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우크라이나, 아니 초보 대통령은 이미 이겼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8일 13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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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시민들이 길목을 막고 러시아군을 저지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Radio Free Europe/Radio Liberty 유튜브 썸네일 캡처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길목을 막고 러시아군을 저지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Radio Free Europe/Radio Liberty 유튜브 썸네일 캡처
아침마다 우크라이나의 안녕을 확인한다.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면 그냥 파죽지세로 끝날 줄 알았다.

아니었다. 러시아군이 진입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노바 카호브카에선 한 할머니가 러시아군대를 향해 빗자루를 휘두르며 호통치는 것이었다. 수도 키이우에서 BTS 지민의 팬들이 “러시아 군인들을 ‘따뜻하게’ 해주겠다”며 화염병을 만들고 있었다. 나이 마흔이 넘은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조국을 지킨다며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나라가 눈물겹게 아름다운 우크라이나였다.

할머니들까지 나서 결사 항전하는 나라는 절대 무너질 수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쳐들어온 지 아흐레 되는 3일(현지 시간) 군복 티셔츠 차림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고 말했다. “우리 국민은 특별하고 비범한 사람들”이라고.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던 지우즈킨 드미트로 씨가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모습과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돌아가 총을 든 모습(사진). 서울팝스오케스트라 제공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던 지우즈킨 드미트로 씨가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모습과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돌아가 총을 든 모습(사진). 서울팝스오케스트라 제공


● 푸틴정권 교체 소리가 나온다
벌써 외신에선 푸틴의 패배를 예견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포린어페어스’ 인터넷판에 거의 매일 등장하는 기사 제목만 봐도 가슴이 뛸 정도다. ‘푸틴이 소련의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푸틴의 실수’ ‘푸틴이 값을 치르게 하라’ ‘푸틴 종말의 시작’ ‘푸틴은 러시아에서 실각할 것인가’ ‘러시아가 패배한다면’ 등등이 2월 말부터 마구 올라온다. 러시아가 승리한다는 기사는 없냐고? 2월 18일에 올라온 ‘크레믈린이 이긴다면?’이 고작이다.

미국이 만든 전문지여서 그런가 싶어 영국서 만드는 파이낸셜타임스를 들여다봤다. 5일자 사설은 “베를린 장벽 붕괴와 9·11테러가 세계를 변화시켰듯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세계를 각성시켰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독재자 푸틴에 맞서는 용기와 존엄성을 보여주었고, 민주주의 국가들은 독재자 푸틴 정권을 하룻밤 새 버렸다는 거다.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올라온 러시아 관련 최근 기사들. 푸틴과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 전망 등을 담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포린어페어 홈페이지 캡처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올라온 러시아 관련 최근 기사들. 푸틴과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 전망 등을 담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포린어페어 홈페이지 캡처
1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밝혔듯,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심각한 오산으로 드러났다. 애초 푸틴은 하루 이틀 안에 키이우를 점령하고 ‘선량한’ 우크라이나 국민으로부터 ‘해방군’으로 열렬한 환영을 받을 줄 알았다. 그래서 점령 72시간 내 친러 괴뢰정부를 세우고 대러시아 제국의 차르로서 수렴청정을 할 계획이었다. 스트롱맨(strongman)으로 유명했던 푸틴이 알고 보니 지푸라기로 만든 스트로맨(straw man)이었던 꼴이다.

● 히틀러 같은 독재자에게 또 당할 수 없다
이따위 침략 결정을 내린 푸틴은 과연 제정신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000~2008년, 그 후 4년은 헌법에 막혀 총리를 하다 2012년부터 (개헌까지 해서) 대통령으로 ‘예스맨’에 둘러싸여 있으면 정상이던 사람도 비정상이 된다고 본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도 그랬다.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그런 비극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후세의 정치인들이 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의 ‘외교 도박’은 1936년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한 라인란트 재무장부터 시작된다. 불과 3000명의 병력으로 라인란트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 뒤 히틀러는 “만일 프랑스가 밀고 들어왔더라면 우리는 꼬리를 내리고 물러났을 것”이라고 나중에 몇 번이나 말했다. 프랑스도, 영국도 독일과 싸울 엄두를 못내 히틀러의 패권외교가 이겼을 뿐이다.

자신은 절대 안 틀린다는 히틀러의 과대망상은 도를 더해갔고 유화정책의 결과 1938년 뮌헨협정이 탄생했다. 지도자 숭배 열풍이 팽배한 나치 체제에서 히틀러에게 “No”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히틀러’를 쓴 어윈 커쇼 영국 셰필드 대학 현대사 교수는 분석했다.

그래서 푸틴의 군대가 우크라이나로 들어오자 민주세계는 군사적 수단만 빼고(3차 세계대전이 터질 수 있으므로) 모든 조치를 다 취하는 거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일제히 국가신용등급을 낮추면서 급기야 러시아에 국가부도 위기가 임박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전방위적인 경제 제재가 러시아에 가해지고 신용평가사들이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크게 낮추면서 러시아 루블화 환율이 폭등하는 등 경제위기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방위적인 경제 제재가 러시아에 가해지고 신용평가사들이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크게 낮추면서 러시아 루블화 환율이 폭등하는 등 경제위기 전망이 나오고 있다.


● 피에 젖은 땅, 우크라이나
1941년 히틀러는 우크라이나에서 독일을 세계의 강국으로, 유럽의 곡창으로 만들어 줄 옥토를 봤다. 독일 침략으로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주민(특히 유대인) 300만 명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이미 이 땅에선 사상 최대의 인위적 기근으로 300만~400만 명이 문자 그대로 굶어죽은 다음이었다. 1928~33년 스탈린은 제1차 5개년 계획으로 유토피아를 약속했었다. 농토와 농민은 현대 산업국가를 만들기 위해 최대한 쥐어짜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우크라이나의 기름진 땅에서 곡물을 샅샅이 긁어갔기 때문이다(티머시 스나이더 ‘피에 젖은 땅’).

스탈린 아버지, 이걸 보세요
집단농장은 정말 정말 멋지다나요

(중략)

빵도 없어요, 기름기도 없어요
공산당이 모조리 쓸어갔어요

(중략)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잡아먹어요
당원은 아버지를 때리고 밟고
우릴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버리죠(우크라이나 동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왜 러시아 군대에 한 뼘의 땅도 내주지 않는지, 왜 초보 대통령(그는 유대인 혈통이다)이 죽어도 그 땅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하는지 이제 이해되지 않는가.

● 이재명의 중국은 한국을 지켜줄까
그래도 우크라이나에선 민족이 다른 독재자가 우크라이나 민족을 굶겨 죽였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제 국민을 굶겨 죽인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은 지금도 독재자로 김씨 왕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 북의 독재자를 향해 ‘남쪽 대통령’이라고 자칭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평양 경기장에서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이 “6개월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서 나토가 가입을 해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은 충돌했다”고 TV토론에서 말한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가 언급했던 초보 대통령이 지금 세계적 찬사를 받는 민주주의의 상징적 지도자로 꼽히고 있고, 이재명은 집권할 경우 조국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중국과 더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월 25일 진행됐던 2차 TV 토론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 “초보 
정치인이 러시아를 자극해 전쟁이 났다”고 발언하는 모습이 해외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 퍼진 모습. 인터넷 화면 캡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월 25일 진행됐던 2차 TV 토론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 “초보 정치인이 러시아를 자극해 전쟁이 났다”고 발언하는 모습이 해외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 퍼진 모습. 인터넷 화면 캡처.
이재명이 언급했던 중국은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와 척을 진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다짐한 나라다. 그가 당선돼 중국과 긴밀히 협력하면 과연 이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내일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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