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 앞서 지난해 11월 일본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다. 어딜 가도 밀려드는 인파에 이곳이 출근길 지옥철인 건지 휴가지인 건지 분간이 안 됐다. 속으로 ‘내가 생각한 휴식이 아니야!’를 백번 외친 오사카 여행이 끝나고 며칠 뒤, 인천발 후쿠오카행 항공편을 끊었다. 이번 목표는 완전한 속세 탈출이다.
지도를 켜고 후쿠오카에서 갈 수 있는 작은 소도시를 찬찬히 살폈다. 그렇게 선택된 곳이 일본 규슈 오이타현의 ‘히타’ ‘유후인’ ‘벳푸’다. 후기를 보니 조용하고 한적하다는 칭찬이 가득했다. 잠시나마 속세 탈출이 필요한 나에게 제격이다.
히타, 유후인, 벳푸 세 도시 모두 후쿠오카시 하카타역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있지만 이동수단은 고속버스로 선택했다. 기차푯값이 꽤 비쌀뿐더러 소요시간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 고속버스를 타기 위한 준비물은 딱 하나, ‘산큐패스’다. 산큐패스를 미리 구매하면 해당 기간 동안 그 지역의 버스와 선박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산큐패스 이용 지역은 ‘북부 규슈권’ ‘남부 규슈권’ ‘전 규슈권’ 3가지로 나눠져 있어 가고자 하는 도시에 맞춰 구매해야 한다.
일부 버스 노선은 예약이 필요하다. 일본 버스 예약 플랫폼 ‘하이웨이버스’를 이용하자. 온라인으로 먼저 자리를 예약해두고 탑승할 때 산큐패스를 보여주면 된다. 한국어도 지원해 편리하다. 하지만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예약하고자 하는 날로부터 정확히 한 달 전에 예약 창이 열리는데 몇 분만 지나도 오전 시간대는 모두 마감된다. 특히 후쿠오카 공항과 유후인을 잇는 노선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니 미리 알람을 설정해두고 예매하길 추천한다.
물의 도시 히타
히타는 후쿠오카시 하카타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 떨어져 있는 일본 소도시다. 히타의 관광 명소는 크게 마메다마치와 구마마치로 나눠져 있는데, ‘덴료 히타’라고도 불리는 마메다마치는 에도시대 막부 정권의 관할지로 과거 규슈 지방에서 가장 번영을 이뤘던 곳이다. 길도 당시 그대로라 에도시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길거리 음식도 많다. 무기야 카페에서 갓 튀긴 ‘키마 카레빵’ ‘긴조 아이스크림’ 등이 유명하다. 전통과 현대가 교차한 모습을 보니 경북 경주의 황리단길이 떠오른다. 구마마치는 마메다마치에 비해선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현지인 사이에서 떠오르는 신시가지라고. 구마마치에 있는 맛집에서 배를 불리고 마메다마치에 있는 마쿠마 강변을 느긋하게 산책하면 여행 코스가 완성된다. 히타역에서 마메다마치는 도보로 20분, 구마마치는 10분 거리에 있어 뚜벅이 여행자도 어렵지 않게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
히타는 ‘물의 도시’라는 별칭답게 물로 된 특산품이 유명하다. 지하수를 사용해 만든 맥주, 일본주, 소주, 식용수, 간장 등이 그 예. 짧은 일정에 방문하지 못했지만 ‘삿포로 맥주 규슈 히타 공장’도 있다. 공장 내에는 음식점이 있어 갓 만든 맥주를 맛보기에 그만이다. 유명 만화 ‘진격의 거인’을 그린 만화가 이사야마 하지메의 출신지로도 알려진 히타는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만화 속 캐릭터 ‘리바이’의 동상이 있는 가하면 관광 안내소엔 진격의 거인 굿즈도 판매한다.
산을 낀 료칸 마을 유후인
히타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약 45분 정도 이동하면 수려한 경치와 온천으로 유명한 유후인에 도착한다. 유후인 어디서나 보이는 유후산은 마을에 중후한 멋을 더한다. 유후인은 사시사철 따뜻한 온천수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온천 마을이다. 명성답게 길을 따라 수 십 개의 료칸이 자리해 있다. 역 주변과 유노츠보 거리는 시끌시끌하지만 료칸 부근은 한적해 낮밤 상관없이 여유를 즐기기 좋다.
유후인은 자전거길이 잘 깔려 있어 자전거를 타고 관광하기 좋다. 유후인 버스터미널에서 유명 관광지 긴린코 호수로 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꼴이라 자전거를 타면 효율적인 관광이 가능하다. 유후인을 가로질러 흐르는 천변을 따라 약 10분 정도 가면 긴린코 호수로 향하기 때문에 길을 찾기 쉽다.
신비한 지옥 마을 벳푸
유후인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이동하면 벳푸에 도착한다. 일본 1위의 온천수 용출량을 자랑하는 온천 명소답게 벳푸에 도착하면 유황 냄새가 도시를 은은하게 맴돈다. 시내 각지에서 온천수가 용출되기 때문이다. 굴뚝마다 나오는 수증기도 인상적이다. 벳푸를 방문한 목적은 ‘지옥 순례(지고쿠 메구리)’를 위해서다. 100℃에 가까운 고온의 간헐천이 펄펄 끓는 모습이 지옥을 연상시켜 붙여진 이름이다. 벳푸에 있는 지옥은 총 8개. 이중 7개 지옥을 입장할 때 유용한 벳푸 지옥 순례 통합권도 있다. 어른 기준으로 총 2200엔(약 2만1000원). 모든 지옥을 돌아보려면 벳푸역 앞에서 출발하는 가메노이 정기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옥 하나당 입장료는 400엔(약 39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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