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나 먹는 잡초?… 2000년 이어와 글로벌 인기 간식 된 K해초[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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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산품’ 해조류의 발달사
부산 기장군 앞바다의 해조류 양식장. 동해안의 귀한 명물이던 해초는 대규모 양식을 통해 일상 식탁과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동아일보DB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해조류 소비국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해조류 소비량은 월 약 255g이다. 이웃한 수산물 대국 일본(월 120∼180g 수준)보다도 월등히 많다. 사실 신석기시대에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해조류를 먹었다. 하지만 이후 오랫동안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해초는 ‘물고기가 먹는 바닷속의 낯선 식물’로 여겨졌다. 최근 K콘텐츠 열풍과 함께 한국 음식이 알려지면서 김밥과 김, 김스낵이 인기 먹거리로 세계 곳곳에 퍼지고 있다. 2000년 전 동해안의 특산품으로 등장한 이래 중국과 일본의 약재로 쓰이고, 지금은 세계인의 간식이 된 해초의 놀라운 여정을 살펴보자. 1만5000년 전부터 먹은 해초
유럽인들은 해초를 전혀 먹지 않았다고 최근까지도 여겨졌다. 그런데 스페인 라코루냐의 중석기시대 인골을 분석한 최신 연구 결과, 약 8000년 전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해조류를 꾸준히 먹어온 것이 밝혀졌다. 아메리카 대륙은 그보다도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칠레 남부 몬테베르데 유적에서는 약 1만4600년 전 사람들이 석기로 해조류를 짓이기며 가공한 흔적이 발견됐다. 특히 이 유적이 해안에서 60∼70km 떨어진 내륙에 있었다는 점에서 해조류가 당시 이 지역 일대에서 널리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설에 따르면 아메리카 대륙의 사람은 1만6000년 전 베링해를 넘어간 것이니, 동아시아 구석기시대에도 해조류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서양에서 해조류는 또 다른 생필품으로 사용됐다. 17∼18세기 스코틀랜드와 오크니 제도에서는 해조류를 태워 만든 알칼리성 재를 이용해 유리와 비누를 만들거나, 나트륨과 칼슘이 풍부한 해조류를 밭에 뿌려 척박한 토양을 일궜다. 심지어 북대서양 지역에서는 이를 태운 재를 ‘흑소금’이라 부르며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사피엔스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해조류였지만,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를 제외하면 그 전통은 거의 사라졌다.
동해안의 특산품, 다시마
한국의 신석기시대나 일본 조몬시대의 사람들은 주로 해안가에 살면서 조개무지를 남겼고, 그 안에서는 어골과 각종 어로 도구가 대량으로 쏟아졌다. 해조류도 식재료로 널리 사용했을 테지만 아직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대신 역사시대에 접어들면 미역과 다시마, 김이 공물과 진상품, 의례 음식에 반복해 등장하며 국가 재정과 식문화의 일부로 정착한 모습이 확인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기록에 본격적으로 해조류가 등장하는데, 김·미역·다시마·톳을 혼용해 사용했다. 특히 중국 고전에서 곤포(昆布)라 불리는 다시마가 아주 유명했다. 한반도 동해안에서는 지금의 북한 함경남도 함흥 일대가 대표적인 다시마 산지로 꼽혔고, 시대를 관통하며 귀한 교역품으로 대접받았다.
다시마는 차가운 한대·아한대 해역에서만 잘 자라며, 수온이 20도를 크게 넘으면 생육이 어려운 편이다. 이 까다로운 생태 조건 때문에 1960년대 양식 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 동아시아에서 다시마가 자생하는 곳은 동해안 북부 함흥 일대와 일본 도호쿠∼홋카이도 남부 해안뿐이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도 저서 ‘경세유표’에서 “북도의 곤포는 천하에 진귀한 물건이니 오직 함흥 앞바다에서만 난다”고 할 정도였다.
동해안의 명물인 다시마는 고구려 이전에 동해안에 옥저 세력이 살면서부터 알려졌다. 고구려는 건국과 함께 동해안으로 진출해 옥저를 복속시켰고, 그들로부터 다양한 동해안의 특산품인 해산물과 소금을 취합한다. 이때 옥저가 고구려에 진상한 해산물 중에 ‘맥포(貊布)’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다시마 같은 해조류는 곤포, 해포 등 생김새 때문에 직물을 의미하는 ‘포(布)’ 자를 많이 쓰니, 해조류를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당나라에서 이름 떨친 고구려 다시마
고구려 시대를 거치며 다시마는 중국에서도 귀한 약재로 자리 잡았다. 치열한 당-고구려 전쟁에도 명성은 이어졌다. 당 태종이 친정을 한 고구려 전쟁에서 백암성을 함락시키자 고구려인들이 유제품의 일종인 이락(夷酪)과 다시마를 바쳤다고 한다.
실제로 당나라의 여러 의서에 다시마가 약재로 등록됐는데, 그 효과 중 하나가 목의 멍울(갑상샘종)을 없애는 것이라 돼 있었다. 아이오딘(요오드)이라는 성분과 갑상샘 호르몬의 관계는 19세기 이후에야 과학적으로 규명됐지만, 그 이전에도 비슷한 약효를 경험적으로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와 중국 내륙 사람들에게 아이오딘이 풍부한 해조류는 귀한 약재로 대접받았을 것이다. 다시마는 미역의 7배, 김의 100배가 넘는 아이오딘이 포함돼 있다.
동해안 다시마의 명성은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에도 이어졌다. ‘신당서’ 발해전은 발해의 특산품으로 지금의 함흥 근처에서 나오는 ‘남해의 곤포(南海之昆布)’를 꼽았다. 발해는 세 차례에 걸쳐 당과 오대 왕조에 인삼, 백부자와 함께 다시마를 진상했다. 발해는 일본으로도 사신을 파견했는데, 그 도착지는 지금의 아키타와 노토반도 지역이었다. 지금도 이 지역에서는 다시마가 축제(마쓰리)의 제단 한가운데 놓여진다. 일본 민속에서도 다시마는 기쁨, 번영, 바다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제물로 사랑받았다. 이미 일본에서도 8세기 이후 신사와 불교 의식 등 귀한 자리에서 다시마가 등장했다.
동해를 사이에 두고 발해와 일본은 공통적으로 다시마를 귀한 바다의 음식으로 간주해 음식과 약재를 만들었다. 그리고 발해는 다시마를 당나라에 수출했고, 다시마는 중국에서도 약재로 쓰였다. 우리 주변에 흔한 동해안의 이 작은 해조류가 사실은 당·발해·일본 세 문명을 실처럼 꿰는 고대 교역물의 하나였던 셈이다.
다시마 대신 등장한 김과 미역
다시마가 북방의 귀한 교역품이었기 때문에 한반도 남쪽에서는 미역과 김이 주로 소비됐다. 고려 시대부터 산후조리로 미역국을 먹는 풍습이 자리 잡았고, 여러 사서에도 미역의 약효(열 내림, 기 풀림, 이뇨)가 기록돼 있다. 또한 다시마의 부족은 새로운 대체재인 김의 유행으로 이어졌다. 17세기 중반에 시작된 김 양식은 1960년대에 조개껍데기를 이용한 인공 채묘 기술과 양식법이 정착되면서 비교적 빠른 시간에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해초가 됐다.
미국의 한 마트에 조미김 제품이 박스째 진열돼 있다. 강인욱 교수 제공김과 미역이 한국을 대표하는 해조류가 된 또 다른 원인으로 광복 직후 북한의 다시마 공급 차단이 있다. 물론 1970년대 이후 전남 완도, 부산 기장 등에서도 다시마 양식이 시작됐고, 다시마의 감칠맛은 인공조미료(MSG)로 대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 풍부한 김과 미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요리가 발달하며 한국 식단의 바다 사랑이 더욱 깊어졌다.
세계로 퍼진 ‘바다의 배추’
동해와 해조류의 인연은 19세기 말부터 연해주와 사할린으로 이주한 고려인들과 함께 소련 각지로 퍼져 나갔다. 지금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시장에 가면 고려인의 김치와 함께 다시마 샐러드를 팔고 있다. 소련 시절 다시마 샐러드는 아이오딘 보충 식단으로 인식됐고, 소련 정부가 국가 차원의 건강식품으로 공인해 통조림 생산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해조류를 ‘바다의 배추’라 불렀고, 소련과 그 주변 지역에서 값싼 건강식으로 널리 보급됐다. 특히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과 갑상샘 보호에 대한 불안이 커지며 수요는 더 커졌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루미가 김밥을 먹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요즘 영국 런던이나 미국 뉴욕에서는 김밥가게 앞에 줄이 늘어선다. 한때 서구인들이 “물고기나 먹는 바닷속 식물”이라며 고개를 돌렸던 그 검은 해초가 이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며 세계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K간식이 됐다. 오랫동안 천대받던 한국 해조류의 위력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2000년 전 고구려가 동해로 진출하며 시작됐고, 이후 당나라와 일본에서 귀한 약재와 음식으로 쓰이며 명성을 이어갔다. 지금 전 세계인이 김 한 장에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수천 년 만에 그 길이 다시 열리는 장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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