 지성적이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직관은 신비적인 구석까지 있다. 부인이 무속인과 전화통화를 할 때 ‘조국이 대통령 될 것 같으냐’고 물어보라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누구 것이었던가. 출퇴근하면서까지 청와대에서는 하루도 안 살겠다는 비상식적 고집은 과연 무속과 무관한가. 상대편의 반지성주의를 비판하기 전에 본인의 지성부터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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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게이츠와 머스크

    빌 게이츠(67)가 20세기 후반의 혁신가라면 일론 머스크(51)는 21세기 초반의 혁신가다. 게이츠는 도스와 윈도 등 범용 운영체제(OS) 개발로 정보기술(IT) 혁명을 주도했고 머스크는 전기차, 재활용 우주선 등의 개발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IT를 자동차, 로켓 등 전통 산업에 접목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머스크는 모범생적인 게이츠와 달리 기계 산업 종사자 특유의 활달하면서도 거친 면이 있다. ▷게이츠는 미국 출신으로 하버드대를 다니다 자퇴했다. 머스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외가 쪽 고향인 캐나다 국적을 취득해 퀸스대를 다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로 옮겨 공부했다. 이후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에 합격했으나 이틀 만에 자퇴했다. 머스크는 리버럴(민주당 지지) 일색인 미국 IT 업계에서 특이하게 공화당 친화적인 성향을 보여 왔는데 그가 미국 밖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것과 무관치 않다. ▷게이츠는 머스크가 지난달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트위터를 ‘표현의 자유’가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만들겠다고 한 데 대해 우려 섞인 반응을 내놓았다. 게이츠는 “소셜미디어는 허위 정보 확산을 막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백신이 사람을 죽인다는 이야기에 대해 그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라고 물었다. 트위터광(狂)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가짜 뉴스를 유포하고 폭력을 선동해 계정이 삭제됐다. 사업가이기도 한 트럼프는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이라는 새 SNS를 출범시키며 이에 반발했다.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의 배후에 트럼프가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머스크가 운영하는 3대 업체인 우주선 스페이스X, 전기차 테슬라, 태양광 솔라시티만 해도 사업의 내적 연관성이 있다. 스페이스X로 화성에 사람을 실어 나르고, 솔라시티 기술로 태양광을 활용해 화성에 기지를 건설하고, 태양광을 전기에너지로 전환해 테슬라를 구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업 구도에서 보면 트위터 인수는 맥락에서 벗어난다. ▷트위터가 트럼프의 계정을 삭제했을 때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트위터의 조치가 ‘표현의 자유’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게이츠 자신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그가 고의로 바이러스를 만들어 퍼뜨렸다는 음모론에 시달렸다. SNS라고 해서 가짜 뉴스를 방치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기존 언론처럼 가짜 뉴스를 골라내 차단하는 것이 옳은지 세계적으로 논란이 있다. 이 논란에 일도 열심히 하지만 책 또한 많이 읽기로 소문난 두 구루(guru)가 끼어들었다. 그 결론이 자못 궁금해진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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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병사 월급 포퓰리즘

    병사들에게 월급 200만 원이 아니라 그 이상을 줘도 그 자체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대전현충원을 1980년대 중반 이후 거의 매해 찾는다. 사촌 형님이 20대에 군 복무 중 사망해 그곳에 묻혀 있다. 40년도 안 돼 100만 평 가까운 땅이 더 이상 묘비가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찼다. 나 역시 군 복무 중 수송트럭을 타고 이동하다가 트럭이 옆으로 굴러 죽을 뻔한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복무하는데 200만 원이 아니라 1000만 원인들 많겠는가. 그러나 최저시급에 맞춰 병사들에게 200만 원을 준다는 건 계산부터가 틀렸다. 병사들은 국가로부터 숙식을 제공받는다. 일반인의 최저시급에 맞춰 월 200만 원을 받는 것이라면 병사들은 국가로부터 숙식을 제공받는 비용을 빼고 받아야 한다. 국가로부터 숙식을 제공받는 병사들의 월급이 200만 원이라면 영외 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장교와 부사관은 최소한 300만 원 이상은 돼야 한다. 2021년 기준으로 육군 하사 1호봉 월급은 고작 166만 원이다. 원사나 돼야 비로소 1호봉이 300만 원을 넘는다. 육군 소위 1호봉은 170만 원이다. 소령 1호봉이 299만 원이다. 물론 장교와 부사관은 수당이 있어서 실제 받는 월급은 이보다 많다. 그럼에도 병사들의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리면 장교와 부사관의 월급도 함께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군이 병사 월급 200만 원이 문제가 많은 공약인 줄 알면서도 잠자코 있는 것은 병사 월급이 오르면 장교와 부사관의 월급이 덩달아 오르지 않을까 기대해서다. 병사들의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리는 데는 국방 예산 5조1000억 원이 더 필요하다. 올해 국방 예산의 9.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액수이다. 여기에다 장교와 부사관의 월급 인상분을 합치면 현재 40% 정도인 국방 인건비가 50%를 넘어 최대 60%까지 근접할 수 있다. 병사 월급 200만 원은 예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로 인해 초급 장교의 충원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병사들만이 아니라 장교들도 의무복무를 겸하는 단기복무 장교가 많다. 육군 초급 장교의 70%가 ROTC 등 단기복무 장교다. 이미 병사들의 복무 기간이 크게 단축되면서 군은 초급 장교 충원에 애를 먹고 있다. 병사들의 복무 기간은 노무현 정권 전까지만 해도 2년 2개월이었으나 문재인 정권에서 지난해부터 1년 6개월까지 내려온 반면 단기복무 장교의 의무복무 기간은 2년 4개월로 수십 년째 고정돼 있다. 복무 기간도 병사들보다 10개월이 긴 데다 병사로 근무해도 월급 200만 원을 받게 되면 굳이 장교로 가서 많은 책임을 지면서 근무할 이유가 없어진다. 전투력은 징병제 병사들이 모병제 병사들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그렇다고 의무 복무하는 병사들에게 직업군인 같은 자세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병사들의 월급 수준이 낮게 책정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전으로 올수록 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전투 훈련이 필요하다. 고작 1년 6개월 근무하고 제대하는 병사들에게 이런 훈련을 숙달시키긴 어렵다. 1년 6개월은 미리 정해진 작전·경계 지역에 병사들을 투입하고 퇴각시키는 기동 훈련만으로도 벅찬 시간이다. 그렇다면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병사들에게 200만 원을 지급하기보다는 돈을 좀 더 주더라도 모병을 늘려 정예화하는 게 전투력을 키우면서도 예산을 줄이는 길이다. 병사 월급 액수보다 먼저 그려야 할 큰 그림은 모병제로 언제, 어느 정도나 갈 것이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운동 당시 취임 첫해부터 200만 원을 약속했다. 그는 부동시(不同視) 판정을 받아 군 면제를 받았다. 군에서 총 한 번 안 쏴본 사람이다. 군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당장 눈앞의 20대 남성 유권자를 겨냥한 공약을 했다. 대통령직인수위는 어제 2025년 병장 월급 200만 원으로 목표를 하향했다. 병장 월급이 200만 원이면 이병 월급도 최소한 150만 원 이상이 돼야 한다. 하향이라기보다 공약의 실현 시기만 3년 늦춘 것이지만 그래도 과도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병사 월급이 많이 올라 올해 병장 월급이 67만 원이다. 2025년까지 병장 월급 100만 원 이상이 현실적인 목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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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검사가 ‘제왕’ 된 나라에서의 검찰 개혁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아니지만 검수더박(검찰 수사권 더 박탈)이라면 옳은 방향이다. 우리나라 검찰이 중요 사건의 직접 수사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알기 위해 법률가들도 잘 모르는 외국 형사사법제도와 비교해보려 하지 마시라. 신문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검찰발 수사 기사가 우리나라처럼 많은 나라가 없다. 일본 신문에서는 간혹 눈에 띌 뿐이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신문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요즘 ‘스며든다’는 말이 유행이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서 검사는 좀처럼 수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사실상의 수사 조율을 통해, 유럽 국가에서는 법적인 수사지휘권을 통해 수사에 스며든다. 검사의 수사 개입은 검사가 수사를 잘해서 하는 게 아니다. 소송 절차를 잘 알고 수사 현장에서 한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조언할 수 있기에 한다. 대형 비리 사건에 예외적으로 검사가 전면에 나설 때도 수사는 수사기관을 통해 주로 한다. 우리나라 검찰에는 많은 수사관이 있다. 어느 나라 검사나 사무보조원을 두고 있지만 우리나라 검찰에는 사무보조원을 넘어서는 수사관들이 있다. 검사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수사를 한다. 미국으로 치면 연방검찰 속에 연방수사국(FBI)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세상에 이런 검찰이 없다. 검수완박에 항의하는 검사들 중에는 수사를 할 수 있다면 경찰에라도 가겠다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기소권과 수사권 중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검찰이 제가 잘나서 수사까지 잘하는 줄 알면 착각이다. 경찰이 99%의 일반 사건들을 처리하느라 허덕이는 동안 검사는 1%의 중요 사건만 골라 수사하면서 노하우를 쌓았다. 경찰에도 우수한 인력을 모아 검찰처럼 수사할 여건을 만들어 주고 중요 사건을 수사하도록 한다면 얼마든지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 기소와 수사는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검수완박은 틀렸다. 그러나 기소와 수사는 상호 견제가 가능할 정도로 적절히 분리돼야 한다. 바람직한 대안은 수사관 등을 줄여 검찰의 직접 수사를 가능하게 하는 물적(物的) 기반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동시에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부활시키되 수사지휘는 주로 보완수사 요구를 통해서 하고 예외적으로 검사가 수사의 전면에 나설 때도 수사 자체는 가능한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아서 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검찰과 수사기관 관계의 모범적인 글로벌 프랙티스(global practice)다. 검경수사권 조정 당시 조국 대통령민정수석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에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포기하는 대신 부패 등 6대 범죄 직접 수사권을 갖는 타협이 이뤄졌다. 문재인 정권은 그때만 해도 박근혜 이명박 정권 청산에 앞장선 ‘우리 윤 총장’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남아 있어 직접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지는 않았다. 당시 검찰은 직접 수사권을 포기하더라도 수사지휘권을 지켰어야 했다. 사퇴를 불사하는 결기는 그때 보였어야 한다. 잘못된 거래 때문에 형사사법제도 개혁은 스텝이 꼬여 버렸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의 부당성을 따지기 위해 형사사법제도 운운할 필요도 없다. 누가 봐도 문재인과 이재명 두 사람을 향한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가 이해당사자라는 점, 졸속의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는 점만으로도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럼에도 문제는 남는다. 검찰이 또다시 과거 정권 수사를 직접 하도록 함으로써 논란의 여지를 남길 것인가. 권한이 적절히 나뉜 상태에서 수사와 기소가 이뤄지면 그 결과는 덜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우리나라 국민은 문민정부 이래 홍준표부터 윤석열까지 스타 검사들에게 가스라이팅당한 측면이 있다. 그 결과가 대통령도 검찰 출신, 대통령과 당내 경선에서 1, 2위를 다툰 후보도 검찰 출신, 황태자 법무장관 지명자도 검찰 출신, 여당 원내대표도 검찰 출신인 나라다. 검찰은 대통령을 제왕적으로 만든 결정적 수단이었으나 제왕을 갈아 치우면서 스스로 제왕이 됐다. 윤석열 정부에서 더 이상 검찰 개혁은 없다는 우려를 민주당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검수완박은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글로벌 프랙티스에 맞는 검찰 개혁안을 제시하고 나서 검수완박에 반대해도 반대해야 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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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프랑스 결선투표

    10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 결과 중도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극우파 마린 르펜이 각각 27.8%, 23.1%를 얻어 2주 뒤인 24일 2차 결선투표에서 맞붙게 됐다. 프랑스는 두 번 선거를 치러 대통령을 뽑는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후보가 양자 대결로 승부를 결정짓는다. 두 사람은 2017년 대선에 이어 재대결이다. 당시는 마크롱이 르펜을 따돌렸다. ▷극좌파 장뤼크 멜랑숑은 21.9%로 3위를 차지했다. 결국 멜랑숑의 지지자들이 결선투표에서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대선의 향방이 달렸다. 멜랑숑 자신은 르펜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멜랑숑의 지지자들의 의견은 마크롱, 르펜, 지지 후보 없음 사이에서 갈리고 있다. 언론인 출신인 에리크 제무르는 7.0%의 득표로 4위를 차지했다. 제무르는 극우 성향으로 출마 초 큰 관심을 끌었으나 르펜의 아성을 뚫지 못해 르펜의 대체재가 되지 못함이 입증됐다. ▷프랑스의 전통적 우파인 공화당과 전통적 좌파인 사회당은 이번 대선에서 완전히 몰락했다. 공화당은 5년 전에만 해도 19.9%의 득표로 3위를 차지했으나 이번에는 고작 4.7%를 얻었다. 5% 미만인 정당은 최대 800만 유로(약 108억 원)까지 환급받는 선거비용도 돌려받지 못한다. 5년 전 이미 몰락을 경험한 사회당은 이번에는 1.7%를 얻어 꼴찌에 가까웠다. 공화당을 세운 샤를 드골과 사회당을 세운 프랑수아 미테랑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이번 대선 1차 투표는 공화당이 몰락한 자리에 극우파 르펜의 ‘국민전선’, 사회당이 몰락한 자리에 극좌파 멜랑숑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들어서는 것으로 프랑스 정치판의 재편이 끝났음을 보여준다. 5년 전 중도파 정당인 ‘전진’을 창당한 마크롱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르펜 대 멜랑숑, 즉 극우파 대 극좌파의 결선투표를 막은 것만으로 이미 큰일을 했다. ▷프랑스 결선투표는 다당제 상황에서 극단적 성향의 후보가 뽑히는 걸 막아왔다. 20년 전 마린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과 공화당 자크 시라크가 맞붙은 결선투표에서는 극우파에 도저히 표를 던질 수 없는 유권자들도 상대적으로 온건한 시라크를 찍었다. 5년 전에는 마크롱을 찍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보는 예상이 우세하다. 극우파와 달리 극좌파는 한 번도 결선투표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번에 멜랑숑이 조금만 더 지지를 얻었다면 르펜을 따돌리고 결선투표에 진출할 뻔했다. 극우파든 극좌파든 어느 쪽이 결선에 올라와도 결선투표는 정치의 극단화를 막는 기능을 꽤 잘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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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퍼펙트 스톰이 다가오는데 큰일 났다

    “큰일 났다. 봄이 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얼마 전 국민통합위 첫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위원 중 한 명이 “큰일 났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윤 당선인이 “‘큰일 났다. 봄이 왔다’는 말이 있다. ‘큰일 났다. 겨울이 왔다’보다는 느낌이 있지 않나. 그렇게 큰일이 났다는 말로 이해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검사 시절 변양균 씨가 기획예산처 장관일 때 작품 2점을 신정아 씨로부터 구입한 사실도 수사했는데 그중 한 작품이 사진작가 황규태의 ‘큰일 났다. 봄이 왔다’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 사진이다. 강현국 시인의 시 ‘후렴’에도 같은 표현이 있다. 윤 당선인이 어느 쪽을 떠올렸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현실은 ‘큰일 났다. 겨울이 왔다’ 정도가 아니라 ‘큰일 났다.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다가오고 있다’여서 ‘봄이 왔다’는 말은 분투를 당부하는 것으로 새겨듣더라도 화자의 현실감 떨어지는 상황 인식으로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집값이 배나 오르면서 전세 사는 이들은 벼락거지가 됐다. 전세금마저 41% 넘게 올라 전셋집을 더 좁은 곳으로 옮기고 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있는 전세금마저 까먹게 생겼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면 예전엔 2인 가족 1주일 치 먹을거리를 15만 원에 샀으나 지금은 20만 원에서 25만 원까지 든다. 코로나가 지나갈 조짐을 보이자 인플레이션이 몰려오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전세금같이 현금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대재앙이다.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데도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얼마 전 문 대통령을 위한 별도의 퇴임식 운운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퇴임 행사는 새 대통령의 취임식에 부부가 함께 참석한 뒤 식이 끝나면 새 대통령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것으로 간소하게 해왔다. 암군(暗君)에게는 그것도 과분하다. 윤 당선인은 쉰 살에 늦장가를 갈 때 수중에 달랑 2000만 원 있었다고 한다. 주택청약통장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결혼하자마자 강남에 아파트가 생긴 사람이다.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입고 싶은 것 못 입으면서 적금 붓고 집 살 날만을 기다려온 이들의 좌절을 알 턱이 없다. 그러니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자신이 무엇 때문에 당선됐는지도 잊어버리고 집값 잡을 주도면밀한 구상보다 집 가진 사람들의 보유세 걱정을 먼저 하면서 다시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상정되는 왕이 아니다. 대통령의 득표율은 대부분 50% 안팎이다. 국민 절반은 새 대통령의 취임을 환영하겠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렇지 않다. 별도의 퇴임식은 가당치도 않은 얘기이고 취임식도 가능한 한 간소하게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에 7만 명을 초청해놓고 싸이를 불러 공연을 시켰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장사익 등이 불려왔다. 지금은 BTS가 최고이니까 어떻게든 BTS를 부르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 인수위 측이 얼마 전 BTS 기획사를 찾았다는 뉴스를 흘려들을 수 없었다. 문 대통령은 의도치 않게 취임식을 간소하게 했다. 당선 직후 바로 취임했기 때문에 성대한 취임식을 준비할 시간도 없었지만 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감옥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취임식으로선 그게 보기 좋았다. 말이 좋아서 취임식을 계기로 각계각층 각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축하 잔치를 벌인다고 하지만 전두환 시절 국풍(國風)의 아류 같은 행사로는 국민통합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없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의 세입자일 뿐인데 집주인 행세하며 살 곳을 제멋대로 결정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은 공원을 찾는 한가한 시민과의 만남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만나야 한다. 그래서 소통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총리로 지명된 한덕수 씨는 사고를 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창의적인 사람도 아니어서 수선(修繕)의 시기에 적합한지 의문이다.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국정 운영으로는 퍼펙트 스톰을 헤쳐 나가는 건 고사하고 문 정권이 문을 연, ‘가진 자는 더 가질 것이고 가지지 못한 자는 있는 것마저도 빼앗기는’ 극한 양극화를 고착시킬 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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