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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제2 n번방’ 주범 호주서 검거, 성범죄자가 숨을 곳은 없다

입력 2022-11-26 00:00업데이트 2022-11-26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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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를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텔레그램 대화명 ‘엘’을 통해 유포한 용의자가 23일 호주에서 검거됐다. 한국 국적의 20대 중반 남성인 엘은 10년 전부터 호주에 거주했다. 경찰은 인터폴에 적색 수배된 엘을 현지 경찰과의 공조로 체포했으며 조만간 국내로 송환할 예정이다. 올 1월 신고 이후 10개월 만에 20여 명이 연루된 성착취물 범죄의 주범을 붙잡은 것이다.

3년 전 발생한 ‘n번방’과 범행 수법이 비슷해 엘의 범행은 ‘제2의 n번방’ 사건으로 불린다. 하지만 수법은 더 교묘하고 악랄하다. n번방에 대한 경찰 수사가 한창이던 2020년 12월부터 범행을 저지른 엘은 n번방 범죄를 처음으로 파헤쳤던 ‘추적단 불꽃’이나 경찰을 사칭해 미성년자들에게 접근했다. 가해자를 붙잡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추가 성착취물을 요구하기도 했다. 현행 신고 후 수사 착수 시스템으론 이런 대담한 범행을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엘은 지난해 5월 텔레그램에 “절대 잡힐 수가 없다”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국내 수사기관이 협조를 받을 수 없는 해외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을 범행 수단이자 은신처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대화명을 수시로 바꾸고 대화방 30여 개를 운영하다가 폐쇄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성착취물이 유포되지 않았다고 섣불리 판단해 초동 수사에 실패했다. 약 3개월 전 전담팀을 구성한 뒤에야 본격적인 추적에 나섰다. 성착취물 범죄의 수사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

유엔은 이미 22년 전 인터넷 시대에 불거질 아동 청소년 등 미성년자 성착취물의 위험을 경고했다. 하지만 ‘세계 성착취물의 소굴’이라는 오명에도 우리 수사 당국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2년 전 형사처벌 수위를 조금 높였지만 사전 모니터링이나 피해자 보호 대책 등 전반적인 대응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성년자 성범죄가 세계 어디서든, 어떤 수법을 동원하든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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