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 제시한 철학 거장 하버마스 별세

  • 동아일보

민주주의 사회 소통 의미 정립
서구좌파 상징-전후독일 양심 평가
김지하 등 논란때 사상적 자유 옹호

14일(현지 시간) 별세한 독일의 세계적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AP 뉴시스
14일(현지 시간) 별세한 독일의 세계적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AP 뉴시스
민주사회의 소통을 강조하는 ‘공론장(公論場)’ 개념 등을 제시해 20세기 후반 정치, 사회, 철학 등 전반적인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전후 독일의 지성’ 위르겐 하버마스가 타계했다. 향년 97세.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방송은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하버마스가 14일(현지 시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슈타른베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1929년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1세대 학자인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1969) 아래서 연구를 하고, 1960년대부터 하이델베르크대와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가르쳤다. 윗입술이 갈라진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났으나 주변의 놀림에 개의치 않고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매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인의 대표 저서인 ‘공론장의 구조변동’(1962년)과 ‘의사소통 행위 이론’(1981년)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 간의 합리적 토론과 소통의 의미를 정립한 걸작으로 꼽힌다. 그는 17, 18세기 서유럽에서 부르주아 공론장이 발달하면서 여론을 형성했고, 이를 통해 근대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봤다. 시민은 단지 명령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공론장에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정세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서구 좌파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다만 1970년대 독일 학생운동의 폭력성을 비난하며 사이가 멀어졌고, 이후 정치 참여엔 다소 거리를 둬 왔다. 1980년대 일부 역사학자들이 홀로코스트를 유럽의 전쟁과 폭력이란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하자 그는 독일이 과거 범죄를 직시하고 성찰하는 ‘과거사 청산’을 국가 정체성의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반론했다. 로이터통신은 “하버마스는 전후 독일의 양심을 형성하고 대변하는 버팀목이 됐다”고 평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김지하 시인(1941∼2022)이나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가 사회적 논란이 됐을 때 ‘지식인의 사상적 자유’를 옹호하며 한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1996년 서울대 초청으로 방한했을 당시엔 약 2주간 이어진 강연과 행사마다 수천 명씩 몰렸다.

고인은 2012년 동아일보에 게재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의 대담에서 “한국 정치가 새로운 분기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는 “1949년 나치 체제의 유산을 정리하고 서독이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지만, 적과 동지를 이분법으로 가르는 정치문화를 바꾸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며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도 자신의 관점만이 옳다고 여기는 냉전적 사고가 오래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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