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거 말고 특별한 거! 나를 드러내는 힘, 득템력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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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은 이탈리아의 하이엔드 피트니스 브랜드 테크노짐과 손잡고 스페셜 한정판 운동기구를 선보였다. 사진은 ‘디올 바이브’ 라인의 다용도 웨이트 벤치. 디올 제공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은 이탈리아의 하이엔드 피트니스 브랜드 테크노짐과 손잡고 스페셜 한정판 운동기구를 선보였다. 사진은 ‘디올 바이브’ 라인의 다용도 웨이트 벤치. 디올 제공
‘득템력.’

듣기에도 보기에도 생소한 이 단어는 매년 새해 트렌드를 제시하는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꼽은 2022년 키워드 중 하나다.

득템력은 돈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희소한 상품을 차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천편일률적인 제품은 더 이상 차별화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돈으로 누구나 살 수 있는 물건은 이제 만족을 주지 못한다. 값비싼 브랜드 제품이 아니라, 갖기 어려운 아이템을 누가 얻는지(획득)로 ‘조금 더 특별한 과시’가 가능해 진 것이다.

과거 에티켓과 문화적 소양이 그 사람의 지위를 드러내는 보이지 않는 잉크였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명품과 부가 보이는 잉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만인을 향한 자기 과시가 가능해진 지금은 득템력이 ‘새로운 잉크’가 되고 있다.

지나치기 힘든 그 이름, 한정수량

100켤레 한정 골프화 사기위해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100만원 넘는 도자기세트-신발관리기도 단기간 완판
SNS에 득템 과정 올려 만족감 얻고 고가에 되팔기도


얼마 전 대구 시내의 한 백화점에서 선착순으로 판매되는 나이키 골프화를 사기 위해 ‘오픈런’(개점 전 줄 서 있다가 문 열자마자 뛰어 들어오는 것) 현상이 벌어져 화제가 됐다. 매장별로 100켤레씩 판매하는 한정판 신발을 얻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하는 고객들까지 나오며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다른 매장 앞엔 출시 전날 밤부터 오픈런을 노리는 노숙 텐트가 차려졌다. 나이키 온라인 쇼핑몰은 접속자 폭주로 먹통이 됐고 오프라인 판매 물량은 모두 품절됐다.

대란을 빚은 ‘에어 조던 1 로우 G’의 가격은 17만9000원. 득템력의 기준이 가격이 아니라 획득의 어려움이라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나이키가 한정판 골프화를 내놓은 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골프하는 연령이 낮아지면서 젊은 층의 득템력 경쟁이 이번 오픈런으로 표출됐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추첨 등을 거치는 득템의 과정을 SNS에 올리며 즐긴다. 희소한 상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비싼 가격에 리셀(재판매)되기도 한다. 에어 조던 1 로우 G는 발매 첫날 80만 원에 되팔렸다. 2017년에 출시된 ‘조던1 레트로 골프 클릿 시카고’는 지난해 국내 리셀 플랫폼에서 209만 원에 거래됐다.

득템력은 나이를 불문한다. 한정판 신발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득템력의 대표 주자라면 중장년층 소비자에게는 장인정신 기반의 제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최고의 핸드페인팅 장인이 자기 위에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려낸 고급 식기와 독특한 재료로 만든 수제 만년필 등 자녀에게 대물림할수록 희소성과 프리미엄의 가치가 더 높아지는 상품들이 대표적이다.

로얄코펜하겐의 대표 컬렉션 ‘블루 플레인’은 접시 기준으로 762번의 섬세한 붓질이 들어가는 핸드페인팅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도자기에 문양을 그리는 핸드페인팅 모습. 로얄코펜하겐 제공
로얄코펜하겐의 대표 컬렉션 ‘블루 플레인’은 접시 기준으로 762번의 섬세한 붓질이 들어가는 핸드페인팅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도자기에 문양을 그리는 핸드페인팅 모습. 로얄코펜하겐 제공
247년 전통의 덴마크 왕실 도자기 브랜드 ‘로얄코펜하겐’은 덴마크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기념해 여왕 헌정 컬렉션 ‘2022 로얄 퍼플 에디션’을 국내 한정 판매하고 있다. 기존 파란색 안료 대신 왕족의 전유물로 사용되던 보라색을 사용해 소수의 장인이 직접 핸드페인팅으로 제작하는 한정판이다.

한정판으로 출시된 로얄 퍼플 에디션 풀 레이스 커피잔 140ml. 로얄코펜하겐 제공
한정판으로 출시된 로얄 퍼플 에디션 풀 레이스 커피잔 140ml. 로얄코펜하겐 제공
로얄 퍼플 에디션 풀 레이스 접시 25cm. 로얄코펜하겐 제공
로얄 퍼플 에디션 풀 레이스 접시 25cm. 로얄코펜하겐 제공
로얄코펜하겐의 자기 공예술을 대표하는 ‘풀 레이스’ 라인은 국내 소비자가 선호할 만한 티팟, 찻잔, 커피잔, 오발 디쉬, 접시 등 총 5종의 상품을 엄선해 구성했다. 테두리를 24캐럿 골드로 장식한 풀 레이스 라인에 보라색이 적용된 로얄 퍼플 에디션은 덴마크 본국 외에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다. 커피잔 하나에 199만 원, 티팟은 340만 원에 달하지만 상품 가치와 희귀성 때문에 지난해 12월 예약 시작 이후 일주일 만에 예약 판매가 종료됐다.

브리온베가 ‘라디오포노그라포 RR226 블루’. 브리온베가 제공
브리온베가 ‘라디오포노그라포 RR226 블루’. 브리온베가 제공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전, 가구 등에도 득템력을 자극하는 상품들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더콘란샵’에서 이탈리아 명품 오디오로 유명한 ‘브리온베가’의 1790만원짜리 ‘라디오포노그라포 RR226 블루’를 국내 단독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탈리아 공장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이 제품은 1965년 이탈리아 인테리어 디자인의 전설 카스틸리오니 형제가 디자인한 원작의 턴테이블 모습을 그대로 살렸다. 데이비드 보위와 제니 등 유명 뮤지션들의 소장품으로 알려지며 스피커 애호가들의 득템력을 자극하고 있다.

‘디올 바이브’ 라인 한정판 운동기구. 디올 제공
‘디올 바이브’ 라인 한정판 운동기구. 디올 제공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은 이탈리아 피트니스 브랜드 테크노짐과 협업으로 ‘디올 바이브’ 라인 스페셜 한정판 운동기구를 선보였다. 이번 한정판 운동 기구는 디올의 여성복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디자인하고 테크노짐의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트레드밀과 덤벨, 다용도 웨이트 벤치 등으로 구성됐다. 현재 디올 일부 매장에서만 구매 가능하다.

삼성전자와 크림이 협업한 ‘비스포크 슈드레서’ 한정판 제품.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와 크림이 협업한 ‘비스포크 슈드레서’ 한정판 제품.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KREAM)과 협업해 만든 신발관리기 ‘비스포크 슈드레서’ 한정판은 지난해 12월 판매 시작을 하자마자 완판됐다. 한정판 제품 가격이 109만9000원으로 기존 제품보다 비쌌지만 판매 79초 만에 매진됐다. 제품 전면에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인 김정윤 작가의 작품 ‘보이즈 룸’을 각인했는데, 어릴 적부터 갖고 싶었지만 가지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갈망을 소년의 방 안에 투영한 작품으로 득템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해 여름 크림 로고가 각인된 한정판 슈드레서를 10명에게 증정하는 이벤트에는 4만 명 이상의 신청자가 몰렸다.

마제스티골프코리아의 한정판 프리미엄 여성 골프 클럽 ‘허마제스티’. 마제스티골프코리아 제공
마제스티골프코리아의 한정판 프리미엄 여성 골프 클럽 ‘허마제스티’. 마제스티골프코리아 제공
마제스티골프코리아가 여성 골퍼들을 위해 지난해 출시한 한정판 프리미엄 골프 클럽 ‘허마제스티’는 새해 신세계백화점 명절 선물 세트로 지정되며 인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 제품은 일본의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미카 니나가와의 ‘M/미카 니나가와’ 브랜드와 협업한 컬렉션이다. 지난해 3월 1800만 원이라는 고가에도 6개월 만에 준비한 물량의 절반이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명품의 진입장벽이 낮아짐과 동시에 희소성이 떨어지면서 한정판을 살 수 있는 득템력이 곧 능력인 시대로 변했다”며 “구하기 힘든 제품을 득템한 소비자들은 구매력 뿐만 아니라 한정판을 구한 실행력과 정보력 등을 과시하며 만족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스타일매거진q#커버스토리#득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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