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지금의 청년들과 비슷해”…소설 ‘범도’ 펴낸 방현석 작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8일 10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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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 동아일보DB.
홍범도 장군. 동아일보DB.

“일격! 필살!”

1920년 6월 7일 홍범도 장군(1868∼1943)의 선두 저격을 신호로 중국 만주 봉오동엔 독립군의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독립군을 추격하던 일본군은 매복작전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일본군은 잠시 응사하며 반격했지만, 곧 날아드는 탄환에 맞아 주저앉고 도망치다 넘어졌다.

일본군 157명이 사살돼 일제에 치욕을, 독립군에게 희망을 선사한 봉오동전투는 이렇게 독립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기세등등할 만도 하지만 홍 장군은 오히려 슬퍼한다. 홍 장군은 죽은 동료를 땅에 묻으며 조용히 읊조린다. “공격할 때 가장 앞에 서고 퇴각할 때 맨 마지막을 지키는 것이 야전 지휘관이다. 그들(죽은 동료) 덕분에 나는 죽지 않았고, 우리는 승리했다.”

장편소설 ‘범도’를 펴낸 방현석 작가가 5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을 걷고 있다. 방 작가는 “일격필살의 저격수였던 홍범도 장군의 탄환은 빗나간 적이 없다.”며 “홍 장군에게 승리는 언제는 승리하는 그날 단 하루였고 남은 모든 날이 패배였다”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7일 출간된 장편소설 ‘범도’(전 2권·문학동네)는 홍 장군을 영웅이 아닌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 그린다. 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방현석 작가(62)는 ‘왜 홍 장군을 위대하게 그리지 않았냐’고 묻자 신간을 손으로 매만지며 “홍 장군은 영웅이 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영웅이 된 사람”이라고 했다.

“홍 장군은 전투 때마다 앞장서면서 동료의 신뢰를 얻었어요. 혈육이나 재산도 남기지 않았죠. 권위를 버리면서 위대해진 영웅의 인간적 면모를 들여보고 싶었습니다.”

방 작가가 홍 장군에 관심을 두게 된 건 2010년부터 독립군 유적지를 답사하면서다. 방 작가는 만주 신흥무관학교, 봉오동 전투지, 홍 장군이 야간 수위 생활하던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을 방문했다. ‘언젠가 꼭 써야한다’는 마음을 지니다가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집필을 시작했다.

“170여 권의 문헌을 읽고, 매주 50시간 이상 3년에 걸쳐서 썼습니다. 밖에서 밥을 먹고 술 마시다가도 홍 장군과 놀고 싶어 빨리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죠. ”

장편소설 ‘범도’를 펴낸 방현석 작가가 5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을 걷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권을 합쳐 1304쪽에 이르는 신작엔 홍 장군의 일생이 담겼다.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홍 장군이 13세에 포수(砲手)가 돼 함경남도 개마고원을 누비고, 만주 벌판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이끄는 서사에 곁들여진 웅대한 자연 풍경 묘사가 압권이다. “포수는 짐승의 질서 속에서 사는 거야”, “가진 총알의 숫자만큼 적을 잡는 것이 바로 우리 포수들”이란 대사는 실제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지만 홍 장군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살려낸다. 홍 장군이 한인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연해주를 떠나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해 눈을 감는 장면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을 던진다.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다뤘다는 점에서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주인공인 김훈 작가(75)의 장편소설 ‘하얼빈’(2022년·문학동네)도 생각 난다.

“안 의사가 양반 출신이라면, 홍 장군은 평민이자 머슴의 아들이죠. 안 의사는 ‘동양평화론’을 주창한 사상가지만, 홍 장군은 ‘끝까지 싸운다’는 목표만 가졌어요. 두 사람은 이렇게 다르지만 일제에 대항했다는 점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본 인물이죠.”

장편소설 ‘범도’. 문학동네 제공.
장편소설 ‘범도’. 문학동네 제공.

왜 지금 홍 장군의 삶을 읽어야 하냐고 물었더니 ‘청년’이란 답이 돌아왔다.

“봉건 사회가 무너지고 나라가 없어 방황하던 홍 장군과 산업 성장이 끝나고 저성장 시대에 좌절한 요즘 청년들이 뭐가 다른가요. 낡은 것이 무너지고, 새로운 희망은 오지 않은 지금 청년들이 새 시대를 개척한 홍 장군을 보며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홍 장군이 억압과 차별을 향해 발사한 탄환은 아직 탄착점에 도착하지 않았을 뿐 빗나가진 않았으니까요.”

장편소설 ‘범도’를 펴낸 방현석 작가가 5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을 걷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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