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과학자 교류하는 ‘비대면 공동연구’… 성적표는?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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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연구서 원격 연구로 전환
개념 정립 단계서 참여율 줄고
연구 후반 기술적 과제에 치중
“획기적 성과 거의 찾기 어려워”

과학계 연구를 분석한 링페이 우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는 국제공동연구가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연구자가 현지에서 대면 공동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에 상응하는 비용과 인프라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과학계 연구를 분석한 링페이 우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는 국제공동연구가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연구자가 현지에서 대면 공동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에 상응하는 비용과 인프라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글로벌 협력이 강조되며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연구자들이 영상통화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원격으로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지만, 정작 획기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링페이 우 미국 피츠버그대 정보컴퓨터학과 교수가 영국 옥스퍼드대 인터넷연구소와 함께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발표한 연구 결과다.

연구팀에 따르면 지난 반세기 동안 과학계 연구 주제는 점차 세분화돼 왔다. 좁은 분야를 깊게 다루는 연구자가 많아지다 보니 다수가 팀을 이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국제 공동연구의 필요성도 커졌다. 국내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년도 전체 연구개발(R&D) 예산 중 글로벌 R&D 비중을 종전 1.9%에서 6∼7%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지난달 27일 발표했다. 한국의 경우 국제공저 논문 비율·공동 특허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낮은 데다 우수 논문이나 특허 건수도 저조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우 교수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연구자가 직접 연구 현장에 갈 수 있게끔 실질적인 지원을 해주지 않는 한 공동연구에서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1960년부터 2020년 사이 전 세계 2000만 명 이상의 학자가 이름을 올린 논문 약 2013만4803건과 1976년에서 2020년 사이 출원된 특허 406만564개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원격 공동연구의 성과는 기대보다 미미하며 각 연구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과’라고 인정받을 만한 연구는 거의 찾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팀은 우선 각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연구자의 소속 대학, 등록된 거주지 등을 분류했다. 또 각 연구자가 해당 연구에서 정확히 어떤 과제를 수행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들이 그간 네이처, 사이언스, 미국국립과학원회보 등 국제학술지에 어떤 연구 성과를 발표했는지 확인했다.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함께 연구할 때와 원격 연구로 전환한 뒤 역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확인하는 한편, 연구자의 세분화된 전공 분야가 실제 공동연구 결과에서 어느 정도 명확히 드러났는지 AI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했다. 공동연구에 참여한 연구자의 참여 분야는 연구 개념 정립, 실험 수행, 데이터 분석, 논문 작성 등 4가지 분야로 나눴다.

분석 결과 원격으로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경우 연구 초반보다는 연구 후반에 이뤄지는 기술적인 분석 등의 과제를 6% 더 많이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 협업에서 원격 협업으로 전환할 경우 개념 정립 단계에 참여하는 비율은 34%에서 28%로 떨어졌다. 연구팀은 이에 대해 “획기적인 발상과 이론이 제시되는 연구 초반에 오히려 원격 협업이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연구자들의 대면 없이 진행되는 공동연구가 새로운 과학적 성과를 내는 데 오히려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고 봤다.

연구팀은 원격 협업이 지식의 새로운 통합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기존 기대와 달리 연구자 각자의 능력을 융합하는 데 난관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원격 협업이 더 활발해진 상황에서 이번 연구 결과는 정책 결정 당사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가장 효과적인 공동연구 방법은 “연구팀이 현장에서 함께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며, 연구자가 집을 떠나 원거리를 이동한 후 현지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인프라와 비용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건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wissen@donga.com



#비대면#공동연구#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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