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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역사에 새겨진 진실은 감춘다고 감춰지지 않는다[광화문에서/김상운]

입력 2021-08-30 03:00업데이트 2021-08-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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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문화부 차장
최근 대군주보(大君主寶), 칙명지보(勅命之寶) 등 고종의 국새 4점이 보물로 지정됐다. 이들 국새는 구한말 정부 외교문서나 관료 임명 등 행정문서에 폭넓게 사용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보도자료에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고종이 대군주보를 사용했음은 밝힌 반면 칙명지보가 1910년 한일병합조약 문서(순종황제 칙유)에 쓰인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한제국은 칙명지보 국새를 2개 만들었는데, 이 중 하나가 한일병합조약 때 사용됐다. 현존하는 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1개다.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된 칙명지보가 한일병합조약 문서에 쓰인 것인지에 대한 기자의 거듭된 질의에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칙명지보가 주로 행정결재에 쓰인 국새이다 보니 외교문서에 대해선 조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부끄러운 역사’를 굳이 들춰낼 필요가 있느냐는 속내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30일 뒤늦게 발굴조사 보고서가 발간된 전남 함평군 신덕 1호분 사례도 이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신덕 1호분은 1991년 첫 조사가 이뤄졌지만 30년간 발굴조사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다. 발굴 직후 약(略)보고서라도 내놓는 학계 관행에 비춰 보면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이는 무덤 모양이 일본 고대 무덤에서 흔히 발견되는 열쇠구멍 모양의 전형적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앞은 네모지고 뒤는 둥근 봉분을 가진 무덤)’인 탓에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한몫했다. 조사 결과를 검토한 고고학자들은 무덤 주인이 왜인(倭人)이 아닌 백제, 왜, 가야와 활발히 교류한 지역 수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최근 내렸다. 발굴조사 결과를 신속히 공개했다면 신덕 고분이 임나일본부의 증거라는 억지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사 연구는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발전할 수 있다. 최근 별세한 이정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의 학문 인생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반공주의자로 6·25전쟁 때 미군 통역관으로 복무한 그는 김일성에 대해 줄곧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지만 역사 사실에 대해선 엄정함을 유지했다. 학계 일각에서 ‘가짜 김일성’ 논란이 일었을 당시 고인은 김일성이 1930년대 만주에서 항일 게릴라 활동에 참여한 사실을 팩트대로 책에 썼다. 이로 인해 그의 대표 저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는 한때 이적표현물로 취급된 적도 있다.

그러나 고인은 김일성의 항일투쟁 효과가 미미했으며 특히 광복 후 권력을 잡기까지 소련과 중국에 종속된 사실을 명확히 지적했다. 북한 당국이 김일성 공식 전기에서 1931년 중국공산당 입당을 누락한 사실을 밝혀낸 게 대표적이다. 민족 주체를 앞세운 북한 당국이 김일성과 중국공산당의 초기 관계를 의도적으로 누락했음을 드러낸 것. 또 자료를 통해 광복 직전 소련 당국이 김일성을 모스크바로 불러들여 4년간 훈련시킨 사실도 밝혀냈다.

사회 전반에 팽배한 편 가르기, 반일(反日)몰이 등에서 연구자들마저 자유롭지 않은 요즘, 좌고우면하지 않고 사실(史實)만 올곧게 추구한 고인의 삶이 더 값지게 여겨진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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