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쓴 음악평론이 사라진다… 영상-음성 비평 시대의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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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도 유튜브 채널 잇따라 개설
비판적 시각과 깊이 사라질까 고민

유튜브의 ‘재즈기자’ 채널(왼쪽)과 ‘황덕호의 Jazz Loft’ 채널.
유튜브의 ‘재즈기자’ 채널(왼쪽)과 ‘황덕호의 Jazz Loft’ 채널.
“음악 평론을 글로 하는 세대는 아무래도 저희가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만난 박준우 대중음악평론가는 착잡해 보였다. 카페라테 잔을 들고 쓴웃음과 한숨을 반반씩 섞어 말했다. 박 평론가는 1988년생. 대학 졸업 후 2011년부터 웹진 ‘힙합엘이’에 기고하며 평론가의 길을 걸었다. 10년 차 평론가지만 근년 들어 글의 수요가 시들해짐을 어느 때보다 체감한다. 그는 “유튜브 등 여러 플랫폼에서 분위기 좋은 음악을 골라 틀어주는 플레이리스트(추천 재생목록)나 예능형 음악 콘텐츠가 주류를 이루면서 진지한 ‘글 평론’의 시대가 저무는 느낌”이라고 했다.

대중음악계에서 문자 평론의 위기가 대두되고 있다. 중견 평론가부터 신세대 평론가까지 서둘러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거나 오디오 콘텐츠 제작에 뛰어든다.

1990년생인 월간 ‘재즈피플’의 류희성 기자는 2019년 유튜브에 ‘재즈기자’ 채널을 열었다. 재즈 장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구독자 수가 최근 5만9000명을 돌파했다. 선곡 목록이 특히 인기인데 ‘재알못도 무조건 아는 유명한 재즈곡 모음’ 플레이리스트는 조회수 100만 회가 넘었다. 음반사 ‘블루노트’의 역사 등을 다룬 해설성 콘텐츠도 올려뒀지만 조회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 그러나 골수팬이 늘면서 최근에는 유튜브 생방송도 하며 구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중견 재즈 평론가 황덕호 씨(56)는 2018년 유튜브 채널 ‘황덕호의 Jazz Loft’를 열었다. 황 평론가는 “소수의 선택된 향유자가 베토벤의 신작 초연을 보고 글로 표현하던 시대에 평론이 시작됐다면, 지금은 모든 청자가 모든 음악을 언제든 들어볼 수 있는 정반대의 시대”라며 “‘좋다, 나쁘다’는 개인의 평을 강요하기보다 뒷이야기나 맥락을 담아 소개하는 친절한 전달자로 평론가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명 유튜버가 평론가의 역할을 대체한 사례도 있다. 채널 ‘theneedledrop’(구독자 약 236만 명)을 운영하는 미국의 앤서니 팬태노 씨(36)가 대표적. 음반당 5∼15분의 짧은 영상을 만드는데 과장된 표정과 적당한 유머를 섞어 말로 비평한다. 인기 영상은 편당 조회수가 수백만 회에 달한다.

‘글 평론’의 위기는 21세기, 음악이 밀봉된 음반을 뚫고 나온 디지털 음원 시대의 개막 이후 점증했다. 최근 2, 3년 사이 유튜브, 틱톡 등 뉴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력이 폭발하며 하향 곡선은 가팔라졌다. 음악 전문 정기간행물은 화석화됐고 한때 융성했던 웹진마저 예전 같지 않다. 한 음악 웹진 관계자는 “2015년만 해도 건당 수만∼10만까지 기록하던 리뷰 글 조회수가 2018년 이후 1000회 밑으로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1980, 90년대 전영혁, 성시완, 김광한 등이 스타 필자로 대접받던 음반 해설지 시장은 사실상 절멸 직전. 정민재 평론가(29)는 “3, 4년 전만 해도 연간 10여 편 되던 팝 해설지 청탁이 지난해 한두 장으로 줄더니 올해는 전무하다. 국내 제작 CD 대신 수입반과 디지털 음원만 유통하는 경향이 일반화한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영상 평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다소 길고 진지한 전통적 평론의 가치는 퇴색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류희성 기자는 “스스로를 유튜버라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을 깊게 향유하려는 사람을 위해 본격 평론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멜론’에서 오디오 콘텐츠 ‘인디스웨이’를 진행하며 한편으론 새 책도 집필 중인 정민재 평론가는 “유튜브를 잠시 운영했는데 불특정 다수의 수요나 기호에 맞춰 기획하다 보니 보람이 되레 줄었다. 설혹 반향이 작더라도, 깊이 있는 글은 내 정체성의 기본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김학선 평론가는 “뉴미디어 플랫폼에서는 조회수와 수익이 특정 가수의 팬을 만족시키는 유의 콘텐츠로 몰릴 수밖에 없다”면서 “독자와 청자로 하여금 더 오래, 깊게 생각하게 할 뿐 아니라 비판적 시각이 살아있는 평론 글의 가치는 특별하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장문의 심층 인터뷰를 중심에 둔 텍스트 기반 웹진 ‘세계’(가칭)를 하반기 창간할 계획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음악평론#비평 시대#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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