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환경 이야기] “자연에게도 주권을… ” 환경정의 외치는 ‘생태민주주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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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익추구가 불러온 기후 문제… 사회정의 추구만으로는 해결 어려워
민주주의 개념 확장한 생태민주주의, 자연과 공존 중시하는 환경정의 추구
기후 위기 극복할 새 가치로 떠올라

2019년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발생한 화재로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아래쪽)이 현장에서 물을 뿌리며 불을 끄고 있다. 당시 브라질 볼리비아 파라과이 페루콜롬비아에 걸쳐 대형 산불이 이어지며 약 90만 ha(헥타르)가 잿더미로 변했다(위쪽 사진).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 사이먼 코페 외교장관이 5일(현지 시간) 물속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보내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구 1만2000여 명의 투발루는 해발 고도 2∼3m로 지구온난화가 현재 속도로 진행되면 50년 이내에 수몰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페 장관이 연설한 위치도 한때 육지였다. 동아일보DB·투발루 정부 페이스북
2019년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발생한 화재로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아래쪽)이 현장에서 물을 뿌리며 불을 끄고 있다. 당시 브라질 볼리비아 파라과이 페루콜롬비아에 걸쳐 대형 산불이 이어지며 약 90만 ha(헥타르)가 잿더미로 변했다(위쪽 사진).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 사이먼 코페 외교장관이 5일(현지 시간) 물속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보내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구 1만2000여 명의 투발루는 해발 고도 2∼3m로 지구온난화가 현재 속도로 진행되면 50년 이내에 수몰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페 장관이 연설한 위치도 한때 육지였다. 동아일보DB·투발루 정부 페이스북
‘이방인’은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소설입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가지만 내내 울지도 않고 다음 날 애인과 태연하게 해수욕을 가고 영화도 보는 등 평소같이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해변에 놀러갔다가 권총으로 아랍인을 쏴 살해합니다. 뫼르소는 살해 이유를 단지 ‘태양 때문에’라고 말해 충격을 줍니다.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을 하는 데 이 책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주로 현대인의 파편화된 사회 관계망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입니다. 카뮈는 소설에서 ‘정주하는 삶은 없다. 우리 모두는 떠나는 자이며, 그러므로 이방인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이 책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방인이 출간된 1942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입니다. 인간이 이룩한 과학기술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것 같았는데 두 번의 세계대전은 인간의 야만성을 드러냈습니다.

인류가 이룩한 근대성의 진위가 의심되던 시대였지요. 20세기 초 사람들은 인습과 주술이 가득 찬 중세를 벗어나 르네상스를 거쳐 과학기술의 발달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습니다. 신화와 종교가 지배하는 시대를 지나 이성이 지배하는 근대사회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의 지위에 올려놓았고 인간은 완전한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은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이룩한 근대 사회에 대한 회의도 불러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이방인은 이러한 그 시대의 문제점을 드러낸 소설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독일의 울리히 베크는 1986년 ‘위험사회’를 발표합니다. 그는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때문에 출판을 앞당겼다고 합니다. 베크는 현대를 위험이 사회의 중심 현상이 되는 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위험을 결정하기 위해 늘 점검해야 하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이제 현재를 생각해 봅시다. 과학기술은 산업을 만들었고 산업은 기후위기를 유발했습니다. 그런데 기후위기를 유발한 국가와 피해를 입는 국가는 다릅니다. 앞서 말한 두 책은 인간 존재의 위험(risk)을 미시적으로 거시적으로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이 위험이 정의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가 이룩하려는 것은 정의입니다. 정의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것입니다. 주로 정의는 분배의 정의를 말합니다. 분배의 정의는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기 자신의 몫을 향유하며 살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문제는 사회정의만으로 환경오염이 특정한 계층에 집중되는 것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환경정의’가 필요합니다. 환경정의는 정의의 시각을 인간과 인간 사이를 넘어서 인간과 환경 사이에 작용하는 문제로 확대 적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환경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사적 소유로 여기지 말고 공공성을 최우선으로 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환경을 이용하는 과정 중에 사회문제가 발생하면 인간 중심적으로 결론을 내릴 소지가 있습니다. 더욱이 사회문제와 관련이 없는 야생 자연 환경과 야생 동식물 보전에 관한 것일 때는 외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존 밀림을 개발할 때 그 속에서 사는 원주민 문제만 아니라면 개발의 주체들이 과연 밀림의 파괴로 삼림의 이산화탄소 흡수 기능이 저하되어 기후위기가 가속화될 것을 고민했을까요? 어느 나라이든 유전이 발견된다면 이산화탄소 발생원이 늘어날 것을 걱정하는 대신에 부자가 되었다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가 가라앉게 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삼림을 파괴할 때 서식처를 잃은 박쥐가 인간의 거주지와 가까워지면서 박쥐의 바이러스까지 인간에게 전염될지 알았을까요?

민주주의의 문제는 인간이 선한지 악한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으로는 지구의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점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가 일부에게 전가되어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의롭지 못한 결과가 결국에는 모든 이에게 파국을 안겨줄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확장한 생태민주주의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생태민주주의 주권은 인간을 포함해 모든 자연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물론 생태민주주의가 확산되려면 인간의 주권을 어디까지 행사해야 하느냐에 대해 더 정밀한 정의와 한계가 필요합니다.

생태민주주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가 되었습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평가보고서 제1실무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상승하고 있는 지구의 온도를 1.5도 이하로 낮춰야 하는 한계가 2040년 이내라고 합니다. 1.5도를 넘으면 인간을 지켜줄 민주주의나 정의가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것이 생태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할 이유입니다. 그래야 우리 앞에 놓인 위험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수종 신연중 교사



#생태민주주의#환경정의#자연과 공존#기후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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