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항구 80% 장악한 中크레인…‘트로이 목마될까’ 우려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6일 16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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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항구를 장악한 중국산(産) 컨테이너 크레인이 미국의 물류를 마비시키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중국산 크레인에 장착된 센서 등 정보수집 장치가 미군 군수물자 운송 정보를 중국 본국에 보내는 것은 물론 미중 충돌 시 물류망을 교란시켜 미국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송신탑에 대해 미군 핵 기지 감청 가능성이 제기됐고, 중국의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이 미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정부기관, 대학 등에서 퇴출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중국산 크레인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미 의회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미국 산업 곳곳에서 높은 중국 의존도가 드러나면서 중국산 퇴출이 쉽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美 항구 80% 장악한 중국산 크레인
월스트리트저널(WSJ)는 5일(현지 시간) 미 국가안보 당국자들이 항구에 설치된 중국산 크레인을 통해 미군 군수물자 운송 정보가 수집·전송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대형 선박에서 항구로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크레인에 화물 출처와 목적지를 추적할 수 있는 센서가 부착돼 중국 본사로 이 같은 정보가 전송되고 있다는 것. 실제로 미 국방정보국은 2021년 기밀평가 결과 중국 정부가 항구를 통해 운송되는 미군 군사장비에 대한 정보를 크레인을 매개로 수집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WSJ는 전했다.

현재 미 항구에 설치된 크레인의 80%는 중국 상하이전화중공업(ZPMC)가 생산한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ZPMC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역점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의 핵심 역할을 하는 국영기업 중국교통건설(CCCC)의 자회사다.

특히 ZPMC 제품은 미군 기지가 있는 버지니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메릴랜드의 항구에도 설치됐다고 WSJ는 보도했다. 빌 에바니나 전 국가방첩안보센터(NCSC) 소장은 WSJ에 “크레인은 새로운 화웨이가 될 수 있다. 비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 원격접근을 통해 화물 운송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는 지난해 12월 통과된 국방수권법(NDAA)에서 교통부에 외국산 크레인의 사이버 안보 및 국가안보 위협 보고서를 올해 말까지 제출하도록 하는 등 이미 중국산 크레인 차단 작업에 나섰다. 또 공화당 소속 카를로스 히메네스 하원의원은 지난해 중국산 크레인 구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 中 ‘이중용도’ 품목 잇단 규제에 ‘디커플링 역설’
중국산 크레인에 대한 우려는 미국이 중국의 스파이 활동을 차단하기 위해 국가안보 관련 시설에 사용되는 중국산 제품 색출에 나선 가운데 제기됐다. 하지만 미국이 각종 수출 규제와 행정명령을 통해 중국 위협 대응에 나설수록 미중 ‘디커플링의 딜레마’가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와 양자컴퓨터 등 핵심기술 분야에 대한 규제를 내놓는 가운데 저가를 무기로 미국 산업 깊숙이 침투한 중국의 ‘이중용도’ 제품들의 위험성이 제기되면서 중국과의 디커플링 전선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중용도 품목은 상업용이면서 군사용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제품으로, 이들 품목에 대한 차단을 확대하면 미국 기업과 산업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미 상무부는 화웨이 등 제재 기업에 지난해 1분기 230억 달러(약 30조5000억 원)의 수출을 승인해 의회의 질타를 받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4일 바이든 행정부가 화웨이 제재 확대 시 엔비디아 등 미 기업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했다고 보도했다.

포브스지는 “미중 무역과 투자는 지정학적 경쟁과 기술 이전 차단에도 2년 연속 증가세”라며 “중국이 미국의 최대 적인 동시에 여전히 필수적인 공급망 파트너일 수 있다는 거대한 역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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