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신법’ 국회 통과를 환영하며[동아광장/최재경]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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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정보’ 활용 높인 ‘데이터 3법’, 의료-금융 등 이용 가능성 무한
규제 ‘대못’ 제거… 기업들 환영
7월부터 IT 관련 분야 빅뱅 예상
‘개인정보 돈벌이 수단’ 악용 없게 정보 보호 및 침해 처벌 강화 뒤따라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변호사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변호사
9일 국회에서 ‘데이터 3법’, 즉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인 정보를 가공해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처리한 ‘가명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통계·연구·사업 등에 쓸 수 있도록 활용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데이터의 가명 처리를 통해 활용 가능한 데이터 종류가 다양해지고 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 개발이나 시장 조사 등 활용 분야도 확대될 것이다.

보안시설을 갖춘 전문기관을 통해 기업 또는 기관 간 데이터의 결합이 허용된다. 의료·통신·금융·유통 등 다른 분야의 데이터가 결합·이용돼 정보 가치가 제고된다. 개인 정보 보호 관련 법률 규정 중 유사·중복 부분을 정비하고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등 3개 부처에 분산돼 있던 개인 정보 보호 기능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일원화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되고 조사·처분 권한을 갖게 돼 감독기구의 독립성이 보장됐다. 복잡한 감독 체계로 인한 기업 혼란과 부담이 해소된 셈이다.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징인 인공지능(AI)과 데이터 경제를 선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며 환영하고 있다. 그간 국내에서는 개인 정보 보호를 명목으로 하는 과도한 규제 때문에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와 과학적 고객 분석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빅데이터 활용이 규제되면서 AI와 데이터 산업이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에도 크게 뒤처졌다. 개인 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르면서 정보 제공과 활용에 대한 규제가 까다로워진 탓이다. 온라인 금융거래 한 건을 위해 평균 2500단어 이상의 정보 제공·이용 동의서를 작성해야 했다.

이처럼 빅데이터 활성화를 가로막는 개인 정보 관련 법률의 폐해가 컸기 때문에 이 3개 법률을 가리켜 ‘개망신법’이라고 불렀다. 개인 정보 보호와 관련한 규제 법안 3개(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의 앞글자 등을 딴 것이다.

법안이 개정되기까지 여러 가지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8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 산업의 원유(原油)인 데이터 경제 시대를 맞아 규제를 풀고 데이터 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며 개인 정보 규제의 대폭 완화를 선언했다. 같은 해 11월 정부·여당이 데이터 3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심의 과정은 검찰 개혁이나 선거법 개정 등 정치 이슈에 함몰돼 지지부진했다. 작년 말부터 국회의 행태에 넌더리를 내던 민심 때문인지 어쨌든 이 법은 연초에 국회를 통과했다.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가면 정보 산업 분야에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은행·핀테크 업계는 금융·비금융 데이터를 결합해 신용정보를 세분화하고 마이데이터 등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보험업계는 건강관리와 데이터를 연계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의료계 역시 각종 의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어려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전기가 온 것이다.

반면에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포기하고 개인 정보를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넘겼다’고 비판한다. 개인 정보 보호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대 사안에 사회적 논의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앞으로 시행 과정에서 정부와 관련 업계의 책임이 무겁다. 개인 정보 누설이나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과거의 규제로 회귀하자는 여론이 거세질 수 있다.

빅데이터 활성화가 우리에게 주는 편익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 정보 보호와 관련한 우려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결국 이 부분을 잘 조화하는 게 과제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개인 정보를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보호에 허점이 없도록 방비할 수 있는 대책이 긴요하다. 불법 침해에 대한 처벌이나 제재 강화 역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새해에는 국회와 정부가 협력해 기업의 뒷다리를 잡거나 활력을 저하시키는 각종 입법·행정상의 규제를 전면 재검토해 일거에 해결하는 혁신적 조치가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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