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눈이 커지는 수학]14년만에 공개된 추사 ‘세한도’ 그림은 왜 14m로 길어졌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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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작품의 크기는 가로 70cm… 문인 감상평 담기며 14m로 커져
그림 부분은 3개의 종이로 연결… 잣나무 배치 등 조형적 요소 담아
의도적으로 비례 구상後 그린 듯… 중앙박물관서 내년 1월까지 전시

세한도는 종이의 연결, 각종 요소들의 균형감 있는 배치 등을 통해 질서정연한 느낌을 준다. 동아일보DB
세한도는 종이의 연결, 각종 요소들의 균형감 있는 배치 등을 통해 질서정연한 느낌을 준다. 동아일보DB
서영이는 24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도 유배 중에 그린 세한도(歲寒圖)가 공개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국보 180호인 세한도는 올해 초 미술품 소장가인 손창근 씨가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년 1월 31일까지 열리는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전을 통해 14년 만에 세한도의 전체 실물을 공개합니다.

세한도는 원래 가로 70cm, 세로 33.5cm이지만, 당시 조선 문인 4명과 청나라 문인 16명의 긴 감상문이 담기면서 가로가 1469.5cm에 이르는 대작이 되었습니다. 서영이는 뉴스에 소개된 세한도를 보면서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질서정연하고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영: 세한도는 교과서에서도 본 것 같은데, 이렇게 길이가 긴 줄은 몰랐어요.

엄마: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살이를 하며 벗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 본래 그림과 글은 약 70cm 정도였다고 해. 뉴스에서 말하는 14m에 달하는 작품은 세한도를 칭송한 문인들의 감상 글이 포함된 것이란다.

서영: 소나무 두 그루에 잣나무 두 그루, 그리고 집 한 채가 무엇인가 간결하면서도 질서가 있어 보여요.

엄마: 그래. 기하학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정확한 수학적 비율을 보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궁금해지지. 그래서 세한도의 이러한 조형적 특징을 ‘수적(數的) 관계(numeric relationship)’라는 용어로 분석한 연구도 있단다.

○ 세한도의 비례와 이중구조

‘세한도에 내재된 조형의식과 장황 구성의 변화’ 연구에 실린 도해는 세한도에 담긴 다양한 비례와 구조를 알려준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술자료 제76호
‘세한도에 내재된 조형의식과 장황 구성의 변화’ 연구에 실린 도해는 세한도에 담긴 다양한 비례와 구조를 알려준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술자료 제76호
세한도의 화면을 분석한 연구인 ‘세한도에 내재된 조형의식과 장황 구성의 변화(이수미, 2007)’에 따르면 추사 김정희는 그림의 비례와 발문의 배치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작품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러한 수적 관계가 세한도의 구성 배경에 있기에 사람들이 세한도를 보면서 탄탄한 균형감과 변화,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격조를 느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정기간행물인 ‘미술자료’ 제76호에 실린 ‘세한도에 내재된 조형의식과 장황 구성의 변화’를 보면 세한도의 그림 부분은 3개의 종이로 연결되어 있습니다(도해 참조). 연구에 따르면 첫 번째 종이와 두 번째 종이의 연결부분 (가)는 오른쪽 상단의 제목 글씨 중 가운데 寒(한)에 있고, 두 번째 연결부분인 (나)는 제일 왼쪽의 잣나무에 일치하여 이들 지점에서 세로로 이어져 있습니다. 연결된 각 종이의 가로 길이는 A는 8.3cm, B는 45.6cm, C는 16.6cm입니다. 이 연구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A와 C의 비율이 1:2라는 점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C의 폭만큼 오른쪽 시작점부터 폭을 재면 C′가 되는데, 제목 등이 담긴 C′는 C와 적절하게 대응함으로써 세한도의 시작과 끝을 조화롭게 합니다. 또 B에서 C′와 겹치는 부분을 뺀 나머지를 D라고 하면 가운데에 해당하는 37.3cm 길이의 D는 낙관이 끝나는 지점에서 맨 왼쪽 잣나무의 줄기 가운데까지이고, 이 부분에 세한도의 조형적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A부터 B, C까지에 이르는 세한도 전체 그림과 핵심 부분이라 할 수 있는 D 부분이 이중 구조를 형성한다고 해당 연구는 설명합니다. 연구는 이러한 관계가 임의로 형성되었다기보다는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종이 바탕의 재단과 동시에 화면 비례의 구상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소나무와 잣나무의 균형

2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에 전시되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공개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에 전시되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공개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세한도에 내재된 조형의식과 장황 구성의 변화’ 연구에 따르면 세한도 그림의 중심축은 양끝에서 35cm가량 떨어진 지점입니다. 중앙에 곧게 서 있는 소나무 밑동의 왼쪽 끝이라고 합니다. 이 지점을 중심으로 그림을 좌우로 나눌 때 오른쪽에는 제목과 굵은 둥치의 노송이 있어 왼쪽보다 다소 무거운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송이 화면의 중심축인 소나무를 향해 기울어 있어서 오른쪽의 무게감을 덜어 주게 되는 조형적 균형의 의도가 보인다는 것이 해당 연구의 분석입니다.

또 그림과 함께 왼쪽에 작품과 관련된 사항을 적은 글인 발문을 합한 전체 길이는 108.3cm인데, 양쪽에서 54.1cm 떨어진 가운데 선은 그림의 맨 왼쪽의 잣나무와 일치한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마치 추사가 중심축을 표시하려 한 듯 잣나무의 왼쪽 외곽선이 유독 진하게 보인다는 점을 짚어냈습니다.

이 연구의 핵심은 세한도는 종이의 연결, 나무 등 풍경물의 배치, 그림과 발문과의 관계, 발문의 글씨 배치, 낙관의 위치 등이 아주 정확한 비례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화면에서 등장하는 각 조형요소 간의 수적인 것을 고려한 듯 밀접한 상호관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높아졌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전시에 대해 “한겨울 추위인 세한을 함께 견디면 곧 따뜻한 봄날 같은 평안을 되찾게 될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자” 기획을 했다고 합니다. 비록 당장 박물관을 방문해 세한도의 실물을 접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우리 역사 유물에 감춰진 수학적 비밀을 탐구해 보는 경험을 가져보면 어떨까합니다.

박지현 반포고 교사
#세한도#14m#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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