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머니’ 154조 시대, 후견-신탁제도로 해법 찾아야[기고/정순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13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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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에서도 이른바 잠자는 돈인 ‘치매 머니’가 이슈로 부상했다. 일본에서 먼저 사용된 용어인 치매 머니는 치매 노인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예금 등 자산을 말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조사 결과에 의하면, 2023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 124만 명 중 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76만 명이고, 이들이 보유한 자산은 약 154조 원이다. 이들이 가진 소득 및 재산은 2050년이면 예상 국내총생산(GDP)의 15.6% 수준인 488조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 현재 우리나라 치매 환자 수는 약 91만 명이지만 2050년에는 약 396만 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산돼 치매 머니는 더 급속하게 불어날 수 있다. 일본에선 치매 머니가 GDP의 40%에 이를 만큼 엄청난 규모로 알려져 있다.

치매 머니가 급속하게 늘면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본인 동의 없이는 은행에 예치된 돈을 인출할 수 없게 하는 보호 장치는 아무런 준비 없이 치매에 걸린 이들의 자산을 동결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세대 간 상속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소비는 물론 주식 및 부동산 시장을 위축시키고 나아가 GDP 하락까지 가져올 수 있다. 주변의 지인들이 치매 머니를 유용하거나 치매 노인을 경제적으로 착취할 수도 있고, 치매 노인이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노출돼 재산을 날릴 위험도 있다.

따라서 치매 머니가 잘못 쓰일 위험을 줄이는 한편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대표적인 제도가 성년후견제도와 신탁제도다.

성년후견제도는 고령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가정법원이 의사결정을 할 법적 후견인을 정해 주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는 노인 스스로 법률행위를 하는 데 제약이 생긴 이후에 작동해 노인의 적극적인 자산관리 방안 설계와 활용에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치매 발생 전 자신이 생각하는 후견인을 미리 정해 놓는 임의후견제도도 있다. 후견 계약은 공정증서로 체결하고, 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한다. 다만 여전히 후견인이 치매 노인을 상대로 재산을 유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후견인의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신탁제도 중 하나가 유언대용신탁이다. 이 제도는 말 그대로 유언처럼 사후 자산 처분 방식을 정할 수 있다. 신탁업 인가를 받은 금융기관이 위탁자가 정한 바에 따라 신탁재산을 관리하게 되므로 자녀나 타인이 이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또한 재산의 명의가 수탁자(금융기관)에 있기 때문에 제3자로부터의 사기 피해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일본에서 활용하는 후견제도 지원신탁도 고려해 볼 만하다. 후견지원신탁은 성년후견인 등이 선임된 상태에서 후견인에 의한 재산 유용을 막기 위해 신탁을 활용하는 것이다. 즉, 신탁이 후견제도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 제도로 인해 일본에서 후견인의 부정행위 건수와 피해액 모두 감소했다.

한국에서도 후견지원신탁을 임의후견제도와 결합한 형태로 도입한다면, 고령자가 사전에 후견인과 그 역할을 원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고, 자산 지급 방식까지 명확히 설정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는 치매 머니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문제를 예방하고, 고령사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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