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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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4-03-18~2024-04-17
미술62%
문화 일반10%
문학/출판10%
사고3%
사회일반3%
인사일반3%
산업3%
음악3%
칼럼3%
  • 발달장애인 문화예술 축제 ‘2023 국제 스페셜 뮤직&아트페스티벌’ 5일까지 개최

    올해 10주년을 맞는 발달장애인 문화·예술 축제인 ‘2023 국제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이 2일부터 5일까지 서울대 일원에서 열린다. 김대진 클래식 음악감독(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노영심 팝 음악감독, 서혜연 운영 감독(서울대 성악과 교수) 등 국내 유명 음악인이 멘토단으로 참여한 축제는 음악·미술 레슨과 공연, 문화 체험 부스 등으로 구성된다. 이번 페스티벌에는 전 세계 발달장애 아티스트와 비장애인 각각 120명, 자원봉사자 50명, 강사와 운영진 80명, 공연 및 체험 프로그램 참가자(발달장애인) 330명 등 총 700여 명이 참여한다. 팬데믹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해외 참가자들도 4년 만에 함께해 올해 페스티벌 주제를 ‘고마워’(Thank you)로 정했다. 페스티벌 첫날인 2일 발달장애 아티스트와 멘토가 함께 준비한 개막 콘서트가 열렸다. 3일에는 노영심과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가 팝 콘서트 ‘데일리 콘서트 I’을 선보였다. 4일 오후 7시 반에는 김대진 클래식 음악감독 등 5명의 멘토와 발달장애 아티스트 13명이 펼치는 ‘36핸즈 피아노 앙상블’이 열린다. 5일 오후 1시에는 폐막 콘서트가 열린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 연습과 공연으로 성장한 발달장애 아티스트들을 무대에서 볼 수 있다. 각 공연은 스페셜올림픽 코리아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사단법인 스페셜올림픽코리아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이번 행사는 나경원 전 국회의원이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나 위원장은 “장애 아티스트와 멘토 연주자들의 협연 및 공연으로 장애인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이 축제가 국제 장애인사회에 기여하는 대표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20대 국회에서 통과된 ‘장애문화예술지원법’이 더 탄탄한 뒷받침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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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케라르 정물화처럼… 16세기 상인도 그림으로 ‘플렉스’ 했다

    30만 독자가 읽은 미술 교양 시리즈 ‘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가 2016년 출간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국내 전시 개최에 맞춰 특별판(사진)을 발간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를 해설한 ‘난처한 미술이야기: 내셔널갤러리 특별판’(사회평론)이다. 이 시리즈 7권을 써 온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56)를 지난달 31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영국 런던대(UCL)에서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내셔널갤러리는 내게 미술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함께 일깨워준 각별한 곳”이라며 “오랜 친구들(작품들)이 한국에 온다는데 잘 대접하고 싶었다”고 했다. 양 교수와 함께 전시에서 눈여겨볼 포인트를 짚어봤다.● 베케라르 정물화, 화끈한 ‘플렉스’ 양 교수의 신간은 글 10편을 통해 내셔널갤러리 작품 감상의 핵심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플랑드르에서 활동했던 화가 요아힘 베케라르의 ‘4원소: 물’(1569년)과 ‘4원소: 불’(1570년)을 반가운 작품으로 꼽았다. “작품이 그려진 안트베르펜은 성상 파괴 운동을 겪어 종교화가 줄고 상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그 결과 이 그림에서는 풍요로운 정물은 전면에, 종교적인 메시지는 후면으로 밀려나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죠.” 두 작품 중 ‘물’은 물고기가 쏟아질 듯 넘치는 수산물 시장을, ‘불’은 고기가 그득한 부엌을 표현했다. ‘4원소’ 중 한국에 오지 못한 작품인 ‘공기’는 가금류와 알을, ‘땅’은 채소와 과일을 묘사했다. 4점 모두 각각 폭 2.1m, 높이 1.6m가 넘는 대작으로 그림 전면에 왕족, 귀족·성직자가 아닌 부유한 상인 즉 ‘제3신분’이 부각된 것이 특징이다. 양 교수는 이 연작이 자본주의가 형성되며 생긴 새로운 사회 질서, 종교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에 넘치는 탐스러운 상품을 부끄러움 없이 화끈하게 즐기는 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라며 “다만 그림의 가장 깊은 곳에 성경의 내용을 배치해 교훈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역사성 보여주는 ‘역대급’ 회화들 영국 찰스 1세가 고액 연봉과 런던 템스강변 저택, 왕궁 내 개인 숙소까지 마련해 주며 데려온 궁정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의 초상화도 만날 수 있다. 찰스 1세의 친척을 그린 ‘존 스튜어트와 버나드 스튜어트 형제’로, 형제의 위풍당당한 모습과 섬세한 의복 질감은 눈으로 봤을 때 감동이 더하다. 양 교수는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초상화 ‘의사 랄프 숌버그’도 이번 전시에서 보다 자세히 보고 그 의미를 짚어내며 놀란 작품으로 꼽았다. 그는 “왕과 귀족만이 주인공이었던 초상화에 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며 “표현의 작위성이 줄어들고 자연의 기운을 그대로 담아 미술이 어떻게 현실에 가까이 오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서양미술사 교양서적의 단골 손님인 렘브란트의 노년 자화상도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양 교수는 작품에 담긴 시대상과 사회적 변화, 문명사적 의미를 짚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술 작품이 단순히 예쁘고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과거가 남긴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며, 이 때문에 선진국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 적극 투자한다는 것. 양 교수는 “이번 전시는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역사적 맥락을 보고 소장한 양질의 회화가 대거 온 ‘역대급 전시’”라며 “이런 작품들을 해외에 직접 가지 않고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10월 9일까지. 7000∼1만8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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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세기 상인도 그림으로 ‘플렉스’ 했다…양정무 교수가 꼽은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재미 포인트

    좋은 작품 앞에 섰을 때 느끼는 즐거움에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작품 속에 묻은 인간사의 단면을 끄집어내며 호기심을 충족하는 기쁨을 느낀다. 이런 즐거움과 기쁨을 담아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56)가 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는 2016년부터 현재까지 7권이 출간됐고 30만 독자가 탐독했다. 최근 이 시리즈 최초 특별판인 ‘난처한 미술이야기: 내셔널갤러리 특별판’(사회평론)이 출간됐다. 영국 런던대(UCL) 박사 학위를 받은 그에게 내셔널갤러리는 각별한 곳. “오랜 친구들이 한국에 온다는데 잘 대접하고 싶었다”는 그와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를 찾아 눈여겨볼 포인트를 짚었다.베케라르 정물화, 화끈한 플렉스 양 교수의 신간은 글 10편을 통해 전시된 작품을 보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중에서 요아힘 베케라르의 ‘4원소: 물’(1569년)과 ‘4원소: 불’(1570년)을 그는 반가운 작품으로 꼽았다. “작품이 그려진 안트베르펜은 성상 파괴 운동을 겪어 종교화가 줄고 상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그 결과 이 그림에서는 풍요로운 정물은 전면에, 종교적인 메시지는 후면으로 밀려나는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죠.” 두 작품 중 ‘물’은 물고기가 쏟아질 듯 넘치는 수산물 시장을, ‘불’은 고기가 그득한 부엌을 표현하고 있다. 전체 4점으로 나머지 작품인 ‘공기’는 가금류와 알을, ‘땅’은 채소와 과일을 묘사하고 있는데 폭 2.1m, 높이 1.6m가 넘는 대작으로 부유한 상인이 주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그림 전면에 왕족, 귀족·성직자가 아닌 부유한 상인 즉 ‘제3신분’이 부각된 것도 특징이다. 양 교수는 이것이 자본주의가 형성되며 생긴 새로운 사회 질서, 종교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에 넘치는 탐스러운 상품을 속절없이, 부끄러움 없이 화끈하게 즐기는 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라며 “다만 그림의 가장 깊은 곳에 성경의 내용을 배치해 교훈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두 작품은 각각 성경 속 ‘고기잡이의 기적’(물), ‘마르타와 마리아’(불)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 역시 과거와 다르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성모자상 등 성경 속 단순한 주제가 사용됐지만, 이 주제들은 성경을 읽은 사람이 알 수 있는 깊은 주제다. 양 교수는 “종교개혁과 인쇄술의 발달로 성경의 독자가 늘어나면서 가능하게 된 현상”이라고 했다. 시차 없이 보는 ‘역대급’ 회화 전시 이 밖에 양 교수는 윌리엄 터너가 보고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전해지는 클로드 로랭의 ‘성 우르술라의 출항’, 영국의 ‘국민 화가’ 터너의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이별’,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으로 꼽히는 존 컨스터블의 ‘건초 마차’, 에두아르 마네의 ‘카페 콩세르의 한 구석’ 등 전시장 속 작품들을 책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그는 “이 시대에 왜 이런 그림이 그려졌고,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있었으며, 문명사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러한 역사적 맥락이 담긴 좋은 작품들이 한두 점도 아닌 여러 점으로 이정도 회화가 온 적은 없었던 ‘역대급 전시’라는 생각이 든다”며 “시차 적응하는 고생 없이 맑은 정신으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7000~1만8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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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주의, 아르테포베라 예술운동… 이탈리아 근현대미술을 아시나요

    달리는 자동차의 보급과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의 등장.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일상이 급격하게 변했던 20세기 초반 이탈리아 예술가들은 ‘미래주의 선언’(1909년)을 하기에 이른다. 산업화와 도시의 속도감을 찬양했던 이들의 예술은 러시아 미래파, 영국 소용돌이파 등에도 영향을 주며 미술사에 자리매김했다. 이 미래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움베르토 보초니의 ‘공간에서 연속하는 단일한 형태’ 청동 버전 조각품이 한국에 왔다. 이 조각품을 비롯해 이탈리아 근현대 미술작품 70여 점을 볼 수 있는 전시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이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 최근 개막했다. 개념미술 작품으로 유명한 피에로 만초니의 ‘마법의 발판’, 아르테 포베라 예술 운동(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전위적 예술 운동으로 일상적 재료로 작업)의 주역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에트루리아인’도 전시에서 선보인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이탈리아 특유의 유머와 활기를 보여준다. 이탈리아 대표적 조각가인 마리노 마리니의 청동 조각 ‘말’은 쓸쓸하지만 따뜻한 서정성이, 자신의 발자국을 나무 상자 위에 놓은 만초니의 ‘마법의 발판’은 뒤통수를 치는 듯한 재치가 느껴진다. 전시장 구석에서는 수시로 전화가 걸려 오는 다니엘레 푸피의 전화기 작품 ‘런던 콜링’이 관객을 놀라게 만든다. 주한 이탈리아대사관, 이탈리아문화원이 주최한 이 전시는 이탈리아 외교협력부가 사용하고 있는 로마 파르네시나궁의 예술 작품 중 일부를 한국에 소개한다. 이탈리아 외교협력부는 1960년까지 로마 키지궁을 사용하다 그곳을 총리 관저로 내어주고, 지금의 파르네시나궁으로 이전했다. 금과 대리석으로 치장된 키지궁과 달리 소박한 파르네시나궁을 외교협력부 직원들은 약 40년간 그대로 사용했다. 그러다 독일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1998년 귀국한 움베르토 바타니 현 베네치아국제대 총장이 친분이 있던 미술가들에게 작품 대여를 요청해 예술 작품을 파르네시나궁 곳곳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파르네시나 컬렉션’은 지금도 소장품이 아니라 시기별로 대여하는 다른 작품들로 구성된다. 이탈리아의 저명 평론가 겸 큐레이터인 보니토 올리바(84)가 전시 기획을 맡았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그는 1995년 비엔날레 전시관에 한국관이 생기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한국을 13일 찾은 알레산드로 데 페디스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공공문화외교국장은 “이탈리아 미술은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이후에도 번성했다”며 “이탈리아 현대미술을 알리기 위해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8월 20일까지. 1만 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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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해는 웃어버리고, 경계는 넘어서고…‘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의 최수진, 나이트오프 인터뷰[영감 한 스푼]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제주도에 있는 ‘포도뮤지엄’에 가면 음악가 나이트오프(이이언, 이능룡)이 노래를 만들고 미술가 최수진이 영상을 만든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를 들을 수 있답니다.1년 전에 완성되어 미술관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이 음악과 영상이 최근 유튜브와 음원으로도 공개되었습니다. 목탄으로 그려 지우개로 지운 흔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드로잉은 따스한 손을 떠올리게 하고, 나이트오프의 가사와 음악은 소외된 모든 사람들을 어루만지려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이들을 직접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서로의 톤에 맞추고 절제하며 만들다최수진과 나이트오프가 노래와 영상을 만들게 된 데에는 포도뮤지엄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미술관 전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를 기획한 김희영 대표는 뮤지컬 헤드윅의 ‘사랑의 기원’처럼,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겼던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했고, 그에 맞는 예술가로 두 팀에게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김민(민): 제작 과정이 어떤 순서로 진행됐나요?이이언(언): 처음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여러 고민을 하다가 최수진 작가에게 스토리보드와 인물 스케치를 먼저 받아 출발했어요.이능룡(능): 수차례 소통의 과정이 있었죠. 음악을 만들어 들려 드리고, 작가님이 또 짧은 클립을 보여주시고. 서로 맞는 톤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민: 영상과 가사에 바다가 등장하고, 또 바닥에 선을 긋고 없어지는 장면이 인상깊어요.최수진(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미술관 전시 서문을 대신해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컨셉을 전달받았어요. 그리고 첫 회의에서는 ‘하나의 돌’이라는 키워드에서 출발을 했습니다.언: 하나의 돌에 모든 존재들이 모여 있다가 그 사이를 바다가 가로 막으면서 함께했던 사람들이 따로 지내게 되는… 그런 식의 우화적인 비유에 관한 이야기에요.능: 전시가 완성되고 난 뒤 음악과 영상을 만든게 아니라 초반 작업부터 함께 하다보니 완성되지 않은 아이디어와 말들이 섞여가며 작업을 했습니다.끊임없이 이어지는 드로잉민: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을 보면 목탄 드로잉의 흔적이 없어지지 않고 그 위에 다른 그림이 오버랩 되어 따뜻한 느낌이었어요. 어떤 것을 염두에 두셨나요?최: 기획 단계에서는 윌리엄 켄트리지 느낌의 목탄 이야기가 나왔는데, 따뜻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펠트나 털실을 사용해보기도 했어요. 그러다 지워도 흔적이 남는 목탄으로 결정했고, 흑백이지만 풍부한 화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민: 흔적이 남는 것을 왜 보여주고 싶었나요?최: 평화로운 마을이 급작스러운 재난을 맞고, 그런 사건의 여운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랐어요.능: 마을에 위성이 떨어져 사고가 났는데, 그것이 뭉게구름이 되고 그 구름 안에서 사람이 나와서 도망치고… 흔적 안에서 다른 스토리가 나와서 이어지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제작할 때 최수진 작가 작업실에 지우개 가루가 산처럼 쌓였었답니다.최: 봄에 3-4달 작업을 했는데, 유화 옆에서 목탄을 쓰면 가루가 다 달라 붙어서 방 하나를 따로 사용했어요. 공기청정기 두 개를 돌렸는데도 나중에 그 방 전체가 새카만 목탄 가루로 가득 찼어요.소외된 모든 존재를 위한 사랑노래민: 음악은 제가 잘 알지 못하지만 사운드가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어요.능: 첫 요청을 받을 때는 직설적이고 파워풀한 느낌을 이야기했는데, 나이트오프가 원래 하던 스타일대로 조용한 이야기가 더 깊게 전달하기 좋을 거라고 다시 의견을 냈고 흔쾌히 받아들여졌어요. 좀 더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들이 작업의 흐름이었습니다.언: 사회적 이슈를 테마로 노래를 만들면 자칫 구호처럼 될 수도 있잖아요. 그걸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소수자, 혹은 사랑 이야기처럼 들리기를 바랐어요. 사람들의 감정을 다양한 관점에서 어루만져줄 수 있는 곡이 되길 원했고 이 때문에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어요. 지금까지 한 가사 작업 중에 가장 오래 걸렸고 힘들었던 곡이었어요.민: ‘우리가 택한 것과 택한 적 없었던 모든 것들로 우리가 우리가 된 걸요’ 라는 가사가 그렇게 느껴졌어요. (모든 사람은 다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으니까…)언: ‘오래된 오해들을 웃어버려요’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소수자에 대해 갖는 편견,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와 공포를 생각했어요. 그런 표현들을 잘 정리해 담으려고 애썼죠.민: 그리고 음악이 절정에 달할 때 말풍선이 나타나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공감이 됐어요.최: 사람들의 마음을 경계를 허무는 매개로 강아지가 등장한 것도 중요해요. 주인공이 배척을 당하지만, 그는 또 약자인 강아지를 구해주거든요. 이렇게 강자와 약자가 정해진게 아니라 누구든 약자이고 이방인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강아지는 흑이든 백이든 상관하지 않고 누구든 먼저 탐색하고 경계를 뚫고 나간 뒤 친구와 가족이 되거든요.언: 또 이 곡에서 ‘우린 다르기엔 너무 같아요’라는 가사가 있는데 저는 그 부분이 사람을 넘어 모든 생명에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영상에서 강아지가 등장함으로서 동물권에 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서 좋았어요.민: 나이트오프의 음악이 미술관에서 보여지게 된 것은 어떤 기분이었나요?언: 우선 보통은 뮤직비디오 작업을 할 때 음악이 주가되고 영상은 그 다음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뭐가 메인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계속해서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새로운 자극이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능: 전시장에서 기분이 묘했어요. 은유적으로 주제를 다루는 미술가들의 작품을 보다가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영상을 보니 관객에게 좀 더 친절히 설명해주는 느낌이었고, 우리의 작업이 미술관에서 이런 역할을 하고 있구나 그 때 이해가 됐어요.-전시가 열리는 1년 동안 미술관에는 음원을 공개해달라는 요청도 왔다고 합니다. 또 ‘나이트오프’의 팬들은 제주도에 가야만 들을 수 있는 미공개음원을 멀리서 궁금해했고요.다음달 초에는 이 음원이 한정판 LP로 발매된다고 합니다. 또 포도뮤지엄의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전시는 9월 3일까지 무료로 공개된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전시장에 직접 가셔서 들어보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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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달음식 놓고 사라지는 라이더, 플랫폼 갇힌 ‘유령 근로자’ 같아”

    미디어 아티스트 김아영(44·사진)의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가상의 배달 플랫폼에서 일하는 여성 라이더를 주인공으로 한다. 효율적으로 일하고자 내비게이션의 지시를 따라 이동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쳐도 배달을 멈출 수 없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기그 이코노미’(임시 계약 경제)의 단면을 그렸다. 김 작가는 이 작품으로 지난달 12일 세계적 미디어 아트 어워드인 ‘2023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뉴 애니메이션 아트’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최고상인 골든 니카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철학, 위상수학, 물리학의 개념을 훌륭한 시각 서사로 결합해 우리가 살고 있는 다층적이고 통제 불가한 세계를 성공적으로 그려냈다”고 평했다. 그를 최근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만났다. 김 작가는 팬데믹 기간에 “배달 음식을 문 앞에 두고 얼굴을 볼 기회도 없이 사라지는 라이더들이 ‘유령 근로자’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들의 삶이 궁금해 직접 6년 동안 일한 베테랑 여성 라이더를 만나 배달도 나가 보면서 실상을 알게 됐다고 했다. “알고리즘이 픽업지에서 배달지까지 거리를 직선으로 계산해 배달료를 책정해 문제가 된 적이 있어요. 배달료에 관한 할증 정책이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되며 라이더를 통제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작품에선 플랫폼의 틀을 벗어나고 싶지만 생존을 위해 계속할 수밖에 없는 배달 라이더의 절망이 느껴진다. 그는 “젊은 세대가 처한 문제가 정말 다양하겠지만 Z세대 중 어떤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기에 자기 계발도 불가능한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고 했다. 절망적 현실 앞에서 그는 한탄하기보단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이야기한다. 그는 이런 태도가 ‘아프로 퓨처리즘’(아프리카의 전통 문화와 판타지를 접목시킨 것)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프로 퓨처리즘에서 흑인 예술가들은 타임슬립, 공상과학(SF) 등의 형태로 고달픈 현실의 대안적 서사를 제시한다. 기존의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수상작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기술이 강조된 작품도 많은데,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단채널 영상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기술의 새로움보다 사회와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묘사한 것이 높이 평가받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올해부터 심사할 때 기술보다 예술적 실험에 방점을 두기로 하면서 저에게 좋게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2023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시상식은 9월 6∼10일 열리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기간에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개최된다. 김 작가는 전시 상영 시상식과 아티스트 토크에 참여할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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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정국 ‘세븐’, 빌보드 ‘핫 100’ 진입과 동시 1위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26·사진)의 솔로 데뷔곡 ‘세븐’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서 진입과 동시에 1위를 차지했다. K팝 솔로 가수가 ‘핫100’에서 진입과 동시에 1위에 오른 건 같은 팀 멤버 지민의 ‘Like Crazy’에 이어 두 번째다. 빌보드는 24일(현지 시간)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국의 ‘세븐’이 제이슨 올딘의 ‘Try That in a Small Town’과 모건 월런의 ‘Last Night’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정국은 이날 팬 커뮤니티인 위버스에 “더 위로 가자”란 소감을 남겼다. 빌보드는 이번 순위를 공개하기 전 분석 기사에서 “역대 가장 치열한 핫100 차트 경쟁”이라고 밝혔다. 미국 내 팬덤이 두꺼운 올딘, 월런과 미국 10대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이 1위를 놓고 다퉜기 때문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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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민-소수자 위한 사랑 노래… 우린 다르기엔 너무 같죠”

    지워지고 번진 흔적이 그대로 남은 목탄 그림이 흐르듯 움직이고, 음악은 ‘우리를 갈라놓고 가로막기에 바다는 너무 얕다’고 위로한다. 제주 포도뮤지엄에서 볼 수 있었던 뮤직 애니메이션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의 음원이 전시 1년 만에 공개됐다. 동명 기획전의 취지를 담아 미술가 최수진과 음악가 나이트오프가 협업한 작품이다. 음원 공개 후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개인 플레이리스트에 이 곡을 포함시키며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최수진과 나이트오프를 17일 서울 용산구 티앤씨재단에서 만났다. 포도뮤지엄의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전은 이주민과 디아스포라(이산)가 겪는 어려움을 담았다. 전시의 취지를 음악과 영상으로 압축해 담은 것이 최수진과 나이트오프의 동명 작품이다. 나이트오프는 밴드 ‘못(Mot)’의 멤버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이이언과 ‘언니네이발관’의 기타리스트 이능룡이 결성한 듀오다. 세 예술가는 각자의 특성을 조금씩 양보하며 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다. 색채가 돋보이는 회화 작업을 했던 최수진은 흑백 목탄에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그렸고, 개인의 내밀한 감정을 다뤘던 나이트오프는 보편적 사랑을 이야기했다. 이능룡은 “평소에는 음악을 먼저 만들고 영상을 제작했는데, 이번에는 함께 완성해 나가는 방식이어서 너무 우리의 색깔로 나아가지 않게 절제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영상은 마을에서 쫓겨난 주인공이 물에 빠진 강아지를 구하고, 이를 통해 배척당하던 마을에서 이해받는 내용을 그린다. 최수진은 4개월간 매일 목탄 그림 7000컷을 그리고, 이 중 4000컷을 영상에 사용했다. 그는 “그동안 목탄과 지우개 가루로 작업실이 가득 찼다”며 웃었다.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며 계속되는 영상은 ‘우린 다르기엔 너무 같다’는 노래 가사처럼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준다. 그는 “사람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과정을 담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가사를 쓴 이이언은 난민뿐만 아니라 소수자를 위한 노래, 더 나아가 사랑 노래로 들리길 바랐다고 했다. 그는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노래를 만들면 자칫 투박한 구호처럼 될 수 있어 조심스러웠다”며 “지금까지 한 가사 작업 중 가장 오래 걸리고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노래에서 ‘오래된 오해들을 웃어버려요’라는 부분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날려 버린다는 의미도 되지만 연인의 화해로도 들린다. 그는 “사람들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곡이 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음원으로 공개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는 8월 초 300장 한정판 LP로 발매된다. 포도뮤지엄의 동명 전시는 9월 3일까지 이어진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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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대 작가 3인, ‘욕망’에 자기최면을 걸다

    개개인이 갖는 욕망과 신체에 대해 탐구한 30대 작가 3명의 작품을 모은 전시 ‘오토힙노시스’(자기 최면)가 서울 강남구 지갤러리에서 8월 12일까지 열린다. 올해 처음 만들어진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 우한나(35), 오가영(31), 듀킴(38)의 조각·설치 작품 1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예술가들의 작업이 개인의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는 일종의 기술이라고 보고 ‘자기 최면을 건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런 주제 아래 우한나 작가는 여성의 신체나 피부를 연상케 하는 형태의 천 조각을 만들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커다란 바늘 조각도 등장했는데, 자신의 작업에서 중심이 되는 바느질 행위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국내뿐 아니라 홍콩 파라사이트, 영국 런던 현대미술연구소(ICA) 등 해외에서도 활발히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듀킴 작가는 신체에 관련된 금기와 욕망을 더 직접적으로 다룬다. 설치 작품 ‘미드나잇 선’에서 부드러운 실리콘을 금속으로 꼬집고, 그 아래로 체인을 달아 긴장감을 자아내는 식이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있는 오가영 작가는 사진을 디지털 데이터로 옮긴 뒤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것을 통해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모닝 파크 스네일’은 어디에나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달팽이를 외국인 유학생으로서 자신의 처지에 비유했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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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깨 힘 빼고 농담 더하고, 이래도 전시가 되네[영감 한 스푼]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오늘은 ‘영감 한 스푼’에 새로운 맛을 더해줄 게스트 필자를 모셨습니다. 큐레이터, 통번역자,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재용님께서 올해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의 유쾌한 전시들을 감상한 소감을 들려드립니다.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재용님이 ‘우리 한국의 전시들도 이렇게 농담도 하고 어깨에 힘을 뺐으면 좋겠다’며 나눈 이야기에서 이 뉴스레터는 시작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아래에서 만나보세요 :)(*게스트 필자의 견해는 본 뉴스레터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비엔날레 전시 다 보기’…그 무모한 걸 해내다!많은 예술계 사람들에게 베니스 비엔날레는 일종의 도시 전설입니다. 여기저기서 소식을 듣긴 하지만 실제로 방문하는 사람은 드물고, 막상 방문을 하더라도 며칠 만에는 절대 다 볼 수 없는 규모거든요.‘베니스 비엔날레’라고만 하면 큰 전시 하나만 열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해 비엔날레 주제를 담은 (수백 명의 작가를 선보이는) ‘주제전’과 세계 각국이 저만의 전시를 선보이는 ‘국가관’, 거기에 수십여 개의 ‘병행전시’, 심지어 비엔날레 기간 동안 베니스 전역에서 열리는 또 다른 전시들까지…이 모두를 합치면 비엔날레가 열리는 6개월 동안 족히 100개 이상의 전시가 동시에 열립니다. 그러니 ‘언젠가 한 번은 비엔날레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지’라는 다짐은 ‘올해는 꼭 다이어트에 성공해야지’라는 새해 다짐처럼 실현하기 쉽지 않고, ‘베니스 비엔날레를 봤다’는 말만으로는 도대체 그 많은 전시 중에 얼마만큼을 본 건지 알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무시무시한 규모를 자랑하는 예술 이벤트인 덕분에 베니스 비엔날레를 ‘올림픽’과 비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 우리가 아는 그 ‘올림픽’에 실제로 예술 부문이 존재한 적도 있었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그리고, ‘2년에 한 번’이라는 의미의 ‘비엔날레’는 미술만 아니라 건축도 다루고 있습니다. 미술 비엔날레는 1895년에 시작해 내년으로 60회를 맞이하고, 건축 비엔날레는 1980년에 시작해 올해로 18회를 맞이했습니다.주로 한국에서 비평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저는 작년부터 새해 다짐만 같았던 ‘베니스 비엔날레 전부 다 보기’를 실천하기 위해 주변 동료들과 함께 아예 팀을 꾸려 베니스에서 몇 주 동안 시간을 보냈습니다.100여 개의 전시를 하나씩 다 보고 의견을 나누기 위해 만든 팀의 이름은 ‘베니스로 떠난다’는 뜻의 ‘오프투베니스’인데요, 정직한 이름으로 팀을 만든 덕분인지 작년과 올해 미술, 건축 비엔날레에서 200여 개의 전시를 빼놓지 않고 볼 수 있었습니다.선발 과정을 거쳐 전시를 선보이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뭐든 보여준다면 왠지 엄청나고 비장하고 진지하고 심각한 내용이어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비엔날레의 주제전이나 각 국가별 전시 등에 참여하는 작가나 큐레이터, 건축가가 되었다고 상상해봅시다. 베니스 비엔날레 참가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6개월 동안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수십만 명의 전문가와 일반 관람객에게 자신의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인 것이지요.그래선지 작년과 올해 미술과 비엔날레에서 본 수 많은 전시 중엔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작년 미술 비엔날레 기간 중에 독자적으로 열린 안젤름 키퍼 작가의 전시가 그랬습니다. 키퍼는 베네치아 총독의 관저이자 정부 시설로 쓰였던 ‘두칼레 궁전’에 있는 53×25×10미터 크기의 공간을 거대한 회화 작품으로 가득 채웠습니다.많게는 2000명의 사람이 모여 일하고 회의했던 곳을 21세기의 미술가 한 명이 자신의 작품 한 점으로 가득 채우다니… 전시를 볼 때는 감탄사를 연발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과했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시적으로 설치되어 폐기되는 작품이나 전시장 구조물은 대부분 재활용도 할 수 없는 소재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래서일까요? 작년 미술 비엔날레에 이어 건축 비엔날레를 낱낱이 관람하기 위해 베니스를 찾은 올해는 거대하고 웅장한 설치물이나 엄청난 담론을 제시하는 작품, 전시보다 모두가 평소보다 심각한 척 어깨에 힘을 잔뜩 준 베니스에서 유쾌하게 농담하듯 선보이는 전시와 작품이 더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저 또한 유머가 희박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그런지 진지한 생각은 왠지 심각한 표정과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으로만 전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리기 쉽지 않았지만요.● 전시장 앞 등장한 ‘변기 살해 현장’(!)하지만 29개 국가가 영구적인 ‘파빌리온’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자르디니’ 공원에서 마주친 ‘변기 살해 현장’은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얀 수세식 변기를 산산조각낸 다음 전시장 앞에 파헤친 땅에 반쯤 드러나게 묻어놓고는 접근 차단봉을 둘러놨거든요.그런데 이 ‘사건 현장’은 핀란드 파빌리온이 선보인 전시 <Huussi>(‘후우씨’라고 읽습니다)의 도입부였습니다. ‘후우씨’는 핀란드의 전통 퇴비 화장실(한국에서는 이를 ‘푸세식’이라고 부릅니다)을 부르는 명칭인데요, 핀란드는 올해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예술 감독 레슬리 로스코가 제시한 “미래의 실험실”이라는 주제에 맞춰 전 세계의 수세식 화장실을 푸세식 퇴비 화장실로 교체하겠다는 진지하지만 농담 같은 내용으로 전시를 꾸몄습니다.자르디니 공원에 독립적인 건물이 없는 대부분의 나라가 전시장으로 사용 중인 옛 해군 병기창 ‘아르세날레’ 건물에선 건축 전시 아이디어를 쇼핑할 수 있는 팝업 슈퍼마켓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컴컴하고 길쭉한 건물을 칸칸이 나눠 각 나라의 전시가 이어지는 아르세날레 건물에서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전시의 행렬 가운데 목이 말랐던 저는 어두운 전시장 너머로 (한국의 편의점처럼) 익숙한 조도의 빛을 보고선 시원한 음료수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찜통 더위 탓에 근처에 가기도 어려운 건물 밖 간이 매점을 대신해 쾌적한 실내 매점이 생긴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하지만 그곳은 다름 아닌 라트비아의 전시장이었습니다. 라트비아가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한 2002년부터 2021년 비엔날레까지 참여한 나라들이 각자의 전시를 통해 제안한 506개를 장바구니에 담아 계산할 수 있는 ‘건축 전시 아이디어 슈퍼마켓’을 만든 거죠.이곳에선 세계 각국이 비엔날레에 참여하며 주제로 삼았던 여러 아이디어를 담은 쇼핑 카탈로그도 한 부 얻을 수 있었는데요, 한국의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 역사상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던 전시 <한반도 오감도>가 ‘2014년도의 핫픽’으로 실려 있기도 했습니다. (506가지 건축 전시 아이디어를 쇼핑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도 마련되어 있으니, 한 번 들러보시길 추천드립니다.)이외에도 “집”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정말로 집을 한 채 빌려 비엔날레 기간 동안 ‘퍼포머’들이 돌아가면서 그곳에서 전시장 지킴이 겸 세입자로 살아가는 전시를 선보인 에스토니아, 지난 미술 비엔날레의 폐 건축 자재를 모아 온오프라인에서 열람할 수 있게 만든 독일 등 “미래의 실험실”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이보다 더 경쾌한 농담처럼 풀어낼 수 있을까 싶었던 나라가 많았습니다.이런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들은 분명 농담을 잘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경쾌한 전시들은 결코 밝지 않은 지구의 미래를 건축을 통해 풀어내는 전시라면 어련히 심각한 그래프와 도면, 정교한 모형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저를 머쓱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비평가로서 또 큐레이터로서는 베니스에 우연히 만난 진지하되 가벼운 농담 같은 건축 전시를 한국에서도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한 번쯤 그런 전시를 기획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기도 했고요. 지금까지 베니스에서 만난 많은 전시, 특히 한국관을 장식했던 전시들을 생각해보면 왠지 “농담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부터 떠오르거든요.◆ 박재용큐레이터, 통번역가, 비평가로 활동합니다. 동시대 예술과 이론 서가 ‘서울리딩룸’을 운영하는 장서광이기도 합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모든 전시를 다 훑어 보기위해 팀 ‘오프투베니스’를 동료들과 만들었고, 리서치 밴드 ‘NHRB’에서는 프런트맨을 맡고 있습니다. 올해 건축 비엔날레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내년 베니스 미술 비엔날레 방문을 위한 숙소 예약을 마쳤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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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미로서 마주친 한국 설화… 뿌리 찾아가는 여정

    험상궂은 짐승과 할머니 신이 중앙을 지키고, 좌우로 알록달록한 색동 조각보가 걸렸다.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듯 불길한 분위기의 입구를 지나면 비좁은 통로로 가득한 미로가 나타난다. 관객은 어리둥절한 채 미로 속에서 벽에 걸린 작은 그림과 조각들을 만난다. 마침내 미로를 빠져나오면 마치 광장 가운데 무대처럼 설치된 전시대 위에 대형 회화 ‘트릭스터, 잡종, 짐승’(2023년)이 보인다. 한국계 캐나다 작가 제이디 차(40)의 국내 첫 개인전이 13일 열렸다. 차 씨는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에서 문을 연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 전시에서 한국 문화와 설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33점을 선보인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한국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고 자란 차 씨는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라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끝에 그는 한국 역사와 민속, 신화를 공부했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이미지를 대중문화 등 동시대 문화와 결합해 작품으로 선보이며 미술계에서 빠르게 주목받았다. 이번 전시장 입구의 작품 ‘안내자와 짐승’ 역시 청바지의 소재인 데님을 이용해 한국 전통 신화 속 해태를 형상화한 것이다. 지난해 차 씨는 런던 공공미술관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바리공주’를 소재로 개인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전시에서 미술관에 한옥을 지었던 그가 이번 전시에선 가벽으로 미로를 만들어 눈길을 끈다. 차 씨는 “우선은 관객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지루함 없이 작품을 보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 공간은 입구와 미로, 광장까지 크게 세 곳으로 구성됐다. ‘불길하고 초현실적인 입구’에서 ‘혼란스러운 미로’를 지나 ‘넓은 세계가 열리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세상에 태어나 혼란을 겪다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단단한 뿌리를 갖게 되는 성장 과정을 담은 것이다. 차 씨는 “내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조상과 연결되는지, 내가 겪은 심리적 여정을 담았다”고 했다. 이런 구성 속에 전시된 작품 ‘할머니 산’ ‘미래의 우리들’ 등은 주류 사회의 울타리에서 밀려난 것들을 주인공으로 다시 탄생시킨다. 무력하거나 불쌍한 존재로 여겨졌던 할머니는 지혜롭고 강인한 여신으로, 여우 갈매기 등 캐나다에서 천덕꾸러기 취급 받는 동물들은 신비로운 존재로 그려진다. 전시 제목의 구미호 역시 영리하고 진취적인 주체를 뜻한다고 한다. 10월 12일까지. 5000∼8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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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영웅, 팬클럽 이름으로 2억 기부… 김혜수-싸이-유재석 등 성금 1억씩

    연예인들도 이재민을 위해 기부에 나서고 있다. 가수 임영웅은 소속사와 함께 팬클럽 ‘영웅시대’ 이름으로 17일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2억 원을 전달했다. 배우 김혜수와 가수 싸이, 방송인 유재석도 이날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각각 1억 원을 기부했다. 유재석은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분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날 배우 김우빈과 신민아, 가수 이찬원도 각각 1억 원을 전달했다. 고향이 충북 청주인 배우 한효주도 5000만 원을 기부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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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산한 예술가의 자화상, 그래도 후회는 없다[영감 한 스푼]

    렘브란트 판레인(1606∼1669)은 미술사에서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평생 회화 300점, 에칭(판화) 300점, 드로잉 2000점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자화상을 40여 점이나 남긴 것이 독특합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자화상 중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그린 작품이 한국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 출품된 ‘63세의 자화상’(1669년)입니다. 평생을 치열하게 살다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화가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그림을 통해 자세히 만나보겠습니다.34세 예술가의 패기작품 속 렘브란트는 단출한 모습입니다. 모자와 깃에 수가 놓인 재킷을 입고 있지만,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은 그의 얼굴과 흰 머리, 그리고 옷깃 일부분일 뿐입니다. 이 그림을 X선으로 촬영한 사진에서는 그가 손에 붓을 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최종 작품에서는 그것조차 사라지고, 손을 조용히 모은 채 앞을 응시하는 남자만이 남아 있습니다. 63세의 자화상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전에,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작품을 한번 보겠습니다. 렘브란트가 34세일 때 그렸던 1640년 자화상입니다. 이번 한국 전시에는 출품되지 않았지만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한 이 작품에서 렘브란트의 포즈와 표정은 비슷하지만, 나머지는 완전히 다릅니다. 34세 렘브란트는 장식이 달린 멋진 모자를 쓰고 흰 주름이 잡힌 고급스러운 셔츠에 벨벳과 모피로 장식된 재킷을 입고 있습니다. 이때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의 가장 인기 있는 초상화가로 자신만만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가 입고 있는 옷과 장식은 이 작품이 그려진 1640년대가 아니라 100년 전인 1520년대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이 시기는 수많은 예술가가 동경했던 르네상스 예술이 정점에 달할 무렵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1490년대부터 1527년까지를 ‘하이 르네상스’라고도 부릅니다. 또 그가 팔을 걸치고 있는 난간은 티치아노의 작품에서, 또 전체적인 인물의 분위기는 르네상스 거장인 뒤러나 라파엘로의 초상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렘브란트는 이 자화상을 그릴 무렵 대가들의 작품을 보고 따라 그리기도 했기에 그 영향이 물씬 배어납니다. 특히 의미심장한 건 렘브란트가 참고한 티치아노의 작품이 이탈리아 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입니다. 화가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진 것으로 여겨졌던 시인의 복장과 포즈를 차용해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34세 렘브란트는 젊은 패기와 자신감을 뛰어난 기교와 함께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있는 그대로, 후회는 없다이제 다시 63세의 자화상을 보겠습니다. 나를 보여주기 위해 치장했던 화려한 모든 것들이 물러나고, 오른쪽 얼굴과 이마만 환한 빛을 받고 있습니다. 보석 달린 모자에 가려졌던 검은 머리칼은 이제 은발이 되었습니다. 정면을 똑바로 응시했던 야심에 찬 눈빛은 깊이 관조하는 눈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성공한 화가였던 렘브란트가 이 자화상을 그렸을 때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30대 때 렘브란트는 당시 평균 집값의 10배가 넘는 고급 주택을 매입하고, 르네상스 거장들의 드로잉을 수집하며 마음껏 취향을 즐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1656년 그린 대작 ‘야경’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 수입도 줄어들게 됩니다. 이해 렘브란트는 파산을 신청하고 자신이 수집했던 예술품, 그릇, 조각, 보석 등 모든 것을 경매에 넘깁니다. 이 모든 것을 겪고 난 화가의 얼굴은 그러나 놀랍도록 차분합니다. 심지어 듬성듬성해진 눈썹과 입가의 수염까지도 자세히 묘사했죠. 이 작품에서는 특히 물감을 두껍게 쌓아 올려 처진 피부를 입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또 얼굴 피부에 감도는 회색, 흰색, 보라, 분홍과 노랑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어떤 마음으로 이 자화상을 그렸을까요. 젊은 시절 어떤 자화상들은 컬렉터에게 판매하기 위해 그린 것도 있었고, 앞서 본 34세의 자화상은 예술가로서 패기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 자화상에서 렘브란트는 붓도 팔레트도 던져버리고 자신의 얼굴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 얼굴 속에 담긴 인생의 여러 순간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파산해서 화려한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고, 생계유지를 위해 그림 도구만 겨우 지키게 된 렘브란트는 불행했을까요.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그의 표정에서 그런 불행의 감정이나 후회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어진 때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고, 그것이 준 고통이나 슬픔이 만든 깊은 주름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화려한 성공과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것만이 아니라, 삶의 진정한 순간들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예술이기에 렘브란트가 남긴 작품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나이 든 화가는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남기고자 최선을 다했음을, 말년의 소박한 자화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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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자가 틈새로 빛 보고 비 맞고… 새 명상관에 자연을 담았습니다”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82)는 대표작 중 하나인 일본 오사카 ‘빛의 교회’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내부 정면의 십자가를 막고 있는 유리창을 떼고 싶다고 했다. 빛의 교회는 벽을 십자가 모양으로 뚫어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그의 소망이 드디어 이뤄졌다. 천장을 십자가 모양으로 뚫어 하늘이 그대로 보이게 설계한 건축물이 한국에 만들어진 것. 강원 원주시 뮤지엄산 개관 10주년을 맞아 안도가 만든 새 명상관 ‘빛의 공간’이다. 18일 개관하는 명상관을 16일 미리 찾았다. 노출 콘크리트로 된 건물은 삼각형 모양의 입구로 들어가면 정사각형으로 된 고요한 공간이 나타난다. 천장에는 십자가 모양의 틈이 있어 비 오는 날에는 떨어지는 비를 맞고, 맑은 날에는 태양 빛을 바로 받을 수 있다. 빛의 공간에는 그 외 어떤 장식도 없다. 이곳에서 안도를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사람이 자연과 항상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도록 만든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최근 10년간 5개의 장기를 떼내는 큰 수술을 두 번 받았지만, 목소리에 힘이 있고 눈빛도 형형했다. 이번 명상관은 ‘플라톤의 입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플라톤은 물질의 4원소, 즉 물·불·흙·공기는 각각 정이십면체,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이며 우주는 정이십면체라고 봤다. 안도는 이러한 도형들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플라톤은 정사각형, 원, 삼각형 등 모든 형태의 원점인 개념들을 제시했죠. 그런 플라톤의 입체가 건축물이 된다면 이런 모양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오사카에 있는 빛의 교회도 지속적으로 방문해 빛의 공간처럼 언젠가 꼭 유리를 제거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웃었다. 그는 “그곳의 목사님은 저를 볼 때마다 ‘안도 씨, 절대 유리는 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갈 때마다 목사님을 설득한다”고 했다. 빛의 공간은 제한적인 공간에서 하늘과 빛을 마주하지만, 야외보다 더 생생하게 자연을 만나게 된다. 2019년 안도가 이곳에 지은 ‘명상관’이 곡선의 돔 형태로 관람객을 감싸 안는 모양새라면, 빛의 공간은 직선형으로 더 엄숙하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그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은 결국 원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플라톤을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로마의 신전 판테온의 천장에도 유리가 없는 원형 구멍이 있다. 그처럼 자연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고 말했다. 올해 4월 뮤지엄산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안도 다다오-청춘’은 개최 3개월 만에 누적 입장객 10만 명을 돌파했다. 안도는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지만 (한일 양국 간) 문화는 교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점을 한국인들이 이해해 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고졸 출신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1995년)을 수상한 안도. 그는 “15세 때부터 열심히 아이디어를 연구하며 일사불란하게 일하면 결과가 나오는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했다”며 “누군가 나를 볼 때도 그런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할리우드 스타 등 유명인의 의뢰에도 깐깐하게 작업을 선택하는 그는 “‘내가 만든 것을 잘 사용해 주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열심히 사는 사람과 함께 일한다”며 “뮤지엄산은 앞으로 200, 300년 이상 사용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에서 뮤지엄산을 비롯해 제주의 본태박물관과 글라스하우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등을 설계했다. 국내에서 새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지금은 없다고 답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저와 꿈을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달리고 싶습니다.”원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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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과 몰락 모두 담은 자화상… 인스타 시대 이 화가가 남긴 메시지[영감 한 스푼]

    렘브란트 반 레인(1606-1669)은 미술사에서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평생 회화 300점, 에칭(판화) 300점, 드로잉 2000점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자화상을 40여 점이나 남긴 것이 독특합니다. 회화만 40여 점(전체 약 80여 점)이니 회화는 10%를 넘는 비중입니다.이런 렘브란트가 그린 자화상 중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그린 작품이 한국을 찾아 전시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 출품된 ‘63세의 자화상’(1669년)입니다. 평생을 치열하게 살다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화가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그림을 통해 자세히 만나보겠습니다.34세 예술가의 패기작품 속 렘브란트는 단출한 모습입니다. 모자와 깃에 수가 놓인 재킷을 입고 있지만,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은 그의 얼굴과 흰 머리, 그리고 옷깃 일부분일 뿐입니다.이 그림을 X선으로 촬영한 사진에서는 그가 손에 붓을 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최종 작품에서는 그것조차 사라지고, 손을 조용히 모은 채 앞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만이 남아있습니다.63세의 자화상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전에, 극명한 대비를 이룰 수 있는 작품을 한 번 보겠습니다. 렘브란트가 34세일 때 그렸던 1640년 자화상입니다. 포즈와 표정은 비슷하지만, 나머지는 완전히 다릅니다.34세 렘브란트는 장식이 달린 멋진 모자를 쓰고 흰 주름이 잡힌 고급스러운 셔츠와 그 위 벨벳과 모피로 장식된 재킷을 입고 있습니다. 이때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의 가장 인기 있는 초상화가로 자신만만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흥미롭게도 그가 입고 있는 옷과 장식은 이 작품이 그려진 1640년대가 아니라 100년 전인 1520년대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이 시기는 수많은 예술가가 동경했던 르네상스 예술이 정점에 달할 무렵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왕성한 활동을 했던 1490년대부터 1527년까지를 ‘하이 르네상스’라고도 부릅니다.또 그가 팔을 걸치고 있는 난간은 티치아노의 작품에서, 또 전체적인 인물의 분위기는 북구 르네상스 거장인 뒤러나 라파엘로의 초상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렘브란트는 이 자화상을 그릴 무렵 대가들의 작품을 보고 따라 그리기도 했기에 그 영향이 물씬 배어납니다.특히 의미심장한 건 렘브란트가 참고한 티치아노의 작품이 이탈리아 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소토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입니다. 시각 예술가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진 것으로 여겨졌던 시인의 복장과 포즈를 차용해 스스로를 나타내면서 34세 렘브란트는 젊은 패기와 자신감을 뛰어난 기교와 함께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있는 그대로, 후회는 없다이제 다시 63세의 자화상을 보겠습니다. 나를 보여주기 위해 치장했던 화려한 모든 것들이 물러나고, 오른쪽 얼굴과 이마만 환한 빛을 받고 있습니다. 보석 달린 모자에 가려졌던 검은 머리칼은 이제 은발이 되었습니다. 정면을 똑바로 응시했던 야심에 찬 눈빛은 깊이 관조하는 눈빛으로 바뀌었습니다.성공한 화가였던 렘브란트가 이 자화상을 그렸을 때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30대 렘브란트는 당시 평균 집값의 10배가 넘는 고급 주택을 매입하고, 르네상스 거장들의 드로잉을 수집하며 취향을 마음껏 즐기는 삶을 살았습니다.그러다 1656년 그린 대작 ‘야경’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 수입도 줄어들게 됩니다. 이 해 렘브란트는 파산을 신청하고 자신이 수집했던 예술품, 그릇, 조각, 보석 등 모든 것을 경매에 넘깁니다.이 모든 것을 겪고 난 화가의 얼굴은 그러나 놀랍도록 차분합니다. 심지어 듬성해진 눈썹과 입가의 수염까지도 자세히 묘사했죠. 이 작품에서는 특히 물감을 두껍게 쌓아 올려 쳐진 피부를 입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또 얼굴 피부에 감도는 회색, 흰색, 보라, 분홍과 노랑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렘브란트는 어떤 마음으로 이 자화상을 그렸을까? 젊은 시절 어떤 자화상들은 컬렉터에게 판매하기 위해 그린 것도 있었고, 앞서 본 34세의 자화상은 예술가로서 패기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 자화상에서 렘브란트는 붓도 팔레트도 던져버리고 자신의 얼굴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 얼굴 속에 담긴 인생의 여러 순간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것처럼 말입니다.파산해서 화려한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고, 생계유지를 위해 그림 도구만 겨우 지키게 된 렘브란트는 불행했을까?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그의 표정에서 그런 불행의 감정이나 후회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어진 때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고, 그것이 준 고통이나 슬픔이 만든 깊은 주름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화려한 성공과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것만이 아니라, 삶의 진정한 순간들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예술이기에 렘브란트가 남긴 작품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나이 든 화가는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남기고자 최선을 다했음을, 말년의 소박한 자화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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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보고싶은 것만 볼 수 있는 우물 안은 천국일까

    지금의 소셜미디어와 알고리즘이 사용자 맞춤형 정보만을 제공하며 우리를 ‘필터 버블’에 가둔다면, 소설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세상’ 속 ‘옵터’는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시각 등 지각까지 제어하며 더 크고 강력한 버블 속에 사용자를 가둔다. 증강현실 기술로 만들어진 ‘옵터’를 사용하면 반지하에서도 오션뷰가 펼쳐지고,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예쁘고 잘생겨지며, 상대가 나에게 욕설을 하거나 정치적으로 다른 의견을 말해도 듣기 좋은 말로 바뀌어 들린다. 이렇게 늘 원하는 것만 보고 듣는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장강명의 새 소설집인 이 책은 심훈문학대상을 받은 표제작을 포함해 일본의 권위 있는 공상과학(SF) 문학상인 성운상 해외 단편부문 후보작에 오른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등 단편 7편을 수록했다. 이번 소설집의 장르를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F’로 규정한 저자는 과학과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양한 상상력과 이야기로 풀어 나간다. ‘알래스카의 아이히만’에서는 타인의 기억을 주입할 수 있는 ‘체험 기계’가 등장한다.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이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체험하고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기자의 시선으로 서술한다. 이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도덕적 황금률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땐 비극을 낳는다고 역설한다. “타인은 지옥이고, 어쩌면 그 지옥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있음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여러 편의 소설은 공통적으로 기술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결핍과 염원에 의해 전개된다는 걸 보여준다. 원하는 것만 보고 들으려는 마음이 필터를 만들고, 끔찍한 고통을 보상받으려는 마음이 ‘체험 기계’를 만들며, 관계의 불안에 대한 두려움이 ‘데이터 시대의 사랑’ 속 앱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그런 미래가 열렸을 때 펼쳐지는 새로운 혼란을 비추며 책은 묻는다. 기술이 정말 우리의 결핍과 아픔을 채워줄 수 있느냐고, 그것은 또다시 우리의 문제가 아니냐고.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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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독 수교 140주년 기념전 ‘베를린에서 서울로: 지평선 넘어’

    한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한국 작가 8인, 독일 작가 8인의 작품 86점을 선보이는 전시 ‘베를린에서 서울로: 지평선 넘어’가 서울 갤러리 3곳에서 나뉘어 열리고 있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의 베르벨 폰 룩스부르크 갤러리에서 열린 ‘베를린, 서울을 만나다’전을 국내에서 새롭게 기획한 전시로, 서울 종로구 초이앤초이 갤러리, 강남구 호리아트스페이스 및 아이프라운지에서 볼 수 있다.한국과 독일의 젊은 미술가들이 ‘정체성’과 ‘존재’라는 공통된 주제를 회화와 입체 설치 등 다양한 형식으로 선보인다. 참여 작가는 데이비드 레만, 프릿츠 본슈틱, 헬레나 파라다 김, 레브 케신, 피터 헤르만, 로버트 판, 세바스티안 하이너, 수잔느 로텐바허, 정재호, 송지혜, 송지형, 남신오, 정소영, 이태수, 변웅필, 전원근이다.변웅필은 외모가 개인의 가치를 결정하는 사회에 느끼는 회의를 인물화로 표현한다. 헬레나 파라다 김은 한복 시리즈를, 정재호는 근대화 시대의 건물을 회화로 그렸다. 정소영의 설치 작품은 생태계의 법칙에 인간성을 빗대어 표현한 개념미술을 선보인다. 피터 헤르만은 도시의 일상을, 프릿츠 본슈틱은 버려진 물건들을 재조명한다. 송지혜는 과장된 표현방식으로 평범하고 우스꽝스러운 현대인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전시는 8월 24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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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에 대한 애정과 비판, 박수근과 통해”

    “박수근 화백(1914∼1965)이 가난했던 사람들의 선함과 진실에 천착했다면, 저는 그런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그리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박 화백의 형식적, 미학적 성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깨달았습니다.”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13일 열린 제8회 박수근미술상 시상식에서 수상자 노원희 작가(75)가 말했다. 그는 “박 화백이 작품을 그리던 1950, 60년대에는 찬란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 있었고 그 하늘을 마당 있는 집에서 바라봤다”며 “고르게 가난했지만 인간의 품위와 존엄을 지향했던 그 시절의 정신을 작품에 어떻게 살려야 할지 지금까지 고민해 왔고 앞으로도 고민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 화백의 예술혼을 기리는 뜻에서 제정된 박수근미술상은 동아일보와 양구군, 강원일보, 박수근미술관이 공동 주최한다. 이인범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장은 “평생에 걸쳐 은유적, 서정적 감수성으로 일상과 현실에 대한 애정과 비판의식을 표현한 노 작가의 작품세계는 박 화백의 예술 정신과 맥이 통한다”고 했다. 박 화백의 장녀인 박인숙 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은 “아버지의 예술 세계는 가난 속에 핀 꽃”이라며 “아버지가 화가의 꿈을 키웠던 이곳에서 노원희, 차기율 작가(전년도 수상 작가)를 모실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서흥원 양구군수는 “노 작가는 올곧은 자세와 작품성을 지켜온 정신적 고결함이 박 화백의 삶의 태도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노 작가는 이날 박 화백의 작품 ‘아기 업은 소녀’(1963년)를 조각으로 만든 상패와 창작지원금 3000만 원을 받았다. 제7회 박수근미술상 수상 작가인 차기율 인천대 조형예술학부 교수(62)의 개인전도 이날 개막했다. 차 교수의 작업 세계를 아우르는 회화, 설치, 기록물 등 200여 점이 10월 15일까지 전시된다. 차 교수는 “고난을 이기고 우뚝 선 박 화백을 흠모해 왔다”며 “더 전진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고 뜨겁게 작업에 임하겠다”고 말했다.양구=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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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출신 시야오 왕, 국내 첫 개인전… 오일스틱-목탄 그림 8점 무료 전시

    흰 캔버스 위에 목탄으로 그어 내려간 선이 춤을 추듯 흐르고, 그 선의 끝에는 터진 폭죽처럼 색들이 매달려 있다. 오일스틱(막대 형태의 유화 물감)으로 그은 색과 목탄으로 그린 검은 선은 손끝으로 문질러 번지기도 해 움직임이 느껴진다.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중국 출신 작가 시야오 왕(31)의 작품들이 처음 한국을 찾았다. 서울 강남구 페로탕 도산파크는 4일부터 시야오 왕의 개인전 ‘알롱제’를 열고 있다. ‘알롱제’는 발레에서 동작의 시작이나 끝에 팔을 뻗어 몸을 길게 늘이는 것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동작이 흐트러지지 않고 완성될 수 있도록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상태인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순간이 캔버스 위에 선을 그리기 직전의 마음과 비슷하다고 보았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신작 8점은 이렇게 마음을 집중하고 즉흥적으로 그린 추상화(사진)들이다.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명상을 하듯 떠오르는 생각을 흘려보내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선을 그린다고 한다. 감각을 더 예민하게 느끼기 위해 발레를 배우고 있다. 산등성이를 떠올리게도 하는 선의 모습에 대해 그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중국 충칭은 산이 많고 앞으로는 양쯔강이 흘렀다”며 어릴 적 성장 배경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작품으로 최근 미술 시장에서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영국 런던 마시모데카를로, 독일 베를린 쾨니히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페로탕 개인전은 프랑스 파리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그의 작업을 추천받은 페로탕 갤러리 설립자 에마뉘엘 페로탕이 베를린 작업실을 방문해 30분 만에 전시를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8월 19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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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회 박수근미술상 노원희 작가

    화가 노원희 씨(75·사진)가 제8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10일 선정됐다.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강원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이 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을 기리는 뜻에서 2016년 제정됐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노 작가는 1980년부터 민중미술을 이끈 ‘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으로 활동했다. 구상 회화를 통해 한국 사회가 당면한 정치 사회 역사 젠더 환경 등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현해 왔다. 심사단은 “노 작가는 일상과 현실에 대해 애정과 비판의식을 갖고 이를 서정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치열한 작가 정신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13일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다. “사회사 없는 개인사 없어”… 40년간 화폭에 담은 ‘민중의 삶’ 엄혹한 1960년대 대학신문 기자시위대 취재하며 현실 문제 고민… 인권 변호사 조영래도 취재 “결핍 채우려 가정-작업활동 병행… ‘비판적 현실주의 작가’ 불렸으면” 노원희 작가(75)가 서울대 미대생이었던 1960년대. 당시 캠퍼스였던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은 위수령으로 군인이 늘 있었고 학교는 수시로 휴업했다. 서울대 대학신문 기자였던 그는 시위대를 따라다니며 현장을 취재하고 발언을 기록했다. 그런 그의 작품에는 일상에 숨은 공포와 폭력이 감돈다. 1980년 작품 ‘한길’은 어린이들이 노는 장면을 묘사했지만 먹구름이 잔뜩 꼈고, 한 아이가 굳은 표정으로 총구를 겨누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하이라이트’전에 미술관 대표 소장품으로 소개됐다. 서울 종로구의 자택에서 5일 만난 노 작가는 “사회사가 없는 개인사는 없다”며 “대학생 때 학보사 기자를 하며 자연스럽게 갖게 된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작품에서 현실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광장시장에 가는 버스 안에서 전화로 수상 소식을 들은 그는 반나절 동안 시장을 거닐며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수상 전시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덜컥 걱정이 됐다는 것이다. 박수근의 작품 세계를 되짚어본 그는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박수근이 독학으로 탄탄한 조형 세계를 구축한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가 활동했을 당시 서민은 공동체 구성원 전부였죠. 다 같이 가난한 보통 사람들의 선함과 진실을 표현하고자 노력했고, 거기서 근원적 정신성이 느껴졌습니다.” 박수근의 다음 세대인 자신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그로 인해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노 작가는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조영래 변호사가 대학 1학년일 때 그가 발언한 좌담회 현장을 취재했고, 1970년대 후반에는 야학운동가들과도 가깝게 교류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를 화폭에 담았다. 1980년부터 ‘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으로 활동한 그는 민중미술가로도 불린다. 이에 대해 그는 “민중미술가라고 하면 민중의 삶에 동화되어 살아가야 하는데, 내가 그렇게 살고 있나 의문이 들 때도 있다”며 “비판적 현실주의 작가라는 명칭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삶의 큰 변화가 생긴 계기로 결혼을 꼽은 그는 여성의 현실에 대해서도 다뤘다. 거리에 널브러진 조리 도구 앞에서 프라이팬을 든 여성들이 우뚝 서 있는 2018년 작품 ‘무기를 들고’는 40년간 주부로 살며, 살림살이하는 사람들이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의식을 담았다. 노 작가는 “결혼 이후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작업 활동을 못 하게 된 작가들은 항상 결핍을 느낀다”며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가정생활을 하면서도 근근이 작업 활동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광화문에서 피켓 시위하는 사람들처럼 일상에서 만나는 사회 문제를 여전히 다루는 그는 최근 산업 재해를 주제로 몇 편의 작업을 해왔고, 당분간은 이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1982년부터 2013년까지 부산 동의대 미술학과 교수를 지냈다. 제8회 박수근미술상은 운영위원회(위원장 이인범 아이비리인스티튜트 대표)가 추천위원 5명을 위촉했고, 추천위원이 후보 11명을 선정해 심사위원회를 거쳐 수상자를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김영순 전 부산시립미술관장이 위원장을 맡았고,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장, 김현숙 KISO 미술연구소장, 이준 삼성문화재단 자문위원, 윤동천 전 서울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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