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보미]마흔한 살에 배운 피아노… ‘매드 맥스’의 열정과 끈기

  • 동아일보

임보미 스포츠부 기자
임보미 스포츠부 기자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삼진을 3000개 잡았다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고도 남는 ‘오버스펙’이다. 가장 최근 3000K를 달성한 선수는 LA 다저스의 전설 클레이턴 커쇼(38)다. 커쇼는 지난해 7월 이 기록을 세우고 약 두 달 뒤에 은퇴를 발표했다. 전설이라는 이들도 커리어를 쥐어짜내야 겨우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다.

그런데 커쇼보다 4년 전 이 기록을 달성한 맥스 셔저(42)는 올 시즌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뛴다. 토론토의 선발 한 축을 맡아 월드시리즈 우승에 다시 도전한다.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매 이닝 전력을 쏟는 데다 양쪽 눈의 색깔까지 다른 오드 아이인 셔저는 미주리대 시절부터 빅리그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동명의 영화 ‘매드 맥스’로 불렸다. 셔저는 2008 MLB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11순위로 애리조나의 지명을 받았다. 그런데 워낙 에너지 소모가 큰 그의 투구 스타일 때문에 선발 투수로 롱런할 것이라 본 스카우트는 많지 않았다. 애리조나는 셔저를 짧은 이닝을 소화하는 불펜투수로 보고 뽑았다.

하지만 셔저는 그해 4월 30일 휴스턴전에 구원등판해 4와 3분의 1이닝 동안 13타자를 연속 아웃시키며 당시 빅리그 연속 타자 아웃 기록을 세웠다. 브라이언 프라이스 전 애리조나 투수코치는 “구위보다 돋보였던 건 셔저가 뿜어내던 자신감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을 세 차례나 받았다.

하지만 그런 셔저도 자신감이 사라진 순간이 찾아왔다. 셔저는 30대 후반이던 2023시즌 말미부터 고질적인 엄지 통증에 시달렸다. 스테로이드 주사는 물론이고 다소 생소한 ‘건침’까지 온갖 치료법을 시도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난 시즌에도 셔저는 선발등판을 딱 한 번 하고 엄지 통증 때문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6월 재합류한 뒤에도 엄지가 말썽이었다. 사라졌던 통증이 마운드에만 서면 다시 생기곤 했다.

그런 셔저를 구한 건 피아노였다. 네 아이의 아빠인 그는 올스타 휴식기 전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피아노를 치고 나서 공을 잡으면 엄지 통증이 잦아든 걸 느꼈다. ‘매드 맥스’는 그때부터 미친 것처럼 피아노를 쳤다. 방문경기 때는 숙소로 쓰는 호텔 로비의 피아노라도 쳤다. 셔저는 “호텔 직원들이 밤 10시 30분에 피아노 치는 사람은 처음이라는 듯 흘끗대며 쳐다봤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결국 셔저는 피아노 같은 터치감을 살린 휴대용 키보드를 구해 호텔방에 들고 다니며 볼륨을 낮춘 독주회를 이어갔다. “마흔하나에 전혀 모르는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정말 좋다”며 동료들에게 신청곡까지 받았다.

‘피아니스트’가 된 ‘매드 맥스’는 지난해 월드시리즈 7차전에 선발등판한 최고령 투수가 됐다. 이미 모든 걸 이뤘다고 할 만한 선수가 절박하게 매달려 다시 한 번 자신의 커리어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는 분야를 막론하고 뛰어난 성취를 이룬 이들에게는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끈기, 흥미의 지속성이 중요하다며 이러한 자질을 ‘그릿(gri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셔저는 바로 그 ‘그릿’이라는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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