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서현]“오늘이 마지막일지 몰라” 엄마들의 출근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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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학교 앞에 허겁지겁 내려줬다. 붐비는 도로에서 간신히 운전대를 돌려 회사로 향했지만 이미 지각은 확실했다. 간신히 사무실 근처에 도착해 숨을 돌리자 이번엔 아들의 학교에서 알림이 와 있었다. 2학년 학생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으로 전교생이 급하게 하교를 시작했으니 즉시 학교 앞으로 와 달라는 것이다. 황급히 조퇴를 한 엄마 A 씨는 그날 출퇴근길을 ‘등골이 서늘했던 순간’이라고 묘사했다.

최근 인터넷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본 워킹맘의 현실’이라는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신을 초1 담임교사라고 밝힌 필자가 A 씨와 같은 워킹맘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고비를 조목조목 짚어 큰 공감을 샀다.

글에서 묘사된 엄마들이 일터에서 나가떨어지는 과정은 ‘커리어의 오징어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1단계: 점심 먹자마자 하교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 2단계: 일을 그만둘 수 없어 아이를 오후 5시까지 학교 돌봄교실에 맡겨야 할 때, 3단계: 그 돌봄교실 추첨에서 탈락해 아이 혼자 학원을 전전하게 할 때, 4단계: 난이도 최상의 ‘끝판왕’. 학교 내 돌봄교실이 없거나, 매일 등교 대상도 아닌 3학년이 되어 만 9세 아이 혼자 집에서 밥을 챙겨먹고 원격수업을 들을 때.

그래서 일하는 엄마들은 오늘도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선다. 혹시 아이의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어쩌나, 하교는 누가 해야 하나, 내가 일을 포기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되지 않을까, 오늘이 마지막 출근은 아닐까.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달 발표한 워킹맘 1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전쟁 같은 일상이 통계로 뒷받침된다. 응답한 워킹맘 10명 중 4명 이상이 심리척도 검사에서 ‘우울 의심’ 상태였다. 코로나19 속 절반 이상(52.1%)이 돌봄 공백을 경험했고, 그중 20.9%는 돌봄 공백에 대처할 수 없었다고 한다. 출산·육아로 직장을 그만두려고 고민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63.1%였다.

이들의 평균 자녀 수는 1.64명. 이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 수는 2.09명이었다. 아이 둘을 낳아 잘 키우고 싶은 마음과 낳으면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아닌가 하는 망설임, 그 사이에 약 ‘0.5명’이라는 간극이 있다. 일과 가정 사이를 외줄타기하며 첫째를 키워내도, 결국 둘째가 태어나면 또다시 식은땀 나는 출퇴근을 반복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 코로나19 시기 퇴사한 워킹맘들의 ‘커리어 부검’을 제안한다. 넷플릭스에서 시작돼 여러 스타트업으로 전파된 ‘부검 메일(postmortem email)’ 문화는 퇴사자들이 남은 구성원에게 보내는 이메일로,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부검’을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통계청이 조사한 여성의 고용률은 아이를 낳고 키우기 시작하는 30대에서 급락했다. 일터에서 조용히 사라진 이 30대 여성들의 커리어 부검이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엄마들#출근길#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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