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가들은 저녁 모임에서 미술을 논하고, 화가들은 저녁 모임에서 돈을 논한다.” 19세기 독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로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근거는 없다. 분명한 건 상당한 풍자와 함께 통찰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먼저 이 말은 ‘남의 떡이 커 보인다’의 직업적 버전으로 들린다. 돈을 다루는 은행가들은 예술을 동경하고, 반면 자유로운 영혼의 화가들은 도리어 돈 같은 현실 문제에 골몰한다고 꼬집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의 숙명 중 하나가 다른 직종에 대한 선망인데, 은행가와 예술가는 양극단의 직업세계로 서로를 충분히 동경할 만하다.
이 말을 상당히 비판적으로 풀어볼 수도 있다. 은행가들이 미술의 세계마저 전유하려 하지만, 막상 미술가들은 생계에 발목이 잡혀 움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성공한 은행가나 기업인이 미술에 관심을 두는 것을 부의 과시이거나 투자나 절세 같은 또 다른 재테크로 보는 시선이 존재하기에, 이 같은 해석이 지나치다고만 볼 수는 없다.
화가 모임에서 돈이 자주 화제로 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누가 어떤 작품을 얼마에 팔았다더라는 식이다. 화가들의 대화가 세속적으로 흘러간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작품이 팔려야 생계를 이어 나가고, 그래야 다음 작품도 그릴 수 있다. 문제라면 좋은 작품이 팔리는 게 아니라 ‘팔리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란 공식이 굳어지는 상황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가 개인도 초인적인 자기 확신 없이는 시장 논리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진정 자본가와 미술 사이에 이상적인 공생 모델은 없을까? 돈 많은 은행가나 기업인이 아낌없이 미술을 지원한 사례가 역사적으로 없는 건 아니다. 600년 전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은 막강한 재력으로 미술가들을 발굴·육성해 르네상스라는 문화예술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오늘날까지 ‘미술 후원 하면 메디치’라는 공식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메디치 같은 가문이 많아지는 게 미술 활성화를 위한 정답 중 하나일 수 있을 텐데, 바로 이 지점에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인 ‘리먼 컬렉션’을 주목해 볼 만하다.
은행가의 몰락, 컬렉터의 명성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MET)의 ‘리먼 컬렉션’을 일군 은행가 필립 리먼(왼쪽 사진)과 아들 로버트 리먼. 사진 출처 하버드비즈니스스쿨 홈페이지·MET리먼 컬렉션은 한때 미국의 대표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리먼브러더스를 이끈 필립 리먼(1861∼1947)과 그의 아들 로버트 리먼(1891∼1969)이 수집한 미술품을 말한다. 14∼20세기 회화와 드로잉, 공예 작품 등을 폭넓게 포함하고 있다. 그중 2600점이 1969년 아들 리먼 사망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MET)에 기증됐다. 리먼 컬렉션 중 인상주의와 근현대 시기의 작품 65점이 MET의 다른 소장품 16점과 함께 이번에 한국을 찾았다.
리먼 가문을 포함해 현대의 어느 누구도 미술 후원에 관해 메디치 집안의 명성에 도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리먼 가문이 메디치 가문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점은 짚어볼 만하다. 먼저 두 가문 모두 은행업으로 부를 쌓은 다음, 대를 이어 미술을 후원했다. 리먼 가문은 19세기 중반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가문이었다. 이 집안이 세운 리먼브러더스는 처음에는 면화 같은 상품 거래로 돈을 모으다 뉴욕으로 이주한 뒤 은행업으로 부를 일궜다.
두 가문 모두 은행업으로는 실패했다는 점도 같다. 2008년 세계금융시장을 뒤흔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한다. 리먼 가문의 부는 대략 1850∼2008년 150여 년간 지속됐다. 메디치 가문도 13세기 후반부터 은행업을 시작하며 큰 부를 일궜지만 1472년 파산한다. 메디치 은행의 런던 지점이 영국 에드워드 4세에게 거액을 빌려줬다가 떼이고, 그 여파로 피렌체 본점까지 파산하게 된다.
은행업으로만 놓고 보면 메디치 가문이나 리먼 가문이 영광을 누린 시간은 짧지만 미술 덕분에 두 가문 모두 역사 속에서 긍정적으로 기억된다. 메디치 가문의 컬렉션은 이탈리아 우피치미술관의 바탕이 됐고, 리먼 가문의 컬렉션은 MET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두 미술관이 지속되는 한 두 가문의 명성은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다.
‘밥상머리’에서 키운 미술의 유산
한 가지 짚어봐야 할 점은 두 은행 가문 모두 저녁 식사 자리에서 미술 이야기를 자주 꺼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메디치 가문의 미술 후원 전설을 연 코지모 데 메디치의 경우, 화가들을 자신의 집이나 별장에 초대해 함께 식사하고 체스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미술가나 문인들과 격 없이 함께하는 가풍은 그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도 이어진다.
미술에 대한 ‘밥상머리 교육’은 리먼 가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로버트 리먼은 자신이 미술을 수집하게 된 계기로 부모의 영향을 되새기며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부모님은 매년 유럽을 여행하며 그림, 태피스트리, 가구를 구입했다. … 부모님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계셨고,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사들였다.” 부모의 작품 구매 여정을 함께하며 자연스레 미술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셈인데, 작품 구매 후 식사 자리에는 미술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글을 시작하며 ‘은행가들은 저녁 모임에서 미술을 논한다’고 했는데, 두 가문은 확실히 이를 제대로 실천했다. 또 두 가문의 컬렉션이 국가에 기증되는 과정을 보면, 미술에 관한 이들의 대화는 투자나 과시라기보다는 좀 더 순수한 의도로 해석할 여지가 커 보인다.
로버트 리먼은 1957년 프랑스 오랑주리미술관에서 300여 점의 가문 컬렉션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를 열며 “위대한 예술은 나만의 기쁨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더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누릴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12년 후 그는 자신의 말을 실현한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컬렉션 대부분을 MET에 기증한다. 정확히는 그의 사후 설립된 로버트 리먼 재단이 이 결정을 내린다. 로버트 리먼이 일찍부터 MET의 이사였고, 1967년에는 초대 이사회 의장까지 지냈기에 기증 결정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미술관에 들어온 개인의 저택
리먼 컬렉션은 로버트 리먼의 저택을 재현한다는 조건으로 기증된다. 현재 MET 내 전시장은 작품 배치뿐만 아니라 벽난로, 가구, 벽지 등 그의 저택 공간을 세밀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하버드비즈니스스쿨 홈페이지·MET여기서 한 가지 쟁점은 기증 조건에 로버트 리먼이 살았던 저택의 환경을 재현한 새로운 전시공간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었다. MET는 박물관 내 개인의 기념공간을 엄격히 배제해 왔기 때문에 이 조건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사실 MET의 컬렉션 정책을 기증자 개인보다 시민의 공익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정립한 이는 또 다른 은행가 J P 모건(1837∼1913)이었다. 그는 MET 이사회 4대 회장(1904∼1913)을 재임하며 기증자의 이름을 딴 개별 전시공간을 불허하는 정책을 확립했다. 따라서 자신의 저택을 재현하는 전시공간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로버트 리먼 재단의 기증 조건은 당시 MET로서는 받아들이기 난감한 요구였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내 MET는 1970년 개관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증축했다. 삼각형처럼 튀어나온 공간(원 안)이 리먼 컬렉션이 전시된 ‘리먼 윙’이다. 사진 출처 하버드비즈니스스쿨 홈페이지·MET결과적으로 MET는 ‘리먼 윙’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증설하고 이곳에 리먼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 MET 서쪽 끝에 자리한 950∼962번 방이 그곳인데, 유리 피라미드와 정원까지 갖춘 복층 공간에 리먼 가문의 기증 작품들을 빼곡히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 내부는 카펫부터 벽지, 가구까지 로버트 리먼이 실제 살았던 54번가 저택을 그대로 재현했다. 결국 MET가 기존의 전시정책을 바꾼 셈인데, 그만큼 리먼 컬렉션이 탁월했다고 볼 수도 있다. 동시에 기증자에 대한 예우를 강조해야 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수용한 결과로도 해석할 수 있다.
MET의 리먼 윙에 들어서면 기존 전시장과는 달리 개인 컬렉터의 안방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개인의 추모공간으로서 이보다 더 나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20세기 한 미술 컬렉터의 취향이 잘 느껴지는 공간이란 찬사와 함께, 공공 재원으로 개인을 기념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미술 투자 다시 살아나기를
더 큰 문제는 박물관 안에서 리먼 컬렉션이 고립돼 보인다는 점이다. 전시 작품은 새로운 작품과 만나야 힘을 받는데, 기증 조건에 따라 별도의 공간에 묶여 전시되다 보니 파급력을 얻기 쉽지 않다. 앞으로 MET의 전시공간은 시대에 맞춰 빠르게 변신할 텐데, 리먼 컬렉션은 일종의 ‘고인물’이 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별도의 공간이 기증자의 유지를 제대로 받드는 방식이 맞는지는 심각하게 고민해 볼 사례다.
지난해 한국 미술 시장은 불황으로 화가들의 삶도 크게 위축됐다. 새해에는 메디치나 리먼 가문과 같은 미술 투자가 다시 살아나 미술 시장에 온기가 돌고, 화가들도 돈 이야기를 조금 더 자신 있게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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