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재판소원제 시행 이후 지금껏 헌법재판소가 190건이 넘는 재판소원 청구를 사전 심사했지만 전부 사전심사 단계에서 탈락했다. 시행 전 “사실상 4심제가 되는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아직까진 본격적인 심리를 받는 사건이 한 건도 나오지 않은 것. 법원 안팎에선 “헌재가 명백하게 기본권 침해가 있어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헌재 “단순한 재판 불복은 안 돼”
9일 헌재에 따르면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된 지난달 12일부터 이달 8일까지 “재판을 취소해 달라”는 청구는 총 358건, 하루 12.8건꼴로 접수됐다. 대법원을 거친 사건뿐만 아니라 1, 2심 판결 취소를 구하는 사건도 다수 있었다.
재판소원 제도가 시작되면서 헌재는 매주 화요일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 회의를 열어 청구된 사건들이 본안 판단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 사전 심사하고 있다. 이 문턱을 넘은 사건에 대해서만 재판관 9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재판부’가 재판을 취소할지 본격 심리하게 된다. 현재까지 본안에 올라간 사건은 한 건도 없다. 1∼3차 사전심사에 올라간 194건은 모두 각하 결정으로 걸러졌다.
이 과정에서 헌재는 “단순한 재판 불복은 재판소원의 청구 사유가 아니다”라는 등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조폭 연루설’을 주장한 장영하 변호사, 유튜버 쯔양을 협박한 구제역(본명 이준희)이 낸 재판소원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각 징역형 집행유예, 징역 3년이 확정됐고 이후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두 사건을 모두 각하한 헌재는 “재판소원은 비상적 성격을 가지는 기본권 보호 제도”라고 결정문에 못 박았다. 개인의 권리 구제 차원을 넘어 헌법적 의미가 있는 사건이어야 재판소원 청구 대상이라는 걸 분명히 한 것. 헌재는 “재판 결과에 대한 단순한 불복에 불과한 경우는 재판소원 청구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194건 중 절반이 넘는 128건(66%)이 청구 사유를 충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확정 판결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재판소원을 청구해야 한다는 규정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1호 사건’으로 접수된 시리아 난민 강제퇴거명령 취소 사건도 청구 기간을 넘겼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재판소원은 2월 10일 이후 확정된 판결에 대해 30일 이내 청구해야 한다. 헌재 관계자는 “재판부가 본안 회부의 기준을 예상보다 더 엄격하게 잡고 있다. ‘4심제 우려’를 불식시키고 제도를 장기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재판소원 도입 당시 모델이 된 독일에서도 사전심사를 통해 재판소원 청구를 엄격하게 걸러내고 있다. 지난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심리한 재판소원 4151건 중 인용된 건 49건(1.1%)에 불과하다. 2024년 인용률은 0.8%였다. 대만의 재판소원 인용률도 매년 0.5% 안팎에 그치고 있다.
● 연구관 증원하고 임시청사 설립도
헌재는 연구 인력을 늘리는 등 보다 정교한 재판소원 시행을 위한 준비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 연구관 20명을 연내 새로 채용하기로 하고 관련 예산을 확보했다. 현재는 헌재 연구관 70여 명 중 8명이 재판소원 사전심사를 전담하고 있다. 본안 회부 사건이 나오면 재판소원 연구관을 늘릴 계획인데, 증원되는 20명 중 대부분이 이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인력 증원에 대비해 서울 종로구 창덕궁 인근 건물 한 층에 임시청사를 세우기로 하고 임대차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또 검찰 및 법원과 수사·재판 기록 송부 문제를 둘러싼 협의도 진행 중이다.
재판소원과 함께 도입된 법왜곡죄 역시 서울경찰청에만 조희대 대법원장 등 법관과 검사, 경찰 등 91명이 고발됐지만 아직 결론난 사건은 한 건도 없다. 조 대법원장 사건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반부패수사대에 배당됐고 나머지 사건은 일선서에서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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