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우주의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 다 미쳤다고 했습니다. 해외에서는 발사체도 없는 나라에서 무슨 우주의학이냐며, 북한보다도 우주 기술에 뒤처진 나라가 아니냐고 했었죠.”
이달 27일로 예정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4차 발사에 탑재되는 우주 바이오 실험 장비 ‘바이오캐비닛’을 개발한 박찬흠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1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연구를 시작하던 10여 년 전을 떠올리며 이 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이제는 누리호도 개발되고 우주 의학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며 “향후 우주 산업의 큰 축이 될 것”이라고 했다.
● ‘미니 심장’ 자동으로 만드는 ‘바이오캐비닛’
박 교수가 개발한 바이오캐비닛은 3D 바이오프린터와 세포 배양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한 장치다. 누리호 4차 발사의 주탑재위성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에 실려 고도 600km에서 60일간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심장 줄기세포와 혈관 세포가 미세중력 상태에서 자라면서 작은 ‘미니 심장(심장 오가노이드)’이 만들어지게 된다. 미니 심장이 형성되는 과정을 관찰하고 방사선 노출이 큰 우주 환경에서 심장의 기능 변화 등을 관측하는 게 이번 실험의 목적이다.
우주의 ‘미세중력’ 환경은 의학 연구를 하는 데 큰 이점을 가진다. 지구에서는 중력때문에 세포들이 아래로 가라앉아 오가노이드를 포함한 다양한 세포 실험에 한계가 있다. 박 교수 역시 조직공학 연구를 하면서 이런 한계점은 느껴 처음으로 우주의학 연구에 발을 디디게 됐다. 박 교수는 “10여 년간 연구를 해왔지만 아직도 이 분야는 시작 단계”라며 “한국이 집중 투자하기에 늦지 않은 시기로 빠르게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 암 공격성 줄어드는 우주 환경…‘우주 의료 관광’ 발전
박 교수가 이처럼 ‘속도’를 강조하는 것은 보수적인 우주 산업의 분위기 때문이다. 우주에서는 사소한 실수 하나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우주 기관들은 성능이 뛰어난 것보다는 안전이 검증된 기술을 선택한다. 즉, 우주의학 분야에서도 빠르게 안전성을 검증한 기술만이 채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우주 로봇팔 기술 ‘캐나담(Canadarm)’이 대표적인 사례다. 캐나담은 1980년대부터 우주에서 기술을 검증하며 안전성을 확인해 현재 우주 로봇 팔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박 교수는 “캐나다가 우주 산업 전체에서 보자면 강국은 아니지만 캐나담 하나로 미국, 유럽도 꼼짝 못한다”며 “우주의학 기술도 이런 관점에서 빠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2023년 7억7000만 달러(약 1조2000억 원)였던 우주의학 시장 규모가 2030년에는 16억 달러(약 2조3000억 원)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이 시장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내다본다. 그는 “여러 연구들에서 암이 미세중력 환경에서는 공격성이 떨어지고 항암 효과도 커진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이를 실제 우주환경에서 확인하기 위해 2027년 ‘바이오렉스’라는 우주 실험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2023년 과기정통부의 ‘STEAM 연구사업’에 선정됐으며, 우주 실험물을 지구로 귀환시키는 국내 최초의 시도다. 박 교수팀은 바이오렉스에서 교모세포종 세포를 3차원 배양하고 항암제를 투여해 효과를 알아볼 계획이다. 박 교수는 “실제 우주에서 항암에 대한 효과가 확인되면 향후에는 ‘우주 의료 관광’까지 산업이 커질 수 있다”며 “우주의학은 기초 연구, 산업, 안보 차원에서 정부가 반드시 육성해야 할 분야”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