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치러진 2017년 5월 19대 대선에서 각 후보의 현수막이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 형형색색의 각 당 상징색이 도드라져 보인다. 동아일보DB
신원건 사진부 기자상품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이 대세다. 기능이 복잡해져도 디자인은 최소한으로 단순화하려 한다. 제품만이 아니다. 기업들의 브랜드 로고도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 이미지와 문자로 구성된 로고에서 과감하게 문자를 빼는 등 단순화한다. 입체적인 선과 면이었던 로고도 단순 평면으로 바꾼다. 색깔도 원색 대신 채도가 낮은 색으로 바꾸거나 아예 흑백으로 만들기도 한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다. 브랜드를 딱히 더 알릴 필요 없는 인지도 높은 유명 기업이 이에 해당한다. 기업 브랜드나 제품의 위상이 높아지면 튀는 색과 디자인 대신에 절제미를 선택한다. 차분한 모양새와 색상이 오히려 세련된 느낌과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사진기자들도 날씨 스케치를 할 때 이를 의식한다. 십수 년 전만 해도 봄철 꽃 사진 취재의 대상으로 샛노란 유채밭이나 원색의 튤립, 장미, 철쭉 등이 인기였다. 요즘은 벚꽃이 사진기자들의 필수 코스다. 가을에는 단풍나무, 은행나무보다 연한 갈색으로 물드는 메타세쿼이아를 더 선호한다. 억새밭이나 연분홍 핑크뮬리도 인기 있다.
원색에 익숙해 있으면 차분한 색상이 어색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지난달 대한항공이 항공기의 새 동체 디자인을 공개하자 인터넷 등에서는 ‘등 푸른 생선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기존의 동체 색보다 조금 더 짙어지긴 했지만 고유의 하늘색을 잘 지켰는데, 왜 하필 등 푸른 생선이었을까. 꼬리날개의 빨간 무늬가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색과 빨간색은 보색 관계에 가깝다. 새 디자인에선 꼬리날개의 태극 문양을 남색(대한항공 측은 ‘다크 블루’라고 설명) 한 가지로 바꿨다. 선 두께도 얇고 바탕색과 비슷한 파란색 계열이다. 동체 로고인 ‘KOREAN AIR’에서도 ‘AIR’를 뺐다.
대한항공은 ‘절제된 표현 방식으로 구현한 현대적인 이미지’라고 발표했다. 태극 문양과 동체 색을 유지하면서도 절제미를 찾으려 한 것이다. 디자인 요소들이 저마다 따로 튀지 않고 차분한 조화를 이루는 단순함을 추구했다. 이 점에서 누리꾼들의 생선 얘기는 새 디자인이 성공적이란 방증이다. 대한항공이 원색을 포기한 이유도 아마 다른 기업들과 비슷할 것이다. 이미 굴지의 글로벌 항공사이기 때문이다. 굳이 애써 가며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세계 주요 항공사들도 동체 로고에서 ‘AIR’ 폰트를 빼는 등 미니멀리즘을 지향하고 있다.
원색은 시선을 강탈한다. 소방·경찰 차량이나 어린이 보호구역 등이 강렬한 원색을 쓰는 이유다. 신생 업체는 소비자의 눈에 쉽게 띄기 위해 원색을 브랜드 로고나 매장 색으로 채택한다. 저가 커피 체인점들은 노란색 간판에 노란색 벽면으로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게 한다. 저가 항공 동체들에는 주로 원색이나 형광색이 칠해져 있다. 신생 방송사 채널은 자막 배경 띠를 빨간색으로 하기도 한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있는 방송사 로고도 원색으로 크게 보이게 한다. 시간이 지나 시청률이 오르고 자리를 잡으면 로고 색을 흰색으로 하고 자막 배경띠도 오래 봐도 지루하지 않게 채도를 낮춘다. 원색은 오래 보면 피곤하다.
유동 인구가 많은 거리에 원색의 향연이 펼쳐질 때가 있다. 선거운동 기간이다. 패션 등 디자인 업계에서는 사실상 멸종된 원색으로 무대를 꾸미고 원색 옷을 입은 운동원들이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친다. 파랑, 빨강, 주황, 노랑, 초록이 등장한다. 상대 당과 차별화하기 위해 원색인 저마다의 상징색을 쓰는 것이겠지만 유권자의 시선을 강제로 빼앗고 피로감을 준다. 세련됐다는 느낌과는 정반대다. 각 후보가 당 고유 점퍼를 입고 TV토론을 하면 ‘꼬꼬마 텔레토비’ 분위기다.
메시지는 단순할수록 쉽게 각인된다. 소통 전문가들은 메시지의 첫 번째 원칙으로 ‘단순성’을 꼽는다. 핵심을 간결하게 드러내고 불필요한 메시지를 제거하는 일이다. ‘무엇을 더할까’보다 ‘무엇을 뺄까’를 연구한다. 단순성은 절제와 비슷하다. 신문 보도사진도 의미 없는 주변 요소를 제거(트리밍)하고 앵글을 단순하게 구성하려 노력한다.
당 로고와 선거운동에 원색을 입히는 것도 존재감을 단순하게 드러내려는 점에서는 효과적이다. 하지만 강렬하게 각인되기보다 ‘왜 색깔로 존재를 강요하는 걸까’ 하는 불편함이 앞선다. 단순하더라도 절제되지 않은 원색 남발은 그저 요란해 보일 뿐이다.
댓글 3
추천 많은 댓글
2025-04-24 09:01:49
문씨 사진좀 화면에 올리지 마시요 구역질나오니
2025-04-24 07:34:23
당연히 옳은 말씀 하셨지만 정작 출마한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목숨내놓고 싸우는 현장이니 그만큼 보이는 모습이 처절할 수밖에. 호불호를 떠나 우리네 국민성이라는 생각도 든다.
2025-04-24 02:04:23
선 두께도 얇고 바탕색과 비슷한 파란색 계열이다. 선에는 두께가 없다. 굵기나 폭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