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타트업 4곳중 1곳 “규제 피해 해외이전 고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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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협회, 256개사 대상 설문조사

#1.가상자산 은행 서비스 국내 1위 업체인 ‘델리오’의 정상호 대표는 국내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1월에 이미 미국에 지사를 냈다. 2년 내 완전 이전을 목표로 잡았다. 정 대표는 “규제로 인해 블록체인 업체들의 투자 유치에 어려움이 있다. 벤처기업 인증이 안 돼 지원을 받지 못할 때도 있으며, 법인 계좌 개설도 어렵다”며 “각종 규제로 인해서 국내 블록체인 업체들이 한국에서 기업을 키우는 데 한계를 느끼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2. 오토바이 배달통에 액정표시장치(LCD)를 달아 디지털 광고를 제공하는 ‘뉴코애드윈드’는 올해부터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중동 진출 협상을 현지 업체와 타진하고 있다. 2019년 규제 샌드박스(규제유예제도) 실증 특례 승인을 받았지만 허용 대수가 100대로 제한돼 수익을 내기 어려웠다. 장민우 뉴코애드윈드 대표는 “은행 대출까지 포함해 임원진이 약 150억 원을 투자했는데 규제에 막혔다”며 “영국, 아랍에미리트 등 11개국에선 허용되는 것을 우리나라에서 금지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는 10월 18일부터 일주일간 국내 스타트업 256개사를 대상으로 ‘지속 성장과 애로 해소를 위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 기업의 4분의 1(25.4%)이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20일 밝혔다. 국내 규제로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6.6%가 ‘매우 그렇다’, 18.8%가 ‘그런 편이다’라고 답했다. ‘그저 그렇다’가 19.5%, ‘그렇지 않은 편’이 39.5%, ‘전혀 아니다’가 15.6%로 나타났다.


국내 규제로 기업 경영과 신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느냐는 질문에서도 그렇다는 답변이 44.1%로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기업(22.3%)의 배 가까이 많았다.

현장에서는 규제 혁신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님에도 바뀐 게 전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시장성을 내다보고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도 있지만, 멀쩡히 국내에서 사업하던 스타트업이 해외로 내몰리는 건 국내 저변을 약화시키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뉴코애드윈드는 UAE 진출이 확정되면 광주에 있는 공장을 중동으로 옮길 계획이다. 또한 델리오는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면 현지 채용을 늘리는 대신 국내에 고용한 직원 50여 명을 일부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창업 5년 차 국내 스타트업 A사 대표는 “스타트업은 사업을 빠르게 성장시켜야 하는데 규제 심의가 느리다 보니 비즈니스 모델의 자유도가 높은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 7년 차 B사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하더라도 가이드라인 안에서만 사업을 진행하라고 하기 때문에 사업의 확장성이 없어 신규 투자를 유치하는 것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규제를 ‘권력’으로 여기지 말고 해외와의 ‘규제 간극’을 좁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선경 무역협회 스타트업성장지원실장은 “모든 규제를 한꺼번에 다 뜯어고칠 수는 없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기업들이 발전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특히 모빌리티(운송), 디지털 헬스케어(의료), 리걸테크(법률) 등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규제가 천천히 풀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뒤늦게 규제를 해소한다면 해외 기업과 출발선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부가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스타트업#규제#해외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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