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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14일 “다른 검사로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증상이 없는 사람들은 PCR 검사가 의무가 아니어서 무증상 감염자의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다”며 “오늘부터 무증상 감염자 통계를 내지 않는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가 중국 당국의 통계를 바탕으로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주 중국은 하루 평균 2650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는 지지난주의 하루 평균보다 88%가 감소한 수치다. ▷중국 정부가 무증상자까지도 PCR 검사를 의무화했던 제로 코로나 정책의 완화를 발표한 것은 7일이다. 존스홉킨스대학 집계에 따르면 중국은 국민의 92.6%가 최소한 1회 이상의 백신 접종을 받았다. 그러나 그 백신은 중국산 백신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mRNA 방식의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이 아니어서 감염예방률이 크게 떨어진다. 이 상태에서의 방역 완화는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단기적으로 확진자의 급속한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 등의 보도에 따르면 외부로 유출된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의 회의록 자료에 20일 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3700만 명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12월에만 중국 인구의 18%에 이르는 2억4800만 명이 확진됐으며 베이징과 쓰촨성의 경우는 절반 이상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러나 중국 보건당국의 공식 집계에 20일 확진자는 고작 3049명이었다. ▷3700만 명 대 3049명은 차이가 너무 커서 둘 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중국 정부의 교묘한 집계 때문에 감염 실태를 숫자로 확인하기는 계속 어려울 듯하다. 다만 방역 완화 이후 베이징 등 대도시의 화장장이 24시간 돌아가고 그 앞에 늘어선 영구차의 긴 줄이 줄지 않는다는 목격담에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늘었으며 확진자는 그보다 훨씬 더 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 내 약국에서 감기약이 동났다는 보도에 이어 중국인들이 일본 등 이웃나라까지 가서 감기약을 구매하고 있다는 보도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존스홉킨스대학 집계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코로나 사망자 비율은 중국이 1.18명으로 압도적으로 적다. 주요 20개국 중에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일본이 43.24명이다. 한국은 61.92명으로 5번째로 적다. 코로나가 다 끝나지 않아 이 수치는 아직 잠정적이다. 게다가 중국 같은 나라가 보고한 통계는 신뢰하기 어려워 예년보다 늘어난 초과사망자의 숫자를 구해 수정해야 한다. 중국이 그때도 1등일지는 이제 장담하기 어려워졌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어느 프랑스 정치가는 각료직을 제안받았을 때 차관이 책임지는 조건이라야만 맡겠다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왕이 아니라 장관이 책임진다. 장관이 책임지지 않는다면 끝내는 돌고 돌아 문지기가 책임지는 사태에 이른다. 이런 책임전가는 아리스토파네스에게 맞는 재료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한 말이다. 키르케고르는 1813년에 태어나 1855년에 죽었다. 그의 생몰(生沒)연도로 보아 여기서의 왕은 제1제정(1804∼1824년)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 제2제정기(1852∼1870년)의 나폴레옹 3세가 아니라 1830∼1848년, 이른바 7월 왕정기의 루이 필리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루이 필리프는 ‘프랑스의 왕’이 아니라 ‘프랑스인의 왕’으로 불렸다. 전체 인구의 0.8%만이 선거권을 가진 상황이긴 했지만 그는 신에 의해, 다시 말해 성직자의 축성(祝聖)에 의해 왕이 된 것이 아니라 프랑스인에 의해 선출된 왕이어서 그렇게 불렸다. 당시는 입헌군주제였다. 왕이 있었지만 정부는 유권자에게 책임을 져야 했다. 그 책임을 장관이 졌다. 여기서의 책임의 의미는 내각책임제의 책임과 같다. 법적인 잘못을 저질러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혹은 정책적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내각책임제는 영어로 the parliamentary cabinet system이라고 한다. 의원내각제가 더 정확한 번역어이지만 우리는 내각책임제라는 말을 오히려 더 많이 쓴다. 내각책임제라는 말은 정치적 혹은 정책적 실패의 책임을 누가 어떻게 져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긴 번역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제(the presidential system)도 대통령책임제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내각과 달리 임기가 보장돼 있다. 내각은 다수당과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언제든지 물러나야 하지만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은 책임질 방법이 없다. 그래서 책임지는 것이 장관이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어느 프랑스 정치가가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차관이 책임지는 조건으로 장관을 맡겠다는 말은 장관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장관이 차관이나 그 밑의 공무원들과 다른 것은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에서 장관이 책임져야 하는데도 책임지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는 제도가 의회의 해임 건의권이다. 대통령은 이 건의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없다. 그래서 건의일 뿐이다. 다만 국민이 공분하는 일이 발생했는데도 담당 장관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결국 돌고 돌아 끝내는 문지기가 책임지는 사태에 이른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에도 장관도 책임지지 않고 차관도 책임지지 않고 경찰청장도 책임지지 않고 서울경찰청장도 책임지지 않으니 결국 일종의 문지기인 일선의 경찰서장과 소방서장이 책임지는 사태에 이르렀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고대 그리스의 희극(comedy) 작가다. 고대 그리스는 흔히 비극(tragedy)의 시대라고 보기 때문에 이 희극 작가는 특별하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이란 작품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조롱했다. 우리는 플라톤 덕분에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 달랐다고 옳게 평가하고 있지만 당대의 그에게는 소크라테스 역시 말장난으로 먹고사는 소피스트 중 하나였을 뿐이다. 말장난, 좋게 말하면 수사법을 가르치는 대가로 먹고사는 게 소피스트들이었다. 여기서의 수사법은 주로 법정에서의 다툼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이었다. 소피스트들에게 진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상대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리스토파네스가 조롱한 소피스트들은 오늘날로 치면 법률가들이다. 법률가들은 본능적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처음에는 예방 불능론을 들먹이더니 돌연 일선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경찰이 대통령실로 향한 시위대를 막는 데 힘을 쓰다가 이태원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닐까, 경찰국이 신설돼 경찰이 민생보다 권력의 눈 밖에 나지 않는 데에 더 신경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은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이 정권의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법은 일선의 책임은 무한하고 고위층으로 갈수록 책임을 묻기 어렵게 돼 있다. 이런 책임 전가야말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 딱 맞는 재료가 아닐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유튜브에서 쇼츠(shorts)라고 하는 짧은 동영상이 유행이다. 인스타그램의 짧은 동영상은 릴스(reels)라고 불린다. 그러나 약 15초 길이의 짧은 동영상은 틱톡이 원조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영상만 보려 하고 글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고 있지만 정작 젊은이들은 동영상도 긴 것은 참지 못하고 짧은 것을 선호한다. ▷틱톡은 인스타그램이 사진 중심일 때 유튜브처럼 동영상을 중심에 뒀다. 똑같이 동영상을 중심으로 해도 틱톡에서는 기존 유튜브에서 볼 수 없는, 챌린지라고 불리는 따라하기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동영상이 짧고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기능을 앱 속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틱톡을 세계 최초의 헥토콘(기업가치 100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만들었다. ▷다만 틱톡의 인기를 짧은 동영상이라는 형식에만 돌릴 수 없다. 틱톡에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많다. 어쩌면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짧기 때문에 자극적이지 않으면 관심을 끌 수가 없다. 최근에도 틱톡에서 약 700만 명의 팔로어를 가진 사람이 그랜드캐니언 협곡 아래로 골프 샷을 하면서 골프채까지 날려 보내는 영상을 올렸다가 당국의 조사를 받고 처벌됐다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미국 인디애나주 법무부는 7일 틱톡을 운영하는 중국 바이트댄스를 상대로 틱톡의 콘텐츠들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중독을 야기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감기약으로 치킨 튀기기, 유리조각 먹기, 아기 던지기 같은 영상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좋은 영향을 줄 리가 없다.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10세 소녀는 지난해 12월 틱톡의 기절 동영상을 따라 챌린지하다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고 끝내 숨졌다. ▷미국의 더 큰 우려는 중국 정부가 미국 틱톡 사용자의 정보를 빼갈 수 있다는 데 있다. 조 바이든 정부의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지난달 미 하원 국토안보위원회에 “중국 정부가 수백만 틱톡 사용자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재작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틱톡 다운로드 금지 행정명령은 법원에 의해 일단 제동이 걸렸다. 그러자 주정부가 독자적으로 나서고 아예 연방의회에서 법으로 규제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틱톡을 둘러싸고 2차전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미중 갈등의 불똥이 화웨이에 이어 틱톡으로 본격적으로 튀고 있다. 위챗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시진핑 디스카운트라고 할 만하다. 중국이 정치적으로 더 민주적이 돼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마오쩌둥의 1인 독재 시대로 회귀하고 있으니 그런 정부에 예속된 기업은 끊임없이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비행기가 전쟁에 처음 이용된 용도는 전투기가 아니라 폭격기로서다. 간단히 말해서 폭탄을 싣고 가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체가 가공(可恐)할 만한 것이어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폭격기에는 적수가 없다고 여겼다. 일본 도쿄 대공습, 독일 드레스덴 폭격이 모두 폭격기에 의한 것이다. 원폭을 투하한 미국의 B-29 폭격기가 일본의 항복을 끌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B-29는 한국전쟁까지 널리 활용됐다. B-29가 한국전쟁 중 옛 소련의 전투기 미그-15에 공격을 당하자 1952년 미국이 B-29의 느린 속도를 개선해 개발한 것이 B-52다. ‘하늘을 나는 요새’라는 별명을 지닌 B-52는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 폭격기의 중추를 이루고 있으며 저공으로 더 빨리, 더 오래 비행하는 ‘죽음의 백조’ B-1B가 이를 보완하고 있다. 소련은 B-29에 맞서 ‘곰’이라는 별명을 지닌 Tu-95를 개발했는데 이 역시 오늘날까지도 러시아의 전략자산으로 꼽힌다. ▷폭격기의 개발이 한동안 주춤해진 것은 레이더와 요격 미사일의 발전 때문이다. 스텔스 기술이 개발돼 그 장애를 뛰어넘게 해줬다. 스텔스 기술은 공격기에 처음 적용됐다. 2003년 이라크전에서 이라크의 방공망을 초토화시킨 F-117 나이트호크가 미국의 초기 스텔스기다. 스텔스 기술은 다음에 F-22 랩터와 그 보급 버전인 F-35 시리즈 등 전투기에 적용됐다. 그리고 다시 폭격기에 적용됐으니 그 첫 세대가 B-2 스피릿(Spirit)이고 이를 대체할 차세대가 2일 공개된 B-21 레이더(Raider)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에 맞서 각각 T-50 PAK FA, J-20이라는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했지만 그 성능은 여전히 의문스럽다. 이런 두 나라가 미국에 근접하지도 못한 분야가 있으니 바로 스텔스 폭격기다. B-21은 조종사 없이도 스스로 항로를 변경해 폭격이 가능하다고 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5세대 군용기인 스텔스기도 따라잡지 못하는 사이 미국은 벌써 6세대 군용기인 디지털 스텔스기로 나가고 있다. ▷미국은 내년에 B-21 초도비행을 한 뒤 2026년부터 100대를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일찍 모습을 공개한 이유는 북한을 비롯해 러시아와 중국이 겁 좀 먹으라는 것이다. B-21이 F-22의 호위를 받아 하늘을 난다면 레이더상에서 B-21은 골프공 크기 정도로, F-22 전투기는 작은 구슬 크기 정도로 인식된다. 새들이 몇 마리 날아가나 보다 착각하는 사이 한 국가, 한 도시를 초토화시킬 폭탄이 뿌려지게 된다. ‘폭격기 무적(無敵)론’이 다시 나올 만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지난달 30일 별세한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해외 언론에 첫 주목을 받을 당시의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 공산당 총서기의 뒤를 이어 덩샤오핑이 그 자리에 앉힌 사람이다. 자오쯔양은 후야오방 전 총서기와 함께 정치에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쪽이었으나 덩샤오핑과 장쩌민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고 경제에서의 개혁만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한편이었다. ▷장쩌민은 덩샤오핑이 은퇴한 직후인 1993년 중국 국가주석에 올랐다. 그는 10년을 집권한 뒤 덩샤오핑이 정한 후진타오에게 물려주고 떠났다. 후진타오도 10년을 집권한 뒤 장쩌민이 정한 시진핑에게 물려주고 떠났다. 시진핑은 10년을 집권하고도 물러나지 않는다. 차기 지도자도 정해지지 않았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처럼 죽을 때까지 권력을 쥐겠다는 것이다. 현대 중국이라는 오페라가 1막 마오쩌둥, 2막 덩샤오핑, 3막 시진핑으로 구성된다면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집권기는 2막과 3막 사이의 긴 간주 정도로 격하될 모양새다. ▷장쩌민에게는 총리로 주룽지가 있었고 후진타오에게는 원자바오, 시진핑에게는 리커창이 있었다. 경제전문가로서 으뜸은 주 총리다. 장쩌민-주룽지 2인조의 최대 업적은 덩샤오핑의 노선을 이어받아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성사시킨 것이다. 톈안먼 학살의 음습한 구름을 뚫고 중국의 공장 불빛이 세계를 향해 반짝거리기 시작한 것은 장쩌민 집권기라고 할 수 있다. ▷장쩌민은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과 달리 서방 언론에 과감한 노출을 택한 첫 중국 지도자이지만 덩샤오핑이 1979년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찍은 사진만큼도 인상적인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후진타오나 시진핑에 비하면 훨씬 친근해 보이는 모습으로 언론에 등장했다. 1996년 필리핀 방문 중 피델 라모스 대통령과 함께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부르는 모습 등이 그런 예다. 그러나 그 뒤에는 티베트와 파룬궁에 대해 잔혹한 탄압도 불사하는 차가운 면이 숨겨져 있다. ▷중국에서 시진핑식 코로나 봉쇄에 반대하는 백지(白紙) 시위가 상하이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이 시위에 장쩌민이 소환되고 있다. 장쩌민은 톈안먼 사태 당시 상하이 당서기로 있으면서 베이징과 같은 유혈사태 없이 상하이의 시위를 해산시켰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영어로 외면서까지 시위대를 설득했다고 한다. 톈안먼 시위가 후야오방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커졌듯이 백지 시위도 시진핑보다는 장쩌민 시대가 나았다는 추모의 분위기 속에서 확산되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역사의 상공에 올라보자. 자잘한 물결은 사라지고 큰 줄기만 보일 정도로 높이 올라보자. 이승만 대통령은 유라시아 대륙이 공산주의로 다 붉게 물들어갈 때 대륙의 오른쪽 끝단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에서 산업화에 성공함으로써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이겼다.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들은 뭘 했던가. 1993년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는 김영삼 대통령 취임 한 달 만에 일어났다. 북한이 그동안 숨어서 해오던 핵 개발을 노골적으로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한국과 일본을 넘어 미국 본토에 가 닿을 수 있는 핵탄두와 그 운반체의 개발에 성공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 6명의 대통령은 모두 북한의 위협 앞에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헌법적 책무를 다 하는 데 실패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 원자로에 대한 폭격을 계획했을 때 그에 반대함으로써 북핵에 대한 가장 중요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그 자신 나중에 북폭(北爆)에 반대한 사실을 후회하는 회고를 지나가듯 한 바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 정책으로 소련 공산권 붕괴 이후 경제적 곤궁에 처한 북한 세습정권을 살려냈다. 그 과정에서 퍼준 돈은 북한이 핵 개발을 지속하는 데 쓰였다. 지금 돌아보면 당치도 않는 노벨평화상을 그가 받은 대가로 국민이 얻게 된 것은 북한의 핵 위협이다. 북한은 김대중 집권기를 통해 곤궁에서 벗어난 뒤 노무현 집권 후반기인 2006년 제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을 제어해 주리라는 헛된 기대에 매달려 9년 세월을 허비했다. 김정은이 핵무기 포기 의사가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동분서주한 문재인 대통령은 비단 북한이 보기에만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는 삶은 소대가리였을까. 한반도가 처한 위기는 옛 서독이 동독에 배치된 소련의 SS-20 미사일에 대응해 미국의 퍼싱-2 미사일을 배치하던 때의 위기와도 다르다. 우리는 당시 독일이나 지금의 유럽과 달리 유엔 안보리와 NPT 체제에서 특혜를 누리는 핵보유국인 옛 소련이나 러시아가 아니라 NPT에서 탈퇴한 북한에 발사버튼이 있는 핵 위협에 노출돼 있다. NPT 체제 밖에서 이스라엘은 중동 이슬람 국가들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다. 적대국가인 인도와 파키스탄은 한쪽이 핵무기를 개발하자 다른 한쪽도 개발함으로써 상호 균형을 이뤘다. 한국만 북한의 핵위협 앞에서 존립을 미국에 맡겨 놓고 있다. 시간을 되돌려 1994년으로 돌아간다면 북한 영변 원자로를 폭격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폭격이 무위(無爲)로 돌아간 후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대화나 제재였으나 통하지 않았다. 대화는 사기였고 제재는 뒷문이 열려 있었다. 이제 와서 몰랐다는 듯이 말하면 안 된다.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따라서 북한이 언젠가는 핵무기를 보유할 때를 상정한 대비책을 준비했어야 한다.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민주화 이후 모든 문민(文民) 정부의 어리석음이다. 북한 핵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지만 시간문제일 뿐이다. 한국과 미국의 이해를 분리시키는 진짜 핵무력 완성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와 NPT 체제가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면 이제라도 스스로 국가와 민간을 아우르는, 또 공개와 비밀을 아우르는 생존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생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미국은 비상상황으로 양해할 수밖에 없고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막지 못한 걸 후회할 것이다. 생존 프로젝트의 추진 자체가 미국과 중국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임무가 무엇인지 기억하기 위해 집무실에 서울 지도를 걸어두고 집무실이 있는 용산구에 핵폭탄이 떨어졌을 때의 모습을 매일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용산구를 비롯해 인접 몇 개 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서울 전체가 방사능 낙진의 피해를 입는다. 대통령이라면, 설마 쏘겠냐는 폭탄 돌리기나 하지 말고 이 공포 자체를 끝내기 위해 부심(腐心)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23일 열린 카타르 월드컵 독일-일본전. 독일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가 일본 공격수 아사노 다쿠마와 경합을 벌이며 볼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아사노 앞에 끼어들어 겅중겅중 뛰면서 골라인까지 막아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출신인 뤼디거의 키는 190cm로 아사노보다 17cm나 크다. 아사노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자신의 타조걸음을 못 쫓아온다고 조롱한 것인데 자칫 특정한 신체적 조건을 조롱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 선수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뛰었던 디트마어 하만 씨는 그날 독일축구연맹 트위터에 이 장면에 대해 재미있어 하는 글들이 올라온 걸 보고 “수치스럽다”며 분노를 토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상대를 깔보는 행동은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 밤 누구라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뤼디거만이 아니다. 프로 정신에 흠결이 있다. 그렇게 하는 건 오만이다”는 글을 올렸다. ▷정작 일본인의 반응은 그리 격렬하지 않다. 일본어로 된 유튜브를 보면 “뤼디거는 원래 뛰는 방식이 저렇다” 혹은 “빨리 달리다가 속도를 줄이려면 저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아는 체하는 댓글이 적지 않게 달려 있고 그런 댓글에 대체로 가장 많은 ‘좋아요’ 반응이 달려 있다. 자신들이 조롱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특이한 심리라고밖에 할 수 없다. ▷뤼디거는 그 자신이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인종차별 피해를 호소해온 선수다. 그는 이번 시즌부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지만 첼시에서 뛰던 2019년 12월 토트넘 홋스퍼와의 경기에서 손흥민과 몸을 부딪친 적이 있다. 손흥민은 일어서면서 그의 복부를 발바닥으로 가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퇴장 판정을 받았다. 그때 토트넘 팬들이 항의해 관중석에서 원숭이 울음소리를 내는 등 인종차별적 행위를 했다고 뤼디거가 주장했다. 당시 손흥민을 비판하는 데 앞장선 것이 손흥민의 활약상을 질시해온 일부 일본 축구팬들이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의 자체 조사 결과 원숭이 울음소리는 없었고 캔 던지기 같은 것이 조금 있었을 뿐으로 밝혀졌다. ▷뤼디거가 아사노를 조롱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 후반 19분경이다. 그러나 후반 38분경 바로 그 아사노가 뤼디거가 보는 앞에서 골키퍼와 골포스트 사이의 좁은 틈을 뚫고 지나가는 면도날 같은 슛으로 독일을 2 대 1로 격파하는 역전골을 만들었다. 독일은 경기에서만 진 것이 아니다. 매너에서도 졌다. 하만 씨가 지적했듯이 뤼디거만이 아니라 독일의 축구팬들은 그것을 더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카타르 축구 월드컵을 앞두고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의 뉴스가 많이 나왔지만 흘려들어서인지 개막식에 BTS가 초청받은 줄 알았지 정국만 간 줄은 몰랐다. 21일 개막식을 보고서야 정국이 혼자 간 사실을 알았다. 막상 보고 나니 BTS가 다 있을 필요도 없었겠다 싶었다. 정국은 혼자서도 마이클 잭슨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감으로 메인무대를 가득 채웠다. ▷그러고 보니 BTS는 스타(Star)가 아니라 스타들(Stars)이다. 멤버 각각이 하나의 별이다. 비틀스에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 등의 별이 있듯이, 롤링스톤스에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 등의 별이 있듯이 그렇다. 별들이 한데 몰려 있어서 팬이 아닌 일반인은 각각의 별을 구별해 보지 못할 뿐이다. 팬들은 각각의 별이 가진 개성과 능력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BTS의 팬일 뿐 아니라 각각 진 슈가 제이홉 RM 지민 뷔 정국의 팬이기도 하다. ▷막내 정국은 BTS의 메인보컬로서 곡의 첫 부분을 도맡아 부를 정도로 노래를 잘한다. 게다가 리드댄서이기도 하다. 날렵한 몸매에 숨겨진 강인한 근육을 바탕으로 정석대로 추는 춤이어서 동작 하나하나가 힘 있고 깔끔한 데다 안무의 포인트를 살리는 능력이 뛰어나 임팩트를 넣어야 할 때 정확히 넣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이 다 월드클래스이기 때문에 마이클 잭슨처럼 무대를 압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럽을 기준으로 보면 그리스로부터 동쪽은 근동(Near East)이거나 중동(Middle East)이거나 극동(Far East)이거나 다 동양이다. 일본 한국 중국 등 극동에서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린 게 여러 차례이지만 근동이나 중동에서는 올림픽이 열린 적이 없고 월드컵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역사적인 대회의 개막식 메인무대에 카타르 자국 가수와 함께 주인공으로 선 사람은 서양인이 아니라 동양인이었고 그 동양인은 한국인이었다. ▷BTS는 과거의 한류와 다르다. 과거의 한류는 한국에서 유행한 뒤 중국 일본 등 인접국으로 퍼져 나가고 다시 중동 등 아시아와 서양에서 인기를 얻는 순으로 전파됐다. BTS는 그렇지 않다. BTS는 한국에서 인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인기를 얻은 뒤 마침내 팝의 본고장인 미국에 깃발을 꽂고 그 뒤에 오히려 한국으로 역류해 기성세대에게까지도 널리 알려졌다. BTS는 에드워드 사이드 식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뛰어넘은 현상이다. 정국은 한국인이어서도 아니고 동양인이어서도 아니고 세계인이 사랑하는 가수여서 노래하고 춤췄다. 그것이 감격스러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압사 사고 발생을 경찰청장이나 서울청장보다 훨씬 먼저 알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경찰청장이나 서울청장을 찾아 전화했다는 얘기는 없다. 관련 부처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는 상투적인 발표가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대통령이라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을지 모른다. 용산서장은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굳이 차를 타고 가겠다고 고집하면서 1시간 넘게 허비했다. 분노가 치밀지만 그가 10분 만에 도착했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 소방관들도 현장에 접근하는 데 애를 먹었으며 현장에 들어가서도 사망자를 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번 사고도 사고가 터진 후의 대처보다 사고 우려 신고가 들어왔을 때의 대처가 중요했다. 윤 대통령이 “경찰은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나”고 격앙한 것도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은 이선(二線)에서 일선(一線)을 문책하는 일만 해온 검사 출신의 대통령이 상상한 것처럼 단순했을 것 같지 않다. 사고 발생 전까지 11건의 112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4건에 대해 출동하는 조치를 취했고 나머지는 전화 상담 후 종결했다. 유사한 신고들에 대해 4건만 출동했다는 걸 문제 삼기보다는 1건이라도 제대로 확인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이미 사고 당일 배치된 정도의 경찰력으로는 인파를 뚫고 신고 내용을 확인하러 가는 일조차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보이는 곳이 다 인파이다 보니 인파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졌을 수 있다. 결국 이 사고는 선제적인 예방 조치가 결정적인 변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골목길 일방통행이나 지하철의 무정차 통과와 같은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용산서 정보과에서 사전에 어떤 내용의 보고를 올렸으며 상부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가 수사의 핵심이 돼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사고는 단지 범죄 혐의 차원에서만 인과관계를 따질 수준을 넘어서는 참사다. 무려 158명이 죽었다. 부상자도 198명이다. 수사를 넘어서는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 부부는 사고 직후 한남동 관저로 들어갔다. 그동안 윤 대통령이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출퇴근하면서 서초·용산경찰서 직원들이 초과 근무에 시달렸고 용산서 직원들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초과 근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이전으로 서울에서 가장 조용한 경찰서 중 하나였던 용산서가 가장 바쁜 경찰서 중 하나가 됐다. 대통령이 드나들 때 경계를 해야 하고 시위대도 막아야 한다. 용산서장이 올 1월 부임할 때의 임무 목록에는 없던 일이다. 그는 사고가 터진 날도 시위대에 대응하느라 하루 종일 바빴다. 이태원을 관할에 둔 탓에 현 정부가 강조하는 마약 수사에도 관심을 둬야 했다. 현 정부의 첫 총경급 인사는 8월에 있었다. 경찰국을 신설해 총경급까지 검토해 인사를 한 것은 민주화 이후 이 정부가 처음이다. 올 1월 부임했으나 7개월도 안 돼 보직이 바뀐 총경급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 자택을 관할하는 서초서장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용산서장은 경무관 진급 1순위인 종로서장이 맡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는데도 그대로 뒀다. 개인이나 조직이 업무가 과중해지면 평소 제대로 하던 일도 못한다. 창의적으로 사고를 예방하는 일은 더욱더 못한다. 용산서에 임무가 늘어난 만큼 인력 보강이나 조직 강화가 이뤄졌는지, 용산서장의 유임이 용산서가 맡게 된 막중한 임무를 고려한 인사인지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검사가 다루는 형법적 인과관계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인과관계다. 대통령이라면 그런 인과관계까지 보고 정무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통령실 이전은 국가적 대사(大事)다. 대사란 아무리 신중히 결정해도 예상하지 못한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고, 예상했더라도 충분히 대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베이징의 하늘을 나는 나비의 날갯짓에 뉴욕에서 발생한 폭풍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다만 국정이란 건 늘 자원은 한정되고 임무는 막대해서 여유가 없는 것이므로 불요불급한 일에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필요한 일도 하루아침에 뚝딱 결정해서는 안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지난주 수요일 삼청동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돌아왔다. 돌아올 때 보니 삼청동 길에 차량이 거의 서다시피 차 있고 건널목에는 보행신호 때마다 무더기로 사람들이 움직였다. 봄이나 가을에 이쪽이 붐비는 건 사실이지만 올해처럼 붐비는 건 처음 봤다. 코로나가 끝나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주말인 토요일 오전에 친구들을 만나 창덕궁을 둘러보고 인사동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온 아내로부터 ‘사람이, 사람이 넘쳐서 혼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아무리 코로나가 끝났다고 하지만 그 정도인가 싶었다. 그날 밤 9시 반쯤 고교 동창이 카톡방에 이태원 해밀톤호텔 앞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동영상을 올렸다. 전철역을 빠져나오는 데만 20분이 걸렸다는 글도 달렸다. ‘그 나이에 웬 핼러윈’이라고만 여기고 얼마 안 지나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안전 안내 문자에 이태원 사고 소식이 수북이 쌓였다. 뉴스를 검색해 보니 압사 사고로 149명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떠 있었다. 친구의 안위가 걱정돼 ‘괜찮니’라는 카톡을 보낸 것이 일요일 오전 6시 반이다. 몇 번이나 카톡을 열어봤는데도 답이 없었다. 1시간 반 만에 “난 구경하다가 밤 11시 전에 피곤해서 집에 왔다. 이런 사고가 날 줄은…”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안도하는 친구들의 글이 앞다퉈 올라왔다. 지난 한 주간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몰려다니는 것이 눈에 띄고 귀에 들리는 게 나에게도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막연히 심상치 않다는 느낌으로 끝나면 그저 일반인이다.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움직여야 안전 전문가, 안전 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 사고 직후 예년과 비교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인 것도 아니고, 경찰을 사전 배치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부적절했다. 지하철 이태원역 승객으로 계산한 예년 수준은 10만 명으로 이번에는 13만 명으로 늘었다. 단순히 30%가 아니라 이미 한계치에 도달한 숫자에서 30%가 는 것으로 죽음의 밀도를 가진 30%다. 경찰을 사전 배치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은 일본이나 홍콩의 경찰이 핼러윈 축제에서 인파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몰랐다는 무지의 고백이나 다름없다. 그런 말을 해놓고 나니 인파가 30% 느는 데 따라 경찰도 40% 늘렸다는 다음 날의 해명은 궁지에 몰려 하는 숫자놀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도 증원된 경찰 인력은 마약이나 성범죄 단속을 위해 동원된 것으로 인파 관리와는 상관없었다. 사실 경찰력 배치를 결정하는 책임자가 이태원 핼러윈 인파가 30%가량 늘 것이라고 예상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30%는 지하철 승객 집계로 사고 이후에야 나왔다. 사전에 예상 못한 것은 물론이고 사후까지도 인파가 예년과 비슷했다는 잘못된 판단이 나오게 한 경찰 책임자들이다. 그 현실감이 일반인이 거리를 오가며 느끼는 감만도 못했다. 자신들이 예방 계획을 잘못 짜놓고는 112신고센터의 대응 등을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책임을 아래로 돌리기 시작했다. 주최자가 있는 행사냐 아니냐를 구별하는 해명을 듣자면 화가 치민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주최자가 없어도 정례적으로 해온 것이고 인파가 예상이 됐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도 안전을 관리하라고 경찰이 있는 것이다. 신설된 경찰국이 경찰의 독립을 위협하는 조직이 아니라 경찰을 지원하는 조직이라면 우리 사회가 접해 보지 못한 사고를 연구하고 어떻게 예방할지 참조 가능한 사례를 수집해서 일선에 전파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장관이 선동을 막는다며 부적절한 해명을 하는 걸 방치하거나 방조한 것이 고작이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다시 자책(自責)의 시간이다. 언론은 이태원 압사 사고가 난 후 한강 야시장에 13만 명이 몰리고 한강 불꽃축제에 100만 명이 몰린 것이 전조라고 보도했지만 사고 전에는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만 보도했지, 진지하게 안전의 문제를 경고하지 못했다. 젊은이들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위험에 처한 이 기막힌 상황이 언론인의 한 사람인 나에게도 자책감을 갖게 한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청춘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세계 시민’을 언급했다. ‘세계 공화국’과 한 묶음인 ‘세계 시민(weltbürger)’이란 말은 칸트에서 비롯됐다. 칸트가 실제 언급한 것은 세계 공화국이 아니라 민족연합(民族聯合·völkerbund)이다. 하지만 독재가 아니라 공화적 가치가 중심이 된 민족들의 연합은 세계 공화국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공화국을 통한 영구평화(永久平和)는 철학에서나 하는 말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사를 겪고 난 뒤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이 탄생했다. 이 명칭은 칸트의 민족연합을 영어로 직역한 것이다. 물론 말만 그럴 뿐이다. 국제연맹도, 그 후신인 국제연합(United Nations·유엔)도 세계 공화국과는 거리가 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명백한 잘못에도 유엔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러시아의 거부권 때문이다. 유엔 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이 나머지 국가들에 우월성을 갖는 체제다. 그런 점에서는 19세기 빈 체제나 다를 바 없다. 전승국의 우월성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이 상임이사국으로서 갖는 거부권으로 나타난다. 이들 국가는 나중에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만들어 핵무기를 보유할 권리까지 독차지함으로써 우월성의 군사적 토대를 완성했다. 유엔 체제는 정확히는 전승국 중에서도 핵 선제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아 응징할 수 있는 광대한 영토를 가진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세 나라의 핵 균형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핵무기 사용을 불사하겠다고 위협하지만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NPT는 깨지고 NPT가 그 위에 서 있는 유엔 체제도 끝난다. 유엔 체제는 핵전쟁으로는 극복될 수 없다. 핵전쟁은 인류의 전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후의 체제가 있을 수 없다. 어렵기는 하지만 핵전쟁을 피하면서 유엔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뒤이은 공산권의 몰락을 초래한 내파(內破·implosion)다. 전쟁과 같은 외부적 힘에 의해 초래되는 외파(外破·explosion)가 아니라 스스로 무너진다는 점에서 내파다. 물론 내파라고 해서 순수하게 스스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공산권의 내파는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봉쇄(containment) 정책의 결과였다. 지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서방의 제재를 피할 수 없고 또 한 차례의 내파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스스로 무너지던 중국을 수교를 통해 구해주고 세계화에 합류시켜 준 것은 미국이다. 그런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신(新)봉쇄 정책으로 돌아섰다. 군사적으로 아시아·태평양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라고 할 수 있는 쿼드를 출범시키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을 배제하고 동맹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급망을 짜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러시아나 중국이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정밀하고 압도적인 재래식 무기로 초토화시키는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재래식 군사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러시아에 대해 상응하는 핵무기를 쓰지 않고도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미국과 나토의 자신감은 그로부터 왔다. 시진핑이 연임된 후 대만 침공을 시도해도 미국과 아시아 국가의 협력 태세가 확고하면 중국의 전술핵무기 사용 위협에 핵전쟁을 피하면서 대응할 수 있다. 물론 전술핵무기가 아니라 전략핵무기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공멸을 뜻하기 때문에 더 생각할 것도 없고 단지 인간 유전자 속에 새겨진 자멸 본능을 한탄해야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가 통하려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봉쇄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북한의 핵 도발 역시 중국과 러시아의 핵 도발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때 막을 수 있다.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북한을 다룰 실효적인 궤도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 봉쇄는 봉쇄하는 측에도 고통을 요구한다. 세계가 지금 겪고 있는 경제위기가 그것이다.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도 인적 물적 고통을 수반한다. 열정(passion)은 동시에 고통이다. 그 고통을 견뎌낼 각오가 세계 공화국을 준비하는 세계 시민의 자세일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국형 유도탄인 현무 시리즈 중에서는 현무-1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탄도미사일 현무-2와 순항미사일인 현무-3가 실전 배치돼 있다. 우리나라는 사실 미사일 강국이다. 현무-3의 사거리는 1500km로 이 정도 사거리의 순항미사일은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한국 정도만 보유하고 있다. 현무-2는 2021년 5월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 전 사거리가 800km로 제한돼 있을 때도 약간의 개량만으로도 중거리미사일로 전환할 수 있었다. ▷현무-4부터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 있다. 탄도미사일인 현무-4는 2017년 미국이 한국의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을 해제한 이후 개발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1t에 불과한 현무-3의 탄두 중량을 2.5t까지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 현무-5는 ‘괴물’로만 알려져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현무-5가 배치되면 재래식 전력으로도 북한의 핵 공격을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1일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8초가량의 흐릿한 탄도미사일 발사 영상이 공개됐다. 그것이 현무-5였다. 군이 이 영상을 정식으로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추정 제원도 나오기 시작했다. 탄두 중량이 무려 8t이다. 한미 미사일 지침이 해제될 때까지 한국이 개발하는 미사일은 사거리 제한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한국은 폭발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탄두 중량을 늘리는 데 집중해 왔다. 그렇게 쌓은 노하우로 현무-5의 탄두 중량을 현무-4보다도 3배 이상 늘렸다. ▷재래식 무기의 폭발력 최대치는 10t 정도다. 탄두 중량 8t이면 세계 최대급이다. 전술핵무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수십 개를 동시에 터뜨리면 핵 배낭과 맞먹는 폭발력을 지닌다. 관통력에서는 재래식 무기가 우수하다. 핵폭탄으로는 지하 50m 정도밖에 뚫을 수 없지만 현무-5로는 지하 100m보다 더 깊은 갱도 속의 표적도 파괴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 김정은과 군 지휘부의 위치는 한미 정보자산에 의해 감시되고 있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즉각 현무-5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다만 현무-5를 현 시점에서 정식으로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현무-5는 한미 미사일 지침이 해제된 후 개발됐기 때문에 현무-4까지 사거리가 800km로 제한돼 있던 탄도미사일과는 달리 탄두 중량을 줄이면 3000km 이상까지 날릴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 사거리면 중거리탄도미사일이다. 중국과 일본으로서는 크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맞서 국민의 안보 불안을 잠재울 필요가 있지만 더 적절한 공개 시점을 찾아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불확실성의 시대’(1977년)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1927년 대폭락’(1955년)에서 주장한 이후 대공황의 원인으로 상식처럼 굳어진 견해가 투기 과열과 이로 인한 주식시장의 붕괴다. 그러나 밀턴 프리드먼은 1963년 안나 슈워츠와 함께 ‘미국 통화의 역사, 1867∼1960’이라는 책을 써서 대공황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서툰 긴축 통화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통화주의의 시작이다. ▷프리드먼의 90세 생일을 축하하는 학술 행사가 2002년 열렸다. 당시 연준 이사였던 벤 버냉키는 그 행사에 참석해 “당신이 쓴 책에 빠져 통화사를 공부했다”면서 “대공황과 관련해 당신이 옳았다. 우리(연준)가 죄송하다. 당신 덕분에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연설을 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08년 버냉키는 연준 의장으로서 대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가 찾아왔을 때 헬리콥터에서 뿌리듯 돈을 풀어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미국과 세계 경제를 구했다. 연준 의장은 대부분 경제학자 출신이지만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건 버냉키가 처음이다. ▷버냉키는 하버드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MIT는 폴 새뮤얼슨이 1940년대 하버드대에서 옮겨온 이후 케인스주의를 주도했다. 그러나 버냉키가 입학한 1970년대 중반에는 이미 케인스주의에 의문을 품은 시카고학파의 신고전주의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케인스주의에도 반(反)케인스주의에도 동의하지 않고 케인스주의와 신고전주의의 종합을 추구했다. ▷버냉키는 대공황 연구를 거시경제학의 성배(聖杯)로 여겼다. 지질학을 연구하려면 지진을 연구해야 하듯이 경제학을 이해하려면 대공황을 연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2000년 ‘대공황 연구’란 책을 통해 연준이 주식시장의 투기적 과열에 대한 경계심으로 성급히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바람에 대공황을 격화시켰다는 논거를 집대성했다. ▷그러나 버냉키의 ‘통화주의’는 프리드먼적이라기보다 케인스적이다. 그의 통화주의는 케인스식 재정 부양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재정 부양을 동반한 것이다. 돈을 풀었으면 제때 회수해야 하는데 경기가 다시 침체로 빠져들까 계속 우려하면서 회수를 주저한 태도도 프리드먼적이지 않다. 그가 제때 회수하지 못한 돈이 자산에 거품으로 끼어 있다가 코로나 유행 시 풀린 돈과 함께 인플레이션을 촉발했다는 비판이 있다. 2008년 이후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평가는 이번 인플레이션이 끝나봐야 객관적으로 내려질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프랑스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가 2008년 ‘Les Ann´ees’를 출간해 프랑스 국내 문학상을 휩쓸 때 파리특파원으로 있었다. 누군가가 이 책이 좋다고 권했고 그때 구입해서 갖고 있다가 2010년 귀국하면서 들고 왔다. 작가가 겪은 크고 작은 사건과 그 단상(斷想)을 무작위로, 다만 연대순으로 나열해 놓은 책이다. 쭉 읽을 필요도 없이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좋다. 국내에서는 올 5월 ‘세월’로 번역됐다. ▷프랑스인 친구가 올여름 책을 몇 권 보내줬는데 그중 하나가 에르노의 ‘사건’이다. 책 표지에 ‘최근 인기 있는’이라고 손수 써 놓았다. 이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져 2021년 베네치아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탔다. 그러나 작품 자체는 2000년 출간됐다. ‘최근 인기 있는’이라는 설명은 영화제에서 상을 탄 후 다시 널리 읽히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에르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에르노는 1940년생으로 프랑스의 신구(新舊) 문화가 충돌하던 1960년대에 20대를 보냈다. 젊은이들은 자유연애에 빠져들었고 그럼에도 낙태가 불법인 사회에서 덜컥 임신하게 된 20대 여학생이 낙태시술을 시도하면서 겪는 심리적 육체적 고통이 ‘사건’의 내용이다. 불법이기 때문에 정보가 차단되고 시술이 비밀리에 행해지기 때문에 원시적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겪는 어려움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낙태천국이라는 한국에서도 활자화되지 못한 얘기를 프랑스 작가의 글로 보는 기분이 묘했다. ▷에르노는 체험한 것만 쓴다는 작가다. 체험을 바탕으로 형상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체험한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쓰는 게 그의 특징이다. 그의 작품은 모두 17권이 번역돼 있는데 2001년 번역된 ‘단순한 열정’ 등 몇 권을 빼고는 대부분 최근 3년간 집중적으로 번역됐다. 자의식이 강한 프랑스 여성이 10대부터 40대까지 겪은, 1950∼1980년대의 오래전 성과 사랑의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읽히는 측면이 있다. ▷에르노는 일기의 형태로든 뭐로든 기록을 열심히 한 작가인 듯하다. 그런 기록의 나열을 아예 책으로 구성한 것이 ‘세월’이다. ‘세월’은 ‘모든 이미지는 사라질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사라져가는 이미지를 잡으려고 노력한 것이 기록이다. 역사책에 나오는 큰 사건만이 사건이 아니다. 시대의 크고 작은 사건과 그 단상이 모여 시대의 구체적 모습이 드러난다. 그런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역사와 다른 소설의 존재 가치라는 점에서 에르노의 글쓰기는 소설 본연의 의미를 새삼 묻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 물가상승률 5∼6%는 체감보다 훨씬 낮다. 서울 도심에서 1만 원 이하 점심을 먹기도 쉽지 않아졌지만 그나마 8000원짜리는 9000원으로 12.5%, 9000원짜리는 1만 원으로 11% 올랐다. 소주 값은 대부분 식당에서 병당 4000원에서 5000원으로 25% 올랐다. 국민 과자 값은 소매점 기준으로 새우깡이 1300원에서 1400원으로 7.6%, 꽃게랑이 1500원에서 1700원으로 13.3% 올랐다. 휘발유·경유 가격은 내가 사는 동네 기준으로 각각 L당 1600원대, 1700원대다. 여전히 둘 다 높은 수준이지만 한때 2000원을 상회하다가 떨어졌다. 무 등 채소 값도 기후 요인으로 높아졌지만 곧 다소 떨어질 것이다. 기름 값이나 채소 값은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러나 한번 오른 밥값, 술값, 과자 값은 좀처럼 다시 내리지 않는다. 이 밖에도 한번 오르면 좀처럼 내리지 않는 더 중요한 품목이 많다. 이런 근원 물가가 체감으로 10% 정도 올랐다. 연봉 5000만 원 월급쟁이 기준으로 약 500만 원의 소득이 영구히 감소한 것이다. 정부는 이달부터 적용하는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과 가정용 전기 요금을 가구당 평균 월 5400원, 2270원씩 올렸다. 각각 15.9%, 5.1% 인상이다. 전기요금 인상은 올 3번째로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18% 인상이다. 올 들어 급격한 해외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인상분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 때 올리지 않은 것까지 한꺼번에 올리는 건 악덕 기업주가 장마철에 하수구로 폐수를 쏟아내는 것처럼 고약한 짓이다. 설혹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전력공사의 적자가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정도가 돼 가스와 전기요금을 올린다면 정부가 먼저 선심성 공약을 거둬들여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병사 월급을 올해 82만 원에서 내년 130만 원으로 올린다. 또 내년부터 출산 첫해 월 70만 원씩, 1년간 840만 원을 부모급여로 지급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노인기초연금을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올리는 입법을 추진하는데 윤석열 대통령도 같은 공약을 한 바 있어 거부하기 어렵다. 이 세 가지에만 10조 원이 넘게 들어가며 한 해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매해 들어간다.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은 올해 82만 원만 해도 이미 다른 징병제 국가보다 많고 병사 월급이 커질수록 초급 간부와의 격차가 적어져 우수 간부 충원이 힘들어지는 자해(自害)성 공약이다. 정부는 출산 휴직자에게 법으로 정해진 월급 100%가 지급되도록 힘써야 하지만 출산 첫해 별도의 부모급여로 1200만 원을 주는 건 유례를 찾기 힘들고 비용 대비 효과도 의심스러운 공약이다. 국민연금과 연계되지 않은 노인기초연금 인상은 국민연금 가입 의지를 꺾는 대(大)재앙이 될 수 있다. 청와대 광화문 이전처럼 충분한 검토가 없었던 섣부른 공약에 돈을 퍼부으면서 적자를 핑계로 공공요금은 거리낌 없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관리하기는커녕 사실상 방치하는 물가로 인해 내년 각 기업에서 임금인상 요구는 거세질 것이다. 경제학 법칙에 따르면 결국 물가상승분은 시기적으로 지체되지만 임금인상분으로 보충되면서 물가의 뉴노멀이 형성된다. 그때 궁극적 피해자는 자산 없는 현금보유자, 주로 세입자다. 집 한 채 가진 사람에게는 집값은 오르나 내리나 큰 의미가 없다. 내 집이 오르면 다른 집도 오르고 내 집이 내리면 다른 집도 내린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집값이 정점에서 40%가량은 떨어져야 집값이 비정상적 상승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만큼 떨어질지도 의문이지만 집은 자산이므로 집값은 아무리 내려도 최소한 물가상승분을 반영한다. 그러나 물가가 10% 오르면 5억 원 전세를 사는 사람은 전세를 갱신할 때 수중에 고작 4억5000만 원을 쥐는 셈이 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벼락거지가 된 세입자는 그나마 가진 돈의 가치마저 잃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끝났을 때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물가를 억제하는 데 최우선을 두어야 하는데도 정부가 그러고 있는지 의문이다. 말로는 비상 경제시국 운운하면서도 대통령의 나쁜 공약을 지키는 데 매달리고, 말로는 물가 안정 운운하지만 물가와 임금이 다 높아진 나쁜 뉴노멀을 막아볼 생각도 없이 방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흑백 TV 시절인 1970년대 시청자를 열광시켰던 양자 대결 경기로 1977년 홍수환이 파나마에서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4전5기의 승리를 거둔 프로권투 경기와 더불어 1975년 김일과 안토니오 이노키가 장충체육관에서 벌인 프로레슬링 경기를 꼽을 수 있다. 아이들은 100% 진짜인줄 알고 열광했고 어른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열광했다. 이노키는 김일과 싸워 대부분 무승부에 1승 9패를 기록했다. 둘의 경기는 한국에서 열리면 이노키가 악역(惡役)을, 일본에서 열리면 김일이 악역을 맡는 식으로 정한다는 말도 있어 승패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프로레슬링은 실력이면서 연기이기도 하다. ▷일본 프로레슬링은 한국계인 리키도잔(力道山)에서 시작한다. 리키도잔에게는 3명의 수제자가 있었으니 자이언트 바바, 김일, 안토니오 이노키다. 셋 다 거구였지만 바바의 덩치가 가장 커 자이언트란 별명이 붙었고 그 다음이 이노키, 김일 순이다. 이노키는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중학생 때 부모를 따라 브라질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안토니오란 링네임을 얻었다. 리키도잔은 바바를 후계자로 택했다. 이노키는 실망하고 나중에 바바와 결별했다. 1976년 프로레슬링을 대표해서 프로권투의 최고봉이었던 무하마드 알리와 이종(異種) 대결을 벌였던 사람은 이노키다. 물론 알리는 서서 무릎 밑으로는 주먹을 휘두르지 못하고 이노키는 누워 있기만 해서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경기 중 하나가 되고 말았지만…. ▷턱의 이노키다. 강인해 보이는 턱을 하늘로 치켜들고 주먹을 번쩍 들어올려 ‘다아∼’라고 떠나갈 듯 소리치는 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말재주도 쇼맨십도 좋아서 정계로 진출해 두 차례 참의원에 당선되는 등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이노키는 북한에도 서른 번 이상 방문했다. 그가 북한과의 교류에 힘썼던 것은 리키도잔의 영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리키도잔은 한국계지만 함경도 출신으로 친북 성향이었다. 북한에서도 리키도잔의 명성이 높았고 이노키는 그 덕을 봤다. ▷김일은 리키도잔 밑에서 연습생으로 구박을 많이 받던 이노키를 선배로서 자상하게 대해줬다고 한다. 정치인 이노키는 기본적으로 우익이지만 김일과의 관계를 의식해서인지 한일(韓日) 역사 문제에는 신중한 편이었다. 김일이 말년에 앓아누운 이후로는 거의 매해 한 번씩 방한해 김일을 병문안했는데 2000년 방한했을 때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나눔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일에서 프로레슬링의 열기는 식고 김일은 2006년, 이노키는 1일 세상을 떠났지만 두 사람이 남긴 경쟁과 우정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영국 파운드화는 미국 달러,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유로, 일본 엔화에 이어 4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통화다. 그러나 영국은 경제력으로는 독일보다도 작아 유로존 전체에 큰 격차로 뒤떨어지고, 일본처럼 세계 최대 순채권국도 되지 못해 파운드화는 달러 가치 변동에 유로나 엔화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1파운드는 1940년만 해도 4.03달러에 고정돼 있었다. 1949년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30% 절하돼 2.8달러에 거래됐다. 1960년대 파운드화는 절하 압력을 받아 2.4달러까지 내려갔다. 가장 큰 위기는 1976년에 일어났다. 노동당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로 적자가 커졌다. 금융시장은 파운드화가 과대평가돼 있다고 봤다. 노동당 정부는 파운드화 가치의 자유 낙하를 허용하든가 아니면 긴축을 약속하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고 결국 후자를 택했다. ▷파운드화는 1985년 1.03달러까지 떨어져 바닥을 쳤다가 보수당 마거릿 대처 총리의 통화주의 정책이 뒤늦게 효과를 보면서 1989년에 1.7달러까지 올랐다. 대처는 1990년 파운드화의 안정을 위해 유럽환율메커니즘(ERM)에 가입했다. 그것은 1파운드를 2.95마르크 주변에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영국 정부가 보유 외환을 풀어 인위적으로 환율을 유지하는 걸 눈치 챈 투기세력의 공세로 환율이 치솟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그것이 1992년 9월 16일 ‘검은 수요일’이다. 영국은 ERM에서 탈퇴했다. ▷파운드의 가치가 26일 1.03달러로 폭락했다. 역사상 최저치인 37년 전 1985년과 같은 기록이다. 연초만 해도 1.35달러였으나 연말쯤에는 가치가 더 떨어져 1파운드=1달러 시대가 오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파운드화 폭락은 보수당 리즈 트러스 정부의 대규모 감세안 때문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감세안을 내놓았지만 금융시장은 1970년대 노동당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정책과 마찬가지로 재정 악화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파운드화를 내다 팔았다. ▷영국이 다시 IMF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국채금리가 유로존의 병자(病者) 국가인 이탈리아나 그리스보다 높아졌다. 국가부도 위험이 그만큼 더 높아졌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 때의 늘어난 재정을 유지하고 거기에 더해 감세 정책까지 펴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무역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외인(外人)들이 원화를 팔아치우는 공세가 시작되면 그것이 퍼펙트 스톰이다. 한국 같은 나라가 대비하는 길은 국가부채를 평소 낮게 유지하고 외환보유액을 쌓을 수 있는 만큼 많이 쌓는 것밖에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러시아는 18∼27세 남성들을 대상으로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복무 기간은 1년에 불과하다. 직업 군인은 대우가 좋지 않은 데다 최상층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 기업가나 정보 관계자가 장악하고 있어 우수 인력이 드물다. 중요한 것은 사기인데 군인들은 푸틴의 독단에 의해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하르키우 지역을 빼앗기는 등 러시아 쪽 전세가 불리해지자 푸틴은 21일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예비군 동원령을 내렸다. 공산주의 시절이나 지금이나 양적 우위와 인해전술로 적을 압도한다는 사고는 변함이 없다. ▷러시아의 예비군은 약 2500만 명에 이른다. 현재 동원이 예정된 예비군은 30만 명이지만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전쟁에서 개죽음을 당하느니 팔이 부러지는 게 낫다고 여겼던지 인터넷에서는 ‘팔 부러뜨리는 방법’ 등의 검색 건수가 늘었다. 징집을 피하려고 인접국으로 향하는 직항 항공편이 동나고 곳곳에서 반전시위가 벌어졌다. ▷푸틴의 논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동안 전쟁이 아니라 특수군사작전이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의 신나치 조직에 위협받는 러시아계 주민의 요청에 따라 그들을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명분에 맞지 않게 부대의 정체를 숨기는 Z라는 기장을 사용했다. 이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후 각 지역에 세운 친러시아 공화국들이 합병을 청원하고 러시아는 그 청원을 받아들일 태세다. 합병이 이뤄지면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는 게 되고 특수군사작전은 전쟁이 된다. 예비군 동원령을 내린 해괴한 논리다. ▷어린 시절 푸틴은 다른 아이들보다 체구가 작았다. 그러나 누군가 자신을 깔보거나 무시하면 달려들어 격렬하게 싸웠고, 물어뜯든 할퀴든 어떤 비열한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이기려 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코너에 몰린 쥐 꼴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 몰락이 확실하다. 스스로 발을 빼는 걸 기대하기 어렵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철수는 소련의 해체로 이어졌다. 당시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은 전쟁 패배의 인정이 소련의 해체로 이어질지 예상 못 했다. 푸틴은 독일 드레스덴에 파견된 KGB 요원으로 그 과정을 지켜봤다. 그래서 걱정이다. 그러나 소련 해체로 몰락한 것은 러시아나 동유럽 국가 자체가 아니라 그 속의 공산 독재 세력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진다고 해도 러시아가 몰락하는 건 아니다. 푸틴의 무모한 전쟁을 막을 수 있느냐는 국제사회의 더 일치된 노력과 러시아 국민의 반전 의지에 달려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가을밤 서울 삼청동 화랑가에 하루는 전례 없는 활기가 돌았다. 2일 갤러리들이 야간 개장을 했다. 국제갤러리에서는 파티까지 열렸다. 와인과 안주가 무료로 나왔다. 와인을 들고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갤러리 안팎을 오가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젊은이들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도 했다. 갤러리현대에서는 야외 파티 준비하는 것까지 보고 왔는데 거기서도 파티가 열린 SNS 사진을 나중에 봤다. 전날에는 한남동 갤러리들이 한남나이트를 열었고 이날은 삼청나이트였다. 오래전 이탈리아 밀라노의 디자인 전시회 취재가 떠올랐다. 전시회에 맞춰 곳곳에서 밤 파티가 열렸다. 그때 간 한 파티에 소녀 모양의 와인따개로 유명한 알레시사(社)의 디자이너 필리프 스타르크가 왔다. 동반한 부인의 미니스커트가 너무 짧아 스타르크가 치마 뒤를 손바닥으로 계속 가리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세계 각지에서 온 디자인 관계자들은 셀럽 디자이너와 함께한 파티에서 세련된 디자인에 어울리는 멋진 문화까지 체험할 수 있었다. 전시회를 잘 가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본 전시라고는 어느 로펌 대표가 보고 나서 추천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의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가 고작이다. 월북한 모더니스트 최재덕의 매력적인 그림을 거기서 처음 봤다. 그런데 오랜만에 나무갤러리에서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난달 31일 ‘신홍규 컬렉션’ 전시 프리뷰가 있어 초대한다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간다고 해놓았으나 몸이 좋지 않아 망설이다가 인사나 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관객이 북적거렸고 외국인도 적지 않았다. 잠깐 머물렀을 뿐인데도 최정화 등 정상급 미술 작가들이 왔다 가는 게 눈에 띄었다. 갤러리 쪽 말로는 국제아트페어 프리즈(Frieze)에 맞춰 외국 미술 관계자들이 대거 한국을 방문했고 그에 맞춰 국내 미술계도 활기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프리즈는 스위스 아트바젤, 프랑스 피아크(Fiac)와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다. 프리즈는 그림을 파는 장(場)이다. 일반인보다는 구매력 있는 VIP를 노골적으로 특별 대우한다. 프리즈가 들어와 국내 고객의 돈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국내 고객도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살 권리가 있다. 또 한국에서 아트페어를 연다고 국내 고객만 오는 건 아니다. 중국 일본 등 인근 국가의 고객도 찾아온다. 더 중요한 건 프리즈에 작품을 내놓은 세계 갤러리 관계자들이 1주일가량 머물다 간다는 사실이다. 삼청나이트에 갔다가 학고재에서 강요배 전시를 봤다. 정선의 ‘금강전도’를 연상시키는 ‘중향성(衆香城)’을 사진으로는 봤지만 실제로는 처음 봤다. 계속 보고 있고 싶었다. 그런 그림이면 사고 싶어지고 그래서 아트페어가 있는 모양이다. 외국의 미술 관계자들이 얼마나 많이 이런 그림들을 보고 갔는지 또 그림들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알지 못하겠으나 그들이 직접 보는 기회를 갖게 해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나무 갤러리에는 가을밤에 잘 어울리는 테라스 식당이 있다. 그곳을 삼청나이트의 밤 크리스티 경매 관계자들이 통째로 예약해 식사를 했다. 그들도 삼청동 이곳저곳의 갤러리를 둘러봤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프리즈 효과’라고 부르고 싶다. 아시아에는 그동안 홍콩이 파인 아트(fine art)의 허브였다. 중국의 미술 작품이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리즈는 홍콩 대신 서울을 택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아트페어를 열었다. 중국의 강압정치로 홍콩의 매력은 떨어지는 데 반해 K영화 K팝 K드라마에 힘입어 한국의 매력은 올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고급문화의 영역에서도 클래식 음악에서 이미 세계적 수준을 보여줬다. 이제 남은 건 파인 아트다. 프리즈는 일단 5년간 서울에서 아트페어를 연다. 이 기회를 얼마나 잘 활용할지는 국내 미술계의 능력에 달렸다. 미술계는 이번에 ‘아트 파인더’라는 안내센터까지 운영하며 노력했다. 안내센터에 놓인 이헌정의 의자 작품도 멋졌다. 삼청동에 한 달이 멀다 하고 새 카페가 들어서고 있다. 중요한 것은 멋진 거리를 채울 소프트웨어다. 삼청동의 소프트웨어는 미술이다. 전통과 현대가 어울린 삼청동은 아시아의 소호가 될 충분한 자격이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금리 인하는 정부 기업 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가 환영하는 바다. 금리 인하 시기에 금융통화위원은 ‘누워서 떡 먹기’ 같은 결정을 하면서 3억 원이 훨씬 넘는 연봉에 법인카드, 차량 지원까지 포함해 5억 원에 가까운 실질 보수를 받는다. 나중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해도 책임지지 않는다. 금통위원이 받는 돈만큼 제 역할을 하는 때가 금리 인상기다. 아무도 금리 인상을 원하지 않는다. 기업과 가계는 이자 부담이 늘어 괴롭다. 정부는 경기가 나빠져 지지율이 떨어지니 괴롭다. 금통위로서는 금리 인상을 잘못했다가는 경기 침체를 초래했다는 독박을 쓰게 된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임기는 긴 금리 인하의 시기였다. 금통위는 박근혜 정부 시절 내내 금리를 내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금리를 0.25%포인트씩 두 번 찔끔 인상했다가 2019년 7월부터 도로 내리기 시작했다. 2020년 2월부터는 코로나가 돌아 금리를 더 내렸다. 2021년 8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금통위는 당연직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포함해 7명으로 구성된다. 비당연직 5명은 추천과 임명 과정이 그다지 독립적이지 못해 대부분 정부 기조에 순응하는 비둘기파로 구성된다. 두 정부에 걸친 저금리 기조는 비둘기파인 비당연직 위원들이 앞장서고 통상 매파 편에 서는 한은 쪽 인사들이 지도력을 발휘하기는커녕 마지못한 척하며 따라간 결과다. 다만 문재인 정부 때 집값이 너무 오르면서 정부마저 저금리를 원하지 않자 정부 기조에 맞춰 비둘기파에서 매파로 돌아선 위원들이 있었다. 2021년 8월 금리 인상은 그렇게 시작됐다.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집값이 오를 대로 오른 2020년 7월에도 “통화정책과 부동산가격 가계부채 간 관계에 대한 보다 종합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는 위원이 있었다. 코로나가 영향을 미치기 전인 2019년 7월에는 “가계부채의 증가와 함께 가계의 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율이 사상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으나 대출 금리가 추세적으로 하락함에 따라 소득 대비 이자 부담 비율은 오히려 과거보다 낮다”는 한가하다 못해 한심한 소리를 하는 위원이 있었다. 일부 위원은 “최근 수년간 물가상승률이 낮아지고 있다. 저물가 현상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며 세계 경제가 돈을 풀어도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뉴노멀로 향하고 있다는 듯이 말하기도 했다. 금융은 압력과 부피에 관한 ‘보일의 법칙’처럼 정확해서 뉴노멀이 없다. 뉴노멀은 대개 월가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다. 앨런 그린스펀은 월가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을 잘게 쪼개 팔아 눈에 보이지 않게 분산시킨 것을 골디락스라고 여겼다가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벤 버냉키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헬리콥터에서 뿌리듯이 돈을 풀고도 모자라 양적 완화까지 하며 ‘인플레이션 없는 저금리의 지속’이 가능한 듯 대처하다가 그도 후임자들도 돈을 제때 거둬들이지 못하는 사태를 맞았다. 그린스펀도 버냉키도 무슨 매직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가 상대한 1980년 전후의 인플레이션은 일견 석유 파동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민주당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 공약에 따른 퍼주기와 공화당 리처드 닉슨이 ‘사회정책만은 (표를 얻기 위해) 진보적으로’ 한 결과인 더 많은 퍼주기에 의해 누적된 통화량이 석유 파동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는 점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황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경제학자들이 눈앞의 몇몇 지표에만 매달려 일반인에게도 뻔히 느껴지는 돈의 큰 흐름을 놓치곤 한다. 2008년 금융위기가 오기 전 한은의 기준금리는 5%를 넘었다. 지금 기준금리가 올랐다고 해도 고작 2.25%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수억 원씩 돈 빌리는 걸 만만하게 여겼던가. 돈이 풀린 상태를 뉴노멀로 고착시켜 이익을 지키려는 세력이 경기 침체로 겁주면서 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이번 인플레이션은 볼커 때처럼 경기 침체를 감수하지 않으면 못 잡을 수도 있다. 당장의 경기 침체보다 걱정해야 할 것은 비정상적 저금리가 심연을 파놓은 사회적 간극의 고착화다. 빅스텝은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하는 것임을 금통위는 명심하라.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