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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에 등장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까치·호랑이의 그림을 소개하는 전시가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2일 개막했다. 이 가운데 1592년 제작된 ‘호작도’(사진)는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리움미술관은 M1 2층에서 열리는 상설기획전 ‘까치호랑이 호작(虎鵲)’에서 호랑이와 까치를 주제로 한 전통 회화와 민화 7점을 선보인다. 1592년 호작도는 그림 오른쪽 윗부분에 ‘임진년에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지금까지 알려진 까치·호랑이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민화가 아닌 정통 회화 형식으로 그려져, 중국 원나라에서 시작한 호작도 형식이 한국적으로 변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호작도는 19세기 들어 민화로 그려지며 크게 유행했다. 이번 전시에는 단순하고 해학적인 화풍을 지녀 ‘피카소 호랑이’란 별명이 붙은 19세기 호작도도 전시된다. 이 그림의 호랑이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의 모티프가 됐으며, 까치·호랑이 민화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밖에도 1874년 신재현이 그린 ‘호작도’, 호피 무늬 장막을 그린 ‘호피장막도’, 단원 김홍도가 그린 ‘송하맹호도’ 등도 만날 수 있다. 조지윤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430여 년 전 호랑이가 오늘날 K컬처의 아이콘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11월 3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폭스뉴스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포스트 등 보수 성향 매체들을 보유한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94) 가문이 수십 년에 걸친 상속 분쟁을 합의로 마무리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 시간) “머독 가문은 루퍼트 머독의 후계자인 장남 래클런이 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갖는 대가로 다른 형제들에게 33억 달러(약 4조5751억 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며 “이번 합의로 머독 가문이 소유한 매체들이 보수적 성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래클런을 제외한 다른 세 자녀인 프루, 리즈, 제임스는 기존에 보유했던 가족 신탁 지분을 포기하는 대신에 각각 11억 달러를 받기로 했다. 루퍼트 머독은 미디어 기업 지분을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인 장남에게 몰아주려고 상속 계획 변경을 시도하다가, 다른 자녀들의 반발에 부딪혀 오랫동안 소송을 벌여 왔다. 래클런은 이번 합의를 통해 머독그룹에 대한 경영권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게 됐다. 기존의 가족 신탁은 2030년까지 유효해 루퍼트 머독이 그 전에 사망할 경우,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인 나머지 자녀들이 래클런의 지배권을 흔들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향후 가족 신탁은 이번 합의를 반영해 새로운 신탁으로 바뀌게 된다. 머독 가문이 소유한 언론 기업은 크게 폭스 코퍼레이션과 뉴스코프로 나뉜다. 폭스 코퍼레이션 산하에는 폭스 뉴스 미디어, 폭스 엔터테인먼트, 폭스 스포츠 등이 있다. 뉴스코프는 WSJ와 다우존스 간행물, 뉴욕포스트, 출판사 하퍼콜린스와 함께 영국 더타임스·선데이타임스·더선, 호주 오스트레일리안 등을 보유하고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넷플릭스 시리즈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에 등장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까치·호랑이의 그림을 소개하는 전시가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2일 개막했다. 이 가운데 1592년 제작된 ‘호작도’는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다.리움미술관은 M1 2층에서 열리는 상설기획전 ‘까치호랑이 호작(虎鵲)’에서 호랑이와 까치를 주제로 한 전통 회화와 민화 7점을 선보인다.1592년 호작도는 그림 오른쪽 윗부분에 ‘임진년에 그렸다’는 기록에 남아 있어 지금까지 알려진 까치·호랑이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민화가 아닌 정통 회화 형식으로 그려져, 중국 원나라에서 시작한 호작도 형식이 한국적으로 변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호작도는 19세기 들어 민화로 그려지며 크게 유행했다. 이번 전시에는 단순하고 해학적인 화풍을 지녀 ‘피카소 호랑이’란 별명이 붙은 19세기 호작도도 전시된다. 이 그림의 호랑이는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의 모티프가 됐으며, 까치·호랑이 민화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이밖에도 1874년 신재현이 그린 ‘호작도’, 호피무늬 장막을 그린 ‘호피장막도’, 단원 김홍도가 그린 ‘송하맹호도’ 등도 만날 수 있다. 조지윤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430년 전 호랑이가 오늘날 K컬처의 아이콘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11월 3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왜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죠? 이건 곧 허락한다는 의미 아닌가요. 멈추라고 왜 크게 말하지 않았나요?” 유능한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던 테사. 그는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법정에서 이렇게 묻곤 했다. 노동자 계층 출신으로 정상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달렸던 그에게 재판은 이겨야 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성폭행 가해자를 변호할 때도 거침없었다. 피해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든 피해자에게도 테사는 가혹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테사는 동료 변호사에게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성폭행을 당한다. 하루아침에 피해자가 된 그는 변호사로서 피해자들에게 했던 질문을 자기가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법을 잘 알기에 자신의 피해를 법정에서 입증하기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테사는 진실을 밝히겠다는 일념으로 782일간의 외로운 법정 싸움을 이어간다.2019년 호주에서 초연한 뒤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여성 1인극 ‘프리마 파시’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국내 초연을 펼치고 있다. 인권 변호사 출신 극작가인 수지 밀러가 쓴 이 작품은 신유청이 연출을 맡았고 이자람, 김신록, 차지연이 무대에 오른다. 무대 위엔 나무 책상과 의자, 조명 등 소도구만이 놓여 있다. 이 소품을 옮기며 배우가 10여 명의 인물을 홀로 연기하면서 러닝타임 120분을 이끌어 간다. 세 배우의 개성에 맞춰 동선이나 소품이 조금씩 다르게 연출된다. 신 연출은 “테사의 중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각 배우가 가장 잘 연기할 수 있는 상황에 맞췄다”고 설명했다. “김신록은 날카롭지만 의외의 면모가 있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우입니다. 이자람은 포근하지만 한없이 따뜻하기보다 역할과 적정한 거리를 두고 해설자처럼 관객을 이끌어 감정을 느끼도록 돕는 측면이 있죠. 차지연은 부상으로 아직 무대에 못 올랐지만 두 배우의 중간 지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신 연출은 ‘프리마 파시’의 매력으로 “지금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반영했다”는 점을 꼽았다. “일반적인 공연은 현실에서 보기 힘든 ‘판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작품은 공연의 옷을 입은 현실이란 점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는데 주변에선 공감이나 이해를 해주지 못하는 일이 빈번히 반복되고 있죠. ‘무언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테사의 말에 관객의 마음이 움직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극을 준비했습니다.” 11월 2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왜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죠? 이건 곧 허락한다는 의미 아닌가요. 멈추라고 왜 크게 말하지 않았나요?”유능한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던 테사. 그는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법정에서 이렇게 묻곤 했다. 노동자 계층 출신으로 정상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달렸던 그에게 재판은 이겨야 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성폭행 가해자를 변호할 때도 거침이 없었다. 피해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 피해자에게도 테사는 가혹한 질문을 던진다.그러던 어느 날, 테사는 동료 변호사에게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성폭행을 당한다. 하루아침에 피해자가 된 그는 변호사로서 피해자들에게 했던 질문을 자기가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법을 잘 알기에 자신의 피해를 법정에서 입증하기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테사는 진실을 밝히겠단 일념으로 782일간의 외로운 법정 싸움을 이어간다.2019년 호주에서 초연한 뒤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여성 1인극 ‘프리마 파시’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국내 초연을 펼치고 있다. 인권 변호사 출신 극작가인 수지 밀러가 쓴 이 작품은 신유청이 연출을 맡았고 이자람, 김신록, 차지연이 무대에 오른다.무대 위엔 나무 책상과 의자, 조명 등 소도구만이 놓여 있다. 이 소품을 옮기며 배우가 10여 명의 인물을 홀로 연기하며 러닝타임 120분을 이끌어 간다. 세 배우의 개성에 맞춰 동선이나 소품이 조금씩 다르게 연출된다. 신 연출은 “테사의 중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각 배우가 가장 잘 연기할 수 있는 상황에 맞췄다”고 설명했다.“김신록은 날카롭지만 의외의 면모가 있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우입니다. 이자람은 포근하지만 한없이 따뜻하기보다 역할과 적정한 거리를 두고 해설자처럼 관객을 이끌어 감정을 느끼도록 돕는 측면이 있죠. 차지연은 부상으로 아직 무대에 못 올랐지만 두 배우의 중간 지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신 연출은 ‘프리마 파시’의 매력으로 “지금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반영했다”는 점을 꼽았다.“일반적인 공연은 현실에서 보기 힘든 ‘판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작품은 공연의 옷을 입은 현실이란 점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는데 주변에선 공감이나 이해를 해주지 못하는 일이 빈번히 반복되고 있죠. ‘무언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테사의 말에 관객의 마음이 움직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극을 준비했습니다.” 11월 2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22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당시 ‘특별 군사 작전’이라는 용어를 썼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전쟁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을 막으려는 러시아의 침략적 의도가 다분했다.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테러 용의자들에게 ‘고강도 심문 기법’을 이용했다는 발표를 한다. 이 역시 거창해 보이지만, 비밀 감금 시설에서 가혹한 물리적 심리적 심문 즉 ‘고문’을 했단 뜻이다. 이 책은 이처럼 언어가 얼마나 교묘하게 진실을 왜곡하고 현실을 숨길 수 있는지를 다룬다. 제목 ‘더블스피크(doublespeak)’는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묘사한 ‘신어(newspeak)’와 ‘이중사고(doublethink)’를 결합해 나온 용어다. 실제 의미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하거나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감추거나 왜곡하는 언어 표현을 일컫는다. 책에 따르면 더블스피크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불쾌하거나 부정적인 사실을 부드럽고 긍정적으로 표현해 직접 언급을 피하는 ‘완곡어법’, 특정 집단이나 기관에서 사용하는 어려운 용어로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게 해 실상을 숨기는 ‘전문용어’, 정부 문서에서 흔히 쓰는 과도하게 장황하고 모호한 문장인 ‘관료적 언어’, 실제보다 더 웅장하거나 중요하게 보이도록 표현해 실체를 왜곡하는 ‘과장된 표현’ 등이다. 이러한 더블스피크는 정치판이나 관가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책은 기업 운영이나 광고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분야에서도 맞닥뜨릴 수 있는 더블스피크의 사례를 충실히 보여준다. 이를테면 월스트리트에선 주식시장이 절대 ‘무너졌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기술적 조정’, ‘후퇴’, ‘완화’ 등을 자주 쓴다. 또 치약 광고는 ‘충치를 예방해 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해 책임을 회피한다. 저자는 이런 더블스피크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대중의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위험한 무기임을 여실히 경고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최지목 작가의 개인전 ‘백 개의 태양’이 지난달 20일부터 서울 용산구 갤러리바톤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최 작가가 수년 전부터 몰입해 온 ‘잔상’ 연작 중 신작 18점을 공개했다. 연작 제목인 ‘잔상’은 태양을 바라보고 눈을 감았을 때 남는 잔상을 표현한다고 한다. 형광 물질이 흐르거나 폭죽이 터지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세포의 모습을 촬영한 것 같은 모습들이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이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림을 실제로 보면 도색을 마친 벽면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작품은 물감에 작은 돌멩이나 반짝이 같은 것을 섞어 스프레이로 뿌리면서 겹겹이 쌓아 올려서 그려졌다. 이 덕분에 빛이 그림 깊은 곳에서 스며 나오는 것 같은 효과가 연출된다. 여기에 형광색을 사용해서 눈부신 빛의 느낌을 살렸다. 최 작가는 “이전에는 캔버스 위에 색 조명을 비춰서 빛나는 느낌을 표현하려 했는데, 이번 전시는 백색의 갤러리 공간에서 열려 조명을 쓰지 않고 완전히 캔버스와 물감만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해당 연작을 “인간의 눈이 빛을 통해 색을 보는 ‘광학적인 현상’을 순수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6일에는 갤러리에 조명등을 설치하고 관객이 빛의 변화에 따라 눈에 비치는 잔상을 경험해 보도록 하는 퍼포먼스 ‘당신의 망막은 나의 캔버스’도 개최한다. 최 작가는 “조명을 붓처럼 사용하면서 관객들의 눈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라고 설명했다. 이달 2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최지목 작가의 개인전 ‘백 개의 태양’이 지난달 20일부터 서울 용산구 갤러리바톤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최 작가가 수년 전부터 몰입해 온 ‘잔상’ 연작 중 신작 18점을 공개했다. 연작 제목인 ‘잔상’은 태양을 바라보고 눈을 감았을 때 남는 잔상을 표현한다고 한다. 형광 물질이 흐르거나 폭죽이 터지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세포의 모습을 촬영한 것 같은 모습들이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이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림을 실제로 보면 도색을 마친 벽면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작품은 물감에 작은 돌멩이나 반짝이 같은 것을 섞어 스프레이로 뿌리면서 겹겹이 쌓아 올려서 그려졌다. 이 덕분에 빛이 그림 깊은 곳에서 스며 나오는 것 같은 효과가 연출된다. 여기에 형광색을 사용해서 눈부신 빛의 느낌을 살렸다. 최 작가는 “이전에는 캔버스 위에 색 조명을 비춰서 빛나는 느낌을 표현하려 했는데, 이번 전시는 백색의 갤러리 공간에서 열려 조명을 쓰지 않고 완전히 캔버스와 물감만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작가는 해당 연작을 “인간의 눈이 빛을 통해 색을 보는 ‘광학적인 현상’을 순수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6일에는 갤러리에 조명등을 설치하고 관객이 빛의 변화에 따라 눈에 비치는 잔상을 경험해 보도록 하는 퍼포먼스 ‘당신의 망막은 나의 캔버스’도 개최한다. 최 작가는 “조명을 붓처럼 사용하면서 관객들의 눈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라고 설명했다. 이달 2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책장에서 조용히 꺼내 보는 필사본은 아주 내밀한 예술품이에요. 수백 년 전 장인이 만든 책을 만져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 필사본만의 매력입니다.”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고미술품을 다루는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 꾸준히 중세 유럽 책을 가져와 눈길을 끄는 갤러리가 있다. 30년 전 프랑스 파리에 설립돼 미국 뉴욕에 지점을 둔 ‘레장뤼미뉘르’다. 이 갤러리를 이끄는 샌드라 하인드먼 대표(81)를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북촌의 한옥에서 만났다. 하인드먼 대표는 50대에 갤러리를 열기 전까진 대학에서 중세 미술사와 필사본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는 “중세 필사본 분야는 매우 특수해 고미술 상인이 도움을 요청할 때가 많았다”며 “필사본을 감정하고, 고객 연결을 도와주며 갤러리 운영의 꿈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가 올해 프리즈 마스터스에 가져온 건 14세기 필사본 ‘장미 이야기(Le Roman de la Rose)’와 중세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기도서 ‘시간의 서’ 등이다. 그는 “장미 이야기는 중세의 사랑과 모험을 담은 것으로 1350년경 기욤 드 로리스와 장 드 묑이 제작했다”며 “총 19권 중 18권은 공공기관이 소장하고 있고, 외부로 나온 유일한 한 권”이라고 설명했다. 청금석과 공작석, 송아지 가죽을 다듬은 피지로 만든 이 책은 중세 왕족이나 귀족이 주문 제작했다. 하인드먼 대표는 중세 필사본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3명의 딜러 가운데 한 명이다. 미술품도 수집한다.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예술가 도라 마르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하인드먼 대표는 “여성으로 일하며 자연스레 중세는 물론이고 모든 시대 여성 미술가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며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며 한국 작가 노은님(1946∼2022)의 작품도 소장하게 됐다”고 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미술사학과 명예교수이기도 한 하인드먼 대표는 2023년 서울대에서 ‘중세 필사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하는 등 세계에서 이 분야를 알리려 노력한다. 그는 “중세 필사본은 틈새시장이지만 미국, 유럽은 물론이고 중동의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와 일본까지 세계 곳곳에 열정적인 컬렉터들이 있다”며 “파리엔 ‘시간의 서’ 수십 권을 수집하고 매일 밤 한 권씩 꺼내 감상한다는 소장가도 있다”고 소개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난해보다 덜 붐비고 작품도 더 차분해졌다.” 3년째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고 있는 한 해외 갤러리스트의 평이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 서울’이 3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동시 개막했다. 이 갤러리스트는 “글로벌 경제 불황의 여파가 느껴진다”며 “초기엔 개념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 많았는데, 올해는 확실히 팔릴 만한 작품이 많다는 인상”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올해 4회 차를 맞은 프리즈 서울은 28개국에서 120개 갤러리가 참가했는데, 유럽이나 영미권 갤러리 참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줄어들었다. 첫해 프리즈 서울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서구 젊은 작가들의 도전적인 작품이나 에곤 실레 같은 미술사 거장의 작품으로 눈길을 끈 바 있다. 특히 올해는 한국에서 공간을 운영하는 갤러리들의 참가 비중이 35%에 이르렀다.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디렉터는 이에 대해 “아시아의 위상이 높아졌고 한국 갤러리의 성장이 영향을 미쳤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판매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운송료 등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글로벌 갤러리가 아닌 서구권 갤러리는 상당수 참가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빈자리를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아시아 갤러리가 채웠다. 이런 가운데 자본을 앞세운 글로벌 갤러리들이 미술관과 협업해 작가를 홍보하고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판매하는 전략을 쓰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호암미술관과 리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루이즈 부르주아, 이불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마크 브래드퍼드,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아모아코 보아포 작품을 페어장에서 볼 수 있었다. 그간 한국과 인연이 많지 않던 동남아시아 갤러리들의 적극적인 진출도 인상적이다. 태국 방콕이 거점인 SAC 갤러리는 현지 작가 쁘라빳 지와랑산의 개인전으로 부스를 구성했다. 지와랑산 작가는 버려진 사진을 콜라주한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한국 관객을 위해 한국인의 사진을 활용한 작품도 출품했다. 그는 “서울의 구제 시장에서 구한 사진들을 조합해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갤러리들은 프리즈 서울을 당장 작품 판매가 이뤄지지 않아도 미술관 관계자나 큐레이터를 페어장에서 만나 작가를 소개하는 기회로 여긴다. SAC 갤러리의 프로그램 디렉터 대니시 섹산은 “프리즈 서울이 개최되면 한국은 물론 여러 아시아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서울에 모여든다”며 “그들이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 전시 기획으로도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키아프 서울은 지난해 206개 갤러리가 참여했으나, 올해는 175개 갤러리로 규모를 줄였다.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은 “참가 갤러리를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했다”며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타개할지에 대한 고민 끝에 외형보다 내실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프리즈 서울은 코엑스 3층 C, D홀에서 6일까지, 키아프 서울은 코엑스 1층 A, B홀과 그랜드볼룸에서 7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뉴욕에 살고 있던 예술가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가 93세이던 2004년. 그의 집 한구석에서 낱장의 종이 꾸러미가 가득한 상자가 발견됩니다. 그 속에는 부르주아가 정신분석을 받으며 적었던 메모가 가득했죠. 약 50년 전,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을 때의 기록입니다. 호암미술관에서 지난달 30일 개막한 25년 만의 부르주아 대규모 회고전 ‘덧없고 영원한’ 전시장에 가면 벽면에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고정된 메모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메모는 바로 상자 속에 들어 있던 종이의 일부입니다. 이 기록을 연구하고 책으로 출간했으며, 지금은 미국 뉴욕 이스턴재단의 큐레이터로 세계에 부르주아의 작품 세계를 알리는 필립 라랏스미스와 지난달 29일 만났습니다. ―부르주아의 메모는 어떻게 발견됐습니까.“제리 고로보이(부르주아의 조수)가 높은 곳에 있던 상자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2004년 커다란 상자가 먼저 발견되고, 2010년엔 두 번째 상자가 발견됐죠. 루이즈는 버림받는 것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어린 시절 사진부터 옷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았어요. 이 기록도 그중 하나입니다.” ―부르주아는 이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줄 몰랐다고요.“맞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가 과거에 집착한 예술가라는 인상을 갖고 있는데, 제가 본 부르주아는 늘 ‘지금’을 사는 사람이었어요. 기억을 재료로 작업해도, 그는 작품을 만들고 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갔죠. 예술가들은 자기 문제를 작업으로 풀어내고 나면 일종의 해소를 겪어요. 제가 이걸 아는 이유가 있어요. 2005년에 전시 준비를 하며 루이즈에게 35년 전 만든 조각을 보여줬는데, 자기 작품인지 기억을 못 하고 ‘이거 좋네’라고 했거든요.” ―당신은 어떻게 부르주아와 일하게 됐나요.“처음에는 제리의 부탁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저는 하버드대에서 그리스 라틴 문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부르주아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술을 잘 모르고, 문학을 한다는 걸 부르주아는 더 좋아했어요. 그는 예술가보다 문학가가 뛰어나다고 생각했거든요.” ―부르주아의 첫인상은 어땠습니까.“2001년 부르주아를 만났을 땐 연약하지만 매혹적이고 지적 호기심이 강렬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22세였던 저는 그때 독일 베를린으로 갈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결국 지금까지 그의 예술 세계와 함께하고 있네요. 그가 세상을 떠난 2010년까지는 기록을 정리하고 연구했습니다.” ―그 연구를 바탕으로 책 ‘억압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pressed’·2012년)를 냈군요.“저와 제리는 부르주아의 메모가 문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사생활에 관한 내용도 있으니 허락이 필요했죠. 당시 90대였던 부르주아는 작품에서 이미 모든 걸 고백했고, 더 이상 숨길 게 없으니 책을 내도 좋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비밀 없는 여자가 되고 싶다’고요.” ―물론 이 책은 부르주아의 비밀을 밝히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이 기록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문학적 가치는 물론이고 정신분석학, 페미니즘 연구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반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나, 16세기 조각가 첼리니의 자서전과 달리 이 글은 정신 분석 상담을 위해 쓴 글이거든요. 그래서 작가의 마음 상태를 순수하게 반영하고, 부르주아가 초기 작품에서 변화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죠. 또 부르주아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예술가가 됐다는 단순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신화를 바로잡아 준다는 것도 중요합니다.”―부르주아 예술이 주는 감동은 우리가 흔히 외면하는 인생의 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데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그의 글엔 부모님에 대한 복잡하고 양가적인 감정이 들어 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 부드러움과 단단함 같은) 대립하는 요소들이 양립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이 호암미술관 전시의 뼈대를 이루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는 호주 시드니에서 시작한 아시아 태평양 순회전의 마지막인데, 호암 전시는 어떻게 구성됐나요.“2023년 시드니, 지난해 일본 도쿄와 대만 타이베이를 거쳐 한국이 네 번째 방문지입니다. 주요 작품은 같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호암 전시는 양가적 요소, ‘무의식’과 ‘의식’의 공간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재밌는 건 통념과 달리 2층이 무의식과 관련된 장소라는 점이에요. 또 전시에는 미술관 소장품도 다수 포함됐는데, 리움이 아시아에서 부르주아의 가장 좋은 컬렉션을 갖고 있습니다. 미술관 이진아 큐레이터의 도움으로 좋은 전시를 만들 수 있었어요.” ―이제 부르주아의 작품이 한국 관객을 만날 차례입니다. 어떤 기대를 하십니까.“일본에서는 관객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텍스트를 꼼꼼히 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한국 관객은 어떨지 저도 기대가 됩니다. 25년 만의 전시이니 젊은 관객에겐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고, 나이 든 관객에게도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은 부르주아의 예술 세계를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다.”‘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전은 내년 1월 14일까지 열립니다.※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책장에서 조용히 꺼내 보는 필사본은 아주 내밀한 예술품이에요. 수백 년 전 장인이 만든 책을 만져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 필사본만의 매력입니다.”프리즈 아트페어에서 고미술품을 다루는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 꾸준히 중세 유럽 책을 가져와 눈길을 끄는 갤러리가 있다. 30년 전 프랑스 파리에 설립돼 미국 뉴욕에 지점을 둔 ‘레장뤼미뉘르’다. 이 갤러리를 이끄는 산드라 하인드만 대표(81)를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북촌의 한옥에서 만났다.하인드만 대표는 50대에 갤러리를 열기 전까진 대학에서 중세 미술사와 필사본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는 “중세 필사본 분야는 매우 특수해 고미술 상인이 도움을 요청할 때가 많았다”며 “필사본을 감정하고, 고객 연결을 도와주며 갤러리 운영의 꿈을 갖게 됐다”고 했다.그가 올해 프리즈 마스터스에 가져온 건 14세기 필사본 ‘장미 이야기(Le Roman de la Rose)’와 중세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기도서 ‘시간의 서’ 등이다. 그는 “장미 이야기는 중세의 사랑과 모험을 담은 것으로 1350년경 기욤 드 로리스와 장 드 몽이 제작했다”라며 “총 19권 중 18권은 공공기관이 소장하고 있고, 외부로 나온 유일한 한 권”이라고 설명했다. 청금석과 공작석, 송아지 가죽을 다듬은 양피지로 만든 이 책은 중세 왕족이나 귀족이 주문 제작했다.하인드만 대표는 중세 필사본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극소수의 딜러 가운데 하나다. 미술품도 수집한다.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예술가 도라 마르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하인드만 대표는 “여성으로 일하며 자연스레 중세는 물론 모든 시대 여성 미술가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며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며 한국 작가 노은님(1946~2022)의 작품도 소장하게 됐다”고 했다.미국 노스웨스턴대 미술사학과 명예교수이기도 한 하인드만 대표는 2023년 서울대에서 ‘중세 필사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하는 등 세계에서 이 분야를 알리려 노력한다. 그는 “중세 필사본은 틈새시장이지만 미국, 유럽은 물론 중동의 아부다비와 일본까지 세계 곳곳에 열정적인 컬렉터들이 있다”며 “파리엔 ‘시간의 서’ 수십 권을 수집하고 매일 밤 한 권씩 꺼내 감상한다는 소장가도 있다”고 소개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글로벌 갤러리인 페이스가 10월 30일부터 서울 용산구 페이스 갤러리 서울에서 한국 미술사의 유명 작가인 김환기와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아돌프 고틀리브의 2인전을 개최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수년간 해외 갤러리들의 서울 진출이 이어졌지만, 한국 작가 전시 개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상황에서 미술계에 반가운 소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프리즈 서울 2025’를 맞아 최근 방한한 마크 글림셔 페이스 갤러리 대표(62)는 1일 동아일보와 만나 “5년 전 페이스 갤러리 서울의 이영주 디렉터가 처음 김환기 전시를 제안했고, 고틀리브 재단을 설득해 전시가 성사됐다”라며 “강한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고틀리브는 추상표현주의 화가이자 마크 로스코의 절친이었습니다. 특히 추상표현주의 이론 형성에 중요한 작가로 꼽히죠. 시장에서는 잭슨 폴록, 로스코보다 고틀리브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가 없었다면 추상표현주의는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김환기는 뉴욕 체류 시절 고틀리브의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림셔 대표는 “두 작가가 특히 말년에 급진적 변화를 보였으며, 시적인 모습이 유사성이 보인다”고 했다. 이 전시는 페이스 갤러리와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의 오랜 관계 덕분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글림셔 대표의 아버지인 아니 글림셔 회장은 미네소타 시골 목장에서 태어나 미대에 진학했다가, 가난 탓에 작가를 포기하고 갤러리를 설립해 미국의 대표 화랑으로 만든 입지전적인 인물. 그런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와 가까이 지낸 글림셔 대표는 가업을 물려받아 페이스를 뉴욕, 런던, 제네바, 홍콩, 서울 등에 지점을 둔 글로벌 갤러리로 만들었다. 그는 “아버지가 갤러리를 설립하고 이끌었던 1960, 70년대 뉴욕에선 저녁 식사에서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제임스 터렐이나 서울 청계광장에 조각이 있는 클라스 올든버그, 애그니스 마틴 등 수많은 작가와 함께 저녁을 하면 심야까지 열띤 토론이 이어졌어요. 로버트 어윈이 책상을 쾅쾅 치면서 열변을 토했던 기억이 납니다.” 글림셔 대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손님들이 떠난 뒤 아버지께 꾸지람을 들었다”면서 “그때 제 나이가 열 살”이라며 웃었다.“대화 주제는 과학, 철학, 정치부터 인간관계까지 다양했고, 저도 이 토론에 참여해 배워야 한다는 의미였죠. 그 자리에서 예술가들이 얘기하지 않은 게 있다면 미술 시장이에요. 작품 가격이 어떻고 마케팅이 어떠하며 경력이 어떻고… 그런 얘기로 시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가 원하는 것을 존중하며 그 예술 세계를 사람들과 연결해 주는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글림셔 대표는 말했다.“지금 서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터렐 개인전(27일 폐막 예정) 역시 갤러리와 작가, 스튜디오가 수년 동안 긴밀한 협업으로 만든 전시입니다. 로스코가 ‘예술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 이해되는 일’이라고 했는데, 우리 갤러리가 경계하는 게 바로 그런 겁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뾰족한 첨탑이 있는 커다랗고 오래된 성당에 처음으로 들어설 때. 강한 지진에 주변의 모든 것이 흔들리고 무너질 때. 뜨거운 용암이 화산에서 분출하고 잿더미에 휩싸여 시간이 멈춘 듯 굳어버린 폼페이 유적의 사람들을 마주할 때. 이렇게 시공간을 넘어 지금 내가 언제, 어디에 있는지 모를 감각을 자극하는 작품을 만들어 온 프랑스 현대 미술가 로랑 그라소가 한국을 찾았다. 그라소 작가는 31일 대전 헤레디움에서 개막한 개인전 ‘미래의 기억들’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서울라이트 DDP 2025 가을’(8월 28일∼9월 7일)에 참여한다. ‘서울라이트 DDP 2025 가을’에선 태양풍, 자기폭풍, 코로나 질량 방출 등의 데이터를 컬러 파동으로 시각화한 ‘솔라윈드’와, 그리스 신화 속 거인 아르고스 파노프테스에서 영감을 얻은 대형 디지털 애니메이션 ‘파노프테스’를 공개했다.헤레디움 전에는 대만 란위섬에서 촬영한 영상을 토대로 한 작품 ‘오키드섬’과 루이뷔통과 협업한 회화 연작 ‘과거에 대한 고찰’ 등 20여 점을 선보였다. 그라소 작가는 “관객이 전시장으로 들어오면 영상 속의 세계를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모든 것을 계산하고 제어했다”고 했다. 작품 ‘오키드 섬’에 대해서는 “휴양지로 보이는 란위섬에 실은 핵폐기물 저장소가 건설돼 20년 넘게 사용되며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며 “영상 속 사각형 물체는 전쟁이나 정치적 문제, 기후 등 이 섬에 도사리고 있는 위협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라소 작가는 한국과의 인연이 오래됐다. 대학에서 처음엔 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예술가 친구들과 어울리곤 했다. 이 무렵 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이었던 박만우 큐레이터다. 그가 2004년 부산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자 그라소 작가도 한국에서 전시를 시작했다. 리움미술관 정면에 설치된 네온사인 작품 ‘미래의 기억들’도 그의 작품이다.“예술에 대한 갈망은 늘 있었지만 망설이고 있었는데, 우연히 한 점성술사가 ‘당신은 위대한 예술가가 될 것’이라고 말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 뒤 파리 보자르에 입학했고 당시 행복했지만 1년 만에 쫓겨났죠. 저를 쫓아냈던 선생님들이 지금은 후회하실 겁니다, 하하.” 그라소 작가는 2008년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를 수상하고, 2015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도 수훈했다. 2020년 오르세미술관에서 영상 작품 ‘인공물’을 발표했는데, 헤레디움 전시장 2층에서도 볼 수 있다. 해당 작품에 대해 그라소 작가는 “팬데믹으로 봉쇄됐던 시절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음파를 쏴서 물체의 보이지 않는 내부를 촬영하는 ‘라이다 스캐너’를 이용한 영상 등을 활용했어요. 우리의 지구에서 과연 어떤 것이 자연이고 어떤 것이 인공인지, 이 시대에 그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게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을 담았습니다.” 전시는 내년 2월 22일까지.대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시신을 부검하며 죽음의 비밀을 밝히는 장면은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런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죽음의 이야기를 30여 년간 직접 목격한 법의학자가 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의문사, 범죄, 자살, 시신 실종 등 다양한 죽음의 현장을 다루며 때로는 충격을 주고, 때로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저자가 마주한 시신들의 사연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발이 아닌 30발의 총격을 맞고도 살아있던 남자, 목을 매려다 머리 골절로 숨진 자살 시도자, 시체인 줄 알았는데 살아있는 사람 등 여러 가지 사례를 펼쳐 보여준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이름이나 개인 정보만 가렸을 뿐, 모두 실제 경험에 바탕을 뒀다는 점에서 몰입감이 커진다. 자극적인 에피소드만 나열하진 않았다. ‘고인에 대한 존중은 시신을 열어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인이 권리를 인정받도록 모든 일을 하는 것이며 부검은 그중 하나’라는 생각은 인상적이다. 아동을 부검할 때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상황, 가족을 부검에 참관시키지 않아야 하는 이유 등 죽음의 경계선이란 극단적인 상황에서 마주한 고찰들이 잘 담겨 있다. 사망 시간 측정에 곤충학을 이용한다거나 유럽과 미국의 다른 부검 방식, 총구의 모양으로 타살과 자살을 구분하는 방법 등 법의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벨기에 리에주대 교수이자 법의학자인 저자가 쓴 이 책은 프랑스 아마존에서 논픽션 분야 1위에 오르기도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최근 블랙핑크 리사는 영국 런던에서 월드투어 공연을 마친 뒤 ‘인간 라부부’가 된 인증샷을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했다. 북슬북슬한 핑크색 털, 기다란 귀와 동그란 눈, 그리고 허리춤엔 자기와 똑같은 ‘라부부’ 인형을 달고 있었다. 리사뿐만이 아니다. 67세 팝스타 마돈나는 생일 축하 파티에서 라부부를 패러디한 모양의 ‘마두두’ 케이크를 받고 촛불을 부는 모습을 역시 소셜미디어로 공개했다.최근 세계에서 중국의 인형 캐릭터 하나가 엄청난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름하여 ‘라부부(Labubu·拉布布).’ 2015년 홍콩 작가 룽카싱이 북유럽 신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는 이 캐릭터는 2019년 상품화됐다. “못생겼지만 귀엽다”며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서 인기를 얻더니, 최근 북미와 유럽에서도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귀한 몸이 됐다.● 라부부 절도에 판매 중단까지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올 4월 글로벌 ‘라부부’ 검색량은 일본이 자랑하는 인기 캐릭터 ‘헬로키티’를 추월했을 정도다. 라부부의 독점 라이선스를 계약하고 상품을 유통 중인 중국 기업 팝마트의 실적도 수직 상승했다. 2020년 홍콩 증시에 상장한 팝마트 주가는 지난해 연초 대비 13배 상승했고, 시가총액은 현재 3600억 홍콩달러(약 64조 원)에 이른다. 늘씬한 바비도 아니고, 귀여운 동물도 아닌 날카로운 이빨의 털북숭이가 왜 이렇게 인기를 끄는 걸까. 해외에선 장기간 이어진 팬데믹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리서치 회사 ‘초잔’의 설립자 애슐리 두다레녹은 영국 BBC에 “2022년 말 중국이 팬데믹을 벗어날 때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도피하고 싶어 했는데, 완벽주의와는 정반대의 캐릭터인 라부부가 딱 들어맞았다”고 분석했다.서서히 동남아로 인기가 확산되던 라부부가 ‘글로벌 스타’가 된 건 리사의 공이 크다. 자칭타칭 라부부 마니아인 그가 지난해 4월부터 라부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자, 서구에서도 관심이 폭발했다. 이후 가수 리애나와 인플루언서 킴 카다시안,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등이 라부부 인형을 들고 있거나 선물하는 모습이 포착되며 인기에 불을 붙였다.이러다 보니 라부부 사건도 벌어진다. 영국에선 라부부를 사려고 팝마트 매장 앞이 혼잡해지고 다툼까지 발생하는 등 안전 문제가 이어지자, 5월부터 모든 팝마트 오프라인 매장에서 라부부 판매를 중단시켰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시가 3만 달러(약 4000만 원) 상당의 라부부 인형을 훔쳐서 팔려고 했던 창고 직원 2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과한 집착은 도박 중독과 비슷라라부의 인기는 판매 방식도 한몫했다. 라부부가 ‘블라인드 박스’로 판매돼 MZ세대의 ‘인증샷’과 수집 욕구를 자극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라부부는 다양한 모양으로 출시되는데, 포장을 뜯기 전까진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새로 산 라부부 박스를 열며 만족이나 실망을 표하는 ‘언박싱’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했다. 가수 이영지가 라부부를 구매해 상자를 열어봤는데 짝퉁이 나와 실망하는 영상은 대만 뉴스에도 보도됐을 정도다. 이러한 판매 전략은 중독적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도파민 경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원하는 라부부 인형이 나올 때까지 중복적으로 구매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131cm 크기 민트색 라부부 인형은 한 경매에서 108만 위안(약 2억 원)에 낙찰돼 ‘투기 조장’이란 비난마저 일었다.전문가들은 라부부를 언박싱하면서 느끼는 설렘이 ‘도박 중독’과 비슷하다고 경고한다. 최지혜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라부부의 인기는 MZ세대의 셀럽에 대한 선망과 랜덤 판매에 따른 소비 갈망 심리 등이 만들어 낸 결과”라며 “과열 양상이 계속될 경우 사회적 피로도나 경각심이 커지면서 지금 같은 열기는 가라앉을 수 있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최근 블랙핑크 리사는 영국 런던에서 월드투어 공연을 마친 뒤 ‘인간 라부부’가 된 인증샷을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했다. 북슬북슬한 핑크색 털, 기다란 귀와 동그란 눈, 그리고 허리춤엔 자기와 똑같은 ‘라부부’ 인형을 달고 있었다. 리사뿐만이 아니다. 67세 팝스타 마돈나는 생일 축하 파티에서 라부부를 패러디한 모양의 ‘마두두’ 케이크를 받고 촛불을 부는 모습을 역시 소셜미디어로 공개했다.최근 세계에서 중국의 인형 캐릭터 하나가 엄청난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름하여 ‘라부부(Labubu·拉布布).’ 2015년 홍콩 작가 룽카싱이 북유럽 신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는 이 캐릭터는 2019년 상품화됐다. “못생겼지만 귀엽다”며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서 인기를 얻더니, 최근 북미와 유럽에서도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귀한 몸이 됐다. ● 라부부 절도에 판매 중단까지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올 4월 글로벌 ‘라부부’ 검색량은 일본이 자랑하는 인기 캐릭터 ‘헬로키티’를 추월했을 정도다. 라부부의 독점 라이선스를 계약하고 상품을 유통 중인 중국 기업 팝마트의 실적도 수직 상승했다. 2020년 홍콩 증시에 상장한 팝마트 주가는 지난해 연초 대비 13배 상승했고, 시가총액은 현재 3600억 홍콩달러(약 64조 원)에 이른다. 늘씬한 바비도 아니고, 귀여운 동물도 아닌 날카로운 이빨의 털북숭이가 왜 이렇게 인기를 끄는 걸까. 해외에선 장기간 이어진 팬데믹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리서치 회사 ‘초잔’의 설립자 애슐리 두다레녹은 영국 BBC에 “2022년 말 중국이 팬데믹을 벗어날 때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도피하고 싶어 했는데, 완벽주의와는 정반대의 캐릭터인 라부부가 딱 들어맞았다”고 분석했다.서서히 동남아로 인기가 확산되던 라부부가 ‘글로벌 스타’가 된 건 리사의 공이 크다. 자칭타칭 라부부 매니아인 그가 지난해 4월부터 라부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자, 서구에서도 관심이 폭발했다. 이후 가수 리한나와 인플루언서 킴 카다시안,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등이 라부부 인형을 들고 있거나 선물하는 모습이 포착되며 인기에 불을 붙였다.이러다보니 라부부 사건도 벌어진다. 영국에선 라부부를 사려고 팝마트 매장 앞이 혼잡해지고 다툼까지 발생하는 등 안전 문제가 이어지자, 5월부터 모든 팝마트 오프라인 매장에서 라부부 판매를 중단시켰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시가 3만 달러(약 4000만 원) 상당의 라부부 인형을 훔쳐서 팔려고 했던 창고 직원 2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과한 집착은 도박중독과 비슷라라부의 인기는 판매 방식도 한몫했다. 라부부가 ‘블라인드 박스’로 판매돼 MZ세대의 ‘인증샷’과 수집 욕구를 자극했다는 해석이다. 라부부는 다양한 모양으로 출시되는데, 포장을 뜯기 전까진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없다. 때문에 새로 산 라부부 박스를 열며 만족이나 실망을 표하는 ‘언박싱’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했다. 가수 이영지가 라부부를 구매해 상자를 열어봤는데 짝퉁이 나와 실망하는 영상은 대만 뉴스에도 보도됐을 정도다. 이러한 판매 전략은 중독적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도파민 경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원하는 라부부 인형이 나올 때까지 중복적으로 구매하는 이들이 늘고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131cm 크기 민트색 라부부 인형은 한 경매에서 108만 위안(약 2억 원)에 낙찰돼 ‘투기 조장’이란 비난마저 일었다.전문가들은 라부부를 언박싱하면서 느끼는 설렘이 ‘도박 중독’과 비슷하다고 경고한다. 최지혜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라부부의 인기는 MZ세대의 셀럽에 대한 선망과 랜덤 판매에 따른 소비 갈망 심리 등이 만들어낸 결과”라며 “과열 양상이 계속될 경우 사회적 피로도나 경각심이 커지면서 지금 같은 열기는 가라앉을 수 있다”고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독특한 상상력으로 팬층이 두꺼운 플랑드르의 16세기 거장 히로니뮈스 보스, 극적인 표현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엘 그레코, 영국 왕실 초상화가로 유명한 안토니 반 다이크….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20세기 이전 유럽 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올가을 한국을 찾는다.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모더니즘까지 조망하는 특별전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이 11월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미술관에서 개막한다. 이 전시는 1925년 개관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미국 서부의 명문 ‘샌디에이고 미술관(San Diego Museum of Art·SDMA)’의 소장품 65점을 소개한다.● 보스부터 모네까지 화려한 라인업 특히 이번 전시에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로코코 등 서양 미술의 주요 흐름을 아우르는 보스, 베로네세, 틴토레토, 엘 그레코, 페테르 파울 루벤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반 다이크 등의 작품이 대거 출품됐다. 19세기 이후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프란시스코 고야, 클로드 모네, 에드가르 드가, 툴루즈 로트레크, 메리 커샛, 피에르 보나르, 쉬잔 발라동,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 총 60명 작가의 유화 63점과 조각 2점도 만날 수 있다. 주요 전시작으로는 보스가 1515년경 그린 종교화 ‘그리스도의 체포’를 꼽을 수 있다. 높이 50cm, 폭 80cm의 템페라 유화로, 예수가 로마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순간을 묘사했다. 왼쪽에는 단검을 뽑는 병사가, 오른쪽에는 붉은 옷을 입은 성 베드로, 예수 바로 옆 유다와 그 외 병사들의 표정과 몸짓이 드라마틱하다. 반면 체포를 당하고 있는 예수는 오히려 체념한 듯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다.엘 그레코의 ‘목자들의 경배’도 주목할 작품. 24X20cm 유화로 비교적 작은 사이즈이나, 신비로운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초라한 마구간에 모여든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밝게 표현된 아기 예수와 하늘에서 번개처럼 빛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고야와 반 다이크가 왕실과 귀족의 의뢰를 받아서 그린 초상화도 전시된다. 고야가 1795년경 그린 ‘라 로카 공작 비센테 마리아 베라 데 아라곤의 초상’(108.7X82. 55cm)과 반 다이크가 1638년경 그린 ‘영국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의 초상’(107.32X85.09cm)이다. 두 작가 모두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를 잘 살린 섬세한 초상화의 대가들로, 실물이 기대되는 작품들이다. 모네의 대표작 중 하나인 건초더미 연작에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담은 ‘샤이의 건초더미들’이나 신고전주의 작가인 윌리엄아돌프 부그로의 ‘양치기 소녀’ 등 19세기 작품도 전시된다.● SDMA 상설 컬렉션 25점, 해외 첫 전시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개관 100년 동안 한 번도 해외로 반출하지 않았던 주요 상설 컬렉션 25점도 서울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반 다이크의 영국 왕비 초상이 대표적이다. 미술관 최고 경영자 겸 총괄 디렉터인 록사나 벨라스케스는 “상설 전시로만 선보였던 소장품들을 대거 해외에서 선보이는 건 처음”이라며 “이후로도 미국 밖에선 다시 보기 힘들 수 있다”고 했다.이 전시는 일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과 교토시 교세라 미술관을 순회해 서울에서 열린다. 서울 전시는 일본 전시에선 선보이지 않았던 인상주의 이후 작가들의 작품도 포함됐다. 모네 ‘샤이의 건초더미들’을 비롯해 모딜리아니 ‘푸른 눈의 소년’, 발라동 ‘창문 앞의 젊은 여인’ 등이다. 전시 기획은 애니타 펠드먼 샌디에이고 미술관 부관장이 맡았고, 17∼18세기 스페인 미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마이클 브라운 박사가 큐레이터로 참여했다.‘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은 샌디에이고 미술관과 문화콘텐츠 기업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가 공동 주최한다. 김대성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대표는 “서양 미술사의 주요 작가들을 총망라해 작품과 희소성 측면에서 독보적인 전시”라고 자신했다. 11월 5일 개막해 내년 2월 22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사진)가 북미 지역 박스오피스에서 ‘깜짝 1위’에 올랐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케데헌이 23, 24일(현지 시간) 주말 동안 북미 극장가에서 최대 2000만 달러(약 277억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된다”고 24일 보도했다. 이는 개봉 3주 차인 공포 영화 ‘웨폰’의 1560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특히 이번 ‘케데헌’의 박스오피스 1위는 정식 개봉이 아니어서 더 이례적이다. 넷플릭스는 ‘케데헌’이 6월 공개 뒤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북미와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싱얼롱(sing-along·따라 부르기)’ 스페셜 이벤트 상영회를 개최했다. 이번 이벤트에 북미에서만 1700개가 넘는 영화관이 참여했으며, 1000여 회차 분량의 티켓이 매진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케데헌’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며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은 미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4주 연속 2위를 차지했다. 해당 차트에 8위로 데뷔한 케데헌 OST 앨범은 9주 연속으로 톱10에 들기도 했다. 빌보드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차트 톱10에 9주 이상 머물렀던 OST는 2015년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14주)가 유일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팝아트 작가 조엘 메슬러(51)의 개인전 ‘파라다이스 파운드(Paradise Found)’가 다음 달 2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의 예술전시공간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에서 개막한다. 메슬러는 이번 전시에서 ‘파라다이스’를 주제로 한 다양한 회화와 설치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 중 19점은 처음 공개되는 신작으로, 파라다이스를 ‘내면에서 발견하는 자유와 평온의 상태’로 재해석했다. 전시는 Earth(땅), Water(물), Sky(하늘) 등 총 세 가지 테마로 메슬러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 리셉션 공간에서 시작하는 첫 번째 테마 ‘Earth’는 생명의 시작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야자수를 소재로 생명의 원천을 표현한 3m 규모 회화 작품 ‘Tree of Life(생명의 나무)’와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한 회화 ‘Play the Hits(히트곡을 틀다)’, 설치 작품 ‘Flag(깃발)’가 관객을 맞는다.이어지는 1층 전시장의 주제는 ‘Water’다. 물처럼 유연하고 평화로운 감정을 담은 ‘Sunshine Daydream(낮에 꾸는 꿈)’ 같은 회화 작품, 물을 모티프로 한 벽면 장식, 대형 비치볼을 그린 회화 2점이 전시된다. 마지막 2층 전시장은 ‘Sky’가 테마다. 메슬러가 중년을 지나며 탐구한 존재의 의미에 대해 다룬 공간이다. 금박 풍선으로 파라다이스를 표현한 회화 작품 ‘Paradise with Blossoms(꽃이 가득한 낙원)’는 작품을 앉아서 볼 수 있는 안락의자를 설치한다. 존재하는 순간에 대한 명상과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얻는 용기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메슬러는 미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나 LA, 뉴욕, 햄프턴 등에서 아트 딜러 및 갤러리를 운영하는 경험을 쌓은 뒤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회화는 바나나 잎, 수영장, 풍선, 도넛 등 LA의 풍경과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자주 등장한다. 또 ‘너는 혼자가 아니야’, ‘좋은 일이 꼭 올 거야’ 같은 감성적인 문구를 자주 활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는 알코올·약물 중독, 예술가로서의 실패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고통과 회복, 치유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자 하는 의도다. 파라다이스시티는 리조트 전 구역에 3000여 점에 이르는 미술 작품을 배치하고 글로벌 아티스트들의 공연이나 K컬처 콘텐츠를 제공하는 복합 리조트다. 이번 전시는 내년 2월 22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