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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IT/의학

중이온가속기, 미국은 가동 시작하는데… 한국은 10년째 ‘준비 중’

입력 2022-05-06 03:00업데이트 2022-05-0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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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실험장치’ 美 FRIB 운영 개시
미국 미시간주립대 캠퍼스에 구축 완료돼 최근 가동에 돌입한 FRIB 시설 내부. 가속기 내부에는 이온 빔을 가속하는 46개의 저온 가속모듈 장치가 설치돼 있다. 아래쪽 사진은 FRIB 시설(가운데 복합건물)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FRIB 제공
꿈의 실험장치로 불리는 미국의 중이온가속기 ‘에프립(FRIB)’이 2일(현지 시간) 가동에 들어갔다. 2010년을 전후로 한국, 미국, 유럽 등이 뛰어든 차세대 중이온가속기 경쟁에서 미국이 우위를 선점한 것이다.

중이온가속기는 우주 탄생의 비밀을 가장 원초적인 수준에서 밝히고 자연계에 없는 희귀 동위원소를 찾아낼 수 있어 기초과학 분야 국가경쟁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평가된다. 미국에너지부(DOE)가 자금을 지원하고 미시간주립대가 설계와 운영을 맡은 에프립은 2014년 착공한 지 8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대전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핵심 시설로 1조5000억 원이 투입되는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 구축 사업이 세 차례나 계획이 변경되며 10년 넘게 표류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 우주 구성하는 원소의 생성 원리 찾는다

중이온가속기는 자연계에서 가장 무거운 원자핵을 가진 우라늄 입자를 이온 상태로 만든 뒤 가속시켜 다른 표적에 충돌시키는 장치다. 이때 2차로 생성되는 입자를 이용해 주기율표상에 존재하지 않는 원소를 찾는 연구가 이뤄진다. 이는 우주 탄생의 근원을 탐구하는 것과도 연계된다. 빅뱅우주론에 따르면 우주가 생성될 때는 수소와 헬륨의 핵융합을 통해 가벼운 원소들이 생성됐다. 무거운 원소들은 초신성 폭발이나 중성자별 병합 등 별의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어떤 원소들이 얼마나 생성됐는지에 대한 답을 중이온가속기를 활용해 찾고 있다. 희귀 동위원소를 발견할 경우 암 치료 등 의료 분야에도 활용할 수 있다.

현재 한국, 미국, 유럽이 신규로 중이온가속기를 구축 중인데 이번에 미국의 에프립이 가장 먼저 공식 가동에 돌입한 것이다. 유럽의 경우 독일 다름슈타트 소재 중이온연구소(GSI)가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중이온·반양성자 가속기 시설(FAIR)’을 구축하고 있다. 에프립 구축에는 약 9억4200만 달러(약 1조1900억 원)가 투입됐다. 미국 정부 예산 7억3000만 달러에 토지 비용 등 미시간주립대가 2억1200만 달러를 보탰다.

에프립은 마치 종이에 끼우는 클립의 형태를 띠고 있다. 클립처럼 구부러진 450m 길이의 가속기 장치라고 보면 된다. 무거운 원자핵을 가진 우라늄을 이온으로 만들어 고에너지를 통해 빔 형태로 가속시킨다. 이를 흑연으로 만들어진 벽에 충돌시키면 일부 이온들이 흑연의 탄소 핵과 충돌해 양성자와 중성자의 조합으로 분해된다. 이를 질량과 전하량에 따라 미세 조정을 하면 희귀 동위원소가 생성된다. 에프립은 핵물리학에서 의미가 있는 수백 개의 희귀 동위원소를 세계 최초로 생성하고 이를 분석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에프립의 수석 과학자인 비톨트 나자레비치 연구원은 “에프립은 핵물리학 분야 전 세계 과학자들의 꿈을 실현해 줄 것”이라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수백 개의 동위원소를 생성해 우주 내 원소 생성 배경은 물론이고 동위원소의 반감기 같은 자연계 원리를 밝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미래 불투명한 한국의 ‘라온’

미국 에프립이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은 건 2008년이다. 한국은 그보다 3년 뒤인 2011년 중이온가속기 ‘라온’ 구축 프로젝트에 돛을 올렸다. 그러나 미래는 불투명하다. 당초 2017년 사업을 완료하려 했지만 2019년으로 한 차례 변경된 뒤 2021년으로 다시 일정이 미뤄졌다. 지난해 9월에는 다시 그보다 6년 늦춰진 2027년까지 2단계에 걸쳐 완공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라온은 두 종류의 희귀 동위원소 생성 방식을 동시에 사용하는 세계 유일의 중이온가속기를 추구하고 있다. 두꺼운 표적에 가벼운 양성자 빔을 충돌시켜 저에너지 동위원소 빔을 생성하는 온라인분리법(ISOL)과 얇은 표적에 무거운 중이온 빔을 충돌시켜 고에너지 동위원소 빔을 생성하는 비행분리법(IF) 기술이다. 이 가운데 ISOL에 필요한 저에너지 가속장치는 올해 안에 구축될 예정이지만 고에너지 가속장치는 갈 길이 멀다. 연구개발(R&D)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고에너지 가속장치 연구 결과를 고려해 2단계 사업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중이온가속기 구축 사업을 주관하는 기초과학연구원(IBS)에 따르면 산하 중이온가속사업단을 7월 1일 연구소 형태로 전환할 예정이다. 연구소장 공모에도 나선다. 권영관 중이온가속사업단 부단장은 “저에너지 가속장치 운영에 무게중심을 둔 조직으로 바뀌는 것”이라며 “올해 하반기 시운전을 거친 뒤 제한적이지만 운영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연내 ISOL이 구축되어도 반쪽짜리 중이온가속기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권 부단장은 “당초 제시한 두 가지 기술을 모두 확보해야 새로운 희귀 동위원소 발견이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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