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진]‘닥치고 성장’보다 ‘머슬업’… 생존을 위한 낙타의 지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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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DBR 편집장
김현진 DBR 편집장
팬데믹 이후 유례없이 성장한 미국의 협업툴 기업 ‘노션’은 최근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광고에 주력하고 있다. 노션은 개발자 등 전문가들이 즐겨 쓰는 소프트웨어였다. 그러다 팬데믹으로 원격근무가 확산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여세를 몰아 대대적인 광고 마케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투자 혹한기를 맞아 비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마른 수건도 쥐어짜고 있는 다른 스타트업들과 달리 이 회사는 대중 마케팅은 물론이고 우리 사주 매입을 통한 인재 유출 차단, 인수합병(M&A)까지 적극 시도하고 나섰다.

하지만 활동 내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호황기, 무조건적으로 몸집을 키우는 ‘닥치고 성장’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인수하는 기업들만 봐도 고평가된 유명 기업이 아닌 투자자들의 손을 거의 타지 않은 곳에만 주목했다. 이것이 합리적인 가격에 우수한 인력과 기술을 신속하게 흡수하기에 적합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기에 광고비를 오히려 늘린 데에도 전략이 담겨 있다. 광고 단가가 떨어지는 시기에 집중적으로 노출을 확대함으로써 오피스, 구글 워크스페이스 등 절대 강자들에 비해 떨어지는 인지도를 확보하려 한 것이다.

이처럼 경기 침체기에도 움츠리지 않고 신중하게 핵심 사업을 재정비하면서 체질을 강화하는 ‘머슬업(muscle-up)’ 전략이 위기를 기회로 살릴 경기 침체기 핵심 전략으로 꼽히고 있다. 자금 조달 혹한기를 버티기 위한 근력을 키우고 내실을 다지는 머슬업 전략은 과거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성공 공식으로 통했던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 전략과 방향이 정반대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압도적인 고속 성장 신화를 추구했던 호황기형 운영 엔진을 잠시 끄고, 내부 전략과 핵심 역량을 재점검하는 것이 머슬업의 출발점이다. 실리콘밸리 소재 벤처캐피털, 아틀라스퍼시픽의 박제홍 대표는 “머슬업 전략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핵심 성과 목표를 외형 성장에서 내실 다지기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에선 사막과 같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낙타에 빗댄 ‘캐멀(camel) 스타트업’ 역시 불황기에 추구해야 할 기업 모델로 꼽히고 있다. 고속 성장으로 단숨에 1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자랑하게 된 ‘유니콘 스타트업’의 성공 신화가 전설의 동물 유니콘처럼 사실상 실체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현타’에서 비롯된 움직임이다. 처음부터 수익 창출을 목표로 꾸준히 성장하면서 건강하게 사업을 키워나가는 낙타 기업들의 행보는 경기 침체기 머슬업 전략과도 결이 맞닿아 있다.

비제이 고빈다라잔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학원 교수는 “불황 끝에 반드시 호황이 찾아온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가 증명했다”며 “경쟁사들이 감축과 절감으로만 대응하며 웅크리는 시기, 성장을 위한 자원을 확보해야 승리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이미 마라톤은 시작됐다. ‘두 발을 멈추지 않고 전진하며 건강하게 근육 키우기.’ 긴 사막의 끝, 오아시스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명심해야 할 핵심 전략이다.


김현진 DBR 편집장 bright@donga.com
#낙타의 지혜#불황 끝 호황#핵심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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