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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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4-03-28~2024-04-27
미술54%
문화 일반10%
사회일반7%
칼럼7%
문학/출판7%
금융3%
사고3%
인사일반3%
산업3%
음악3%
  • [책의 향기]발효 음식 누명 벗기기

    18세기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은 항해 전 모든 선원에게 매주 독일식 양배추 절임인 사워크라우트를 900g씩 먹도록 명령했다. 영국인에게 낯선 독일 음식을 권한 덴 이유가 있었다. 사워크라우트 한 접시에는 비타민C 약 150g이 들어 있어 수백 년간 많은 선원을 죽게 한 괴혈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됐다. 효모와 곰팡이, 박테리아 등 각종 미생물을 이용해 직접 만드는 발효식품은 20세기 들어 위험한 것으로 취급됐다. 이 무렵 공장에서 식품을 생산하는 것이 발달하면서 멸균 시설에서 베이킹파우더 같은 화학적 재료를 사용한 발효만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음식·문화사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런 문화가 발효식품의 다양한 맛과 정체성을 죽였다고 본다. 책은 와인과 맥주에서 출발해 수천 년간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발효식품의 역사를 되짚는다. 19세기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나폴레옹 3세의 부탁으로 상한 와인을 조사하다 발효가 부패가 아닌 생식의 결과임을 알아내는 과정부터, 양치기가 깜빡하고 놓고 간 샌드위치에서 푸른곰팡이 치즈를 발견한 이야기, 한국의 김치와 독일의 사워크라우트 등 채소를 발효하는 다양한 방식 등 여러 시대와 공간을 아우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자는 발효 식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고자 한다. 물론 과정이 잘못될 경우 발효 식품은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려움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영양과 효과를 포기하지 말고, 현명하게 알아나가자고 제안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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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로 떠나는 시간 여행[영감 한 스푼]

    오늘은 대구미술관에서 10월 31일 개막한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전을 소개합니다.이 전시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1606~1669)의 판화를 모은 대규모 전시입니다. 최근에는 판화도 기술적 진화로 하나의 장르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17세기 판화라고 하면 사이즈도 작고 색채도 제한적입니다.그래서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전시를 방문했는데, 우선 작품 수가 120점에 달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렘브란트 에칭이 290~300점이라고 하니, 전체의 절반 정도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인 셈입니다.전시를 담당한 이정희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로부터 자세한 전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렘브란트의 DNA는 에칭에 있다”우선 어떻게 이런 전시가 가능했을지가 저는 가장 궁금했고, 그것을 질문했습니다.대구미술관에 전시된 모든 작품은 네덜란드 렘브란트순회재단(Stichting Rembrandt op Reis)가 소장하고 있는 것인데요. 이 재단을 만든 얀 멀더스 대표는 사업가 출신으로, 렘브란트 판화를 하나씩 모으면서 현재는 약 220점을 갖고 있습니다.멀더스 대표는 사업만 한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도 근무했던 문화 예술인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누군가 보여준 렘브란트의 판화 작품과 동판을 보고 반해 컬렉션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렘브란트의 DNA가 여기에 들어 있다”고 느꼈다고 합니다.지금은 80대를 바라보고 있는 멀더스 대표는 자신이 갖고 있는 판화를 세상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재단을 만들고, 전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그르노블 미술관, 암스테르담 렘브란트 하우스 뮤지엄 등에 소장품을 대여해주고 있습니다.이번 대구미술관 전시는 벨기에 앤트워프의 판화 미술관 ‘뮤지엄 드 리드’가 렘브란트순회재단과 협업해 올해 초 열었던 전시의 확장판입니다. 벨기에에서는 84점을 전시했는데, 대구미술관에서는 120점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대구미술관 전시 공간이 크다 보니 84점으로는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장자에게 요청했더니 자신이 가진 컬렉션 중에 얼마든지 마음대로 선택해도 좋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렘브란트 에칭은 워낙 오래전부터 연구가 되어 왔기 때문에, 그 주제가 대략 6~7개로 나뉩니다. 이를 기준으로 이번 전시는 7개 카테고리를 되도록 골고루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구성했습니다.”시간 여행 떠나는 듯 생생한 장면들전시장에 들어서면 멀더스 대표가 ‘렘브란트 DNA가 있다’고 느낀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전시는 크게 △자화상 △거리의 사람들 △성경 속 이야기 △장면들 △풍경 △습작 △인물·초상 등 7개 분류로 나눠지는데요. 여기서 물론 가장 잘 알려진 명작은 성경을 주제로 한 것들이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자화상과 거리의 사람들 부분입니다.우선 자화상 코너에서는 우리가 유화로 만나는 멋진 모습의 렘브란트뿐 아니라, 헝클어진 머리, 쩍 벌린 입, 그늘 아래 어두운 얼굴 등 다양한 표정과 형태를 한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렘브란트가 이런저런 표정을 지어보면서, 사람의 얼굴을 탐구하는 흔적을 아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습니다.이것이 확장된 버전은 바로 거리의 사람들입니다. 렘브란트는 거리로 나아가 눈먼 바이올린 연주자, 지팡이를 짚은 농부, 떠돌이 가족, 의족을 한 거지 등 현실의 풍경을 사진 찍듯 포착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종이 위에 찍힌 판화지만, 생생한 묘사 속에 실제로 17세기 네덜란드의 어느 거리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이 작품들에 푹 빠져서 너무 가까이 다가서다 전시장 지킴이 분에게 저지받기도 했는데요. 이번 전시는 작은 작품 사이즈를 고려해 특별해 경계선을 치지 않았다고 이 학예사는 설명했습니다.전시 준비 과정에서 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돋보기를 놓아야 하나 싶고, 또 작품과 관객의 안전을 헤쳐서도 안 되니까요. 그래도 바닥에 유도선만 그리고 과하게 제지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번 주말 전시장을 돌아보니 관객분들께서 스스로 조심하면서 감상하는 모습에 안심했습니다.이렇게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거리의 사람들에 푹 빠져서 보다 뒷부분에 이르면, 그가 어떻게 성경 속 주제를 교리적 차원을 넘어 인간의 이야기로 묘사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정희 학예사는 ‘착한 사마리아인’을 예로 들었습니다.이 장면을 만약 다른 작가라면 여관 주인에게 돈을 건네는 것만 부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뒤쪽 배경에 여자가 우물에서 물을 긷고, 앞쪽에는 강아지가 볼일을 보는 모습이 나오죠. 흔히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렘브란트는 그것을 넘어 카메라로 찍듯 세상을 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벨기에 전시도 이런 부분을 강조했고, 저도 공감해 ‘17세기의 사진가’라는 전시 명을 붙이게 됐습니다.전시장에서는 렘브란트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흔적, 또 에칭 판화를 만드는 방법을 담은 영상 등도 볼 수 있습니다. 에칭의 매력에 푹 빠져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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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빔프로젝터-매핑시스템 통한 ‘몰입형 전시’… 새로운 형태의 예술?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새로운 형태의 예술 전시인가, 가볍게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인가. 고화질 빔프로젝터와 매핑 시스템, 음향 시설을 통해 예술 작품을 소재로 한 영상을 사방에 송출하는 ‘몰입형 전시’는 최근 수년간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그간 몰입형 전시는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등 작고한 작가의 작품을 주로 다뤄온 가운데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86)가 참여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강동구 ‘라이트룸 서울’에서 1일 시작한 ‘데이비드 호크니: Bigger & Closer’는 가로 18.5m, 세로 26m, 높이 12m 규모 공간에서 열린다. 프로젝터 20여 개, 스피커 1000여 개를 갖추고 바닥까지 5개 면을 사용한다. 상영되는 영상은 ‘원근법 수업’, ‘호크니, 무대를 그리다’, ‘도로와 보도’, ‘카메라로 그린 드로잉’, ‘수영장’, ‘가까이서 바라보기’ 등 6개 주제로 구성됐다. 국내에서 열린 전시 대부분은 여러 개의 공간을 활용해 작품 자체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호크니 전은 작가의 육성 내레이션이 나오고 스토리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한 공간에 앉아서 감상하는 형태로, 대규모 영화관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영국에서 제작돼 런던에서 먼저 선보인 이 전시는 비평가에게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가디언은 빠르게 전환되는 화면과 단편적인 설명 때문에 “잘못된 렌즈로 위대한 예술을 보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아트리뷰는 “퀴어 문화 등 호크니 예술의 중요한 영향력이 빠졌다”고 봤다. 기자가 직접 보니 작품 자체보다는 호크니 작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쪽에 가까웠다. 다만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 경험이 많지 않은 관객을 대상으로 저변을 확대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라이트룸 서울’은 전시장 외에도 4만9586㎡(약 1만5000평) 규모 부지에 아트숍, 카페, 레스토랑, 온실과 정원 등을 갖출 예정이다. 아직은 전시장만 완공된 상태다. 내년 5월 31일까지. 1만5000∼3만 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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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 속 어느 순간, 낯선 감각이 살아났다

    이사 가는 날. 매일 쓰던 소파와 의자, 탁자와 거울이 밧줄에 꽁꽁 묶이고 잡동사니를 담은 박스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익숙했던 집 안 풍경이 극적으로 변하는 순간, 가구들은 무대 위 배우가 된 것처럼 낯선 모습으로 살아난다. 유근택 작가(58·사진)의 연작 ‘이사’ 속 장면이다. ‘분수’, ‘창문’, ‘이사’ 등 유근택의 주요 연작 40여 점을 선보이는 개인전 ‘반영’이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유근택은 전통 수묵화가 추구했던 관념적 정신성을 벗어나 삶의 장면에서 포착한 감각의 정신성을 드러내 왔다. 이른바 ‘일상성’으로 한국화단의 신선한 움직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상성’은 단순히 일상의 모습을 표현하는 차원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의 독특한 순간에 느끼는 낯선 감각, 여기서 이어지는 정신적 깨달음을 말한다. 깨달음은 저 먼 곳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몸, 발 디딘 땅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갤러리 1층에서 만나는 ‘창문’과 ‘이사’ 연작은 작가가 거주하는 집에서 만나는 순간들을 표현했다. 2022년 작품 ‘창문-새벽’은 부친의 장례식을 치른 뒤 집으로 돌아와 본 창밖 풍경을 담았다. 유근택은 “별빛과 불빛이 합쳐진 풍경이 일상적이지만 너무나 놀랍게 다가와 홀린 듯 그렸다”고 말했다. 2층에 전시된 ‘세상의 시작’은 만물의 근원인 땅이 갖는 “두더지 게임처럼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생명력을 표현했다. 그림 속 땅 위에는 식물뿐 아니라 선풍기, 세면기, 변기 등 각종 생활 집기가 솟아난다. 인간 문명이 만든 온갖 물건들도 결국에는 스러져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과정을 돌아보게 한다. 지하 전시장으로 이동하면 ‘분수’ 연작이 관객을 사방에서 에워싼다. “모든 물방울을 놓치지 않고 표현하려고 집중했다”는 작가는 오르내리는 물줄기의 순간을 포착하며 탄생과 소멸을 은유한다. 산다는 것이 찰나에 불과하더라도 그 가운데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진실이 아니냐며. 작가는 “이 방에 들어서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기를 바라면서 그렸다”고 말했다. 한지 위에 수묵화를 그리는 작가가 여러 겹 배접한 종이를 물에 흠뻑 적신 다음 철솔로 밀어내며 작업한 흔적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종이의 물성 자체가 시각 언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설명한다. 한지를 몸과 그림이 만나는 무대로, 철솔질은 몸의 감각을 구현하는 통로로 본 것이다. 12월 3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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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손 따라 달라지는 선과 먹빛… 글씨쓰기 매력 빠져보세요”

    “자판을 치는 것과 직접 쓰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손으로 글씨를 써보면 어떨까요?” ‘2023 여초서예대전’에서 성인부 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은 문용기 씨(61)는 ‘쓰기’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아일보사와 인제군문화재단, 여초서예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대회에 참가한 문 씨는 순수캘리 부문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기존에 한글, 한문·전각, 문인화 부문이 있었고, 올해 순수캘리가 신설됐다. 여초서예대전은 서예가 여초 김응현 선생(1927∼2007)을 기리는 서화경연대회로 서예 연구단체인 동방연서회와 동아일보사가 1961년 국내 최초로 개최한 휘호대회인 ‘전국 남녀 초중고등학교 학생휘호대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초서예대전은 9월 2일 성인부(20세 이상)와 기로부(70세 이상)가 참여한 ‘제9회 여초전국휘호대회’와 초등부 및 중고등부가 참여한 ‘제46회 전국학생휘호대회’로 나뉘어 열렸다. 문 씨는 주요한(1900∼1979)의 시 ‘샘물이 혼자서’를 주제로 골랐다. 그는 “그날따라 이 주제가 눈에 들어와 평소 즐겨 그리던 대나무를 시 옆에 그려 넣었다”며 “대나무는 흑백이 확연히 드러나도록 표현했다”고 말했다. 수상작 ‘샘물이 혼자서’는 묵의 농담을 달리하며 그린 대나무와 생동감을 지닌 글이 멋스럽게 어우러진다. 그는 “캘리그래피를 하기 전 문인화를 먼저 시작했다”며 “사군자 중 하나인 대나무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실 친구들과 가벼운 마음으로 대회에 참가했다가 큰 상을 받게 됐다”며 기뻐했다.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약 15년 전 친구의 권유로 강원 춘천시 춘천문화원에서 문인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어 한글로 다양한 글씨체를 실험해 볼 수 있는 캘리그래피의 매력에도 빠졌다. 그는 “(캘리그래피는) 여성 선생님에게 배웠고, 선생님을 닮고 싶어 하다 보니 글씨체도 섬세한 편”이라며 웃었다. 그는 묵향을 맡아 가며 한 자 한 자 글씨를 써보는 경험이 지금처럼 모든 것이 빨리 돌아가는 시대에 큰 즐거움이자 매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타자를 치지 말고 (글씨를) 써보라는 이야기를 젊은 친구들에게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붓끝에서 나오는 자기만의 선이 있거든요. 또 먹물은 까만색이지만 물의 양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을 낼 수 있어 그 변화를 보며 그리고 쓸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정서적 경험이 됩니다. 집중하는 경험도 정신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고요.”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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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찍듯… 동판화 역사를 바꾸다

    유럽 미술 거장 렘브란트 판레인(1606∼1669)의 판화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전시가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에서 지난달 31일 개막했다. 미술관이 네덜란드 렘브란트순회재단과 벨기에 판화 전문 미술관 뮤지엄 더레이더와 협업한 전시다. 이 미술관에선 미국 미니멀리즘 예술의 대표 작가 칼 안드레(88)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획전도 함께 열리고 있다. 작가가 아시아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이다.● 동판화의 역사를 바꾼 렘브란트대구미술관 1전시실에서 열리는 2023 해외교류전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는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여 점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렘브란트의 동판화가 300여 점인 것을 감안하면 작품 수가 적지 않다. 작품들은 △자화상 △거리의 사람들 △성경 속 이야기 △장면들 △풍경 △습작 △인물·초상 등 7개 주제로 분류했다. 특히 ‘자화상’과 ‘거리의 사람들’ 섹션에서 렘브란트가 인물 묘사를 생생하게 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자화상’에선 렘브란트가 자신의 멋진 모습뿐 아니라 편한 모자를 쓰고 웃거나,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인상을 쓰는 표정 등 여러 표현을 연구했음을 알 수 있다. ‘거리의 사람들’에선 눈먼 바이올린 연주자, 떠돌이 농부 가족 등 길 위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인간의 모습에 대한 현실적 탐구를 통해 성경을 다룰 때도 교리를 넘어 사람 이야기로 풀어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정희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다른 작가라면 ‘착한 사마리아인’을 주제로 여관 주인에게 돈을 건네는 성경 속 이야기만 부각했을 텐데, 렘브란트는 우물에서 물을 긷는 여자, 볼일을 보는 강아지 등을 묘사해 현실 속 풍경처럼 연출했다”며 “그 시대 풍경을 사진을 찍듯 사실적으로 기록했다는 의미에서 전시 제목을 ‘17세기의 사진가’라고 붙였다”고 말했다. 이 밖에 붉은색 잉크와 검은색 잉크로 각각 찍은 작품 ‘의족을 하고 있는 거지’, 에칭과 드라이포인트(판면을 예리한 철침으로 긁는 기법) 등 다른 기법을 과감히 결합한 ‘얀 루트마, 금세공인’ 등 렘브란트가 새로운 기술을 실험한 흔적도 볼 수 있다. 이 학예연구사는 “일부 미술사가들은 렘브란트가 동판화의 역사를 바꿨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게 평가한다”며 “그러한 면모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3월 17일까지.● 칼 안드레, 쌓아올린 향나무-나열한 강철판 작품 공개칼 안드레 개인전이 열리는 대구미술관 어미홀은 미술관 중앙의 높이 18m, 너비 15m, 길이 50m 규모 공간이다. 이 전시는 동시대 미술 동향을 소개하는 2023 어미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안드레는 1960년대 초반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한편 현상학을 받아들여 ‘작품은 보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바가 중요하다’는 미학을 펼쳤다. 작품들은 나무 금속 벽돌 등 단순한 재료만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번 전시에선 서양 향나무 21개를 쌓은 ‘메리마운트’를 비롯해 ‘4번째 스틸 스퀘어’, ‘벨지카 블루 헥사큐브’ 등 산업 재료를 그대로 배치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강철판 21개를 나열한 ‘라이즈’는 관객이 위로 직접 걸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시간이 흘러 녹슨 쇳내가 미세하게 풍겨오는 가운데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12월 31일까지. 미술관 입장료 700∼1000원.대구=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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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삶 속으로 사라지다, 치열하게

    소설 ‘영원한 이방인’(1995년), ‘척하는 삶’(1999년) 등을 통해 미국에서 디아스포라 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저자의 9년 만의 신작이다. 저자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기도 한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20대 청년 틸러 바드먼이다. 이전 소설의 주인공들이 외부인 취급을 받는 아시아계 미국인, 위안부 가해자인 일본인 군의관 등 색깔이 뚜렷한 캐릭터인 데 비해 이번 주인공은 불투명하다. 틸러는 한국인의 피가 8분의 1 정도 섞여 있지만, 외모로는 혈통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는 자신이 사는 곳을 ‘스태그노’(액체가 고여 흐르지 않는 상태), 즉 어떠한 변화도 없는 고인 물이라 부르며 이곳에서 30대의 미스터리한 여성 벨과 그의 8세 아들 빅터 주니어와 함께 산다. 소설은 틸러가 스태그노에 사는 현재와, 중국인 사업가 퐁 로우를 만나 해외로 떠나는 1년 전 시점을 번갈아 가며 다룬다. 과거 시점에서 틸러는 부유한 자산가가 몰려 사는 대학도시 ‘던바’에 살다가 퐁을 만나며 아버지를 떠나 중국 선전, 마카오, 홍콩 등 이국으로 표류한다. 그 후 벨을 만나고 서로의 과거에 대해 묻지 않은 채, ‘요리 천재’인 빅터 주니어를 따라 밖의 세계로 차츰 나간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틸러가 지겨울 정도로 평온한 세계에 살다가 감각에 이끌려 균형을 깨고 낯선 세계로 자신을 내던진다는 점이다. 과거의 영웅 소설이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도전에 나서는 주인공 서사를 담았다면, 이 소설은 그러한 성취보다 순간의 감각을 앞세운다. 틸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맛보고 탐닉하고 경험하며 자신을 세계 속에 푹 적신다. 작품에서 음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9년 만의 신작에서 작가는 본질이 무엇인지, 뿌리는 어디에 있는지,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시대의 새로운 인물 서사를 시도한다.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게 아니라, 맛보고 느끼는 살덩이로 살아가는 과정 자체를 찬미한다. “나는 삶으로부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삶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는 말처럼, 세계와 부딪치고 쓰러지는 과정에서 진정한 ‘나’를 찾기를 바라면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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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깥’으로 눈 돌린 미술사가 찾고 있는 것들 [영감 한 스푼]

    11월 1일 개막한 스웨덴 영화제에서 북유럽 사미족 출신 예술가 브리타 마라카트 라바의 예술과, 기후 변화에 저항하는 그녀의 싸움을 그린 영화 ‘사미 스티치’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제는 서울에서 11월 7일까지, 또 그 후 부산 인천 광주 대구로 이어져 11월 19일까지 열립니다. 자세한 일정표는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스웨덴 영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최신 영화 9편이 상영되는 가운데, 미술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흥미로울 영화가 두 편 있습니다. 바로 ‘사미 스티치’와 ‘힐마’ 인데요. 두 영화는 특히 르네상스에서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단선적 미술사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면서, 세계적 미술 기관들이 ‘대안’을 찾는 와중에 발견된 흐름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미술사는 시대에 따라 항상 변하는 것”영화를 살펴보기 전, 두 가지 인터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관장인 이고, 나머지 하나는 입니다.두 사람은 국제 미술사를 주도하는 기관의 수장인데, 공통적으로 해 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주의, 피카소, 모더니즘 등 한 가지 선으로 이어지는 ‘단선적 미술사’가 틀렸다는 것입니다.MoMA는 30, 40년 동안 (미국과 유럽 중심의) 특정한 역사와 연결지어 생각되어 왔다. 앞으로는 이러한 절대적 역사를 이해시키려 하기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할 것이다. (…) 미술관이 기존에 보여줬던 단선적 미술사는 아주 간단해서 강력했지만 그것이 예술을 대표하지는 못했다. 이해하기 쉽지만 진실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MoMA가 모든 미술사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한다.(글렌 로리)미술사는 절대 고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에 맞춰 항상 변한다. 21세기 초반까지 우리가 알았던 미술사는 남성 미국인 유럽인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완벽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지금 런던만 봐도 거주자 50%가 흑인과 소수 인종이다. 게다가 항상 열심히 활동해왔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 예술가는 물론 한국 일본 이집트 케냐 인도 등 정말 다양한 곳에 예술가들이 있다. 우리 미술관이 피카소를 내다 버리진 않겠지만, 과거의 좁은 미술사에서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려고 하는 것이다.(마리아 발쇼)두 기관장의 발언은 개인의 의견이 아닌, 국제 미술사의 대다수가 수년 전부터 공통으로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미술사는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만 이뤄졌던 것이지, 그것이 세계 미술사는 아니니까요.이런 흐름에서 미술사는 ‘백인 남성’이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주목받은 것이 ‘선주민 예술’과 ‘여성 예술가’입니다.북유럽 사미족의 이야기를 실로 그리다사미족은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와 러시아에 걸쳐 살고 있는 선주민들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브리타는 핀란드와 덴마크 지역을 중심으로 사는 사미족으로, 순록을 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위 1980년대 그림은 사미족이 살던 지역이 댐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의 상황을 담았습니다.이 지역의 사미족들은 집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반대했지만, ‘까마귀’처럼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온 스웨덴 경찰들이 이들을 연행해 강제 이주시켰죠. 브리타는 이 집회에 직접 참여했던 기억을 자수로 남겼습니다.그녀는 이렇게 스웨덴에서도 노르웨이에서도 정식 역사로 기록되지 않은 사미족의 이야기를 자수를 통해 기록해 나갔습니다. 어린 시절 스웨덴의 선주민 기숙 학교로 보내져서 스웨덴어를 ‘모국어’라고 강제로 교육하며 자신이 나고 자란 문화를 지우려는 정책을 보고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그녀는 회고합니다.그래서 어릴 적 엄마와 할머니의 이야기로 전해진 사미족의 신화를 긴 자수 작품으로 남겼고, 이것이 2017년 카셀 도큐멘타에 전시되고 주목받으면서 사미족의 이야기도 유럽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작품에서 유럽 사회가 주목한 것은, 자연을 자원을 가져오는 소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며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미족의 문화입니다. 댐 건설 반대 시위를 했을 때 사미족들은 함께 살아가는 강이 파괴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자연에게 오만한 태도를 보이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서 말이죠.영화 ‘사미 스티치’에서는 기후 변화로 순록의 개체수가 감소하고, 이로 인해 오래전부터 내려온 문화를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미족의 젊은 세대 이야기까지 보여줍니다. 즉 사미족 신화와 예술보다 기후 위기와 이에 대한 저항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선주민 문화가 왜 주목을 받는 것인지, 그들의 문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살펴보면서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였습니다.칸딘스키보다 먼저 추상화를 그린 화가라세 할스트룀 감독이 만든 영화 ‘힐마’는 스웨덴의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2013년 스웨덴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리고, 이 전시가 노르웨이 스페인 덴마크를 거쳐 독일 베를린까지 순회하며 100만 명이 전시를 보는 열풍을 일으킨 작가입니다.그녀가 주목받은 이유. 힐마는 추상 미술의 개척자로 여겨지는 칸딘스키보다 먼저 추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런데도 미술계에 그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동안 미술사가 얼마나 남성을 중심으로 쓰여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죠.독일의 미술사가 율리아 포스는 일간지 프랑크프루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미술사는 다시 쓰여야한다’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힐마 아프 클린트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힐마가 추상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유럽 지식인 사이에 널리 퍼진 ‘신지학’에 심취한 덕분이었습니다. 신지학은 상대성 이론 등 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받아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탐구하고자 했던 학문으로, 힐마는 그러한 세상을 그림에 담고자 했습니다.그 결과 칸딘스키가 처음 추상화를 그린 1911년보다 조금 앞선 1906년 첫 추상 작품인 ‘원시적 혼동’을 그립니다. 그러나 신지학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로부터 ‘이 그림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향후 50년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충격을 받습니다. 1944년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의 추상 작품은 20년 동안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맙니다.그녀의 그림을 물려받은 조카는 20년이 지나 작품을 세상에 보이기 위해 미술관을 찾아가지만 전시 이력도 없고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합니다. 처음 빛을 본 것은 198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그룹전에 포함되면서 부터 입니다.그리고 약 30년이 지나고 미술사가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나서야 그녀의 작품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그의 예술 세계를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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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화홍련전-아랑전설 떠올리며”… 이화자 화백 개인전

    초승달 뜬 밤하늘에 수양버들 가지가 드리우고 연못에 흰 치마가 펼쳐졌다.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영남루의 전설’(1985년)은 이화자 작가(80)가 장화홍련전과 경남 밀양군의 영남루에 얽힌 아랑전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 그린 작품이다. “으스스한 달밤, 누군가 물에 빠지고 속치마만 둥둥 떠 있는 모습”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이 작가의 개인전 ‘창연’이 서울 중구 스페이스 소포라 갤러리에서 12월 9일까지 열린다. 작가의 초기부터 최근작까지 20점을 소개한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이 작가는 박생광(1904∼1985), 천경자(1924∼2015)에게 그림을 배운 채색화 2세대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박생광과 2인전을 열었지만, 개막 며칠 전 9·11테러가 발생해 뉴욕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제대로 작품을 선보이지 못했다. 이후 우울증 등 어려움을 겪으며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작품 ‘회고’(1968년)를 소장했고 이후 국공립미술관 그룹전에 초청받으며 조금씩 활동을 재개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탐구한 이 작가는 부산의 풍어제나 한국의 산 곳곳에 있는 서낭당을 소재로 한 ‘기원 시리즈’를 그렸다. 이는 단순히 무속·토속 신앙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서민들 사이에서 내려온 문화로 이들을 바라보자는 취지였다. 물가에서 노니는 청둥오리를 그린 ‘4월’(1980년)은 물바램 기법을 활용했다. 동양화는 두 세 겹을 붙인 종이를 사용하는데 가운데 풀이 있어 물감이 깨끗하게 번지기가 어렵다. 이에 물을 묻힌 붓으로 경계를 긋는다. 이는 부드럽고 섬세함이 필요한 기술이다. 최근작에서는 경기 가평의 한 카페에서 바라본 노을을 그린 ‘회상’(2018년), 집 근처 공원에서 그린 ‘강변공원의 가을’(2022, 2023년), ‘겨울 두물머리’(2003년) 등 일상 속 풍경이 드러난다. 이 작가는 “요즘 들어 자연의 위대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며 “자연을 존중하는 것에서 우리 산수화가 시작했듯 풍경을 좀 더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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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뚫고 설치한 미술작품… 물위에서 듣는 바다소리

    강물이 바다를 만나는 길목, 파도가 들이치는 해안, 리모델링을 앞두고 바닥과 벽을 뚫은 미술관…. 부산에서 색다른 장소의 맛을 살린 전시가 각각 기장군 일광해수욕장과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3 바다미술제’와 ‘극장’전이다. 14일 개막한 2023 바다미술제는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를 주제로 20개국의 31개 팀 예술가 43명의 작품을 일광해수욕장 일대에서 선보인다. 현대 사회에서 자원의 보고인 바다와 인간의 관계를 대안적 차원에서 돌아보고 상상해보자는 의미로, 그리스 출신 큐레이터 이리니 파파디미트리우가 기획을 맡았다. 전시에서는 지역 일대의 지형을 다각도로 활용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프랑스 출신 작가 펠릭스 블룸의 ‘바다의 풍문’은 덱을 따라 바다로 걸어 나가면 물속에 설치된 대나무에 들이치는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가 나는 설치 작품으로, 바다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영국 작가 게리 젝시 장의 ‘오션 브리핑’은 바다로 흘러 나가는 강물 위에 전광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바다와 환경에 관한 긴박한 메시지를 담은 자막을 내보낸다. 옛 일광교회 공간 전체에 가느다란 실을 설치해 빛이 뿜어 나오는 듯한 효과를 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무한나드 쇼노의 ‘바다에서의 달콤한 허우적거림’도 돋보였다. 파파디미트리우 감독은 “모든 작품은 재료 대부분을 부산에서 조달하고 제작과 설치도 부산에서 진행했다”고 밝혔다. 바다미술제는 11월 19일까지 무료로 열린다. 부산시립미술관 ‘극장’전은 2024년 리모델링을 앞둔 미술관에서 마지막으로 열리는 전시다.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해 미술관 바닥을 뜯고, 벽을 뚫는 과감한 설치가 돋보인다. 미술관을 극장에, 전시장을 무대에 비유한 전시는 작품이 미술관에 설치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그 작품이 어떻게 관객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김동희 작가의 ‘호로 이어진 계단’은 미술관 1층 로비와 2층, 2층과 3층을 이어 설치한 계단식 구조물이다. 직선으로 된 난간에 동그랗게 튀어나와 있는 공간에 관객이 직접 서볼 수 있어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느낌을 체험할 수 있다. 김 작가는 미술관 벽을 깎아 내거나, 바닥재를 드러내는 등 공간 디자이너로도 전시에 참여했다. 이 밖에 전시장 가운데에 건축물 조각을 설치하고, 이 조각 내부에 설치된 소형 카메라에 기록되는 영상을 벽면에 투사해 여러 시점을 체험하게 하는 정정주의 ‘일루미너리’, 기억을 공간의 형태로 만든 홍범의 움직이는 설치 조각 ‘기억의 광장’, 미술관 벽면이나 바닥 속에서 신체 장기의 소리가 나도록 만든 최윤석의 ‘허기’,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의 의미를 시니컬하게 조명한 무진형제의 ‘미래의 환영’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두고 예술가들이 얼마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전시다. 12월 17일까지. 무료.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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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밑바닥의 아픔이 결국은 달콤한 인생을 만든다[영감 한 스푼]

    화가 정복수(66)의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갤러리 올미아트스페이스에 들어서면 47년 만에 다시 공개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정 작가가 부산 현대화랑에서 안창홍 작가와 1976년 함께 열었던 ‘2인전’에 단 한 번 전시됐던 작품, ‘청춘의 슬픔’입니다.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 그녀의 머리카락은 실처럼 굽이치고, 입은 옷의 무늬는 무언가에 베인 상처처럼 보입니다. 그녀의 주변을 간질이듯 눈물처럼 흐르는 실 가닥은 붙잡으면 허무할 지푸라기 같지만, 허공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듯 말입니다.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기록‘청춘의 슬픔’은 어떻게 47년 만에 이 전시장에 걸리게 된 걸까. 이번 전시 ‘자궁으로 가는 지도―I’은 정 작가가 지난 3, 4년간 그린 신작을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마지막 개인전을 3년 전 열었던 정 작가는 팬데믹을 지나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작업해 왔다”고 했습니다. 전시는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그가 고민 끝에 갤러리 제안으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작품을 세상에 보이라는 가족의 적극적 권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초기 작품을 함께 보여주면 좋겠다는 갤러리 요청으로 정 작가는 1970년대 작품 두 점, ‘청춘의 슬픔’(1976년)과 ‘자화상―아픔의 힘’(1975년)을 걸었습니다. 두 작품은 판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말이죠. 작품의 사연이 궁금해졌고 정 작가에게 이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물감을 살 돈도 부족했고 하루 한 끼로 버티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릴 때였죠.” 이때 그의 나이는 스무 살. 이 무렵 화구만 챙겨 무작정 상경한 그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 판자촌에 살게 됩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그림을 그린 친구의 배려로 마련한 거처였죠. 여러 가구가 함께 수도를 사용하는 허름한 집에서 그림만 그리던 시절 탄생한 것이 바로 두 작품입니다. ‘청춘의 슬픔’에서 굳은 여자의 얼굴 위편엔 ‘남여 직업알선’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습니다. 광고 속엔 ‘접대부’, ‘공장부’ 같은 직업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사회라는 건 무엇이고 그 속에서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의 인간성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만드는 배치입니다. 사회 속에서 타협되는 개개인의 맥락과 감정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 전체를 부정하는 메시지는 아닙니다. 그의 자화상은 ‘아픔의 힘’을 이야기합니다. 사회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되새기며 느끼는 아픔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달콤한 삶에 치러야 할 대가흑석동 판자촌 집에서 정 작가를 미술계에 강력하게 각인시킨 작품도 탄생했습니다. 바로 1979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청년작가회관에서 열린 ‘바닥畵(화)―밟아주세요’에 선보인 바닥화입니다. 전시장 바닥에 벌거벗은 채 고함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고, 관객들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가면서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지금은 작가들이 다양한 설치 방식을 구사하지만, 당시에는 ‘신기한 그림’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지역 상인들에게 “요상한 그림이 있다더라”는 입소문이 나 구경꾼이 몰리기도 하고, 수상한 분위기가 난다고 여긴 경찰이 전시장에 와 감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이상한 그림’, ‘기괴한 그림’이라는 반응은 여전히 정복수 작품에 붙는 수식어이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해’입니다. 정 작가가 바닥화를 그린 것은 신기함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절한 아픔이 담긴 현실’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서양 미술의 아류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바닥화를 그린 이유를 설명합니다. 천장화가 신을 위한 것이라면 벽에 거는 그림은 권력자를 위한 것이기에 평범한 사람을 위한 그림으로 바닥화를 그렸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 이어진 정복수의 ‘몸 그림’들은 기존에 없던 시각 언어를 찾아가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이었습니다. 머리카락도 없고, 장기가 드러나고, 때로는 팔다리도 없는 몸 그림을 처음 보면 놀라고 당황스러운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선입견을 버리고 가만히 보면 이 몸들은 결국 인간의 삶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를테면 잘린 손가락, 알록달록한 응어리, 구불거리는 뱀은 살면서 모든 사람이 겪는 아픔입니다. 중요한 건 그 아픔들은 외면하고 감춰야 할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랬을 때 온전한 아름다움인 ‘자궁’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작품은 말하고 있습니다. 정 작가는 그것을 ‘달콤한 삶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설명합니다. “산다는 게 아름답고 좋고 달콤한 것도 많죠.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잘린 손가락과 그림 속 몸에 새겨진 각오와 다짐들은 그런 삶의 고통, 어마어마한 대가를 담아낸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이 자궁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청춘을 지나 그것을 더 넓은 눈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을 1970년대와 2020년대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 작가의 신선한 작품과 함께 ‘자궁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 보세요. 전시는 11월 1일까지입니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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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노력이 유전자를 바꾼다

    인간의 유전자는 우리가 살게 될 운명을 그려 놓은 지도일까, 아니면 노력과 극복으로 바꿀 수 있는 밑그림일까. 기존 유전학은 찰스 다윈(1809∼1882)의 진화론에 근거해 모든 것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봤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후성유전학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모든 생명체는 마주한 환경 요인을 극복하려 한다. 이는 유전자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저자는 개개인의 노력이 유전자는 물론이고 인간의 운명까지 바꿀수 있다는 매력적인 담론을 소개한다. 후성유전학은 타고난 유전자가 환경과 경험에 따라 그 형질이 달라지고 심지어 유전까지 되는 현상을 연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몸에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우리 몸에 저장된 수많은 유전 정보를 필요에 따라 활성, 비활성화하는 이 시스템을 ‘유전자 스위치’라고 설명한다. 이 스위치를 끄고 켜는 것에 따라 유전 형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총 12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다윈의 후광에 밀렸던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1744∼1829)의 획득형질 유전설(후천적으로 획득한 형질이 후대에 유전된다는 주장)을 재조명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매우 높은 가지에만 나뭇잎이 남아 있어 위협을 받는 기린 집단이 있을 때, 다윈의 진화론은 목이 길게 태어난 돌연변이 기린이 살아남아 유전적 형질을 전해준다고 본다. 이에 반해 라마르크는 일부 기린이 살아남기 위해 유전자 스위치를 켜서 긴 목이라는 유전적 형질을 획득하고 이를 자손에게 전달한다는 식이다. 같은 유전자를 타고난 일란성 쌍둥이의 삶이 왜 달라지는지 등 후성 유전의 여러 가지 예도 소개한다. 특히 유아기에 겪은 경험으로 생긴 후성유전적 변화가 뇌에 각인되고 이것이 자손에게까지 유전될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성장 환경이 미치는 막대한 영향이 유전학적으로 확인되는 대목이다. 저자는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로 1998년 후성유전학 연구를 시작해 2002년부터 국립암센터에서 후성유전조절과 암 발생 관련성을 연구했다.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과 함께 도표를 곁들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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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밑바닥 인생, 잘린 손가락…아픔과 슬픔이 달콤한 인생을 만든다 [영감 한 스푼]

    화가 정복수(66)의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갤러리 올미아트스페이스에 들어서면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정복수가 부산 현대화랑에서 안창홍 작가와 1976년 함께 열었던 ‘2인전’에 단 한 번 전시됐던 작품, ‘청춘의 슬픔’입니다.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 그녀의 머리카락은 실처럼 굽이치고, 입은 옷의 무늬는 마치 무언가에 베어 벌어진 상처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을 간질이듯 눈물처럼 흐르는 실 가닥들은 붙잡으면 허무할 지푸라기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허공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기록‘청춘의 슬픔’은 어떻게 40여 년 만에 이 전시장에 걸리게 된 걸까. 이번 전시 ‘자궁으로 가는 지도 - I’는 정복수 작가가 지난 3-4년간 그려온 신작을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마지막 개인전이 3년 전이었던 정복수 작가는 팬데믹을 지나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왔다”고 했습니다. 전시를 염두에 두면 다른 생각들이 많아지니, 그런 것들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작업만 몰두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입니다.그런 그가 고민 끝에 갤러리의 제안으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작품을 세상에 보이라는 가족의 적극적 권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초기 작품을 함께 보여주면 좋겠다는 갤러리 요청으로 정 작가는 70년대 작품 두 점, ‘청춘의 슬픔’(1976년)과 ‘자화상 - 아픔의 힘’(1975년)을 걸었습니다. 이 두 작품은 판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말이죠.모든 작가가 약간은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정 작가는 특히 작품이 판매되는 것을 평소 불편하게 느껴오곤 했습니다. 그런데다 아예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특별한 애착이 있기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작품의 사연이 궁금해졌고 정 작가에게 이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물었습니다.물감을 살 돈도 부족했고 하루 한 끼로 버티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릴 때였죠.이때 그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 무렵 화구만 챙겨 무작정 상경한 그는 흑석동 판자촌에 살게 됩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그림을 그려 온 친구의 배려로 마련한 거처였죠.수도를 여러 가구가 함께 사용했던 허름한 집에서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던 시절 탄생한 것이 바로 두 작품인 셈입니다. ‘청춘의 슬픔’에서 굳은 여자의 얼굴 위편엔 ‘남여 직업알선’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습니다. 광고 속엔 ‘접대부’, ‘공장부’ 같은 직업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사회라는 건 무엇이고 그 속에서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의 인간성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만드는 배치입니다. 사회 속에서 타협되고 마는 개개인의 천차만별인 맥락과 감정들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로 느껴집니다.그러나 이것이 사회 전체를 부정하는 메시지는 아닙니다. 그의 자화상은 ‘아픔의 힘’을 이야기합니다. 사회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되새기며 느끼는 아픔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달콤한 삶에 치러야 할 대가이 집에서 정 작가를 미술계에 강력하게 각인시킨 작품도 탄생했습니다. 바로 1979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청년작가회관에서 열린 ‘바닥畵(화)―밟아주세요’에 선보인 바닥화입니다. 전시장 바닥에 벌거벗은 채 고함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고, 관객들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가면서 그림을 감상했습니다.지금은 작가들이 다양한 설치 방식을 구사하지만, 당시에는 ‘신기한 그림’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지역 상인들에게 “요상한 그림이 있다더라”는 입소문이 나서 구경꾼이 몰리기도 하고, 수상한 분위기가 난다고 여긴 경찰이 전시장에 와 감시를 하고 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이상한 그림’, ‘기괴한 그림’이라는 반응은 여전히 정복수 작품에 붙는 수식어이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해’입니다.정 작가가 바닥화를 그린 것은 신기함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절한 아픔이 담긴 현실’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서양 미술의 아류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바닥화를 그린 이유를 설명합니다. 천장화가 신을 위한 것이라면 벽에 거는 그림은 권력자를 위한 것이기에 평범한 사람을 위한 그림으로 바닥화를 그렸다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후로 이어진 정복수의 ‘몸 그림’들은 기존에 없던 시각 언어를 찾아가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이었습니다. 머리카락도 없고, 장기가 드러나고, 때로는 팔·다리도 없는 몸 그림을 처음 보면 놀라고 당황스러운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선입견을 버리고 가만히 보면 이 몸들은 결국 인간의 삶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이를테면 잘린 손가락, 알록달록한 응어리, 구불거리는 뱀은 살면서 모든 사람이 겪는 아픔입니다. 중요한 건 그 아픔들은 외면하고 감춰야 할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랬을 때 온전한 아름다움인 ‘자궁’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작품은 말하고 있습니다.정 작가는 그것을 ‘달콤한 삶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설명합니다.산다는 게 아름답고 좋고 달콤한 것도 많죠.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잘린 손가락과 그림 속 몸에 새겨진 각오와 다짐들은 그런 삶의 고통, 어마어마한 대가를 담아낸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이 자궁으로 향하는 길입니다.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청춘을 지나 그것을 더 넓은 눈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을 1970년대와 2020년대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정 작가의 신선한 작품과 함께 ‘자궁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 보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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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그리기를 밥보다 즐긴 소년, 알지만 몰랐던 장욱진을 만나다

    장욱진(1917∼1990)은 작고 소박한 그림을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린 적은 없었다. 2014년 개관한 경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 여러 차례 기획전이 열렸고, 2017년에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과 가나아트센터에서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개최됐다.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지난달 14일 개막한 첫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은 그간 축적된 장욱진 연구와 전시를 되짚는다.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 때까지 60여 년간 시기별 장욱진의 미술 활동을 총망라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유화 먹그림 판화 삽화 등 270여 점으로 구성됐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밝혀진 장욱진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도 알 수 있다.● “그림 그리기를 밥보다 즐겨”장욱진은 스물한 살이었던 1938년 10월 조선일보 주최 공모전에서 수상한 사실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이전에도 최소 네 차례 유명 학생작품전에서 입선과 수상을 한 것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장욱진은 1932년 9월 동아일보 주최 학생작품전에 ‘야채’와 ‘풍경’을 출품해 입선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제4회 선만중등미술전’에서도 입선했다. 1933년 9월 경성 제2보고 3학년 재학 중에는 동아일보 주최 ‘제4회 작품전’에서 ‘다알리아’로 입선했다. 1938년 6월 동아일보 주최 ‘제7회 학생작품전’에서도 ‘정물’로 입상했다. ‘정물’은 동아일보 신문에 흑백 도판으로 실린 것이 확인돼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때 장욱진의 어머니가 아들에 대해 “그림 그리기를 밥보다 즐겼다”고 말한 것이 수상 인터뷰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여러 자료를 통해 장욱진이 청·장년기 적극적으로 화단에서 활동했음을 알 수 있었다”며 “다양한 전람회와 단체에 성실히 참가하며 동시대의 보편성을 토대로 독자적 창작 세계를 모색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까치와 마을’, ‘가족’ 최초 공개전시는 크게 4부로 구성된다. 1부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에서 앞서 언급한 새롭게 밝혀진 초기 행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2부 ‘발상과 방법: 하나 속에 전체가 있다’, 3부 ‘진眞.진眞.묘妙’, 4부 ‘내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으로 이어진다. 각각 장욱진 회화의 소재,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 1970년대 이후 노년기 그림 작업을 조명한다. 2부 전시에서 장욱진의 생전 마지막 작품인 ‘까치와 마을’(1990년)이 최초로 전시되며, 6·25전쟁 이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국제신보에 연재했던 ‘새울림’(글 염상섭, 삽화 장욱진) 삽화 56점도 처음 공개됐다. 또 장욱진 최초의 가족 그림으로 행방이 묘연했으나 전시 준비 과정에서 일본에서 발견된 ‘가족’(1955년)은 3부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장욱진 그림에서 ‘까치’는 그의 분신, ‘나무’는 온 세상을 품는 우주, ‘해와 달’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였다는 해석을 비롯해 작품에 담긴 불교적 주제를 조명한 것도 흥미롭다. 장욱진 작품 소장가 중 여러 명이 “불교 ‘금강경’을 알면 그의 그림을 다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소장한 작품 6점도 전시에 포함됐다. 다만, 본인의 요청으로 어떤 작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전시는 ‘동심 가득한 예쁜 그림’이라는 평가를 넘어 작품 속에 담긴 진지한 고백을 전달하고자 애쓴다. 내년 2월 12일까지. 2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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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가운 유리 속에, 따뜻한 기억을 채워 넣다

    유리 위에 찍힌 손자국, 활자,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표면은 기억을 담고 있다. 한국 유리 공예 1세대 작가인 고성희 남서울대 유리세라믹디자인과 교수(62)의 개인전이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서는 고 작가의 ‘기억 연습’ 연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고 작가는 기억을 상상력의 원천으로 보고, 그것을 표현할 매개체로 활자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유럽 고물상에서 구한 납 활자를 활용했다. 그는 “납 활자를 처음 보면 차갑다는 느낌이 들지만 활자를 통해 텍스트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더없이 따뜻한 감성과 감흥이 생겨난다. 그것이 대화의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활자는 조형적으로도 완결성을 지닌 데다 서사성까지 가져 완벽한 작품의 소재가 됐다”고 했다. 초기 납 활자들은 프랑스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거쳐 체코, 독일 등의 여러 공방을 돌며 유리 조형을 배울 때 수집한 서너 주먹이 전부였다. 이를 모두 사용하고 더 이상 납 활자를 구하지 못했는데, 최근 경기 파주출판단지에서 새롭게 납 활자를 구하면서 이 시리즈가 이어질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작가는 유리에 손이나 천 조각으로 흔적을 남기거나, 자연적으로 갈라진 흙의 모습을 살려내는 방식으로 유리 속에 기억을 심어 넣는다. 그 과정은 유리 공예 기법인 ‘슬럼핑’ ‘캐스팅’으로 주로 이뤄진다. 우선 흙과 납 활자, 오브제 등으로 기본 형태를 제작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석고 틀을 만든다. 이 틀에 다시 석고를 넣어 속 틀을 만든 뒤, 그 위에 유리를 올리고 700∼900도에 소성(燒成)한다. 3∼7일이 지나면 작품을 꺼낸 후 연마해 완성한다. 완성된 유리 작품의 아랫부분에 조명을 비춰 특유의 물성을 살리도록 연출하기도 한다. 국내에 유리 조형을 들여온 고 작가는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새로운 재료 연구를 하고 싶어 유럽으로 향했다. 프랑스 파리 국립미술학교 초청 학생을 거쳐 1990년대 중반 귀국해 홍익대 조소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남서울대 유리조형연구소장도 맡고 있다. 25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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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괴하고 낯설지만… 인간의 몸에 시대상 담아

    고통에 몸부림치는 형상, 고함치는 입, 장기가 훤히 보이는 몸까지…. 화가 정복수(66)는 독자적 조형 언어로 인간의 몸에 시대상을 담은 작품을 선보여왔지만, 미술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괴함과 낯섦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런 그가 3년 만에 서울 종로구 올미아트스페이스에서 연 개인전 ‘자궁으로 가는 지도―I’에서는 관객에게 좀 더 부드럽게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40여 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는 3년간 작업한 신작들이 처음 공개된다. ‘청춘의 슬픔’(1976년)은 과거 한 차례 전시된 후 40여 년 만에 공개돼 눈길을 끈다. 정 화백은 “전시를 여는 것도 스트레스니 조용히 생각을 정리해 보자고 마음먹고 작업해 왔다”며 “다시 작품을 보니 너무 부드럽게 됐다. 물감도 많이 쓰고 거칠게 하고 싶은데 작업은 언제나 내 맘대로 안 된다”며 웃었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들은 편하다기보다는 날 서 있는 쪽에 가깝다. 잘린 손가락, 손발 없는 몸, 리드미컬하게 반복되는 눈동자와 구불거리며 움직이는 뱀 등을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의 제목은 역설적인, ‘자궁으로 가는 지도’다. 이에 대해 그는 “자궁은 모든 인간이 갈구하는 세계”라고 했다. “산다는 게 아름답고 좋고 달콤한 것도 많지만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잖아요. 그 모든 과정이 자궁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거죠. 잘린 손가락과 그림 속 몸에 새겨진 각오와 다짐들은 그런 삶의 고통, 어마어마한 대가를 담아낸 것입니다.” 최근 작품들은 그가 60여 년을 살아오며 겪은 희로애락을 ‘아름다운 자궁으로 향하는 길’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비해 1970년대 작품 ‘청춘의 슬픔’과 ‘자화상―아픔의 힘’(1975년)은 그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그린 것으로, 그의 작품 세계에서 일종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이 무렵 정 화백은 찢어지게 가난해 물감도 부족하고, 하루 한 끼로 버티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1976년 화구만 챙겨 그림을 그리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왔던 그는 3년 뒤 서울 종로구 동숭동 청년작가회관에서 ‘바닥畵(화)―밟아주세요’를 연다. 이때 관객은 바닥의 그림을 밟고 그 위에 담배꽁초를 버리기도 했고, 동네 상인들은 ‘희한한 그림이 있다더라’며 몰려와 구경했다. 정 화백은 “과거 작품은 갤러리의 요청으로 몇 점 가져와 봤는데, 전시하고 보니 부드러운 가운데 나의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30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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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의 도전 정신… 숨은 매력의 발견

    시작도 끝도, 안도 밖도 없는 사막에 어느 날 검은 기름이 솟아난다. 이 기름을 탐내는 이들이 몰려와 모래 위에 선을 긋고, 사막은 우스꽝스러운 땅따먹기의 장이 된다. 이라크 모술 인근 어느 마을 어린이들의 연기와 목소리로 만들어진 이 영상은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 작가 프란시스 알리스의 ‘모래 위 선’(2018∼2020년)이다. 국내에서 처음 공개된 이 작품을 지난달 22일 서울도, 미술관도 아닌 강원 강릉의 신영극장에서 감상했다. 신영극장은 2012년 개관한 강원 지역 내 유일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다. 이 극장을 비롯한 강릉 곳곳에서 재단법인 파마리서치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제2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 ‘서유록’이 열리고 있다. 서유록은 1913년 강릉에 살던 52세 여성 김모 씨가 서울을 돌아본 37일간의 여정에 대한 한글 기록이다. 박소희 예술감독은 “김 씨가 특히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해 인상 깊었다”며 “서유록의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전시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올해 페스티벌에는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자인 티노 세갈을 비롯해 홍순명, 이우성, 고등어, 양자주, 로사 바바, 박선민, 임호경, 송신규, 흑표범 등이 참가한다. 강릉시립미술관은 물론이고 국립대관령치유의숲, 옥천동의 1950년대 양곡 창고, 동부시장 등 관광객이 알기 어려운 매력적 장소에 작품이 설치됐다. 29일까지. 무료.강릉=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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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라운지]윤영경 개인전 ‘윈도 시너리’展

    윤영경 작가의 개인전 ‘윈도 시너리’(Window Scenery, 창문 밖 풍경)가 이달 17일부터 30일까지 서울 마포구 극동갤러리에서 열린다. 2020년 ‘비욘드’를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던 작가는 올해에는 작업실 창문 밖 풍경을 소재로 시점과 구성을 변화해 여러 회화를 제작했고 그 중 16점을 선보인다.먹빛으로 그려진 그림 속 기둥처럼 뻗어 오른 나무는 오랜 세월을 이겨낸 강인함을, 사방에 흐트러진 풀은 생의 기운을 의미한다. 때로 나무와 풀이 실내로 들어와 초현실적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 보통 먹그림은 종이를 흔히 사용하는데 캔버스를 이용한 작품도 볼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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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상미술 ‘단색화’ 이끈 박서보 화백 별세

    추상미술 ‘단색화’를 이끌며 한국 현대 미술에 획을 그은 박서보(본명 박재홍) 화백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올해 2월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뒤에도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며 작업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박서보재단(전 기지재단)의 이유진 상임이사는 “박 화백은 건강 악화로 이달 12일 입원한 뒤에도 ‘작업실에 쌓아 둔 캔버스에 배접(褙接)을 해두라’고 했다”고 말했다.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4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1956년 당시 작가들의 등용문인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반기를 드는 ‘반(反)국전 선언’을 하고 독립 전시를 열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유럽의 전후 추상미술인 앵포르멜 회화의 영향을 받은 연작 ‘원형질’, ‘유전질’을 발표하면서 추상 회화를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1975년 일본 도쿄화랑의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 전’을 전후로 단색조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 무렵 선을 긋는 행위를 되풀이한 대표작인 ‘묘법(描法·Ecriture)’ 시리즈도 시작해 재료와 색채를 바꾸며 40여 년간 작업을 이어갔다. 박 화백이 이끌었던 단색화는 2010년대 이후 국내 미술시장에서 주목받는 대표적인 장르가 됐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한국의 단색화를 세계 미술계에 각인하는 작업은 박 화백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과 일본 도쿄도 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고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장년에도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고 작업했던 박 화백은 삶 자체가 기(氣)였다”며 “장강(長江)과도 같은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1962∼1997년 홍익대 회화과 교수로 일했고, 1986∼1990년 미술대 학장을 지냈다. ‘홍대 미대 사단의 대부’로도 불렸다. 1970∼1977년 한국미술협회(미협) 부이사장, 1977∼1980년 미협 이사장을 지내며 미술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지난해 12월 박서보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제주도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건립되고 있다. 유족으로 부인 윤명숙 씨, 아들 승조 전 강원대 교수, 승호 박서보재단 이사장, 딸 승숙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7일 오전 7시. 02-2072-0292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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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색화’ 이끈 박서보 화백 별세… 90세까지 활동했던 그의 열정

    “나를 만나기 전에 ‘뿔 난 도깨비’ 같은 사람이라는 풍문을 들었을 겁니다.”빳빳한 중절모자에 위아래 색을 맞춘 양복. 두툼한 알반지를 낀 손에 쥐어진 지팡이 하나. 생전 박서보 화백의 존재감은 어디서든 상당했다. ‘화단의 멋쟁이’로 불린 고인의 맵시는 매번 달랐지만, 부리부리한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큰소리치는 도깨비 같은 카리스마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기지재단은 최근 폐암 3기 판정받고 투병 중이던 박 화백이 14일 오전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92세.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4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추상미술을 이끌었다. 1956년, 25살에 기존의 가치와 형식을 부정하면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고인은 “반(反) 국전 선언을 신호탄으로 현대미술 운동을 벌이면서 별의별 ‘낮도깨비 짓’을 했다. 도깨비라 별명 불러주는 건 양반이었다. ‘천하의 몹쓸 놈’부터 ‘빨갱이’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서보(본명 박재홍)라는 예명은 이 즈음부터 함께였다. 1955년, 동료이자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맹인재(93)가 두 개의 아호를 가져왔다. 수헌(樹軒)과 서보(栖甫). 회화과 동료였던 이원용(93)이 수헌을 골랐다. 서보로서의 인생이 시작됐다.국전과의 결별을 선언한 후 고인은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작은 화실을 열었다. 가장 처음 화실을 찾은 학생은 서울올림픽 미술감독으로 잘 알려진 이만익(1938~2012). 그 후로도 김종학(86), 윤명로(87), 방혜자(1937~2022) 등 유능한 제자들이 고인을 스승으로 모셨다. 고인의 제자였던 이태현 화백(83)은 “예나 지금이나 아주 칼 같고 촌철살인이었다. 그러나 제자를 위하는 말이란 걸 다들 알고 있었기에 미워하기보다는 존경했다”고 말했다.축적된 시간만큼 예술적 사유도 깊어갔다. 1970년대, 고인의 ‘묘법’(描法·Ecriture) 시리즈가 세상에 나왔다. 말 그대로 선을 긋는 행위의 결과물이다. 고인은 캔버스에 물감으로 밑칠하고 그것이 채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을 긋고 또 물감을 지우고 다시 그 위에 선을 긋는 행위를 되풀이해 작품을 완성했다.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후기 묘법’에서는 종이 대신 한지 위에 고도의 절제된 세계를 표현했다.“나는 그림 그리기가 수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색칠과 선 긋기를 반복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내는 깊은 맛은 서양인들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단색화는 박 화백 회화 인생의 정점을 열었다. 고인의 소속 갤러리인 국제갤러리는 “도쿄도 현대미술관, 프랑스 퐁피두센터, 아랍에미리트 구겐하임 아부다비, 홍콩 M+미술관 등이 소장하고, 해외 유수의 비엔날레와 아트페어의 러브콜을 받는 등 한국 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고인은 오랫동안 홍대 미대 교수로 재직해 ‘홍대 미대 사단의 대부’로도 불렸다. 1962년 처음 강단에 선 후 1997년까지 홍익대 미술대 교수로 있었으며, 홍익대 미술대 학장(1986~1990)을 역임했다. 예술가이자 교육자, 행정가로 두루 활동해온 그는 1984년 국민훈장 석류장, 1994년 옥관 문화훈장, 2011년 은관 문화훈장에 이어 2021년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자화자찬 화법의 일인자기도 한 고인은 “외국에서는 나를 한국 현대미술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뭇 뻔뻔해 보이지만, 그의 숨은 노력이 자랑의 근거다. 아흔이 넘어서도 매년 국내외 개인전을 열 정도였다. 고인은 아흔을 앞둔 당시 “지금 한창 숙성 중”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지구에 살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며 최선을, “앉아서 추락할 수는 없다”며 변화를 꾀하면서 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명숙 씨와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이다. 02-2072-2020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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